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가짜의 세카이(セカイ):
지금 한국 미술에서의 일본 문화 ➋

이연숙(리타) 미술비평

Art Critique

 교각들〈미소녀는 수육受肉하지 않는다〉(스틸)
인터랙티브 리얼타임 시뮬레이션, 커스텀 액세스 컨트롤러, 싱글 플레이 20분 2024~2025

‘세카이계’는 한국의 사회적 트라우마와 공명한다.

사실 동시대 한국 미술에서 ‘세카이계(セカイ系)’와 같은 일본 서브컬처의 강력한 그러나 부인된(!) 영향력을 말하기엔 조금 늦은 감이 있다. 2010년대 중반 신생공간 시기 일본 서브컬처의 기호/코드/ 문법을 명시적으로 전유하며 이를 작업의 정체성으로 삼은 특정 세대의 작가들—예를 들어 돈선필, 이윤성, 김화현, 지우맨, 진챙총—의 등장 뿐만 아니라 신생공간 시기를 대표하는 《굿-즈》(2015)와 같은 팝업 형태의 전시/장터 자체가 이미 코믹월드와 같은 아마추어 동인행사를 모델 삼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면 말이다.1 더욱이 해당 시기를 이끈 기수라 평가되는 작가들—예를 들어 강정석, 이수경, 한진, 박보마—의 경우 비록 ‘오타쿠’ 정체성을 내세우진 않았지만 핵심적인 세계관/ 감수성/스타일의 형성에 일종의 서브컬처 DNA가 영향을 줬으리라 추측된다. 그럼에도 일본발(發) 만화/애니/게임/특촬/취미라는 특정 세대의 공통 언어이자 인터페이스는 결코 신생공간 담론의 세대(“#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2)와 계급(“‘최소환경’의 미술”3)의 교차에서 결코 진지하게 언급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이번 글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하기란 어렵겠지만 이는 이전 글에서 언급한 오랜 민족 콤플렉스 때문만이 아니라4 미술과 서브컬처의 위계에서 오는 모종의 긴장 관계 때문이기도 하리라 본다.5 한편 2020년대 들어서는 디지털 매체와 조건이 특정 세대의 서브컬처 경험 자체에 상수로 작용하게 되면서 단지 서브컬처의 기호/코드/문법을 차용하는 단계를 넘어 디지털 환경 자체를 현실과 분리된 일종의 자족적/폐쇄적/대리적 시스템/모체(matrix)로 보는 일군의 작가들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김민희와 이희단은 ‘전투 미소녀’라는 서브컬처의 전형을 반복, 과잉, 변형하는 재현을 통해 캔버스와 프레임이라는 세계를 ‘찢고’ 흘러나오는 그들의 실재를 포착하려 시도한다. 교각들(상희, 성훈) 역시 VR 챗 커뮤니티의 미소녀 모델링의 ‘내장’을 폭로하는 1인칭 경험의 제공을 통해 디지털 존재의 즉자적 고발/복수를 감행한다. 이들은 모두 언젠가는 복제/파괴/폐기될 저렴하고/일회용인/가짜인 디지털 존재에 대한 연민과 감정이입의 관점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귀여움’ 미학의 대두 역시 2020년대 이후 한국 미술에서 일본 서브컬처의 수용/변형의 양상을 드러내는 예시겠다.

그런데 우선 나는 ‘세카이계’에 주목하고 싶다. 세계(世界)을 뜻하는 본래 일본어 단어와 의미를 분리하기 위해 마치 외국어처럼 가타가나로 표기했다 알려진 이 용어의 기원은 안노 히데아키의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에 있다고 간주된다. ‘세카이계’란 주인공 신지처럼 주로 (남성) 청소년의 자의식이 격렬한 혼잣말로 표현되며 그의 내적(성적)/관계적/개인적 체험과 변화가 “사회라는 중간항 없이”6 곧장 세계 전체의 운명과 연결되는 일군의 하위 장르를 의미한다. 특히 주인공과 히로인의 연애라는 최소 관계가 중요하다. 아즈마 히로키는 ‘세카이계’의 대표작으로 신카이 마코토의 〈별의 목소리〉(2002), 다카하시 신의 〈최종병기 그녀〉(2000),〈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2001)을 든다. 모두 ‘평범한’ 민간인 (남성) 주인공과 전쟁 병기 수준의 살상 능력을 갖춘 (여성) 히로인의 관계를 다루는 작품들이다. 주인공과 히로인의 연애는 갑작스럽게 세계의 종말이라는 종적/행성적 스케일의 문제에 접속되고 이것과 ‘동기화’되며 세계의 존립 가능성에 자체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여기서 ‘나’와 ‘너’의 연애는 세계 전부다— 아니, 심지어 세계 전부를 대체한다.

이러한 장르적 특성(‘내 세계를 망치러/구하러 온 미소녀가 알고 보니 핵무기?’)에 대해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더라도7 ‘세카이계’의 정의/범주/의미를 둘러싼 논쟁의 역사는 길다.8 2002년 한 서브컬처 웹사이트에서 최초로 등장한 ‘세카이계’는 소위 제로연대(2000년대)라 불리는 특정 시기 주류 관객으로 등장한 일본 젊은 세대의 시대적 ‘증상’과 그 재현을 지목하는 역사적/비판적 용어인 동시에 그런 구체적인 맥락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특정 관습/구조/코드를 갖는 작품을 가리키는 장르적/범주적 용어다. 등장 당시부터 논쟁적/생산적 용어로 통용됐긴 하나 단순히 시대를 풍미한 일시적 ‘유행어’로 생명력이 끝났다는 판정을 일찌감치 받기도 했다.9 그러나 ‘세카이계’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이른바 ‘재난 3부작’이라 말해지는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2016), 〈날씨의 아이〉(2019), 〈스즈메의 문단속〉(2022)과 함께 트라우마/ 공동체/애도를 다루는 일종의 담론적 공간으로 다시금 소환되고 있다. 이들 작품에서 ‘나’의 ‘너’를 향한 사적 감정은 ‘너’를 잃는 재난이란 비가역적 상실의 경험을 매개로 공동체적 차원으로 확대되며 바로 그렇기에 ‘너’를 구해내기 위해 세계 전체를 구해야만 한다는 당위로 발전된다. 여기서 ‘나’와 ‘너’는 이미 한번 종말이 닥친 세계에 대한 기억을 보존할 책임이 있는 최소 관계로 이는 단순한 개인 결합이 아닌 상실이란 공백으로 묶인 애도의 연대/유대에 가깝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제로연대 ‘세카이계’에 대한 비판의 주된 논지였던 가정/국가/사회라는 ‘중간항’의 소실10이란 문제가 반복되나 이번에는 회복적인 차원에서 그러하다. ‘중간항’의 구멍은 자연스레 재난에 대한 공동체적 기억/경험/감정/감각으로 채워진다.

윤희주〈서울 천사의 시〉(스틸)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34분 44초 2025

‘세카이계’에 대한 이러한 사회 비평적 관점의 변화는 지금 한국의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른바 ‘재난 세대’라 불리는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청년들은 10대에는 세월호 참사를 겪고 20대에는 이태원 참사를 겪으며 성장했다.11 이들에게 사회라는 “중간항”은 애시당초 신뢰할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 마치 재난 경보 같은 가짜 시스템으로 경험됐다. ‘나’와 ‘너’의 사적 관계는 다름 아닌 이런 미친 세상에서 실수로/우연히/어쩌다 살아 남아 버린 생존자 자조 모임에 불과하다. 수치심과 죄책감의 강제적 유대/연대는 연애보단 범죄에서 가능한 관계와 같다. 그러나 달리 모일 다른 방법도 없다. ‘세카이계’의 공식을 변주해 말하건대 그러므로 다시 한번 연애는 세계의 전부다—단지 그것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에서 ‘세카이계’는 한국의 사회적 트라우마와 공명한다.

나는 ‘세카이계’를 주제 삼는 작가들—예를 들어 이십칠, 배민아—중에서도 특히 서울을 배경 삼아 ‘세카이계’의 구조를 차용해 상실/애도/구원의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는 윤희주를 언급하고 싶다. 윤희주의 영상 〈서울 천사의 시〉(2025)는 방관자로서 베를린을 돌아 다니는 빔 벤더스의 날개 달린 천사와 달리 “서울이라는 사냥터를 숨 죽여 기어 다니는 다리 없는 천사”12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수리’와 ‘띠엔린’은 정부의 재해 관리 능력과 대처 성과를 수량화/측량화/합리화하기 위해 도입된—지난 참사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재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위해 서울을 매핑하는 비정규직 시뮬레이션 기사다. 이들은 “시뮬레이션용 야마하 위에서 전속력으로 가상의 서울을 맵핑”하며 “남의 몸, 남의 죽음들”을 빠르게 덮어쓰고, “수억 개의 찬란한 불가능성”과 “비참한 가능성” 속에서 도시에게 기억되고 도시를 기억한다. 비록 ‘가짜’ 도시라 할지라도 거기서의 사랑은 “진짜”다. ‘진짜’를 초과하는/덮어쓰는/찢어내는 ‘가짜’라는 명제는 계속해서 윤희주의 작업에서 반복된다. 윤희주의 다른 영상 〈실키 힐리 밀키 쇼〉(2023)에서는 “현실에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화자가 가상 세계로 넘어와 두 번째 삶을 구축”13하려 시도한다면, 반대로 〈서울 천사의 시〉에서는 순식간에 사라진 ‘띠엔린’의 일부가 시뮬레이션 안에서 구금 당한 채로 수리의 구출을 기다리게 된다. 또한 〈실키 힐리 밀키 쇼〉(2023)에서 2900만원의 서버 비용을 내지 못해14 종말이 임박한 가상 세계 ‘아르고니아’가 화자로 하여금 사랑했던, 그러나 현실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 ‘최애’의 또 다른 자아를 우연히 만나게 해준 장소라면, 〈서울 천사의 시〉에서 시뮬레이션 서울은 죽어 가는 사람들을 구할 수도 있다는 잔혹한 꿈을 반복해서 꾸게 하는 장소, 그럼에도 사라져 버린 ‘너’가 남긴 무언가가 남아 있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장소다. 이와 같이 윤희주에게 ‘가짜’ 장소는 ‘진짜’ 장소가 잊은/잃은 죽음/상실/슬픔이 모이는 공간이며 그러므로 ‘나/너-(사회)-세계’라는 ‘세카이계’의 익숙한 도식은 완전히 역전된 방식의 독해를 요청한다. 살아남은 세계가 아니라 살아남지 못한 세계만이 중요하다. 삶은 죽음을 위한 애도의 행렬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세카이계’의 구조를 차용하진 않지만 홍지영 역시 사진 슬라이드 영상 〈다크룸〉 (2025)에서 이런 관점에서 친구, 애인, 일상을 담은 사적 순간과 시위와 애도의 공적 현장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둘도 없이 소중할 작가의 개인적 관계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무수한 몸들이 겹쳐지며 일시적인 애도의 공동체적 공간이 펼쳐진다. ‘나’와 ‘너’의 최소 관계는 오염과 침범의 급진 퀴어 정치의 관점에서 죽음이란 절대적인 타자마저 포용하는 여기 아닌 세계로 확장된다. 이처럼 일종의 문화적 코드로서 ‘세카이계’는 동시대 한국 미술의 현장에서 이미 익숙하면서도 낯선 ‘혼종’의 형식으로 발견된다.


1“《굿-즈(GOODS)》(2015)는 신생공간 시기의 꽃이자 무덤이다. 표면적으로 이는《E3》, 《원더페스티벌(ワンダ〡フェスティバル)》과 같은 서브컬처 페스티벌/동인 시장을 아트페어 형식과 조합한 5일간의 미술 장터였다.” 해당 문서에서 취미관 역시 “만다라케”와 “아키하바라 일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렌탈 케이스’”를 참조했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강정석, 권순우, 김윤익, 김익현, 유지원, 이수경, 정홍식 “대화: 굿-즈(GOODS) 2주기(週期)”, ‘피아 방과후’ 홈페이지 https://pia-after.com/?p=609
2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 트위터(현 X) 계정 https://x.com/savethemuseum
3 권시우 「‘최소 환경’의 미술들: 오픈베타와 ‘굿즈’ 사이에서」 《Hovering Text 호버링 텍스트》 전시 도록 미디어버스 2018
4 이연숙(리타) 「진짜 가짜의 세카이(セカイ): 지금 한국 미술에서의 일본 문화 ①」130『월간미술』 2025년 10월호 pp. 126~129
5 관련해서 캐릭터 회화 작가 후시지로 우소의 다음 발언은 흥미롭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예술학부의 회화과에 다녔습니다. 서양식 유화를 그리는 보수적이라 말할만한 학과였습니다. 동년배 남자들은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며 ‘드래곤볼’ 이야기를 줄곧 하고, 수업시간이 되면 자기 자리에서 부지런히 관엽식물이나 체크무늬 천이나 고무호스를 캔버스에 그리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에 위화감을 느꼈습니다.”《로컬! ロ〡カル!》 전시 리플렛에서 발췌. 한편 필자 역시 양자 간의 위계 관계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이연숙(리타) 「미술관과 코믹월드」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홈페이지 https://mediacityseoul.kr/2024/sub/sub0602.php?idx=6
6 아즈마 히로키의 말
7 “코발트 문고의 간판 작가였던 쿠미 사오리는 세카이계 작품에 대해, 소년이 싸우지 않고 그것을 소녀에게 위임하고, 그 소녀에게 사랑받고 최후에는 소녀를 잃는다는 줄거리는 ‘자기 본위의 기회주의이자, 비겁한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고 했으며, 평론가 우노 쓰네히로는 ‘모성적인 승인에 얽매여 스스로의 선택조차도 자각하지 못하고 사고를 정지한’ 것에 불과하다고 단정했다.”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매닉 픽시 드림 걸(Manic Pixie Dream Girl) 전형에 대한 비판과도 일맥상통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세카이계
8 대표적으로는 아즈마 히로키에 대한 우네 츠네히로의 비판이 있다
9 한마에지마 사토시 지음 주재명, 김현아 옮김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워크라이프 2016
p.159 10 중간항의 소실이란 문제를 통상 세카이계와 반대된다 여겨지는 일상계와의 관계에서 고찰한 글도 있다. 강현 「데이 애프터 데이, 세카이 애프터 세카이─소실된 ‘중간항’을 재발명 혹은 재발견하기」 『레시피』 3호 데카르챠 2025
11 “[재난세대] ① 10대엔 세월호, 20대엔 코로나·이태원…상처가 일상인 청년들” 『뉴시스』 https://www.newsis.com/view/NISX20221104_0002074491
12 이하 출처 표기를 하지 않은 경우 모두 영상 내에서 인용
13 〈실리 힐리 밀키쇼〉 소개글에서 발췌
14 이는 이태원 분향소에 서울시가 부과한 벌금과 같은 금액이다. 다음 기회에 구체적으로 써야 하겠지만 이태원 참사의 기억/경험은 윤희주의 작업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한다. 한편 이태원 참사에 대한 애도를 작업으로 지속하는 콜렉티브로 ‘깃발옆차기’가 있다. 깃발옆차기는 2022년의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결성된 애도에 관련한 콜렉티브로, 시각예술을 하는 성의석, 이수민, 주한별 셋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존에 존재해온 애도의 클리셰적 이미지와 언어가 불능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며, ‘당사자성이 없는’ 애도를 가볍게 우회하며 이야기하여 어떻게 발화의 자극을 촉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깃발옆차기’ 홈페이지 https://flagsidekick.com

2025년 12월호 (VOL.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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