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2024년이야!》3.21~25.2.23

《빅브라더 블록체인》3.21~8.18

백남준아트센터
Exhibition Focus

《일어나 2024년이야!》 백남준아트센터 전시 전경 2024 제공 : 백남준아트센터

40년 전 백남준과 나누는
교감의 역학
임산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교수


전시는 시각예술 장르의 경계를 무력화시킨 새로운 미술의 어법을 종합하고 한 편의 영화를 보여주는 듯한 통합적 감각을 불러온다.

《일어나 2024년이야!》 백남준아트센터 전시 전경 2024 제공 :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의 위성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발표된 지 40년이 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백남준아트센터는 《일어나 2024년이야!》와《빅브라더 블록체인》 2건의 기획전시를 개최하였다. ‘기념’이라는 형식이 통상적으로 가지는 내용의 관습이 있기에, 전시회가 전체적으로 ‘오마주’의 방향성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나름의 규범적인 필요와 가치를 지니는 이른바 ‘고전의 현재적 해석’이라는 비평적 클리셰를 큐레이터와 작가들이 어떻게 구현하였는지는 주목해야 한다. 1984년 ‘그때’에 지녔던 시대적 의미를 되새기며 문제의식을 확장하고, ‘그 후’ 세월이 흘러 당대의 미적 에너지가 현재의 삶의 구체성에 관여하는 가능성을 발견해서 애초의 중대성을 제시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 두 전시의 핵심 작품은 백남준의〈굿모닝 미스터 오웰〉(이하, 〈오웰〉)이다. 백남준은 1984년 첫날에 뉴욕 공영방송채널 WNET13, 파리 퐁피두센터와 연계된 프랑스 국영채널 FR3를 인공위성을 통해 라이브로 연결하였다. 그렇게 탄생한 〈오웰〉은 독일 WDR과 대한민국 KBS에도 동시 생중계되어 3,300만 명 정도의 세계인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진 위성 프로젝트이다. 먼 거리에 있는 두 도시에서 펼쳐지는 텔레비전 쇼를 라이브로 서로 연결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기술적인 어려움 때문에 획기적인 시도였다. 시간대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문화적 관습도 서로 다른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방송을 한다는 사실도 큰 도전이다. 하지만 백남준과 그의 플럭서스 동료들은 대중적인 뮤직비디오와 라이브 퍼포먼스라는 일종의 테크노-유희를 자신들의 아방가르드 예술에 포섭하여 실험예술의 폭을 전지구적으로 넓혔다.

〈오웰〉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참조하였다. 백남준이 애초에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감시사회의 디스토피아적 경고가 아니다. 대중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다. 백남준은 오웰의 책이 지루하여 읽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그를 최초의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예언자”라고 평한 바 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독재자들에게 유용한 일방향 커뮤니케이션 주도의 부정적인 매체라고 여겼던 오웰의 생각을 백남준은 비판적으로 극복하려 했다. 즉 백남준은 위성 테크놀로지의 횡단문화적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통해서, 텔레비전이라는 것이 여전히 억압적일지라도 그걸 제어할 수 있는 여러 창안이 가능함을 제시했다. 즉 상호작용의 잠재력, 그로 인해 전지구적 이해와 평화의 지평을 찾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웰〉은 위성 텔레비전과 비디오가 예측 불가의 위험을 내재적으로 지니고 있지만 열린 커뮤니케이션 매체로서 전 세계에 접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셜 매클루언의 “글로벌 빌리지”라는 유토피아 개념, 플럭서스 퍼포먼스 과정에서 실험한 관객 참여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모델 등은 직간접적으로〈오웰〉의 상상적 영감의 토대다. 물론 전지구적이고 민주적인 미디어 변환에 대한 백남준의 이상적인 의지는 1968년에 작성한「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확장된 교육」, 1970년에 WNET에서 출판한「글로벌 그루브와 비디오 공동 시장」 같은 미디어 생태학적 텍스트, 1973년 작품 〈글로벌 그루브〉, 그리고 1974년에 록펠러재단에 제출한 보고서「후기 산업시대를 위한 미디어 계획 : 21세기를 겨우 26년 앞두고」등에서 이미 제시된 바 있다.

오잉고 보잉고 〈일어나 1984년이야!〉(스틸 )
아래 머스 커닝햄 〈스페이스 요들〉(스틸 ) 퍼포먼스.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60분 1984

이렇게 〈오웰〉은 테크놀로지가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되어 기존의 대립적 범주들을 해체하는 대안적인 인터페이스로서 기능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특히 당시 텔레비전 매체가 지배하는 콘텐츠 세계를 교란하기 위하여, 새로운 사회적 유대로 형성될 다차원적(“다시간적”, “다공간적”) 현실을 협업적으로 구축한다. 그렇게 수행된 위성 쇼에서 선보인 대중문화 이미지들은 서구적 내러티브를 탈중심화하는 문화정치의 면모를 드러냈음은 물론이고, 클래식과 대중문화의 위계적 구별 및 예술계에서의 불평등 구조에 대한 대항적 통찰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미지 프로세싱과 네트워크 테크놀로지의 진화와 더불어, 이후 〈바이 바이 키플링〉( 1986 ), 〈세계와 손잡고〉 ( 1988 ) 같은 라이브 위성 이벤트로 더욱 견고해진다.

그렇기에, 2024년에 백남준의 〈오웰〉을 다시 보고 그것의 의미를 되새기는 예술적 기획이라면, 전지구적 네트워크 유토피아를 위한 물적 토대의 성숙함이라는 현실에 비추어, 그에 따라 텔레비전에 더이상 의존하지 않는 세계인의 지각구조를 변경하고 있는 테크놀로지 환경에 비추어, 그리고 팬데믹 이후 더욱 확장된 인터넷 공간에서의 역동적인 이미지 흐름에 비추어 백남준의 과거의 기획의 ‘현재성’을 면밀하게 살피려는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 지금의 세계가 당면한 전지구화 형국에서는 백남준이 꿈꾼 예술가 역할 회복의 현재적 버전을 구축하기가 요원하기 때문에, 단순히 전설을 추억하겠다는 느슨한 접근보다는 백남준 못지않은 상상력과 그것의 구체적 감각화로서의 예술 실천이 시급해 보인다.

《일어나 2024년이다!》는 작품 〈오웰〉 외에도 여러 백남준 소장품을 소개한다. 전시장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 작품은〈TV 정원〉( 1974, 2002 )인데, 여기에 〈글로벌 그루브〉가 재생된다.〈글로벌 그루브〉는 WNET가 텔레비전 문화의 혁신을 위해 야심 만만하게 조직한 ‘텔레비전연구소(TV Lab )’ 초기에 백남준이 제작했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다. 게다가 존 케이지를 비롯해 샬롯 무어맨, 앨런 긴스버그, 머스 커닝엄 같은 아방가르드 작가 대부분의 퍼포먼스가 포함되어 있어서 백남준의 트레이드 마크 영상이다. 특히 춤추는 인물의 윤곽선이나 자취를 뒤따르며 중첩되는 그래픽 선의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마찬가지로 WNET에서 제작한 음악 중심적 작업들 가운데 하나인 〈과달카날 레퀴엠〉( 1977, 1979 )도 전시된다. 이 작품은 무어맨과 협업한 도큐먼트 기반의 작품으로, 진지한 어조와 노골적인 정치성이 돋보인다.

이렇게 〈오웰〉의 기술적 숙련도와 이미지-사운드 조합의 심미성 등의 배경에는 당시 최신 편집 장비를 소유한 WNET에서 작업한 백남준의 1970~1980년대 시간이 자리한다. 따라서 텔레비전 매체의 영토 확장 사례이면서도, 당시 뉴욕 예술계와 텔레비전 산업 사이의 유의미한 연결의 결과라 할 수 있는 〈글로벌 그루브〉와 〈과달카날 레퀴엠〉 등의 배치는, 비록 두 작품의 심미적 표현방식이 크게 다르지만, 〈오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적합한 큐레토리얼 선택이다. 1988년에 발표된 〈세계와 손잡고〉 또한, 〈오웰〉을 구성하는 버라이어티 쇼의 요소 대부분(스포츠, 아방가르드, 춤, 팝 음악, 커플 댄스 등 )을 포함하면서 당시 대중문화를 선도한 MTV의 시각적 세련됨을 적극 반영하였기 때문에 〈오웰〉과 비교하는 재미를 줄 수 있다.

바밍타이거와 류성실은〈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을 기념해 그 내용과 형식을 오마주한 신작〈SARANGHAEYO 아트 라이브〉를 제작했다.
《일어나  2024년이야!》백남준아트센터 전시 전경 2024
제공 : 백남준아트센터

다만, 〈오웰〉에서 시작해서 〈세계와 손잡고〉에 이르는 백남준의 1980년대 라이브 전송 이미지에서 엿보이는 포스트모던적 성격은 이전 백남준의 ‘텔레비전 아트’가 제기했던 반상업주의적 어젠다와 대비되어 여러 비평적 이견이 있는 만큼, 그런 논쟁과 관련한 큐레토리얼 관점이 적극 제시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백남준 작품이 아닌 출품작으로는 대중음악가 바밍타이거와 류성실의 공동작〈SARANGHAEYO 아트 라이브〉가 유일하다. 〈오웰〉의 메시지를 동시대 버전으로 제시하겠다는 ‘오마주’ 포맷이다. K팝을 대표한다고 알려진 그룹, 그리고 허구의 스토리텔링을 트렌디한 미디어와 재료로 유통하며 자신만의 미술세계를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작가는 ‘현대미술’과 ‘평화’라는 거대 개념을 컬트의 색채로 결합한다. 각자 잘할 수 있는 것을 잘 드러내 보인 것 같다. 〈오웰〉에 담긴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잠재력과 그 해방적 역할에 대한 동시대적 사유를 관객들에게 권하는 데 효과적인 접근 방식인지는 의문이다.

또 다른 기획전은 《빅브라더 블록체인》이다. 오웰의 『1984』를 이해하는 가장 대중적인 단어 ‘빅브라더’와 데이터 자본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데이터 관리기술 ‘블록체인’이 제목을 이룬다. 이 모순적 조합은 ‘빅브라더’의 반인간적인 의미를 상쇄할 지금의 대안이 ‘블록체인’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백남준의 상상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네트워크 자본주의 사회에 대응하는 예술가의 태도는 무엇인지, 그에 따라 데이터 중심 사회의 풍경을 대하는 시선의 깊이는 어떠할지 궁금하게 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참여 작가 9명은 백남준의 〈오웰〉에서 직접적으로 조형적 영감을 구하거나, 혹은 〈오웰〉의 방법론에 구애하지 않고 나름의 조형 형식과 서사로 현재와 미래의 운명을 그린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전시는 현실에서 경험을 쌓아 직관과 감각을 현명하게 부리겠다는 일상적인 바람에 더해 그 구체적 실천 의지를 자극한다. 백남준이라는 예술가가 40년 전에 〈오웰〉을 통해 하고자 한 이야기는 인간 존재 상호 간의 연결이라는 외적 열림에 대한 기대였다. 그건 수많은 시간의 리듬으로 연결된 세계 내의 내밀한 삶 자체를 다시 보자는 제안이다. 그렇기에 〈오웰〉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파장을 맞이한 두 전시회의 참여 작가들 역시 우리 관객에게는 온갖 전자미디어와 네트워크 테크놀로지가 기획하고 있는 동시대의 일상을 단순히 편안한 포근함으로 느끼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대한의 안정화를 극도로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테크놀로지를 접할수록 모순과 파괴의 감정을 고양할 수 있음을, 현실을 바꿀 관계들을 스스로 생성할 의지가 필요함을 자각하게 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
장서영 〈터뷸런스〉(스틸) 3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2분 7초
2024 백남준아트센터 커미션 작업

삼손 영〈제단 음악(우유부단한 신자를 위한 예배 )〉사운드 설치, 4채널 비디오, 디지털 프린팅 카펫과 유리창,
3D 프린팅 PLA, 재가공된 인쇄물과 조화 가변 크기 2022

히토 슈타이얼〈태양의 공장〉(스틸 ) 싱글채널 HD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발광 LED 그리드,
의자 22분 57초 2015

상희〈원룸바벨〉(스틸 ) 인터랙티브 VR, 컬러, 사운드 15분 2022~2023
제공 : 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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