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심 Yeonshim Chung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자

심지언 편집장

The Interview

정연심은 미술사 연구와 큐레이팅, 비평적 글쓰기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학자다. 서울을 기반으로 세계 곳곳을 오가며 한국 미술 현장을 기록하고 연구하는 그의 리서치와 글쓰기는 한국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중요한 이론서이자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유학 시절에는 『월간미술』 해외 통신원으로서 미국 미술의 움직임을 국내에 소개했고, 현재는 한국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연구와 영문 저서 출판을 통해 글로벌미술신에 한국 미술을 위치시키고 있다. 미술사 와 비평, 큐레이팅을 아우르며 동시대 담론을 이끌어 가는 정 교수의 활동을 들어보았다.

정연심 /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미술사학자. 홍익대 미술사 석사 졸업 후 뉴욕대에서 린다 노클린의 지도하에 미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뉴욕주립대 FIT 미술사학과 조교수(2006~2009)를 지냈다. 1999년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개최된 백남준 전시에 연구원으로 참여했으며, 《제12회 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2018)의 공동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뉴욕대 대학원(IFA) 미술사학과에서 방문연구교수이자 풀브라이트 펠로우(2018~2019)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대표 저서로 『비평가, 이일 앤솔로지』(미진사, 2013), 『The Making of Modern Korean Art: The Letters of Kim Whanki, Lee Ufan, Park Seo-Bo, Kim Tschang-Yeul』(공저, Gregory R. Miller & Company, 2025) 등이 있고, 『Korean Art from 1953: Collision, Innovation, Interaction』(공저, Phaidon, 2020)에 저자이자 책임 에디터로 참여했다. ‘2021 DMZ Art & Peace Platform’의 예술총감독을 맡았다 사진:박홍순 장소 제공:스페이스21


연구자의 자리에서, 한국 미술 다시 보기

홍익대에서 이론을 가르치는 교수직 외에도 연구자, 큐레이터 등 국내 학자로서 드물게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본인의 활동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기본적으로 홍익대 미대 예술학과 교수로서 교육에 충실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학교를 활동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티칭(teaching)과 동시에 리서치 중심의 활동을 하고 싶어, 2009년 홍익대 부임 이후부턴 서울에 기반을 두고 프로젝트마다 각 지역에서 단기 리서치를 하는 것이 지금까지 제가 해온 연구 활동입니다. 지금은 트랜스내셔널한 시대로 어디에 기반을 두고 있든 어떻게 이동하며 활동하는지가 중요하죠. 학교에서는 교수이지만, 저 또한 글쓰기를 ‘작업’ 혹은 ‘작품’으로 여기는 창작자이자 연구자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 경영연구소와 파라다이스문화재단이 공동 발간한『Korea Art Market 2025』에서 선정한 ‘한국 미술시장을 이끄는 영향력 있는 인물 20인’ 중 연구자로는 유일하게 이름이 올랐습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연구는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 영역인데 책 한 권을 내기 위해 들이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인정받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20인을 살펴보니 미술시장과 미술관 관계자가 많아 연구자들이 분발하여 가시적인 콜렉티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듯 미술시장 중심의 환경 속에서 연구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미있게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에서 유학했는데 유학 경험이 남긴 인식의 전환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뉴욕대 IFA(Institute of Fine Arts)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는데, 예술 행정 석사를 먼저 공부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학계는 연구자는 연구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저는 작품이 미술관에 걸리기까지 거쳐온 이동 과정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작품의 이동 경로인 갤러리, 대안 공간 등 현장을 더 보고 싶었죠. 현장 경험을 통해 실무적이고 현실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이 큰 전환이었습니다.

또한, IFA에는 지도교수였던 린다 노클린을 비롯해 탄탄한 리서치와 큐레이션을 겸비한 학자들이 포진해 있었어요. 노클린 교수는 페미니즘 전시를 개최했고, 로버트 스토어 교수는 뉴욕현대미술관(이하 MoMA) 큐레이터를 거쳐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을 지내셨죠. 이들의 연구는 작품에서 출발하여 방법론적으로 확장하지만, 연구의 마지막에는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비평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이것이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술사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연구자로서 한국 현대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 한국은 국제 미술계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나라였어요. 반면 중국은 강력한 미술시장을 배경으로 구겐하임, MoMA PS1 등 주요 미술관 전시를 통해 급부상 중이었고, 일본은 일본 국제교류기금을 중심으로 영화, 전시, 일본어 강습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반면 한국은 분단국가라는 이미지 외 미술계의 활동은 미진했어요. 그러다 1990년대 후반부터 김수자, 서도호, 이불 같은 작가들이 국제무대에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해외에 나가서 보니 한국에 있을 때보다 우리 미술이 더 잘 보이더라고요.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너무 부족했다는 자각이 들면서 시각에 많은 변화가 생겼죠. 그러면서 뉴욕에서 한국 작가나 관련 프로젝트를 돕게 되며 자연스럽게 접점이 넓어졌어요.

한국에 대한 ‘제3세계적 시선’은 이제 거의 사라졌어요. 지금의 한국 미술은 세계 미술 속에서 하나의 수평적 주체로 자리 잡고 있어요. 해외 박사 과정 학생들도 논문에 자연스럽게 한국 미술을 한 챕터로 포함하더라고요. 탈식민주의, 디아스포라, 트랜스내셔널리즘 등의 관점에서 한국 미술은 더 넓게 쓰이고 이해되고 있습니다.

『The Making of Modern Korean Art: The Letters of Kim Tschang-Yeul,
Kim Whanki, Lee Ufan, and Park Seo-Bo, 1961~1982』 커버
이미지 제공: 티나킴갤러리


기록되지 않은 역사, 1차 사료와 비평의 재발견

비평가 이일의 글을 모은 앤솔로지 작업과 영문 출판은, 한국 현대미술 비평사의 정립과 국제화라는 두 가지 의의가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미술계에서 비평의 역할을 어떻게 보며, 이일의 비평이 현시대에 던지는 중요한 화두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013년 『비평가, 이일 앤솔로지』 책을 출판할 당시, 한국 비평계는 필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 등으로 비평 활동 자체가 살아남기 어려운 토양이었습니다. 서양미술사에서 비평은 담론의 역사에서 항상 중심에 있었고, 비평가들은 미술사학자들과 달리 현장에서 작품이 미완성인 상태(raw material)부터 지켜보며 글을 씁니다. 이일, 오광수와 같은 비평가는 작가들과 코-프로듀스 관계라고 할 정도로 현장성이 강했죠.『비평가, 이일 앤솔로지』 작업을 통해 비평의 역할이 무엇이었고, 미술의 역사 속에서 비평가의 역할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다시 조명하고 싶었어요. 특히 1970~1980년대 잡지의 흥행기에 비평의 역할도 제일 컸던 것처럼, 비평의 역사적 관점을 통해 현재의 역할을 고민하게 하고자 했습니다. 책을 준비하면서 보통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데, 이 책 이후 이경성 등 비평가 앤솔로지 시리즈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보들레르나 벤야민은 저작 전집이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 비평가들에 대한 새로운 평가나 해석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The Critical Writings of Lee Yil』을 통해 비평가의 글이 영문으로 출간됨으로써, 한국 미술을 해석하고 규정하는 ‘비평적 언어’와 ‘사고의 틀’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더불어 당대 지식인의 비평적 통찰이 담긴 1차 사료(Primary Source)를 제공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영문 앤솔로지 출판 작업에서 국문과 달리 역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일 앤솔로지의 영문 출판은 윤진섭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의 역할이 컸습니다. 2014년 AICA 서울 총회에서 이일 선생이 사후에 ‘Prize for Distinguished Contribution to Art Criticism’ 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출판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국문판은 이일 선생의 글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면, 영문판은 윤진섭, 서성록, 오광수 등 비평계의 피드백을 받아 원고를 선별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번역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1차 번역 후 출판사의 에디팅을 받고, 다시 검수를 진행하며 한국 작가들의 이름과 미술 용어의 로마자 표기(Romanization)에 통일성을 기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Korean Art from 1953: Collision, Innovation and Interaction』(이하 Korean Art from 1953)은 한국 근현대미술을 영문으로 체계화한 이정표 역할을 하는 출판물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교수 생활할 때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책이 무척 부족하다는 것이 큰 문제로 인식되었습니다. 제인 포털이 집필한 한국 고미술에 대한 책 외에 20세기 한국 미술에 관한 책은 거의 없었어요. 김영나 교수의 책이 있었는데 논문으로서 의의가 컸습니다. 저는 학생과 전문가, 일반인 모두에게 한국 미술 이해를 위한 길잡이가 되는 책 혹은 편저가 없다는 이야기를 항상 했습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결핍에 대한 인식에서 기획되었습니다.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1953년’이라는 기점을 설정한 학술적 근거는 무엇입니까? 서구 중심의 모더니즘적 시기 구분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국제적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충돌(Collision)’과 ‘혁신(Innovation)’의 개념을 선택한 배경도 궁금합니다.
한국 현대의 출발점 설정에 있어서 1945년 광복, 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기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1945년 이후에도 근대적인 작업 경향이 이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1950~1960년대 작가들은 스스로를 ‘근대 작가’가 아닌 ‘현대 작가’로 인식하며 ‘현대성’에 대해 고민하고 강조했기 때문에, 한국전쟁의 정전 협정이 이루어진 1953년을 현대미술의 기점으로 삼았습니다. 국제적인 독자들에게 1953년은 남북 분단을 의미하며 한국이 여전히 기술적으로는 전쟁 중인 불안정한 국가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여 서문에 반영했습니다.

‘Collision’의 개념은 처음에는 ‘Conflict(갈등)’를 제안했는데 출판사에서 정치적인 의미로만 해석될 것을 우려해 ‘균열’이라는 의미로 ‘Collision’으로 수정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단색화, 민중미술, 신형상 등 한국 미술계의 다이내믹하고 다양한 균열을 보여주기에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술에는 전위성이 항상 존재하므로 ‘Innovation’이라는 단어를 생각했고, 한국의 작가들이 국제적인 활동을 향한 강렬한 열망을 가졌던 점을 포착해 국제 교류의 의미를 담는 ‘Interaction’을 더해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해외 출판이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의 출판 과정 중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해외 출판사를 찾는 과정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파이돈(Phaidon)과 논의 과정에서 가장 큰 이슈는 한국 미술에 대한 수요를 파악하기 어려워 공급량(제작 부수)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정부 기금을 받아 출판비의 일부를 충당하면서 출판까지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출판을 망설이던 이 책이 2020년도에 출간된 후 K-팝을 비롯한 한류 확산과 더불어 수요가 증가하면서 지금까지 1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습니다. 내후년에 개정판을 내려고 현재 2010년대 미술과 작가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책을 제작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며, 이 책이 K아트의 위상 제고에 어떤 기여를 했다고 보시는지요?
책의 내용은 전문적이지만, 일반인이 이미지만 보고도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성과 다이내믹함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러한 필진의 의견을 파이돈에서 수용해 모든 도판을 전체 컬러로 수록 하기로 했고, 이미지 사용을 위한 저작권 허락을 필자들과 제가 직접 작가들에게 받아가며 해결하는 과정을 거쳤죠. 이 책은 K아트의 위상 제고에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출발로 다른 연구자들이 영문 출판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고, 한국 미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촉발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저도 내년에 파이돈 에서 출판할 단색화와 실험미술의 교차지점에 대한 책을 집필 중입니다.

작가들의 서신을 엮어 출판하고, 원로작가 아카이빙 사업에 참여하는 등 연구 과정에서 정리된 문헌이 아닌 개인의 목소리(작가의 구술, 서신, 개인 기록 등)와 같은 1차 자료를 많이 활용합니다. 인상 깊었던 사례나 근현대미술 연구에 의미있는 발견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Korean Art from 1953』의 출판 과정을 통해 원전(原典) 자료를 더 살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고, 그 이후 제 연구는 1차 자료를 살피며 진행되고 있습니다. 김환기, 이우환, 박서보, 김창열의 서신집인 『The Making of Modern Korean Art: The Letters of Kim Tschang Yeul, Kim Whanki, Lee Ufan, and Park Seo-Bo, 1961~1982』은 티나킴 갤러리에서 발견한 작가들의 서신에서 출발했어요. 박서보의 편지에는 당시 한국이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운 상황으로 해외 전시 참여의 애로사항이 적혀 있었고 이우환의 경우, 한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1970년대 구겐하임의 일본 현대미술 전시에 불포함되었으나 1971년 파리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선정되었죠. 이는 우리가 모르는, 해외에서 막 전시를 시작하려던 한국 작가들의 연대 의식과 보이지 않는 어려움을 드러내는 중요한 역사적 사료입니다. 편지에는 사적인 내용이 많아 전체 공개가 어려웠고 저작권 등 공개 허락을 위해 오랜 설득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Korean Art from 1953: Collision, Innvation and Interaction』 커버 및 내지
이미지 제공: 정연심


텍스트 너머의 큐레이팅

광주비엔날레와 ‘DMZ Art & Peace Platform’ 등 굵직한 프로젝트의 큐레이터로 참여했습니다. 큐레이팅이 학문적 글쓰기의 연장으로 보이는데, 글쓰기와 전시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나요?
제 석사 논문 주제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였는데, 이 관계가 저에게는 글쓰기(텍스트)와 전시(이미지)로 상호 보완이 되기도 하고, 서로 다르기도 합니다. 윌리엄 블레이크 시의 삽화를 보면 어떤 것은 완전히 상반된 내용을 보여주기도 하고, 연관성이 전혀 없기도 하거든요. 이러한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가 저에게는 글쓰기와 전시의 관계죠.

연구를 계속하며 논문을 쓰다 보면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텍스트가 상상력을 담을 수 있지만 평면화된다면, 전시는 이러한 관점을 공간적, 시간적으로 가져올 수 있죠. 전시는 다공적이고 입체적인 부분이 있어서 매우 실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책은 역사적인(historical) 지점이 있지만, 전시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충돌하기도 하고, 중첩되기도 하면서 동시대적으로 풀 수 있다는 차이를 발견합니다. 글쓰기와 전시가 교차, 횡단하는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DMZ Art & Peace Platform’ 프로젝트는 비무장지대 (DMZ)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전시를 통해 장소가 주는 긴장감 속에서 어떤 내용을 담아내고자 하셨나요?
DMZ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듯 싶지만 사실은 정치적 긴장감이 여전히 높은, 모르는 땅입니다. 유엔군 사령부 아래 통제가 심한 공간이죠. 그래서 전시 제목을 《Borderless DMZ》로 정하고 비무장지대의 경계와 그 경계 너머를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이 공간의 ‘긴장감 속에서의 보호’ 라는 큰 틀 아래 생태와 평화, 공동체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담고자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했던 남북출입사무소의 김기혁 소장 덕분에, 평소 출입이 제한된 DMZ 내부에 작가들이 출입하며 리서치하여 DMZ의 장소성을 살피는 신작을 제작했습니다. 또한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장소에 백남준, 양혜규, 최재은, 올라퍼 엘리아슨, 이동기, 남화연 등의 작품을 전시해 새로운 감각으로 작품을 보게 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온라인 전시로 주로 진행된 부분입니다.

미국 유학 시절, 『월간미술』 통신원으로 뉴욕 미술계의 동향을 꾸준히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가장 인상 깊게 목격한 ‘미술의 변화’는 어떤 것이었나요?
1995년에 제가 뉴욕에 갔을 때는, 소호에 있던 대안공간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첼시의 갤러리로 재편성되는 역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소호에는 구겐하임미술관 분관과 작가들의 작업실이 여전히 많이 있었고, 뉴뮤지엄이 브로드웨이에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백남준의 퍼포먼스가 진행되기도 했고 홀리솔로몬갤러리가 소호에 있었던 시절이었죠. 미술계가 재편성되던 시점에 이를 목격하고 경험한 것이 이후 제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앨리스 양의 『Why Asia』(1998)와 같은 비평책도 읽고 월간미술 통신원이었던 박이소의 글도 읽던 시기였습니다. 미국은 기자들의 천국이라 월간미술 통신원 카드를 가지고 메트로폴리탄, MoMA 등 모든 미술관에 무료로 들어갈 수 있었고, 프레스 프리뷰에 가서 『뉴욕타임스』, 『뉴요커』, 『아트포럼』의 기자들을 자연스럽게 만나는 등 적극적으로 현장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본인이 『월간미술』에 게재한 기사 중 가장 의미있게 생각하는 기사는 무엇인가요?
2006년 백남준 선생의 장례식 기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빌 비올라와 직접 전화 인터뷰하고,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스튜디오에도 찾아가 인터뷰했습니다. 크리스토는 백남준과 오랜 친구였는데, 한국에서는 부유한 작가로 여기던 백남준을 “무척 가난하고 고군분투했던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백남준과 해외에서 인식하는 백남준의 간극을 확인하고, 그 현장을 직접 기록할 수 있었기에 의미가 큰 기사입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면 추모회를 하는데, 거기서 오노 요코가 백남준을 위한 오마주로 도자를 깨뜨려 기념품으로 나눠준 퍼포먼스를 했어요. 그 순간을 직접 목격하고 기록할 수 있는 의미있는 경험이었죠. 아직도 그 도자기 조각과 인터뷰 녹음 파일 등을 간직하고 있어요.

미술이론 또는 큐레이팅을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똑똑하고 잘 해내고 있어서 제가 주고 싶은 조언은 버티기입니다. 미술은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아요. 요즘 세대는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으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만, 미술에는 실패라는 것이 없잖아요. 백남준의 신시사이저도 오류의 결과물이었고, 그 오류가 곧 창의력이라고 했습니다.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히 작업을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전시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스페이스21에서 명동화랑의 존재와 역할을 되짚어 보는 전시 《응답하라! 명동화랑》를 준비중입니다. 명동화랑은 이강소의 〈선술집〉, 박서보의〈묘법〉, 하종현의 〈접합〉이 처음으로 소개되었던 갤러리로 1970년도에 개관해서 1982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12년의 기간 동안 이곳에서 전시한 작가들이 지금은 모두 훌륭한 작가가 되었어요. “잊혀진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미움을 받는 것이 잊혀지는 것보다 더 낫다”라는 김문호 대표의 메모를 발견하고 명동화랑을 함께 기억해 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전시했던 작품과 자료들을 소환해 명동화랑을 회고하는 전시를 선보인 후 궁극적으로는 출판으로 이어가려는 장기 계획이 있습니다.

한국 작가들의 해외 주요 미술관 회고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박서보 화백의 회고전을 제안했는데, 내년 가을(2026년 11월 말) 휴스턴의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전시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며칠 전 내년 9~10월에 파이돈에서 출판될 저서의 디자인 시안을 받았는데 출판 의도가 잘 반영되었더라고요. 이 책을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2025년 12월호 (VOL.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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