우리에게 ‘젊다’는 사실 외에 공통점이 있을까?
추수 TZUSOO
노재민 기자
Up-and-Coming Artists

사진:박홍순
1992년 출생. 홍익대 미술대학 판화과 및 동 대학원 예술학과 졸업.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에서 석사를 졸업하고 강의 중이다. 뮤직비디오 스튜디오 ‘프린세스 컴퓨터’를 설립했다. 2018년 독일 브로큰갤러리를 시작으로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상히읗, (투게더) (투게더), 소마 아트스페이스700, 분더카머, 진델핑겐시립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단체전 《예측 (불)가능한 세계》(국립현대미술관 청주, 2024), 《인공눈물》(뮤지엄헤드, 2024), 《당신을 위한 가장 찬란한 순간》(경기도미술관, 2022), 《끝에서 두 번째 세계》(하이트 컬렉션, 2022) 등에 참여했다. 2019년 아트센터 나비 레지던시에 참여했으며, 내년 두산 해외 레지던시 ISCP 프로그램에 참여할 예정이다.
우리에게 ‘젊다’는 사실 외에 공통점이 있을까?
노재민 기자

《아가몬 대백과: 외부 유출본》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사진: 홍철기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작가
추수는 조용필 등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며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국립현대미술관과 LG전자의 중장기 프로젝트 첫 번째 작가로 선정되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박스에서 신작을 발표했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분명 이른 나이에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내가 추수를 소개하는 꼭지를 담당하게 되었을 때 편집부는 “젊은 기자가 젊은 작가를 취재한다”는 반응이었다. (30대인 우리가 여전히 업계에서 ‘젊은 사람’으로 불리는 현실은 잠시 제쳐두고) ‘내가 젊다는 사실 말고 추수와 비슷한 점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안고 인터뷰에 나섰다.
동년배라는 조건 외에는 유사점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대화를 나누며 깨달은 것은, 젊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큰 공통분모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시대에 한국에서 나고 자란 여성으로서 추수와 나는 비슷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같은 문제의식을 품고 있음을 실감했다. 아직 한국에서 전시된 적 없는 퍼포먼스 〈성수통〉(2016)부터 얘기해 보자. 2016년은 박근혜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이 전국에서 타올랐던 해이자, 예술대학 내 여성혐오 발언을 고발하는 익명 아카이브 계정이 활발히 운영되던 해였다. 촛불 시위 현장에서 추수가 목도한 현수막에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글귀가 쓰여있었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자리에서조차 뿌리 깊은 성차별이 드러나는 현실 앞에 그는 집에서 생수통을 들고 나와 사람들에게 물을 나눠줬다. 커뮤니티에서 흔히 오가던 “여자는 생수통도 못 든다”는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행위였다. 애초에 작업을 위해 촬영한 영상이 아니었던 만큼 현장의 공기와 풍경이 날것 그대로 담겼다. 따라서〈성수통〉은 퍼포먼스이자 시대를 공유했던 이라면 즉각 그 시간을 떠올릴 수 있는 아카이브로 기능한다.

왼쪽 위 〈성수통〉 퍼포먼스, 비디오 2016. 외국에서는 이 작업에 대해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믿고 물을 마시냐”는 질문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아래〈100개의 판매=1,500유로의 등록금〉(부분) 100개의 티셔츠와 에코백, 퍼포먼스, 스폰서들의 사인이 담긴 2장의 A4용지 2017
오른쪽 위〈나는 이곳을 졸업하는 것이 부끄럽다〉 설치 430×300×350cm 2022
아래〈슈뢰딩거의 베이비〉 3채널 비디오 설치 (왼쪽부터) 〈4주〉 5분 25초, 〈8주〉 4분 11초, 〈16주〉 4분 19초 2019~2020 제공: The Galerie Stadt Sindelfingen
독일 철학에 매료되어 2017년 슈투트가르트로 유학을 떠난 그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가 비EU 출신 학생에게만 학기당 1,500유로의 등록금을 부과하는 차별적 구조와 마주한다. 이에 〈100개의 판매=1,500유로의 등록금〉(2017)을 기획해, 개당 15유로의 티셔츠와 에코백을 100명에게 판매하는 퍼포먼스로 저항했다. 구매자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추수가 등록금을 마련해서 한 학기 더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스폰서이자 그와 뜻을 같이하며 연대하는 행위자들이다.
졸업을 앞두고 그는 체계가 고착화되어 해당 정책을 아무도 공론화하지 않는 분위기를 보며 다시 발언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나는 이곳을 졸업하는 것이 부끄럽다〉(2022)다. 슈투트가르트 시청 인근에 한 달간 설치된 대형 광고판에는 눈물을 흘리는 아바타 ‘에이미’1가 등장했다. 추수는 에이미가 자신의 상징이라는 실상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고 말하며, 장학생으로 학교를 마친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음을 고백했다. “나는 이곳을 졸업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선언은 시스템의 침묵을 깨뜨리는 발화였다.
그렇다면 독일에서 처음 선보인 장소특정적 성격의 〈나는 이곳을 졸업하는 것이 부끄럽다〉가 한국에서 재전시되었을 때 이는 어떻게 재맥락화되었을까?2 외국인 차별이 제도화된 독일의 사례에서 출발했지만,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이 증가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도 맞닿았다. 숨 쉬듯 차별과 혐오 발언이 난무하는 한국, 동시에 ‘K-컬처’라는 이름으로 해외의 주목을 받는 풍경은 우리가 이미 직면한 현상에 대해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야 함을 시사한다.
최근 추수의 시선은 임신을 유보할 수밖에 없는 가임기 여성에 닿아있다. 그는 〈슈뢰딩거의 베이비〉(2018)를 통해 디지털 자궁을 제작해서 자신의 자궁, 심장, 배, 식도에서 채집한 소리로 신진대사의 리듬을 흉내낸다. 〈슈뢰딩거의 베이비〉와〈임산부 에이미〉(2024)를 거쳐 디지털 세계에서 현현했던 육아에 대한 욕망은 작가가 30살이 넘자 실재하는 물성의 조각으로 구현된 〈아가몬〉(2023~2025)에 도달했다. 아가몬은 우뭇가사리와 이끼, 돌 등으로 이루어진 유기적 조각으로, 시간이 흐르며 노화하고 변색된다. 오르가슴의 순간 탄생한 몬스터이자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한 아기로, 피임과 번식을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임산부 에이미〉(스틸) 비디오와 사운드, 반복 재생 2024

아가몬 시리즈 중에서는 지금까지 총 5개의 조각이 발표되었으며, 그 중 〈아가몬 2〉는 유일하게 사망 판정을 받은 개체다. 〈아가몬 2〉 우뭇가사리, 이끼, 생이가래, 물, 조명, 스테인리스 구조물, 물 공급장치 60×60×200cm 2023
제공: 상히읗
추수는 자신의 홈페이지 CV에 “아기를 가질 계획 2026?”이라고 적어두었다. 『아가몬 대백과: 외부 유출본(상)』에 실린 에세이에서는 이미 그 계획이 실패할 것임을 예감한다. 막연하게 몇 년 후에는 아이를 낳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그 몇 년 후의 시간이 훌쩍 도래하자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음을 깨닫는다. 커리어를 바삐 쌓는 여성은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여건이 여전히 충족되지 않은 자신의 상태를 목도하고서는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한다.
출산을 보류하고, 성차별적인 환경에서 목소리를 내며, 사회의 모순을 몸으로 겪는 경험은 추수 개인의 서사가 아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당사자라면 누구나 직면하는 상황이자, 세대가 공유하는 관점이다. ‘젊다’는 사실은 단순한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비슷한 모순을 마주하고 있다는 또 다른 징표일지 모른다. 그래서 추수와 나눈 대화는 특정 작가의 기록을 넘어, 동시대인으로서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증언하는 기록처럼 남는다.
1 아이돌의 외형을 한 버추얼 인플루언서 에이미는 집에 돌아와서는 가발과 의상을 벗고 활동가의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의 인플루언서 활동을 리뷰하고, 사이보그 선언문을 낭독하는 서사를 통해 신체로부터의 해방을 꿈꾼다
2 이는 그간 아무도 하지 않았던 질문이라며 추수가 좋아했던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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