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 돌아보기와 깨뜨리기

·《박세진: 합판을 깨지 않고》
·《 나는 너를 보고 있는 하늘의 눈이다》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2025 월간미술대상 우수 전시 10

12월 특집기사 ③

세계와 자신을 감싸고 있는 껍질이 무엇인지 더듬어보는 일은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 예술가가 반복해서 마주하는 과제다. 세상과의 관계를 묻는 젊은 시선도, 회화의 조건 속에서 형태를 찾는 손끝의 과정도, 멈춰버린 시간 속을 더듬는 행위도 모두 그 껍질을 직면하거나 깨뜨리려는 움직임이다. 다음 세 전시는 각자의 조건과 문제를 지닌 채로 보호막이면서 한계로 작용하는 껍질을 열어젖히려는 차세대 작가들의 시도다.


《박세진: 합판을 깨지 않고》
d/p 5.1~31
전시기획 | 이민지 큐레이터

박세진〈눈〉(사진 가운데) 2025《합판을 깨지 않고》 d/p 전시 전경 2025
사진:김태동 제공:d/p

그림을 복기해 본다. 박세진은 d/p의 남측 창과 이웃한 긴 벽에 그림을 그렸고, 30일간의 전시 후 나와 작가는 젯소를 두 차례, 페인트를 한 차례 올려 그림을 지우고 다시 흰 벽으로 ‘복원’하였다. 매번 전시를 철수하고 전시장을 복원하지만, 박세진 작가와 “합판을 깨지 않”기로 한 후에는 무엇도 그대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세계의 진실을 새삼 깨닫는다. 오늘과 내일, 밤이 밀려나고 가시광선 한복판으로 내몰렸다가 다시 어둠을 맞이하는 순리는 반복이 아니라 쌓이고 얽히는 세계 그 자체라는 것을 온전히 그림으로 보여준 무척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이 글이 전시에 대한 소회를 한 자락이나마 밝힐 수 있는 기회라, 드디어 ‘아름답다’라는 단어를 쓸 수 있게 된 데에 안도와 감사를 느낀다. 처음 작가에게 무엇을 그릴지 들었을 때, 나는 그의 생각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한 집과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작업실 어귀 산책길에서 늘 보던 폐가에서 어느 날 한 사람이 구조되는 장면을 목격한 뒤부터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집 안에는 너무나 많은 책과 여행 가방이 쌓여 있었고, 결국 책과 여행 가방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낮은 담이 무너져 모두가 빈집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한 남자가 구조된 것이다. 작가에게 오랜 시간 머문 이 장면은 여러 겹의 생각을 거듭한 끝에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이 품은 풍경을 그려보리라’는 결심으로 자리 잡았다.

박세진은 30여 년 전 학창시절 견학차 방문한 DMZ(비무장지대)에서의 경험을 풍경화로 그렸다. 〈풍경 1993~2002〉(2002)이다. 이 작업은 물리적 경계, 시지각적 경계, 그리고 인지의 경계 밖 원경까지도 우리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풍경 회화가 그런 다면의 현실을 담아내는 매체라는 것을 탐구하는 박세진 작업의 원형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집 안에 머무는 이가 품은 풍경을 그리기로 마음먹은 작가에게 풍경 회화는 이미 환상의 차원까지 확장되어 있었다. 이번 작업은 다른 이의 꿈, 밤, 마음과 기억을 풍경으로 키워내는 일이었다. 그리기로 마음먹은 작가는 정말 비장해 보였다. d/p는 매년 겨울의 짧은 해와 추위로 1월과 2월 문을 닫아 왔다. 문을 닫는 두 달에서 두 달 더 연장해 작가에게 내어주기로 했다. 2025년 1월부터 4개월 동안 작가는 12m의 벽과 작업실에서 가져온 두 개의 합판, 빛과 바람, 그리고 온갖 매질로부터 형식을 구축해냈고, 그림을 나타내었다. 아마도 그 시간 동안 작가는 빈집의 남자와 대면하기도 하고, 아득히 멀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비로소 그림이 나타났을 때, 벽과 합판은 마치 그림을 품고 있는 이야기꾼처럼 보이기도 했다.

박세진〈풍경을 키우는 방법 : 벽, 땅, 눈〉2025《합판을 깨지 않고》 d/p 전시 전경 2025
사진: 김태동 제공: d/p

그렇게 나타난 그림을 우리는 ‘눈(snow)’이라고 부르기로 했지만, 이 그림은 당연히 ‘눈’이 아니어도 충분했다. 이 그림은 정말 그 무엇도 아닌, 그림 그 자체였기에 나는 작가가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이 그림들을 오래 보길 원했다. 그래서 25분마다 밝기를 달리하는 조광기를 설치해, 관객들이 가장 밝은 상태에서부터 가장 어두운 상태의 조명으로 그림과 공간이 변화하는 시간 안에 머물기를 제안했다. 하지만 그림이 모두 완성된 후 설치된 인공조명의 광량 변화는 그림이 쌓아온 빛과는 사뭇 달랐다. 오후의 빛이 저녁의 빛으로 변하며 빠져나갈 때,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림이 요동치는 광경을 많은 관객과 나누지 못해 아쉽다. 그러나 전시란 되돌릴 수 없고 다음도 없다. 지금 벽-그림은 사라졌지만, 그 그림을 복기하고 있는 나처럼 관객들도 분명 그림의 시간을 나누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순간은 영원히 기억에서 소생한다.

박세진처럼 자신의 작업세계를 단단하게 만들어 나가는 작가와 개인전을 만드는 일은 큰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작가의 말은 늘 모호했지만, 그의 그림은 모호하게 열거된 모든 말들의 정립이었다. 이 일을 처음으로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기쁨이다.

기획자로서 스스로 탐구하고 있는 주제를 제시하지 못할 때 쑥스럽다. 기획의 범위는 너무 넓고, 나는 미술이 정말로 세계를 조직해 나가는 하나의 짜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의 주제와 대상을 선뜻 꼽을 수가 없다. 나의 대상은 이 복잡한 세계의 진실이며, 늘 그것을 다루고자 하는 작가들과 그들의 작업에 관심을 두고, 또 그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 예술에 매몰되지 않고 예술을 해나가는 일, 그것이 어쩌면 사회인으로서 기획자인 내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야 할 영역이라는 생각도 든다. 세계의 모습을 반영하는 예술이 아닌, 세계를 함께 꿰어 나가는 예술을 제시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디든 기꺼이 동참하는 기획자가 되고 싶다.

이민지
예술을 매개하고 발생시키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2025년 박세진 개인전 《합판을 깨지 않고》(d/p), 공연, 워크숍 프로그램 ‘즉흥, improvise: ooo’을 기획했고, 2024년에는 ‘d/p 유산 연구실’을 기획, 진행했다


《 나는 너를 보고 있는 하늘의 눈이다》
하이트컬렉션 2024.10.25~2024.12.21
전시기획 | 이성휘 하이트컬렉션 큐레이터

홍수진〈Dry Skies, the Eyes, and the Altar〉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컬러 24분 47초 2023
취리히시 미술컬렉션 소장 사진: 배한솔 제공: 하이트컬렉션

《나는 너를 보고 있는 하늘의 눈이다》는 2024년 하반기에 하이트컬렉션이 개최한 젊은작가전이다. 스토리텔링으로 작업을 추동하는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고자 한 전시였고, 1990년~2000년 대 생 작가 강민서 김규리 김동우 배한솔 송지유 전지홍 최희수 홍수진이 참여했다. 전시는 포스트 밀레니얼 또는 젠지(Zen. Z)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서 이 세대가 세계를 어떻게 사유하고, 욕망하고, 또 세계로부터 침잠하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하이트컬렉션은 2014년 《미래가 끝났을 때》를 시작으로 젊은 작가전을 연례화하였다. 지난 10여 년 동안 매해 전시 주제나 방향, 매체 등을 특정하여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해 왔고, 여기에는 대체로 미술시장이나 미술현장의 관습에 길들지 않은 작가들이 포함되었다. 10년 정도 전시가 축적되다 보니 결과적으로 젊은 작가전에는 당대 젊은이들이 시대를 보는 눈이 전시에 반영되고 있다. 2024년의 《나는 너를 보고 있는 하늘의 눈이다》는 회화, 사진, 설치, 영상 등 여러 매체를 다루는 작가들이 동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나 세계관을 작업에 투사할 때 여러 층위의 내러티브를 만들어 스토리텔링 하는 방식을 조망하고자 했다. 공교롭게도 참여작가들의 작업에는 눈 이미지나 눈이 상징하는 힘을 의미하는 모티프가 등장하는 작품이 많았다.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이 눈을 비판하기보다는 욕망하기를 바랐고, 전시는 이 세대가 직면한 세계에 대한 불안과 혼란, 그리고 그 속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거나, 아니면 세계로부터 침잠해버리는 태도를 반영하고자 했지만, 작금의 세상에 대한 비애감보다는 반발과 오기가 표출되어 이들이 곧 주도하게 될 세상을 탐욕스럽게 욕심내기를 바랐다. 그러나 작가들은 여느 때보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아서 전시는 차분한 분위기로 만들어졌다. 그래도 각자 하고자 하는 말과 주장이 명확했기 때문에 작업의 배경이 되는 레퍼런스나 작가들의 문제의식이 좀 더 반영될 수 있도록 전시 도록에 작가들의 글을 수록하여 최대한 이들의 날 선 의식을 담고자 했다. 향후 어떻게 변모할지 모르는 젊은 작가들을 정제된 어휘로 규정하기보다는 이들의 치열한 생각과 고민을 도록에 담고자 했으며 그럼으로써 2024년의 세계와 당대 젊은 작가들의 세계관이 이해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희수 〈Sisyphus〉 스테인리스 스틸 파이프, 철사, 시멘트 2점 가변 크기 2024
사진: 배한솔 제공: 하이트컬렉션

나는 전시가 하나의 주관적인 의견이라고 보며, 정답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전시는 작가들이 시도하려는 바를 예산이 허락하는 한 수용하려고 한다. 그 시도가 성공적이지 못하더라도 전시는 가시화되었을 때 의미가 있다. 다만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들이 멈칫할 때마다 내가 멱살 잡고 끌어당긴 것 같아 조금 반성한다. 그중 김동우는 한동안 전시장에 출퇴근하며 아이소핑크와 사투를 벌였다. 예상만큼 제작 속도가 나지 않자 작가는 괴로워했고, 설치 일자가 임박하자 당초 주유소 풍선 인형 크기로 계획했던 작업을 목업(mockup, 실물모형) 크기로 축소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그에게는 디지털 이미지와는 달리, 실공간에서 아날로그 이미지의 팽창과 부피감을 다루는 일이 얼마나 간단하지 않은지 체감하는 계기였을 것이다. 나로서는 작가를 몰아붙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이트컬렉션 젊은 작가전의 최우선 관람객은 이 유형의 전시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참여작가들과 비슷한 또래나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관람을 많이 오는 편이다. 그러므로 고민과 생각이 많은 시기의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참고가 되고 욕심나는 전시이면 좋겠다. 기획자로서는 해마다 새로운 작가들을 만나게 되면서 갈수록 세대 차이가 커지는 작가들을 이해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신기한 점은 전년도 작가들과 나이는 비슷하더라도 매해 작가들의 관심사와 화두가 조금씩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이들과 세대가 다른 기획자 입장에서는 매번 오픈 마인드가 필요한데 젊은 작가들을 곡해하지 않는 전시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김동우〈메두사를 마주친 핑크 갈라테아〉오일 파스텔, 잉크, 스티커, 흑연, 스티로폼에
QR 코드 173.4×112×48cm 2023 사진: 배한솔 제공: 하이트컬렉션

《나는 너를 보고 있는 하늘의 눈이다》라는 제목은 어릴 적 즐겨 들었던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노래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1982)의 노랫말에서 땄다. 참여작가들을 섭외한 후 출품작을 가늠해 보면서 이 노래가 생각났다. 강민서의 회화 〈Angel’s Tears〉(2024 )나 홍수진의 영상 〈Dry Skies, the Eyes, and the Altar〉(2023)가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나는 전시 제목과 그래픽 디자인을 중시하는 편이다. 전시 제목으로 기획 의도를 표현하고 싶어하는데 대개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편이다. 제목이 흡족하면 서문이 불필요하게 생각되는데, 긴 글이 군더더기 같고 언제나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나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래픽 디자인은 전시마다 분위기를 고려하여 디자이너를 섭외한다. 전시를 잘 표현하는 디자인을 추구하면서도 과하지 않아서 전시가 디자인에 함몰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디자이너의 해석과 자유도를 믿는 편이고 때로는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애쓰기도 하는데 그동안의 결과는 좋았다. 《나는 너를 보고 있는 하늘의 눈이다》의 디자인은 신신이 맡아주었다. 섭외할 때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전달했고, 신신은 그들의 노래가 담긴 앨범 커버를 오마주하는 방식으로 디자인 콘셉트를 잡았다. 간결하고 정제된 디자인으로 전시의 이미지 메이킹을 잘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전시 포스터 이미지
그래픽 디자인: 신신

개인적으로 전시기획의 아이디어는 세상에 대한 질문, 미술에 대한 질문이 교차하면서 발생한다. 작은 질문에서 출발하는 편이며 어떤 자극 때문에 발생한 반발심이 전시로 이어지기도 한다. 《쭈뼛쭈뼛한 대화》(아트선재센터, 2013)는 예술학교를 갓 졸업한 나에게 산업체 취직이라도 알아보라는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으로, 예술과 무관한 부모들을 예술을 업으로 사는 자식들의 전시에 끌어들였다. 현대미술을 모르는 내 아버지는 오프닝 날 자신의 붓글씨가 아트선재센터 2층의 둥근 벽에 주르르 걸려 있는 광경을 본 뒤로는 나의 일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나의 전시기획이 대단히 도전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내 안에서 발생한 질문으로부터 전시를 만들고자 했으며 서둘러 규정짓기보다는 불분명한 것은 불분명한 채로 두고 천천히 생각을 이어갔다. 한참 후에나 깨닫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하이트컬렉션에서의 근속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관의 성격과 나의 큐레토리얼이 겹쳐지고 있다.2010년에 개관한 하이트컬렉션은 해마다 2~3회의 전시를 개최해왔는데, 회화전과 젊은 작가전의 누적된 기록 때문인지 두 가지 유형의 전시가 기관의 성격이 된 것 같고 자연스레 나의 특징으로 연결되고 있다. 앞으로도 나의 기획은 작은 생각과 질문에서 출발할 것이다.

이성휘
산업디자인과 미술이론을 전공하고 2012년부터 하이트컬렉션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최근 《브랜디를 마실 것 같은》, 《Next Painting: As We Are》(국제갤러리), 《형상은 예외가 아닌 규칙》, 《오블리비오 1: 단편들》 (스페이스 애프터) 등을 기획했다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일민미술관 2024.4.12~2024.6.23
전시기획 | 윤율리 일민미술관 학예실장

전다화〈나 같은 여자〉(사진 왼쪽) 캔버스에 과슈 247×185cm 2024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일민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사진: 스튜디오 오실로스코프 제공: 일민미술관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는 일민미술관 학예실에서 10인의 팀(최혜인, 백지수, 윤지현, 신지현, 김진주, 배정인, 정연지, 이민경, 이지우, 박선호)이 기획과 진행, 출판 업무를 분담해 만든 전시다. 보통 일민에서는 1년 정도의 기간을 기획전 준비에 할애하기 때문에, 이 전시에 관한 최초의 기억은 2023년 여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소 뜬금없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2023년은 걸그룹 ‘뉴진스’의 해였다. 당시 어떤 전시나 공연보다 기획자 민희진, 그리고 뉴진스가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는데, 이것이 일종의 노스탤지어 산업처럼 보인다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다. 뉴진스 멤버 전원은 2000년대 중반에 태어났고 이들을 소비하는 대부분의 팬덤 역시 1990년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이 현상은 다 끝난 과거를 ‘복고’로 양식화하여 되살리는 것이라기보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않아야 하는) 과거에 대한 애착 혹은 중독처럼 느껴졌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이 정말 괜찮은 것인지와 같은 질문을 우리와 더 가까운 미술의 차원에서 다뤄보고 싶었다.

이유성 〈민들레 가속〉(사진 왼쪽) 나무, 천, 알루미늄 약 102×50×60cm 2020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일민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사진: 스튜디오 오실로스코프 제공: 일민미술관

미술관 고유의 정체성에 맞는 전시를 만드는 일, 어떤 기관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전시를 만드는 일이 어딘가에 직을 둔 큐레이터의 미덕이랄지, 의무랄지, 여하튼 그런 것이라고 생각 한다. 어디에 있든 늘 똑같이 기획자 개인의 자아만을 투영하는 전시를 보는 것은 지루한 일이다. 물론 그럴 수 있는 분들의 그럴 수 있는 무신경함은 부럽기도 하다. 아무튼 일민미술관 큐레이터라면 일민미술관에 어울리는 전시, 일민미술관이 더 탁월하게 소화할 수 있는 전시를 만드는 일을 과제로 삼는 게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관의 고유성을 판단할 근거는 아마도 각 기관의 사명이나 소장품에서 찾을 수 있을 텐데, 가령 일민미술관은 언론업에 기반을 둔 재단 소속으로서 시의성과 시사성의 추구를 사명으로 삼는다. 근현대와 동시대를 아우르는 방대한 대중문화 사료 및 작품을 소장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언커머셜》(상업사진), 《다시 그린 세계》(한국화 소장품), 《시대복장》(패션), 《형상 회로》(동아미술제 소장품) 등 지난 몇 년간 일민미술관의 기획전은 그러한 일관된 방향성 위에 만들어졌으며, 《포에버리즘》 역시 그렇다. 궁극적으로 이 전시는 역사 쓰기의 불가결함에 관해 말한다. 전시의 이론적 참조점이 되어 준 그래프턴 테너나 마크 피셔의 지적처럼, 영원주의 전략의 달콤함은 현재에서 끝장나버린 미래의 불씨가 과거의 시간에는 여전히 잔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아이러니에서 발생한다. 우리에게 감지되는 시간 그 자체를 긍정하고 역사를 지으려는 욕망은 현대미술에서 쉽게 조롱받곤 하지만, 《포에버리즘》에 나온 몇몇 작품들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 정연두의 〈와일드 구스 체이스〉(2014), 차지량의〈떠나려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본다〉(2021), 홍진훤의 〈멜팅 아이스크림〉(2021) 등이 대표적이다.

정연두〈내 사랑 지니〉35mm 필름, 60개 사진, 멀티 슬라이드 프로젝터
가변 크기 2001~2024 사진: 스튜디오 오실로스코프 제공: 일민미술관

이 전시의 작가 리스트에는 뉴진스의 프로듀서 중 하나인 이오공(250)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소속사와 협의 끝에 그가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오공의 다큐멘터리 필름 〈뽕을 찾아서〉(2022)와 홍진훤의 〈멜팅 아이스크림〉을 한 시간씩 교차 상영하려 했던 계획이 무산되어, 결국 〈멜팅 아이스크림〉만을 전시의 가장 끝부분에 두어 단독 상영했다. 〈멜팅 아이스크림〉은 전시의 ‘엔딩 크레딧’과 같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작품의 메시지를 더 극적으로 환기할 수 있다는 이점이 생긴 점은 좋았다.

isvn 〈루키짱의 미래〉 테이블탑 RPG 혼합 재료 가변 크기 1시간 2024
사진: 스튜디오 오실로스코프 제공: 일민미술관

전시를 준비하며 2023년에서 2024년으로 향해 가던 시간은 지도 위 곳곳에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고, 극우 정당들의 유령 같은 구호가 여러 국가와 도시의 현실을 점거한 때였다. 도널드 트럼프는 1기 행정부의 실권에도 불구하고 ‘MAGA’로 상당한 정치적 이득을 챙겼는데, 전시가 종료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일민시각문화총서’ 12번째 단행본으로 발간된 『포에버리즘』 전시 도록은 이러한 후일담을 여러 필자(그래프턴 테너, 나원영, 최종철, 한민수)의 진단과 함께 상세히 다뤘다. 전시가 끝나고 제법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다소 갑작스레 2025 월간미술대상의 ‘올해의 우수 전시’에 선정되었다. 비록 올해 열린 전시는 아니지만 일민미술관 학예실이 전시를 통해 나누려 한 문제의식에 공감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전시가 끝난 뒤 꽤 시간이 흐른 것 같다고 적었지만 막상 돌이켜보니 그다지 변한 게 없다. 마지막으로, 전시 부제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는 문학동네시인선 200호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2023)가 수록하고 따온 안희연 시인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편집자와 시인이 이름의 사용을 허락해 준 덕분에 의미하는 그대로 전시가 만들어졌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인은 이렇게 쓴다. “시는 신발,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데려가는.” 세상의 끝으로 담담히 걷는 일이 이처럼 강력한 낙관으로 읽힐 수 있다니 흥미롭다.

윤율리
오로라(AURORA), 윤율리 라이팅 코퍼레이션, 일민미술관, 웨스(WESS)에서 일한다. 타이포잔치 출판팀, 페스티벌 봄 사무국, AP아시아 학예팀 등에서 일했다. 한예종 조형예술과에서 강의한다. 계원예대 융합예술과,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더배곳, 한성대 회화과 등에서 강의했다

2025년 12월호 (VOL.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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