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포도뮤지엄 8.9~2026.8.

심지언 편집장

Exhibition


모나 하툼 〈Remains to be Seen〉 콘크리트, 철근 528×530×530cm 2019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포도뮤지엄 전시 전경 2025
제공: 포도뮤지엄, 화이트 큐브, 모나 하툼 ⓒ 모나 하툼


망각·시간·기억: 작은 존재들의 우주
심지언 편집장

창백한 푸른 점 위의 우리
1990년, 탐사선 보이저 1호가 지구 밖 60억km 지점에서 마지막으로 지구를 돌아보았다. 광활한 우주 공간 속 한 줄기 빛에 휩싸인 지구는 하나의 점에 불과했다. 칼 세이건은 이 작은 행성에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인류의 영광과 비극이 덧없음을 일깨웠다. 이토록 미약한 우리 인류가 서로를 미워하고 다투는 폭력의 역사를 반복하는 동안, 우주는 말 없이 우리의 작은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포도뮤지엄의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은 ‘이렇게 미약하고 찰나를 사는 우리는 왜 끊임없이 서로를 미워하고, 갈등을 겪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망각의 신전’: 폭력의 민낯과 망각에 대한 성찰
첫 번째 공간인 ‘망각의 신전’은 증오와 폭력으로 얼룩진 불편한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전시는 거대한 정육면체 형태의 공중에 매달린 철근과 1.6톤의 콘크리트 덩어리로 구성된, 마치 폭파된 건물의 뼈대와 잔해를 재조립한 듯한 모나 하툼의 〈Remains to be Seen〉(2019)을 전시장 입구에 설치해 폐허와 폭력의 공간으로 관람객을 이끈다. 모나 하툼은 파괴된 건물에서 나온 듯한 재료들로 전쟁과 재난의 흔적을 직접적으로 상기시키는데, 이는 작가가 평생 작업해 온 이산, 파괴, 난민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작품은 레바논 내전으로 고국에 돌아갈 수 없게 된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의 잔해와 사회적 파괴를 물리적 형태로 가시화한다.

제니 홀저의 작품 역시 언어와 권력의 관계를 탐구하며 현대 사회의 분열을 조명한다. 특히 〈Cursed〉(2022)는 소셜 미디어에서 수집한 공격적이고 날 선 언어들을 고대 저주판처럼 납과 구리판에 새겨 넣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개인적 원한이나 정치적 적대감을 납판에 새겨 땅에 묻는 관습이 있었다. 작가는 저주판 형식을 재현하여 디지털 공간에서 가볍게 확산되었던 말들을 무겁고 차가운 금속 위에 박제시켜 순간적으로 손쉽게 소비되던 언어의 독성이 영구적인 물질로 고착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첫 문장인 “인간 삶의 과정에서…”로 시작하는 애나벨 다우의 〈When in the Course of Human Events〉(2019~2020)는 거대한 두루마리 방식으로 벽면에서 바닥을 가로지른다. 작가는 시민들에게 독립선언서의 첫 문장에 이어질 자신만의 문장을 요청했고, 참여자들은 “숨쉰다”, “걷는다”, “바라본다”와 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를 제시했다. 다우는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문장(독립선언서)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언어를 나란히 병치시켜 거대 서사 뒤에 가려져 있던 개인의 목소리를 부각하고, 역사적 사건이 결국 개개인의 삶과 행위의 총체임을 보여준다.

수미 카나자와 〈신문지 위의 드로잉〉 혼합재료 가변 설치 2017~현재
제공: 포도뮤지엄 ⓒ 수미 카나자와

쇼 시부야 〈Sunrise from a Small Window〉 연작 2020~현재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포도뮤지엄 전시 전경 2025 ⓒ 쇼 시부야

‘시간의 초상’: 유한한 삶과 시간의 의미
두 번째 섹션 ‘시간의 초상’은 시간을 시각화하여 제시함으로써 그 본질을 탐구하게 한다. 수미 카나자와의 〈신문지 위의 드로잉〉(2017~)은 반복되는 시간을 물질로 축적했다. 작품은 공적인 기록인 뉴스 위에 사적인 행위를 덧입힘으로써 개인의 기억과 사회의 기록, 사적인 순간과 공적인 사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의 켜가 뒤섞인 독특한 시간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네덜란드 작가 마르텐 바스는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 〈Real Time Conveyor Belt Clock〉(2025)을 통해 시간에 얽매여 사는 현대인의 모습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섬뜩하게 보여준다. 스크린 속 노동자들은 시곗바늘을 끊임없이 조립하고 분해하며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물질화한다. 이 무의미해 보이는 반복 행위는 매분을 실시간으로 시각화하며 우리가 시간에 맞춰 살아가는 것인지, 시간이 우리를 통제하는 것인지 질문한다.

이완은 560개의 시계로 각자 다르게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를 시각화한 작품 〈고유시〉(2025)를 선보인다. 전 세계 사람들의 노동시간과 식사비를 조사하여 개인마다 다른 시간의 속도를 계산해 시계로 구현한 이 작품은 서로 다른 시간의 속도와 가치를 가시화시키는 동시에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공통된 조건을 일깨운다.

‘기억의 거울’과 테마 공간: 치유와 상호 연결성
전시의 마지막인 ‘기억의 거울’은 과거와 현재, 개인과 집단의 기억이 만나는 공간으로 치유와 연결의 미학을 제시한다. 김한영의 작품은 반복적인 붓질로 물감 덩어리를 쌓아 올려, 개별적으로는 미미해 보이는 흔적들이 모여 이룬 거대한 풍경을 보여준다. 반복적인 붓질의 과정에서 시간은 물질이 되고, 물질은 시간의 증거로 치환되었다. 쇼 시부야의〈Sunrise from a Small Window〉 연작은 팬데믹 초기 브루클린 스튜디오의 작은 창을 통해 바라본 아침 하늘의 풍경을 일상의 루틴으로 승화시킨 작업이다. 그는 매일 뉴욕 타임스의 표지 위에 해돋이의 색채를 아크릴로 그리고, 같은 날의 뉴스 헤드라인(총격사건과 전쟁, 재난과 참사 등)을 신문 위에 겹쳐 그리며 뉴스의 혼란과 자연의 평화를 나란히 포착했다. 이 작업은 온 카와라의 시간 기록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일기처럼 이어져 왔으며, 현실의 소음 속에서도 반복되는 해돋이의 의식은 고통 속에서도 이어지는 삶의 회복력을 은유한다.

포도뮤지엄은 관람객의 몰입도를 높이는 두 개의 ‘테마 공간’을 자체 기획했다. 〈유리 코스모스〉는 다양한 폭력의 경험자들이 만든 유리 전구에 관람객의 숨을 불어 넣어 빛을 밝히는 인터랙티브 작품으로, 개인의 고통이 집단 치유의 에너지로 전환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우리는 별의 먼지다〉는 거울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1977년 보이저호의 ‘골든 레코드’가 울려 퍼지는 몰입형 설치작품으로 관람객은 무한 복제되어 점점 작아지는 자신을 마주하며, 장대한 우주와 연결된 작은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되새기게 된다.

야외 정원에 설치된 로버트 몽고메리의 LED 조형물 〈Love is The Revolutionary Energy〉(2025)는 전시의 마침표이다. “사랑은 어두움을 소멸시키고 우리 사이의 거리를 무너뜨리는 혁명적인 에너지다.” 이 문장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현대인에게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닿게 하는 근본적 힘임을 전하며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제시한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은 인류의 고독과 폭력, 그리고 기억과 연결에 대한 미학적 사유로, 작은 존재들이 어떻게 서로의 우주가 되는지 보여준다.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이지만, 그 점 위에서 피고 지는 모든 존재는 의미있는 우주의 일부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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