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Curator’s Voice & Critique
《아아! 동양화》
《미술관을 기록하다》
《시대전술》
《공존: 조각접기》
이정배·우현정·김윤옥·김소정
Curator’s Voice & Critique
《아아! 동양화》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2022.7.7~9.25 / 2023.7.14~10.9 / 2024.7.19~10.6 / 2025.9.25~11.30
이정배 전시기획, 작가
아아! 동양화 – 동양화 랩소디
나는 지난 4년 동안 ‘아아! 동양화’라는 이름의 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 여정은 나 자신에게도 하나의 긴 사유의 과정이었다. 전통과 현대, 회화의 개념, 동양화의 내부와 외부, 그 모든 충돌과 반복 속에서 나는 동양화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지켜보고자 했다.
‘동양화’는 오랫동안 전통의 상징이자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세대가 바뀌고 다양한 교육체계가 공존하며 예술의 언어가 끊임없이 변하는 지금, 이 장르는 더 이상 과거의 고정된 형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동양화의 표면은 이미 달라졌고, 그 개념 또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재조정되고 있다. 나는 이 변화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동양화를 둘러싼 네 개의 서로 다른 입장을 하나의 서사로 엮었다. 그것이 바로 슬픔의 탄식어로 수사된 《아아! 동양화》다.

임노식 〈가는22〉(사진 왼쪽) 캔버스에 유채 200×500cm 2021
《열린문》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전시 전경 2022
1부 《열린문》 경계를 떠난 자들의 노래
작가: 금혜원, 김방주, 김세진, 안경수, 안정주, 이정배, 임노식, 차명희
첫 번째 전시 《열린문》은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지금은 그 매체를 떠난 작가들의 전시이다. 이들은 더 이상 먹과 종이로 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손끝에는 여전히 동양화의 사유, 즉 주체와 대상이 하나로 맞닿는 태도가 남아 있다. 나는 이들의 작품을 보며 동양화의 본질은 재료나 기법에 함몰되는 것뿐만 아니라 세계와 자신을 이어주는 통찰력에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들은 전통에서 벗어났지만 오히려 동양화의 깊은 곳으로 돌아왔다. 《열린문》은 이런 의미에서 탈(脫)전통의 전시가 아니라, 동양화의 근원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작점이었다.
2부 《이미·항상·변화》 내부에서의 진화
작가: 권순영, 김선두, 김정욱, 손동현, 유근택, 이성민, 이진주, 정재호
두 번째 전시는 변화의 개념 자체를 다루었다. ‘이미·항상·변화’라는 제목처럼 동양화는 이미 변화 중이며 언제나 변화해 왔다. 이번에는 동양화를 전공하고 여전히 그 재료를 사용하지만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난 작가들을 초청했다. 그들의 화면은 전통적이면서도 낯설었다. 이 낯섦의 표면은 서양화와 비교되지만, 그 위에 놓인 시선의 방향, 붓질, 여백, 비광학성, 비대상화는 여전히 동양화의 것이었다. 나는 이 전시에서 ‘회화성’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했다. 예술의 변화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혁신도 있지만 내부 질서의 미묘한 진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이미·항상·변화》는 그 진동의 순간들을 보여주었다. 고정되지 않는 미세한 떨림이 늘 변화를 촉발한다. 전통의 도구로 새로운 회화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의 손끝에서, 나는 ‘동양화의 현재’를 보았다.

진희란 〈두류전도〉 한지에 먹, 채색 212×455cm (14점으로 구성) 2023
《영원한 파라디소》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전시 전경 2025
제공: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3부 《모두의 동양화》 열린 해석의 장
작가: 권혜성, 나나와 펠릭스, 문성식, 유승호, 장종완, 조종성, 최수련
세 번째 전시는 동양화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동양화와 영향 관계에 놓인 작가들과 함께했다. 이들은 전통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누구보다 자유롭게 동양화의 요소를 구사했다. 그들에게 듣는 동양화 이야기는 이미 동시대 미술로의 이동을 가능하게 했다. 예술이 가진 덕목 중 하나는 차별성의 언어이다. 동양화는 더 이상 특정한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특별한 개성을 가진 회화로 누구나 바라보고, 해석하고, 참여할 수 있는 하나의 열린 사유 체계로 존재한다. 참여 작가들은 동양화의 요소-선묘, 여백, 회화와 문자, 비물질의 시간성, 비공간성-를 자신들의 언어로 재해석했다. 그들의 작품 속에서 동양화는 과거의 양식이 아니라 감각의 문법이자 사유의 방식으로 변주되었다.
고정된 전통은 없다. 전통은 해석의 반복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모두의 동양화》는 바로 그 해석의 장이었다. 고전은 현재의 눈으로 다시 읽을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이 전시는 동양화가 시대의 경계를 넘어 동시대 미술에서 확장되는 장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시대전술》
K&L뮤지엄 8.28~12.28
김윤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불안정한 세계 속의
감각적 실천과 전술적 주체
《시대전술》은 기술지상주의와 초자본주의, 그리고 거대 플랫폼 자본의 체계 안에서 드러나는 존재의 불안, 그 가운데서도 형성되는 예술적 감각의 전술을 탐색하는 전시이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노동, 관계, 인식 구조를 재편하는 지금, 이 전시는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가 말한 ‘전술(tactics)’의 개념을 호출한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 다섯 명은 주어진 구조에 저항하거나, 그 안에서 균열을 만들어내는 예술적 실천으로서 ‘전술적 주체’의 존재를 드러낸다.

신민〈미진 유진〉스티로폼, 프렌치프라이포대, 목공풀, 색연필 360×120×103cm, 360×130×107cm 2024
《시대전술》 K&L뮤지엄 전시 전경 2025
전시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2000)에서 예견한 유동성과 불확실성을 실제적 감각의 차원에서 재현한다. 미래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기술이 인간의 감정과 지각, 나아가 존재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이 시대의 역설을 작가들은 감각적 이미지로 구체화한다. 그러나 《시대전술》의 의의는 단순한 기술지상주의와 초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나 휴머니즘의 회복을 갈망하는 언어에 그치지 않는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이러한 역설의 시대에서도 현실에 응답하는 감각적 언어를 예술적 전술로 전환시키는 순간과 그 가능성에 주목한다. 김명찬의 회화는 기계적인 회화 도구인 에어브러시의 매끄러움 위에 손의 미세한 떨림을 새겨 넣으며, 기술과 육체 사이의 간극을 ‘인간의 흔적’으로 연결한다. 작가의 행위는 기술의 표준화된 질서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내며, 감각적 존재로서 인간의 신체성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한편 관람객의 몸과 감각을 호출하는 유아연의 설치 작품은 우리가 감각의 주체로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가의 구조물들은 조형적 오브제가 아니라, 신체적 움직임과 감응을 통해 완성되는 하나의 감각적 회로로 작동한다. 요한한의 작업은 언어 이전의 감각적 소통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신체의 리듬과 진동, 소리와 공명의 관계를 다양한 매체로 탐구한다.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표준화하고 단절시키는 이 시대에 가장 근원적인 신체의 리듬과 감각적 공명을 통해 타자와의 새로운 접속을 모색한다. 이들 세 작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예술이 기술과 신체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기술을 단순한 도구나 위협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존재를 확장하는 매개로 전유하며, 예술이 여전히 감각적 사유와 감응의 장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한편 신민과 남다현은 기술과 자본의 구조로 재편된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제도와 시장의 언어로 포획되고 소외되는지를 탐구한다. 신민의 조각은 일상에 내재한 불평등과 억압의 구조를 포착하며, 사회적 약자의 분노와 상실을 조형적 형태로 드러낸다. 또한 작가는 자본의 구조에서 억압된 이 감정의 에너지들이 다시 공동의 감각으로 발화되는 지점을 드러내며, 연대의 가능성을 살핀다. 한편 남다현은 예술이 자본주의적 가치 체계 안에서 소비되고 거래되는 방식을 유머와 패러디의 언어로 해체한다. 그의 작품들은 ‘명성’, ‘재판매 가치’ 등 예술의 외적 척도를 과장된 제스처로 드러냄으로써, 예술의 본질을 가리는 시장의 논리를 은유한다. 이는 체제의 언어를 흡수함과 동시에 그것을 왜곡함으로써 ‘내부로부터의 전복’을 수행하는 감각적 전술로 작동한다.
이처럼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예술적 실천은 세르토가 말한 ‘전술’의 개념 즉, 제도적 권력의 구조 안에 잠시 틈입해 의미를 변형시키는 실천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기술과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의 질서 속에서도 인간의 감정과 유머, 그리고 불완전한 몸의 감각을 통해 균열을 만들어내며, 공동의 감각과 연대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시대전술》은 바로 이 미세한 틈, 즉 체제의 언어를 전유하고 전복하는 행위를 통해 예술이 다시금 감각적 언어이자 사회적 실천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남다현 〈제프쿤스 파격 세일〉혼합재료, 퍼포먼스 가변크기 2023
《시대전술》 K&L뮤지엄 전시 전경 2025
사진: 이운 제공: K&L뮤지엄
주디스 버틀러는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2023)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공유된 취약성의 조건” 위에 놓여 있음을 강조한다. 인간은 독립적 개체가 아니라, 서로의 생존 가능성을 매개하는 관계적 존재이며, 따라서 예술의 행위 또한 대상과 타자에 대한 응답의 형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시대전술》의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러한 감응의 공간이자 관계의 장을 열어놓는다. 이 전시는 예술이 여전히 시대를 살아내는 ‘전술’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존: 조각접기》
IBK아트스테이션 9.2~10.21
김소정 기자
영원한 시제(時制)
19세기 후반, 프랑스 탐사대는 에게해 연안의 사모트라케 섬에서 한 조각상을 발견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상이다. 기원전 2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조각상은 바람에 흩날리는 옷자락과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역동성을 섬세하게 묘사한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작이다. 고대 조각, 특히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거나 인간의 이상적 형상을 구현한 조각은 그 상징성만큼이나 기념비적인 무게를 품고 있다. 서양 전통 미술사의 발원지로 문명이 꽃핀 곳이자 신화의 고향으로 여겨지는 고대 그리스에서는 무결점의 완벽한 존재를 조각으로 만들고 그 위에 신성성을 덧입혔다.

〈접어 만든 사모트라케의 니케〉 스테인리스 스틸에 우레탄 페인트497. 5 ×383×500cm 2025
사진: 박홍순
IBK아트스테이션에 세워진 이호준의 〈접어 만든 사모트라케의 니케〉(2025)(이하 〈니케〉)는 이러한 전통을 전복한다. 높은 단상 위에 놓인 승리의 여신에게는 신성화된 육체도, 물결치듯 유려한 키톤도 없다. 관람자의 시선은 종이의 평면성을 전제로 한 ‘접힌 면’들에 부딪히고, 접어 만들었다는 작품명은 당혹감을 더한다. 백색의 파로스산(産) 대리석을 깎거나 새기는 노동의 행위가 종이접기라는 일상의 행위로 치환되는 지점에서 미술사적 관점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다. 역사적인 영속성을 상징하던 재료와 상징을 일종의 유희가 대체한 셈인데, 이는 미술을 아름다움의 규범이나 장인 정신으로 규정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개념, 물질의 재해석, 감각의 확장을 중시하는 동시대 미술의 현재로 관객을 단숨에 이동하게 한다.
이호준은 ‘접을 수 없는 종이접기 조각’이라 명명한 범주 안에서 고대 그리스 조각을 변주한 연작을 선보인다. 작품은 실상 스테인리스 스틸이 ‘용접’된 결과물로, 작가는 종이와 금속, 접기와 용접 사이의 간극을 상상의 공간에서 연결한다. 이 경계에서 관람과 감각의 이중적 작용이 동시에 발생하고 전시 형태를 통해서는 그 경험이 한층 심미적으로 확장된다. 작가는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된 니케 조각이 보는 이를 압도할 만한 높이에 놓여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그와 흡사한 환경을 조성하고자 높이 2m에 달하는 뱃머리 모양의 좌대를 함께 제작했다. 이로써 관객이 종이접기 조각을 올려다보게 됨에 따라, 좌대가 고전 조각에 부여하던 권위와 아우라가 동시대의 층위에서 재연되는 장면이 만들어졌다.
〈접어 만든 벨베데레의 토르소〉 스테인리스 스틸에 우레탄 페인트 170×76×72cm 2025
사진: 이행진 제공: IBK 기업은행
전시가 열리는 기업은행 본사의 로비 공간 역시 이와 같은 치환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작가는 처음 이 공간을 마주했을 때 “박물관이 떠올랐다”고 말한 바 있다. 빛을 매끄럽게 반사하는 대리석 바닥, 자연광이 스며드는 전면 유리창, 그리고 〈니케〉가 놓인 공간 뒤쪽에 자리한 거대한 석재 벽은 고대의 유물에 신화적 위상을 부여해 온 박물관의 전시 담론을 환기한다.
〈접어 만든 사모트라케의 니케〉 앞에는 〈접어 만든 원반 던지는 사람〉(2025)과 〈접어 만든 벨베데레의 토르소〉(2025)가 놓여있다. 〈니케〉와 달리 관람객은 눈높이에서(물론 좌대 위에 놓였지만) 작품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데, 종이가 아닌지를 다시 한번 점검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흰색 대리석 느낌을 내는 작품의 표면은 스테인리스 스틸에 색을 입혀 만든 것이다. 작품이 제작되는 과정에도 그리스 조각의 지향점이자 방법론인 ‘완벽한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이 적용됐다. 먼저 작가는 대상을 결정한 후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능한 한 많은 이미지를 수집한다. 그리고 각 이미지에서 대상의 특징이 가장 잘 묘사된 부분을 선택하고 이들을 조합해 하나의 형태로 재구성한다. 이러한 과정은 여러 신체 부위의 가장 완벽한 비례를 계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상적 인체 조각을 조형해 내고자 했던 기원전 5세기의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의 『카논(Canon)』을 연상시킨다. 이미지 재료를 모은 후에는 3D 프로그램으로 작품을 디자인하는데 이 과정에서 접지 못하는 종이접기가 탄생한다. ‘접지 못한다’는 것은 수공예로서의 종이접기 즉, 오리가미의 규칙을 따를 수 없다는 의미다. 오리가미에서는 한 장의 종이로만 접는 것이 원칙이며 세부 묘사를 위해 다른 종이를 접붙이거나 기존 종이를 자르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종이를 접어가는 각 단계는 수학적 구조나 기하학적 원리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접어 만든 원반 던지는 사람〉 스테인리스 스틸에 우레탄 페인트 241 ×101×725cm 2025
사진: 이행진 제공: IBK 기업은행
이호준은 종이접기를 예술적 언어로 선택하며 그 형태적 아름다움을 유일한 규칙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철이라는 재료와 용접이라는 기술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실험하며 디지털로 완성된 형태에 육중한 물성을 부여했다. 그 결과, 스테인리스 스틸로 구현된 그의 작품은 형태상 종이의 가벼움을 시각화하는 동시에 매체상 물질성과 구조적 안정성을 동시에 갖추게 됐다.
작가는 그간 주로 동물을 주제로 종이접기 조각 작업을 해왔다. 특별히 대중 친화적이거나 인기가 높은 강아지, 사자, 판다와 같은 동물들은 마치 색종이로 접힌 종이와 같은 모습으로 공원, 리조트나 아파트 내 정원과 같은 일상의 공간에서 심미적 즐거움을 전한다. 작가가 그리스 조각을 주제로 삼게 된 배경에도 이처럼 대중과의 접점을 확장하고자 한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존: 조각접기》는 관람자로 하여금 익숙한 형상의 고전 조각을 즐기는 차원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전시는 예술의 본질을 동시대의 언어로 해석하는 동시에, 인간이 지금까지 풀지 못했고 앞으로도 풀지 못할 최대의 난제인 ‘영원’의 개념을 성찰하도록 이끈다. 종이라는 일시적인 재료가 영구성을 지닌 철로 대변되는 곳, 고전 조각의 이상이 반복적으로 향유되는 곳, 무엇보다 시대를 초월한 예술의 영원성이 유영하는 곳. 전시가 제시하는 공존의 장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