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호 Shin Sang Ho
‘제작’에서 ‘일어남’으로 –
신상호 예술세계와 그 몰이해의 구조
이인범 미학·예술학, 아이비리 인스티튜트 디렉터
Artist

신상호/ 1947년생. 홍익대 공예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홍익대 미술대 학장 및 산업미술대학원장을 역임했고, 2006년 세라믹 창작센터인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의 설립을 주도하며 초대 관장을 지냈다. 2025년 옥관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1973년 미도파화랑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신세계화랑, 갤러리현대, 금호미술관, 그랜드하얏트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센트럴코네티컷주립대, 소게츠미술관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빅토리아앤알버트미술관, 영국박물관, 세브르 국립도자박물관, 스미소니언박물관, 기후현 현대도예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미지 제공 : 신상호스튜디오
Ⅰ
도예가 신상호가 이 글의 주제이다. 어느덧 여든의 문턱에 선 그가 일찍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평생 흙과 더불어 살아온 그의 예술 생애를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가 뒤늦게 발동한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 《신상호 : 무한질주》1 덕분이다. 관람자를 압도하는 작품의 양과 규모, 그리고 전시된 작업에서 감지되는 열기는 살갗에 와 닿을 만큼 뜨겁다. 마침 미술관의 요청으로 인터뷰 영상 제작을 준비하며 그의 스튜디오를 몇 차례 방문해 나눈 작가와의 대화 역시 이 글을 쓰게 된 행복한 경험이었다.
물론 여태까지 그의 활동의 매력과 작품이 던지는 이슈들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다면 작가론까지 욕심낼 것까지야 있었을까. 그러나 1980년대 말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로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작가 신상호의 활동과 작업은 내게 낯설지만 신선하게 다가왔고, ‘도예가’라는 호칭은 왠지 그에 걸맞지 않게 너무 비좁아 보였다. 그런데 담론이 넘쳐나는 미술계에서 그의 활동은 늘 주변에서 맴돌 뿐 정작 진지한 논의의 대상에선 비켜나 있는 듯 보였다. 물론 이러한 정서적 불편함이 신상호라는 작가에 관련된 문제로 볼 일이라기보다 우리 미술계의 시야가 관행적인 제도와 틀에 갇혀 드러내는 고루함이나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제도적 관점으로 보자면 신상호는 분명히 도예가이다. 1965년 홍익대 미술대학 공예학과에 입학해 도예를 전공했고 작가 활동을 누구보다 활발하게 펼쳤으며, 모교 도예과 교수로 약 30년 가까이 재직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 궤적을 보면 도예라는 영역에만 두 발을 착지하고 있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전통 도자에서 출발해 1984년 미국 코네티컷대학 교환교수 시절, ‘세라믹 스컬프처(ceramic sculpture )’를 접하며 크게 변신하고 1990년대에는 분청을 재해석하는 시도를 했으며, 이후 아프리카를 오가며 인간과 동물, 생명의 형상과 구조를 다루는 시도 등 작업에서 또 한 번의 격변을 보였다. 2000년대에 들어설 무렵부터는 ‘아트 타일’ 등으로 시장적 가능성을 시도하는 듯하더니 다양한 대형 건축적 프로젝트들로 확장했고, 최근에는 이른바 ‘구운 그림’이라는 평면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지속적으로 붙들고 있는 것이 흙이라는 매체일 뿐, 그 나머지 작업의 목적 · 형식 · 장르 등에서 그가 보여주는 변주는 현란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작업을 단순히 형식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그의 작업 세계는 산만하기 이를 데 없거나 맥락 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새것 콤플렉스’의 발로 정도로 읽힐 여지가 있다. 그러나 신상호 작품세계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가파른 변화들이 모티브나 형태, 장르를 넘나드는 기호적 유희나 시시각각 변하는 취향의 차원이 아니라, 평생 흙과 함께하며 그 물질과 그것을 다루는 기술적 · 물리적 조건의 한계를 끊임없이 밀어붙이며 그 잠재적 에너지를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결과물이라는 점에 이르면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 신상호가 지금까지 평생 과제로 삼아 온 것은 ‘무엇을 표현했는가’보다 흙과 더불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해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의 여정으로 귀결되니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대로 그저 제작된 사물이 아니라 세계와 모든 것을 감추려는 대지가 서로 부딪히며 진리가 발생하는 ‘일어남(ereignis )’의 사건이라는 점이다. 흙, 불, 중력, 소성, 표면, 구조가 맞물리는 자리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은 그에게서 다시 다음 실험을 촉발한다. 그의 작업의 변주는 그 연쇄의 기록이다.2

왼쪽〈보이지 않는 부분들〉혼합토 42×28×28cm 1986 작가 소장
가운데〈앞선 꿈-분청상감접시〉혼합토, 상감 9×45×45cm 1992 작가 소장
오른쪽 신상호, 김기창〈백자청화조목문대호〉백자토, 청화, 철화 60×46×46cm 1980 개인 소장
사진 : 박찬우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Ⅱ
이러한 신상호의 예술 여정을 삶의 궤적에 따라 살펴보자. 미술대학 진학은 그에겐 불교적 의미에서 출가(出家 )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1947년 경기도 양주에서 부농의 맏아들로 태어나 전쟁과 가난의 시대를 통과하며 자란 그는, 서울공업고와 홍익공전에서 사물 제작의 원리와 기술을 먼저 익혔다. 미술대학 진학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쓴 선택이었고 입학하자마자 그가 집을 떨치고 가출하여 간 곳이 이천의 도자 마을이었다. 부모는 마지못해 그의 선택을 받아들이고자 전통 가마 하나를 인수해 아직 약관의 나이도 못된 아들에게 맡기는 우여곡절을 거쳤으니 가출이 곧 출가가 된 셈이다.
무엇보다도 전통 가마 운영이 학창 시절 신상호의 정신적 · 경제적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은 일찍부터 ‘작업을 한다’는 일이 곧 ‘살아 남는다’는 일과 하나가 되는 체험이었다는 것은 그저 스쳐볼 일은 아니다. 국전과 상공미전 같은 관문을 통과해 미술계에 데뷔했지만, 그것이 그의 예술 인생에서 그다지 의미 있는 사건이 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그는 이천에서 ‘도방요’라 이름 붙인 가마를 운영하며 장인들과 뒤섞여 숙련된 기술을 구사하며 사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학생 신분으로 정부 주도의 해외 산업 시찰단 구성원으로서 아시아와 유럽을 경험했으며, 일본 백화점 갤러리 초대전을 여러 차례 열 만큼 도자의 산업적 가능성을 체득하고 있었다. “그릇 하나조차 귀하던 시절” 예술 이전에 생존 기술이었던 그릇 만들기는 그에게 세속적인 성공을 경험하게 했으며, 다만 미술대학 출입으로 예술과의 경계선상 어딘가에 놓이기 시작했다.

〈구운 그림-무제〉혼합토 50×50×1cm( ×5,036 ) 2006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사진 : 신형덕 제공 : 신상호스튜디오
장인들과 신상호가 달랐던 점은 흙이라는 물질을 다루는 그의 태도였다. 신상호는 도자를 이른바 장인 정신 같은 ‘비의적인 세계’에 가두지 않고, 흙이라는 물질과 소성을 과학적 정보와 근대적 기술의 관점에서 탐구하는 것을 절체절명의 과제로 삼았다. 1976년 「한국 철채 자기의 연구」를3 석사논문으로 제출하며 재료와 소성의 조건을 체계화하는 일에 관심을 쏟았고 유약과 소성, 철분 환원에 대한 실험을 이어갔다. 가스가마를 국내 최초로 도입하여 소성 과정을 과학화하고 그 공정을 “해명 가능한 영역”으로 객관화했다. 이러한 태도는 1980년 모교 교수 취임으로 더욱 가속화되며 흙이라는 매체의 동시대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막상 그의 작업에서 첫 번째 획기적인 전환은 1984년 미국 코네티컷주립대 체류 시에 피터 폴커스, 토니 헵번, 윌리엄 데일리 등 세라믹 스컬프처 운동을 주도하던 작가들과 교류하며 일어난다. 이때 그는 기(器 )에서 벗어나 예술로서의 세라믹 스컬프처, 즉 도조(陶彫 ) 작업에 눈떴다. 실용성과 절연하는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오랜 관행이었던 물레를 끊어내고 흙을 덩어리와 스케일로 마주하는 일이었으니, 도예가인 그에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가까운 결단이었다.

〈구운 그림-언어〉(사진 왼쪽) 혼합토 50 ×50 ×1cm( ×90) 2008 작가 소장
사진 : 신형덕 제공 : 신상호스튜디오
흥미로운 것은 도조 작업 중 하나인 〈보이지 않는 부분들〉( 1986 )에서 확인되듯이, 그의 관심은 마치 석류의 속살 같은 형태의 새로움만이 아니라 점성이 높은 점토로는 성형하기 어려운 기술적 난이도나 색채에 도전하며 구조를 내부에 밀집시킨 반타원형 입체를 통하여 흙의 표현 범위를 실험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국내에서 발표한《신상호 도조전》( 1986 )을 둘러싸고 공예계에서는 “배신”, 순수미술 쪽에서는 “침입”이라는 논란이 이어졌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여기서 정작 그에게 일어나는 변신 중에 주목할 만한 점은 그때까지 그가 중시하던 흙을 물성으로 다루던 “물리적 지지체(phisical support)”에 대한 관심을 뛰어넘어 그것을 다루는 관습적 측면과 더불어 집요한 “기술적 지지체(technical support)”에 대한 인식이 더 확고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언더 블루 컵(Under Blue Cup )』 (2023 )에서4 언급하는 포스트 미디엄 시대의 매체 논의의 어떤 측면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하다.
어떻게 보면 그를 둘러싼 논란은 실은 신상호 개인에 대한 비난이라기보다 오히려 ‘공예/미술’이라는 이분법적 틀을 지켜내려는 낡은 제도의 관성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로 국제 미술제가 확산되는 가운데 전 지구적 예술 논의에 노출되면서 이러한 논란은 말없이 잦아들었다. 아쉽게도 미술계나 공예계나 예술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간과한 채 관념적인 민족정신, 노장사상, 민중주의의 늪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했지만 말이다. 1990년대 초, 그의 작업은 다시 분청으로 회귀하는 양상을 드러낸다.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복고적이다. 그런데 그가 분청을 끌어들여 시도하는 작업은 그 전통을 긋고, 채우고, 긁고, 지우는 반복 행위를 통해 표면의 과정을 드러내는 장으로 되살려낸다. 이때 그 표면은 장식적 대상이 아니라 사건의 장소로 거듭난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옛 기물들을 분청과 도조적 관점에서 다시 재구성하는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제〉 혼합토 가변 크기 1986 작가 소장 사진 : 김대수 제공 : 신상호스튜디오
신상호에게 또 한 번의 큰 전환점은 한 전시에서 받은 충격에서 비롯된다. 1995년 영국 왕립예술대에 초빙교수로 체류하던 중 관람한 《아프리카 : 대륙의 미술(Africa : The Art of a Continent)》을 통해 만난 아프리카 자연과 문화로부터이다. 이 전시에 감전이라도 된 듯이 그는 곧바로 아프리카로 향하면서 한동안 아프리카 자연 생태와 토템 신앙 등에 젖어 들었다. 아프리카 곳곳을 수시로 오가며 그가 주목한 것은 처음에는 토템 양식의 동물 형상과 이미지들이었으나 점차 자연 속에 군집하여 살아가는 각종 동물들의 생명 에너지의 구조나 그 생태적 공간으로 관심이 이동했다.
이는 조형을 위해 사용되는 비계나 작품 제작을 위한 물질과 그것을 다루는 제작 과정을 그대로 노출한 작업에서 잘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그가 자신의 예술적 과제를 그것들이 왜 이렇게 구성되는가(tectonic ), 무엇이 드러나는가(textura ), 어떻게 조립되는가(construction ) 하는 러시아 구축주의의 문제의식으로 모아가는 듯이 보일 정도이다. 이 지점에 이르면 물질로서의 흙과 기술은 그에게 더 이상 기능적 재료나 수단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그 흙 자체가 사유의 조건이자 자신의 예술 작품을 발생시키는 토대가 된다.

〈아프리카의 꿈-토템〉혼합토 가변 크기 2000–2002 작가 소장
사진 : 박찬우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뉴밀레니엄에 접어들 무렵 신상호는 한편으로 건축시장을 겨냥하여 도자와 건축적 이슈를 결합한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의 〈밀레니엄타이드〉(2000) 등 여러 대형 건축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 출발은 ‘아트 타일’로, 이후 여러 대형 프로젝트들 – 모듈화된 타일, 탈부착 기술의 개발과 특허, 그리고 관장으로서 주도한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의 여러 전시나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실마리가 되었다. ‘구운 그림’을 발전시킨 다양한 평면 작업 연작에 이르기까지 이후 전개되는 일련의 형식적 변주는 모두 흙이라는 물리적 질료의 속성과 그것을 다루는 솜씨, 그리고 사물의 리얼리티를 읽어내는 다양한 시도이다. 그러니까, 이쯤에 이르면 흙이라는 질료는 어느덧 단순한 조형 재료가 아닌 것이 된다. 공간과 표면, 구조와 모듈을 조직하는 건축적 언어, 자신의 유희 본능에 보다 충실한 평면 작업 등으로 스스로 끝없이 진화하고 확장되는 물리적, 기술적 지지체들의 교향곡 같다.

〈생명수〉혼합토, 알루미늄 패널 244 × 122 × 3cm( × 6) 2017 작가 소장
사진 : 박찬우 제공 : 신상호스튜디오
최근 그가 ‘구운 그림’의 연장선상에서 몰입하고 있는〈생명수〉(2017 )나 〈묵시록-청〉(2025 )에서 알 수 있듯이, 신상호가 실천하고 있는 물리적, 기술적 지지체의 가능성을 심화시키는 과정은 오랫동안 회화 장르 형식에 집적되어 매체적 기억을 다시 소환하면서도 지금까지의 경험을 한껏 응축시킨 여러 평면 작업을 통해 더 확고해진다. 그는 평생에 걸친 자신의 작업을 스스로 ‘흙장난’이라 말한다. 그는 예술에서 가장 지고한 가치를 쉴러적 의미에서 ‘유희’라 여기며 살아왔다는 말일 것이다. 아마도 흙이라는 질료의 한계를 뚫고 예술 작품으로 일으켜 세우는 물질과 그것을 다루는 물리적, 기술적 원리와 그 가능성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일이 그에겐 ‘장난’이었을 것 같다.
Ⅲ
신상호를 둘러싼 비판들 가운데 하나는 작업의 형식적 변화가 너무 가파르거나 다양해서 종잡기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의 가파름이나 다양성이야말로 흙이라는 매체와 평생을 함께한 그가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예술적 질주와 무엇이 다를까? 공예와 미술, 산업과 예술, 기술과 사유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물질적 · 기술적 지지체를 끊임없이 갱신해 오는 과정에서 그의 삶과 작업이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 혹은 민중주의 같은 것들로 관념성을 넘어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노골화하는게 일반화된 우리 예술계에 휘말릴 여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건 다행이다. 바로 그만큼이 우리 미술계가 오랫동안 간과해 온 예술의 근본 문제들을 다시 호출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들릴 뿐이다.
민족, 계급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장르 · 학벌 이데올로기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개념적으로 포획되지 않는 것들을 배제하며, 기술과 물질의 문제 같은 근본적인 이슈는 사유의 바깥으로 밀어내는 환경이 신상호 같은 이에게 그리 편했을 리 없다. 작업이나 추구하는 가치와 무관하게 고작 학습기의 출신 학과에 따라 공예는 ‘쓰임’의 범주로, 미술은 ‘표현’의 범주로 배치되는 제도적 경계가 유지되는 한, 공예는 영원히 미술의 변방에 방치되고, 미술에서 기술이 사유의 층위를 구성하는 에너지로 받아들여지지는 일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상상력이나 고도의 매체 담론은커녕, 일찍이 헤겔의 관념론적 예술이해에 맞서 고트프리트 젬퍼(Gottfried Semper)가 강조했던 기술과 자료에 대한 문제의식 조차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예의 언어로는 자신의 확장을 기대할 수 없는 공예, 미술의 언어로는 기술적 토대의 중요성은 여전히 뒷전일 수 밖에 없는 한 예술판은 공허하고 맹목적인 관념의 난무장에 자리를 내주게 되지는 않을까?

《신상호: 무한변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전시 전경 2025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기술은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를 새로 짜는 방식이다. 덩어리나 흙을 터지지 않게 소성하기 위해 내부 공간을 조직하는 문제, 표면에서 행위의 층위를 드러내는 문제, 모듈과 탈부착을 통해 건축의 피부를 재구성하는 문제같이 신상호가 몰입해 온 일련의 문제들은 모두 이미지나 ‘형태’ 이전에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가능한가’를 묻는 것이다. 그런 질문이 가능할 때 비로소 작품은 완성된 이미지나 형상의 따분한 문학적 서사에서 벗어나 조건과 저항, 시행착오가 응축된 사건의 시간으로 다가올 것이다. ‘제작’이란 말이 결과물의 산출을 가리킨다면, 신상호의 작업은 그 산출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자체가 끊임없이 갱신되는 ‘일어남’의 사건에 더 가깝다.
하이데거가 예술 작품을 ‘진리의 정립’으로 보며 작품 안에서 세계가 열리고 대지가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말했을 때, 그 대지는 단지 배경이 아니라 저항하는 물질의 차원이다. 신상호에게 흙은 바로 그 대지의 이름이다. 흙은 언제나 손에 순응하지 않고, 불은 언제나 동일한 결과를 약속하지 않는다. 그가 연구소를 세우고 실험을 반복한 이유도, 흙이라는 대지가 드러내는 저항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 태도는 작품을 잘 만드는 차원을 넘어,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
따라서 그의 ‘무한변주’는 그가 선택해 온 자취가 아니라, 물질의 조건을 갱신하며 세계를 다시 구성하려는 작가적 집요함의 다른 표현이다. 분청의 반복 행위, 아프리카 작업에서 구조로의 이동, 타일과 건축으로의 확장, ‘구운 그림’에서의 평면화는 서로 단절된 시도가 아니라 “흙이 할 수 있는 것”의 제한된 경계를 밀어내는 하나의 연쇄로 읽을 만하다. 이때 우리는 그 연쇄를 따라가며, 한국미술이 기술과 물질을 어떻게 사유의 중심으로 되돌릴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신상호의 작업이 지금, 다시 읽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Ⅳ
결국 신상호 예술의 매력은 ‘흙’이란 매체에서 출발해, 공예와 미술, 산업과 예술, 조각과 회화, 건축과 설치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매번 다른 사건을 일으킨다는 데 있다. 그 사건은 관념의 언어로 쉽게 환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념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물질과 기술이 예술의 근본 문제로 다시 솟아오른다. 신상호를 이해한다는 것은 한 작가를 재평가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기술을 사유의 외부로 밀어내 온 한국 미술계의 오래된 습관을 되돌려 보는 일이자 예술이 다시 ‘일어나는’ 조건을 묻는 일이다.
오늘 신상호의 작업은 ‘도예냐 미술이냐’하는 낡은 질문을 넘어, 예술이 물질과 기술의 기반 위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확장되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스스로 ‘흙장난’이라 낮추어 부르는 순간에도, 그 장난은 곧 실험이고 연구이며 세계를 다시 여는 노동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류가 아니라 경청이다. 흙과 불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따라가며 예술이 다시 시작되는 자리, ‘제작’이 ‘일어남’으로 전환되는 자리를 확인하는 것. 그 자리에서 신상호는 여전히 현재형이다.
1 《신상호 : 무한질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5.11.27~3.29
2 M. 하이데거 지음 오병남 민형원 옮김 『예술작품의 근원(Der Ursprung des Kunstwerkes )』 경문사 1990 참고
3 신상호 「한국 철채 자기의 연구」 홍익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75
4 로잘린드 크라우스 지음 최종철 옮김 『언더 블루 컵』 현실문화 2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