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미술제 2025
《Undercurrents: 물 위를 걷는 물결들》
다대포 해수욕장 일원 9.27~11.2
정소영 기자
Theme Feature

마르코 바로티 〈표류하는 소리〉 세라믹, 탄산칼슘, 태양광 패널 가변 크기 2025
협조 및 후원: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지오시스템리서치,
서울대학교 해양환경영향평가연구단, 다대포민속예술관, 제로원, WASP
사진: 김사라 제공: 부산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경계와 회복의 바다: 다대포에서 만나는 예술 생태
정소영 기자
부산에서 바다는 언제나 예술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자 상징적인 무대다. 6년 만에 다시 부산 다대포로 돌아온 바다미술제에서 바다는 장소로서의 배경이 아닌 감춰진 기억과 폭력의 지층으로 관객과 만났다.
이번 바다미술제는 《Undercurrents: 물 위를 걷는 물결들》이라는 제하에 수면 아래 잠들어 있던 시간과 존재들을 호출한다. 낙동강 하구와 남해가 만나는 다대포는 산업화의 야망과 갯벌의 생명이 충돌하던 곳으로 여전히 회복하지 못한 생태적 상처가 중첩된 장소다. 1987년 수자원 확보를 위해 낙동강의 흐름을 차단하면서 수질 악화와 생물 다양성의 감소를 겪었던 다대포는 2022년에야 일부 수문을 개방하며 생태적 회복을 이뤄나갔다. 다대포의 동쪽 해안은 백사장이 넓게 펼쳐지지만 침식과 태풍에 취약해 오랫동안 개방이 미뤄졌었다. 하지만 긴 보수의 과정을 거쳐 2025년, 30년 만에 일반인에게 다시 개방했다. 가려졌던 다대포의 역사에서 작가들은 보이지 않는 힘들이 만들어내는 다성적이고 혼종적인 풍경을 예술의 언어로 풀어냈다.

위 | 쟈닌 안토니 〈터치〉 비디오 설치 9분 37초 2002
영상 속 작가는 화면 안과 밖 바다와 하늘의 수평선이 맞닿은 외줄을 걷는다.
물 위를 걷는듯한 행위의 작업은 자연과 인간의 상관관계를 말함과 동시에
이번 바다미술제의 부제인 ‘물 위를 걷는 물결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래 | 지븨 리 & 필립 씨 라이너 〈파편: 파도의 기억_손 레알 23_04〉 81.3×309.6×80.9cm 2025
경계의 예술, 다대포라는 지형
전시의 총감독 김금화와 베르나 피나는 다대포를 “끊임없이 섞이고 변하는 경계의 장소”로 정의했다. 산과 강, 바다가 교차하는 곳의 풍경은 완전히 고정되지 않는다. 이 불안정한 지형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을 드러낸다. 23팀(38명) 작가들은 바로 그 경계의 틈에서, 바다에 스며든 산업사회의 흔적과 그로 인한 생태의 불협화음을 마주했다. 그리고 이를 예술로 표현했다. 다대포 해변을 따라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회복된 풍경의 아름다움과 함께 그 아래 잠들어 있는 폭력의 기억을 감각적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보이지 않는 생명의 언어들
2022년 대안공간 루프에서의 개인전으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사운드 미디어 아티스트 마르코 바로티(Marco Barotti)는 부산 앞바다에서 포착한 수중 생물의 소리를 혼합해 〈표류하는 소리〉(2025)를 선보였다. 조개껍데기로 만든 3D 프린트 스피커에서는 해양 보호종의 음파와 다대포 어부들의 노동요가 동시에 울린다. 인간의 귀로는 들리지 않는 해양의 리듬은 직접적으로 관객의 몸의 울림으로 전달된다. 그의 작업은 산업화로 바다의 소음 아래 묻혀 있던 생명체의 언어를 작품을 통해 되살리며, 인간과 환경 문제가 이분화될 수 없음을 일깨워준다.
지븨 리 & 필립 씨 라이너(Jeewi Lee & Phillip C. Reiner)의 조각 작업 〈파편: 파도의 기억_손 레알 23_04〉(2025)은 다대포, 마요르카, 뉴욕의 모래를 채집해 1,000배 이상 확대한 형태로 재구성한 조각 작품이다. 모래의 미세한 입자가 거대한 형태로 변하는 순간, 바다는 시간의 퇴적과 지질의 기억을 품은 하나의 거대 생명체로 변한다. 작품은 지표의 한 알갱이마저도 인간의 발자국 아래 쌓여온 역사를 내포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참여로 열리는 생태와 공동체의 장
마티아스 케슬러와 아멧 치벨렉(Mathias Kessler and Ahmet Civelek)은 지역 주민과 함께 수거한 폐플라스틱을 직조해 만든 색색의 거대한 카펫을 해변 위에 펼쳤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기〉(2025)라는 작품명에서 알 수 있듯 버려진 대상의 재탄생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햇빛과 파도, 바람이 맞닿는 순간 반짝이는 플라스틱의 눈부신 성질은 아름다움과 함께 바닷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드러나는 불안정한 훼손의 감각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환경을 위해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실천적 예술 태도를 지향하는 그들의 작업은 작가의 작품 제작 안내서에 따라 비엔날레 전시팀의 수작업으로 조성됐다.
다대포의 해변에서 고우니 생태길로 향하는 길목에 놓인 오미자의〈공 굴리기〉(2025)는 낙동강 발원지 태백에서 시작해 다대포로 이어지는 낙동강 물길을 따라 채집한 식물과 함께 다종의 식물을 모아 만든 구(球) 형태의 작은 생태계이다. ‘다섯 명의 미자’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만나 구성한 오미자 콜렉티브의 작품은 변화하는 생태계의 균형과 그 안의 복잡한 관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원형 구조로 만들어졌다. 이는 고정된 형태가 아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순환하는 자연과 생명, 그리고 공동체적 관계를 보여준다.
늦더위가 지속되던 다대포해수욕장에 설치된 대나무와 천으로 만든 텐트 모양의 라울 발히(Raul Walch)의 작품 〈바람은 누구의 것인가?〉(2025)는 관람객이 바람과 새의 존재를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자 작품이다. 마을의 정자와 같이 해변의 한가운데 놓고 연을 날리거나 새를 관찰하는 활동을 통해 사람과 자연이 서로 맞닿는 방식을 직접 경험하게 했다. 낙동강 하구의 새에서 영감을 얻은 지붕의 풍향계는 바람과 날씨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장치로 활용되며, 지속 가능한 재료로 지어진 공간은 바람, 사람, 자연이 맞물려 함께 만들어가는 모두를 위한 장으로 기능한다.

위 왼쪽 | 오미자 〈공굴리기〉 사위질빵, 좀깨잎나무, 산더덕, 호박덩굴, 환삼덩굴, 느티나무,
앵두씨, 야생갓대, 나도겨풀, 녹화끈 등 자연재료 직경 200cm 2025
오른쪽 | 세바 칼푸케오 〈콜요프 시리즈〉 사진 퍼포먼스 2025 기록: 디에고 아르고떼
아래 |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 〈폴리미터〉 폴리우레탄 필름, 기장 다시마, 사운드, 송풍기 350 ×600×600cm 2025
과정으로서의 예술, 회복의 감각
2025 바다미술제는 결과보다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을 지향한다. 작가들이 지역 주민과 함께한 협업, 재활용 소재의 활용, 체험형 프로그램들은 모두 예술을 하나의 공동체적 실천으로 확장한다. 관객은 완성된 작품을 ‘보는’ 대신, 그 속에서 ‘함께 흐르는 존재’로 초대된다. 바다는 늘 표면과 심연 사이에 존재한다. 2025 바다미술제의 ‘밑 물결’은 심연 속에서 드러나지 않던 생명체의 목소리를 감지하는 청진기가 된다. 예술은 복잡한 물결을 애써 정리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흐름 속에서 지금의 위기를 감각하고 사유하게 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바다의 표면을 걷는 동안, 관객은 그 아래에서 쉼 없이 움직이는 밑 물결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번 바다미술제가 관객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울림일 것이다.

라울 발히 〈바람은 누구의 것인가?〉
대나무, 섬유 인쇄, 스테인리스강 914×704×724cm 2025 
마티아스 케슬러 & 아멧 치벨렉〈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기〉
플라스틱 쓰레기 직조, 혼합 재료, 철재 구조물 600×1200cm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