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Embrace)》
실과 기억 사이, 클라라 호스네들로바의
포스트 메모리 미학
박은지 전시기획
World Report | BERLIN

〈Embrace〉를 구성하는 6점의 태피스트리. 대마, 리넨, 빗질한 아마 섬유,
피그먼트, 리넨 실, 대마 밧줄, 주트 밧줄, 금속 구조물 9m 2025
© Courtesy of the Artist,
Kraupa-Tuskany Zeidler, White Cube / Nationalgalerie – Staatliche Museen zu Berlin,
Zden k Porcal – Studio Flusser
실과 기억 사이, 클라라 호스네들로바의 포스트 메모리 미학
박은지 전시기획
함부르거 반호프미술관의 메인 홀은 본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던 기차역의 대합실이었다. 만남과 이별의 기억이 스민 미술관의 상징적인 공간은, 체코 출신의 신진작가 클라라 호스네들로바(Klára Hosnedlová) 가 선보이는 원시적 질감의 태피스트리, 외계 형상의 부조, 유기물인 인간과 무기물인 대형 스피커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유토피아’로 탈바꿈했다. 동유럽의 직조 전통, 자수 공예와 같은 여성 노동의 서사를 담고 있는 작가의 대규모 전시는 10월 26일까지 열린다.
베를린 함부르거 반호프미술관에서 열리는 클라라 호스네들로바 개인전은 미술관의 첫 샤넬 후원 전시로, 중앙홀의 대규모 공간을 감각적이고 역사적인 내러티브로 재구성하여 동유럽 전통과 여성 노동, 지역 공동체의 기억을 입체적으로 선보인다. 미술관 입구에서부터 눈에 띄는 호스네들로바의 거대한 태피스트리 작업은 이러한 전시의 서사를 강력하게 예고한다. 작품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시각적인 스펙터클보다는 거친 섬유의 질감과 건조한 식물 향이 감각을 지배한다. 콘크리트 바닥을 밟을 때마다 울려 퍼지는 둔탁한 메아리와 곳곳에서 마주치는 흙바닥은 관람객을 전혀 다른 시공간, 혹은 기억의 지층 속으로 이끈다.
엉킨 실타래 속 현현하는 역사
체코 출신의 호스네들로바는 회화와 조각, 사진,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여성의 몸’과 ‘감각적 경험’을 꾸준히 탐구해왔다. 특히 태피스트리와 자수를 중심으로, 리넨 같은 천연 섬유부터 주조 유리, 사암, 점토, 철, 콘크리트 슬래브에 이르는 재료를 통해 가족과 지역, 그리고 여성 공동체의 역사를 현재로 소환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자수 작업을 통해 자신이 직접 보지 못한 조상들의 손짓을 체득해간다”고 말하는 작가에게, 이러한 재료와 기법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오랜 세월 여성의 손길로 전승된 고유한 기술이자 삶의 기록이다.1 작가는 역사 속에서 주변화되었던 여성 노동의 서사를 미술관이라는 공적 공간에 위치시키며, 세대를 넘어선 이야기들을 일종의 ‘기억의 직물’로 엮어낸다. 이러한 미학적 전략은 마리안느 허쉬(Marianne Hirsch)가 강조한 ‘포스트 메모리’ 개념과 맞닿아 있다. 허쉬는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에 일어났으나, 지나치게 깊고 강렬하게 내면화된 트라우마적 경험’과의 관계에서 포스트 메모리를 정의한다.2 그리고 이 기억을 홀로코스트 2세대에 국한하지 않고, 아메리카 노예제도, 탈식민화, 베트남 전쟁, 라틴 아메리카와 동유럽의 독재정권 등 다양한 역사적인 맥락으로 확장한다. 이는 단순히 정신적인 차원을 넘어, 이미지와 행동, 감정의 층위를 통해 ‘내 것이 아닌 기억’이 구체적으로 체화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클라라 호스네들로바
사진: Vitali Gelwich
1990년생인 호스네들로바는 체코의 사회주의 공화국 시기를 직접 겪지 않았지만, 그 시대의 기억과 공명하는 물성과 노동의 흔적, 그리고 신체적인 제스처를 현재에 복원한다. 구체적으로 작가는 천장에서 길게 드리워진 9m 높이의 태피스트리를 자신의 고향인 보헤미아(Bohemia)와 모라비아(Moravia)에서 직접 재배한 아마와 대마 섬유로 제작했다. 체코와 독일의 여러 공방에서 약 1년의 시간을 들여 완성된 이 거대한 작업은 수십 명의 현지 여성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직접 식물을 우려내고, 실로 꼬아내고, 손끝으로 엮어낸 직물에는 수 세기에 걸쳐 축적된 여성 노동의 역사가 담겨 있으며, 태피스트리 표면에서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식물의 향은 그 기억을 후각으로도 오롯이 전달한다.
태피스트리 사이와 전시장 벽면에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사암 부조들이 설치되었다. 멀리서 보면 고대 생물의 화석 같기도 한 이 작업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라이터를 든 손, 펼쳐진 손가락, 등을 닦는 손 등이 자수로 정교하게 재현되어 있다. 울퉁불퉁한 표면 위에 놓인 자수는 마치 피부 위에 새겨진 문신처럼 부조와 한 몸을 이룬다. 이 장면들은 모두 관객 없이 진행된 작가의 퍼포먼스에서 출발했다. 호스네들로바는 베를린 장벽이 있던 곳과 옛 동독 아파트 단지, 체코 이주민 지역 등 도심 내 역사적인 장소를 선택했고, 퍼포먼스에는 라이터와 천 조각 같은 일상적인 오브제만이 사용되었다. 실제로 이 퍼포먼스는 현재 체코 국경지역의 농촌과 관련된 작가의 기억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라이터 불빛은 담배를 피우던 할머니의 손길을, 벌거벗은 등은 들에서 일하던 농촌 여성의 몸을, 펼쳐진 손가락은 곡식을 골라내던 과거의 손동작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개인의 경험을 신체적인 수행을 통해 집단의 경험으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현재의 몸짓으로 재현하고 이를 다시 가장 전통적인 여성 노동인 자수로 이식함로써 작업을 완성했다.

〈무제〉(〈Embrace〉 시리즈 부분) 자수를 활용한 조각. 면사, 주조 유리, 스테인리스강,
석재 및 광물 가루, 합성수지, 스티로폼, 금속 구조물 2025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
무엇보다 자수에 등장하는 모든 장면(라이터를 쥔 손, 펼친 손가락, 등에 안료를 바르는 세밀한 동작 등)은 모두 ‘손의 행위’에 집중되어 있어, 자수가 본질적으로 손의 체득을 매개로 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특히 라이터 불꽃을 자수로 표현한 부분이 압권인데, 순간적으로 일렁이는 불꽃의 움직임이 0.1㎜도 안 되는 수십 가지 색의 실로 표현되었다. 파란색에서 주황색으로 변하는 불꽃의 그라데이션을 수놓는 데만 무려 3주가 소요됐다고. 공들여 새겨진 불꽃은 금실로 수놓은 작은 나비를 비춘다. 체코 민담에서 나비는 죽은 자의 영혼이 산 자에게 보내는 메신저로 여겨진다. 이렇게 작가는 사라진 이들의 기억을 자수라는 집요한 반복과 인내의 과정을 통해 기록하는데, 이는 로지카 파커(Rozsika Parker)가 지적한 자수의 양가성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파커에 따르면 자수는 반복 노동을 통한 ‘여성적 훈육’임인 동시에 내적 사유와 저항을 매개하는 모순적인 매체다.3 여성을 가정 영역에 묶어두는 억압적인 장치이면서 제한된 영역 안에서 창조성과 자율성을 발휘하게 하는 수단이다. 바늘과 실이라는 일상의 도구는 표면적으로는 순종적인 여성성을 구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반복적인 리듬 속에서 여성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직조하며 무의식적인 저항을 실천해왔다.
호스네들로바는 이러한 시간과 돌봄, 노동의 서사를 작품에 새겨 넣고 억압과 해방, 순응과 저항이 공존하는 자수의 이중성을 공감각으로 제시한다. 매우 세밀하게 표현된 자수 이미지는 사암의 거칠고 무거운 원시적인 질감과 콘크리트 바닥, 그리고 미술관 건축물 사이에서 긴장을 만들어낸다. 밤색과 적갈색으로 물든 태피스트리 역시 기차역을 개조한 미술관의 남성적이고 권위적인 성격을 부각시킨다. 작가는 이 전시장을 “차갑고 무거운 철골 구조 때문에 매우 남성적”이라고 묘사하며, “전시 공간과 대립되는 부드러운 무언가”를 만들고자 했는데, 이러한 대립 구조는 단순한 성별 대립을 넘어 산업 공간이 품은 억압과 그 안에서도 끈질기게 지속된 여성적 실천 사이의 긴장을 탐구한다.4

〈무제〉(사진 왼쪽) 한 개의 자수를 포함한 조각. 면사, 주조 유리, 스테인리스강,
석재 및 광물 가루, 합성수지, 스티로폼, 금속 구조물 520×280×50cm 2025
© Courtesy of the Artist, Kraupa Tuskany Zeidler, White Cube /
Nationalgalerie – Staatliche Museenzu Berlin, Zden k Porcal – Studio Flusser
전시 공간을 채우는 것은 바느질만이 아니다. 전시장에 울려 퍼지는 사운드는 침묵하는 자수 이미지에 목소리와 음악을 입힌다. 여성 합창단이 모라비아 방언으로 부르는 자장가와 노동요는 수 세기 동안 농촌 가정에서 이어져 왔지만 공식 역사에서 기록되지 못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여기에 체코 래퍼의 동시대 가사를 더해 전통과 현재, 여성과 남성, 사적과 공적 영역을 넘나드는 서사를 만들었다. 베를린 클럽에서 가져온 거대한 스피커 역시 그녀의 계산된 선택이다. 동서독 통일 직후 베를린의 클럽 문화는 자유와 탈경계의 상징이 되었지만 그 무대는 주로 남성 DJ와 관객이 주도하는 공간이었다. 작가는 그 클럽의 음향 시스템을 빌려와 여성의 목소리를 압도적으로 증폭시킨다. 한때 집 안에서 속삭이던 여성들의 노래가 이제 전시장 전체를 관통하는 정치적 언어로 자리한다.

베를린에서의 퍼포먼스 2024
© Courtesy of the artist and White Cube
포용을 수행하는 몸짓
호스네들로바는 오랫동안 여성 신체의 반복 행위와 일상의 흔적, 그리고 기억의 층위를 형상화해왔다. 그 기저에는 산업화 이후, 동유럽 여성 노동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에게 자수는 단순한 수공예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연결망이자 타인의 경험, 젠더 서사를 공간 속에 직조하는 행위이자, 개인과 공동체의 역사를 교차시키는 매개체다. 이러한 작업을 단순히 퇴행적인 회귀나 과거에 대한 막연한 향수로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전통적인 여성 노동을 통해 기억을 체화하는 과정에서, ‘포스트 메모리’ 개념을 동유럽의 특수한 맥락에 적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의 정치학을 물리적인 공간에 구현하는 데서 작가만의 독자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포용’이라는 전시명처럼, 그녀의 바늘과 실은 상실된 시간을 지우거나 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과 집단의 서사를 한 폭의 직물 위에 맞닿게 한다. 한 땀 한 땀 축적된 텍스처는 기록되지 못한 흔적들을 전시장에 호출하며, 그동안 침묵해야 했던 목소리들을 수놓아 되살린다.

클라라 호스네들로바《Embrace》 함부르거 반호프미술관 전시 전경 2025
© Courtesy of the Artist, Kraupa Tuskany Zeidler, White Cube /
Nationalgalerie – Staatliche Museen zu Berlin, Zden k Porcal – Studio Flusser
1 ‘Klára Hosnedlová’s Sublime New World’ 미술관 벽면에 설치된 전시 설명글 참조(2025.5.1)
2 Marianne Hirsch The Generation of Postmemory: Writing and Visual Culture After the Holocaust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2
3 Rozsika Parker The Subversive Stitch: Embroidery and the Making of the Feminine London: I.B. Tauris 2010 (원저: 1984)
4 위의 전시 설명글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