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이중섭의 사랑, 가족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의 위치는 공고하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가 열리고 있다. 1월 6일부터 2월 22일까지 현대화랑에서 진행되는 <이중섭의 사랑, 가족전>이 바로 그것. 이중섭의 유화, 드로잉, 은지화, 편지화 등 70여 점이 소개되는 이번 전시에는 특히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소장하고 있는 은지화 3점이 최초로 공개되어 화제를 낳았다.

현대화랑과 이중섭 그리고 가족의 귀환

최열 미술비평

현대화랑, 다시 말해 박명자 대표와 이중섭은 뗄 수 없는 인연이다. 이중섭이 세상을 떠나고 열여섯 해가 지난 1972년 박명자 대표는 이중섭의 친구 구상, 박고석, 유강렬과 함께 전국에 흩어져 있던 유작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것이 저 유명한 <15주기 기념 이중섭 작품전>이다. 이 전람회는 이중섭을 부활시킨 기점이었다. 이중섭이라는 신화와 전설의 기원인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20세기가 끝나는 1999년 또다시 현대화랑과 박명자는 <이중섭 특별전>을 열었다. 뿐만 아니라 박명자가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미술관에 이중섭 작품을 기증하기까지 그 관계는 운명과도 같이 질긴 것이었다.
이번에 ‘이중섭의 사랑, 가족’ 주제의 전람회가 열리는 장소와 관련하여 조용하지만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 벌어졌다. 현대화랑이란 이름의 부활이다. 그러니까 27년 전인 1987년 ‘갤러리 현대’로 이름을 바꾸면서 사라졌던 이름 ‘현대화랑’이 이중섭과 함께 귀환한 것이다. 이제 갤러리 현대는 현대화랑과 함께 두 개의 건물로 나뉘었고 홈페이지도 두 개의 누리집(홈페이지)으로 구성됐다. 양날개를 펼친 형세를 갖춘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이 사건은 한국 화상畵商의 살아있는 역사 박명자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성장한 2세가 경영 일선에 참가하던 금세기 초 성급하게도 2세체제 전환이 임박한 듯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후 10여 년의 과정을 보면 사실은 1세대의 주도 아래 2세대가 실전 훈련을 치르는 수준임이 드러났다. 그러므로 이중섭을 앞세운 현대화랑의 부활은 이제 2세대의 진출이 완만하게나마 현실화되고 있으며 따라서 지금에야 겨우 신구세대가 공존하는 시대임을 상징하는 사건인 셈이다.
이번 전람회가 지닌 두 번째 의미는 가족의 기억과 가치다. 전시 주제인 ‘이중섭의 사랑, 가족’은 주최 측이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6·25전쟁으로 파괴당한 가족의 기억 그리고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사회를 뒤흔든 가족의 가치를 환기시켜주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은 모두 가족을 소재로 삼고 있다. 난민의 고통과 이별, 재회를 향한 간절한 소망 그리고 죽음으로 나아가는 절망에 이르기까지 그 하나하나에 가족 이야기가 숨쉰다. 전후 60여 년 동안 우리 사회는 개발과 성장이란 늪에 빠져 가족이란 이름의 사랑을 옆으로 밀어냈다. 개발과 성장의 다른 이름은 경쟁과 욕망이다. 오늘날 가족이란 탐욕의 그늘에 가려 어둡고 무거운 초상화일 뿐이다. ‘사랑, 가족’이란 제목 아래 우리 앞에 홀연히 나타난 ‘이중섭’과 지워졌던 ‘현대화랑’의 부활은 우리를 일깨우려는 빛처럼 느껴진다.
이번 전시에는 개인 소장가의 품 안에 꼭꼭 숨어있던 엽서화葉書畵, 편지화便紙畵 그리고 춘화春畫가 공개된다. 또 1956년 바다 건너 뉴욕현대미술관MoMA 수장고로 들어간 이래 근 60년 만에 조국으로 귀환해 처음으로 세상 빛을 보는 저 은지화銀紙畵도 등장한다.

DF2B3710

신화화된 이중섭에 대한 연구 필요
필자는 《이중섭 평전》에서 저 엽서화를 ‘주소 없는 편지’로써 ‘사랑의 기호학’이며 미술사상 아주 희귀한 사례로 기록될 ‘우리 미술사의 축복’이라고 묘사했다. 출품된 10점 가운데 최고의 걸작은 <마사マサ>다. 벌거벗은 몸의 애인 야마모토 마사코가 나무와 한 몸으로 이어져 있고 탐스러운 열매 한아름을 받쳐들고 있다. 사랑의 연서戀書는 많은 시인, 문인들이 남겼지만 이처럼 80여 장에 달하는 사랑의 엽서화는 전에도 후에도 없는 오직 하나뿐인 연화戀畵다.
편지화 또한 예를 찾기 어려운 사랑의 그림이다. 지금껏 부인에게 보내는 38편과 두 아들에게 보내는 20편의 번역본만 알려져 있었을 뿐이다. 편지화 원본은 겨우 몇 점만 공개돼 있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에야 비로소 그 원화를 마주할 수 있음은 어쩌면 그 사랑이 그만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번에 공개되는 20편의 편지 연화가 아름다운 까닭은 첫째, 두 아들에게 사랑을 호소하는 문자 하나 하나에도 감정이 어려있어 간절하다는 것. 둘째, 그림과 글씨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 셋째, 이중섭만의 능수능란한 필력이 거침없이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러니까 한결같이 서화일치의 경지에 다가선 예술 그 자체라는 것이다. 누군가 냉소하는 말투로 “편지 한 장이 웬 1억 원이나 가는거야”라고 했다. 그건 이 예술을 편지일 뿐이라고 여기는 선입관 때문이다. 공개되지 않은 나머지 편지들도 모두 공개되기를 기다리는 까닭은 바로 이중섭의 편지화, 그 서예술書藝術을 진심으로 마주하고 싶은 욕망에 있다.
은지화는 잘 알려진바 대로 이중섭이 탄생시킨 아주 특별한 미술품이다. 아니, 그것은 이중섭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전쟁과 난민이라는 시대가 탄생시킨 것이다. 탄생의 기원도 자못 비장하거니와 거기 담긴 이야기도 비극에서 환희에 이르기까지 20세기 방황하는 정신을 모두 담고 있으므로 몇 백 점의 은지화가 공개될 적마다 탄성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되는 ‘춘화’는 매우 극적이다. 남녀가 서로 성기를 마주한 모습 그대로 노출된 은지화는 지금껏 극소수만이 본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놀라운데 한걸음 더 나아가는 충격은 다름아닌 MoMA 소장 은지화 3점의 귀환이라 하겠다.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됐다는 사실은 한국이 20세기 100년 동안 서구문명권으로 편입된 이래 일어난 가장 거대한 사건이다. 그런데 누구도 그 소장작품을 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 무려 59년만에 귀향한 석 점은 상상보다도 훨씬 놀라운 충격이었다. 수백 점의 은지화 가운데 가장 빼어난 조형성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사냥꾼과 비둘기와 꽃>은 유사한 소재를 그린 은지화들 가운데 가장 아기자기하고 충실한 구성을 갖춘 작품이며 <신문 읽기>는 몽환이 아닌 현실을 소재로 삼았으되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나눈 위에 여러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현실을 뛰어넘는 분위기를 연출한 작품이다. 전시장에 걸린 3점과 마주하는 순간, 기증자인 맥타가트 박사가 말한바 그대로 ‘특별한 매력’이 넘친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후 60년 그리고 탄생 99주년인 2015년 이중섭의 귀환을 맞이해 우리는 ‘가족, 사랑’을 반추한다. 아마도 그것은 숱한 상처로 얼룩진 가족이란 이름의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그 오랜 세월 이중섭은 신화와 전설 속으로 빠져들었고 그 사이 작품은 시장에서 진위眞僞시비를 일으키는 진원지였으며 그의 예술에 대한 가치평가 또한 찬사와 비난의 극단을 오갔다. 탄신 백주년 행사를 준비해야 할 이때 미술인들이 해야 할 단 하나의 일은 신화가 된 이중섭의 예술에 대한 아주 차분하고 진지하기 그지 없는 탐구일 것이다. 현대화랑과 함께 귀환한 이중섭이 우리에게 희망하는 것도 그게 아닐까. ●

EXHIBITION & THEME 眞景山水畵 우리 강산, 우리 그림

보편성 위에 펼쳐진 고유의 독자성

백인산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진경산수화는 많은 이에게 조선의 문화 역량과 우수성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 12월 14일부터 5월 10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진경산수화를 대규모로 만날 수 있는 전시, <진경산수화: 우리 강산, 우리 그림>이 계속된다. 이번 전시는 진경산수화를 정립한 정선의 서울, 금강산 그림부터 정선의 화풍을 부분적으로 이은 심사정, 정조시대의 김홍도, 이인문을 이어 조선 말기에 활동한 근대화가들까지 이어지는 진경산수의 맥을 짚어본다. 이를 통해 조선 성리학과 우리 땅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한눈에 살펴본다.
간송미술관을 대표하는 소장품으로는 《훈민정음》,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미인도〉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모두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문화재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단일 작품이 아닌 특정 분야를 꼽는다면, 역시 진경산수화가 아닐까 싶다. 겸재 정선을 중심으로 하는 진경산수화는 소장품 양과 수준에서 간송미술관을 따라올 곳이 없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뚜렷한 목적과 의지를 가지고 진경산수화를 집중적으로 수집한 결과이다. 간송은 우리 문화재를 선조들의 삶과 정신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결정체로 생각했다. 그래서 문화재를 모으는 것이 곧 우리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 되살리는 일이라고 확신했다. 간송 선생은 특히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후대에 올바르게 전해주고자 했다. 일제에 의해 우리 역사와 문화가 심각하게 폄하되고 왜곡된 시대였기 때문이다. 간송은 진경산수화야말로 조선 문화의 역량과 우수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간송의 뜻에 부응하여 간송미술관은 수십 년 동안 심도 있는 연구와 다양한 전시를 통해 진경산수화를 집중 조명하여 그 가치와 의미를 널리 알리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런 점에서 진경산수화는 간송 선생과 간송미술관의 신념과 지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분야라 할 수 있다.

6. 삼일포 - 심사정

심사정 〈삼일포〉 지본담채 27×30.5cm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참된 경지眞境로 나아가다
진경산수화는 실재하는 경관을 사생한 그림이다. 그러나 실경을 그렸다고 모두 진경산수화라 하지는 않는다. 실경산수는 고려시대나 조선전기와 중기에도 있었지만 주로 실용적인 목적으로 그렸으며, 기법도 중국의 관념산수화풍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조선후기의 진경산수화는 자존적 인식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화풍을 구사하여 이전의 실경산수화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런 자존감과 독창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문화를 식물에 비유하면 이념이 뿌리이고, 예술은 꽃이라 한다. 이전과 다른 꽃이 피었다면 그 바탕이 되는 뿌리가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그 뿌리는 다름 아닌 조선 성리학이었다. 조선 성리학은 율곡 이이에 의해 정립된 신학설로 성리학의 발원지인 중국에도 없는 고유 이념이었다. 진경산수화는 조선 성리학이라는 고유 이념의 뿌리에서 피어난 꽃인 셈이다. 당연히 주체적이고 독자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 시기 청나라가 중원을 차지하자, 조선의 지식인들은 중화문화를 계승할 유일한 국가는 바로 조선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른바 조선중화주의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곧 세계문화의 중심’이라는 생각이었다. 영조시대 문인인 조구명趙龜命은 “예술은 본래 두 가지 이치가 없을 진대, 어찌하여 제 스스로 중국의 문명을 기준으로 삼겠는가” 라고 갈파했다. 우리의 시각으로 우리의 산천을 그린 진경산수화가 왜 이 시기에 크게 유행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말이라 하겠다.
진경산수화의 출현은 조선 성리학이라는 고유 이념과 조선중화주의라는 주체적 자의식에서 움튼 조국애와 국토애가 조형적으로 발현된 현상이었다. 진경산수화의 발전을 주도한 이들이 주로 조선 성리학의 정립자인 율곡계 문인들인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겸재 정선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정선은 우리 산천의 조형적 본질과 내재된 정신성을 면밀한 관찰과 많은 사생을 통해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리고 역대 중국 산수화풍의 장점을 취합한 뒤, 성리학의 기본 경전인 《주역》의 원리에 입각해 음양의 대비와 조화로 화폭에 풀어냈다. 우리 산천의 ‘진짜 경치眞景’를 사생하여 ‘참된 경지眞境’로 승화시킨 과감하고 혁신적인 시도였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금강산, 한양 주변의 명승, 관동팔경과 단양팔경, 박연폭포 등 정선이 그린 40여 점의 작품을 통해 그 진수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선에 의해 정립된 진경산수화풍은 다음 세대인 현재 심사정으로 이어졌다. 그는 어린 시절 정선에게 그림을 배웠지만, 진경산수화풍을 좇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중국 문인화풍의 관념산수화를 더 잘 그렸다. 그러나 진경산수화의 도도한 흐름을 끝내 외면할 수 없었던지 중년 이후 정선의 화풍을 부분적으로 끌어들여 금강산의 명소들을 사생해낸다. 이렇게 그려진 작품들이 이번에 출품된 〈만폭동〉과 〈삼일포〉이다. 정선에 비해 사생성과 현장감은 다소 미흡하지만, 문인 취향의 그윽한 아취가 결합된 독특한 진경산수화풍을 보여준다.
진경산수화의 대미를 장식할 역할은 정조시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김홍도, 이인문 등 화원 화가들의 몫이었다. 그중에서도 김홍도는 화원화과 특유의 시각적인 사실성을 중시하는 정교하고 섬세한 화풍으로 진경산수화를 그려 앞선 문인화가들과는 또 다른 흥취를 자아낸다. 한편 김홍도와 더불어 정조시대를 풍미했던 동갑내기 화가 이인문은 서양화풍이 가미된 진경산수화를 그려 독특한 감흥과 더불어 시대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조선후기를 화려하게 수놓은 진경문화는 정조대를 넘어서며 제 수명을 다하고 스러져갔다. 진경산수화도 생명력을 잃어갔다. 진경산수화 출현과 발전의 토대가 되었던 조선 성리학이 말폐 현상을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선말기 예원의 종장이었던 김정희金正喜가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은 모두 명성이 대단하지만, 한갓 안목만 어지럽게 할 뿐이니 절대 들춰보지 말라”한 것은 이 시기 진경산수화가 처한 입지와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몇몇 화가에 의해 진경산수화가 간혹 그려졌지만, 대체로 과거의 전통에 안주하여 형식화하거나, 새로운 활로를 찾지 못하고 의미 없는 변주만 지속하며 박제처럼 굳어져 갔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기서金箕書, 조정규趙廷奎 등 조선 말기에 활동한 화가들과 조석진趙錫晋, 안중식安中植, 김은호金殷鎬 등 근대 화가들의 진경산수화도 함께 전시된다. 정선이나 단원 등 진경산수화풍의 절정기에 그려진 작품과 비교하면 내면의 정신성을 상실한 진경산수화의 여맥과 잔해가 어떤 모습으로 조락해가는지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겸재 정선에서 근대화가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진경산수화를 망라한다. 따라서 전시 동선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시기별 변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동일한 장소를 그린 작품들을 위주로 비교 감상하면 그 유사점과 차이점이 더욱 도드라져 보일 것이다. 그것이 조금 어렵다면, 실경과 그것을 소재로 한 그림을 비교하며 보는 것도 나름대로 소소한 재미를 준다. 이를 위해 전시장 한켠에 실경을 찍은 사진과 그림을 한 화면에서 동시에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이를 세심하게 보면 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300년 전 우리 국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진경산수화의 본질적인 지향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이나, 우리 그림의 아름다움을 보아도 좋다. 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보편성을 공유하면서도 고유의 독자성을 한껏 펼쳐보인 진경산수화가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더욱 좋겠다. 이번 전시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거기에 있다.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전시광경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전시광경

CRITIC 응답하라 작가들

오뉴월 2014.11.28~2014.12.21

2층 전시장을 잇는 계단에서 ‘작가피…’ 라는 문구를 발견한 순간 필자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하하. 잠깐만. 이 문구가 웃으라는 말장난이었을까? 어쩌면 작가피(fee)는 진정 작가의 피(血)인지도 모르지 않는가. 이 전시는 오뉴월에서 열린 고동연 기획의 <응답하라, 작가들>이다. 노동자로서의 예술가, 미술계 사람들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생계를 고민하는 이 전시는 우리 시대 순수 시각예술인이 겪는 고군분투기가 그려진 작업과 이들의 생존을 위한 자료들로 채워진 예술계의 비하인드스토리를 제공했다. 그리고 기획자가 인터뷰로 얻어낸 비하인드스토리는 곧 출판될 예정이다. 꼭 필요한 전시였고 방대한 양의 자료가 제공되었지만 작가의 주제 범위가 방대해서 제도 비평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이 전시 자체의 통일성을 꿰뚫어보기 힘들었으리라는 판단이다.
덕분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필자가 ‘작가피’라는 문구를 보고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작가피가 작가의 연수입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으리라는 추측에서 비롯한 듯하다. 작품 가격이란 으레 백만, 천만 원대에 이르는데 10만 원대의 작가피가 뭔가 대수라고 ‘피’ 운운한단 말인가? 작가피를 이렇게까지 굳이 받아내려는 의지가 작가에게는, 특히나 팔리지 않고 전시에 초대만 될 법한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에게 작가피란 생계 수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인 듯하다. 더구나 공공미술, 프로젝트성 작품과 같이 과정만이 강조되는 예술 실천이 비대해진 오늘날의 예술 현장을 고려해보면 연간 기관이 지출하는 작가피 또한 상당하겠지 싶다. 단, 그들이 작가피를 지급한다면 말이다.

예술계가 작동하는 방식
기획의 주체가 자신이 초대한 이가 할애하게 될 시간에 대해 보상하는 것은 당연할진대 ‘선한, 공공’ 기관이 작가피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걸까? 왜? 이는 기존 예술계의 관습에서 야기된 문제라고 본다. 작가는 언젠가는 정통에서 인정받는 거장이 되어 미술관과 화랑이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모셔가게 될 날을 고대하며 장인적 기술과 숭고한 정신을 연마한다. 따라서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할 공식기관인 미술관과 화랑의 권세를 감내하는 것이 기존의 미술계 풍조였기 때문에 작가와 인증기관의 관계는 동종 업계의 동료 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화랑과 미술관 또한 작가가 거장이 된 후에는 작품 가격이라는 금전적 보상이 뒤따르기 때문에 동료인 작가가 굳이 작가피를 받겠다고 고집한다면 찌질하게 볼 수 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 김아영 또한 예술계 안의 사회적 관계를 주목했고 이를 댄스 스텝으로 도식화한 <바빌론 댄스>를 선보였다. 바빌론 댄스에서는 공모, 대안공간, 화랑을 선택하거나 미술을 포기하는 4개의 장단 중 하나에 맞추어 춤을 추도록 그려져 있다. 그러나 동료 관계가 항상 평등하지는 않다. 박준범의 <비디오 아트의 유통기한>은 예술계에서 벌어지는 기관의 횡포를 고발한다. 작가는 어느 날 스위스 바젤에 위치한 팅겔리 미술관(The Tinguely Museum)이 자신의 비디오를 파스칼 반회케 화랑(Galerie Pascal Vanhoecke)으로부터 받아 무단으로 전시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해당기관들과 서신을 교환했고 그 내용을 우스꽝스럽게 번역, 전시했는데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을 짜깁기해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작가님아
미술관이 너네 화랑이랑 연락이 안 된다고 우기잖아. 그래서 우리가 네 데모 DVD를 미술관에게 줬다? 네가 화난 건 알겠는데 미술관 전시도 하고 좋잖아, 화 풀어. 빠리의 비디오계에서 우리가 얼마나 파워 있고 빠삭한 화랑인지 모르냐? 미술계 바닥에서 나쁜 소문 돌아봤자 둘 다 뭐 좋겠어? 네가 CUBE에서 전시한 것도 다 내 덕인 줄도 다 까먹고 배은망덕하게…

작가피를 지급하지 않는 데 대해 참을 만한 병폐로 여기던 기존 미술계의 관습은 지금도 유지되는 반면 미술계의 구조는 크게 바뀌었다. 개념미술, 포스트-스튜디오라는 용어와 함께 발전한, 작품 판매와는 무관한 활동으로 구성된 예술영역은 상대적으로 커졌으며 이제 예술계는 더 이상 작품 가격으로는 보상을 약속할 수 없는 구조로 전환되었다. 이런 구조는 작가피로 상징되는 예술가의 노동의 소외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예를 들면, 작가들은 작품 생산 외에 토론회, 레지던시 등에서 관객과 함께 하는 교육 등의 활동, 이를 위한 사이트의 리서치 및 글쓰기, 스폰서 확보, 설치 용역 및 장비 제공, 디자인, 운송 및 교통비 확보와 같은 활동을 추가적으로 (그리고 현재는 대부분을 무상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여기에 할애되는 시간만 고려해도 그 비용이 작가에겐 크나큰 타격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은 신진도 아니고 그렇다고 잘 팔리는 블루칩 작가도 아닌, 어디서 이름은 자주 들어본 비교적 안정된 작가들인데 그럼에도 예술과 자본이 만나는 접점에서 약자로 살면서 예술계의 병폐를 메우느라 세컨드 잡으로 고생한다. 예를 들어 김재범의 <출근 기록 드로잉 하기>는 작가로 행세하기 위한 비용을 벌려고 택한 세컨드 잡의 출근부 도장으로 로고를 만들었다. 오늘날 예술의 생산-소비구조에서 작가피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작가들은 아직도 궁핍하다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이 전시에서 제시하는 ‘피’의 문제는 미술계가 해결해야 하는 업계 윤리 혹은 작가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 인간 존엄성 침해의 문제이다.

예술 실천은 노동인가
지난해 11월 말, 서울 시청에서는 ‘노동하는 예술가, 예술 환경의 조건’이라는 제목 아래 심포지엄이 열렸고 12월에는 <응답하라, 작가들전>의 연계 행사로 토론회도 열렸다. 필자는 이 두 행사가 예술가와 노동의 문제를 다룬다면 ‘예술가를 과연 노동자로 불러야 할 것인가’와 같은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논의를 포함하리라 상상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적어도 두 행사에 참여한 관객들은 자신이 노동자로 불리는 것에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그렇지만 예술이 소명이라는 개념이 팽배한 만큼 아직까지 ‘예술가’와 ‘노동’이라는 단어의 조합은 뜨거운 감자이다. 예술이 소명이라는 감성은 <응답하라, 작가들전>에서도 소개됐다. 함혜경은 <거짓말하는 애인>이라는 스니커즈 디자인으로 생계를 꾸려가려다 예술을 해버리고 만, 그래서 마진이 남지 않게 된 어느 작가의 업무일지를 비디오로 만든다. 예술이 아니라 직업을 갖겠다는 것이 애인이 말하는 거짓말의 실체는 아니었을까? 전통적인 미학에서는 자본으로부터 비평적 거리를 두기 위해 예술가를 노동자로 규정하지 않는다. 예술가를 노동자로 규정하면 예술이 자본이나 정치, 사회로부터 비평적 거리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에서 생산은 자율적인 창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론적인 입장과는 달리 예술가를 노동자로 구분하는 논리는 유물론에서 나온다. 마르크스가 “저자는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한 생산적인 노동자이나 그의 작품을 출판하는 출판사의 배를 부르게 하는 한 자본주의의 임금노동자이다”1라고 했다던데 필자는 그의 언급이 마치 ‘예술로 돈을 벌면 순수하지 않다’로 들린다. 오히려 모든 정신활동을 경제적 토대에 묶느라 정신의 순수성을 강조하게 돼버린 관념론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예술가가 자본과 사회로부터 완벽하게 분리된 적이 있기나 할까? 미켈란젤로도 보상을 받았을 텐데 그렇다고 그의 예술성이 교황의 것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전통적 예술계는 상거래를 하면서 자율성을 위반하고 유물론은 정신을 강조하면서 자율성을 옹호한다. 이렇게 고전의 논리에서부터 이미 이율배반을 포함하는 개념이 자율성인데다가 학자들은 예술계가 사회적 관계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지켜야 할 자율성은 이미 없다고 하는데 작가들은 아직도 자발적으로 궁핍을 받아들인다. 지금의 미술계 구조가 소외하는 노동의 양이 엄청난데도 눈감아주고 자신의 작업과 관련된 노동이 아니라 기획 주체가 감당해야 하는 노동까지 감수한다면, 그 결과는 기존 예술계 구조의 유지이다.
두 행사 모두에서 작가피에 해당하는 용어를 ‘사례비’라고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참가비’나 ‘작품 대여료’라고 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가 벌어졌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사례비는 자선을 베푸는 것 같아 싫다’는 의견이 중론이었는데 이는 ‘나의 노동을 인정하지 않으면 배고파요’로 들렸다. 지금까지 국공립 기관의 예산에서 작가피는 아예 제외되어 왔다.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행사의 경우 지원금에서의 작가피 지출이 금지되어 있어 기획자가 작가에게 사례비를 지급하려면 스스로의 재원에서 지출해야 한다. 즉, 작가피는 기획 주체의 정의로운 마음이나 자선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지금의 여건이다. 정부는 고용되지 않은 기간 동안 겪는 전업 작가의 어려운 사정에 공감한다는 차원에서 복지 재단을 만들 당시 작가들에게 자신을 자영업 노동자로 생각하라는 사고의 전환을 요구했다. 원칙적으로 미술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도는 선도적인 것이었으며 감사하다. 그런데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작가에게는 경제논리를 수용하라고 요구하는 반면 노동의 대가를 지급받도록 하는 시스템 형성은 규제하는 셈이므로 정부 정책은 모순된다. 때문에 재단의 이름에 달린 ‘복지’가 함의하는 바와 같이 예술가들에게는 자선만이 허락되는 셈이다. 여기서 승자는 사회적 관계망에 의존해 온 ‘기존’ 예술계의 보상구조이다. 그러나 희망의 메시지도 들린다. 지난 1월 22일 정부는 미술작가의 창작활동에 대해 정당한 비용을 지급하는 ‘작가보수제’를 올해 하반기부터 적용하기로 발표했다. 이제 지원금 지출 정책이 바뀌고 사립 및 상업기관만 작가피를 지급하도록 하면 된다.

예술가가 노동자라 불려도 괜찮다면
‘사례비’와 ‘작가피’ 중 어느 단어를 사용할 것인가의 차이는 기존 미술계의 보상 및 독점구조에 순응할 것인가 아닌가의 입장 차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희생을 줄이면서 예술을 보전하려는 입장에 서는 동시에 업계 윤리의 개선을 요구하는 자세다.
예술가를 노동자로 불러도 괜찮다는 이들 중 아트리크, 웨이지라는 단체는 기존의 예술계 구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들이다. 아트리크(artleak.org)는 작가피를 지급하지 않는 예술기관을 고발하는 게시판 역할을 자처하고 미국의 WAGE라는 그룹(wageforwork.com)과 캐나다의 CARFAC(Canadian Artists’Representation)는 예술가가 받아야 하는 구체적인 사례비 기준자를 만들어 소개했다. 한스 애빙 또한 기존 예술계가 보장했던 보상의 메커니즘에서 벗어나 경제논리를 한껏 활용하자는 의지를 보여주는 경제학자이자 작가이다. 애빙은 미술작품의 원본이 가진 허세의 혹은 상징적인 가치와 별도로 저렴한 가격으로 예술을 보급하거나 혹은 포스터와 같은 복제품의 판로를 활성화하여 기존 예술작품의 원본이 가졌던 아우라를 제거하자고 제안한다. 결국 산업화된 대중음악계와 유사한 대중미술계를 상상해보자는 그의 요지 중 하나였는데 이번 전시에 포함된 박재영의 작업은 마치 이에 대한 화답처럼 보인다. 그는 Butter Cutter라는, 디자이너였다가 순수예술로 전향하거나 순수예술을 하다가 세컨드 잡이었던 디자인의 길로 들어선 이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전시에는 이전에 수행했던 상대적으로 저렴한 예술상품을 만든 셈인 간이매점용 음식, 디자이너 상품처럼 보이는 순수예술 조형물의 기록과 함께 도록디자인 샘플을 보여주는 ‘자영업자’의 홍보부스가 선보여졌다.
현시점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작가들을 생각하면 예술계의 구조조정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다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예술가를 노동자라 부르는 방향으로의 구조조정은 경제논리를 패러다임으로 적용하는 입장이라는 사실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신현진 미술비평

김재범 (왼쪽 벽면) 시네마그래피 및 혼합매체2014

김재범 <출퇴근기로 드로잉하기>(왼쪽 벽면) 시네마그래피 및 혼합매체2014

1 Bryan-Wilson, Julia, Art Workers: Radical Practice in the Vietnam War Era, (Berkeley, Los Angeles, Londo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9). P. 27에서 재인용. 원문은 “A writer is a productive laborer in so far as he produces ideas, but in so far as he enriches the publisher who publishes his works, he is a wage laborer for the capitalist.”
크리스 맨슈어. <예술의 노동점유: 줄리아 브라이언 윌슨과의 인터뷰>, 《00도큐멘트3 : 다들 만들고 계십니까》, 미디어버스, 2014 참고.

CRITIC 홍경택 Green Green Grass

페리지갤러리 2014.12.5~1.31

삶의 허무를 주제로 한 17세기 네델란드의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성스럽고 속된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한다. 홍경택은 그간 성배, 촛대, 연필, 볼펜, 서재, 해골, 화초, 올빼미, 대중문화 스타 등 현대인의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이미지들을 강렬한 색상과 더불어 다양한 패턴과 함께 정물의 형식으로 다뤄왔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변화의 지점은 골프장과 에베레스트 산처럼 풍경을 배경으로 사용했다는 점인데, 이들 풍경은 순수한 자연처럼 보이지만 실은 지극히 짜여있고 계획된 인공적인 공간이다. 가지면 가질수록 커져만 가는 사람의 욕망은 하나로 몰릴 때 큰 문제를 만든다. 특히 한국에서 골프장은 값비싼 비용을 내야 하는 욕망의 공간이고, 심지어 골프장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을 가진 곳은 같은 단지라 하더라도 그렇지 못한 곳과 시세에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에베레스트 산 역시 신성한 자연이 아닌 올라가 봐야 하고 정복해야 할 욕망의 대상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풍경의 형식을 끌어들였지만 예전에 다루던 일회용 플라스틱 같은 오브제의 정물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질감과 찰나적인 화려함 뒤에 숨은 허무함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또한 신작 <반추>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연필> 시리즈처럼 골프채를 꽃다발처럼 표현하는데, 반복적이고 구심점에서 무수히 많은 선들로 확장하는 구도의 작품이다. 그는 골프채의 조합을 마치 우주 속 행성처럼 아름답게 보이도록 했지만 특이하게도 자세히 보면 골프채의 헤드 부분에 작업실에서의 작가 모습이 담겨 있어 보는 이에 따라서는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도록 의도했다. 이는 시간성을 도입하려는 시도이자 몰입을 일부러 방해하는 소격효과처럼 변화된 그의 작업에 대한 스스로의 선언이자 성찰처럼 느껴진다. 신작 <연필그림-여섯 개의 하늘>은 여러 개의 하늘들을 중첩시키고 거기에 하늘을 가로지르며 다이빙하는 것 같은 남자의 이미지를 그려놓은 작품이다. 개인전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화에서 그는 인간이 죽었을 때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동한다는 교황의 언급에 공감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앞으로의 그의 창작 방향을 예상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었는데,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 거주하지만 각각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거나 여러 차원의 동시적 공존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TV중계에서 보는 다이빙 선수들의 모습은 멀리서는 유려한 몸짓으로 포장돼 있지만 클로즈업된 모습들은 짧은 순간 높은 속도로 도약하고 균형을 잡기 위해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다. 이처럼 그림 속의 다이빙하는 남자의 이미지는 독자적인 개체성을 가지고 공존하는 하늘을 뚫고 추락하는 다른 체계의 죽음과 유한성을 상징하며, 긴장감 있게 한 화면에 담은 것이다.
홍경택의 작품은 화려하지만 불편한 구석이 있다. 그것은 경계에 있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평단뿐만 아니라 시장에서도 환영 받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오브제와 풍경 이면에 감춰진 인간의 욕망에 대해 전하는 메시지를 시간성의 도입, 초현실주의적 접근 등으로 창작의 방향과 사유를 확장하는 그의 균형감각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전동휘 예술학

CRITIC 그만의 방: 한국과 중동의 남성성

아트선재센터 2014.12.19~1.25

한국의 현대작가가 남성의 존재에 주목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조선시대 회화에서는 미인화나 풍속화에 더러 여성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려지는 대상은 대체로 남성이다. 단적인 예가 초상화로, 관복이나 학창의(鶴氅衣) 차림의 남성 초상화들은 그들의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드러낸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역전되어, 여성 이미지가 회화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국민화가’로 불리는 박수근의 그림을 보면, 여성들은 좌판을 벌이거나 머리에 무엇인가를 인 채 바삐 움직이고 있으며, 때로는 절구질이나 빨래를 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반면 남성들은 우두커니 앉아있거나 아예 ‘그림틀 밖’에 존재한다. 현대작가가 남성이나 남성성에 주목한 것은 최근의 일인데, 그 시선은 전통사회와 사뭇 다르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그만의 방: 한국과 중동의 남성성(A Room of His Own: Masculinities in Korea and the Middle East)전>은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됐다. 한국작가 외에 터키, 이라크, 오만, 레바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지역 작가들이 참여한 이 전시는 남성의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그간 한국의 현대미술 담론에서 여성이나 여성성, 혹은 여성의 인권에 대한 문제는 자주 거론된 반면, 남성이나 남성성, 혹은 남성의 인권문제는 거의 주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전시가 내건 ‘남성성’은 이색적이다. 게다가 한국과 중동이라는, 피부색과 지역, 종교, 문화가 전혀 다른 두 지역의 미술을 묶어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한국과 중동은 지역과 인종, 문화가 전혀 다르지만, 비서구권이면서 장남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라는 점 등에서 얼마간의 공통점이 있는데, 전시 기획자는 이 두 사회에서 나타나는 남성의 이미지와 남성성의 문제에 주목했다. 그러나 남성중심사회의 전형이라 할 두 지역에 살고 있는 남성들의 모습은 우리의 선입관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가부장적 전통사회에서 권위를 부여받은 동시에 가족을 부양해야 할 책임을 진 남성의 모습은 이동용의 <아버지>(2014)에서 드러난다. ‘아버지’는 작품 제목이지만 실제로는 ‘사진 바깥’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박수근의 작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아버지>에서 강조하는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희생이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고 하던 장남 덕수의 자괴적 읊조림이 공감을 얻는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문화는 다르지만, 태미 고 로빈슨의 <크라잉 미-임>(2014)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또한 <언덕의 왕들>(2003)에서처럼 아무런 소득 없이 무모한 노동이나 놀이를 즐기는 중동 남성들이나, <우리가 깨어났을 때 본 것>(2006)에서 보이는, 무너질 기미가 전혀 없는 벽을 넘어뜨리기 위해 애쓰는 남성들은 강하고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게 아니라 무모하고 앞을 예측하지 못하는 존재로 표현된다. 이는 여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규율, 전통, 타인의 시선에 갇혀 있는 피해자로서의 남성 이미지이다. 또한 외모와 패션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남성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아카이브 작업들은 ‘남성성’에 대한 허구를 폭로함과 동시에 남성들의 자기인식이 변화된 현실을 드러낸다. 이처럼 <그만의 방전>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 못지않게 사회적 규율에 의한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남성과 여성을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틀로 바라보는 시선을 해체할 뿐만 아니라, 남성성 역시 여성성만큼이나 허구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전시 기획자인 이혜원 교수는 ‘남성 문제’를 오랫동안 생각해왔고, 중동지역에 머물면서 리서치를 하는 한편 중동 미술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한 적도 있다. 물론, 한국에 살고 있는 여성 기획자이다보니 중동의 남성을 다룬 작품 해석에 일정 정도 2차 자료에 기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겠지만, 기획의 참신한 시선이 우리의 인식을 확장시키는 기회가 된 것은 분명하다. 이를 계기로 한국 미술계에서도 ‘남성문제’와 ‘남성 이미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김이순 홍익대 교수

CRITIC 노상익 {blog: surgical diary}

스페이스 22 2014.12.22~1.22

노상익은 사진가이기 전에 외과전문의다. 그의 신분을 밝혀야만 하는 이유는 이 대목이 그의 최근 전시 <블로그: 수술일지>에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1인 2역의 모노드라마처럼 의사와 사진가의 시선이 교차하는데 두 시선의 팽팽한 짜임새는 노상익의 특수성을 돋보이게 한다.
작업은 한해 200여 차례의 암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로서 그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 나간 임상 일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기로 써내려간 진단서를 비롯 환자의 심장박동 그래프, 수술 장면 및 몸에서 떼어낸 암세포 등 치료 과정부터 사망시까지의 도큐먼트가 공개된다. 이것들은 환자 대부분의 환자의 치료와 연구를 위해 의사 노상익이 수집한 데이터들이다. 사람의 장기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진도 그가 찍은 것이 아니라 수술 당시 기록 조수나 수술대 위의 카메라가 자동으로 촬영한 것들이다. 비전문가에게는 해독 불가능한 암호코드나 불편할 만큼 적나라한 해부도처럼 보이는 이 자료들은 언뜻 암의 불가해함과 맞서는 실험실에 들어선 기분이 들게도 한다.
이 의학적이고 차가운 기호의 씨줄 위에 다시 두 갈래의 날줄이 얽히는데, 하나는 환자 개개인에 관한 아카이브이고, 다른 하나는 사진기를 든 노상익이 기록한 환자들의 모습이다. 환자와 가족들이 작가에게 제공한 앨범 사진 등에서는 암의 발병 요인을 유추해볼 수 있는 직업, 사는 곳 등의 사회학적 지표는 물론이고 암을 겪은 개인의 삶의 궤적이 담긴다. 특히 그가 근무하는 보훈병원의 특성상 환자의 상당수는 전쟁터에서 외상을 당한 이들이기도 하다. 노상익은 그런 그들의 병실에서의 모습, 퇴원 후 집에서의 일상 등을 스스럼없이 사진으로 기록한다. 대개는 치료 과정에서 더 많은 이야기와 정서적 교감을 나눈 환우들이다. 어느 환우의 집에서 찍은 듯한 물고기와 부엉이, 햇살 아래 잡풀 더미에서 걸어 나오는 중년 사내 등의 사진은 우리로 하여금 암이라는 묵직한 질병 너머 존재의 한순간을 바라보게 만든다. 따뜻하면서도 슬픈, 한껏 서정적인 이 사진들은 각자의 죽음의 경험과 맞물린 푼크툼이 되기도 하고, 의사가 아닌 인간 노상익이 겪은 상실감의 징표처럼 보이기도 한다.
암도, 이미지도, 생도 복잡성을 벗어날 수 없듯, 암을 둘러싼 다양한 층위의 사진들은 노상익의 전시에서 낯설게 충돌하면서도 정교하게 맞물린다. 사망자의 3분의 1이 암으로 세상을 등지는 시대, 암은 정복하고 싶은 질병이자 한편으로 그것은 생에 대한 욕망과 죽음의 공포를 경험케 하는 복잡한 감정의 지표다. 노상익의 전시는 건조하고 의학적인 이미지 사이를 헤집고 이미 세상을 떠난 이의 과거 한 때로 우리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송수정 사진비평

CRITIC 데비한 To See What Eyes Cannot See

트렁크갤러리 1.8~2.3

2012년 성곡미술관의 개인전을 끝으로 8년 동안의 한국생활을 접고 LA의 집으로 돌아간 재미교포 작가 데비 한(Debbie Han)의 행보가 자못 궁금했다. 뉴욕에 전속화랑이 생겼다는 소식은 들었고, 트렁크갤러리의 새해 첫 전시에서 근작 <Color Graces>를 보았다. 작가의 ‘번개머리’는 여전한데, 작품은 많이 변했다. 2013년 LA에서 시작한 <Color Graces>는 흑백사진 연작 <Graces(여신들)>의 후속작으로, 서양의 고전적 여신상들의 두상과 현실을 살아가는 다양한 인종의 여성의 몸의 혼성적 결합이 주축을 이룬다. 여기에 인종 구분의 표지인 피부색으로서 “유색”과 이를 재현하는 장치로써 컬러 사진, 즉 문화와 기술이란 두 개 층위의 “Color”를 도입하면서 외형적으로나 개념적으로 큰 전환점을 맞았다.
데비 한에게 한국 생활은 내부자이자 외부자라는 이중적인 시선으로 문화적 충격과 문화 간의 차이를 성찰하며,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통합하는 혼성문화의 어법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글로벌한 도시 LA에서 다인종과 다문화적 삶을 일상적으로 마주하며 작가의 관심은 문화적 차이, 성별, 피부색을 넘어서는 인간으로서 공통점, 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지한 철학적 문답으로 넘어갔다. 전시 작품 중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에서 이런 사유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서양에 잘 알려진 동양의 “세 마리 원숭이” 도상에서 각각 눈, 귀, 입을 가린 자세를 차용하고 그 금언의 의미를 확대한 이 작품은, 외형이 아닌 내면세계의 가치에 집중할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감정을 사계절에 비유한 <희로애락>의 일부인 <존재의 계절 IV(Season of Being IV)>와 <여기 지금(Here and Now)> 역시 다양한 차이를 뛰어넘어, 인간의 슬픔이나 고통의 공유와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공감의 순간을 포착했다. 지구화 이후 전쟁터가 되어버린 인간 생존의 척박한 삶의 현실 속에서 작가는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서로 다른 인간들이 어떻게 교감하며 소통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며, 그 사유의 장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그러나 이전의 작품들이 종종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오해와 불편을 일으킨 것처럼, 미국에서 제작된 신작들이 한국의 맥락에서 다르게 해석될 소지를 배제할 수 없는데, 이 같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작품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동안 사진, 조각, 오브제, 설치 및 청자와 백자, 옻칠과 자개를 이용한 상감기법까지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섭렵하며 꼼꼼하고 고된 수작업에 집중했던 그녀가 17년 만에 회화를 다시 시작했고 한다. 회화작품을 다시 잡게 된 것은 인간과 삶의 본질에 대한 근자의 사유와 무관하지 않다. 회화 신작들은 6월에 전속 화랑인 뉴욕의 리코 마리스카 화랑(Ricco Maresca Gallery)에서 첫선을 보일 예정이라니 궁금해도 기다려 볼 수밖에.
김현주 추계예대 교수

CRITIC 문승현 Watercolor

조선일보미술관 1.7~13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자기만의 독특한 떨림을 지닌다. 그 떨림이 이어지고 느껴지는 것. 그것이 바로 대상에 대한 앎의 시작일 것이다. 그 떨림은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동시에 정신에 자신만의 떨림을 깊이 새긴다. 따라서 우리는 눈을 감아도 그 떨림으로 대상을 추상해낼 수 있다. 그렇게 우리의 모든 감각은 외부의 떨림에 곤두서 있다. 그것이 바로 눈을 감으면 더 산만해 지고 귀를 막으면 더 시끄러워지는 이유다. 대상과의 첫 만남. 그 떨림을 느끼려 가만히 들여다보기. 응시다. 문승현의 작품은 그렇게 우리에게 응시하기를 요구한다. 흡사 어느 따사로운 여름날 물 위로 튀어나온 바위턱에 앉아 한없이 바라보던 물속에 움찔 이끌리듯 그의 조형적 언어를 이끄는 소재이며 생명의 근원인 물은 우리의 시선과 정신을 움찔거리게 만든다.
생명의 근원으로서 물은 스스로 생명이면서 다른 많은 생명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다른 생명들의 바탕이기도 하다. 따라서 작가 문승현이 수채를 고집하는 이유가 표현 기법이나 재료의 의미를 넘어 어쩌면 생명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관철하려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물속에 비치는 돌은, 다른 의미로 물과 함께 지구의 역사를 간직하고 고증하는 또 하나의 생명이다. 이러한 생명에 대한 작가의 천착은 그 생명과 생명 사이를 잇고 있는 작은 물고기들에게도 시선을 이끈다.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좇다보면 작가의 화면 구성과 그 이면에 비치는 돌들의 도식적인 조형언어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는 생명, 나아가 자연 전체를 바라보는 문승현의 정신세계의 시각적 표현이며 메시지다.
물속에 어른어른 놓인 돌들과 점점 그 형상이 사라지고 움직임만 남은 물고기들의 관계를 천천히 지켜보면서 순간 어린시절 눈 뜨자마자 친구들과 함께 뛰쳐나갔던 개울가가 떠오른다. 발바닥이 아파 뒤뚱거리며 물장구치던 유년의 어느 개울가에 부서지던 햇살과 그 햇살로 부신 눈을 찌푸리며 발을 담갔을 때 전해지던 물속의 차가우면서 매끄러운 느낌. 그렇게 물은 언제나 우리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근원에 대해 지치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었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서서히 떠오르는 유년의 아련한 기억들이 가져다주는 행복만큼이나 생명으로부터 시작되는 작가의 다음 메시지는 무엇일까 자못 기대된다.
임대식 아터테인 대표

CRITIC 임선이 걸어가는 도시-흔들리는 풍경_SUSPECT

갤러리 잔다리 2014.12.23~1.16

크리스마스가 시작되기 이틀 전, 홍익대 인근 갤러리 잔다리에서 작가 임선이의 개인전 <걸어가는 도시-흔들리는 풍경_SUSPECT> 가 열렸다. 홍대 앞의 들썩거리는 분위기와는 달리 푸른색과 흰색 안개가 감도는 전시장은 차분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2007년 전시 <부조리한 여행>에서 선보인 <붉은 눈으로 본 산수>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다. 전작에서 보여준 붉은 인왕산은 차가운 푸른빛을 띤 남산으로 이어져 돌아왔다. 남산은, 일찍이 우리 선조들이 목멱대왕 산신을 모셔 두고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던 곳이다. 그래서 목멱산(木覓山)이라 불렸다. 그러나 평안을 기원했던 그곳은 일제강점기부터 훼손되기 시작하여 공원이 조성되고, 광복 후엔 케이블카가 설치됐다. 1975년에 남산타워(현 N타워)가 세워졌으며 심지어 호텔까지 들어섰다. 작가는 이렇게 우리들의 손에 의해 서서히 깨어져가는 자연과, 그와 상반되게 인공적으로 재탄생하는 도시의 모습을 남산을 통해 보여준다. 관람객이 남산의 자연스러운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갑자기 허리가 뚝 잘린 낭떠러지가 등장한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그 자리에서 고개를 들어 먼 산을 올려다보면 차갑게 냉각된 남산타워가 우뚝 서 있다. 하얀 서리에 덮인, 딱딱한 스테인리스의 거대한 남산타워는 높은 산 위에 서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 도시의 뜨거운 불빛들을 냉소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지하 1층 전시장을 가득 메운 사진 연작 <극점>에는 기호화된 푸른 지형도로 이루어진 남산이 짙은 운무에 둘러싸여 있다. 저 운무 속에 과연 무엇이 감추어져 있을까? 운무가 걷히면 우리는 그 실체를 알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우리 스스로 그 장막을 드리웠는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빠르고 높게 올리며, 새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현대사회에서 작가 임선이의 작업은 역행한다. 천천히 한 장 한 장의 지형도를 자르고 쌓아올리는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통해 작가는 그 안에서 멈추지 않고 꾸준히 내면을 다져나간다. 그래서 임선이의 전시는 자주 접하기 어렵다. 산의 형태에 집중하다보니 산 자체에 집중하게 되고 그제야 비로소 그 주변에 있는 집도 길도 보였다고 작가는 말한다. 다음에 작가가 몰입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어디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임선이 작가가 안내할 다음 길을 기다려 본다.
정창미 미술사

CRITIC 디지털 트라이앵글 : 한․중․일 미디어 아트의 오늘

대안공간 루프 2014.12.30~1.31

최근 한국, 중국, 일본은 새로운 긴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3국 정부의 우경화와 더불어 각국 간 정치적 관계도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하지만 고대 이래로 줄곧 경제적, 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3국은 현재 문화계를 비롯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서로 닮은 듯 다르게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독도 영유권 문제 등 갈등 요인으로 반일, 반한 감정을 고조시키는 여론이 일기도 하고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군사협정을 맺으려 하는 등 문화계와는 사뭇 다른 관계를 보여준다. 영토 분쟁과 관련하여 중국과 일본은 센카쿠/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놓고 긴장관계가 고조되다 지난해 11월 합의를 통해 관계를 개선했다. 영토 분쟁과 각국의 경제정책, 북한과의 관계, 핵문제, 자연재해 등 갖가지 갈등 요인들이 동아시아에 존재하며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한중일의 미디어아트 지형도를 볼 수 있는 전시 <Digital Triangle>은 의미 있다 하겠다.
각국의 참여 작가들은 고도화된 신자유주의하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상, 혹은 도시 풍경에 주목한 작업을 선보인다. 미디어 자체에 대한 실험을 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작업들이 두드러진다. 작가 이경호는 시골마을 버스정류장과 시골길을 걷는 작가의 모습, 잘못 지은 듯 삐딱하게 서있는 건물의 철거 전 모습을 보여주는 작업과 10원짜리 동전을 크게 확대한 영상과 더불어 실제 동전을 매달고 ‘Meaningless(의미 없음)’ 이라는 제목을 붙인 작업을 선보였다. 거의 쓸모가 없어진 10원짜리 동전은 예술작품이 되어 그 의미를 다시금 묻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GPS를 이용해 지도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한 양치안(Yang Qian)은 이미 많은 이가 시도한 방식으로 작업했지만 그가 <Mountain/Cultural Sqaure>에서 보여주는 공원의 풍경과 공원에 나와 노는 아이들을 돌보는 나이든 보모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혼자 하릴없이 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의 모습은 산업화된 중국의 일상을 드러낸다. 한중일과 더불어 동아시아의 독특한 구성원인 북한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왕궈펑(Wang Guofeng)의 작업은 잘 정돈된 교실과 긴장한 듯 보이는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통해 동아시아의 관계에서 북한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고전에 대한 언급을 통해 인간 군상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 먀오샤오춘(Miao Xiaochun)의 작업은 커다란 화면 속에서 현대인의 삶이 어떠한지 질문하는 듯하다. 도미나가 요시히데(Tominaga Yoshihide)의 작업 <세계평화>는 세계평화라는 한자어가 쓰인 판화를 만드는 퍼포먼스와 그 결과물을 보여준다. 아스팔트를 깔 때 쓰이는 마카담 롤러(Macadam Roller)로 세계평화를 짓눌러 찍어내는 작업은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우고 거의 모든 만화영화의 주제였던 ‘세계평화’를 만들어낸다. ‘세계평화’라는 한편으로는 당연하고 한편으로는 낭만적인 이 단어는 유효한 것일까? 과연 세계는 현재 평화로운지 아닌지 생각하게 만든다. 고전미술에 대한 언급과 다양한 미디어적 실험을 작업과 더불어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업들은 현재 한중일의 관계와 상황, 그리고 앞으로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야 할지 생각하게 만든다. 나아가 정치・경제・군사적 상황을 넘어 예술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서준호 오뉴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