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재삼 – 달빛, 물에 비치다

이재삼  __  달빛, 물에 비치다

갤러리 아트사이드 6.10~7.2

이재삼 개인전 <달빛, 물에 비치다> 연작은 달빛과 물에 비친 사물과 그 흑백의 경계를 검은 톤의 목탄으로 교교하게 표현한다. 교교하다는 것은 희면서 검고 검으면서도 밝은 사물의 어떤 정서적 순간을 지칭한다. 이 사물의 부드러운 드러남, 인간적인 정념, 자연에 대한 직관은  낭만주의를 상기시킨다.
<달빛> 연작에서 이목을 끄는 작품은 거대한 폭포 아래에 흰빛으로 부서지는 물결을 바라보는 뒷모습의 사람형상이다. 작품에서 연상되는 도상은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들 수 있다. 정상에 오른 한 남자가 자욱한 안개 속에서 광활한 자연을 바라보고 있는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산 정상에 도착한 남자의 뒷모습과 골짜기에 피어오르는 안개바다, 바위와 산봉우리 산맥들을 광활하게 보여준다. 산을 오르는 인생의 힘든 여정을 이겨내고 인생의 정점에 도달한 그는 안개바다 아래에 지상의 세계를 바라본다. 자연을 충실히 재현하기보다는 자연 속에 있는 인간의 존재와 영혼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거대한 자연의 광경을 대하는 방랑자의 시선을 통해 자연 앞에 선 인간의 왜소함, 우리의 지각 능력을 벗어나는 두려움과 공포, 즉 감상자에게 숭고의 느낌을 적절하게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낭만주의 회화에서 주요하게 거론되는 작품이다.
이러한 숭고의 의미를 이재삼의 <달빛>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재삼의 달빛은 인간을 압도하는 크기나 힘에 의한 두려움과 공포, 충격에 대한 감정, 그것을 알지 못해 느끼는 좌절과 그것을 극복했을 때 느끼는 쾌・ 불쾌의 모순된 감정에 기인하는 숭고와는 다르다. 그것은  정상에 오른 남자의 모습이 아니라 폭포 밑 지상에 발을 디디고 부서지는 폭포를 관조하는 한 인간, 압도적이지만 왜소한 영혼을 느끼게 하지 않는 폭포, 그 자체의 부서짐을 통해 보다 유연한 사물과 인간의 시선, 곧 ‘달빛’의 존재적 특성을 시각화한다. 달빛은 거대하고 단단한 돌과 함께 그 사물성을 빛내고 흐르는 물과 함께 가시적인 변동을 시각화한다. 인간존재의 유한은 이러한 한계 안에서는 왜소하지만 그것이 거대한 무한 앞에서 방향을 잃은 혼돈과 절망은 아니다.
자연과 마주한 인간을 그리면서 이재삼이 취한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취한 사물성이 ‘흑백의 무한’이 되는 세계이다. 흑백의 골격과 주름이 어둠 속에 빛나는 돌의 생명력과 존재감, 사물의 숨김과 은페, 존재의 밀도를 드러내는 것이다가 어느 순간에는 무한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므로 이재삼에게 숭고는 흑백의 세계가 교차되는 사물성의 극단에 대한 어떤 것이 될 것이다. 달빛, 그리고 폭포와 물, 물 위에 피어오르는 안개, 밤바다에 고요히 존재를 드러내는 섬의 연속된 풍경, 수석의 정원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달빛과 함께 그려진 존재라면 사물은 희미한 형상을 입고 한편으로는 형상을 오롯이 하고 한편으로는 형상을 지우면서 사물성을 빛내고 있다. 수석의 정원이 표현된 <달빛>은 이것을 극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숲과 정자의 어둠을 배경으로 달빛이 비친 정원의 돌은 표면의 질감과 물체감으로 정원에서 부유하듯 떠오르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하는데 현실적이지도 비현실적이지도 않다.
이재삼의 작품을 말하면서 낭만주의와 프리드리히를 상기한 것은 감성과 직관을 통해 내면에 더욱 귀 기울이고 강력한 주관과 창조를 지향하려 했던 점을 생각하기 위해서다. 프리드리히가 인간의 고독과 자연의 황량한 아름다움 속에서 낭만주의적 숭고를 생각했다면 이재삼은 자연의 세계 자체를 흑백이라는 사물성의 추상 속에 구현함으로써 지극한 형상이기도 하고 형상을 넘어서는 ‘저 너머’ 무한이기도 한 세계를 보여준다.  확실히 달빛은 인간적인 정념과 사물의 부드러움을 촉발시킨다는 점에서 이 감성적 매개의 전제 위에서 흑백의 사물성과 구분되는 주체의 전망, 시공과 흑백의 추상에 대한 보다 전진된 세계상의 제시가 필요하다.

류철하・독립 큐레이터

[Review] 윤지선 – Rag Face

윤지선  __  Rag Face

일우스페이스 5.8-7.2

윤지선은 자신의 초상 사진 위에 천을 덧댄 후 실과 바늘로 꿰매고 이어 붙여 새로운 얼굴들을 창조해낸다. 그렇지만 한 땀 한 땀 곱게 수를 놓아 사진 속 얼굴을 단장하려는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공업용 재봉틀의 굵은 바늘이 사정없이 훑고 지나간 사진 위에 남겨진 것은 누더기처럼 기워진 그로테스크한 여자의 얼굴과 엉킨 실타래를 늘어놓은 듯 산발한 머리뿐이다. 얼굴이 온통 바느질의 흔적들로 뒤덮였지만 두 눈만은 선명하게 드러나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데, 그 눈과 마주치고 나면 아무리 사진이라 해도 얼굴에 바느질을 하는 행위가 얼마나 기괴하고도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윤지선의 이 그로테스크한 여인들은 그리스 신화 속의 메두사를 닮았다. 메두사는 아테나 여신의 저주로 아름다운 여인에서 흉측한 얼굴과 꿈틀거리는 뱀 형상의 머리를 한 괴물로 변하게 된 비운의 주인공이다. 서양미술사 속의 메두사는 주로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린 후의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봉두난발에 바느질 자국으로 뒤덮인 흉물스러운 얼굴만 덩그러니 남겨진 윤지선의 얼굴들은 그래서 메두사의 잘린 목과 그 고통스러운 비극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신화 속 메두사의 비극은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엘렌 식수 덕에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반전을 맞게 된다.《 메두사의 웃음/출구》라는 텍스트를 통해 식수는 메두사, 마녀 등 저주받은 역사 속 여성상들을 불러와 그녀들에게 덧씌워진 주홍글씨를 벗겨주고 그들만의 신명나는 이야기판을 벌이도록 한다. 메두사의 비극을 웃음이 가득한 희극으로 변모시킨 식수의 텍스트를 통해 메두사는 비극의 주인공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주체적 이야기꾼이자 작가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얼굴 사진 위에 가면처럼 덧씌워진 또 다른 얼굴이 메두사와 오버랩되면서 윤지선의 작품은 신화 속 메두사의 비극과 20세기 메두사의 희극이 씨실과 날실처럼 중첩되어 직조된 텍스트가 된다. 텍스트 같은 가면들을 바꿔써가며 이야기를 펼쳐가는 방식은 겹쳐 쓴 가면들을 한 꺼풀씩 벗어가며 관객들을 울고 웃게 하는 변검술사의 마술과도 유사하며, 윤지선의 얼굴들은 변검 쇼의 장면 장면을 기록한 사진 컷들의 집합처럼 보이기도 한다. 희비극을 넘나들며 연기하는 변검 극장의 메두사와 무수한 내러티브들을 직조하는 이야기꾼으로서의 메두사가 윤지선의 얼굴 위에서 다시 겹쳐지는 것이다.

전유신・독립 큐레이터

[Review] 정재호 – 먼지의 날들

정재호  __  먼지의 날들

갤러리 현대 5.30~6.22

최근 새롭게 행동주의미술이 주목받으며 미술가들이 사회, 정치, 경제분야를 두고 직접적으로 발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행동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전통적 매체를 사용하는 미술은 낡은 것이며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우리는 세계 미술사에 남을 ‘민중미술’ 전통을 지니고 있고 그 의의와 영향력은 여전히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2000년대를 거치며 겪은 ‘단절’ 이래 사회·역사적 이슈를 담은 작업은 일면 진부한 듯 여겨져 그 내용은 뒤로 밀리고 작가의 이름이 작업을 덮어버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정재호의 회화 업은 행동주의미술과 민중미술적 태도와 닿아 있다. 허물어져버린 오래된 아파트와 건물들의 정면을 몸으로 기억하려는 듯 세밀하게 묘사한 일련의 작업은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린 사물의 현재를 기록하는 안간힘을 보여줬다. 커다란 화면을 빼곡하게 채운 건물 창은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고, 그 창을 사용했던 개개인들의 삶을 환기하게 만든다. 결국 오래된 건물을 화면으로 옮기는 작업은 오랜 시간 그곳을 장소로서 사용했던 이들을 기리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정재호는 그리는 행위를 통해 온전히 체화하며 구체적 실존을 화면에 옮기는 시도인 것이다.
이렇듯 건물 파사드를 다룬 인상적 작업을 선보였던 작가가 ‘먼지의 날들’이라는 제목으로 사물과 인물, 상황 등을 그린 작업을 전시했다. 그가 그린 것들은 불이 붙은 채 덩그러니 놓인 타자기, 무채색의 카메라, 종점에 모인 전차들, 공항으로 쓰였던 황량한 들판에 놓인 프로펠러 비행기, 오래된 텔레비전, 그레이하운드 버스, 우주선과 외계 행성에서 헬멧을 쓰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소변을 보는 듯한 남자들, 영화 포스터에 나올 법한 여인의 초상, ‘동양 최대’라는 수식어를 지녔던 인천 선인체육관 등 대부분 1960~1970년대의 흔적을 담은 것들이다. 화재로 연기가 오르는 홀리데이호텔 이미지와 버려진 차들,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단지 내 풀이 무성한 공터에 놓인 미끄럼틀과 시소 등은 모두 빛바랜 과거의 이미지다. 전시 서문을 쓴 정현은 “정재호에게 과거의 호출은 추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지워지거나 잊혀진 기억의 잔해들을 현재로 불러내기 위해 재현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과거 개발 시대 선진적 삶의 상징이었던 대상을 현재로 불러내기 위해 정재호는 그리기라는 신체적, 물리적 활동을 매개로 대상을 기억하고 다시금 제시한다. 다시 말해 과거 대상에 대한 ‘그리기’는 ‘기억하기’라는 행동과 다름 없으며, 스스로 기억한 대상을 회화의 형식을 통해 재제시(re-presentation)하는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관객들은 그가 겨우 붓끝으로 잡아놓은 빛바랜 이미지들의 마법에 기꺼이 빠져든다. 바스러질 듯한 무채색 화면으로 섬광 같은 공감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정재호가 제시하는 유토피아를 담지한 과거의 사물 이미지는 전시장을 나선 후 위력을 발휘한다. 마주치는 도심의 마천루와 거리는 주술에 걸린 듯 지상으로부터 몇 미터 떠 있는 듯하다. 선인체육관이 ‘먼지처럼’ 사라졌듯 우리를 둘러싼 단단한 현재와 사물들도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닐까. 이것이 미래를 주장하는 장밋빛 수사들의 속임수와 ‘현실’을 둘러싼 장막이 폭로되는 순간이라면 이토록 견결한 행동주의가 또 어디 있을 것인가.

서준호・스페이스 오뉴월 대표

[Review] 김시연 – CUP

김시연  __  CUP

갤러리 엠 6.12~7.12

갤러리 엠에서 열린 김시연 개인전 <CUP>에서 작가는 전반적으로 민트 회색을 사용하고 있다. 민트색의 산뜻하고 청량한 색채감은 회색톤에 그 화사한 채도가 눌리게 되는데 이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창백한 우울감을 반영한다. 이러한 우울감은 인간관계 속에서 겪는 상호 단절의 어색함에 기인하며 흔하면서도 (사람에 따라서는) 꽤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이기도 한데, 이를 실제로 경험한 작가가 사용하는 색채는 마치 초기 작업의 흑백 톤 사진으로부터 서서히 색채가 배어나오듯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표현된다. 푸른빛이 도는 혹은 노르스름한 색채들이 2011년부터 선보인 작업 시리즈들을 구분해 주는, 그리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모호하고 어색한 감정을 색채로서 시각화하는 편리한 방법인 듯 보인다. 또한 작가가 감정을 사물화하기 위해 주로 사용해왔던 ‘연약한 오브제’들 중 한 가지가 유리, 도자기 재질로 만들어진 그릇, 컵 등의 깨지기 쉬운 것들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는 대화의 틈새에 놓인 찻잔(cup)이라는 대상을 마주 앉아 있는 상대방과의 시간을 이어나가는 매개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탁자의 모서리 끝에서 간신히 균형을 맞추고 서 있으나 이내 떨어져 깨질 듯 위태롭다. 이러한 감정적 표현은 초기부터 꾸준히 다루어 온 강박적 자기 불안과 타인에 대한 거리 두기 등을 다루기 위한 장치로서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연출을 유지하는 장면으로 대변된다.
초기에는 공간에서의 설치 자체에 더 직접적이면서도 중요하게 비중을 두고 사진작업은 이를 기록하는 의미이자 개념화 과정으로서 사진 전문가에게 촬영토록 함으로써 그 도구를 자신이 직접 다루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설치 작가로서 공간 연출과 개념 시각화의 방법이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거나 작가의 손으로 직접 제작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느끼던 시기의 작가적인 태도가 강하게 드러났다고 할 수 있겠다. 직접 사진을 다루기 위하여 뉴욕에서 따로 촬영 기술을 배워 온 작가는 이제 설치작업의 현장성을 보다 사적이며 조밀한 시선으로 잡아내고 있다. 이는 뷰파인더 속에서 원하는 풍경을 작가만의 탐미적 시선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과 그 속에 담긴 오브제에 자신의 감정을 동시(同視)화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김인선・윌링앤딜링 대표

 

 

[Review] 작가 재조명 – 긴호흡

작가 재조명  __  긴호흡

소마미술관 5.30~7.27

스키타이 황금뿔잔, 클래식 카, 지모신과 옹관묘. 마치 미술관이 박물관으로 변신한 듯하다. 소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3인의 작가전은 한국 현대미술의 궤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김차섭은 197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우연히 본 고대 스키타이인이 만든 황금뿔잔과 한국 골동품상에서 구입한 은잔의 둘레가 7.2cm로 같다는 데 놀랐고, 그것이 야구공의 둘레와 같다는 데 또다시 놀랐다고 한다. 그는 그 은잔을 들 때마다 고대 스키타이인이 달리던 푸른 대지와 현대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장의 함성이 교차된다고 한다. 고대와 현대가 하나가 되고, 동양과 서양이 교차하고, 신화가 과학을 만나는 것이 바로 미술이라는 생각을 김차섭은 버린 적이 없다.
김차섭과 마찬가지로 전수천에게도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의 문제는 언제나 그의 작품세계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전수천에게 양축은 언제나 현실이라는 현재적 시간 프레임 안에서 벌어진다. 김차섭의 경우 두 개의 상충하는 세계가 수학과 과학이라는 이성적 사고를 통해 이어졌고 그것은 다각형 같은 기하학적 기호로 그의 작품 속에 깊숙이 각인된다. 반면 전수천은 현대 자본주의라는 현실적 틀 속에서 과거와 현재, 동과 서의 문제가 충돌하면서 동시에 자본생산의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 방식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전수천은 이번 전시에서 발터 벤야민이 1936년에 쓴 논고에서 주장한 ‘아우라’의 개념을 전면에 내세웠다. 미술품이 대대손손 누려왔던 복제불가능성이 오늘날의 복제 기술력에 의해 해체되기보다는 도리어 신비화되는 현상을 냉철히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2008년 <바코드를 넘어서전>에서 모든 문명적 가치를 상품화해내는 현대 자본주의의 괴력을 검은색 바코드로 압축해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이제는 상품의 물신화를 비판하기보다는 그것이 가지는 인간 본연의 가치를 창조성의 한 축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정서적 아우라’를 말하면서 이것은 ‘무형의 환상을 꿈꾸는 우리에게 미래 지향적으로는 충전작용을 하는 창의적 생산의 원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수천은 이번 전시에 발터 벤야민 시대에 만들어졌을 법한 클래식 자동차 앞에 벤야민이 현대 인류의 예술적 구원의 매체로 주목한 영화 스크린을 걸어 놓고,  아우라를 설명하는 벤야민의 문구를 통과시켰다. 실제로 1929년산 고풍스러운 스포츠카의 늘씬한 보닛을 보면 산업문명의 총아가 가지는 사용가치가 예술의 아우라를 충분히 위협하고도 남을 것 같다.
벤야민은 촉각적 가치가 결국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시각적 감상으로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고, 일상적 사용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촉각적 체험만이 우리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스크린 문화가 자극일변도로 흐르는 것은 시각적 매체가 촉각성을 끌어내려는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방향을 잃은 충격요법은 정서적 피로감만을 가져오는 듯하다.
오늘날의 스크린 문화의 속도와 충격에 피로감과 식상함이 느껴진다면 한애규의 작품은 그것의 좋은 치유가 된다. 한애규는 일상에서 얻어지는 촉각성의 회복 없이는 현대 시각문화의 성과는 물거품일 뿐이라고 말한다. 한애규의 테라코타 작품은 점토질의 따스한 감촉과 함께 긴장감 넘치게 부풀어 오른 둥근 양감으로 우리의 시각을 이완시킨다. 특히 <기둥들>은 크기와 주제에서 관객을 압도한다. 진시황릉의 토용들이 죽은 황제의 보위를 위해 서있다면, 돌장승처럼 무뚝뚝해 보이는 한애규의 인체 기둥은 보이지 않는 뭔가를 머리에 지고 묵묵히 버티고 있다. 최근 들어 인류 선사시대의 몰락한 문명이 한애규의 손을 통해 계속해서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는데, 석기시대의 여인상, 삼한의 옹관묘, 키클라데스 원시조각이 그것이다. 과거의 신비로운 조형세계가 한애규의 밀도 높은 감각을 통해 생생하게 다시 태어나고 있는데, 이들을 놓고 보면 그의 <기둥들> 위에는 역사의식이라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역사적 체험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차섭, 전수천, 한애규 세 작가의 작품세계를 묶어낸 이번 전시는 소마미술관이 개관 이래로 꾸준히 기획해 온 작가 재조명전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는 5년 만에 다시 열린 전시이지만, 선정 작가의 무게감이나 전시의 충실도에서 한동안 중단되었던 아쉬움을 다 갚아버리고 있다. 전시장 규모에 비해 작품이 좀 많은 듯하다는 느낌도 받지만, 작가 재조명이라는 기획의도를 고려한다면 납득이 간다. 작가마다 출품 작품의 시간적 폭이 제각각 다르다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수천의 <아우라의 시간여행>에 출품한 1929년산 자동차가 실제로 달리는 자동차로 전시장 문턱을 넘을 때 큰 굉음을 냈다고 한다. 한애규의 작품을 위해 전시장 바닥면까지 바꾸고, 김차섭의 작품세계를 위해 작업노트와 드로잉 북을 대여하는 등 기획자의 노고도 전시명처럼 ‘긴 호흡’을 보여주었다.

양정무・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Preview] 7월

굿모닝미스터오웰 2014

백남준아트센터 7.17~11.16

1949년 조지오웰은 미래인 1984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발표하며 1984년이 되면 세계는 매스미디어에 지배될 것임을 예언했다. 이후 1984년, 백남준은 조지오웰의 예언에 대해 절반만 맞았다고 말하며 매스미디어의 긍정적 소통을 보여주는 위성 TV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기획했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의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의 30주년 기념전으로 시대가 인지하지 못했던 미래의 매스미디어의 역할을 살펴보고 오늘날 인터넷 시대의 원격통신이 가져다준 변화를 짚어보는 한편 또다시 미래를 전망해보는 토론의 장을 마련하기위해 기획되었다. 세계를 무대로 기념비적인 쇼를 벌였던 전시를 재조명하고 원격통신을 다루는 20여명의 현대미디어작가들의 다채로운 작품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자리로 매스미디어 발달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백남준이 열어놓은 새로운 예술의 의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로 마련된다. 백남준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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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1942~ ), 달팽이 걸음, 1979, 퍼포먼스, 1980년 동덕미술관 공연(1)

이건용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6.24~12.14

한국현대미술사 연구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기획한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달팽이 걸음_이건용>전을 개최한다.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실험적인 작업을 해온 원로 작가 이건용의 대규모 회고전으로 그의 대표작 80여점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에는 1971년 처음 발표된 이후, 파리국제비엔날레 등에서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오랜 세월 이목을 끌어 온 설치작 <신체항>이 대규모로 제작·설치된다. 또한 ‘왜 화면을 마주보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화면 뒤에서, 옆에서, 등지고 그리는 등 회화에 대한 독창적 접근을 보여준 <신체드로잉> 연작이 차례로 소개되어 작품세계 변천과 이념적 흐름을 살필 수 있다. 이외 이건용을 대표하는 퍼포먼스 작품과 관련한 영상, 사진 등의 자료를 다양하게 전시하여 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예정이며 특히 전시기간 중 매 월 1~2회 이건용이 직접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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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노경민(아트선재)

전시의 즐거움

아트선재센터 6.14~7.13

노경민과 문지윤이 기존의 전시 기획에 내재된 불평등한 구조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다. 전시를 통해 작품이 재현되는 방식과 전시 기획이 작품과 관람자의 관계를 결정짓는 방식을 되짚어보며 전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다.노경민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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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황규태

황규태

북서울미술관 7.1~9.14

자유로운 상상력과 실험기법으로 한국 사진계의 발전을 도모해 온 황규태의 개인전. 이번 전시는 2011년에 이루어진 작품기증을 통해 이루어진 전시로 1960년대의 초기작부터 최신작에 이르기까지 40여년에 걸친 작가의 작업세계를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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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문경서울대

가면의 고백

서울대학교미술관 7.10~9.14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자기고백에 대해 생각해본다. ‘고백’을 소재로 작업을 진행하는 20명의 작가의 작품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내적 탐색의 의미가 미디어 시대에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본다.정문경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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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리오자코멜리

The Masterpieces

한미사진미술관 7.5~8.30

한미사진미술관이 10년 동안 수집해온 소장품 50여점을 공개한다. 출판물로만 소개해온 1900년대 빈티지 사진 컬렉션을 총망라했다. 사진이 지닌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고 사진예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마리오자코멜리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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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홍승혜(국제)

홍승혜

국제갤러리 7.10~8.17

유기적 기하학이라는 주제 아래 기하학적인 도형을 컴퓨터로 만든 후 조각 작품으로 제작해온 홍승혜의 개인전. 픽셀의 이미지를 쌓아 올리기도 하고 축소, 확대, 조합의 반복을 통하여 다양한 모양의 이미지들을 번식시키는 작업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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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홍순명

홍순명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6.28~8.28

인간의 삶을 주제로 작업 해온 작가 홍순명이 한증 더 밀착된 인간의 일상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사회적 이슈가 있는 지역에서 수집한 물건들을 모아 현장성이 강한 오브제로 만들어 우리가 잊었던 어두운 풍경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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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장잉난

장잉난

갤러리 스케이프 7.9~8.17

현대인의 일상적 풍경과 자연의 전경을 결합해 인간의 소외와 고독, 그리고 미지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중국의 화가 장잉난의 개인전. 작가는개인의 소외감, 공허한 실존 등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을 심도 있게 파고들며 깊은 사색의 정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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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김주리

공간유희

LIG아트센터 7.10~8.14

현대인은 우리가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는 공간 속에서 어떤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 김수영 김용관 김주리 노상준 이수진 정승운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공간의 유희를 보여준다. 김주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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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신현림__그리스-모넴바시아-2013

신현림

갤러리 담 7.23~8.3

시인이자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신현림이 작품집 출판을 기념 개인전을 갖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지난 6년간 50여 개국을 여행하며 인상깊은 자리마다 사과를 놓고 찍은 사진 80여 점을 모아 <사과여행, Apple Travle>이란 타이틀로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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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진나래풀

제로-그라운드

아트스페이스 풀 6.20~7.20

시장경제체제 속에서 가능한 문화 활동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자는 의도에서 기획된 전시. 신익균&윤두현 윤하민 진나래 최명숙이 참여해 효율성과 이윤 추구, 경쟁이 강요되는 사회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나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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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옌헝

옌헝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6.13~7.13

치열한 현대사회에서 생존해야 하는 동시대 사람들의 끊임없는 충돌과 갈등, 내면세계의 모순을 실제 경험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형상화하는 옌헝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는 전시장 벽에 작가가 직접 작업한 작품들을 포함해 신작들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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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양유연, 진심, 장지에 채색, 41x53cm, 2014-앞표지로 부탁

양유연

oci미술관 7.17~8.13

<그들이 우네>라는 타이틀로 내면의 상처와 상실감, 깊은 무의식을 통찰하는 회화를 선보인다. 주로 인물과 풍경, 신체 일부의 상처를 채색으로 섬세하게 표현하며 젊은 작가로서 마주한 현실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소외, 무기력함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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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박미현(소소)

Love Minus Zero

갤러리 소소 7.17~8.17

김형관 박기원 박미현 이인현 작가가 전시 제목 ‘Love minus zero’를 모티브로 하여 4인의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풀어낸 설치와 평면 작업을 선보이며 감정을 이루는 것은 그 상태의 총체이지 하나하나의 조합이 아님을 역설한다.박미연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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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천대광

천대광

스페이스 K 6.16~7.15

건축 기반의 설치작업을 꾸준히 선보여온 설치작가 천대광의 개인전    <아이소핑크 Nr.1>. 아이소핑크라는 건축 자재를 표제로 내세운 이번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연분홍빛 단열재로 가공의 자연을 연출해 신체의 경험을 통한 인식의 전환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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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캔던 조현화랑2

캔던

조현화랑 7.4~18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호주의 풍경을 풍부한 색감으로 표현하는 캔던의 개인전. 작가는 대상을 단순화시키며 투박한 선과 원색의 조화를 통해 생동감을 나타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최근작을 중심으로 한 대표작 30여점이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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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양아치

양아치

학고재갤러리 6.20~7.27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가 되풀이되는 사회의 모습을 통해 존재의 불확실성에 의문을 던진다. 영화 <뼈와 살이 타는 밤>에서 제목을 차용한 이번 전시는 44점의 입체와 사진, 영상작품을 통해 빛과 어둠, 현실과 허구의 상반된 주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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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박돈

박돈

대전시립미술관 6.24~7.31

미술가, 교육자로서 미술발전에 큰 역할을 한 이동훈 선생을 기리고자 제정된 이동훈 미술상 수상자전. 작업을 시각적인 것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정신적인 문제로 접근해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해온 박돈의 70년 화업을 한자리에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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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14 공예플랫폼-공예가 맛있다

문화역 서울 284 6.25~7.13

공예의 실용성을 조명하고 지역 공예 상품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자리. 우수한 공예품을 소개하고 공예문화산업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올해 첫발을 내딛는 행사로 공예의 현대적 쓰임새 선보이는 전시, 판매, 체험이 함께 이루어진다. 우상욱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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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뭉크

에드바르드 뭉크-영혼의 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7.3~10.12

표현주의미술의 선구자 에드바르드 뭉크의 그림이 한국 최초로 소개된다. 이번 전시에는 뭉크의 대표작인  <절규>를 비롯해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 등 인간 내면을 진솔하게 표현한 유화, 드로잉, 판화, 사진 등 99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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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양대원(희)

양대원

갤러리 희 7.5~31

양대원은 불편한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치는 방법. 그걸로 인하여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중요한 감정들을 다시금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을 작품을 통해 전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대표작인 의심 연작과 오래된 눈물 연작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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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김미래(휴)

김미래

아트스페이스 휴 7.11~8.1

청년세대가 겪는 불안함을 바탕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김미래의 개인전. 작가는 무한경쟁의 현실에서 분노와 열정, 패배주의의 혼돈을 겪고 있는 88만원 세대들의 불안함, 분노와 에너지 기괴하고 유쾌한 상상력을 더한 입체작품과 드로잉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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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임창민

임창민

갤러리분도 6.23~7.19

정적인 분위기의 사진 속에 동영상 화면이 위치한 이중 구조를 통해 회화와 사진, 영화 장르를 결합시키는 임창민의 개인전. 이번 전시는 대구 시내 공공 프로젝트와 동시에 진행되며 수증기 막을 이용한 최신 작업도 함께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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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은우(팩토리)

이은우

갤러리 팩토리 7.2~25

사물의 관념적인 의미보다 현실사회에서 어떻게 사용, 유통되는지에 초점을 두고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 이은우의 개인전. 이번 전시는 ‘표준과 규격’,  ‘사물의 관습적 용법’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탐구를 인테리어 소품이나 가구의 형태로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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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박소영1-130x130cmx2_장지에_수묵,안료_2014

박소영

가회동60 7.7~16

대나무, 매화, 포도 등의 자연물을 통해서 우주와 자연을 이야기하는 박소영의 개인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우주와 자연을 대상화시켜 바라보지 않고 그 안에서 유유히 거닐고 사색하고 만끽하는, 자연과의 공존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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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구이진

구이진

갤러리 이마주 6.24~7.12

사회적인 이야기가 주류가 된 현대미술의 경향속에서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에 집중한다. 개인을 이루는 이야기를 신화적 소재로 재해석하고 개인과 타인을 연결하는 자연이라는 소재에 주목해 사소한 모든 일들이 사소하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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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이지수作-2014.5(2)

이지수

KDS센터 문화갤러리 7.21~8.7

푸른색이 지니는 의미를 형상화하는 작가 이지수의 개인전. 작가는 <Blue & Blue> 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푸른색을 색형상적으로 해석해 존재와 연속, 생명과 반영을 표현한다. 또한 시간의 공존과 존재의 정체성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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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권종한 作-뿌리깊게 인식된 장소의기억 그리고 site의재현

당대의 어법

이공갤러리  7.1~14

사회의식이나 그밖의 많은 관심사에서 비롯되는 작업의 의미 구축보다는 그 소재들을 어떻게 자신만의 표현어법으로 표현하는지 살핀다. 오세열 권종환 김동유 안치인 오윤석 이재규 이지현 하태범 함명수 작가가 참여한다. 권종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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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이경혁(이음아트)

리징거

이음아트한옥갤러리 7.9~31

인류의 역사를 함께해온 말그림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를 담아내는 중국작가 리징거의 개인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생명력과 의지를 나타낸 대표작 ‘만마도’, ‘팔준도’를 비롯한 다수의 말 그림과 산수화를 포함한 30여 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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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윤_Slave__35x_27x_120cm__Mixed_Media_on_F.R.P

최부윤

갤러리 제이원 7.1~12

유명작품의 패러디를 통해 ‘미(美)’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조각가 최부윤은 솔직하고 명확한 조각을 통해 관람자로 하여금 아름다움의 진정성을 모색하게 한다. 과거와 현대를 관통하며 공존하는 ‘아름다움’의 의미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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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한주은(갤러리두)

한주은

갤러리 두 6.17~7.12

1300도의 고온에서 구워지는 포슬린에 블루페인팅 기법을 적용해 그 속에서 일상의 편안함, 추억의 소중함, 자신 만의 고유성을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일상적인 오브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추억을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재탄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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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하태임

색채와 사고의 조화

갤러리 이배 6.25~8.3

김현식 하태임 Saya Woolfalk 작가가 참여해 색채회화의 독창성을 살펴보는 전시. 세 작가가 고유한 색채로서 표현한 작업을 통해 감성과 조화롭게 결합된 사고의 형태를 눈으로 읽어볼 수 있게 하는 미적 체험을 제공한다. 하태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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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UNG CSC

그룹 이노베이션

갤러리 조이 7.10~8.8

전시의 전형적인 형식이나 운영 방법의 개선을 위해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조형언어를 선보이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단체전. 다각도의 연구를 통하여 세상과 소통 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는 현대미술의 다양함을 엿볼 수 있다. 문성원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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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은효진(예담)

이 시대의 누드작가 16인전

갤러리 예담 7.2~8

각양각색의 누드사진 40여점이 선보이는 ‘이 시대의 누드 사진가 16인’전. 이번 전시에서는 은효진 정성근 이재길 김가중 김종택 이종걸이 참여해 가장 기본적인 피사체인 인간의 몸을 소재로 선택해 진행한 다양한 작업을 펼쳐낸다.은효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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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윤이

이윤이

인사미술공간 6.20~7.18

작가는 문헌, 사건, 역사, 신화 등의 사실을 기반으로 작가의 사적인 해석을 더해 새로운 영상으로 재창조한다. 부분적인 은폐 또는 과장들을 통해 서로의 결속다지는 영상작업을 통해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속의 은폐와 결합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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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김혜옥

김혜옥

가나아트스페이스 7.16~22

중첩된 아크릴큐브에 투영된 빛의 굴절과 색채의 반사를 통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인간의 삶의 모습을 조명하는 김혜옥의 개인전. 작가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채와 빛의 예술인 루미나리에가 주는 이미지의 환영을 접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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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UNG DIGITAL CAMERA

해운대아트3인초대전

해운대아트센터 7.1~16

예술 전문 인력의 창작 환경, 예술지원 정책 지원 사업 등의 일환으로 해운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신진작가 기획초대전. 이번에는 새로운 예술의 장르를 만들며 올바른 작업의 인식을 고민하는 최히라 한승주 홍초롱 작가가 참여한다. 최히라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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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김승연(파비욘드)

별이 빛나는 밤에

갤러리 파비욘드 7.8~19

밤풍경이 자아내는 멜랑콜리함에 주목한 전시. 야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업하는 3명의 작가는 삭막해진 도시의 이미지를 서정적이며 아름답게 표현하며 야경을 통한 자신의 내면 세계를 투영한 평면회화, 판화등으로 다양하게 선보인다.  김승연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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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강구원 (1)

강구원

숨갤러리 7.10~8.31

<포도밭에서>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강구원의 개인전. 자연을 대지위에 생겨나는 드로잉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는 자연스러운 자연의 모습을 간결하고 단순한 드로잉으로 꾸밈없이 담아 강인한 생명력과 힘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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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홍찬석

홍찬석

서산 여미갤러리 7.1~24

민화에서 주로 다루는 소재와 이미지를 현대적 동화의 내용으로 재해석했다. 작품의 내용적 의미를 말하자면, 크게는 평화를 추구하고, 작게는 우리의 일상에서 모든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 조화를 이루는 소통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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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박현곤

박현곤

경남문화예술회관 7.4~9

현판을 통해 특정 장소, 특정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한다. 문자를 통해 직설적으로 제시하는 현판이 아닌 장소와 관련된 이미지나 개인적 회상, 기억 또는 전통적 도상들이 함께 들어있는 현판을 통해 사물의 존재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Hot Art Space

영상 표현 위주의 미디어아트의 의미를 숙고하고 그 표현영역 확대를 표방하는 제 8회 2014이마프(EMAP)가 <Music and Video>란 주제로 5월 27일부터 29일까지 이화여대 교정에서 열렸다. 늦은 저녁(20시부터 22시30분까지) 야외의 편안한 분위기에서 미디어아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로 노랫소리와 가사 이미지, 팝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시적 감수성 등 11가지 섹션으로 나뉜 다양한 영상작업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음악과 비디오아트의 공유지점을 생각해 보는 기획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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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3)

광고사진작가로 유명한 준초이가 지난 9년간 찍은 해녀사진을 모아 <바다가 된 어멍, 해녀>라는 제목으로 5월 10일부터 7월 3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2005년 광고촬영차 찾은 제주에서 본 해녀의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방식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느꼈고 그들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후 꾸준히 해녀의 모습을 촬영해온 그는 이번 전시가 해녀문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힘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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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리 (1)

주변 환경을 통해 유한한 시간과 이성적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 심정리의 개인전이 <The Image of Time>이라는 타이틀로 4월 25일부터 5월 1일까지 최정아 갤러리에서 열렸다. 작가의 영상은 본래의 사물과 환경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개발 속에서 상실되어가는 인간의 본질을 복원시키고 사람들의 이상을 순수한 자연의 세계로 되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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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

장터포토클럽이 주최하는 <2014 장터사진전>(5.14~20)이 세종문회화관 전시실에서 열렸다. 이태주, 한용외, 손기상, 김영재 등 총 14명의 작가가 전국의 장터를 돌면서 촬영한 우리네 장터의 모습을 보여준다. 생동감 있고 활기 넘치는 시장의 풍경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내었다. 장터포토클럽은 사라질지 모르는 재래시장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1999년 창설된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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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5)

한국 극사실주의 회화의 대표 작가 고영훈이 8년 만에 국내 개인전을 연다. 5월 2일부터 6월 4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있음에의 경의>를 주제로 하며 도자기시리즈와 책 위에 꽃, 나비 등을 소재로 한 작품 등 약 35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실재의 재현을 넘어 환영과 실재, 존재하지 않음을 혼합하거나 순차적인 이미지로 보여주어 그 사이의 간극을 허무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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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

조각가 김영원의 지난 40년간 걸어온 예술적 자취를 살펴 볼 수 있는 개인전 <그림자의 그림자>가 5월 9일부터 30일까지 표갤러리에서 열렸다. 작가는 사실주의적 구상 인체조각을 통해 현실과 가상, 실재와 부재의 경계를 나타내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반추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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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17)

2004년 타계한 박이소의 전시 <박모, 박이소_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한 어떤 것(Something for Nothing)>이 4월 19일부터 6월 1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렸다. 고인의 설치작업을 중심으로 ‘박모’로 활동했던 미국시절 작업부터 2002년 에르메스미술상 수상 기념전시 작업,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작업 등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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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1)

서울대 건축과 교수인 최두남의 개인전이 4월 18일부터 5월 9일까지 아산정책개발연구원 갤러리에서 열렸다. 작가는 UC버클리대 미술대학과 하버드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건축세계를 알 수 있는 조감도와 함께 회화작업을 선보여 건축가이자 작가인 그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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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표범 (7)

작가 흑표범과 김태윤(왼쪽)이 운영하는 ‘공간 해방’에서 두 사람의 혼인전 <Wedding Shower>가 열렸다.
5월 16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된 이번 전시는 신랑과 신부를 전시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로 두 작가와 관람객이 서로 안부와 담소를 나누는 소소한 대화의 장이었다. 전시장에는 그들의 조촐한 결혼사진과
함께 부모님의 결혼사진도 함께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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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랙 (2)

<네오랙(Neo-Lack)>이란 타이틀로 5월 16일부터 6월 8일까지 스페이스 매스에서 젊은 작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전시는 국내 대학원에 재학 중인 작가 지망생들의 고민을 다루고 있다. 이어 6월 13일부터 7월 5일까지는 <경고문:제발 사라지지 말아요, 은마>라는 제목으로 대학을 갓 졸업한 3 작가의 전시가 이어진다. 두 전시기간 동안 실기 및 이론전공 학생 22명의 현실적인 고민과 열정을 담은 인터뷰 영상이 함께 전시되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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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1000335

김해문화의전당이 올해 처음 주최하는 <한국현대미술 화제의 작가-신학철전>이 5월 13일 개막해 6월 29일까지 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에서 계속된다. 이번 전시에는 특히 작가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에스키스 작품을 한데 모아 최초로 공개한다. 또한 가로 20m가 넘는 대작 <한국현대사-갑순이와 갑돌이>(2008~2012)가 출품되었다.
김해=황석권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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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미 (2)

<형상화된 일상의 낭만적 저항>이란 제목의 그룹전이 5월 9일부터 6월 27일까지 평창동에 위치한 키미아트에서 열린다. 강원제, 겐마 히사타카, 박미경, 염지현, 이채은, 채한리, 최윤희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기억과 관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를 반복하는 현대인에게 친숙한 주변 환경에 대한 유연한 시각적 체험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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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2)

가방에 대한 전시 프로젝트 <Bagstage展 by 0914>가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 지하1층에 위치한 갤러리 0914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2년간 9개의 테마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그 세 번째 전시가 가방과 과학을 테마로 4월 8일부터 6월 29일까지 계속된다. 백정기의 설치미술과 안민정의 회화작품은 과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시도로 일상 사물에 예술적 변용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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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 (5)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갈등을 다루는 전시 <오, 마이 콤플렉스: 도시를 바라볼 때 밀려오는 불안에 대하여>가 4월 25일부터 6월 29일까지 토탈미술관에서 열린다. 2012년 독일 뷔어템베르기셔 쿤스트페어라인 슈투트가르트에서 처음 개최된 이후 몇몇 도시에서 크고 작은 버전으로 소개되었던 전시를 토탈미술관에서 도시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이 있거나 도시에서 일어나는 사회, 정치, 경제적 갈등에 주목하는 13명(팀) 작가의 작품으로 재구성하여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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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치 (4)

권치규의 개인전 <회복탄력성>이 5월 9일부터 6월 5일까지 갤러리 아트스페이스H에서 열린다. 물리학 용어인 ‘회복탄력성’은 원래대로 회복하고자 하는 힘을 의미하며 심리학에서는 스트레스에 대한 대항력,
삶의 본원적 의지를 의미한다. 이를 바탕으로 잠재된 에너지로서 긍정의 힘을 가진 작가의 욕망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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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스트 (3)

종이로 만든 전투기 모형이 속이 텅빈 모양으로 쿤스트독 갤러리 공간을 가득 메웠다. 5월 1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작가 서해근의 개인전 <The skins_F-35>에 대한 묘사다. 작가는 “전시를 본 관객이 그 실체(실체가 아닌 껍데기일 수도 있는 것)들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우리 주변을 바라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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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5)

김환기부터 현대미술에까지 이어지는 백자의 미와 가치를 조망하는 전시 <백자예찬: 미술, 백자를 품다>가 4월 18일부터 8월 31일까지 부암동에 위치한 서울미술관에서 열린다. 근현대미술부터 오늘날 현대도예가들의 작품까지 선보인다. 전시에 맞춰 강연회, 음악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함께 개최되어 전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돕고 다양한 감흥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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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모

자신의 이야기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작가 양태모의 개인전 <Idleness>가 5월 16일부터 30일까지 충남 공주에 위치한 임립미술관에서 열렸다. 작가는 닥나무 껍질이나 버려진 산업폐기물 등을 혼합하여 자연적이면서도 인공적인 느낌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시간이 흘러 모습이 변하고 버려진 물건의 조각을 모아 만든 작품은 삶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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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렬 (2)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는 작가 최성렬의 개인전이 5월 21일부터 27일까지 토포하우스에서 열렸다. 자연에서 합치되는 음과 양의 조화처럼 작가는 다름과 차이보다는 상생과 화합에 초점을 맞춘 회화를 선보인다. 폭포, 강 등 끊임없이 흐르는 자연의 모습을 표현한 회화와 전시장 입구부터 뻗어있는 가시 모양의 설치는 문명의 이기에 반대하는 생태의 역설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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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_HJ(추가)

서로 다른 요소들을 통합 조율해 가는 모습을 그리는 작가 이정지의 개인전이 경기도 장흥에 위치한 안상철미술관에서 4월 1일부터 30일까지 열렸다. 작가의 회화에는 원이 등장하는데 이는 지고한 정신을 상징하기도 하도 시작과 끝이 모호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주를 상징하기도 한다. 작가는 “오랫동안 화면의 깊이감과 행위의 표현에서 오는 시각적 세계와 그 초월적 세계에 몰두해 왔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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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

5월 21일부터 29일까지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생명의 존엄과 공존을 주제로 한 이인섭의 개인전이 열렸다. 꽃과 물고기 새의 이미지들을 통해 바쁜 일상에서  잊기 쉬운 생명의 소중함과 생명체들간의 어울림의 중요성을 표현했다. 밝은 색과 따뜻한 감성을 전달하는 회화 30여 점이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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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덱스 (3)

사진과 그림의 접목을 시도한 작가 전흥수의 개인전이 5월 14일부터 27일까지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렸다. 그의 작업은 재현을 위한 사진과는 거리를 두고있다. 화려하고 인위적인 색으로 인화된 사진은 마치 판화같다. 회화와 사진을 함께 전공한 작가의 30년간 작업 중 15점을 선별하여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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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은주 (3)

오랜기간 한지 작업을 해온 작가 민은주가 20년 만의 첫 개인전을 5월 21일부터 27일까지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열었다. 그녀의 작품은 백골에 다양한 문양이 조각된 한지를 입히고, 옻칠을 입히고 자개나 금박을 더하는 등 전통적인 재료와 문양, 마감재를 사용하여 아름다움을 더했다.

 

[Exhibition Focus] ARTSPECTRUM 2014

삼성미술관 Leeum이 2014년 첫 전시로 한국 현대미술의 신진작가를 소개하는 <아트스펙트럼 2014>를 연다. <아트스펙트럼전>은 유망 작가들을 발굴하여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짚어낸다는 취지로 2001년 격년제로 시작했다. 2006년 전시 이후 중단됐다가 2012년 재개돼 올해 5회째를 맞았다. 이번 전시는 리움 개관 10주년을 맞아 다각적인 시선을 반영하기 위해 리움의 큐레이터뿐 아니라 외부 평론가와 큐레이터가 작가 선정에 참여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10인의 작가는 개인사부터 사회경제사까지 아우르는 주제와, 전시장 곳곳에서 일어나는 퍼포먼스에서부터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작품까지 한국미술의 확장된 다양성을 담고 있다. 한편 리움은 올해부터 작가들의 창작의지를 고취시키는 취지에서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수여한다. 신선한 변화와 기발한 창의를 주도하는 작가 10인의 신작을 중심으로 한국미술의 잠재력을 살펴본다.

이야기의 힘, 노동의 진지함, 공감의 전달

진휘연  성신여대 교수

현대미술의 화두는 무엇일까? 단순하지만 비교적 분명한 변증법적 발전을 해오던 현대미술은 1990년대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섭렵하면서 확장 또는 융합의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미학적 요구가 조금씩 뒤로 밀리면서 작가들은 개념에 몰입하였지만, 동시에 자본력과 결탁한 대규모 스펙터클이나 자극적 이미지를 통한 반(反)자연적이고도 충격적인 연출 경향도 강해졌다. 변화가 빚어내는 가변적이면서 혼재된 상황에서도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볼거리를 요구하는 관객의 더욱 커져만 가는 요구에 맞서 젊은 작가가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은 어떤 것일까?
올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 <아트스펙트럼 2014>는 형식적인 새로움이나 특별한 주제, 강렬한 개념 등은 눈에 띄지 않았다. 언뜻 이질적으로 보이는 작가 10명의 작품들은 그러나 개인의 수고,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이야기와 장인정신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단순하지 않은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작가 개인이 던지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 속에서 감상적 낭만적 기분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관객과의 교감의 층위를 넓히는 작가들의 솜씨는 예사롭지 않아 보였고 그중 몇몇은 작품 구성이나 이야기의 힘, 모두 컸다.
이완은 직접 동남아시아를 돌면서 한 끼의 식사, 아침을 마련하는 과정을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의 구분을 거부하고, 자신의 필요를 직접 채우는 생산/소비자로 변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메이드 인>은, 캄보디아에서 쌀, 미얀마에서 금, 대만에서 설탕, 태국에서 실크 등을 제작하는 작가를 영상에 담고 그 결과물을 함께 전시했다. 그는 사탕수수밭에서 수수를 채취하고, 몇몇 과정을 거쳐 설탕을 만들고, 그것을 먹는다. 누에고치를 가져다가 삶고, 실을 뽑고, 직조해서 실크천을 만들며, 이후 그것으로 옷을 제조한다. 노천광산에서 돌덩이를 가져다가 정련하고 손톱 반 크기의 금덩이를 얻어낸다.
그의 작품은 아시아 경제와 산업화, 후기자본주의 사회와 개인의 삶에 대한 관찰이란 거창한 개념을 지향하지만, 그보다는 작가의 구체적인 노동의 가시화, 개인적 소용에 닿는 필요한 무엇을 완결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돋보였다. 이완의 작품은 인간 노동의 가장 구체적이고 근원적 이유를 보여주었다. 일상적 소모품 뒤에 가려진 노동과 생산품으로부터 소외되는 생산자들의 모습을 거부하면서, 자본이나 제도적 관습에 의해 미술작품으로부터 소외되는 예술가의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는 작품의 층위는 다양했다.
숙련되지 않은 아마추어의 손놀림으로 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이방인처럼 작업하는 작가는 21세기의 낮은 노마드의 모습을 드러내주었다. 전 지구적이라는 상향적이고 화려한 노마드가 아닌, 부가가치 낮은 산물이나 손이 많이 가는 작업 환경 안에서 떠도는 그의 모습은 노동의 현실과 지역적, 산업적 소외라는 사회적 문제를 부각해주었다. 우리가 소비하는 일상적 생필품에는 수많은 사람이 흘리는 땀과 시간의 흔적이 있지만, 모두 가려진 채 재화를 통해 그저 교환 대상으로 변화한다. 작가는 그 부분을 자신의 노동으로 끈질기게 파고들면서,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로서의 사물을 가시화하고, 자본의 논리로 확대되고 재생산되는 현재 미술의 재화적 존재의 모순을 함께 지적한다. 이 작품의 가장 강한 메시지인 ‘노동’은 예술의 근원적 발상, 실천 과정과도 닿아있기에 더욱 친밀함이 느껴졌다.
송호준은 작품과 작가의 경계가 모호한 지점을 가리킨다. 그는 공학 전공자로서 공개된 정보들을 모아서 인공위성을 만들고 직접 쏘아 올려서 우주 궤도진입에 성공한 특이한 이력의 주인공이다. 그의 작품 <인공위성 퀴즈 쇼: 통신 모듈편>은 이런 업적을 중심으로 인공위성에 관한 퀴즈쇼 형식을 취하고, 인공위성의 부품들, 정확한 답을 보낸 관객들에게 줄 상품, 그리고 질문에 대한 관객의 답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본질은 인공위성도 퀴즈쇼도 아니었다.
송호준은 자살 방지책으로 죽음을 미리 경험하도록 돕는 <방사능 보석>을 제작한 바 있다. 그는 아마존 사이트에서 방사능 물질을 구입하고 완성된 목걸이를 이베이 사이트에서 판매했다. 그의 작품은 먼저 우리가 가상적으로 관계 맺고 있는 거창한 대상들, 즉 인공위성이나, 방사능 물질 등이 실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얼마든지 나와 구체적인 관련을 맺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 같은 맥락에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데 필요할 것으로 여겨졌던 국가, 정보, 자본, 군사력, 기술력, 전문기구 등에 대한 믿음도 허구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 많은 것이 가능하고 그것은 아직 타진되지 않았을 뿐임을 말하는 송호준은 제도적 통제나 능력의 한계로 인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도전적 사고가 부재했음을 강변한다. 이 점은 현대미술이 그토록 오랫동안 논의해오던 사고의 전환, 즉 허구적이고 가상적 믿음인 이데올로기의 파괴라는 논제와 일맥상통한다. 그의 작품은 상호성을 염두에 둔 관객 참여형태를 띠지만, 송호준이 도전한 진짜 참여만큼의 재미를 주지는 못한다. 그가 인공위성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 도전 정신은 현대사회의 지식의 권력화, 자본의 권력화, 통신의 권력화, 국가 및 제도의 권력화, 결과물로서의 정보의 독점화 등 여러 권력구조에 대한 전복이자 이 시대 우리를 둘러싼 관습적 사고에 대한 해체이다.

10人10色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도 더욱 놀라운 것은 몇 년에 걸쳐 직접 인공위성을 만들어낸 그의 수고로, 준비하고 제작하고 끈기 있게 완성해내는 모습이 바로 창조의 전형임을 기억할 때, 예술가를 코스프레(가장함)한다는 송호준은 잊혀진 예술가의 본질적 모습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박보나의 작품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을 말해드립니다 2>는 매우 단순할 뿐 아니라, 약간 진부해보인다. 3명의 인물을 선택, 그들의 전문분야 – 개그, 연기, 노래 – 를 보여주고, 각각의 인터뷰 영상과 교차 편집했다. 이들이 몸담고 있는 분야는 경쟁이 매우 치열하고, 재능이 성공을 담보하지 못하는 곳이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젊은이들의 연기와 공연은 이런 현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이야기가 특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늘날 한국의 대형 방송사들이 앞 다투어 만드는 여러 종류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주 등장하는 진부한 상황들, 어려운 현실에 대한 토로와 인간적 호소가 주를 이루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들의 이야기와 공연 장면은 전시장을 나와서도 계속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3명이 보여주는 소위 ‘진정성’이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를 깊이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이런 면에서 박보나의 시나리오 구성과 편집력은 뛰어나다고 하겠다. 영상 속 3명이 모두 공연전문가란 점에서 높은 전달력과 표현력이 작품의 내용을 대신했고, 그들의 짧은 공연장면은 흡입력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그들의 인터뷰는 관객의 여러 정서에 강하게 어필했기 때문이다. 일상적이고 특별하지 않은 내용의 이 작품은 진부한 현실들, 즉 자본의 힘, 방송사와 거대 권력, 제도 안의 작은 개인들, 스타의 애매한 탄생 과정, 평가의 선정성과 우연의 개입 등의 반영에 끝나지 않고 결국 관객을 움직이는 것이 이야기의 힘이라는 점을 부각하는데 성공했다.
장현준의 <(  ) 수행>은 개념미술의 맥락하에 있다. 그의 설치+퍼포먼스+영상+관객참여형 작품은 지극히 반미학적이며, 어떤 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은 열린 형식의 무대였기에 통합성이나 전달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이 작품 속에서 작가가 그의 부친이 만들고 디자인한 설치물을 통해 부친을 관찰하고 그와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주관적 목적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음을 알게 되면, 이런 산만함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김민애는 <블랙박스 조각> <플랫> <세 작가>란 제목을 붙인 3작품을 전시했는데, 공간 속의 사물과 건축적인 부속품들 간의 깨어진 틈, 오류와 착각, 환영 등을 기술적이고도 재치 있게 교합함으로써, 공간과 시각적 이미지, 그리고 언어 간의 겹침과 아이러니를 구현해냈다. 장소특정성에 기초해서 전시장의 엘리베이터나 벽, 공간의 특이함을 구성에 잘 이용한 작가는 전통적인 미술어법에 충실했다.
천영미의 <구름기둥 불기둥>이나 <완벽한 원> 등은 미술의 기본적인 솜씨 또는 수행력과 종교나 물리학, 그리고 예술적 상징성을 결합시켰다. 애니메이션과 드로잉의 화면이 만들어내는 모정과 비정한 사회의 이야기를 다룬 심래정의 작품에는 표현과 주제의 다이내믹한 에너지가 보였다. 성과 금기의 문제를 결합하고 섬세하면서도 경계가 모호한 방식의 주제와 표현을 보인 이은실의 작품은 매체와 주제 선택의 시너지가 돋보였다. 즉물적 사진이 보여주는 현실 너머의 공간감에 관한 상반된 깊이와 내용을 다룬 정희승, 전통화법을 대표하는 선원근법과 그리기의 전통을 21세기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제니조 등, 10명의 작가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과 흥미로운 시각으로 전달했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관 10주년을 맞았고, <아트스펙트럼전>은 올해로 4회째다. 스펙트럼전이 이제까지 미술계의 신인 등용문 역할을 했고 될성부른 나무를 잘 뽑았으며, 유명한 작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는 점을 성공 잣대로 내세워서는 안 될 것 같다. 오히려 작가들의 이후 입지보다는 오늘날 미술계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다양한 예술적 실천에 대한 수용이 계속되어야 한다. 알려진, 유명한, 인기 있는 작가가 되기보다는 그것과 반대되는 노선을 걷는 젊은 작가들, 그들의 작품이 비록 완성도가 떨어질지라도 굳어진 우리의 시선을 깨워준다면 <아트스펙트럼전>은 계속 의미 있는 위상을 갖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 등장한 작가들은 현실적인 문제부터 미술사의 주제까지 여러 소재를 다룬다. 디스플레이 방식이 달라서 서로 조금씩 충돌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 작품이 미학적 가치관이나 개념 대신, 진솔한 이야기와 집약된 노동력을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현실에서 권력이 되지는 못하지만, 가치 없다고 치부되지 않는 소중한 요소들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것을 발견하는 전시는 그래서 잔잔한 울림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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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애 (2)

에스컬레이터 밑에 있는 작품은 <블랙박스 조각>이고, 오른쪽 벽면의 작품은 <플랫>(위)과 <세 작가>(부분)다

KIM MINAE
김민애

1981년생. 서울대 조소과 동대학원 졸업
런던 로얄 컬리즈 오브 아트 조소과 석사 졸업

김민애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기반으로 나-오브제-공간-그리고 문맥 사이의 관계 양상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중재하는 독특한 조각, 설치를 선보여 온 작가다. 비록 임시적이고 장소제한적이라는 조건을 전제하지만, 작가가 제안하는 이 건축적 상황극에서는 억압되고 가려져 있던 존재들이 무대로 초대되고, 기능과 미학의 기존적인 위계와 선후관계가 무효화되며, 다양한 욕망과 목적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틈새와 역설적 상황이 있는 그대로 노출된다. ― 곽준영

 

이은실 (1)-1

<선을 넘는다. 얼마든지 넘을 수 없다> 장지에 수묵채색 244×720cm 2014

LEE EUNSIL
이은실

1983년생
서울대 동양화과 졸업 동대학원 수료

욕망과 억압의 자극적인 상황을 세필 묘사로 적나라하게 또는 불편하리만치 과장되게 묘사하는 이은실의 작품은 소리 없이 공격적이었고, 충분히 껄끄러웠다. … 성적 욕망과 보수적 가치가 충돌하는 이은실의 작업은 성적인 표현에 있어 운신의 폭이 좁았던 젊은 여성 작가가 사회에 날리는 화끈한 조롱이었다. ― 태현선

 

제니조 (1)

<원을 그리며 뒤로 달리기(말레비치를 따라)> 캔버스에 유채 각 160×180cm 2014

JENNY CHO
제니 조

1985년생
뉴욕대 순수미술과 졸업

내 작업에서는, 실제 촬영한 대상을 사진 부조로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개인되는 ‘시간성’과 ‘반복성’의 개념이 매우 중요하며, 이 과정을 통해 도출되는 페인팅에선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재현해 내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의미로 다가오는 모든 것을 통합적 시지각으로 표현하고자 애썼다. 나는 이를 “인-비트윈(In-Between)”의 개념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 제니 조

 

송호준

<인공위성 퀴즈 쇼: 통신모듈 편> 설치 2014

SONG HOJUN
송호준

1978년생. 고려대 전기전자전파 공학부 졸업
KAIST 공학부 대학원 수료

송호준의 작업들이 흥미로운 점은 그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현란하게 보여주지 않는 데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문화와 기술, 소비문화를 비틀어보게 하는 질문. 이는 분명, 미디어아트가 노리는 지점이 기술, 즉 테크놀로지에 한정되어 있지 않음에 대한 또 다른 반증이자, 송호준의 작업이 지향하고 있는 지점이고, 우리가 미디어아트에 대해서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이유이다.  ― 신보슬

정희승 (2)

‘회전문이 있는 방’이라는 이름이 붙은 공간으로 <테이블-디드로=테이블>과 <회전문이 있는 방> 사진액자 <끝나지 않은 문장 1,2>

CHUNG HEESEUNG
정희승

1974년생. 홍익대 회화과 졸업
런던 컬리지 오브 커뮤니케이션 사진과 석사 졸업

정희승은 3차원의 현실 세계를 2차원의 이미지로 ‘실재와 매우 유사하게’ 재현하는 사진의 특성에 집중하여, 여기에서 파생되는 사진의 매체적 한계와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 그의 사진-설치에서 우리는 내러티브 대신 사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작가의 반응을 발견하고, 그가 사진의 한계에 대해 탐구하며 역설적으로 그 지평을 넓혀가는 것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진아

 퍼포먼스, 혼합설치, 필름 2014

<( )/수행> 퍼포먼스, 혼합설치, 필름 2014

CHANG HYUNJOON
장현준

1982년생. 한예종 조형예술과 졸업
한예종 무용원 창작과 졸업

몸은 우리가 외부세계를 대면하고 수용하며 인식하고 겪는 모든 사건들의 시작이자 통로이다. 그 사건들 속에는 제도, 시스템, 구조뿐만 아니라 그 바깥도 포함되는 것 같다. … 상황과 협업은 즉흥을 차용함으로써 해소되는 것들이라고 말할 수 도 있을 것 같다. 현상과 현상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들은 계획과 예측을 벗어나는 새로운 현상들을 수용 가능하게 해준다. ― 김장언

 건축재료 150×150×1000cm 2014

<구름기둥 불기둥> 건축재료 150×150×1000cm 2014

CHUN YOUNGMI
천영미

1978년생. 한예종 조형예술과 졸업
첼시 컬리지 오브 아트 앤 디자인 파인아트학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 졸업

천영미의 작업에서 등장하는 알 수 없는 개인적 시선이나 3차원적인 오브제 설치에 담기는 이미지적 즐거움은 보는 사람에게 꽤 만족감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에게 오브제가 등장하는 공간은 조각적인 물리적 관계에 대한 것이기 보다는 우화적 이미지를 만드는 오브제들 간의 은밀한 시적 대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작업들은 일견 일상을 지시하는 듯 하면서도 비범하고 특수한 사건이 되는 어떤 특수한 상황으로 다가오게 된다. ― 김현진

 드로잉 애니메이션 1분23초 2013

<슬리핑 타임> 드로잉 애니메이션 1분23초 2013

SIM RAEJUNG
심래정

1983년생
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과 동대학원 졸업

심래정의 작업에서 살인은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죽음이라는 사건이 내 주변에서 목격할 수 있는 여러 사건들 중의 하나이며, 아무 예고 없이 다가오는 일상에서 맞는 어이없는, 순간적인 일일 뿐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을 통해 죽음이 단지 끝이 아니며 삶과 죽음은 끊임없이 수환하는 것임을 말하고 싶어한다. ― 우혜수
 

 전시장 가이드 퍼포먼스 2014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을 말해드립니다 1> 전시장 가이드 퍼포먼스 2014

PARK BONA
박보나

1977년생. 서강대 영문·신문방송학과 졸업. 한예종 조형예술과 졸업
런던 골드스미스 컬리지 오브 아트 석사 졸업

박보나의 작업은 두 개의 리얼리티 사이를 횡단한다. 우선 우리가 겪고 살고 있는 수만 가지의 현실 가운데에서 ‘거래’에 의해 만들어지는 개인과 사회 간의 관계가 갖는 리얼리티와 예술의 장에서 전형화되고 형식화된 시스템으로 드러나는 리얼리티이다. 그의 작업은 매체나 형식에 의한 양식적 속성을 갖기보다는 작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속에 내재하는 제도화된 구조를 작업으로 전유하여 실존적 현실이 드러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접근은 리얼리티를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리얼리티를 전유한다는 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정현

 

이완 (8)

<메이드 인 미얀마(금)> 전시장 전경 2014

 

LEE WAN
이 완

1979년생
동국대 조소과 졸업

이런 생산수단에 대한 관심이 시스템으로, 노동력에 대한 관심은 사람-개인과 집단-으로 향하게 되었다. 나는 구조가 개인과 집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변화시키는지에 주목해왔다. 예를 들어 내가 가진 이념이나 성향들은 대부분 외부에서 온 것이다. 또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태어남과 동시에 한국 근현대사라는 역사적 인과에 투입되었다. 그 결과 어쩔 수 없이 나와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 보고, 나와 타인의 삶이 비슷하거나 다른 이유들을 찾기 위해 시스템을 탐색하는 것이다. ― 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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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아트스펙트럼2014 작가상> 수상작가 이완

소비자이자 노동자인 우리의 조용한 저항

이완인물 (3)수상을 축하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시상제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작가로 활동한 지 10년 만에 첫 수상이라 그 자체가 영광스럽다. 작업의 완결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는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기 때문인지 시상제도에 대한 부담이나 압박감은 전혀 없었다.
금, 밀, 실크 등의 전체 생산에 개인이 직접 참여한 모습을 담았다. 소비자와 노동자의 관계에 주목한 작업인데 그 작업의 전개과정이 마치 노동자의 노동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가와 노동자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예술이 노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노동조건이 성립하려면 생산수단을 가진 자에게 내가 가진 근력과 시간을 제공하여 고용주와 노동자가 원하는 것을 서로 교환해야한다. 예술은 이와 다르다. 나의 모든 작업이 노동의 과정이지만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이는 하나의 ‘발표’가 되지 ‘노동의 결과물’로 교환되는 성질은 아니다.
<아트스펙트럼2014 작가상> 수상과 함께 2016년에 플라토에서 전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많은 작가가 전시에 부담을 느끼는 공간이다. 아직 이르지만 구상한 전시내용이 있는가. 이전의 몇몇 작업과 <메이드 인> 시리즈 그리고 이후의 작업을 연결해서 완결은 아니지만 현재 구상하고 있는 전체 내 작업의 중간과정을 보여줄 것이다. <메이드 인> 시리즈는 내년쯤 완결해 선보일 것이다. 이전 작업의 경우 씨앗에서부터 나오는 상품이 가지는 역사적, 국제적 관계를 엮는 작업으로 <메이드 인> 작업과 연결된다. 플라토라는 공간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려운 것을 극복하는 자체가 나의 즐거움이다.
개인 삶에서 드러나는 신자유주의 사회 시스템에 따른 생산과 소비, 고용과 노동 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매니페스토를 꿈꾸는가. <메이드 인> 시리즈는 개인이 하는 무모한 행동을 보여준 것이다. 비효율의 극단을 실행에 옮긴 셈이다.
작년 8월부터 대만에서 2달, 태국에서 1달 반, 미얀마와 캄보디아에서는 합쳐서 1달 정도 생활했다. 순금 3g을 캐기 위해 떠난 미얀마의 경우, 도심에서 1000km 떨어진 금광에서 작업했다. 작업이 너무 고되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울기도 했다. 서울에서 약 15 만원으로 살 수 있는 양의 금을 위해 최대의 비효율적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이는 일종의 저항의 퍼포먼스였다. 저항인 동시에 현대 생산 시스템의 과정을 보여주는 행위다. 무엇이 올바른지를 이야기하기보다 사람들에게 이 현상과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려 한다. 조용한 저항. 나는 아래에서 위로의 혁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관된 주제임에도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고 있다. 작품의 형식을 결정하는 기준이 있는가. 형식은 내용(context)의 하위구조라고 생각한다. 음악, 영상, 다큐멘터리, 설치 등 구애하지 않고 주제를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를 찾아서 취하고 있다. 형식은 작업에서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앞으로의 작업 계획이 궁금하다. 식민지시대 이후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가 급변해왔다. 최상의 효율성을 추구하며 케인스주의, 하이에크의 이론 그리고 새로운 이론이 필요한 시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개인을 지배하면서 개인은 소비자 혹은 노동자 중 하나가 될 뿐이다.
많은 부분을 놓치고, 무엇인가에 통제되어 살아간다. <메이드 인>이 아시아의 자본식민주의를 다뤘다면 앞으로는 금융을 주제로 작업하려고 한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제국주의 국가를 방문하여 <메이드 인>과 대척점에 있는 내용을 다루면서 두 시리즈의 대립을 보이고 싶다. 한국은 수출주도형 국가. 원자재를 수입해서 그것을 재가공하는 것이 한국의 특수성이다. 환율에 영향을 크게 받는 우리나라의 경제시장을 바라보며 금융에 대해서도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해 8월 <메이드 인> 작업을 위해 중국과 인도네시아를 방문할 예정이고, 7월부터 12월까지 뉴욕 두산 레지던시에 참여한다.

임승현 기자

 비디오 13분 36초 2013

<메이드 인 미얀마(설탕, 설탕스푼, 설탕그릇)> 비디오 13분 36초 2013

[Exhibition Topic] 역사적 상상-서용선의 단종실록

Historical Imagination  The King Danjong Stories  by Suh Yongsun

28년간 단종과 관련한 비극적 역사를 소재로 작업한 서용선의 개인전 <역사적 상상-서용선의 단종실록>이 5월 2일부터 7월 27일까지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에서 열린다. 서용선의 작업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묘사하거나 교훈적인 내용을 담는 것이 아닌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에 대해 사유하게끔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겸재정선기념관 관장을 맡고 있는 이석우 전 경희대 교수가 서용선 작가를 만났다. 이 대담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색다르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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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와 사학자, 단종의 비극을 말하다

이석우(이하 ‘이’)  반갑습니다. <역사적 상상력-서용선의 단종실록> 그 전시 제목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서 작가의 전시가 조선시대 역사를 다시 몰고 온 느낌이에요. 대담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단종의 등극부터 영월에서의 죽음까지 과정을 간략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단종은 1441년에 태어나서 1457년에 17세로 생을 마감했죠. 아버지 문종의 병약함과 어머니 현덕왕후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단종은 태생부터 비극적인 삶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단종은 12세이던 1452년부터 1455년까지 약 3년 동안 재위했어요. 그런데 왕으로 등극한 바로 다음 해 1453년 10월 수양대군이 ‘계유정난     (癸酉靖難)’을 일으킵니다. 이후 단종은 1455년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상왕이 되었습니다. 1456년 6월 사육신의 단종복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1457년 9월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가게 되고 같은 해 9월, 금성대군(수양대군의 이복형제)이 단종을 복위하려 역모를 일으켰지만 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지요. 이를 빌미로 단종은 노산군에서 평민으로 또 강봉되고, 10월에 죽임을 당합니다. 정순왕후도 평민이 되었고 82년 한 많은 세월을 살았지요, 단종은 영월에 5개월 동안만 머물렀는데도 수백 년의 역사를 넘은 오늘에 새로운 역사로 되살아나는 것을 보니 역사의 회복력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100여 년 후, 1511년(중종 11년) 묘역이 정해지고 간간이 사신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중종은 스스로가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지라 단종에 대해 애절한 연민의 마음을 갖지 않았을까 해요. 이어 1681년(숙종 7년) 신원을 시켜 노산군으로 추봉하고 1689년(숙종 15년)에 왕으로 복위해 단종으로 칭하고 묘역을 장릉으로 꾸몄죠. 저는 이번 서 작가의 전시를 보면서 우리의 미래 과제를 오늘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는 역사의 경구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문제가 복잡할수록 역사를 통해, 우리의 전통을 통해 창조적으로 그 해답을 구해야 된다고 봅니다. 이제 전시로 돌아와 질문을 드려보죠. 서 작가에게 역사란 무엇입니까? 지난 30여 년간 이 소재를 끈질기게 천착하며 탐구해 온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그 갈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서용선(이하 ‘서’)  저는 역사의 일부를 소재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역사 전체를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단종과 그 외 6·25전쟁 등 한국의 역사를 소재로 작업하고 있어요. 제 작업의 주 관심분야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입니다. 특히 단종에 대해서는 그것 자체로 역사이기도 하지만 현실과 쉽게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합니다. 처음부터 ‘역사’라는 넓은 영역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데 작업이 쌓이다보니 역사를 주제로 한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일부 동의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미술을 시작하고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를 배우면서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매우 크게 느껴졌습니다. 서구 역사를 보면서 서구 미술의 주제의식과 형식이 왜 다른가 의구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조선시대 미술을 한국미술의 대표적인 형식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서구와 비견할 만한 역사가 있을텐데 왜 그것이 그려지지 않았나 하면서, 그것을 주제로 한 작품에 욕심을 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영월을 다녀오게 된 겁니다. 그 현장, 영월을 보기 전부터 이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이지요. 그런데 더 길게 생각하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더 주를 이뤘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사회와 관계를 이루는 것에 대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던 것 같아요. 내 초기 그림을 보면 그냥 인물이 혼자 서있는, 도시사람을 그리거나 했죠. 내용을 전달하는 데 한계를 느낀 겁니다. 그래서 그러한 이유들이 모여 역사적 내용의 그림을 그려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조선을 세우고 초기 국가로서의 면모를 띄어가는 과정이 이후 일제강점기 식민지 통치 거쳐 광복을 맞이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던 과정과 비교해 볼 때 그 흐름이 매우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런 몇 가지 내용을 갖고 작품을 그려나갔고 시간이 흐르게 된 거죠.
이  어느 역사학자가 “역사의 인간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역사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 사는 것도 인간이지만 또한 역사를 만든다”고 한 말이 떠오릅니다. 또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지요. 역사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말하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말하는 역사란 그것 자체가 기록이 되어야 이뤄집니다. 그 기록의 행위는 쓰거나 그리거나 하는 것들이겠지요. 역사에 그것을 기록하거나 그리는 사람의 바람과 한과 원망이 투영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역사적 진실과 화가적 진실이 다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역사적 기록이 사실을 제대로 담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어요. 특히 단종에 대한 기록이 그렇더군요. 바로 이러한 의심이 제가 작업을 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역사를 소재로 작업하면서 역사와 그림이 별개인가라는 질문에 확실한 결론과 답을 내놓지 못합니다. 그런데 역사를 기록하는 대개의 경우인 문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제 생각을 검증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어요. 그런데 단종과 관련된 역사는 제가 보기엔 매우 의도적인 허구라고 느껴진다는 겁니다. 제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시기가 나이가 꽤 들어서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대한 이해를 갖고 시작했는지, 어떻게 하다보니 이런 전공을 갖게 된 작가로서의 운명에 대해 스스로 명쾌한 해답을 갖지 못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문자와 그림 중 어떤 것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에 확신도 없어요. 저는 어떻게 보면 의혹이 더 깊어지는 상황에 있지 않나 합니다.
이  역사의 객관성에 대한 한계와 예술가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세조의 집권과정이 세조의 입장에서 기록되어 서 작가가 의혹을 갖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세조가 단종을 쫓아내는 계유정난은 일종의 권력투쟁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단순히 세조 개인의 야심인가? 아니면 조선시대를 관통한 왕권과 신권의 대립양상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단종이 12세에 왕위에 오름에 따라 왕권은 김종서 등 재상들에게 거의 위임되어 약화됐음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서 작가의 작업을 보면 당시 사건을 윤리적 측면으로만 조명하여 단종에 대한 애련의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세조도 역사적으로 보면 공(功)이 없다고 볼 수 없지요.
  기본적으로 세조라는 한 인간이 가진 권력지향성, 투쟁성을 보았습니다. 거기에 맞춰 주변에 다른 세력이 합쳐지게 됐지요. 안평대군과 세조를 비교해 봅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역사의 흐름을 보면 비판거리가 생기며 긍정할 것과 부정할 것이 생기지요. 저는 일반적인 인간의 성향으로 봐서 자신의 형제를 처단하지 않고 국가를 끌어갈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이후에 만들어진 역사를 부정적으로만 볼 순 없겠지요. 현실과 역사의 양면성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세조 같은 사람이 탄생했는가? 이전 시대 역사의 배경이 궁금해집니다. 저는 그래도 윤리적 측면에서 좀 더 좋은 왕권이 발휘되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듣고 보니 좋은 말씀이에요. 작품으로 돌아가 보지요. 작품 내용은 설명을 듣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그런데 등장하는 인물이 형태는 매우 모호하지만 흡입력이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  이 얘기는 이 전시를 기획한 이윤희 큐레이터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는 것이 어떨까요?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 큐레이터와 주제에 대해 수없이 논의했으니까요.
이윤희  작가는 역사와 관련하여 오랫동안 작업을 진행한 바, 저는 특히 단종과 관련한 작업을 집중해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 제안에 작가가 흔쾌히 응했죠. 흡입력을 이야기하셨는데 관람객의 입장에서 여러 요인에 의해 그것이 발생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과감한 원색의 사용이랄지, 장엄한 스케일의 지향, 서로 만나지 않았을 것 같은 인물이 한 화면에 등장하는 화폭의 운용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포함하여 작업을 바라보게 만드는 주요한 이유는 방금 말씀하셨듯이 모호한 인물의 표현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인물이 누구인지도 모호하지만 그들의 표정도 매우 모호합니다. 비극적인 상황인데도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관람객이 문정왕후나 김시습의 입장이 되어 감정을 투사하게 됩니다. 그럴 여지를 열어주고 있어요. 그래서 결말이 내려지지 않지요. 서구에서 역사화는 특정한 메시지, 관점이 전달되어 결말을 지정해두고 있지만, 서 작가의 작업은 그렇지 않아요. 따라서 관객은 상상력을 발휘해 작품을 대하게 됩니다.
  형태가 모호한 이유는 그 인물을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웃음) 그러나 그것과 함께 사람을 그리는 데 있어 상당히 고민했습니다. 제 작품뿐만 아니라 ‘그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도 못하는 입장에서 역사적 사건을 완벽히 이해하긴 힘들겠지요. 인류에게 역사는 동적인 성질을 지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림은 그려지는 순간, 정지되죠. 무척 고전적인 생각인데 이러한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의 해답을 구하지 못했지요. 이는 재현의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특히 현대에 와서 회화는 좀 더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고 봅니다. 회화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표현에 희망을 갖는 이유는 예술과 삶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제가 현대미술을 둘러싼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 속에서 동적인 문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한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회화에서 표현이 신중하지 않으면 현실과 차이가 나는 문제를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추상미술에서 그러한 문제가 잘 해결됐다고 봅니다. 우리의 삶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우리의 감정을 그것에 동조하게 만듭니다. 그저 닮음을 목적으로 하거나 인물을 그리는 등 재현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작업이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죠. 저는 작품을 제작하는 이가 갖고 있는 감정의 흐름을 어떻게 다른 매체로 환원시키거나 치환하고, 그리고 감정을 전달할 것이냐에 집중합니다. 제 작업에 흡입력이 있다면, 아마 거기에서 비롯한 것이겠죠.
비극, 자기 정화의 계기가 되다
  앞서의 질문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서 작가의 화폭에서는 짙은 비극성, 비애감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그 감정이입의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서  200여 명의 사람이 희생된 사건의 그림이라서 더 그럴 것입니다. 그것 외에도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을 그렸을 때 굳이 즐거운 표정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는 물어보신 질문의 답을 잘 모르겠어요. 저는 매번 어둡거나 슬픈 내용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 자신은 밝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내가 살아온 삶이 전쟁의 분위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않은 전후(戰後)시대를 지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도 예술의 형식에서 비극적 내용을 담았지만 아름다운 작품들이 있었음을 보아왔기 때문에 우리가 겪은 일에 위로를 주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 아닌가 합니다.
  단종이 겪은 형태의 비극을 모양과 시기만 다르지 현실적으로 아픈 삶을 살고 있는 우리입니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살아남은 것도 이들 한을 잘 승화시키는 능력과 저력에서 비롯합니다. 그래서 서 작가의 작품이 단종의 비극을 그리면서도 많은 이에게 힘을 낼 수 있는 자기정화의 계기가 되는 이유가 전환의 발판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 정치와 예술의 관계는 이 시대를 사는 작가의 쟁점이 되는데 서 작가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서 작가는 역사적 산수화란 말을 쓰고 있어요. 풍경화, 역사적 풍경화, 또는 진경산수와 어떻게 다른 것인지요?
  제가 보기에 정치와 예술이 겹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면서 자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지역에 따라서도 그것이(예술과 정치의 관계가) 반드시 어떤 원리에 따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분리되어야 한다거나 기본적으로 언어 자체가 다르니까 기능이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때는 예술이 정치적 역할을 하기도 하고 정치가 예술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도 봅니다. 제가 풍경화, 진경산수화, 산수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지 10년도 채 안된 것 같습니다. 특히 단종과 관련된 이런 역사적 풍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최근에, 이번에 글을 쓰신 조인수 선생님께서 지난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그런 유적지에 대해 언급하셔서 제가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산수화라든지 풍경화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인물화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기 때문에 특별히 어떤 생각을 가지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풍경화라는 용어도 우리가 옛날에 쓰지 않던 것이죠. 일본사람들이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동양에 유입된, ‘landscape’를 일러 서양의 용어와는 다른 말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서양의 ‘landscape’와 ‘풍경’은 직역을 해도 의미가 좀 다른 거죠. ‘경치’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풍경화’라 하면 약간 낭만적인 느낌도 들어갑니다. 어떻게 보면 당시 일본인들이 서양의 전형적인 ‘landscape’를 자기네 식으로 옮기면서 넓은 의미를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진경산수화는 가치를 주관적으로 보는 것이어서 사실 어느 것이나 다 진경이죠. 진경. 또한 우리의 땅만 진경이라고 할 수는 없죠, 사실 진경이라는 말 자체가 한국과의 관계에서 중화사상과 연관된, 조선시대에 그런 사고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써도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넓게 봐서 산수화나 진경산수화 같은 장르적 개념은 인간이 시대적 상황, 어떤 정치적 상황에 처했을 때 더 다가오지 않던가요? 예를 들자면, 진경산수나 조선시대 산수화를 보면 사대부들이 정치적으로 거리를 둘 때 자연을 더 깊이 있게 보게 되고, 자연에 더 애정도 가는 것처럼 정치와 예술의 관계는 굉장히 유동적으로 흘러가지요. 또한 현대에 와서 서양에서는 정치와 예술은 따로 떨어져야 한다고 보지 않습니까? 이런 순수목적의 예술을 향하는 것이 한국에 반드시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특히 중국 송대의 미술이 서구보다 훨씬 더 발전해 있었을 때, 그 미술이 정치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고 볼 수 없는 것 같아요. 제 생각으로는 한국에서는 정치와 예술에 관한 논의가 더 많아져야 할 것 같고, 그런 점에 대해서 얘기가 된 것은 이제 뭐 1970, 80년대 문학, 미술 쪽에서 현실문제가 좀 노골적으로 다뤄졌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너무 짧아 깊이 있는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게 훈련이 잘 안 되어있어요.
  괴테는 “감정의 반향 없는 객관적인 색채란 없다”고 했습니다. 서 작가의 작품에서 색채가 갖는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저도 처음에는 원색을 즐겨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야 의식적으로 원색을 쓰게 됐지요. 학부 시절 단순히 ‘그림 그린다’는 생각만 했는데 대학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됐어요. 그때 굉장히 당황했는데 결국 서양화를 선택했지요. 제도를 원망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당시 제가 시류에 쏠려 선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의 시기를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가졌어요. 그래서 어떤 동양화, 산수화를 보면 좋은 그림 같긴 한데 서양화를 선택했기 때문에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쪽으로 관심을 가지다보니까 서양화는 색채가 활발하게 사용되고 동양화는 수묵을 사용하는 현격한 차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제가 동양화에 대한 지식이 얕아서 그랬을 겁니다. 동양에도 수묵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색채를 화려하게 사용한 불교미술, 원시미술, 동굴미술도 있지요. 저는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우선 동양화라하면 수묵화만 생각했어요. 고려시대에 불화도 있었는데 말이죠. 이러한 반성의 소리도 일부 비평가들이 언급했어요. 그때 저도 동의했고, 근본적으로 왜 서양 사람들은 현대회화에서 색채를 다양하게 쓰는데 우리는 왜 거기에 소극적이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색채를 사용하게 되었죠. 사실 저 자신도 색 쓰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는데 색채를 잘 쓰는 것보다, 일단 저의 색채에 대한 생각을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면 원근법, 공기원근법에서 색을 섞어서 부드러운 색을 만들어 공간감을 재현하는 방법을 쓸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내가 가진 생각을 파괴하기 위해 원색을 쓰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또 이것을 반성해요. 어떤 때는 무채색을 가지고 정신의 깊은 면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또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기도 해서 한 번씩 시도는 해보는데 왠지 마음에 안들어 다시 원색을 쓰게 됩니다. 그래도 그런 것을 조금씩 더 도입해보고 싶어요.
  당시 안평대군은 정치, 예술, 문화 영역에서 미묘한 위치에 있었던 것 같은데, 안평대군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또 기린교를 안평대군의 집터로 보는 근거는 무엇인지요? 안평대군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제가 단종과 연관된 그림을 그리면서, 조선 초기 중요한 그림 중 하나인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관심이 갔습니다. 그 당시 정치 상황과 맞물린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지요. 그런데 그것과 연관된 안견과 안평대군에 대한 자료가 매우 빈약하더군요. 그런 자료를 찾는 방법을 잘 모르기도 했지만 안평대군에 대한 많은 기록이 세조에 의해서 철저하게 지워졌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안견의 생애도 세조와 안평대군의 관계로 봤을 때 결코 순탄치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2년 전 외교관을 지내신 김경임이라는 분이《  몽유도원도를 찾아서》라는 책을 내신 것을 매체를 통해 접하고 그 책을 읽게 됐지요. 읽어보니 제가 궁금해 하던 부분들을 그분이 찾아서 추적하셨더라고요. 그 책에 기술된 내용이 모두 사실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 단종과 연관되어 가장 흥미롭게 본 내용이기도 합니다.
  단종은 운명을 넘어 신화화되었다고 합니다. 단종의 행적이 신화화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서  방금 제가 한 말과 좀 모순되지만 사람의 삶이 결국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대상으로서의 사람은 희극적인 요소를 가졌다고 보기에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누군가를 바라보고 살아가면서 그것을 통해 자신의 어떤 면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과 살면서 본능적으로 다른 이에게 공감하기도 하고. 그게 인간의 본성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단종이 신화화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 왕이었다가 비참하게 죽음으로 가지요. 그 과정이 독특한 하나의 사건 모델로서 기억되거든요. 영월과 그 일대에 있는 단종의 흔적을 보면 사당과 산신각, 위패를 모신 허술한 슬레이트 구조물 등이 있어요. 또한 산신령으로서 단종이 모셔진 곳도 있지요. 또 답사를 가서 보니 음력 정월 초하루에 마을 사람들이 단종을 모시는 제사를 지내더군요. 그분들에 따르면 예전에 새마을운동을 하던 시절 정부의 철거 지시도 거부하고 그것을 지켰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분들이 자신보다 더 힘들게 살다 간 단종의 삶에 의탁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뿐만 아니라 이러한 내용을 문학작품, 혹은 그림으로 남기거나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존재가치가 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이들에 대한 각각의 평가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세조를 비롯해, 김시습, 김종서, 현실적이기도 했던 신숙주, 애잔한 삶을 살다간 정순왕후 등 말이에요.
신화화 되는 단종
  깁시습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 중 하나이지요. 게다가 뛰어난 문장가이며, 특히 지식을 실천한 결단력이 강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유교, 불교, 선교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시인으로서, 문장가로서, 또한 문인으로서 파악해보고 싶은 인물입니다. 세조도 결단력에는, 약간 망설이는 태도를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혁명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결단력이 있는 인물로 보입니다. 혁명이란 인간이 동물적 감각으로 일으킨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역사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도 제어하지 못하는 권력에 휘둘렸다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단종을 죽였지만 안평에 대한 질투심과 맞물린 감도 없지 않은데다 사안을 좀 회유하려 했던 의도도 보이거든요.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선의 없는 용기가 얼마나 큰 화를 불러오는지를 내다보는 혜안은 갖지 못한 인물이 아닌가 합니다. 또 김종서는 일반에게는 무인적 기질이 다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뛰어난 문인이기도 하죠. 역시 시대 흐름에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신숙주는 제가 말하기 가장 망설여지는데 정말 재능도 많고 그에 비례해 높은 지식을 쌓았지만 좋은 의지를 가지진 못한 것 같아요. 의롭지 못하다는 말이지요. 현실에서 이런 형의 인간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죠. 마지막으로 정순왕후는 기록이 일천해서 뭐라 하긴 그렇지만 성품이 진중해서 굉장히 신중하게 처신했다고 보입니다. 남아 있는 기록이 매우 호의적이예요.
  우리는 왕왕 현실에 매몰되어 역사의식이 없이 살아갑니다. 서 작가의 역사화는 관람객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요?
  여러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겠지요. 저는 한국에 역사화가 무척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대미술에서 역사화는 주류가 아니지만 한국이 가진 역사는 이미지로 표현될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주제로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창조적 생각일 수가 있어요. 조선시대에 권력의 지각변동을 가져온 사건이 왜 이미지로 나오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어요.
  그렇게 보면 6·25전쟁에 대한 그림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 처절한 사건에 대한 기억을 잊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다음을 묻죠. 한국미의 본원, 본질은 어디에 있다고 보며, 그런 미감이 이번 단종실록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다고 보시는지요?
  이런 내용을 정리한 적은 없지만 이런 느낌은 있습니다. 외국에 갔다가 돌아와 제가 사는 양평 산골을 걸으면, 땅, 하늘, 주변 환경, 자연이 내 몸을 당기는 것 같은 느낌, 어떤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자연에 관심을 갖다보면 당연히 자연은 우리 몸속에서 느껴지고 그것이 작업으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특징으로 생각한다면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기자기하고 변화가 많은 것이 우리지형이고 금수강산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고 느끼고 있어요. 더 나아가 자연 환경에 과거로부터 압축되어온 인간, 우리들의 생각이 종교적인, 특히 불교 쪽에서 갖고 있는 인자함이나 자애정신이 예전에는 소극적이라고 생각하여 자연주의적으로 빠지는 것을 경계했는데, 이제 그런 부분을 극복해야한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그림 속에서 그런 생각이 배어나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참 절실한 내면의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서 작가의 그림이 세계화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윤희 큐레이터에게 여쭙고 싶은 내용입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그렇게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요?(웃음) 최근 한 10년 사이에 외국에서 전시를 한 경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올바르게 주어진 기회들은 아니었어요. 저는 외국에서 공부하지 않았고 주로 국내에서 활동하면서 전시를 열었지만, 서구나 다른 나라에서 금방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람들이 와서 보지도 않았어요. 우연한 기회에 전시를 하였지만 특히 이런 역사 소재 그림은 한두 번 보고 느낌이 와닿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외국인이 이해하려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전에 기초적인 소통이 없이 그림만 봤을 땐 추상적인 느낌을 받지만 서술적인 면에서는 전달이 잘 되지 않고 스토리를 얘기하면 아주 단순하게 이해하는 점에서, 아 이건 힘들다 생각했습니다. 방법이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내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중간 매체를 개발하지 못했다는 점도 걸리고요. 외국인에게 스토리를 이야기했을 때, 자기네 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환기해서 이해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공감각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전달방법은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갤러리에서도, 저도 많은 글을 써놓았더니 그 글을 통해서 이해하려는 사람도 많이 있고 또 공감했거든요. 마찬가지로, 외국에서도 그러한 방법을 시도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한두 번의 번역과 또 그것을 보여주려는 사람이 중간에서 어떤 방법을 개발해서 전달하느냐에 따라서 결과에 큰 차이가 나거든요. 그림을 보는 사람 또한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지식 한도에서 보려고 할 때, 그 접합점을 찾아내는 것이 또 하나의 숙제입니다. 그래서 노력하고 있지만 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힘든 점이 있다는 것.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단종 문제에서는 조금 더 어려운 점이 있고, 자칫 제가 속한 지역에 대한 호기심만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
  단종의 복권을 보면서 역사의 정의를 믿어도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비극을 통해 카타르시스에 이르면 되는 것일까요?
  정의라는 형태가 어떻게 드러나느냐에 대한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요. 특히 복권은 당사자가 죽어 없어졌기에 현실적으로 다시 돌이킬 수는 없지만, 인간의 본질 속에 과거, 역사를 돌아보는 지혜가 있다고 봅니다. 단종의 복위는 시간이 지나면서 형태가 갖춰지지만 사실 죽은 직후부터 그러한 운동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사육신조차 그게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런데 1, 2년 후에 세조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고려할 때 정의구현의 힘 같은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거대한 역사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어요. 시공간을 넘나들고 문학과 역사와 미술을 아우르며, 우리의 영감과 의식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작품 제작에 대한 작가 기록에서도 문장력이 힘차고 감성과 현장감이 넘칩니다. 이번 대담에서도 작가로서의 문제의식을 잘 정리해 주시어, 얘기 자체가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한 번 전시 축하드립니다.
정리・황석권 수석기자, 김선영 객원기자

(사진 맨 왼쪽) 캔버스에 아크릴 181.5×227cm 2014 (사진 맨 오른쪽) 캔버스에 아크릴

<송씨 부인>(사진 맨 왼쪽) 캔버스에 아크릴 181.5×227cm 2014 <왕과 신하들>(사진 맨 오른쪽) 캔버스에 아크릴 162×130.5cm 2014

 

 캔버스에 아크릴 300×500cm 2014

<백성들의 생각_정순왕후> 캔버스에 아크릴 300×500cm 2014

 

서용선(왼쪽)은 서울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2009)에 선정됐다. 서울대 미술대학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양평에서 작업하고 있다.

이석우 겸재정선기념관 관장은 경희대 사학과 교수, 대학 사학회장을 역임하고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 《역사의 들길에서 내가 만난 화가들-상, 하》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 논문이 있다.

[Exhibition & Theme] 밖으로 나온 은둔의 문화재 왕국 간송미술관

봄과 가을 정기전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던 간송미술관 소장품이 76년 만에 처음으로 바깥 나들이를 했다. 얼마 전 화제 속에 개관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간송문화전(澗松文華展)>이 바로 그것. 제1부 ‘간송전형필’(3.21~6.15)과 제2부 ‘보화각’(7.2~9.28)으로 나뉘어 열리는 이번 전시는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1962) 선생이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를 지키려 고군분투해 모은 소중한 소장품 중 대표작을 볼 수 있는 기회다. 간송의 평생 업적이 모여 있는 전시장을 거닐어 본다.

밖으로 나온 은둔의 문화재 왕국 간송미술관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 기자

“평일인데도 관람객이 많네요?”
“예, 하루 평균 2000명 정도입니다.”
“관람료는 성인 한 사람 기준 8000원이지요? 유료 관람객 비율은 얼마인가요?”
“중고생은 4000원입니다. 99% 유료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린 초대권을 안 뿌려요.”
<간송문화전>이 개막한 지 약 한 달 만인 4월 17일, 평일인 목요일 오후임에도 최근 서울시가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으리으리하게 개관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한쪽 1485㎡(약 450평)의 제법 넓은 전시실엔 관람객이 적지 않았다. 아마도 간송 (澗松)이라는 이름과 그의 컬렉션이 토대를 이루는 간송미술관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반영하는 현상이 아닌가 싶었다. 취재차 현장을 둘러보고 관련 사진도 촬영하고 싶다는 전갈을 미리 넣고 들르니, 간송씨앤디(C&D) 큐레이터가 나를 맞았다. 그에게 관람객 현황을 알아보고는 운영 현황을 물어보았다. 그의 이야기인즉 DDP가 필요에 따라 간송 측에 제안을 해서 이번 전시가 이뤄졌으므로 별도 임대료나 대관료는 없다고 한다. 또, 간송이 DDP 배움터 내 디자인박물관(2층)을 3년간 사용하기로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신 전시실 운영 전반은 간송 측에서 맡아 한다고 했다. 전시장 코너 곳곳에 배치된 진행요원들도 간송이 고용한다고 했다. 내가 들렀을 때 얼추 헤아려 보니 이런 진행요원만도 스무 명은 족히 돼 보였다. 적지 않은 운영비를 부담하는 셈인데, 입장료 수입과 도록 판매 대금으로 충당하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관전 치고는 ‘간송문화(澗松文華)’라는 다소 밋밋한 타이틀을 내건 이번 전시는 간송미술관이 근자에 보인 행보, 그리고 향후에 보일 행보와 관련해 여러모로 주목받는다. 그것은 무엇보다 ‘은둔의 문화재 왕국’이라 할 만한 신비주의 행보를 벗어버리려는 시금석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호암미술관, 호림박물관과 더불어 국내 3대 사립박물관으로 꼽히는 간송미술관으로서는 1966년 개관 이래 이번 전시가 사상 첫 외부 나들이다. 물론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외부 기관이 간송 소장품을 대여받아 소개한 전시는 자주 이뤄졌다. 하지만 간송만을 단독으로 내건 외부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술관 운영 주체로 지난해 8월에 출범한 간송미술재단은 이번 전시회 개최에 즈음해 언론사에 배포한 관련 보도자료에서 “(DDP 설립 주체인) 서울시가 우수한 콘텐츠를 확보하려는 의지가 강했고, 간송미술문화재단 역시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적 전시장소를 강력히 바랐다”면서 이런 자리가 “소프트웨어 파워와 하드웨어 파워의 절묘한 만남”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재단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시대적 조류에 맞추어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다양한 기획전을 DDP 디자인박물관에서 계속해서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대중과 만나는 기회를 넓히겠다는 뜻이라 하겠다.
이번 전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준비되었는지 나로서는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그 전조(前兆)라고 할 만한 징후는 여러 곳에서 감지됐다. 그런 움직임이 본격화한 신호탄이 지난해 재단 설립이다. 그 이전 미술관은 간송의 차남 전성우와 삼남 전영우 씨가 등록 없이 운영한 임시 조직에 지나지 않았다. 재단 설립을 발판으로 그 해 12월에 충남 부여에 소재하는 문화재청 산하 한국전통문화대학교와 전통문화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대학원 전문연구과정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 협약에 따라 전통문화 관련 국내외 연구기관이나 산업체 등지에서 6개월 이상 전문연수를 해야 졸업논문 청구 자격을 부여받는 이 대학 산하 전문대학원인 문화유산융합대학원 재학생들은 간송미술관에서 그런 자격을 충족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나아가 간송미술관은 지난 1월에 네이버와 협약을 맺고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을 비롯한 소장 중요문화재를 온라인으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종래와 비교할 때 가히 광폭 행보라 할 만하다. 이번 DDP 전시도 그 일환이다.
간송미술관은 그 컬렉션 토대가 된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1962)이 타계한 뒤인 1966년,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부설 미술관으로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 시작을 알렸다. 주축 건물은 간송이 1938년에 지은 보화각(寶華閣)이다. 미술관은 발족 이후 1971년 봄 <겸재전(謙齋展)>을 시작으로 이 보화각에서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각각 2주 가량 전시회를 열었다. 이것이 미술관이 대중과 만나는 유일한 통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정기전은 관람료가 없다는 점에서 국내 사립박물관계에서는 신선한 시도였고, 무엇보다 사유재산임이 분명한 소장 문화재를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사회적 기부’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립박물관이라고 해도《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한 소장 국보만 12점에 달하는 곳이 상설전시실을 운영하지 않고(혹은 못하고) 극히 제한된 시기에 소장품 일부를 공개함으로써 그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송미술관은 신비에 싸인 곳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준 것도 사실이다. 나는 간송미술관의 정기 기획전 방식을 보면서 매양 그 모델이 일본 나라(奈良)국립박물관에서 매년 개최되는 정창원(正倉院) 특별전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다. 주지하듯이 정창원은 일본 고대 천황가의 보물창고로서, 그것을 관리하는 궁내청은 매년 가을 한 차례씩 2주가량 나라박물관에서 기획전을 열어 일반에 공개한다. 이와 같은 방식의 전시 역시 정창원과 천황가에 대한 신비감을 높이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나는 간송미술관이 반드시 일부러 신비주의를 채택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외부에서는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그 컬렉션 창립자인 간송에 대한 대중 사회 전반의 이미지도 간송미술관에 대한 신비감을 더하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간송이라고 하면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되는 우리 문화재를 지켰고, 사재를 털어 반출된 문화재를 사서 들여온 문화재 수호자로서의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다. 이제는 중학교 1학년이 된 내 아들이 보는 위인전에도 간송이 실려 있을 정도이니 문화재 분야에서 이만한 대중성을 확보한 인물은 없다고 할 만하다. 요컨대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표상으로서 간송은 우뚝 선 것이다.
나아가 간송미술관을 발화점으로 삼고 ‘진경산수화’라는 화살을 장착한 ‘간송학파’라는 용어는 특히 사학계와 미술사학계를 중심으로 하는 지식인 사회에서 간송의 이름을 우뚝 서게 하는 데 일조했다. 겸재 정선을 염두에 둔 진경산수화라는 용어는 이미 미술사학계를 평정하고 그 영역을 더욱 넓혀 일반화했거니와, 그에 더불어 우암 송시열을 필두로 하는 노론 중심주의 역사관을 견지하는 간송학파는 기존 남인 중심의 이른바 주류적인 역사관과 쟁투하면서 각종 논쟁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간송과 간송미술관의 명성을 더욱 높이는 촉매제가 되곤 한다.

간송,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문화재 현황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간송 사후인 1960년대에《고 간송 전형필 수집 서화목록(故澗松全鎣弼蒐集書畵目錄)》 상·하권을 발행하고, 곧이어 소장품 중에서도 한적(漢籍) 2000여 질을 정리한《간송문고 한적목록(澗松文庫漢籍目錄)》을 간행했지만, 이것이 전모는 아니다. 그 정확한 컬렉션 규모는 공개된 적이 없다. 사립박물관에 모든 재산목록 현황을 공개하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다. 하지만 기존에 공개된 컬렉션의 양과 질이 이미 막대한 상황에서 간송미술관 수장고에는 공개되지 않은 더 많은 보물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다.
여하튼 여러모로 묘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밖에 없는 간송미술관이 마침내 은둔 혹은 신비의 이미지를 벗고 밖으로 나선 신호탄을 쏘아올린 자리가 이번 DDP 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간송문화전>은 ‘문화로 나라를 지키다’라는 부제가 암시하듯이 간송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었다. 간송미술관 측은 이를 위해 이번 전시를 2부로 나누었다고 밝혔다. 전시장을 두 부분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순차 전시 방식을 택했다. 즉, 오는 6월 15일까지는 ‘간송 전형필’이라는 이름 아래 “주요 수집품을 중심으로 간송이 우리 문화재를 모은 이야기를 스토리로 풀어내는 전시”로 꾸미고, 7월 2일부터 9월 28일까지는 ‘보화각’이라는 타이틀 아래 “간송이 모은 미술품 중 백미라 할 수 있는 주요 소장품들을 장르별로 나누어 전시하는 명품전”으로 꾸민다. 이번 1부 전시에는《훈민정음 해례본》을 필두로 현재 심사정의 <촉잔도권>이 전면을 펼쳐 공개 중이며, 혜원 신윤복의《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에 수록된 풍속화 30점도 처음으로 전면 공개를 한다. 또한 1936년, 간송이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국제변호사로 활동하던 영국인 존 개스비(Sir John Gadsby)에게서 사들인 국보 도자기들인 <청자기린유개향로>와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 <청자오리형연적>,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등도 전시한다.
이처럼 이 전시는 간송미술관의 첫 외부 나들이라는 의미 외에도 간송미술관 명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더불어 전면 전시가 힘들었던 화첩들을 온전하게 펼쳐놓았다는 점은 신선한 대목이다. 반면 아쉬운 대목도 적지 않다. 스토리텔링을 기획했다고 하지만, 그런 점이 전시장에서는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박물관 전시에는 어울리지 않는 조명을 그대로 사용한 점은 향후 전시에서 대폭 손보았으면 한다. 이번 전시 소장품은 대부분이 회화와 도자기류다. 그에 맞게 조명을 해야 각각의 문화재가 제 가치를 발할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현재의 조명은 대낮과도 같다. 가뜩이나 백색 계통의 DDP 내부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반사가 극심해 관람과 감상을 방해한다. 이런 점들에 대한 개선을 기대해 본다.●

심사정  종이에 담채 58×818cm 1768 간송은 훼손이 심했던 이 그림을 당시 돈 5000원에 구입하였고 수리비로 6000원을 지불하였다

심사정 <촉잔도권(蜀棧圖卷)> 종이에 담채 58×818cm 1768 간송은 훼손이 심했던 이 그림을 당시 돈 5000원에 구입하였고 수리비로 6000원을 지불하였다

장승업    (왼쪽부터) 38×159.5cm(각)

장승업 <호치비주(豪馳飛走)> <몽니정관(蒙泥靜觀)> <종미환행(從尾環幸)> <어자조련(御者調練)>(왼쪽부터) 38×159.5cm(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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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간송미술관의 옛이름 보화각(葆華閣)

“간송미술관 소장품, 76년만의 외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가 최근 개관했다. 외관이 마치 우주선을 닮았다고 해 화제를 모은 이 건물을 더욱 이슈의 중심에 서게 한 전시가 열리고 있으니, 바로 <간송문화전>이다.
알려진 바대로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 1962)은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 약탈과 말살에 맞서 이를 지켜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전영기(全泳基)는 중추원 의관(中樞院 議官)을 지내고 가업인 미곡상을 운영한 거상이었다. 휘문고보와 일본 와세다대 법과를 졸업한 전형필은 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 춘곡 고희동, 김용진 등과 교유했다. 당시 우리 문화재는 약탈과 밀거래의 대상이었는데 도굴된 문화재임을 공공연히 밝히며 거래되는 경우까지 있었다. 간송은 이에 맞서 우리 문화재 유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전형필은 1938년 성북동 북단장에 보화각(葆華閣)을 건립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보화각은 ‘빛나는 보배를 모아두는 집’이란 뜻으로 그 설립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당시 사립박물관은 조선의 생활자기를 수집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세운 조선민족미술관이 유일하였다. 보화각은 소장품의 질과 수에 있어서 최고로 평가받았다. 또한 보화각은 삼국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우리나라 고미술이 보존되고 연구된 고미술사학의 중심지였다. 또한 오세창, 고희동, 삼불 김원룡, 혜곡 최순우, 수묵 진홍섭, 초우 황수영, 박길룡, 청전 이상범 등 우리나라 근대기에 문화·예술계의 중요인사들이 모여서 사상과 세계관을 교유하던 곳이기도 했다. 1962년 간송이 타계하자 그 후손과 후학들은 1966년 북단장에 한국민족미술연구소를 설립, 보화각을 간송미술관으로 개명하고 봄, 가을 정기전을 개최하면서 《간송문화(澗松文華)》를 펴내고 있다.
DDP에서 열리는 <간송문화전> 2부의 타이틀은 바로 ‘보화각’이다. 7월 2일부터 9월 28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에는 불상, 도자, 회화, 서예, 전적 등 분야별로 간송미술관의 베스트 컬렉션이 선보인다. 불교미술로 <금동삼존불감>,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     <금동여래입상> 등 7세기 불교미술을 일견할 수 있는 유물이, 또한 조선 초기 문법서 《동국정운》과 거문고 악보인 《금보》 등의 진적이 전시되어 당시의 문화정책과 사상을 살펴보는 자리가 마련될 예정이다. 회화로는 정선의 <풍악내산총람>, 《경교명승첩》 속 <압구정>, 김홍도의 <황묘농접>, 김득신의 <야묘도추>, 그리고 신윤복의 <미인도> 등이 선보일 예정이다. 서예는 안평대군, 한호, 김정희 등의 글씨가 출품된다.

황석권 수석기자

이마동이 1956년 보성학교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그린

이마동이 1956년 보성학교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그린 <간송 전형필 초상>

 왼쪽·피난 중(1951)에도 자녀를 데리고 석굴암을 답사했다. 앞줄 오른쪽부터 전영우, 간송, 뒷줄 오른쪽부터 전성우, 서원출 보성고 교장, 전성우 친구

왼쪽·피난 중(1951)에도 자녀를 데리고 석굴암을 답사했다. 앞줄 오른쪽부터 전영우, 간송, 뒷줄 오른쪽부터 전성우, 서원출 보성고 교장, 전성우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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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간송미술관 관장 전영우

“간송은 한마디로 ‘정말 착한 분’”

_MG_1282소장품이 간송미술관을 떠나 열리는 최초의 전시다.  매년 봄과 가을 정기전을 통해 43년 동안 86회의 전시를 열었다. 처음으로 외부에서 여는 전시라 크게 이슈화된 것 같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라는 초현대식 건축물과 전통 유물이 조우해 어떻게 비칠지 많은 고민을 했다.
간송미술관과 DDP에서 여는 전시를 비교한다면?  그간 간송미술관이 너무 비좁아 관람객이 길게 줄을 서서 전시를 봐야 했다. 관람객에게 죄송하고 뭔가 이런 상황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DDP가 건립되어 전시를 열게 됐다. 전시장이 비좁아 관객들이 입장을 하고서도 어깨너머로 유물을 보지 않게 되어 좋다.(웃음)
간송 전형필 선생을 지근거리에서 봐오셨던 분으로서 “간송께서는 이런 분이셨다”는 한 말씀 부탁드린다.  돌아가실 때까지 옆에서 모시고 살았으니. 두 가지 측면에서 간송을 말하고 싶다. 인간 간송, 아버지로서 간송. 인간 간송은 70여 년을 살면서 가장 겸손하고 검소하고 한마디로 정말 ‘착한’ 분이셨다. 아버지로서는 옛날부터 부모님을 표현하는 말 중 ‘엄부자모(嚴父慈母)’가 있는데 우리 집은 ‘자부엄모(慈父嚴母)’라 할만하다.(웃음) 아버님은 평생 매 한 번 드신 적이 없었으니. 또 ‘내유외강(內柔外剛)’이란 말을 쓰는데 간송 선생은 ‘외유내유(外柔內柔)’였다.(웃음) 겉도 부드러우셨지만 속도 부드러우신 분이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격동의 근대화를 거친 이로서는 갖기 힘든 성품을 지니셨다.
간송의 의외의 모습을 본 적이 없나?  조용하고 올곧은 사람도 과음으로 실수를 하고 간혹 일탈스러운 행동을 하지만 간송은 한 번도 그러시지 않았다. 재밌는 일화가 있다. 간송은 영화를 좋아하셨다. 당시 극장이라는 곳이 지정좌석이 없었는데 줄을 서서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보는 형식이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는데 저녁이 되도록 오시지 않았다.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맨 앞자리에서 영화를 보시다가 다음 회에 몰려든 인파를 미안해서 헤치지 못하고 3회를 보셨단다.(웃음) 그게 간송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일화다. 일전에 어느 인터뷰에도 밝혔지만 간송은 좋은 도자기를 담는 오동나무 상자 같은 분이셨다. 웬만한 자기 보관함이 대부분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것은 무르기에 쉽게 상처가 나지만 충격을 흡수하고 방충작용을 해서다. 이렇듯 귀중한 우리 미술품을 곱게 간직한 간송은 오동나무 상자와 같다고 생각한다.
간송미술관은 특히 학술기능이 특화되어 있다고 본다. 이른바 ‘간송학파’가 그 중심이 되고 있다. 특히 전시 때마다 펴내는 《간송문화》는 미술사 연구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어느 미술관이라고 학술기능의 중요성을 모르겠는가? 그런데 우리 미술관의 자랑인 학술적인 성과는 아이러니하게도 ‘가난해서’라고 생각한다.(웃음) 우리는 모든 일을 우리 힘으로 하다보니 식구 같은 연구위원들의 자생력이 생겨 우리 학예연구실의 학적 토양을 비옥하게 하지 않았나 한다. 적당히 가난해야 좋은 작업이 나오는 것과 같다.(웃음) 미술관의 적당한 궁핍이 오히려 학문적 순결과 학구적인 분위기를 형성해 곁길로 가지 않고 다소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웃음)
그간 전시 중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는가?  한 번도 거르지 않은 정기전을 준비하면서 힘들고 어렵고 시행착오도 겪고 속상한 일도 있었다. 정말 전시가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 했다. 기억에 남은 전시는 1971년 가을 제1회 전시로 열렸던 <겸재전>이다. 《간송문화》를 제작하려 인쇄소에서 밤을 새던 일도 기억난다. 그런데 첫 전시는 일반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애호가나 학문을 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 미술사에 대한 저변이 없었으니깐. 과연 몇이나 올까 했다. 그게 엊그제 같은데 관람객이 입장하려 100~200미터 줄을 서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다. 또한 2012년 <간송 50주기 추념전>을 열었는데 감개가 무량했다. 간송 임종 후 반세기가 흘렀다니! 간송 50주기라는 타이틀에서 가슴이 미어졌다.
간송미술관 관장으로서 간송미술관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간송미술관은 ‘간송을 닮은 미술관’이라는 것. 간송은 남에게 드러내거나 자랑하기 좋아하는 성품이 아니셨다. 욕심을 드러내 남에게 보여주려는 미술관이 아니다. 조용하게 우리 민족미술문화를 사랑하는 여러분께 다소곳이 다가서는 문화공간이다.
그간 간송미술관은 소유주가 드러나지 않는 행보를 보였다. 간송 선생과 유족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라 하겠다.  간송미술관은 간송의 DNA를 물려받아 여유롭고 호화로운 분위기는 바라지도 않고 향유하지도 않는다. 다만 쾌적하게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나고 나니 이것도 하나의 개성처럼 되어버렸다. 그런데 간송이 살아계셨으면 아마 이보다 더하면 더했을 것이다.(웃음)
개인적으로 유독 끌리는 소장품이 있다면 무엇인가?  흔히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짓궂게 하나만 골라라 하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가 돼서가 아니라 간송도 큰 애정을 갖고 평생을 아끼셨고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깃들어 있는, 세계 어느 문자보다 과학적인 한글의 창제 정신을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간송컬렉션의 백미라 할 만하다. 사실 DDP 전시장을 설계할 때 맨 처음 입구에 들어서면 《훈민정음 해례본》을 만나도록 했었지만 사정상 변경했다.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다. 후학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학생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어떤 전공이든 조형예술을 업으로 삼고 평생 그것에 임해 살겠다고 작정을 했다면 끊임없이 작품을 접하라고. 항상 그것을 염두에 두는 생활패턴을 가져라. 그러다보면 무엇인가 보인다. 박물관과 미술관에 자주 가라. 무엇인가 눈에 보면 느끼게 되고 애정이 생기고 일상에서 표현이 되는 법이다.
이번 전시를 간송미술관의 대외 행보 변화의 신호로 봐도 좋겠는가?  미술관 공간이 협소하고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이유로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간송미술관의 정기전은 계속된다. DDP전시는 대중적인, 대중친화적인 전시, 간송컬렉션 중에서 잘 알려지고 인구에 회자되는 유물 위주로 개최하고 간송미술관에서는 학문적인 체계를 이어가는 전시를 개최할까 한다. 지역분관도 생각하고 있다. 많은 제안이 있었고. 진행 중이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

황석권 수석기자

전영우 관장은 간송의 3남으로 상명대 미술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간송미술관 관장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