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의 변주 속에서
인쇄 잡지의 지속 가치에 대해

정소영 미술비평

11월 특집기사 ⑥

담론의 장이자 시대의 기록
미국 사진 저널리즘의 상징이던 『라이프(Life)』가 2000년 폐간했을 때 사람들은 인쇄 잡지의 종말을 예고하는 사건이라 말했다. 하지만 2025년인 지금, 인쇄 잡지는 여전히 출판되고 있고 새로운 인쇄 잡지도 생겨나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하는 한국민족대백과사전에서는 잡지를 “구독하는 대상이나 책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는 정기간행물”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잡지를 내용에 따라 분류해 ‘대중지’, ‘일반전문지’,‘특수지’로 나누었다. 시대는 변했지만 잡지, 그중에서도 전문지는 특정 시대의 시각, 언어, 그리고 사회적 상상력을 축적하는 하나의 기록이자 동시대 담론을 생산하는 공론장으로 기능한다.

대중매체에서 하이브리드 매체로
18세기 인쇄술과 함께 열린 계몽기의 유럽에서 잡지는 문학과 사상을 나누는 지적 플랫폼이었다. 이후 대중화된 잡지는 20세기에 이르자 광고와 산업화의 영향으로 지금과 같은 패션·문화·전문분야 등으로 세분화되었다.1 이러한 지적 플랫폼으로서의 잡지는 근대화 시기 한국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등장했다. 한국의 미술잡지 시초는 1921년 『서화협회 회보』라는 게 정설이다.2 김순기는 박사논문에서 『서화협회 회보』의 발간 이유를 민중의 계몽으로 해석했다. 일종의 지침서이자 유일한 소식지였던 미술잡지는 1970~1980년대 황금기를 맞는다. 당시 미술잡지는 일간지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제도 밖의 논쟁, 금기된 예술가의 재조명, 해외 미술 담론의 번역과 소개와 같은 오랜 시간과 연구를 바탕으로 한 글을 실어 일종의 교과서와도 같은 존재였다. 때문에 당시 미술잡지의 기록은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잡지가 본격적인 위기를 맞은 것은 인터넷 보급과 디지털 전환 이후이다. 실시간 정보가 웹을 통해 쏟아지면서 ‘정기 발행’의 리듬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에서다. SNS 중심의 단편적 읽기 습관이나 구독 경제가 확산하면서 장르를 불문하고 많은 잡지가 폐간을 결정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잡지마저 온라인 디지털 방식과 오프라인 인쇄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잡지의 내용과 전달 방식도 변화했다. 웹진, 영상 인터뷰, AR 전시 등 멀티미디어 형식이 인쇄 콘텐츠를 보완해 디지털 확장 방식의 디지털 잡지로 등장했으며,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기획되는 큐레이션형 잡지는 하나의 ‘편집 전시’로 작동하기도 한다. 독자를 소비자로 상정해 전달하는 과거의 방식이 아닌 필자, 기획자, 참여자로 연결되는 참여형 플랫폼이 생겨난 것도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이러한 흐름은 잡지를 매체로 구분하는 것이 아닌 협업의 장으로 확장하는 과정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하이브리드 플랫폼’의 방식은 인쇄 방식의 한계인 일방적 소통을 해소하는 방안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은별 언론학 박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행하는 『신문과 방송』에서 잡지 구독 환경 변화에 맞춘 디지털 기술과 온라인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성공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3 그의 연구에 따르면 1842년 창간된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트위터, 페이스북, 스냅챗과 같은 소셜미디어의 특성마다 뉴스 콘텐츠를 달리 구성해 일반이용자를 유료 구독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사용자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온라인의 특성을 고려해 데이터 저널리즘을 강화함으로써 독자의 취향에 맞는 뉴스로 독자를 확보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온라인에서도 이코노미스트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해 저널리즘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뉴스레터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경제 전문지를 넘어서 문화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했다는 점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현재 『이코노미스트』는『뉴욕타임스』와 함께 인쇄본보다 디지털 구독 수익을 더 많이 내는 잡지가 됐다. 이러한 성공은 단순한 디지털화가 아니라 잡지 본연의 가치를 유지한 결과였다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잡지가 온라인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표한 「2022 잡지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잡지사 중 84%가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4 하지만 그중 『이코노미스트』와 같이 수익에 성공한 잡지사가 몇 퍼센트나 될지는 의문이다. 디지털로 인해 이용자의 시간 소비 방식이 달라지고 더불어 읽기 행위와 읽는 방식도 달라졌다. 인쇄 잡지는 분명 지금의 시기에 맞는 잡지의 변화를 시도해야 하지만 그 전환의 방법에 대한 체계적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인쇄 잡지의 가치
한편 최근 잡지의 물성, 디자인, 편집 철학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가디언』에서는 럭셔리 잡지와 인디 잡지가 새롭게 번창하고 있으며 이는 Z세대에서 보이는 특징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5 한국에서도 2025년 서울국제도서전의 역대급 흥행에 대한 보도가 연신 언론사와 방송국의 전파를 탄 적이 있다. ‘믿을 구석’이라는 주제로 열린 도서전은 15만 명의 방문객을 기록했다. 항간에서는 책이 아닌 굿즈 소비만 확대되었다는 평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물성을 지닌 물건을 소유하고자 한 방문객들의 필요가 확인되었던 기록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전 세계적으로 인쇄물의 물성에 대한 향수와 소유욕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이 빠르고 편리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인쇄 잡지가 지닌 감각적·사회적 가치는 대체 불가능하다. 종이의 질감, 페이지를 넘기는 리듬은 독자의 집중과 몰입을 통해 디지털 매체가 전할 수 없는 입체적 감각 기억을 남긴다. 또한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검증된 편집과 인쇄 과정을 거친 잡지는 여전히 ‘신뢰성 있는 정보 매체’로 기능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성은 과거와 동일하게 시대의 아카이빙으로서 보존의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최근 이런 인쇄물의 가치에 더해진 것이 미학적 ‘오브제’로서의 가치다. 가치 있는 소비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요즘의 세대에게 잡지는 잘 만들어진 하나의 오브제로서 소유와 감상의 목적을 지닌다. 이러한 행보는 럭셔리 산업에서도 이어진다. 지난 9월, 1년 중 패션계가 가장 바쁜 가을시즌에 맞춰 패션지 『보그』의 유럽 편집장을 지낸 에드워드 에닌풀이 퇴임 후 새로운 인쇄잡지 『72』의 첫 호를 발행했다. 첫 호를 발간하며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에닌풀은 “전통 매체를 존중하는 오브제를 제작함으로써 수집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었다”6고 매거진 창간의 이유를 밝혔다. 명품 브랜드 샤넬 역시 지난 6월, 첫 번째 『아트앤컬처매거진』을 출간했다. 지난 5년간 예술과 문화기관과 함께한 브랜드 활동을 되짚어보는 샤넬의 잡지는 250페이지에 걸쳐 다양한 종류의 종이로 제작돼 브랜드의 고급화 이미지를 인쇄 잡지에도 담아냈다. 잡지의 내용은 인터뷰와 에세이, 포토 포트폴리오를 혼합해 브랜드 매거진을 넘어선 예술문화매거진으로서의 지향성을 나타냈다.

한국에서는 인쇄 잡지의 불황 속에 『매거진 B』의 행보가 주목받는다. 2011년 창간된 『매거진 B』는 ‘한 권에 하나의 브랜드’라는 콘셉트로 창간한 브랜드 다큐멘터리 잡지이다. 브랜드의 상품광고가 아닌 브랜드의 철학과 사용자의 경험, 문화적 맥락을 한 권에 담아낸다. 광고 없는 브랜드의 이야기를 지향하며 해야 하는 콘텐츠가 아닌 하고 싶은 콘텐츠로 구성된 잡지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최근 잡지 구매자들의 취향에 맞춰 감도 깊은 그래픽 디자인을 반영한 내지 구성으로 한 권의 오브제로서 소장 가치를 이끌어낸 점도 차세대 인쇄 잡지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인쇄 잡지의 하락세를 지속해서 이야기하지만 그럼에도 이처럼 새로운 인쇄 잡지가 지속적으로 발행되는 이유는 인쇄 잡지 고유의 특성인 느림과 집중, 기록과 사유의 공간을 지켜내는 매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인쇄 잡지는 디지털의 속도에 대응하기보다, 속도의 바깥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사라질 수 없는 매체이기도 하다.

‘지속’의 이유를 묻는 잡지들
잡지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형태를 달리해 왔지만, 여전히 “누가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둔 매체다. 디지털은 정보를 확산시키지만, 인쇄 잡지는 사유를 응축시킨다. 잡지를 만든다는 것은 페이지를 편집하는 일이 아니라, 한 시대의 언어를 정리하고 다음 세대에게 남길 문화적 유산을 구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월간미술은 편집부원을 에디터라 부르지 않고 미술전문지 기자로 명칭한다. 이는 글을 에디팅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를 정리하고, 탐구하고, 기록하며,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저널리즘의 시각을 갖고 잡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잡지의 미래는 가늠할 수 없지만 잡지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도전과 실천들이 계속되는 한 인쇄 잡지는 그 역사를 지속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잡지의 정의와 역사」
2 김순기 「『서화협회 회보』 창간호의 내용 연구」동방문화대학원 박사논문 2024 p.1
3 이은별 「잡지 구독 환경 변화에 맞춘 전문적 디지털 기술과 온라인 마케팅 뒷받침돼야」『신문과 방송』 11월호 2022 p.45
4 앞의 글 p.42
5 “Tangible and collectible: luxury magazines enjoy revival as generation Z gets nostalgic” The Gardian 2025.3.25
6 “Print has become more powerful than ever: Edward Enninful launches new magazine” The Gardian 2025.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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