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발광하는, 야광
야광 Yagwan
황수진 기자
Up-and-Coming Artist

야광(2021년 결성, 김태리(b.1993), 전인(b.1995))은 시각예술 듀오 콜렉티브로, 고착된 정체성 개념을 전복하는 재현의 언어를 영상, 설치, 퍼포먼스,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경유하여 드러낸다. 신체와 공간을 매개로 인권, 세대, 노동 등의 담론과 젠더를 교차하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개인전으로 《카인드: KIND》(PS센터, 2024), 《윤활유: Lubricant》(윈드밀, 2022)를 열었으며, 아트선재센터(2025), 국립현대미술관(2025), 뮤지엄헤드(2025), 아르코미술관(2024), 인사미술공간(2024) 등 기획전에 참여했다.
어둠 속에서 발광하는, 야광
황수진 기자
“내가 누울 자리를 마련해줘. 내가 죽을 자리를 마련해줘. 내가 죽는 연습을 할 자리를 마련해줘.” 퍼포먼스 〈날것의 증거〉의 대사는 야광의 작업 전반을 압축한다. 존재를 지탱할 자리는 늘 부재한다. 어긋나게 봉합된 세계에서 꾸역꾸역 터져 나오는 존재들이 그들의 무대에 등장한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산하는 ‘야광’이라는 이름처럼, 지워지고 밀려난 흔적들은 오히려 발광의 원천이 된다. 야광은 김태리와 전인이 2021년 결성한 듀오 콜렉티브다. 두 사람은 클럽 노동과 촬영장 스태프 경험 등 개인적이면서도 공유된 기억을 교차시켜 작업을 이어왔다. 당시 퀴어 미술이 급부상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이 공감할 이야기를 전하는 작업은 드물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 이야기를 하자”는 결심으로 뭉쳤다. ‘콜렉티브’라는 이름을 거듭 강조한 것도 협업을 넘어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드러내려는 태도다.

〈날 것의 증거〉 도산공원 퍼포먼스 전경 2025
쌍(Pair)과 시간의 지지대
야광의 작업은 두 개의 관계항을 세우고 그 사이에서 문제의식을 다른 각도로 밀어붙이며 상호 보완적인 축을 이룬다. 장면은 두 축의 긴장 위에서 성립하며 그 팽팽한 힘이 시간을 붙드는 지지대가 된다. 서로 어긋난 궤적을 당겨 붙잡는 방식으로 순간이 고정되고 새로운 시간성이 만들어진다. 이 구조는 두 차례 개인전 《윤활유: Lubricant》(2022)와《카인드: Kind》(2024)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윤활유》에서는 〈랜턴(Lantern)〉(2022)과〈라텍스(LATE(X))〉(2022)가 서로를 비춘다. 전자는 1980~1990년대 퀴어 여성 아이콘 타투(t.A.T.u.)를 소환해 공통의 기억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증언되고 충돌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후자는 퀴어 클럽 노동의 경험에 상상력을 더해 결코 오지 않을 시간을 살아내는 소수자의 생존 전략을 시각화한다. 《카인드》에서는〈방문자〉(2024)와 〈침입자〉(2024)가 짝을 이룬다. 〈방문자〉는 몸에 난 종양, 집 안을 배회하는 쥐, 이방인의 이미지를 겹쳐내며 몸과 집을 침범하는 서사를 구축하고, 〈침입자〉는 죽음 이후에도 주거난에 시달리는 인물들이 머물 공간을 찾아 떠도는 장면을 펼친다. 야광의 작업은 이렇게 집단과 개인, 환대와 추방 같은 이질적인 궤적을 팽팽히 당겨 붙잡는다. 그 긴장은 퍼포먼스라는 장 속에서 중첩되고 재조립되며 새로운 존재와 새로운 시간을 증명한다.
동시 송출 퍼포먼스: 복권의 전략
야광의 동시 송출 퍼포먼스는 언제나 ‘지워진 것’을 다시 불러내는 데서 출발한다. 영상은 편집을 전제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다림, 실수, 노동은 흔적조차 남지 못한 채 사라진다. 야광은 이 잘려 나간 시간을 다시 무대로 복권한다. 〈내 심장을 핥아라(Lick My Heart)〉(2022)와 〈날것의 증거〉(2024)에서 디제이의 음악이 쿵쾅거리고, 스태프의 “컷, 오케이, 롤링” 외침이 울려 퍼지며, 전선과 쓰레기 더미가 화면을 점유하는 순간, 크레딧조차 없는 노동이 주연의 자리에 선다. 김태리와 전인은 광고와 영화 촬영 현장에서 매끈히 편집된 결과물 뒤로 수많은 이름 없는 노동이 지워지는 경험을 직접 겪었다. 제도가 늘 ‘나중’을 기약하며 현재를 유예시키듯, 촬영 현장 역시 불필요한 시간을 잘라내고 효율의 표면만 남긴다. 야광의 퍼포먼스는 바로 그 노동의 경험과 퀴어 주체로서의 현실이 포개진 자리에서 비롯된다. 퀴어 여성의 경험, 불가해한 신체 감각, 촬영장의 비가시적 노동은 주류 서사에서 배제되어 온 것들이다. 야광은 이를 무대 한가운데로 불러내며 파편과 잉여, 과잉과 충돌을 동시에 밀어넣는다. 여러 화면과 현장 사운드가 겹쳐질 때 하나의 이야기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 방식이 드러난다. 이 겹침의 시간성은 곧 그들의 정체성과 미학을 관통하는 핵심이 된다.

위 왼쪽 〈랜턴〉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3분 4초 2022 《윤활유: Lubricant》 윈드밀 전시 전경 2022
오른쪽 〈라텍스〉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0분 45초 2022 《윤활유: Lubricant》 윈드밀 전시 전경 2022
아래 왼쪽 〈날 것의 증거〉 《카인드: Kind》 피에스센터 퍼포먼스 전경 2024
오른쪽 〈침입자〉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5분 27초 2024 《카인드: Kind》 피에스센터 전시 전경 2024
불완결의 힘
야광은 공포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최근 본 영화로〈서브스턴스(The Substance)〉(2024)를 언급했다. 매끈하게 관리된 신체와 젊음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버려진 육체가 귀환하는 공포를 다루는 작품이다. 사회가 폐기한 몸이 다시 돌아와 자리를 요구하는 설정은 그들의 작업과도 맞닿아 있다. 실제로 야광이 다루는 것은 언제나 표면 아래에서 새어 나오는 존재들이다. 야광의 작업에서 손톱을 먹고 인간 신체를 훔치는 쥐, 종양, 귀신 같은 잉여적 요소들은 정상성이 잘라낸 몸의 귀환을 증언한다. 야광의 세계는 불완결적이고 모순적이다. 그러나 그 모순은 약점이 아닌 발광의 원천이다. 흠집 없는 완결로 자신을 증명하기를 거부하고 틈새와 잉여를 긍정하는 태도 속에서 ‘소거된 것’은 미학적 힘으로 되살아난다. 복원된 흔적은 곧 자기 존재를 다시 확인하는 증거가 되고, 부정당했던 위치를 드러내는 선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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