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IONAL NEWS
부산
당신의 감각
〈정복수의 부산시절〉 4.20~5.10 부산 미광화랑
부산의 근현대 작가를 재조명하는 전시를 꾸려온 미광화랑에서 정복수의 회화 48점이 전시된다. 1970년대의 자화상, 풍경, 여인, 에스키스 등 초기작업을 위주로 근작도 소량 출품되었다.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 작가는 17세였다. 이쯤 되면 왠지 요즘에는 쉬이 언급하지 않는 ‘천재적인 작가’ 운운하며 예술가를 신화화하는 문장을 이어갈 것 같지 않은가? 아니다. 그러나 정복수의 회화는 분명 탁월하다. 20대 초반의 감성으로 인간을 탐구하는 작업을 일궈왔다는 게 쉽게 짐작되지 않는다. 자화상부터 타자들의 형상까지 정복수의 인간 그림에 대한 천착은 그 자체로 철학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그림에서 우울과 그로테스크는 부차적인 감성으로 남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드러난다. 부산의 형상미술과의 연계성, 그와 동시에 드러나는 명확한 개별성 등 그를 조명해야 할 이유는 여럿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려야 살 수 있었던 사람’ 작가 정복수의 감각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박수지 독립큐레이터, 《비아트》 에디터
위 정복수 〈남자와 눈〉 캔버스에 유채 41.3×32.3cm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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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물방울이 모여 강이 되기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 3.8~6.11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에서는 개관전에 이은 첫 번째 기획전시가 한창이다. 김혜순의 시에서 차용한 전시 타이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은 태초 이래로 인간의 삶과 깊게 관계해 온 ‘물’에서 비롯됐다. 제1전시실에서는 김창열의 작품으로 구성된 상설전이, 제2전시실과 제3전시실에서는 작가 10명의 작품 19점으로 구성된 기획전이 진행 중이다. 기획전시실로 가는 복도에서 가장 먼저 부지현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검정거울, 제주 현무암의 색을 보여주는 수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먹물의 위로 투영된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균형&불균형〉은 기획전의 시작을 알린다. 2전시실에서는 5개의 LDE TV를 통해 흐르는 이이남의 〈박연폭포〉, 빌 비올라의 〈세 여자(Three women)〉, 제주 해안가의 돌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문창배의 〈시간-이미지〉, 오브제들이 물에 잠겨 있는 듯한 공간을 연출한 한경우의 〈그린 하우스〉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제3전시실에 들어서면 눈과 비를 맞는 부처의 모습을 담은 백남준의 〈TV 부처〉와 이강소의 〈청명〉 시리즈, 사진과 비디오를 결합해 창문 유리에 비치는 바다를 보여주는 임창민의 작품 등을 볼 수 있다.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담아낸 ‘물’은 단순한 상징적 이미지를 넘어 사유와 통찰의 대상이 됐다. 이번 전시는 김창열의 예술세계와 인문적 요소의 접점에 있는 ‘물’을 키워드로 삼아 도내·외는 물론 외국 작가까지 아우른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의 물방울이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룬 셈이다.
이승미 미술사
위 이강민 〈into a time frame morning in Jeju〉 피그먼트 프린트,LED모니터 108×72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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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판타지 메이커스 : 패션과 예술〉 2.28~5.28 대구미술관
대구미술관은 2017년 첫 전시로 순수미술과 패션분야를 접목한 〈판타지 메이커스_패션과 예술〉을 선보였다. ‘판타지 메이커스’는 ‘환상을 만드는 사람’을 뜻하는데, 패션과 예술은 환상(판타지)을 만들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기획됐다.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작품들을 통해 관람객을 꿈과 무의식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로 이끈다. 대표적으로 미술관 1층 어미홀에 설치된 프랑스 출신 피에르 파브르의 대형 설치작품이 감탄을 자아낸다. 이 작품 외에 흑연과 유화물감을 주재료로 작업하는 에나 스완시,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사진 연작을 선보이는 김주연, 옷을 소재로 인간과 자본주의의 사회적 문제를 시사한 배준성, 서양사회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편견을 다루는 배찬효, 환상 속에 존재하는 인물을 구현하는 이선규, 참여미술 방식의 설치물을 제작한 김정혜, 나비 실루엣을 작업에 접목한 서휘진, 전통 복식형태를 재해석하는 이수현, 인체의 모습을 옷이라는 매개체로 다양하게 해석한 정재선, 가죽의 특성을 살린 작업을 하는 한현재 등 총 13명의 작가를 초청해 패션분야에서 작품으로 불리는 ‘오트쿠튀르(Haute Couture)’ 의상과 순수예술작품 70여 점을 선보였다.예술의 대중성에 다가가고자 한 이번 전시를 통해 패션과 예술, 두 영역이 추구하는 순수한 창조성 그리고 인간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요소들을 발견한다면 인간 내면의 상상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최근 들어 경계가 모호해진 융·복합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패션과 예술뿐만이 아니라, 두 분야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협업을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패션이라는 소재를 다양한 매체와 기법으로 활용하는 융복합 시대 예술의 경향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박정미 대구예술발전소 주임
위 피에르 파브르 〈색울림〉 혼합재료 1800×4000×1400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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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희망이 발산하는 어떤 지점
〈어떤, 지점〉 3.28~4.9 발산마을 뽕뽕브릿지
노후 주택이 밀집한 도심 언덕의 변두리 마을을 가리켜 달동네라고 부른다. 생활고에 쫓겨 척박한 산동네에 삶의 터전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기에, 이곳에 정착한 주민들에겐 저마다 삶의 애환이 있다. 반백년의 세월을 지나 이제는 원주민들이 떠나고 동력을 잃어가는 마을. 하지만 광주의 달동네 발산마을에 젊은 예술가들이 정착하는 최근의 현상은 흥미롭다. 값비싼 작업실 월세 폭탄을 피해 온 작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쇠락해가는 마을을 생동하는 젊음의 열기로 메워나가고 있다. 발산마을 중심부에 자리 잡은 공유공간 뽕뽕브릿지(space ppong)는 베이스캠프와 같은 곳이다. 방치된 폐가 창고를 개조하여 전시장으로 꾸민 이 공간을 거점으로 국내 · 외 작가들은 마을에 일정기간 체류하며 보고 느낀 바를 작품에 담고, 그 결과물을 전시로 남긴다. 이번 전시에는 마을에 4개월째 거주하며 작업 중인 두 작가의 작품을 선보였다. 일본 국적의 시아바시 료타는 무등산, 월출산의 이미지를 포개 거대한 운석덩어리로 치환했고, 이세현은 어떤 동일한 장소(spot)를 수차례 찍은 기록을 캔버스에 옮겨 중첩되는 시간의 변화에 주목했다. 장소와 시간의 의미를 포착한 두 작가의 작품을 생각하며 마을을 산책하니, 오랜 세월을 교차해 한 공간을 공유하게 된 원주민과 젊은 작가들의 어색한 동거가 마냥 신기하고 반갑다.
이부용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문화사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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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신작에 주목하라!
〈플랫폼(PLATFORM)-2017〉
지난 3월 ‘Canvas 뛰쳐나오기’라는 주제의 참신한 전시로 주목 받은 갤러리 숨에서 이번에는 기획초대전 〈플랫폼(PLATFORM)-2017〉을 개최하고 있다. 4월부터 7월까지 1명당 2주씩 총 14주 동안 작가 7명의 신작을 공개하는 전시로, 신작에 주목하는 이번 시리즈는 2013년부터 시작하여 5년째를 맞았다.
올해에는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김수진, 박지예, 최수미, 정하람, 이홍규, 김성수, 탁영환 등 7명의 작가가 아껴온 작품들을 대거 선보인다. 첫 테이프는 4월 3일부터 4월 15일까지 ‘견고한 집’이란 주제의 전시를 구성한 김수진이 끊었다. 김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흔들리는 집, 흔들리는 마음, 흔들리는 관계로는 신뢰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두 번째 바통을 이어받은 작가는 4월 17일부터 29일까지 ‘옆집 여인 2’란 주제로 작품세계를 펼치는 박지예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이웃에 살고 있는 중년 여성들의 여러 감정과 삶이 미묘하게 드러나도록 인물에 집중하며 그들의 정체성을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여성이며 곧 나를 포함한 엄마이자, 누군가의 아내이며 때론 직장의 동료이다. 몽환적인 신비감과 아름다운 몸을 반추상적으로 드러낸 형상은 에로틱한 제스처와 감정을 동시에 전달한다. 이번 전시는 최수미의 〈숨 숲 삶〉(5.8~20), 정하람의 〈Personactor〉(5.22~6.3), 이홍규의 〈내 마음의 풍경〉(6.5~17), 김성수의 〈탑승자들〉(6.19~7.1), 탁영환의 〈미디어파사드로 공간읽기〉(7.3~15)로 이어져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양승수 소리문화의전당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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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이응노의 뜰에서 만난 동아시아의 현대적 콜라주
〈동아시아 회화의 현대화: 기호와 오브제〉 4.11~6.18 이응노미술관
‘기호와 오브제’는 오늘날 서구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주요한 키워드이다.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어떻게 현대회화의 기호와 오브제를 동아시아적 정체성으로 녹여냈는지에 주목한 전시가 최근 이응노미술관에서 열렸다. 이응노의 〈콜라주〉(1962)를 기점으로,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등지의 작가 5명이 발전시킨 또 다른 모더니즘(Alter Modernism)이 무엇인지를 조명하고자 한 전시이다. 량취안의 작품 〈차의 바다 2008-1〉는 먹을 대신해 찻물과 잉크가 종이 위에서 조우하는 우연성의 미학을 발견케 한다. 대만 작가 양스즈의 〈우뚝 솟은 산석〉은 먹과 잉크, 마와 한지를 사용한 콜라주로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무엇이 어떤 이유도 없이 흘러내리고 자기들끼리 대화하며 춤추는 그림이다. 마쓰오 에이타로의 〈Two holes〉는 패널에 태운 종이와 안료를 콜라주한 작업을 선보이는데 종이를 찢는 행위 자체가 내면의 기호이자 평면을 넘어서는 물성의 오브제로 작동한다. 양광자의 작품 역시 종이에 먹과 포스터물감을 사용함으로써 수성과 유성의 만남과 분리의 속성을 회화적 드로잉으로 승화시킨 표현주의적 작업이다. 〈제1회 고암미술상〉 수상자인 오윤석의 〈감춰진 기억-천국의 글 01〉은 캔버스에 종이를 오리고 접어내어 형을 지우면서 탈형의 형을 탄생시키는 이미지를 오묘하게 연출한다. ‘동양적인’ 것의 정체성을 담론화하고자 하는 이 ‘기호와 오브제’의 주제는 바로 지금 이응노의 뜰에서 컨템퍼러리한 공간을 열어보이고 있다.
유현주 미술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