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Curator’s Voice & Critique

《지속가능한 도시-꽃 V, 재난과 재생》
《공존 : AI돌봄센터》
《모터타임즈: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다》
《냄새 분자가 되어》

유현주·정소영·서동진·이문정

Curator’s Voice & Critique

《지속가능한 도시-꽃 V, 재난과 재생》
10.22~11.1 스페이스 테미
유현주 미학

이정성 ‘죽은 별의 정원’ 연작(사진 왼쪽, 2025)과〈보이지 않는 항해〉(사진 오른쪽, 2025)

《지속가능한 도시-꽃 V, 재난과 재생》과 다종의 삶 이어가기

필자는 2013년 봄 생태미학예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지속가능한 도시-꽃》 전시 시리즈를 기획해 왔다. 대전문화재단 후원으로 열린 이번 전시의 주제는 ‘재난과 재생’이다. 전시는 인류학자 애나 칭이 쓴 『세계 끝의 버섯』(2017)을 작가들과 함께 읽는 과정에서 구상되었다. 인간과 송이버섯(자연)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숲의 회복은 최근 이어지는 재난들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특히 2022년과 2024년 1,7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파키스탄 홍수, 2024년 경남 산청군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 철새 도래지 인근에 지은 무안공항에서 벌어진 대참사 등이 떠올랐다. 재난은 안개와도 같아서 보고 있어도 사실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문득 떠오른 질문은 선명했다. 재난과 재생(regeneration)에 대해 예술은 과연 어떠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러한질문은 《지속가능한 도시-꽃》 전시 시리즈가 추구해 온 ‘도시와 자연의 연결,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지속가능한 도시-꽃’이라는 제목에 영감을 준 사람은 ‘스튜디오 예술과 풍경(Studio Kunst und Landschaft)’을 운영하는 작가 인사 빙클러(Insa Winkler)이다. 필자는 2007년 갤러리 이안의 도움으로 빙클러를 초대해 《인사 빙클러-생명과 평화의 언어》를 기획했다. 이 전시에서 빙클러는 순환과 재생(recycle) 개념에 입각해 종이 분쇄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종이들이 곁에 놓인 화분의 나무로 옮겨가 마치 나뭇가지처럼 자라 나오는 설치 작업을 했다. 생태 문제를 다룬 작업과 더불어 식물의 언어를 묘사한 그의 〈식물알파벳(plantalphabet)〉(1998) 작품은 그때까지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이 없던 필자가 환경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다. 전시 중 빙클러가 꽃 모양을 인쇄한 전지 크기의 종이에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단어를 쓰고 거기에 관객들이 환경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적는 이벤트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그 단어는 훗날 필자가 연구소를 열면서 진행한 연구와 세미나 및 전시의 주제에 영향을 미쳤다.

김민주〈뜻밖의 기쁨〉(사진 왼쪽, 2025)
한수정〈누구의 살도 
아닌〉(사진 오른쪽, 2025)
《지속가능한 도시-꽃 V, 재난과 재생》스페이스테미 전시 전경 2025
사진: 이정성

《지속가능한 도시-꽃Ⅰ》(2013)은 ‘도시의 상업화와 기계화가 낳은 생명 없는 자연’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읽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1962)에서 영감을 받은 여섯 작가가 사라지고 있는 꿀벌과 도시 이야기를 다루기도 하고, 도시의 ‘녹색’ 쓰레기로만 만든 사각의 큐브 설치 등을 통해 도시와 자연의 관계를 다루었다. 앙리 르페브르의 『리듬 분석』(1992)을 참조해 만든 2014년의 두 번째 전시 주제는 ‘Jungle City and Sound of Life’로 정글과 같은 도시에서 생명의 리듬을 찾는 내용이다. 마르쿠츠 베른리(Markuz Wernli)의 〈Soil Feeder: Fermenting My Everyday(나의 나날을 발효시키다)〉(2014)는 몸에서 나온 배설물을 발효시켜 밭의 토양을 건강하게 만들고 그 밭에서 자란 채소를 식탁으로 가져오는 작가 자신의 일상적 실천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오프닝 세미나에서 이승재 목원대 건축학과 교수의 강연 ‘청경과 도시건축물’은 전시의 의미를 심화하였다. 자연 유기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건축으로 가져오는 사운드스케이프 개념은 전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생명의 리듬을 담은 도시를 상상하는 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전시(2015)의 부제는 ‘도시를 매핑하기, 헤테로토피아를 찾아서’였다. 전시에 합류한 작가 비너스 루킥(Venus Lukc)이 바로 대전의 헤테로토피아(이질적인 장소 혹은 사람)에 해당된다는 사실에서 전시는 출발했다. 비록 알아보는 사람은 없지만, 그는 10년 넘게 대전에 거주하는 외국인 예술가 단체인 ‘대전 아티스트 콜렉티브’의 일원으로서 곧 재개발될 지역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중이었다. 이 전시에서 연구소는 공동체 내부의 헤테로토피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공동체 안에서 낯선 장소와 사람들을 찾는 이 전시는 다음 전시의 주제인 ‘도시와 나 그리고 우리’(2018)와 연속성을 이루었다. 네 번째 전시는 대전문화재단 후원으로 열린 세미나와 책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열린 대화_도시와 나 그리고 우리를 위한 예술지침서』(가가북스, 2018) 출판과 동시에 진행되었다. 세미나는 백기영, 서동진, 홍경한 등 평론가와 대전세종연구원(현 대전연구원)의 연구진을 포함한 강사들이 참여해 진행됐다. 각각 공동체, 공공예술 사례, 미래 스마트 시티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주제로 열띤 강연과 토론을 다섯 차례 이어가면서 작가들과 예술인 및 청중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공공미술을 ‘벽화 그리기’ 정도로 알고 있었다는 어떤 이는 강연을 통해 공동체와 공공성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대전의 원도심 가운데에서도 가장 낙후된 동네에 속하는 정동에서 세미나와 전시를 개최함으로써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포함, ‘도시 자연의 연결, 도시와 공공성의 의미, 공동체의 의미를 말하는 예술’의 담론에 접근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의 주제 ‘재난과 재생’도 마찬가지로 앞선 전시들에서 언급한 ‘자연과 도시 생태, 지속가능한 공동체’의 맥락과 연결된다. 『세계 끝의 버섯』은 소나무와 곰팡이의 공생이 폐허의 숲을 재생하고 거기서 생성된 송이버섯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재화가 되는 과정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만드는 다종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작가들은 ‘다종의 공동체’와 ‘재생’ 개념에 집중하였다. 전시는 다음과 같은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조미예는 실제 집 주변에서 발견한 고사목을 가져와 돌보고 거기서 자란 버섯과 다른 생명체들의 공생을 다루었다. 한수정은 고통의 기억을 가진 신체 기관을 묘사하고 피부 조직(라텍스)을 접합한 조형적 이미지로 ‘재생’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선보였고, 김진은 술과 고수레(제사 때 조금 떼어 밖으로 던지는 음식)로 인간뿐 아니라 다른 종들과도 음식을 나누는 제례 문화 이야기를 통해 다종의 세계를 존립시키는 방식을 은유했다. 박종욱은 개미들과 그 곁에 자라고 있는 버섯 그리고 이들을 돌보는 작가 자신 등을 통해 언제나 세상은 아수라장 같지만 한편 질서를 만들고 있음을 드러냈으며, 이정성은 지배의 상징인 머리 없는 인간이 숲에서 군용 패턴의 텐트 아래 서있는 그림으로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했다. 마지막으로 김민주는 인간과 비인간, 혹은 나와 타자를 가리키는 두 개의 캔버스 사이에서 양쪽을 오가며 어휘 ‘intertwine(상호엮임)’과 ‘tangled(얽혀있는)’을 바느질로 직조했다. 전시 오프닝 세미나에서 정형탁 독립큐레이터가 말했듯이 예술로써 재난을 재현하기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전시는 숲과 송이버섯 이야기를 가져와 재난 가운데 다종의 삶을 재생하는 상징적 언어들을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징 언어들이 리좀(rhizome)의 형태로 뻗어가기 위해서는 아마도 미래의 또 다른 실천들이 필요할 것이다.


《공존 : AI돌봄센터》
IBK기업은행 본점 로비 · 파이낸스타워 로비 11.17~12.5
정소영 기자

〈불가능한 조감도〉단채널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15분 30초 2022~2023
사진: 박홍순

보이지 않던 조건들: 기술을 통한 생태적 상상력의 확장

기술은 종종 창작 과정의 ‘수단’으로 기능하며 그 자체의 감각적·정서적·생태적 조건은 배경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기술은 더 이상 중립적 도구로 환원될 수 없는 세계를 형성하며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거나 교란하고 특정 생태계를 위협하거나 재구성하는 주체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주영의 작업은 기술이 만들어내는 감각적 환경과 정서적 반응, 비인간 존재들이 겪는 생태적 변화를 함께 사유하도록 이끈다. 그는 기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보다 ‘기술이 세계를 어떻게 감각하게 만드는가’를 질문하며, 기술을 둘러싼 총체적 조건을 예술의 핵심 사유로 끌어올린다. 오주영에게 기술은 기능적 수단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다시 그리게 하는 하나의 생태적 감각 장치가 된다.

IBK기업은행 본점 및 파이낸스타워 로비에서 진행되는 ‘IBK 아트스테이션 2025‘의 세 번째 전시 오주영 개인전 《공존 : AI돌봄센터》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대화를 통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는 동시대적 성찰의 장을 마련한다. 전시는 AI 기술과 조류 생태라는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해 기술과 자연의 관계를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상상하게 만드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기술 문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연구 기반의 작업 태도
오주영은 공학과 시각디자인을 넘나드는 연구자이자 예술가로 지난 10년간 게임, AI, 사운드 등 양방향 기술을 예술적 탐구의 언어로 적극 수용해 왔다. 그의 작업은 연구와 아카이빙을 기반으로 하며 과학적 접근과 예술적 상상력을 결합해 과학·기술·생태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든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은 기후 위기 시대에 기술이 어떤 생태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해 왔다. 조류의 삶을 추적하는 동물생태 연구는 그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한국의 환경운동가와 연구자들과 함께 수집한 전문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 기술–조류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면밀히 관찰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 중심적 기술 문화의 맹점을 드러낸다.

기술–생태 간 공존을 향한 역설적 장치
〈황조롱이 드론〉(2025)은 도시 공간에 적응해 개체 수를 회복한 토종 맹금류 황조롱이의 생태에서 출발한다. 도심의 콘크리트 벽을 바위 굴처럼 인식하고 스스로 생존 전략을 개발한 황조롱이는 인간 환경을 재해석한 비인간 존재의 사례라는 점에서 작가의 관심을 자극한다. 오주영은 황조롱이의 사고방식을 모방한 AI 드론을 가정하며 드론이 도시의 다른 텃새들에게 생존 기술을 전달해 준다는 가상 서사를 구축한다. 흥미로운 점은 드론이 ‘날지 못하는 드론’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기술의 효율성을 우선하는 드론 산업의 통념과 달리, 작가는 실용성이 떨어져 발전이 더뎠던 ‘오르니콥터(날갯짓 기반)’ 모델을 선택했다. 이는 조류가 날갯짓과 소리로 소통한다는 비인간의 감각 방식이 기술의 기준이 되는 드문 역설적 상황을 창출한다.

또한 드론의 본체는 투명 레진으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유리 빌딩이 새에게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되는 도시 생태의 모순을 반영한다. 전시장인 IBK 본점과 같은 도시의 유리 건물은 조류 충돌(연간 약 800만 마리 사망 추정) 문제의 주요 원인이며,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작품의 물리적 조건에 직접 반영했다. 드론의 날개에 사용된 편광 필름은 TV나 휴대폰전화 액정에 쓰이던 물질로 새를 쫓는 음박 코일과 시각적 유사성을 지닌다. 작품의 재료는 기술이 비인간 존재에게 어떻게 위협이자 경고가 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관객이 드론 옆의 황조롱이 조각에 ‘쓸모 있는 물건’을 두고 가도록 유도하는 장치는 공존을 향한 참여적 행위를 형성하며 관객이 조류 충돌 구역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도록 전시 공간을 설계한다. 이는 기술·환경·감각이 서로 충돌하는 지점을 시각적으로, 체험적으로 드러내는 구성이다.

동시대적 의미: 생태적 기술, 종간 공감, 그리고 예술의 역할
오주영의 작업은 동시대 기술 문화가 직면한 핵심 문제인 인간 중심적 사고가 낳는 생태적 위기를 정면으로 다룬다. 특히 도시 항공 교통(UAM), 드론 택시 등 첨단 기술 산업이 유토피아적 청사진을 제시하며 조류 충돌과 소음 공해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검토하지 않는 현상에 작가는 강한 비판을 가한다. “기술이 새를 다 죽일 수도 있다”는 메시지는 충격적이지만 현실적이며, 기술의 목적과 방향을 재고하도록 촉구한다.

파리 8대학의 에베라도 레예스(Everardo Reyes) 교수는 오주영의 작업을 “야콥 폰 웩스퀼의 ‘움벨트(Umwelt)’ 개념을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인간의 감각과 사고를 넘어서는 비인간적 인지 세계를 상상하도록 한다”고 설명한다.1 움벨트 개념은 새와 꿀벌이 자외선을 보는 것처럼 각 존재는 각자의 감각 세계를 살고 있으며 기술이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것은 효율성이나 속도가 아닌 감각의 번역과 상호 인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종간 공감(inter-species sympathy)이라는 새로운 연대의 윤리를 제안한다.

또한 〈황조롱이 드론〉은 사변적 픽션과 실제 생태·기술 연구를 결합하여 예술이 기술 담론을 선도할 수 있는 확장된 역할을 보여준다. 그녀의 작품은 예술을 이미지 생산이 아니라 기술과 생태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재구성하고 기술이 놓친 ‘감각적·윤리적 층위’를 공개하는 실험적 플랫폼으로 기능하게 한다.

〈황조롱이 드론〉 컨트롤러, 모터, 레진, 스테인리스, 카본, 필름 300×75×120cm 4대 2025

기술과 생태 사이의 경고음
오주영의 전시는 인간 중심의 기술 문명이 항해하는 길 아래 우리가 보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해 온 수많은 생태적 암초들을 드러낸다. 그의 예술은 기술을 거부하지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도 않는다. 대신 기술의 방향타를 인간의 필요만이 아니라 비인간 존재의 생애와 감각, 생태적 회복력으로 전환하는 시도를 한다. 이러한 실험은 예술이 기술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공존 : AI돌봄센터》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은 무엇인지, 그리고 기술이 과연 공존을 향해 작동할 수 있는지 묻는 전시다. 오주영의 작업은 오늘날 기술 문명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생태적 연대를 위한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촉구하는 하나의 생태학적 경보기이자 경로 탐지기처럼 기능한다.

1 에베라도 레예스는 “인간 중심적 기술의 탈피: 오주영 작품에 나타난 매체, 생태, 종 간 소통의 상호작용 탐구” 글을 통해 오주영의 작품을 모든 유기체가 지각할 수 있는 세계를 지칭하고자 하는 ‘움벨트’로 설명했다


《모터타임즈: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다》
한국지엠 부평2공장, 부평아트센터 갤러리 꽃누리 9.26~11.23
서동진 계원대 교수

양정욱 〈빛을 만드는 모양〉혼합 매체 가변 크기 2025
《모터타임즈》 한국지엠 부평2공장 전시 전경 2025

흔적의 아카이브:《모터타임즈》의 리서치 아카이브 기반 전시의 좌표

경인콜렉티브의 《모터타임즈》는 가동 중단된 한국지엠 부평2공장을 리서치하며 얻은 정보와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아카이브 전시이다. 그러나 이 전시를, 지금은 흔해진 리서치기반-미술의 또 하나의 사례로서 여기는 것은 온당치 않을 것이다. 경인콜렉티브는 자신들을 ‘기록자’로 규정하고 자신들에게 정보를 제공한 노동자들을 ‘안내자’로 호명하며 1년 동안 진행된 기록의 결과를, 멈춘 공장을 걷는 짧은 여정을 통해 서사화한다. 기록자들의 말을 좇자면 “공장에서 느꼈던 그 경험을 3막으로 구성된 1시간 반의 짧은 투어 퍼포먼스”로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리서치 아카이브라는 기록과 그것이 참조하고 지시하는 현실로서의 공장이라는 무대, 그리고 그 위에서 수행되는 퍼포먼스가 아마 이 전시를 구성하는 얼개를 설명해 줄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1867)1권에서그유명한익살스러운문장을쓴다.“우리는화폐소유자·노동력 소유자와 함께, 모든 것이 표면에서 일어나고 또 누구의 눈에나 쉽게 띄는 이 소란스러운 유통영역을 벗어나 이 두 사람을 따라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입구에 쓰인 은밀한 생산 장소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1 여기에서 마르크스는 교환 과정의 모순을 폭로하는 결정적인 지점에 진입한다. 노동력 소유자와 화폐 소유자는 대등한 계약을 맺고 화폐와 노동력상품을 ‘교환’한다. 그것이 협잡이나 강탈이 아닌 한 모든 교환은 같은 가치끼리의 교환이어야 한다. 그런데 화폐 소유자는 더 많은 가치를 얻는다. 교환 과정은 같은 가치끼리의 교환이므로 어떤 가치의 증식도 이뤄질 수 없는데, 이 교환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마르크스는 그 기이한 비밀을 밝히려면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에서의 비밀이란 “이윤 창조의 비밀”이자 “착취의 비밀”이다.

김은희, 최혁규, 이야기, 유호연, 진수진 〈Re: Assy〉(세부) 2025
《모터타임즈》 한국지엠 부평2공장 전시 전경 2025

《모터타임즈》의 관객들은 대개, 역시 경인콜렉티브도 처음엔 그랬을 것이듯, 난생처음 ‘관계자 외 출입금지’의 세계인 공장에 발을 디뎠을 것이다. 견학이나 다른 목적으로 특별히 관리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방문했던 관객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관람은 시각적 경관으로서의 공장이었지 경인콜렉티브가 제시하려 애쓴 사회적 장소로서의 공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탈산업화의 과정에서 드물게 만날 수 있는 제조업 공장의 풍경은 놀랄만한 매력을 발휘한다. 기술적 숭고라고 불러도 좋을 아찔한 공장의 위용, 불가사의하기 짝이 없는 설비와 장치, 운동 등은 보는 이를 사로잡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산업 풍경이나 산업 사진은 상당한 애호가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때의 공장은 탈현실화되어 미적 대상으로 승화된 풍경이라 할 것이다.

《모터타임즈》는 한국지엠 제2부평공장의 특정한 노동과정의 궤도를, 역순으로, 관람객과 함께 걷는다. 작가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접근이 어려운 곳을 제외한 몇 곳의 생산 라인을 작가들은 안내한다. 이는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다’라는 전시의 주제를 수행하는 것일지 모를 일이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멈춘 공장을 재가동하고 노동자들이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는 것을 가리킬 수도 있고, 값싼 임금에 노동조합 따위는 엄두도 내지 않는 노동자들이 있는 지역으로 라인을 이전하고자 꼼수를 부리는 자본의 전략에 다시 대항한다는 것을 지시할 수도 있다. 아니면 산업적 폐허로 남은 곳을 노동과 생산이라는 사회적 삶의 ‘흔적’이 축적된 세계로서 찾아 그곳의 삶을 재활성화하는 기억의 실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경인콜렉티브의 지향은 뚜렷하다. 그곳을 감각적 세계로서 경험하는 것이다.

오석근 ‘축(軸)’ 연작(2025) 이 전시된 컨테이너 내부 《모터타임즈》 한국지엠 부평2공장 전시 전경 2025
사진: 오석근 제공: 경인콜렉티브

기록의 아카이브를 가동 중단된 공장이라는 물질적 흔적의 아카이브와 결합하며, 경인콜렉티브는 자신들의 전시를 세 가지의 몸으로 분할한다. 이는 ‘공장의 몸, 자동차의 몸, 노동자의 몸’이다. 공장이라는 건축적 실재, 그곳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라는 상품을 구성하는 각각의 부품과 그것의 조립, 그리고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의 신체, 이 셋을 그들은 몸으로 호명하며 이를 관객들이 감각적으로 경험하도록 촉구한다. 이는 전시의 마지막 파트를 구성하는 ‘노동자의 몸’에서 역력해진다. 관객은 노동자의 몸을 제시하는 사진들, 그들이 공장에서 목격했을 빛의 감각, 자신의 몸을 의지하기 위해 급조한 방석들을 마주한다. 즉 관객들은 이곳을 구체적인 감각적 경험으로 가득한 세계로 경험하도록 인도받는다.

따라서 《모터타임즈》는 자동차 공장이라는 산업현장을, 자동차를 생산하는 다양한 기술적 과정이 전개되는 마법의 세계로 재현하곤 하는 뻔한 서사를 거스른다. 그곳은 자동차라는 과학·기술적 지식이 집약된 첨단의 상품이 출현하는 환영적인 무대가 아니다. 그곳은 수분의 1초 단위의 시간적 리듬의 효율성에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자동화된 컨베이어 노동의 명령이 집행되는 착취의 세계이자 짧은 휴지기 동안 잽싸게 책을 읽는 위반의 즐거움이 상연되는 게릴라적 시간의 세계이다. 이렇게 경인콜렉티브는 자본의 극장이던 공장을 자본과 노동의 갈등과 협상이 펼쳐지는 사회적 삶의 세계로 재시각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리서치 아카이브를 통해 획득한 자료를 공장의 풍경 속에 침투시키는 경인콜렉티브의 태도는 조금은 불안한 것이기도 하다.

마르크스가 ‘관계자 외 출입 금지’인 공장으로 들어가자고 했을 때, 그 사회적 삶의 세계는 감각적 삶의 세계가 아니라 노동이라는 활동을 ‘이윤 창조’의 동작으로 증류하는 추상적 세계였다. 즉 공장의 비밀은 그곳에서 전개되는 감각적 경험의 풍요로운 현실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치로 추상화하는 것에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공장의 진실은 바로 그곳의 감각적 삶의 측면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그곳의 건축과 설비, 자동차를 구성하는 세밀하고 복잡한 부품이 만들어내는 감각적 현실은, 어쩌면 공장의 진실인 그러한 추상을 감추는 윤리적 위장으로 비출 수도 있다. 공장을 감각적 삶의 세계, 미적인 삶의 현실로서 접근하고자 했다는 작가들의 태도는 어쩌면 그곳에서 삶을 살아야만 했던 노동자들의 삶에 공감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태도를 절대 비웃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공장을 기억하고 해부하는 최선의 접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비판적 인식의 장치로서의 리서치 아카이브와 감각적 경험의 유도체로서의 리서치 아카이브의 동요가 두드러진 리서치 기반 미술의 현황을 생각할 때, 《모터타임즈》는 흥미로운 토론의 쟁점을 던져주고 있다.

1 K.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 『자본론 I 』 비봉출판사2015p.232


《냄새 분자가 되어》
금호미술관 11.13~23
이문정 미술비평,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나의 시적 우주〉 캔버스에 아크릴릭 193.9×130.3cm(5점) 2025
사진: 전병철

무한히, 지금-이 순간 현전하는

인간은 감각을 통해 이 세상을 만나고, 경험한다. 상상의 순간도 예외는 아니다. 때로는 보지 않아도 이미지가 떠오르고, 머릿속 이미지에서 향기를 맡는다.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보드랍고 까슬거리는 질감을 느낀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의 사각거리는 소리는 머릿속을 스친다. 습윤한 아침의 편백나무. 햇빛이 쨍한 하루에 만나는 녹나무. 비가 오는 어느 날 내 앞에서 아른거리는 삼나무와 티트리(tea tree). 뚜렷이 보이진 않아도 나를 감싸는 대기는 향취를 전한다. 해가 지는 붉은 하늘의 비자나무. 그 사이사이 만났던 이름을 미처 다 알아채지 못한 꽃들 그리고 풀들. 이끼와 흙. 새와 곤충들. 더 작은 생물들. 분자들. 천연의 자연이든 가꿔진 정원이든 제각각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하늘은 선선하다. 춤추듯 살랑이는 향기들. 호흡하는 대로 모두의 향이 만나고, 겹치고, 합쳐지고, 밀어내기도 하는 하루 더하기 하루들. 말 그대로 신비롭고 아름답다. 그리하여 작가는 나타나거나 흩어지는 감각의 양상들을 붙잡고, 지우고, 상상하고 재조합했다. 수집과 기록이 담기는 흐르는 투명하고 불투명한 공간은 열리고 닫히고, 다시 열리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작용과 반작용, 현상과 시도의 되새김들은 작고 작은 세계와 크고 큰 세계를 넘나들며 생각을, 감정을 자극한다.

김지수 개인전 《냄새 분자가 되어》(2025)에서 향기는 모이고 흩어지며 보이고 보이지 않기를 반복한다. 시각을 자극하는 동시에 시각을 넘어서는 형상을 만든다. 작가는 어려서부터 후각을 비롯한 감각에 예민했다고 밝혔다. “암석, 덩굴, 촉촉한 이끼 냄새, 빛과 만나는 향, 체취, 상호작용, 흩어지고 모이고 사라지고, 냄새 분자가 되어, 시공간을 오가는, 동시 감각” 같은 작가의 메모가 암시하듯 감각하기는 예술적 착상의 근거가 된다. 소중한 장소를 떠올리면 그곳의 향기가 떠오른다. 향으로 인해 잊혔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 반대도 가능하다. 언젠가의 기억을 떠올리면 특별한 향취가 되살아난다.

〈냄새 분자가 되어〉(사진 왼쪽) 단채널, mp4, 10분 59초 2025
영상편집: 소농지

인간의 몸과 정신을 분리할 수 없으므로 감각은 생각과 감정에 담긴다. 서로는 긴밀하게 관계 맺으며 상호 작용한다. 김지수가 작업의 시작점으로 삼은 후각은 숨을 쉬는 행위 그 자체에서 얻어지는 생과 직결되는 감각이다. 살아 있는 인간 대부분은 평생 향을 맡을 수밖에 없다. 향은 주체의 의지와 무관하게 감각된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 같다. 그나마 피하려면 그 장소를 벗어나야 하는데 언어로든 이미지로든 형용하기 어려운 냄새는 그 위치를 확정할 수 없다. 그저 있고, 확산하다가 흐려진다. 금방 사라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주체의 후각이 금방 적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잠시 후 사라짐을 반드시 약속하는 경험이다. 한순간의 사건과 같다.

그래서 작가는, 꽤 오래전부터 그랬듯 이번에도 과학적 탐구가 바탕이 되었지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에 선행하는, 때로는 형언하는 게 불가능한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신비로운 영역을 거쳐야 했다. 아직 만나지 못한 미지의 무언가를 향하는 마음은 더 강해졌다. 규정되고 확립된 영역을 넘어선-초월한 것을 읊조리는 시처럼 존재와 존재 사이를 메우는-잇는 향기들은 인간의 지식이 아직 알아내지 못한 것, 미처 붙잡지 못했던 것을 전한다. 작가의 “시적 우주”는 온전히 지각할 수 없고 표현할 수도 없는 무엇보다 붙잡을 수 없는 세계를 담아내고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유의 시야를 감각으로 좁히면 더욱 명확해진다. 후각뿐 아니라 감각적 경험은 언제나 사라진다. 감각하는 그 순간이 지나면 신기루처럼 기억-상상에서 맴돌 뿐 지속되지 않는다. 마치 한순간의 반짝이는 사건 같다. 그리고 “사라지려는 것을” 어떻게든 붙잡아 “현전”했음을 “명명하는” 작가의 행위는 쓰기이든 그리기이든 시적이다.1

〈우리는 공기중에 있다〉향 오브제, 유리, 가변 설치, 가변 크기 2021
사진: 전병철

특히 전시 《냄새 분자가 되어》에는 자연이 두드러져 회화인 〈풀풀, 숲이 되어〉(2025), 〈흩날리는 암석의 시간〉(2025), 〈숲이 되는 꿈〉(2025)을 비롯해 〈안녕~〉(2025), 〈킁킁, 제주 돌산과 나〉(2025), 〈타조와의 대화〉(2025) 같은 드로잉에서도 목가적인 전원시의 분위기가 강하다. 실제로 김지수가 향을 채취하는 과정은 그저 조사와 수집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걷고, 보고, 듣고, 호흡하며 대기를 느낀다. 냄새를 맡고 향을 모으는 과정에서 대상을 만진다. 그렇게 세상과 교류하며 작가의 안과 밖은 서로를 향해 섬세하게 침투한다. 온몸의 감각 전부가 작동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유의미하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을 관객에게도 선사하기 위해 전시장에 녹나무, 비자나무, 삼나무, 티트리, 편백나무, 다섯 가지 나무 향을 준비했다. 김지수가 식물에서만 향을 채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제주자원식물연구소와의 협업을 토대로 2년여 동안 제주도의 숲과 인체의 관계를 탐구했던 결과가 담겼다. 신비롭게도 서로 다른 종, 서로 다른 모습 그리고 향을 가진 존재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반투명한 연분홍 베일이 드리워진 공간은 나무들이, 구름이, 보슬비가 감싸는 숲처럼 나 그리고 당신-누군가를 감싸안는다. 작은 오로라를 연상시키는 빛을 발산하는 오브제는 온기를 더한다.

한편 숲에서 일어난 작가의 외적이고 내적인 경험과 사유의 흐름은 영상 작품인 〈냄새 분자가 되어〉(2025)에 보다 직접적으로 담긴다. 어느 순간부터 작가는 단절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고 조금은 낭만적인 합일을 꿈꿔보게도 되었다. “영적인 충만감에 젖어 있는 식물들의 심미적 진동”이 전달되면 인간은 평온함에 빠져든다. 아마도 작가는 주변 조건에 따라 움직이고 반응하는 식물을 느꼈을 것이다. 땅에 뿌리내렸다 하여 그저, 그렇게 머물기만 하지 않는다. 인간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식물도 자유롭고 우아하게 움직인다. 다만 인간의 시각이 지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천천히 움직일 뿐이다. 또한 식물의 성장이나 잎사귀의 변화도 움직임이다. 햇빛을 따라 나뭇가지의 방향이 바뀌고 바람에 나뭇잎은 흔들린다. 우주의 흐름에 반응하며 살아 숨 쉬고,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과 교감한다. 식물의 영혼, 식물의 의지를 상상해 본다.2 살아 있음의 증거인 호흡하기 속에서 나무의 냄새 분자도 자유롭게 이동하고 스며든다. 때로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향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에 김지수는 냄새 분자의 이동, 나무 혹은 자연의 춤을 그려낸 무보(舞譜) 같은 ‘나의 시적 우주’ 시리즈(2025)에서 자유롭게 확산하고 떠다니는, 그러나 조금은 허무하게 흐려지는 향기와 그 안에 담긴 생의 작용을 잠시 붙잡았다. 작업을 진행할수록 작가는 완벽히 파악할 수 없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무언가에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향기도, 마음도, 생각도 그리고 생도 고정된 형상이 없고, 한정할 수 없으며, 붙잡을 수 없다. 자취만 아른거리기 때문에 찬란하고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인간은 무한하지 않지만, 무한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으며 그것을 끝없이 생각한다. 알려고 한다. 그리고 꽤 자주, 무한에 관한 질문은 영원으로 이어진다. 영원은 단일한 하나의 존재-상태로 끝없이 지속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만큼 유한도 생각하게 된다. 유한과 무한 그리고 영원은 공간과 시간, 물질과 비물질, 감각과 마음, 존재와 비존재 모두와 연결된다. 하나같이 세상의 원리와 분리할 수 없는 단어들이다. 확산하는 향은 유한인지 무한인지 질문해 본다. 그리고 예술의 유한성과 무한성에 대한 사색에 빠진다. 그렇게 찰나는 영원으로 이어진다.

1 알랭 바디우 지음 장태순 옮김 『비미학』 ㈜이학사 2023 p.55
2 피터 톰킨스, 크리스토퍼 버드 지음 황금용, 황정민 옮김 『식물의 정신세계』 정신세계사 2020 pp.6~9

2025년 12월호 (VOL.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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