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베니스 비엔날레 2017 – 한국관의 코끼리 – 누가 봐도 보이는, 그러나 감히 말 못한 진실

코디최 〈Venetian Rhapsody – The Power of Bluff〉 네온, LED, 철, 캔버스, PVC 1243×1033×111cm 2016~2017 한국관 외관 전경. 마카오,라스베가스 카지노를 연상시키는 베니스비엔날레의 허세를 비판하며,수잔 스트레인지의〈카지노 캐피탈리즘〉을 소환한다.

한국관의 코끼리 – 누가 봐도 보이는, 그러나 감히 말 못한 진실

이대형 |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

안에 거대한 코끼리가 앉아 있다. 누가 봐도 명백한데,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코끼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코끼리가 방안에 들어오게 만든 직간접적 관계자이기 때문에 혹은 코끼리가 두려워 코끼리를 보고도 코끼리가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글은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콘셉트에 대한 글이 아니다(전시 콘셉트 전문은 http://korean-pavilion.or.kr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대신 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만난 한국 미술계의 고질적인 배타주의, 계급주의, 그리고 파벌문화라는 비대한 코끼리에 대한 고발이다.
“중국, 홍콩, 대만은 정치적인 입장이 서로 다른지만, 예술을 논할 때만큼은 서로를 격려하고 포용하고 응원한다. 그들은 예술이 경계를 초월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다름’을 수용하는 활동으로 생각의 유연함을 끌어낸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한국은 서로 헐뜯고 비방하며 상대를 끌어내리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지난 6월 11일 저녁 베니스의 한 식당에서 미국의 저명한 미술사가가 한 말이다. 그는 비엔날레 공식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열린 한 국제학술행사 공식석상에서 한국을 대표해 참가한 모 큐레이터가 이번 한국관을 거론하며 “감독은 상업화랑 출신이고, 전시 콘셉트는 난해하고, 작가 선정을 두고 논란이 많다. 참으로 이번 한국관 전시가 걱정스럽고 여러분께 죄송스럽다”고 한 데 대해 그/그녀의 기행을 가리켜 “마땅히 학술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자국의 동료 큐레이터와 작가들을 비방하기 바쁜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별로 놀랍지 않은 장면이다. 이와 똑같은 흠집내기는 1년 전 광주비엔날레 VIP 만찬장에서도 있었다. 당시 만찬에 참여한 해외미술 관계자 역시 “전시 내용은 보려 하지 않고, 출신성분을 따지는 한국 미술계의 시대착오적인 배타주의와 계급의식”을 비판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논하는 데 미술언어가 아닌 정치언어가 동원되어야 하는가? 매번 예술감독과 작가 선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흑역사’는 있었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역대급 ‘흑역사’의 소설을 쓰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전시 준비 과정에 터진 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언론사들의 과도한 경쟁을 틈타 의혹과 루머가 사실인 것처럼 전달되었고, 이는 곧바로 악의적인 기사가 되었다. 필자 역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을 다룬 페이크 뉴스로 고통스러운 2달을 보냈다. 24시간 만에 진실은 밝혀졌지만, 이미 많은 것을 잃었다. 가장 중요한 시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필수적인 후원금이 취소되어 설치작품(베네치안 랩소디)의 40%를 덜어내야 했고, 이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급속도로 퍼져나간 기사는 또 다른 의혹을 확대재생산하며 예술감독, 작가, 전시 모두에 ‘최순실’, ‘차은택’ 낙인을 찍어버렸다. 그 결과 예정되어 있던 비엔날레 특강은 취소되었고, 모 대학과 모 기관의 학술세미나 담당자로부터는 “참석이 어렵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낙인’ 효과의 위력은 지난 3월과 4월에 잡혀 있던 해외 미술매체와 글로벌 유력 매체와의 인터뷰까지 취소시켰다. 한국관을 둘러싼 악의적인 소문은 이미 한국을 넘어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또한 전시 준비기간 내내 “상업화랑 출신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안타깝게도 이는 조선시대 양반, 농민, 상민, 천민 계급을 연상시키는 출신성분 논란으로, 수많은 미술계 청년을 좌절시키는 구시대적 적폐의 하나이다. 진보적인 지식인이라면 미술계를 수직 계급 구조로 해석하는 그 어떠한 시도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수직적인 줄세우기, 편가르기식 문화를 극복하고, 조금 더 포용하는 문화로 바꿀 수는 없을까? 비엔날레라는 글로벌 플랫폼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황금 기회를 조금 더 많은 사람과 나눌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지난 10년 이완 작가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데 함께한 류병학, 류지연, 김노암, 유진상, 김희진, 정신영, 구경화, 안대웅, 장-루이 푸아트방(Jean Louis Poitevin), 신현진 등 10명의 큐레이터와 평론가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보다 더 긴 세월인 지난 30년간 코디최 작가를 연구한 마이크 켈리(Mike Kelly), 데이비드 페이걸(David Pagel), 제러미 길버트-롤프(Jeremy Gilbert-Rolfe), 사울 오스트로(Saul Ostraw), 제리 살츠(Jerry Saltz), 제프리 다이치(Jeffrey Deitch), 피터 할리(Peter Halley), 리나 야나(Reena Jana), 사라 다이아몬드(Sara Diamond), 데이비드 리마넬리(David Rimanelli), 강수미, 로렌스 리켈(Laurence Rickels)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들의 평론글을 묶어 신문으로 펴낼 수 있다면 코디최, 이완 작가를 연구하려는 전 세계 학생, 큐레이터들에게 매우 가치 있는 자료가 되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이완 작가의 10년 역사와 코디최 작가의 30년 역사를 압축 게재한 신문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관의 전시 역사와 Mr. K를 둘러싼 근대사연표를 담아낸 한국관 신문에는 미술사가 존웰치먼(John Welchman)과 큐레이터 스테파니 로젠탈(Stephanie Rosenthal)의 작가 연구관까지 실었다. 이를 위해 2달 동안 매주 금토일 연속 ‘하루 한 시간 잠자기’에 돌입했고, 별도의 편집팀을 꾸렸다. 그렇게 탄생한 한국관 발행 신문 3종 2만 부를 통해 적어도 35명 이상의 큐레이터와 평론가의 목소리를 전 세계 미술계에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김도형 디자이너와 네이버, 삼성물산과 협업해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 10인을 소개하는 디자이너 가방을 기획하였다. 그 결과 한국관의 디자인 기획물들이 미국의 클라크 아트 인스티튜트 라이브러리(Clark Art Institute Library)로부터 컬렉션 요청을 받는 성과도 거뒀다. 비엔날레가 예술감독과 참여작가만을 위한 전시에서 벗어나 수십여 명의 큐레이터와 평론가, 디자이너, 에디터, 번역가, 건축가 그리고 텀블벅 기금마련에 참여한 개인 후원자까지 함께 프로모션 할 수 있는 생태계로 진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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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 Proper Time > (부분, 벽면 시계 설치작업) 668개의 시계 2017 서로 다른 속도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부정확한 668개의 시계가 역설적으로 668명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 For a Better Tomorrow > (전시장 가운데 조각설치) 플라스틱 60x70x70cm 2016~2017 가짜 대리석, 가짜 브론즈, 표정을 잃어버린 가족상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오늘.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는 공허한 미래

드디어 5월 9일 한국관이 오픈했다
“국가를 대표한다는 자부심과 명예를 지키는 동시에 국가를 비판할 수 있을까?” CNN의 아마-로즈 맥나이트 아브라함(Amah-Rose McKnight-Abrams) 기자가 한국관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들며 던진 질문이다. 한국에서 “난해”하다고 비판받은 ‘할아버지-아버지-아들’로 이어지는 3대의 관점과 전시 콘셉트 “Counterbalance” 그리고 한국에서 인색한 평가를 받아온 코디최의 작품과 순수 국내파 이완의 작품에 대한 해외 언론과 전문가들의 평가는 기대 이상이었다. FT,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뉴욕타임스, 아트뉴스페이퍼, AP뉴스 등의 해외 매체에서 앞 다투어 꼭 봐야 할 전시로 평가했고, 전시장을 방문한 크리스 더컨(Chris Dercon, 전 테이트모던 관장),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Ulrich Obrist, 서펜타인 갤러리 디렉터), 마크 브래드퍼드(Mark Bradford, 미국관 대표작가), 아담 와인버그(Adam Weinberg, 휘트니미술관 관장), 나이젤 허스트(Nigel Hurst, 사치갤러리 대표) 등 각국의 인사들은 “‘트랜스 내셔널(trans-national)’의 문제와 ‘트랜스 제너레이셔널(trans-generational)’의 문제를 교차시켜 한국?아시아?세계의 문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 매우 명쾌한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한국에서는 잘 이해받지 못한 전시 콘셉트가 한국을 벗어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세상에 나와 오히려 날개를 달았다.
전시 <Counterbalance: The Stone and the Mountain>은 3가지 지정학적 관점과 3가지 세대의 관점을 결합시킨 뒤, Mr. K를 둘러싼 한국 근대사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맥락 위에 코디최와 이완을 위치시켰다. Mr. K라는 고스트를 소환하면서까지 3세대의 관점을 구성한 이유는 가족사진에 있었다. 가족이야말로 인류가 지금까지 존재의 가치를 지킬 수 있었고, 앞으로도 용서와 화해를 통해 지속적으로 인류의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한국의 문제가 아닌 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한국관에서 전시의 3세대 관점을 설명하고 있으면, 나이든 유럽의 관객이 손을 들고 말한다. “우리 역시 트랜스 제너레이셔널의 문제를 경험하고 있어요.  3대의 관점 차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발생합니다.”
이렇듯 어렵지 않게 전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온 전시개념이 왜 한국 미술계에서는 쉽게 이해되지 못했던 것일까? 왜 우리는 전시내용을 들여다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정치적인 프레임을 통해 보고 싶은 것만 보며, 트집잡고 흠집내기에 열중할까? 인맥과 친분 관계를 극복한 작가 선정을 왜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가?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아마추어 마리노 아우리티(Marino Auriti, 세무서 직원)의 《백과사전식 전당》(1955)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타이틀이자 메인 작품으로 섭외한 파격을 기억하는가? 미술계를 인간의 몸에 비유하면 심장, 혈액순환, 뇌, 골격, 허파, 피부, 입, 항문 등 각자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중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을 텐데 자칭 미술계의 “주류”입장에서 바라본 오장육부는 상호 수평적인 관계가 아닌 수직적이고 배타적인 어떤 것처럼 보인다.
자, 지금 당신 눈앞에 비대하게 살찐 코끼리가 보인다. 명백하게 보이는 저 코끼리 앞에서 당신은 코끼리가 있다고 직접 말할 수 있는가?●

 

[SPEACIAL FEATURE] 베니스 비엔날레 2017 –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장나윤 | 미술사

지난 5월 13일,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가 기대와 관심 속에서 베일을 벗었다. 이탈리아 북동부의 수상 도시 베니스에서 격년 단위로 개최되는 베니스비엔날레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명실상부 세계 최대, 최고(最古)의 미술 축제로, 미술가들과 큐레이터들에게 꿈의 무대로 꼽히곤 한다. 이번 비엔날레의 진두 지휘를 맡은 크리스틴 마셀(Christine Macel)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국립현대미술관(Musee National d’Art Moderne?Centre Pompidou)의 수석 큐레이터로, 125년의 베니스비엔날레 역사상 네 번째 여성 총감독이다. 그러나 마셀이 주목을 받은 것은 단지 그가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시 개막에 앞서 발표된 이번 전시의 주제는 ‘비바 아르테 비바(Viva Arte Viva)’, 직역하면 ‘만세, 예술 만세’를 뜻한다. ‘예술가와 함께하는, 예술가에 의한, 그리고 예술가를 위한’ 비엔날레를 만들겠다는 마셀 감독의 선언은 자연히 그녀를 지난 2015년 총감독을 맡은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와의 비교선상에 놓이게 했다. 엔위저 감독은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라는 주제 아래 정치적, 사회적 이슈들을 전면적으로 다루는 전시를 선보였으며, 이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시대가 당면한 문제들에 직접 개입하고 발언하는 것이야말로 동시대 예술가의 역할이라는 찬사가 이어졌지만, 반면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서거나 단식 투쟁을 하는 것은(실제로 2015년 당시 우크라이나 국가관 참여 작가는 전시의 일부로 단식 투쟁을 했다)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비판도 잇따랐다. 이같은 오쿠이 식 비엔날레에 대한 비판을 의식이라도 한 듯, 마셀 감독은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혼란한 사회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예술의 진정한 역할’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어느 때보다도 불안한 최근의 국제정세를 이번 비엔날레가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를 두고 미술계의 관심이 뜨거웠던 만큼, 마셀 감독의 ‘예술 우선주의’라는 선택은 특히나 눈길을 끌었다. 13일에 예정된 일반 공개에 앞서 VIP와 언론을 대상으로 한 사전 공개가 이루어진 지난 5월 10일, 이처럼 세계 미술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드디어 비엔날레의 막이 올랐다.

독일관의 선전 그리고 한국관의 약진
베니스 비엔날레는 크게 국가관 전시와 본전시, 그리고 각종 연계 전시들로 구성된다. 국가관은 총감독이 선정한 그해의 주제에 맞추어 각 국가별로 기획자 및 작가를 선정하여 전시를 조직하며, 본전시는 총감독이 직접 기획한다. 전시관들은 본관과 총 29개의 국가관이 위치한 자르디니(Giardini) 지역 그리고 일부 국가관 전시 및 대규모 본전시가 열리는 아르세날레(Arsenale) 지역을 중심으로 베니스 전역에 걸쳐 광범위하게 배치되어 있다. 베니스는 작은 도시이지만, 비엔날레 기간에 열리는 수많은 연계 전시 및 기타 갤러리, 미술관 전시들까지 모두 돌아보려면 1주일 체류로도 시간이 빠듯하다. 과연 ‘세계 최대의 미술 축제’ 다운 규모다. 1995년 故김석철 건축가와 프랑코 만쿠조(Franco Mancuso)의 협업으로 지어진 한국관은 전통적 문화 강국들의 국가관이 위치한 자르디니 섬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15년 재건축된 호주관을 제외하면 자르디니에 마지막으로 지어진 국가관으로, 이후 국가관 건립이 금지되어 자르디니에 입성하지 못한 많은 국가의 부러움을 샀다.
유력 미술 매체들은 VIP 오픈 직후 앞다투어 탑 5, 탑 10 국가관을 선정하여 발표했다. 그중 미국관, 영국관, 독일관, 프랑스관, 스위스관 등 일부 국가관은 여러 매체에 주요 전시로 소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관객을 압도하는 대형 설치작품을 선보인 미국의 마크 브래드퍼드(Mark Bradford)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미국관 건물 내부 원형홀의 벽면을 콜라주와 혼합 매체 설치를 활용하여 마치 폐허처럼 연출했다. 흑인이자 동성애자로서 인권 문제에 몰두해온 그가 자신과 같은 소수자에게 등을 돌린 오늘날의 미국을 대표해야만 하는 역설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영국관이 기획한 필리다 바로(Phyllida Barlow)의 개인전 또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바로는 지난 몇 년간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등 영국의 주요 미술관들에서 소개되며 뒤늦게 미술계의 주목을 받게 된 73세의 원로 작가이다. 그는 다양한 재료를 쌓거나 뭉쳐서 만든 엉성한 형태의 대형 조각작품들을 설치했는데, 이 작품들은 층고가 높은 영국관 건물을 뚫고 나갈 듯한 불안한 형태로 관객을 압도하고, 그들의 동선을 방해한다. 전시 제목인 〈폴리(Folly)〉(바보스러움, 어리석음 등을 뜻한다)는 자연히 오늘날의 위태로운 영국 정치 상황을 연상하게 하지만, 전시장 어느 곳에서도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는 찾아볼 수 없다. 그 덕에 크리스틴 마셀 총감독이 선언한 ‘예술을 위한 예술(Art’s for art’s sake)’이라는 지향점에 부합하는 전시였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오프닝 주간 내내 가장 뜨거운 관심을 끈 것은 단연 독일관이다. 수잔느 페퍼(Susanne Pfeffer)의 큐레이팅으로 안네 임호프(Anne Imhof)의 ‘파우스트’를 선보인 독일관 앞에는 정해진 시간에만 관람할 수 있는 퍼포먼스 공연을 보기 위한 인파가 연일 몰려들었다.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다섯 시간여 동안 퍼포머들은 건물 전체에 설치된 유리 바닥 아래 좁은 공간을 넘나들며 휴대전화를 확인하거나, 노래하거나, 춤추는 것은 물론 자위 행위를 하는 등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움직임들을 선보였다. 이를 유리 바닥 위에서 지켜보는 관객들은 불편함을 느끼지만, 그것이 은유하는 것은 결국 끊임없이 타인에게 노출되기를 자청하는 오늘날 우리의 삶, 그리고 그속에서 경험하는 개인적, 사회적 단위의 갈등이다. 독일관 외부에 설치된 철창과 그 안을 어슬렁거리는 도베르만 두 마리는 전시의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데에 일조했다. 세계 유수의 미술 매체들이 개막과 동시에 독일관을 호평하는 기사를 타전했으며, 결국 독일관은 최고의 국가관에 수여하는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관의 약진이다. 이대형 감독의 총괄 아래 코디최, 이완 작가의 2인전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의 제목은 <카운터발란스: 돌과 산(Counterbalance: The Stone and the Mountain)>이다. 코디최의 작품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생각하는 사람>으로,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소화제인 형광분홍빛의 펩토비즈몰(Pepto-bismol) 3만 병과 두루마리 화장지를 섞어 만든 설치작품이다. 이민자로서, 그리고 한국의 급격한 세계화 및 서구화를 목격한 세대의 일원으로서 극단적인 문화 충돌에 대한 ‘소화 불량’ 상태를 인상적으로 형상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국내외 언론의 찬사를 받은 또 하나의 작품은 이완의 <고유시>로, 이는 작은 방의 벽면을 668개의 시계로 채운 설치작업이다. 이완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직업군에 속하는 이들에게 한 끼의 아침 식사에 들어가는 비용 및 그들의 노동 시간, 수입 등을 묻고, 소속 국가 GDP(국내총생산) 정보 등을 토대로 수식을 만들어 각각의 시계가 고유의 속도로 작동하도록 제작했다. 각기 다른 속도로 돌아가는 668개의 시계는 관객들로 하여금 소위 신자유주의로 요약되는, 오늘날 개인에게 강요되는 삶의 속도와 그 이면에 잊힌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서로 다른 세대를 대변하는 코디최와 이완의 작품들을 통해 뻔하지 않은 변주를 선보인 한국관은 현대 한국 사회의 ‘오작동’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전통, 자연 그리고 인간성의 회복
마셀 총감독이 기획한 본전시는 ‘예술 우선주의’라는 기획 의도에 맞게 자연으로의 회귀, 전통의 보존, 인간성 회복 등에 주목하는 경향을 보였다. 강력하거나 노골적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은 배제되었으며, 토착문화 혹은 수공예적 전통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두루 소개되었다. 알록달록한 색의 거대한 실뭉치들을 설치한 실라 힉스(Sheila Hicks), 조각과 회화의 경계에 위치하는 천 구조물을 벽면에 설치한 프란츠 에르하르트 발터(Franz Erhard Walther) 등이 좋은 예이다. 또한 원자력발전소 주변을 걸어다니며 촬영한 비디오와 관련 오브제들을 설치한 코키 타나카(Koki Tanaka)의 작품, 강물을 북처럼 두드리는 아프리카 청년들의 퍼포먼스를 촬영한 마르코스 아빌라 포레로(Marcos Avila Forero)의 작품처럼 비서구권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포함된 것 또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한국 작가로는 미국 사회의 소수 인종, 특히 아시아인의 경험에 집중하여 공식 역사 이면에 존재하는 약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김성환의 영상작업 <러브 비포 본드(Love before Bond)>, 깨진 도자기를 이어 붙여 설치미술을 제작해온 이수경의 신작 <번역된 도자기: 신기한 나라의 아홉용>이 포함되어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마셀의 전시가 원시성 및 이국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에 갇혀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영국의 주요 일간지 텔레그래프(Telegraph)는 자르디니 본관에서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작품의 일부로 워크숍을 진행한 수십 명의 이민자 및 난민 출신 참여자들의 모습이 식민주의 시대 박람회에 설치된 토착문화 체험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며 날카롭게 비판했다. 비서구권의 토착문화를 인간성 회복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듯한 마셀의 기획 태도가 1989년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문제적 전시 <지구의 마술사들(Magiciens de la Terre)>의 잘못된 타자화의 방식을 답습한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의 작품이 폭넓게 포함된 것은 고무적이지만, 이들이 서구 문명의 이성 중심적 세계관과 상반되는 비이성, 주술성, 자연성 등의 가치로 환원될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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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enzo Quinn 〈 Support 〉 2017 베니스 대운하 ( Grand Canal )에 위치한 호텔 Ca’ Sagredo 벽면에 설치한 작품.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았다

우리 시대 예술의 역할, 그 열린 결말의 질문에 대하여
이번 베니스비엔날레를 두고 오가는 엇갈린 평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세계화에 대한 환상이 깨진 지는 이미 오래이며, 국제 질서는 자국 이익 우선주의, 극우 국수주의의 중심으로 재편되는 걱정스러운 양태를 보이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폭력성 또한 오늘날 필수적으로 재고되어야 할 사안이다. 국가관들을 중심으로 시의성이 민감하게 반영되는 비엔날레의 특성을 감안했을 때, 이 같은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이번 비엔날레가 평가되는 것은 따라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셀의 ‘예술 우선주의 비엔날레’가 얼마나 성공적인 시도였는지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열린 결말로 남아있다. 이는 무엇이 예술을 예술답게 하는가, 나아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인간답게 하는가는 질문과도 닿아있다. 이러한 질문들은 이번 비엔날레가 우리에게 던지는 생각할 거리(food for thought)이다.●

 

[SPECIAL FEATURE] THE GRAND ART TOUR 2017-베니스 비엔날레 2017

2017 유럽 그랜드 아트 투어를 가다

전 세계 미술계를 흥분시키는 2017년 그랜드투어의 여정이 시작됐다. 유럽의 아테네, 베니스, 카셀, 뮌스터, 바젤에서 열린 비엔날레와 도쿠멘타, 조각프로젝트, 아트페어 등 그 상차림도 다양하다.
우선 물의 도시 베니스. 비엔날레의 제왕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가 5월 13일부터 11월 26일까지 열린다. 파리 퐁피두센터 현대미술부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틴 마셀(Christine Macel)이 총감독을 맡아 ‘Viva Arte Viva’를 주제로 본전시를 꾸몄다. 한국관에는 이대형 큐레이터의 기획 아래 코디최와 이완 작가가 참여했다.
‘Learning from Athens’를 주제로 한 카셀도쿠멘타14는 아테네(4.8~7.16)와 카셀(6.10~9.17)에서 각각 열린다. 폴란드 출신 큐레이터 아담 심칙(Adam Szymczyk)이 총감독을 맡았다.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할 시간”이라는 그의 말이 전시에 어떻게 반영되었을지 살펴보기 바란다.
세계 공공미술의 흐름을 주도한 뮌스터조각프로젝트 (Skulptur Projekte Munster)의 다섯 번째 대회는 6월 10일부터 10월 1일까지 대학도시 뮌스터 곳곳에서 열린다. 이번 대회를 위해 새롭게 설치된 작품과 기설치된 작품을 비교하며 엄정한 화이트큐브를 벗어난 미술의 담론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확인하기 바란다.
세계 미술시장을 선도하는 〈제48회 바젤아트페어〉 (6.13~18)도 열렸다. 35개국 291개 갤러리가 참여한 이번 페어에는 9만5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오랜 세월을 지낸 공력을 보여주듯 〈아트바젤〉은 그간 행사의 다변화를 꾀하면서 생존의 방식을 개척하고 세계미술시장의 주도권을 이어왔다. 그 현장의 열기를 전한다.
《월간미술》은 아테네, 베니스, 카셀, 뮌스터 현지를 찾아 그곳의 분위기를 담아왔다. 이 지면의 다음 페이지부터는 바로 그 현장이다.
현지취재=이준희 편집장, 황석권 수석기자

57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Venice Biennale 2017

제57회 2017 베니스 비엔날레 2017.5.13~11.26
총감독 크리스틴느 마셀(Christine Macel)

그랜드투어의 첫 방문지는 베니스다. 57회를 맞이한 베니스비엔날레는 ‘Viva Arte Viva’를 주제로 했다.
총감독의 말대로 ‘휴머니즘에서 영감 받았다’라거나 혹은 유미주의(唯美主義)의 향을 풍기는 워딩이라서 그랬을까?
이번 베니스비엔날레는 현실에 대한 고발의 날은 무디고 비판의 목소리는 다소 누그러져 보인다.
그래서 어느 외신은 이렇게 전했다. “베니스는 도쿠멘타와 아트페어 사이의 달콤한 지점을 찾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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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JA-KWADE 〈Pars pro Toto〉2017 경험하지 못해 이해할 수 없는 우주나 사물의 근원에 대해 묻는 작업이다. 태양계 행성처럼 보이는 이 작업은 손으로 만지면 사운드가 재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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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관 〈Il mondo magico(The magical world)〉 나폴리 출신 인류학자 Ernesto de Martino의 책에서 전시명을 따온 이탈리아관 전시광경. 입구에서 보게 되는 부패한 듯한 인체 형상은 전시장 끝에 가면 왜곡되어 완전히 다른 형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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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nesto Neto 〈Um Sagrado Lugar(A Sacred Place)〉?2017 관객은 신발을 벗고 이 텐트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영적인 치유가 필요한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종교적 힘이 필요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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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gos Sapountzis 〈Sculptures Cannot Eat〉?2017 토기에 식품재료와 무늬천을 감싼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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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Love before Bond〉 2017 이수경과 더불어 한국작가로 초대됐다. 서구 사회에서 기록조차 되지 않는 약자, 즉 아시아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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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z Erhard Walther?〈Die Erinnerung untersockelt(Drei Zitate)(Wallformation Series)〉 면과 나무 365×600×40cm 1983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행위와 조각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그의 작업은 미니멀리즘, 개념미술부터 행위미술과 보디아트까지 전반에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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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Medalla 〈A Stitch in Time〉?1968/2017 필리핀 출신 작가는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조우한 옛 연인이 과거 자신이 선물한 손수건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이에 시적 영감을 받아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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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ila Hicks〈Escalade Beyond Chromatic ands〉600×1600×400cm 2016~17 2014년 파리 팔레드도쿄에 설치되었던 작품. 옷과 실, 천 등을 이용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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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na Korina 〈environment Good Intentions〉2017 알루미늄으로 외벽을 꾸민 전시실을 마련해 키치성 가득한 왁자지껄한 방을 만들었다. 동물 문양이 프린트된 벽 위로 네온빛을 발하는 전쟁훈장을 연상하게끔 하는 설치물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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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관 (말)
Claudia Fontes 〈The Horse Problem〉 2017 작가는 조각의 조화로움이 전시된 제도화된 공간의 기초에 도전한다. 그것은 서유럽을 지배하던 이데올로기로 인식된 것이다

미국 (1)

미국관 (천장에 둥그런 설치) Mark Bradford 〈Tomorrow Is Another Day〉 2017 개인의 삶이 어떻게 위대한 역사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캐나다

캐나다관 Geoffrey Farmer 〈A way out of the mirror〉 2017 건립 60년이 된 캐나다관은 2018년 건축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재정비한다. 공사장을 방불케 하는 설치작업으로 바로 앞에는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분수도 설치됐다

프랑스
프랑스관 Xavier Veilhan 〈Studio Venezia〉 2017 “거대한 사운드 조각”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는 프랑스관은 비엔날레 173일 기간 내내 음악가를 초대, 공연한다(본지 2017년 3월호 참조)

헝가리
헝가리관 GYULA VARNAI 〈Piece on Earth!〉 전 유럽의 정치적 불안 상황을 헝가리의 현재 모습과 이전 사회주의자를 평행선상에 놓고 보여준다

호주
오스트리아관 Erwin Wurm〈stand quiet and look out over the mediterranean sea〉 240×274×874(높이)cm 2016~2017 관람객은 작품 내부에 설치된 계단을 통해 올라 자르디니 공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작가가 말하는 ‘1분 조각(one minute sculpture)’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자르디니의 국가관들
Participating Countries’ Pavillions in Giardini

070-119 특집_그랜드투어(엡손)

 

CRITIC 보고ㆍ10ㆍ다

3.21~4.16 SeMA 창고
정수경 | 미학

전시가 열린 SeMA 창고는 불광역에서 걸어서 5분이면 닿을 은평구 혁신파크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창고’와 ‘혁신’이라… 그 기묘한 조합의 울림이 만들어낸 다소의 상념들을 헤아리다보니 어느덧 창고 앞이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창고의 생김새. 한눈에도 수십 년의 세월을 짐작게 하는 붉은 벽돌 단층건물의 흰 방범창살과 연한 청회색 페인트로 덧칠된 커다란 나무문은 산뜻한 산수유색 전시 현수막을 크게 내걸고 활짝 열려 있음에도 발걸음을 잠시 주춤하게 한다. 대안공간의 역사도 20년이 다 되어가고 미술관들마저 대안공간을 운영하는 마당에 이 무슨 새삼스러운 구태인가 싶겠지만, 대안적 공간들은 여전히 기대 어린 긴장감을 일으키곤 한다. 공간이 도전하기 때문이다. 보존해야 하고 보존하기로 결정된 낡고 오래된, 그리고 애초에 전시를 위한 것이 아니었던 공간을 어떻게 미술 전시 공간으로 살려낼 것인가. 낡은 시약창고 공간이 그렇게 던진 도전에 난지 10기 작가들은 어떻게 응했을까?
궁금증을 안고 들어서는 이를 처음 맞는 것은 회색 가벽에 걸린 임현정과 허수영의 커다란 회화들이다. 무덤덤한 회색은 낡은 창고의 거칠고 붉은 골조를 부분적으로 감싸 안으며 긴장을 살짝 누그러뜨린다. 그러나 이 가벽에는 급변하는 전시공간의 성격과 충돌하는 회화의 시각성에 관한 깊고 오랜 고민이 녹아들어 있을 터. 여기서 회색은 협상의 색상으로 와 닿는다.
그 왼편으로 난 통로를 따라가면 몇 개의 스크린이 하얀 가벽을 따라 설치된 공간이 나타난다. 영상작품들이 맞이하는 이 공간은 너무 환해서 생경할 지경이다. 긴장하지 말라 말이라도 걸 듯, 권용주와 박보나의 작품은 압도하기보다 차분히 다가오는 크기로 설치되었다. 이곳이 낡고 오래된 창고였음은 유난히 환한 빛이 의아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을 때 비로소 각성된다. 당연히 있을 것 같던 슬레이트 지붕 대신 엉성하게 얹힌 목재들 사이로 봄 햇살이 눈부시다. 후면의 문 뒤에 감추어진 ‘ㄷ’자 모양의 좁은 공간에는 권혜원의 영상이 삼 면의 틈새 없이 가득 채웠다. 3채널의 비수평적 배치는 공간의 특정한 생김새를 살려내는 동시에 ‘버려지는 장소들’이라는 영상의 테마와도 공명을 이루며 시각적 울림을 한층 키워낸다. 이에 뒤질세라, 신형섭의 모기 세레나데가 기묘하게 치고 들어온다. 협상에 이은 진입의 면모가 엿보인다.
다시 돌아 나와 중앙에서 오른쪽 후면에 있는 좁은 통로로 들어가면 시약창고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선반들이 유난히 높은 천장까지 가득 차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드디어 도전하는 공간이다. 박윤경과 옥정호, 도로시엠윤, 염지혜의 작품이 맞이한다.
좁고 길고 높고 선반으로 가득한, 못조차 박지 못하는 공간. 무엇보다 강한 입체감으로 다가오는 선반들의 공간 속에서 평면작업들은 어떻게 공간에 밀리지 않고 상호작용할 수 있을까? 고민의 흔적들이 드러난다. 박윤경이 이 다소 산만하고 복잡한 공간을 반투명한 자기 작품이 창발하는 공간체험유희를 극대화하는 요소로 끌어들였다면, 도로시엠윤은 선반이 만들어내는 어둠을 물리적으로나 주제적으로나 ‘Myself 네온시리즈’의 최적화된 배경으로 활용해냈다.
길쭉한 공간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사위가 온통 선반으로 둘러싸인 가장 거칠고 산만한 공간이 관람자를 맞이한다. 그에 맞장이라도 뜨듯, 강렬한 외관의 작품 몇이 거기 자리 잡았다. 임흥순, 배윤환, 성유삼 그리고 이정형의 작품들은 맞춤옷이라도 입은 양 공간과 어우러진다. 성유삼과 배윤환의 검고 어둡고 강렬한 작품들이 창고의 드센 느낌을 더욱 강화한다. 이정형의 작품은 너무 녹아들어, 원래 작품이 지녔던 파열의 힘이 좀 약화되는 느낌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공간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홍승희와 신현정의 작품이다. 홍승희의 백색 오브제들은 마치 오래 비울 집의 가구에 흰 천을 씌워 놓은 듯한 모습, 그래서 잊힌 어떤 사물들의 세월을 화석화한 듯한 인상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화이트큐브는 줄 수 없었던 시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상념을 오래된 창고 공간이 비로소 그녀의 작품에 제대로 가져다준 듯하다. 신현정의 작품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공간에 개입한다. 그 여린 천들이 길게 늘어져 미약하게 흔들리는 모양이 강한 공간과 강한 작품들의 대결 속에서 공간을 진정시키고 달래는 듯하다. 동시에, 잘 들여다봐야만 보이는 곳곳의 빛바랜 자국들은 SeMA 창고의 세월에 대한 은유 같다.
다시 돌아 나오는 길에, 아차! 놓쳤던 무엇인가가 새롭게 눈길을 잡아끈다. 마치 처음부터 그 공간에 속한 것인 양 너무도 자연스레 칸칸이 놓여 있어 무심히 지나쳤던 푸른 화분들. 허태원의 〈염리동 블루스〉다. 작가의 고민과 재치가 동시에 느껴져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샌다. 순간, 작가들이 공간과 밀당하며 보냈을 설치의 시간들이 눈앞에 선연하게 펼쳐진다.
신진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의 운명이란 한결같다. 시내 중심부로 진입하지 못하고 주변부에서 둘레둘레 서성대야 하는 운명. 그러나 때론 그 운명이 아직 길들지 않은 신진작가만의 도전정신에 합당한 공간들을 선물하기도 한다. 주변부인 까닭에 재개발의 논리를 비켜갈 수 있었던, 삶의 오랜 시간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SeMA 창고 같은 공간들이 난지 10기와 같이 패기 찬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과 만났을 때, 작가는 응전 가운데 성장하고 공간은 젊은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생기와 활력을 얻는다. 이런 것도 하나의 혁신, 그것도 꽤나 괜찮은 혁신 아닐까?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고, 어두움과 밝음이 함께 있고, 공격과 달램이 밀당하는 곳, 그곳은 더 이상 창고도 아니거니와, 전시장에 불과하지도 않다. 그곳은 작품을 매개로 삶의 에너지가 피어나고 확산하는 공간이다.
난지 10기 리뷰전 〈보고ㆍ10ㆍ다〉는 디스플레이에서 아카이빙으로, 아카이빙에서 에디토리얼로 이행하는 전시형태의 진화과정을 한 번에 보여주었다. 그 모든 과정이 아티스트 큐레이팅에 의한 것이며, 심지어 작품 설명글 작성도 작가들이 직접 했다는 점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다변화된 프로그램들이 얼마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이제 난지 10기 작가들은 각자의 길로 흩어졌지만, 전시장에서 본 그 찬란한 햇빛이 비껴드는 어느 봄날이면 SeMA 창고에서 만났던 그들의 그 에너지가, 그 작품들이 다시 보고ㆍ10ㆍ을 것 같다.

위 성유삼 〈파도〉(왼쪽) 스폰지 폼 200×200×85cm 2016

CRITIC 이주요, 정지현 도운 브레익스, 서울

3.24~5.14 아트선재센터
김해주 | 독립큐레이터

전시는 몇 주에서 몇 달까지 긴 시간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관객들은 그 시간의 총량을 의식하지 않는다. 전시의 경험은 각자가 그곳을 찾아가서 본 만큼의 시간으로 결정된다. 날씨처럼 매일 바뀌는 것이 아닌 전시의 시각적 경험은 그 기간 중 언제가 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주요, 정지현 작가가 함께 만든 〈도운 브레익스, 서울〉에서 전시를 경험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여기서 전시는 작품의 종착지가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고 살아가는 생애의 한 기간에 속할 뿐이라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이처럼 작품 각자의 맥박이 느껴지는 이유는 먼저 그 형태와 배치된 방식에 있다. 전시장 곳곳에 놓인 사물들은 안정된 위치를 점하고 있기보다는 터미널에서 대기하고 있는 승객들처럼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퀴가 달린 것은 물론, 목재와 가는 철재 등의 재료로 만든 것들도 그 크기에 관계없이 운동성을 드러낸다. 공간 안에 점점이 흩뿌려진 수많은 사물과 장치, 드로잉은 그 사이사이로 여러 길을 내고 있고, 보는 이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풍경과 형태를 드러낸다. 그 배열에 따라 관객도 여러 동선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대기 상태의 사물들은 정지해 있어도 움직임을 품는다. 구름처럼 떠 있는 이 움직임의 전조가 작품이 갖고 있는 시간성을 지시한다.
전시가 작품 생애의 한 단면임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지점은 실제 전시 안에 다양한 활동들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전시 기간 내에 세 가지의 서로 다른 퍼포먼스가 예정되어 있는데, 이 퍼포먼스의 시간에만 작품들이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의 시간에도 작품들을 둘러싼 일들이 일어난다. 두 작가는 전시장 한켠에 커튼을 치고 작업장을 마련해 놓고 그곳에서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동시에 사물과 장치를 새롭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완성된 전시의 보완이나 변형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전시를 그 자체로 생성되거나 생활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분류와 분리의 원칙, 매끈하고 깔끔한 외관, 완벽성, 관객들을 안내하는 방식 등 전시라는 매체가 쌓아 온 일반적인 관습에서 벗어나거나 이를 의식하지 않는 형태들이다. 대신 성근 조합, 빗금, 교차선, 튀어나온 각목, 각을 맞추지 않은 요소들, 돌출 같은 배합과 구성의 감각이 드러난다. 이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전시를 유지시키는 것은 실을 잣는 것처럼 두 작가의 손끝에서 연속되는 만들기의 습관, 즉 형태와 이미지를 생성하는 즐거움이다. 사물들은 그 형태를 제시할 뿐 아니라 그 안에 각자의 이야기와 만들기의 연대기를 운반하며 뉴욕의 퀸즈 뮤지엄에서 광주비엔날레를 거쳐, 지금 아트선재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작품이 가진 시간을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영속성이 없는 사물, 결국은 부식되거나 부서질 물체임을 인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장이나 보관을 위한 제도나 공간의 부족뿐 아니라 그 사물이 갖고 있는 필연적인 노화와 죽음에도 관련돼 있다. 이 전시는 곳곳에 극장과 연극의 요소들을 은유하고 있지만, 여기 놓인 사물들이 특히 배우와 겹치는 것은 그 부분이다. 결국은 둘 다 죽는 신체라는 것. 이곳이 극장이라면 이 무대에 백스테이지라는 개념은 없다. 주로 등장과 퇴장을 통해 만들어지는 장면의 시작과 끝은 맞붙어 있고, 막은 스스로 공간을 가르며 움직인다. 공연자와 관객의 구분선도 수시로 바뀌는 유동적인 것이 된다. 한편, 이 전시와 연계해 만들어지는 퍼포먼스는 여러 관계의 연결이기도 하다. 전시를 함께 만든 두 작가의 긴밀한 협업, 결코 각자의 소유를 내세우지 않는 전시 내에서 사물의 존재 방식, 그리고 퍼포먼스를 통해 기존의 작업들을 장치 삼아 결합하는 다른 작가(황수연, 이이내, 이혜인, 은재필, 정유진)의 작업과 맺는 관계, 그리고 이 신기한 사물과 행위로 채워진 공간을 경험하는 관객들과의 관계이다. 이 여러 층위의 관계 맺음이 결합하면서 전시는 동트기 전의 시간, 고정된 의미에 닻을 내리지 않는 모험의 시간을 만든다.

위 4월 21일 아트선재센터 2층에서 진행된 퍼포먼스 현장

CRITIC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3.31~6.24 하이트컬렉션
조은비 | 독립큐레이터

이른바 신진작가를 발굴, 소개하는 형태의 전시는 기관마다 상이하지만, 대개 공모제 혹은 추천제로 이뤄진다. 공모제가 지원자 중에 선택된 소수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추천제는 말 그대로 공인된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니, 방식상의 차이가 있더라도 사실상 “간택된” 자가 누리는 기회의 독점과 선??/??후배라는 위계에 내재된 배타성은 불가피하다. 하이트컬렉션이 지난 4년간 선보인 젊은 작가 연례전은, 이쯤 들 법한 추천제를 둘러싼 관객의 궁금증에 대해 기획자 스스로가 다시금 입장을 밝혀두었다. 그는 이 전시가 구조상의 추천제 너머, “추천인-피추천인의 관계에서 감지되는 작업의 상관관계나 미술에 대한 관점의 차이” 역시 드러낸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 기획을 익숙한 추천 구조로 보는 것은 협소한 시각일 테고, 일종의 메타 기획의 차원으로 바라보면 전시를 둘러싼 더 풍부한 시선을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이트컬렉션 측은 매해 추천인 작가를 선정하는 기획자의 기준점과 더불어 전시 키워드를 제시한다. 2014년 〈미래가 끝났을 때〉가 매체의 구분 없이 동시대 젊은이들의 “우울한 현재가 미술에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파악했다면 2015년 〈두렵지만 황홀한〉은 매체를 회화로 한정했고, 지난해 〈언더 마이 스킨〉에선 “강력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지닌 작가”를 추천인으로 선정해 그들이 추천한 젊은 작가들에게서 역시 유사성을 읽을 수 있었다. 이번 전시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추천인(권경환, 권오상, 우순옥, 이주요, 정희승)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참여작가들(강희정, 김세은, 노혜리, 박천욱, 서정빈, 이준용, 장종완, 전명은, 한우리, 황효덕)은 그 어느 해보다 매체에 있어 다양한 스펙트럼을 넘나든다. 추천인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특정 매체에 대한 자기 확장과 변주를 지속적으로 전개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기성 작가들의 개별적 특성은, 곧 그들이 추천한 ‘다음’ 세대 작가들의 특징으로 연결되는 듯하다. 여기에 기획자는 전시를 포괄하는 키워드를 미래를 둘러싼 몇 가지 태도로 세분해 “또 다른 날(새로운 날), 반복적인 하루(똑같은 날), 자신과 타인에게 주어지는 삶의 여러 가지 기회(또는 외면)” 등으로 상정했다. 미래라는 낱말이 지시하는 가능성, 앞날, 다음 단계와 같은 희망적인 메시지보단 그를 둘러싼 이면(裏面)을 다룬다는 점에서 내 눈길을 끈 것은 작가들의 매체에 대한 적극적인 재구성과 그를 바탕으로 한 자기 인식이다.
가령, 서정빈은 전통 조각의 재료적 속성으로 인한 한계를 돌파하고자 건담 프라모델의 구조적인 메커니즘을 작업에 대입해 조각의 내부 구조와 움직임을 구현하는데, 이러한 일종의 자가 응용은 조각 매체에 대한 고민을 담으면서 동시에 그를 넘어서고자 하는 것 같다. 김세은 역시 추상회화의 전통적인 요소들과 무관하게 자신이 선택한 대상을 확대??/??응시하는 방식을 구축하는데,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이러한 방식은 “그리는 대상을 향해 스스로 움직”임으로써 추상적인 이미지를 획득하게 된다. 전명은은 찍는 대상과의 만남을 통해 사진 안에 상이한 매체와 감각 등 ‘다른 세계’를 끌어들이고, 이는 곧 사진 매체 자체를 향한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황효덕은 작업 제작 과정에서 현실적인 상황에 맞춰 변형하거나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물리적, 정서적, 신체적 영향 관계 속에서 작업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비물질적인 상태나 현상, 그에 따르는 불가능한 상상을 물리적인 조건 안에서 구체화하는 일이다. 이준용 역시 드로잉을 선택하게 한 자신의 물적 토대와 이에서 비롯한 특유의 테크닉을 발굴하는데, 이는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 대한 작가의 불가피한 반응임과 동시에 저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대적하는 저항, 곧 “상상력”의 표출이기도 하다.
지면 관계상 일부 작가의 작업에 한정해 거칠게 살펴봤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이들 작업에선 개념이나 내용보다 매체 자체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전유와 이종(異種) 혼합 그리고 자신의 감각과 행위에 집중하는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에게서 드러나는 매체 사용과 그 전환은, 추천인 세대의 매체적 관심과는 분명 다르다. 매체의 본질에 대한 탐구 ‘이면’에 참여작가들은 모순된 상황 속에서 절단된 파편들을 접합하면서 연결과 어긋남, 전환과 전복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유희한다. 그렇게 자신이 고안하고 재구성한 장치나 도구들을 작업을 위한 파편이자 요소로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술 안에서 하나의 경향을 이루는, “핵심으로 가지 않고 에둘러가는” 형식적인 태도는, 다소 멜랑콜리한 이 전시 제목을 상기시킨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며 “꽃잎의 홀짝에 기대는” 행위는, 절실한 바람을 담고 있으면서 그 선택을 우연에 맡긴다는 점에서 일견 체념적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러한 자기 불확신은 더 이상 앞날을 내다보며 삶을 기획할 수 없는 시대에 주술과도 같은 연약한 희망에 기대려는 정서적인 생존 전략이 아닐까. 미래(未來)는, 말 그대로 “아직 오지 않았다.” 때문에 오늘의 미술하기는 부재하는 내일이 아니라 충실한 현재를 뒤섞으며 펼쳐지고 도약한다.

위 박천욱 〈주체롭게 자라다 2〉 화분, 인공식물, 의자, 전등, water aperture 170×150×90cm 2017

CRITIC 윤동천 일상_의 Ordinary

4.12~5.14 금호미술관
현시원 | 독립큐레이터

왠지 윤동천의 전시를 다시 보는 리뷰에는 다른 미술사학자나 비평가가 쓴 문장을 끌어오고 싶은 충동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보리스 그로이스 (Boris Groys)가 쓴 ‘예술의 진리(The Truth of Art)’에 적혀 있는, 예술이 삶을 보다 나은 차원으로 끌어올린 오래된 문구를 꺼내 쓰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대신 나는 작가가 전시장에 올려놓은 여러 개의 질문과 샘플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전시장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축이 ‘질문하는’ 행위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뒤돌아본다. 작가는 30년 넘게 현대미술을 하는 자신의 입장을 ‘질문하는 자’로 일관성있게 끌어온다. 동시에 일상의 사물들을 연장 삼아 미술 작품을 가지치기 한다. 거대한 사이즈와 색면 등 현대미술의 외양을 관습적으로 두르는 것으로서 관습을 파기하는 작품, 신발과 밧줄 같은 일상의 사물을 전시장 좌대 안에 결박시킨 작품들은 한 사람이 하지 않은 것 같은 여러 개의 미술적 자아를 보여준다. 그것은 작가와 미술이 단일한 주체임을 넘어서 여러 개의, 최대한 많은, 눈앞에 공존하는 것들을 바라보는 매개자가 되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으로 읽힌다. 각종 미술담론에 부합하는 외양 안에 ‘미술적인 것’을 위반하고자 하는 내면을 가진 윤동천의 작업들은 한 작가의 미술보다 ‘일상’을 다시 보기를 권한다. 현대미술에 관한 독특한 학습법을 제안하는 텍스트 북이나 도판 같기도 하다.
작가는 먼저 도대체 삶과 부합하는 미술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이 질문은 자기회기적이거나 자기반영적이지 않다. 대신 너무 많은 일상의 사물, 삶, 사회적 사건, 개인의 스마트폰에 깃든 기억들이 건조하게, 마치 시치미떼듯 전시장에 등장한다. 정확히 말해 전시장에 있는 그것들은 세속성이 아닌 범속성으로서의 예술이다. 윤동천의 개인전은 여러 개의 질문과 시간을 거닐며 타인들의 질문을 향해 나아간다. 전시장 입구 벽면에는 선언처럼 “일상은 모두에게 공유되어 특별함이 없는 것을 뜻한다”는, 1987년에 그가 쓴 문장이 붙어있다. 한편 전시장 종착지에서 내가 경험한 것은 ‘Q. 살면서 가장 감동스러웠을 때는?’이라는 질문에 덜 다듬어진 목소리로 내뱉는 이름 모를 이들의 목소리다. 목소리는 어떤 미술 재료보다 날것 상태로 들어와 있다. 작가는 여러 개의 Q를 자신의 작업을 통해 세계에 던진다. 작가가 타인에게 이렇게 난해한 질문을 던지는 의도는 무엇일까. 재기발랄하고 위트 있다는 수식어가 따라붙던 작가는 지금 세계를 올려다보고 또 내려다보는 악동일까 천사일까, 일상을 믿는 것일까. 배반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노란 방에 있는 노란 리본과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의 헤어롤 등의 사물, 그리고 〈위대한 퍼포먼스〉라고 명명된 한국 현대사를 구성한 강력한 정치사회적 증거들은 작가 윤동천이 본 집단 이미지이자 일상에서 집단의 삶을 가시화하는 역사가 되었다.
이 역사 앞에서 감각을 동원하려면 관람자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윤동천의 질문이 몸을 갖게 되는 것은 먼저 30년에 가까운 긴 기간 동안 작가가 ‘일상’이 무엇인지 질문하고자 한 것에서 획득되는 시간성이다. 미술로 삶에 대해 질문해온 역사가 작가의 작업 안에서 경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을 채우는 작업들을 보노라면 연쇄 작용처럼 사물과 사물, 질문과 질문, 연결어미와 어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를테면 관람자로서 이런 유의 말장난, 미술하는 일상은 일상의 미술과 어떻게 다른가. 작가가 다루는 일상의 바운더리는 거의 모든 것에 가깝다. 윤동천은 의도적으로 작업의 대상을 선택하지 않은 채 ‘거의 모든 것’으로 확장하고 수용하는, 다소 무모해보이는 지속성과 확장성을 추구한다. 둘째 작업 과정과 선택의 방식을 그대로 작품 표면에 위치시켜 첫 번째 관객인 작가 자신과 관람객, 미술제도에 내보이는 투명성이 돋보인다. 〈길에서??????-????흘리다 연작〉(2016), 〈길에서-껌자국 연작〉(2016)은 작가의 내적 동기와 규칙에 의해 제작되는 추상회화를 시각적으로 연상시킨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제목이 이것은 일상에서 ‘생산’되었음을 증명한다. 그것은 흘린 것이고 껌자국인 것이다. 이일상의 단면을 미술로 내건 것은 작가지만, 만든 것은 삶이다. 벽면을 가득 채우는 아크릴릭은 〈우리-얽히다/고무줄 드로잉 1〉이라는 이름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어떻게 봐야 할까? 이 두 단어 사이에 놓인 빗금(/)은 작가에게, 미술로 자신을 기만하거나 사기치지 않으려는, 불가능에 대한 군더더기 없고 매우 담백한 선언인 듯하다.
그의 전시에는 질문만큼이나 답변 또한 존재한다. 한 켠에는 작가가 2002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연 개인전에서 관람객에게 제공한 설문지가 놓여있다. 설문보다는 선문답에 가까운 내용이 담긴 이 하얀 종이들은 작가가 흑백사진으로 보여준 자신의 작업실(〈산실??-???문호리 54???-????4〉) 틈 어딘가에 자리하였던 것일 테다. 윤동천의 예술하기는 일상의 사물과 사건을 재료로 다루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예술 자체가 일상의 재료가 된다. 재료는 일상을 여백없이 꽉 채운다. 계속 질문하고 답하느라 미술을 뺀 다른 일상이 없을 것만 같다. 예술보다 일상이 보다 중요해지는 순간들이 전시장 지하 1층에서부터 3층까지를 채우고 있다. 전시장 전관을 둘러보는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개개의 작업들이 전관을 꽉 채우고 있으면서도 ‘꽉 찬 텅빔’을 느끼게 하는 힘의 정체다. 대한민국을 혼란의 도가니로 빠트린 각종 사물들이 유기견처럼 좌대 위에 올라와있는데, 여기에는 서정도 서사도 없다.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그물과 같다. 거대한, 끝없이 물결치는 파도 위에 몸을 튼 그물처럼 계속 이어져 반복된다. 보기에 편한 것만은 아니다. 촛불집회를 위대한 퍼포먼스로 부르는 데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물이 대상을 순식간에 덮어버리듯, 윤동천의 질문은 관람객이 원하든 원치 않든 그들을 질문의 범위 안으로 포섭한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심각한 것들이 아닌, 너덜해진 일상의 겉옷을 입은 여러 가지 샘플들이 작가가 꺼내놓은 “일상(Ordinary)” 제제에 포괄되고 윤동천의 헛되지 않은 기대를 품는다. 미술을 잘 사용한 한 예로 꼬마 아이가 그린 그림 몇 점이 액자에 담겨있다. 종이 편지봉투 안에 가가호호 사람 넷이 손잡고 웃는 얼굴들이 그려진 그림.

위  윤동천 〈염치〉 캔버스에 혼합재료 193.9×259.1cm 2017

CRITIC 권혁 Controlled and Uncontrolled

4.7~29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오세원 | 씨알콜렉티브 디렉터

권혁은 사유의 운동 “에너지(기??/???氣)”를 흔적으로 남기는 과정에서 물질과 정신. 그리고 우연과 필연에 응하는 통제와 비통제(controlled and uncontrolled)간 긴장감을 드러낸다. 작가는 거대하여 유의미하거나 또는 미세하여 미비하거나 할 것 없이 생명에너지의 움직임 또는 흐름을 비정형의 물로 형상화하고, 자유로운 증식과 무질서의 질서를 재봉노동을 통해 실의 흔적으로 남기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평면 위의 유동적이며 수용 가능한 물 형상은 퍼짐과 머금음이라는 긴장을, 재봉노동이 생산하는 반복과 차이는 드로잉 작업으로 물화한다. 이는 꽃이 흐드러지게 핀 개념산수화나,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폭포 같기도 하며, 바람과 함께 일렁이는 파도의 한복판 같기도 하다. 이렇듯 화면 안의 동적인 붓질과 스티치는 보는 이에게 형상에 대한 몰입감과 다양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실의 겹침·재질감 넘치는 페인팅과 함께 휴먼사이즈를 넘는 화면의 규모 속에, 오랫동안 훈련된 작가는 기술적 완숙이라는 외연에 더해 자유의지를 가진 생명이 만드는 환경, 환경에 영향 받는 생명의 상호작용 원리를 탐색하는 내연적 깊이를 담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작가가 사용하는 실은 일반적이지 않은, 얇지만 견고한 특수자수 실인데, 이는 엄청난 반복노동에 의해서 미묘한 차이들을 생산해낸다. 외유내강의 바늘과 실이라는 매체가 가진 존재감과 함께 봉합 과정에서 남겨지는 자수와 실오라기 같은 잔여물의 의미들은 이분법적 긴장으로 통합할 수 없는 주변의 모습과 다시 통합하려는 지속적인 운동 에너지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사물을 분리하는 칼과는 달리 꿰매고 봉합하여 세상에 해를 입히지 않고 이득이 되는 바늘과 실은 강한 존재감을 드러냄과 동시에 작품에 젠더적 의미를 더해, 소수자를 대변하는 페미니즘적 의미화를 가능하게 한다. 작가의 이전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위생대 시리즈나, 한때 성형이라는 폭발적 유행 현상에 대한 부자유함을 고발한 영상에서 작업의 맥락적 기원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상상력이 사라진 사회 현실에서 반복의 견고함과 화면의 미세한 흩날림을 통해 영겁의 시간과 봉제노동이 전하는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탈소외적 노동이라는 창조적 예술작업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간소외를 해체하는 노동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권혁의 노동집약적 작업은 차이를 통해 생존하는 동시대 미술환경에서“다시 노동”이라는, 《다시, 그림이다》(마틴 게이퍼드, 디자인하우스, 2012)라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책을 떠올리게 한다.
무질서의 질서, 자유로운 구속의 카오스이면서 코스모스로 사고를 확장하여 살펴본 생명의 본질과 근본에로의 환원은 작가의 오랜 인상주의적 시각실험과 함께 국가·인종·젠더에 대한 존재론적 개념 실험에 의해서이다. 다양한 사회문화와 개별자 간의 인식실험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에 대한 작가의 회의는 불변하는 본질 탐구에 나서는 도화선이 된다. 작가는 밀레니엄 초부터 다양한 현상을 드러내는 프로젝트들을 추진했다. 작가는 매우 강렬하여 눈이 부신 반짝임에 매료되어 특수 필름지로 유사 햇빛(사람 크기의 둥근 원판)을 만들었다. 휴먼사이즈 원판을 들고 세계 각국의 거리로 나가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며 관객들의 반응을 기록하는 〈움직이다 프로젝트〉(2005?~2006)를 진행했다. 또한 우리나라 화려한 전통 문양을 작은 조각보 형식의 작품으로 만들어 온·오프라인을 통해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문양에 대한 의견을 묻는 〈나누다 프로젝트〉(2008년 갤러리 팩토리에서 결과물 전시)를 기획했다. 문화, 언어, 사고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과 교류를 통하여 수많은 차이를 드러냈다. 이러한 다양한 현상들에 집착한 행위들은 최근 본질에 대한 물음과 함께 드로잉과 자수페인팅으로 귀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의 본질, 삶, 생명에 대한 ‘구도자’(사루비아다방의 이관훈 “2014년 권혁개인전 서문에서”)적 물음은 미술사적 문맥과 함께 역사성을 가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생명을 상징하는 유동적인 물 페인팅과 함께 다양한 숨의 양태를 통해 인간에 대한 관심, 삶에 대한 사유를 보여준다. 삼라만상 우주의 원리들을 카오스모스(Chaosmos: 카오스(혼돈)와 코스모스(질서)로, 구 천년 역사의 책)와 보이지 않지만 절대성을 가진 진리를 우주 수학의 원전인 천부경에서 속에서 찾아나가고 있다. 작품의 물질화·자본화에 비판적 잣대를 들어대었던 아르테 포베라 작가들의 맥락과 같이 작가는 풍선과 실이라는 매체를 통해 숨을 물리적으로 잡아두어 다양한 생명의 양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물-생명-숨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얇지만 견고하고 단단한 꿰맴 노동의 미학 속에서 작업을 대하는 중견작가의 진지하고 원숙한 태도와 함께 끊임없는 존재론적 철학적 탐구로 이어지고 있다.

위 권혁 〈카오스모스 R255〉(왼쪽) 천에 아크릴, 실스티치 145×235cm 2016~2017〈숨〉(오른쪽) 실, 혼합재료 (각)20×15×30cm 2016~2017

REVIEW

김선희 개인전
4.12~17 가나아트스페이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다양한 제품 디자인 경력을 쌓은 작가는 스스로를 ‘꿈꾸는 소녀’로 칭하며 작업한다. 긍정적 자아를 희망적으로 표현하는 화면이 관람객의 마음을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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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형

손진형 개인전
4.5~10 갤러리 가나

‘Arete horse(기린(麒麟)을 꿈꾸다)’를 전시타이틀로 한 개인전. 다양한 색채의 향연을 보여주는 작가의 캔버스를 통해 무한의 자유를 꿈꾸는 욕망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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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경김강

윤미경 개인전
4.16~22 모자이크갤러리

나무와 돌, 꽃 등이 담긴 풍경을 통해 치유의 힘을 얻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담긴 작업을 선보인 전시.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우리 인생처럼 자연으로 회귀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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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김강

김성은 개인전
4.11~16 봉산문화회관

‘Hello, Little Buddha’로 명명된 작가의 개인전은 전시명이 암시하듯 불교적 색채 가득한 화면을 보여준다. 해맑은 얼굴의 동자승의 순수함을  색채로 극대화해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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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규성김강

강규성 개인전
3.27~4.15 비디갤러리

필묵을 통해 자유로운 유희와 만남을 은유하는 작가의 개인전. 이에 작가는 형상성의 가치에 대한 진지한 탐색 끝에 시적 감수성이 충만한 생동감 있는 화면을 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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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철하미

윤희철 개인전
3.17~5.10 오대산 밀브릿지갤러리

펜드로잉을 하는 작가는 현재 《경향신문》에 ‘윤희철의 건축스케치’를 연재하고 있다. 그가 여행하면서 만난 장소가 세밀한 펜에 의해 구현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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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홍석하미

서홍석 개인전
3.29~4.4 가나인사아트센터

‘불이(不二)’로 명명된 작가의 개인전은 일상에서 마주한 풍경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다. 두꺼운 표면에 다소 거친 질감이 보이지만, 그러기에 더욱 진한 생동감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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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찬서금

나윤찬 개인전
3.29~4.3 갤러리 라메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인간을 표현하는 작가는 몇 가지로 제한된 색채를 활용하여 화면을 채운다. 이에 극단적인 평면성이 강조되며 동시에 대상을 철저히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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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윤김강

최승윤 개인전
3.9~4.30 로쉬아트홀

‘순간의 단면’으로 명명된 작가의 개인전은 동명의 연작으로 구성됐다. 캔버스 위에 꽃을 피우는 듯한 작업을 보여주는 작가는 전시 개막일에 라이브페인팅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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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하미

이경희 개인전
3.29~4.11 가나인사아트센터

실과 핀의 규칙적인 반복을 통해 비시각적이고 오로지 촉각으로만 감지되는 바람을 생성해내는 작업을 선보인 작가의 개인전. 이를 통해 바람이 만드는 질서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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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걸

안준걸 개인전
3.22~28 경인미술관

고향 과수원의 사과나무를 대상으로 작업을 하는 작가의 이번 개인전 부제는 ‘사과나무가 보낸 시간’이다. 자신을 키워낸 부모에 대한 존경을 사과나무에 투영해 표현했다.

PRIVIEW

do it 2017, 서울
4.28~7.9 일민미술관

1993년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국제적 작가들이 직접 쓴 작업 지시문들을 9개국 언어로 번역해 출간하면서 시작된 전시플랫폼 〈do it〉을 2017년 서울 버전으로 재창안한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 모든 참여자 각자에 의해 새롭게 개인화된 ‘do It 지시문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즐기고, 대화하고, 행동하고,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로 활성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피에르 위그, 올라퍼 엘리아슨 등 국제적인 예술가 44명의 지시문으로 이루어졌으며 국내 작가 20여 팀과 아마추어 공모단의 협업으로 대중의 참여 시도한다. 자유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이번 전시는 즉흥적 변주를 통해 도시의 다양한 이슈, 사람, 일상적 삶을 예술 공간으로 이끌며, 예술을 통한 자유로운 대화의 장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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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석

박고석과 산
4.25~5.23 현대화랑

박고석 탄생 100주년 기념전으로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품을 시기별로 집약해 보여준다.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박고석의 작품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감상의 시간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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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종-에르메스

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
5.20~7.23 아뜰리에 에르메스

“예술보다 더 흥미로운 삶으로서의 예술”을 제안하는 동시대 작가들의 창작 열정에 동참해온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10년간의 활동을 재조망하고 향후 방향을 가늠하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김민애 김윤하 김희천 박길종 백경호 윤향로가 참여한다.
박길종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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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이미지_김인숙, 리얼웨딩, 배우들 #2, 2010, 디지털 C 프린트, 110x168cm

가족리포트
4.28~7.9 경기도미술관

가정의 달을 맞아 한국과 중국 작가들의 ‘가족’을 주제로 한 현대미술 작품 56점을 모았다. 김영글 김인숙 박경근 배종헌 옵티컬 레이스 윤정미 이소영 이은우 조동환+조해준 주세균 지지수 샤오이농+무천 심치인 찬하우춘이 ‘공존’, ‘대화’, ‘무게’, ‘좌표’ 네 개의 키워드를 통해 가족의 현주소를 조망한다. 이들은 이번 전시는 드로잉, 회화, 사진, 오브제, 영상, 설치 등 다양한 현대미술 장르를 통해 작가이기 이전에 가족 구성원으로서 삶의 현장에서 바라본 ‘가족 보고서’를 선보인다. 급격한 사회 변화로 구성 형태는 변해가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가족의 근원적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함으로써 바쁜 일상 속에서 잊기 쉬운 가족의 소중함과 근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김인숙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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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원

원성원
5.11~6.25 아라리오갤러리

정교한 사진 콜라주 작업을 통해 비현실적 상상을 현실처럼 구현하는 원성원 작가의 개인전. 수백 단계의 레이어를 편집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초현실적 미장센을 창조하는 작가의 신작 사진 7점 및 드로잉 작업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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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운

정승운
4.22~5.21 갤러리 소소

다양한 상황과 장소의 풍경을 여러 매체로 표현하는 정승운의 개인전 <공제선_무명>. 이번 전시에서는 실에 유화물감을 입히고 공간에 드리운 작품을 통해 재료, 공간, 시간 사이의 긴밀한 관계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회화의 경계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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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043_2061 0001

아라비아의 길
5.9~8.27 국립중앙박물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아라비아 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처음으로 소개한다. 기원전 4천년 즈음에 제작된 인간 모양의 돌 조각 부터 이슬람의 성지 메카의 카바 신전을 장식했던 거대한 문을 아우르는 466점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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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타

사타
5.2~28 갤러리 룩스

부주의한 사고로 손실된 사진-이미지에 대한 자책감과 상실감에서 시작된 전시 . 이번 개인전은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조각난 기억 이미지들이 머릿속에서 어떤 형상을 이루는지 추적하고 돔의 형태로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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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전시다시보기AS_설치중

끝난 전시 다시 보기 A/S
4.18~5.7 서교예술실험센터

기록물을 통해 지나간 전시를 다시 한 번 소개한다. 도록, 리플렛, 포스터, 엽서 등을 통해 1990년 이후부터 2016년까지 이루어진 전시를 한자리에 모아 다시 보는 기획전으로 공개 모집에 응한 120여 팀의 작가와 문화예술 공간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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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백

김원백
5.13~27 부산 미광화랑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칼로 오리고 가위로 잘라 캔버스틀 위에 쌓아올려 고정시켜서 작업을 진행하는 김원백의 개인전. 오리고 겹쳐진 선과 면이 파생시키는 새로운 선과 면을 통해 자유로움 속에 유현한 질서가 있는 화면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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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엽

정정엽
5.2~31 트렁크갤러리

‘붉은 콩’으로 1990년대부터 ‘여성의 욕망’을 드러내던 정정엽이 이제는 광장의 촛불로, 민중으로, 함성으로, 분명한 의사를 토해내는 대중의 함성 그 흐름을 물결로 재현한다. 잔잔하고 소소하던 느낌의 군집이 거대한 위엄을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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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평-자하

하늘본풀이
4.14~6.4 자하미술관

하늘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삶의 철학으로 승화시킨다. 김미란 양희아 최수연 성능경 현지예 주재환 김월식 양아치 최윤 김태준 달라이바트르 강영민 김지평 최중낙 이소영이 모여 “하늘” 관념을 하나의 본풀이로 풀어낸다. 김지평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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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수

시간 속의 강
5.10~29 사진·미술대안공간 SPACE22

6·25전쟁 이후 서울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광경을 독보적 시각으로 담아낸 사진작가 한영수(1933~1999)가 남긴 작품 중 한강을 중심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담은 흑백사진 58점을 공개하며 동명의 사진집 출판기념회를 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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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희

홍경희
5.10~22 최정아갤러리

‘선’을 통한 힘의 집약과 그 사이로 공기, 시선, 바람들이 흐르며 통과하는 공간을 형성하는 작품 ‘_____’ 시리즈를 선보인다. 작가는 하나의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유려하고 날렵한 선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더욱 유연해진 조형미를 담은 신작들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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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헤윰_Pole_Vault_장대높이뛰기_2017_캔버스에_아~

배헤윰
5.17~6.16 Project Space 사루비아다방

정지된 화면에 ‘운동 이미지’를 구현하는 배헤윰의 개인전. 작가는 물리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인 사유 행위, 언어 활동, 시간의 흐름을 포함한 움직임을 담아내며 회화의 본질적인 조형 요소를 통해 다른 매체의 표현 가능성을 수용하고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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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김상진

우연히도 다시, 밤
4.19~6.28 청주 우민아트센터

2017주제기획 <우연히도 다시, 밤>은 울리포 그룹의 실험 사례에서 착안한 전시로, 6명의 작가 김상진 안경수 안정주 이은우 장보윤 정재호의 작업을 통해 불확실성의 시대적 ‘제약’을 ‘가능성’으로 바라본다.
김상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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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갤러리

마음이 시키는 일 3
5.17~6.3 이유진갤러리

스위스의 디자이너 겸 컬렉터인 루돌프 뤼에그와 협업하여 진행되는 전시. 국경과 언어, 장르를 넘어 그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예술가들의 가구와 회화, 조각, 드로잉을 통해 미니멀한 감각을 전달하는 예술작품들이 어우러진 시적인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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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빈

전소빈
5.19~25 혜화아트센터

전통과 현대를 오가며 ‘단아와 단순’, ‘비움과 절제’의 미를 화면에 담아내는 전소빈의 개인전. 빼어난 색채감각으로 현대인의 생활공간에 잘 어울리는 품위 있는 휴식공간을 마주하는 느낌의 민화를 통해 함축적이고 은근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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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놈

아트놈
5.18~6.15 갤러리 조은

만화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화풍으로 익숙한 아트놈의 개인전. 전통민화와 현대적인 캐릭터가 어우러진 화면을 통해 경쾌하고 친숙한 느낌을 자아내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미발표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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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석_투명한숲_확대_컷

장준석
5.15~6.10 대구 갤러리 분도

‘꽃’이라는 글자를 입체로 바꾸는 작업으로 널리 알려진 장준석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숲’이라는 글자를 전면에 내세워 문자가 가지는 저마다의 도형적인 특성과 아름다움을 풀어내며 미의 체계를 자신과 사회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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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양호

윤양호
5.10~16 가나인사아트센터

예술의 가치와 삶의 가치를 하나로 생각하는 윤양호의 개인전. 작가는 지극히 단순한 선과 색으로 명료한 형상을 그려내며 ‘정신’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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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이기영
5.3~6.4 갤러리 밈

먹으로 그린 대상을 지우고 비워내는 행위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자연과 인간의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이기영 작가의 여덟 번째 개인전. 묵직한 붓터치들이 만나고, 스미고, 서로 얽힌 이미지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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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성

최무성
5.9~15 한가람갤러리

아름다운 결을 지닌 나무를 캔버스 삼아 뜨겁게 달군 인두로 지져 형상을 나타내는 작업을 진행하는 최무성의 개인전. 작가 스스로 이번 전시를 “kitch and camp” 로 정의하며 세월의 흔적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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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숙

김봉숙
5.17~23 토포하우스

자연의 모습을 직시하고 생동하는 자연의 움직임을 빠른 필선과 고조된 색으로 표현하는 김봉숙의 개인전. 화면을 통해 계절의 감각 또는 자연의 감흥을 풍부하게 실어내며 숲, 나무를 미의 수원지(水源池)로 탈바꿈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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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룡

박기룡
5.17~23 토포하우스

반입체 작업을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박기룡의 개인전. 작가는 깎고, 바르고, 그리는 복잡한 작업 과정을 반복하면서 “花, 人, 景” 을 주제로 많은 사람이 세상에 아름다운 곳과 꽃들만 보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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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

이종혁
5.20~30 광명 꿈의 정원

작업의 초점은 자연의 하모니다. 즉 자연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조화로움에 초점을 맞춰 작업하는 이종혁의 개인전. 작가는 노래하고 춤추는 자연물을 화면 가득 담아 관람자를 행복한 꿈의 정원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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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경

장진경
5.2~30 대전 갤러리C

작가는 지도를 분해하였다가 다시 이어 붙이고, 문자를 해체하였다가 재조립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지도와 문자는 고유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전혀 다른 새로운 이미지로 재탄생한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묘한 생경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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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신

권오신
5.9~20 갤러리 파비욘드

작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화려한 상상을 꿈꾸지만 그것이 녹록치않은 현실에서 배회한다. 이 같은 상황을 슈베르트 교향곡 제5번 B장조 D.458곡에서 받은 영감으로 표현하며 새롭게 시작되는 모험의 여행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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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경

금경
5.1~31 창원 대산미술관

비대상적이고 비형상적인 화면에 오로지 색과 붓이 지나간 움직임만 드러내는 금경의 개인전. 작가는 〈지랄발광(發光)〉이라는 전시 타이틀을 통해 내면에서 뿜어져나오는 에너지가 이끄는대로 화면을 구성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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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

신철
4.28~5.23 부산 갤러리 조이

작가는 시시때때로 변하는 사랑의 감정들을 한 화면에 표현한다. 그림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어루만지고 다독거리며 사랑, 이별, 고독, 슬픔, 용서, 상념, 행복, 연민, 추억 같은 내면의 감성을 담은 사랑의 변주곡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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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한

김세한
5.15~29 N갤러리

도심 야경의 네온사인과 고층빌딩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불빛을 캔버스에 담는 김세한의 개인전. 에서 인공불빛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인간에 내재된 어둠의 공포와 두려움을 떨쳐버리기에 충분한 시각적 에너지를 발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