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자본주의의 시대
노동력 중심의 자본주의 시대는 갔다. 동시대 자본주의의 경제체제는 돈으로 굴러가는 사회가 아니라 ‘돈을 창조하는 사회’다. 투자 열풍은 과열되고 사람들의 불안감을 담보로 보험 상품은 쏟아진다. 물가는 계속 상승하고 화폐의 가치는 끝없이 하락하고 있다.
이완 < Bank of Leewan > 2015~
이완은 판화를 제작해 판매하고 이를 1wan=10,000원 단위의 화폐로 쓴다. 작가는 판매한 금액을 다른 곳에 투자해 이익을 내고, 이익에 따라 판매된 판화는 실제로 주식 증권, 채권과 흡사한 효력을 지니게 된다. 현재 진행 중인 이 작업은 홈페이지(www.bankofleewan.com)에 과정이 계속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실물 경제시스템을 주목한 <made in>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다. 단위가 커지면 작가는 부동산 및 회사를 직접 차리는 방식 등으로 키워 나갈 계획이다.
사라 메요하스는 뉴욕 303갤러리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1.9~2.6)에서 <주식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라 메요하스(Sarah Meyohas)는 전시 기간 직접 주식 거래에 참여하고 주가 변화를 시각적으로 기록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캔버스에 그려진 선은 시간의 가치뿐 아니라 작가 자신의 움직임과 소유권을 나타내는 지표에 해당한다. 작가는 이 작업 이전에 온라인 가상화폐 ‘비트코인(bitcoin)’을 벤치마킹해 자신의 사진작업을 유통에 쓰일 가상의 화폐 개념인 ‘Bitchcoin’을 만들었다.
갈유라 <지상의 양식> 수집된 오브제 가변설치 2015
고물상인(지역 전문가)과 함께 지역민들을 만나 그들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물품의 시간적 가치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과정을 기록하고 그들이 현재 생산하는 물품을 고(古) 화폐로 교환하는 방식의 프로젝트다. 고 화폐는 정해진 가치가 아닌 변동되는 (매년 오르거나 떨어지는) 매개체로 작가는 비물질적인 가치를 경제적인 가치로 환원시키는 현상에 의문을 제기하며, 화폐에 대한 고정적인 인식을 환기시킨다.
장지아 <원더풀 행복 보험> 인터랙티브 설치 200×400×400cm 2002
미래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행복의 보증수표인 보험은 역설적으로 고통과 슬픔을 전제로 하는데, <원더풀 행복 보험>은 불행의 정도에 따라 보상금이 결정되는 이 보험 규칙을 응용해 고정된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전구의 마지막 단계까지 속도를 내어 불을 켜면 보험에 가입시켜주는 작업이다. 당시 이 작품은 흥국생명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80여 명의 관람객이 실제 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1년간 보장되는 이 보험은 1급 장애 발생 및 사망시에 1000만 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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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종교, 자본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자본주의는 세속화된 종교”라고 말했다. 자본주의는 돈만 많으면 우리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강요하며 자본주의적 ‘구원’을 약속한다. 식량이 남아서 썩어나가도 이 종교의 구원을 받지 못한 세계 인구의 6분의 1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굶어 죽어가고 있다.
유비호 <두 개의 탑> 레디메이드 상품, 이동형 수레, 팔레트, 포장지, 노끈 (각) 74×45×227cm 2010
마트에서 구입한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고정된 받침대에 쌓아 올려 탑을 만들고 이동형 짐수레 위에 동일한 높이와 사이즈로 쌓아 올린 상품을 포장지로 싸고 노끈으로 동여맨 또 다른 탑을 제작했다. 작가는 욕망과 소비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물질 사회와 지식, 정보, 윤리와 같은 비물질적이고 유동적인 가치마저 교환 논리로 환원시키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풍자적으로 묘사했다.
김원화 <최대 성당>(모형) 아크릴 시트, 3D print, 에나멜 컬러 45.3×89.5×150cm 2015 <보이지 않는 손>(영상 설치) 프로젝터, 포그 머신 2015
9·11테러로 파괴된 월드트레이드 센터는 자본주의의 적대 세력의 공격으로 파괴됨으로써 오히려 자본주의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김원화는 이를 모티프로 고딕 양식의 자본주의의 성당을 제작했다. 디지털화된 스테인드글라스 <보이지 않는 손>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광선을 신의 손길로 해석하는 것과 대비하여 종교적 자본주의의 손길을 표현했다. 수요와 공급이 스스로 균형을 맞추어 경제 시스템이 유지된다는 애덤 스미스의 고전경제학 개념 ‘보이지 않는 손’ 기저에는 신에 의해 세상의 만물이 조율된다는 기독교적 가치관이 깔려있다.
주재환 <다이아몬드 8601개 vs 돌밥> 캔버스에 냄비, 돌, 사진복사 2010
작품가 918억5000만 원을 기록한 데미안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해> 복사 이미지와 이 작품에 영감을 준 브라질 빈민촌 돌밥이 캔버스 위에 부착되어 있다. 작품 하단 오른쪽에는 장 지글러의 저서 《탐욕의 시대》의 인용구가 노랗게 표시되어 있다. “브라질 북부 판자촌에 사는 주부들은 저녁이면 냄비에 돌을 넣고 물을 끓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어머니들은 배가 고파서 보채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밥이 될 거다”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이 기다리다가 그냥 잠이 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자식들을 보면서도 그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어미가 느끼는 수치심을 감히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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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착취를 바탕으로 한 사회
한때 인간의 노동은 최고의 가치로 평가됐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마치 기계 부품처럼 다뤄진지 오래다. 자본이 노동을 지배하고 억압해 온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역사다. 노동자들은 쉬지 않고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언제 일자리를 잃어버릴지 모르는 불안을 항상 안고 산다. 그리고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박영균 <저기에서 내가 있는 이곳까지> 캔버스에 아크릴 162×692cm 2012~2014
박영균 <뉴스 그리기 1, 2> 캔버스에 아크릴 각 163×112cm 2013
박영균은 <저기에서 내가 있는 이곳까지>에서 예술 노동자로서 작업물을 생산하는 화가의 작업실과 자신의 작업환경까지 포함해 노동환경 전반을 지배하는 부당함에 대한 저항과 연대의 움직임이 전개되는 현장을 연결했다. <뉴스 그리기>는 한겨레 신문 박종식 기자의 기사 <둘 중 한 명은 비정규직, 누구일까요>(2013)에서 착안했다. 이 기사는 홈플러스, 현대차, 서울메트로 등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모습을 5회에 걸쳐 나란히 소개해 주목을 받았다.
차재민 <미궁과 크로마키> HD비디오, 컬러, 사운드 5분 15초 2013
이 영상은 케이블을 설치하는 손과 설치 동작은 같지만 노동가치가 거세된 손을 병치하고 있다. ‘손’이라는 은유는 전문가, 장인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을 신성화하며 동시에 노동 소외를 극대화한다. 그러나 때로 손노동은 숙련된 기술이자 자아를 실현하는 활동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렇게 양쪽으로 찢어진 극단의 추상성은 노동을 인격으로부터 분리하고 노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업은 우리가 ‘노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노동’을 제대로 감각하고 있는지를 질문한다. 또한 차재민은 이 작업과 함께 케이블 설치 노동조합원 인터뷰를 담은 핸드북 《노는 땅 위에서 파업 중》을 제작해 5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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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대에 희망이 있는가?
자유방임을 모토로 내세운 신자유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에 내몰린다. 독식하는 승자와 다수의 패배자로 이분화된 사회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끝을 달린다. 특히 지금의 청년층에서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 세대’에 이어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하는 ‘오포 세대’, 추가로 꿈과 희망을 포기한 ‘칠포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이들에게 ‘희망을 품어라’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한다.
윤성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각목, 사운드, 벽면 페인팅, 조명 설치 2014
쏟아지는 빗소리를 배경으로 각목으로 만들어진 바리케이드가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되어 있다. 관람객은 그 주변으로 난 통로로 겨우 지나다닐 수 있다. 전시장 양쪽 벽면에는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이라는 텍스트가 쓰여 있고, 바리케이드 끝 어딘가에는 밝은 빛이 가득하지만 막상 그곳에 도달하면 막다른 길이 기다리고 있다.
윤동천 <삶의 무게> 시트지, 신문, 폐지, 병, 캐리어 272×436×140cm 2014
러시아의 국민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문구 너머 쇼 윈도 안에는 고물상에서 5000원으로 교환할 수 있는 폐휴지, 신문지, 빈 소주병이 쌓여 있다. 고단한 삶의 무게는 제대로 된 밥 한 끼 식사값으로도 바꾸기 어렵다.
이양정아 < Concrete Seoul > 콘크리트 가변설치 2011~2012
< Cutting Out Seou l >(오른쪽) 종이에 물리적 드로잉1100×790cm 2011
<Cutting Out Seoul>은 경제적 조건으로 인해 거주할 수 있는 곳이 한정되는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과 관점을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제시한 작업이다. 서울 지도에서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0만원 조건으로 거주 가능한 동(洞)은 남기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칼로 오려냈다. <Concrete Seoul>은 거주할 수 있는 동네를 그 모양의 시멘트 블록으로 제작했다. 매물이 많은 동네일수록 시멘트 블록은 높이 쌓이고 매물이 없는 동네는 아무것도 쌓이지 않고 그냥 비어있게 된다. 작가가 거주할 수 있는 지역과 거주할 수 없는 지역의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