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
서울시립미술관, 낙원상가, 서울아트시네마, 청년예술청 8.26~11.23

노재민 기자

Theme Feature

이승택 〈분신행위예술전〉
재연, 퍼포먼스 및 남겨진 비조각 30분(퍼포먼스) 가변 크기(남겨진 비조각) 1989/2025
《강령: 영혼의 기술》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사진: 홍철기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강령의 현장
노재민 기자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막을 올렸다. 이번 전시는 ‘세앙스 (séance, 이하 강령)’를 통해 동시대 미디어 환경과 이성 너머의 세계를 연결하려는 시도로 다가온다. 안톤 비도클, 할리 에어스, 루카스 브라시스키스로 구성된 예술감독팀은 합리주의와 기술 낙관주의의 언어가 지배해 온 근대적 질서 바깥으로 밀려난 신비주의, 샤머니즘, 오컬트, 치유적 실천의 계보를 다시 소환한다. 영성을 특정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사회적 전환기마다 예술가들이 감각한 대안적 ‘기술’로 바라보며, 이를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반자본주의 등과 공명하는 오늘의 문화적 실천으로 재맥락화한다.

《강령: 영혼의 기술》은 ‘근현대미술에서 영적 경험은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가, 또 그것은 어떻게 다른 지평과 교차해 왔는가’라는 질문을 기초로, 인간 너머의 세계와 소통하고자 하는 시도를 이어간다. 이를 위해 11개의 소주제를 따라 전시가 펼쳐진다. ‘부활 카페’, ‘어제 온다면, 내일은 최초가 되리라’, ‘마녀와 영매의 것’, ‘트랜스’, ‘실천적 우주론’, ‘아픔을 치유하고, 망자를 일으키며’, ‘환자를 씻기고, 귀신을 쫓아내라’, ‘테크네’, ‘등가 교환’, ‘적들이 승리한 세상에 망자의 안식은 없다’, ‘유리드미’, ‘시네마’ 등에서 볼 수 있듯 소주제는 성서나 발터 벤야민의 발언, 구술된 농담 등에서 차용한 구절로 공간마다 구호처럼 배치된다. 관객은 입구에서부터 미로와 같은 흐름 속에 들어서고, 리플릿, 벽면, 카펫에 이르기까지 색채가 짙게 드리운 풍경과 마주한다. 흰 벽을 거부한 전시는 공간마다 분홍, 주황, 보라, 녹색, 파랑 등 다른 색조를 띠며 감각과 정동을 흔드는 구조적 장치를 마련한다. 이는 ‘중립적 관조’의 화이트큐브를 관객이 직접 휘말려드는 체험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며 미술 제도의 위계와 중립성을 교란한다. 다만 그 색이 주제와 맺는 구체적 의미는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쉽지 않다. 색채 선언문이 이를 보완하지만, 사전 정보 없이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는 색과 주제의 관계가 다소 느슨하게 다가온다.

위 미로를 구현한 전시장 통로 사진: 월간미술
아래 온다 아키 〈백남준의 영혼이 내게 말했다〉
필드 레코딩, 사진, 영상, 라디오, 
텍스트 가변 크기 2017/2022
《강령: 영혼의 기술》 낙원상가 412호 전시 전경 2025

연구 기반은 견고하다. 19세기 말 신지학과 영매술, 20세기 전위 실험, 동시대 작가들의 신작까지 아우르는 장대한 계보를 직조한다. 그러나 이 다층적 구조의 밀도가 관람자를 압도하여, 작품과 소주제를 따라가다 보면 낯선 암호에 둘러싸인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강령”이라는 개념은 전시의 중심 축이지만, 이를 이해하고 흡수하는 데는 긴 시간이 요구된다.

참여 작가 50여 명(팀)의 면면은 기획 의도를 웅변한다. 조지아나 하우튼, 힐마 아프 클린트, 엠마 쿤츠와 같은 작가는 미술사에서 외면된 영적 실천을 다시 소환하고, 요제프 보이스와 백남준, 이승택 등은 의례를 불러낸다. 이를테면 이승택의 〈분신행위예술전〉(1989/2025) 재연은 자신의 회화와 조각 작품에 불을 붙여 물질이 예술로 승화되는 연금술적 과정을 거꾸로 작동시키고, 히와 케이의 영상 〈하지 레이저라 불리는 사람〉(2025)은 서구 의학의 기업적 이익 논리와 선주민의 전통 의료를 교차하며 오늘날 우리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환기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전시가 의도한 계보를 풍성하게 증명함에도, 전시 전체의 흐름이 매끄럽게 이어지기보다는 학술적 조사와 개별 작품의 병렬적 집합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제인 진 카이젠 〈동요〉 퍼포먼스 10~15분 2025

히와 케이 〈당신은 무엇도 느끼지 못할 겁니다〉(사진 오른쪽) 단채널 비디오 12분 2025
《강령: 영혼의 기술》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장소의 선택은 도시적 확장을 꾀했으나 관람 경험은 일면 불완전하다. 낙원상가는 음악과 영적 경험을 결합하는 장소로 흥미로운 맥락을 품고 있지만 길 찾기나 공간 안내는 다소 미비하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영화 프로그램은 주제와 매체를 유기적으로 이어내지만 도시 자체의 맥락과 어떻게 긴밀히 호응하는지는 선명하지 않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특수성이 전시에 깊이 새겨져 있다기보다는, 다른 도시에서도 유사한 구성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인상도 남는다. 박찬경이 기획했던 제8회 미디어시티서울 《귀신, 간첩, 할머니》(2014)가 도시의 역사적 맥락과 장소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호명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전시는 개념적 층위와 감각적 체험에 무게를 둔다. 이는 장점이자 동시에 차별성의 흐릿함으로 읽히기도 한다.

위 왼쪽 백남준 〈TV 부처〉청동 조각, TV 모니터, 캠코더 105×140×70cm 1989
《강령: 영혼의 기술》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오른쪽 조지아나 하우튼 〈주님의 힘〉 외 종이에 수채 및 과슈 23×31.8cm 1864
《강령: 영혼의 기술》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아래 ‘트랜스’ 세션과 ‘실천적 우주론’ 세션에 걸쳐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강령: 영혼의 기술》은 보이지 않는 것과 접속하려는 오래된 열망을 불러낸다. 다만 이러한 기획이 관람자에게 곧장 경험으로 전달되기보다는 개념적 차원에 머물 때가 있다는 점에서 전시는 여전히 열려 있는 질문으로 남는다. 색과 소리, 빛과 몸짓으로 직조된 공간은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질문을 유예하며 그 물음을 감각적으로 제안한다. 결국 이번 비엔날레는 ‘영혼의 기술’이라는 미완의 개념을 통해 기술과 영성이 공존하는 시대에 예술이 어떤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지 묻는 자리로 기능한다. 그 미완의 감각이야말로 이번 비엔날레가 남기는 여운일지도 모른다. 마치 소환된 영혼이 끝내 말을 맺지 않은 채 사라지듯, 전시는 해답 없는 질문 속에 우리를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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