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수 Kisoo Kwon
권기수론: 대나무 숲에서 빛이 솟다
김노암 미술비평
Artist

권기수 / 1972년생. 홍익대와 동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성별이나 나이로 규정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는 기호인 ‘동구리’를 창조하여 동양의 전통적인 사상과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여왔다. 2015년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 방문 교수, 구글아트프로젝트(2008, 2010)에 선정되었다. 베니스비엔날레(2011), 부산비엔날레(2006, 2010), 상하이 롱뮤지엄(2013, 2024), 모리미술관(2005), 런던 사치갤러리(2009), 뉴욕 UN본부(2016), 타이페이 현대미술관(2004), 상하이 현대미술관(2006), 싱가포르 미술관(2006), 호주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2006). 베이징 금일미술관(2009) 등 해외 유수 기관에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2003년 예루살렘 시각예술센터 레지던스에 초대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등 국내 대표 미술관과 상하이 롱뮤지엄,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베니스 클라우디오부지올재단 (Fondazione Claudio Buziol) 등 해외 주요 미술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사진: 박홍순 이미지 제공: 작가
권기수론: 대나무 숲에서 빛이 솟다
김노암 미술비평
단절과 갱신
권기수는 변신의 순간에 서 있다. 예술가에게 변신이란 어쩌면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는 오랫동안 ‘동구리’라는 캐릭터로 잘 알려져 있다. 둥근 얼굴, 유머러스한 표정, 그리고 동양 문인화의 여백을 품은 그 캐릭터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였다. 권기수는 ‘동구리’를 통해 동양의 정신성과 서구의 팝아트를 결합시켰다. 그것은 한국화가 대중의 언어로 말하는 드문 예였다.
2025년 사비나미술관 전시에서 작가는 자신의 시그니처인 동구리를 배제했다.1 대신 ‘색죽(色竹, Chromatic Verticals)’이라 불리는 대형 설치작업을 연출한다. 대나무의 수직성을 색의 기둥으로 환원한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작가가 오랫동안 품어온 두 개의 동양적 원천에서 비롯된다. 첫째, 죽림칠현(竹林七賢)–세속을 벗어나 대나무 숲속에서 자유를 꿈꾸던 일곱 현자의 신화. 둘째, 색유묵생(色由墨生, 색은 먹에서 나온다)–색은 먹의 깊은 어둠 속에서 태어난다는 동양 회화의 근본이념. 권기수는 이 두 개념을 이렇게 엮는다. “먹의 깊음에서 태어난 색이 이제는 수직의 리듬으로 서 있다.” ‘색죽’은 먹이 색으로 분화되는 과정의 시각화다. 수직의 색 기둥들은 마치 대나무의 숲처럼 공간을 가르고, 관람객은 그사이를 걷는다. 익숙한 평면 회화는 해체되고 공간 속으로 확장된다. 이 새로운 숲에서 우리는 회화의 경계를 넘어선다.

〈Untitled (Air)〉 캔버스에 아크릴릭 227×182cm 2025
현대 한국화의 굴곡과 권기수의 실험
한국미술의 현대사는 ‘단절과 모색의 역사’였다. 광복 이후 서구의 모더니즘은 거센 파도로 밀려왔고, 전통은 겨우 숨을 쉬고 있을 뿐이었다. 광복 이전에는 일본을 통해, 광복 이후에는 미국을 통해 서구의 모더니즘이 소개되었다. 전통 미술의 맥이 힘을 상실한 후, 많은 작가가 서구 미술을 배웠고 동시에 ‘한국적인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국성’, ‘한국미’, ‘지역성과 현대성’, ‘전통과 글로벌리즘’은 지난 반세기 한국미술 담론의 주요한 화두였다. 작가들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 미술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한국성, 전통, 현대성, 그리고 대중문화. 이 네 가지 키워드는 지난 반세기 동안 미술가들의 어깨 위에서 씨름을 벌여왔다.
권기수의 작업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태어났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화를 전공한 청년 작가로서, 전통적인 미의식과 주제를 현대미술의 중심에 놓고자 했다. 권기수의 회화는 “동양화의 형식을 빌려 모더니즘의 형식을 탐구한 작업”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평면을 넘지 않으려는 모더니즘적 태도 속에서, 동양화의 본질과 현대성을 동시에 사유했다.”2
작가의 작업노트에는 이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이 들어 있다. “동양화의 본질은 지필묵이 아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그 사이를 바라보는 정신성이다.” 그에게 동양화란 단순한 재료나 형식이 아니라 사유의 방식이었다. 작가는 말한다. “한국화의 색은 서양화보다 채도가 낮다. 그건 빛의 양, 즉 우리가 살아온 땅의 햇살의 차이 때문이다. 나는 그 고유한 색채 감각을 살려내고 싶다.” 그는 아크릴로 사군자를 모사하는 것을 ‘현대적 동양화’로 보지 않는다. 재료에 대한 작가의 태도 혹은 사유 방식 자체가 곧 동양화의 틀이 된다는 점에서, 그는 재료의 관습을 탈피하는 급진적 실험을 지속해왔다.
권기수의 예술은 늘 두 개의 세계를 오갔다. 그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명상적 고요와 유쾌한 유머가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어 왔다. 그는 전통을 단순히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낯설게 하며 확장하려 한다. 한국화의 관습에서 벗어나면서도 그 본질을 현대적으로 끌어올리는 실험이자, 서양 모더니즘과 한국화의 대화를 시도한 여정이었다.

권기수 개인전 《동구리 20년》 프로젝트 스페이스 미음 전시 전경 2022
제공: 프로젝트 스페이스 미음

〈Pick up Stars〉스테인리스 스틸에 아크릴 및 우레탄 채색 101×60×26cm 2010
분할과 형식
사비나미술관의 ‘색죽’ 시리즈는 권기수의 작업 중에서도 형식적으로 가장 급진적이다. 여기서 그는 이미지의 세계를 완전히 벗고, 순수한 추상으로 들어선다. 대나무 숲의 이미지는 이제 색과 구조로 해체된다. 화면은 수직으로 잘리고, 색면은 기계적인 리듬을 타며 반복된다.
권기수의 추상은 세 겹으로 나뉜다. 하나, 색면의 분할 (Chromatic Division), 화면은 수직의 기둥처럼 나뉜다. 각 색은 먹에서 태어난 ‘빛의 조각’처럼 서 있다. 이 분할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동양 철학의 “색은 먹에서 나온다”는 말을 시각화한 구조다. 둘, 캔버스의 분할(Material Division), 캔버스를 물리적으로 절단한다. 그림의 표면을 ‘조형적 오브제’로 변환하는 행위다. 회화가 더 이상 평면이 아니라, 공간 속의 사물로 변한다. 셋, 공간의 분할(Spatial Division), 절단된 캔버스들이 전시장 공간을 가로지른다. 관객의 시선과 동선이 잘리고, 다시 이어진다. 회화의 평면적 분할이 실제 공간의 분할로 확장된다.
캔버스를 절단하고 다시 이어 붙인 그의 색면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공간을 가르고 다시 잇는 설치물로 확장된다. 색면의 분할은 곧 공간의 분할이다. 세 겹의 분할은 회화와 공간, 평면과 입체, 시각과 신체 사이의 경계를 흩트려놓고 재구성하기를 반복한다. 관람자는 그 틈을 걸으며 차단과 소통, 고립과 해방의 감정을 몸으로 느낀다. 관람자의 신체운동과 리듬에 따라서 전시공간의 공기가 유동한다. 틈과 틈 사이로 새로운 공기의 운동이 생성되며 예측할 수 없는 운동들이 끊이지 않고 생성되고 소멸된다.
작가는 말한다. “대나무는 신선의 숲이자, 세속으로 귀속되는 아이러니의 상징이다. 이번 작업은 대나무의 수직성과 ‘색은 먹에서 나온다’는 회화 철학을 바탕으로, 한국적 선을 현재의 공간 속에 구현한다.”

〈Cube-Reflected Forest-Red〉
보드에 캔버스, 순금박, 아크릴릭 162.1×130.3cm 2018
경계와 탈주, 심경과 비선
‘색죽’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서양의 원근법적 공간과는 다르다. 작가는 ‘심경(心境)’에서 출발한다. 심경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경치다. 화가의 내면이 바깥 공간에 드러나고, 관객의 감정이 그 안에 투영될 때 비로소 형성되는 관계적 공간이다. ‘색죽’의 대나무 숲은 이 심경의 시각적 구현이다.3
색면과 색면 사이로 빛이 스며들고, 이곳의 존재와 저편의 그림자가 서로를 비춘다. 분할된 화면은 경계이자 통로가 된다. 이 복수의 공간들은 서로를 투과하면서도, 각자의 세계를 지닌 채 공존한다. 관객은 색과 색 사이, 막힘과 열림 사이를 걷는다. 어떤 곳은 닫혀 있고, 또 어떤 곳은 빛이 새어 들어온다. 이 부분은 권기수의 작업들 가운데 ‘후소(後素)’ 시리즈를 상기시킨다. ‘후소’는 기존 화면에 채색되었던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지워가는 과정을 표현한 연작으로, 대나무 숲과 동구리와 강물과 구름과 달과 절벽이 하얀 공백으로 사라져가는 형식의 작업이다.4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비선(飛線, Line of Flight)’이다. 색면과 색면 사이의 틈, 그 여백이 바로 비선이다. 비선은 단순한 틈이 아니다. 빛과 그림자, 이곳과 저곳, 현실과 이상이 서로 스며드는 통로다. 관객은 그 사이를 통과하며 물리적 공간을 넘어 심리적 공간을 여행한다. 이때의 이동은 단순한 ‘걸음’이 아니라, 정신적 탈주다. 이러한 시도는 루치오 폰타나의 ‘공간주의’나 프랭크 스텔라의 ‘변형 캔버스’를 떠올리게 한다. 폰타나가 캔버스를 찢어 3차원의 공간을 드러냈다면, 권기수는 절단된 색면을 통해 동양의 내면적 공간, ‘심경’을 드러낸다. 폰타나는 캔버스를 베어 회화를 3차원으로 확장했고, 프랭크 스텔라는 캔버스의 ‘사물성(Objecthood)’을 강조하며 환영을 제거했다.
권기수는 캔버스를 베고 해체하지만, 그것은 단지 공간의 확장이 아니다. 그의 절단은 ‘관계의 절단’이자 ‘다시 이어짐’이다. 색죽은 존재와 존재, 시선과 마음이 만나는 경계의 장(場)이다. 그가 만든 틈은 단절이 아니라 ‘비선’—즉, 또 다른 길이다.

개인전 《The Show 1998》 관훈갤러리 전시 전경 1998
한국적 사유의 재구성
권기수는 언제나 시간과 공간, 장르와 형식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회화, 조각, 설치, 영상, 애니메이션까지. 그는 늘 ‘경계의 언어’로 말해왔다. ‘동구리’ 시리즈가 대중적 상징으로서 한국화의 확장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색죽 비선’ 시리즈는 그 궤도를 넘어선다. 그는 더 이상 캐릭터를 통해 세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색과 공간, 그리고 그사이의 공기 자체로 이야기한다.
‘색죽’은 한국화의 정신을 추상으로 옮겨놓는다. 색의 수직성과 공간의 리듬은 전통의 깊은 명상성을 간직하면서도, 국제적인 언어로 소통한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철학이다. 경계가 곧 길이다. 대나무 숲의 경계는 차단이 아니라 통로이고, 색의 수직성은 단절이 아니라 상승이다. ‘비선’은 그 길을 따라 비상하는 새처럼, 시선과 마음을 저 멀리 데려간다. 우리는 이제 권기수를 단순히 동서양의 조화를 이룬 작가로 부를 수 없다.
그는 그 너머에서, 한국적 사유의 공간미학을 새롭게 구축한 현대의 사유자다. ‘색죽–비선’은 단지 형식실험이 아니라, 한국 현대미술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가 세운 수직의 색 기둥은 우리 시대의 ‘사유의 죽림’이 된다.

〈후소(後素)〉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3×162.1cm 2014
대나무와 빛 사이에서
권기수의 ‘색죽’은 전통과 현대의 교차점에 있다. 거기에서 새로운 경계를 모색하고 길을 만든다. ‘색죽’은 단순한 추상이 아니다. 그것은 전통 회화의 철학, 한국적 색의 미감, 그리고 동양의 공간 사유가 만나는 지점이다. 색의 기둥들은 단단하지만, 그 틈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그 빛은 먹의 어둠에서 태어난 색이며, 동시에 관객의 마음이 비추는 빛이다. 그렇게 그의 숲은 완성된다. 화가가 만든 숲이지만, 관객이 걸어 들어갈 때 비로소 살아나는 숲이다. 대나무가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먹의 깊음에서 태어난 색이 수직의 리듬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분할된 화면은 새로운 공간의 문을 연다.
‘색죽-비선’ 작업은 권기수의 작업 세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선언하고 있다. 그는 이제 ‘동구리’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빛과 색, 그리고 공간이 만들어내는 감각적 경험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대나무는 더 이상 신선의 숲만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 우리 모두가 서 있는 세계의 축소판이다.
빛과 색이 솟는 숲. 그곳에서 우리는 묻는다. “한국화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경계란 어디까지인가?” 대답은 조용히, 수직의 빛줄기 속에서 들려온다. 경계는 닫힌 선이 아니라, 날아가는 선(飛線)이다.
1 《색죽 色竹 – 비선 飛線》 사비나미술관 2021.11.7~12.31
2 안이영노 《권기수 초대전 Across The Universe》 KH에너지 아트스페이스 서문 중 2025
3 서양의 공간이 눈으로 재단한 ‘측량 가능한 공간’이라면, 동양의 공간은 마음으로 느끼는 ‘심경’의 차원이다. 그는 이 개념을 회화의 평면을 넘어 전시장 전체로 확장한다. 그의 초기작 중에는 두꺼운 장지에 사람의 형상을 그리고 오려내어 전시장에 세운 작품이 있다. 이처럼 작가는 작품을 전시장에 직접 개입시키며, 회화와 공간, 그리고 관객을 하나의 장 안에 통합한다
4 후소는 공자의 ‘회사후소(繪事後素)’에서 나온 말로, 예술(繪事, 그림 그리는 일)과 도덕적 본질(素)의 관계를 말한다. 동양 미학과 사유의 근간으로 자주 인용되며,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존재와 부재의 개념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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