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 부문 2

방소연, 서지은, 송예진&장연우, 이준광, 조주현

SPECIAL FEATURE

방소연

제19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 부문 수상자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다. 학부에서 시각디자인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직업적 방황의 시기를 거친 후 미술경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카이스갤러리 큐레이터로 시작해, 대림미술관을 거쳐, 2018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 재직 중이다. 대중과의 접점을 고민해야 했던 직업적 경험 때문인지 대중과 소통하는 예술의 새로운 방식을 찾고자 하며, 다양한 분야와 접목해 새로운 시사점을 발견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개최된 《레안드로 에를리치: 그림자를 드리우고》(2019), 서소문본관의 《호민과 재환》(2021)과 《장-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2022), 남서울미술관의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2023)를 기획했다.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
2023.2.28~2023.5.7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여 활동하고 있는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을 조명하는 첫 국공립미술관 개인전이었다. 나무와 돌 등의 자연 재료를 사용하며 재료가 지닌 본래의 속성을 최대한 드러냄으로써 디지털 시대에 희미해진 자연에 대한 감수성과 근원적 감각을 일깨운 전시로 평가받았다. 전시는 크게 매체별로 구분함과 동시에 작가의 생애 궤적을 함께 표현했다. 석판화, 석조각, 목조각, 한국에서의 최근작을 소개하는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는 대부분의 작품의 제목이자 작가의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곧 자연과 전체의 결합, 영원한 삶의 나눔을 나타내는 ‘합’과 ‘분’의 작품 철학에 집중했다.

참여작가 김윤신
기획 방소연
진행 진민지
그래픽 디자인 개미그래픽스
공간디자인 TBD project
가구 제작 한국디자인
운송 · 설치 유니아트
영상 김기노영상제작소
영상장비 멀티텍
조명 삼성파워텍
번역 아트컨셉
사진 박명래, 모기 스튜디오
인쇄물 인타임
홍보물 서진기획
작품대여 국립현대미술관, 개인 소장
도움 주신 분 김란, 이윤숙

큐레이터가 된 과정에 대해 들려주세요.
예술 중학교와 예술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어릴 때부터 미술 외에 다양한 분야에도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디자인과로 입학했지만 사회학을 복수전공하는 등 타과 수업을 많이 듣고 천문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죠. 당시 디자인 전공은 취업이 잘 됐는데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다 보니 실기를 업으로 할 정도로 재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다양한 호기심을 발전시켜 언론, 패션 등의 분야에서 일을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적성에 딱 맞지는 않더라고요. 이성과 감성이 동시에 필요하고 예술과 대중을 연결하는 일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아 미국에서 예술경영 석사학위를 받고 갤러리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갤러리에서 몇 년 일했는데 갤러리는 결국은 판매로 증명을 해야 하는데 그게 성향에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미술관에서 전시기획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대림미술관에서 처음 제대로 된 기획을 시작했어요.
해외 유명 작가의 개인전을 주로 담당했는데요. 미술관 내에서 전시를 선택하는 기준과 진행 방식이 궁금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전시를 기획할 때 기본적으로 전시 의제라는 큰 틀 안에서 내부 큐레이터가 전시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에를리치 전시나 오토니엘 전시는 제가 온전히 작가를 제안한 건 아니었고 어느 정도 내부적으로 후보에 오르내리던 작가였죠. 특히 에를리치 전시는 북서울미술관에 입사하자마자 진행한 첫 번째 전시여서 부담이 컸어요. 과거 일했던 대림미술관과 시립미술관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하면 당시 대림미술관은 메인 큐레이터 외에도 여러 명이 전시 기획과 진행 과정에 참여에 업무 분장이 이루어지는 반면 서울시립미술관은 큐레이터 한 명에게 단독권한이 주어지거든요. 그래서 책임감이나 부담감이 더 큰 만큼 보람도 크죠. 에를리치나 오토니엘 전시의 경우 작가의 과거 다른 전시와 차별점을 주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특히 에를리치 전시에서는 한국의 설화에 대해 설명하고 이를 작가가 해석하는 과정에서 나온 〈탑의 그림자〉라는 작품 반응이 좋았어요.
본인만의 큐레토리얼 방식이나 특징은 무엇일까요?
큐레토리얼을 저만의 전시 특징이나 특색으로 해석하기에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것 같아요. 더 많은 전시와 시도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전시를 진행하면서 하지 말아야지 하는 선은 있어요. 지나치게 어려운 전시는 하지 말자. 큐레이터가 지나치게 엘리트주의적 자세를 취하는 전시는 피하고 싶어요. 또 포토존으로 끝나는 전시도 지양하려고 해요. 사전에 조사를 많이 하려고 하고 전시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려하는 대상은 관객인데요. 제가 큐레이터라는 직업으로 정착하기 전에 기자 생활도 짧게 하고 도슨트도 몇 년 했는데 그때마다 느낀 게 어려운 내용도 쉽게 전달하는 것이 능력이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능력이 전시 기획을 할 때 중요한 지점으로 작용해요. 구체적인 예로는 김윤신 전시 때 작품이 원로 작가의 작품으로만 분류되지 않도록 지금 젊은 세대로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호기심이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를 넣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함께 일한 젊은 세대의 코디네이터나 비미술계 지인들에게 작품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를 자주 물어봤어요. 그래서 만들어진 전시 형태가 슬라이드 프로젝션으로 작가의 아카이브를 펼쳐 놓거나, 나무토막을 직접 관객이 만질 수 있게 한 구성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닐 수 있는 요소이지만 전시 관람 대상의 이해가 전제되어야 만들어질 수 있는 과정이거든요.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거창한 목표보다 최근 몇 년간 관심 있는 분야를 말씀 드리자면 퍼포먼스인데요. 북서울시립미술관에 있을 때 시니어 프로그램을 잠시 진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몸이 아니라 몸에 대해 다른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한 무용 프로그램의 반응도 좋았고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그래서 그런 몸의 감각을 미술관에서 전시로 한번 풀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리고 좀 두루뭉술하지만 제가 기획한 전시가 정보로 끝나는 전시가 아니라 감동이 있는 전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이가 들면서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지만 더 신중해지는 경향이 있는데요. 김윤신 작가님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했을 때의 나이가 지금의 저보다 많더라고요. 심지어 그때는 외국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을 텐데 그 도전이 너무 멋있더라고요. 저에게도 이번 전시가 큰 의미가 된 전시라 안주하지 않고 지금 느낀 바를 전시를 통해 전하고 싶습니다.

정소영 기자

생명력 가득한 거목(巨木)은 모두를 일깨운다
방소연 |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큐레이터로서 종종 듣는 질문이 기획한 전시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가 어떤 전시냐’이다. 사실 모든 전시가 저마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기에 하나의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특별한 인연이 깃든 전시가 있는데 나는 주저 없이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에서 개최된 김윤신 개인전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를 꼽겠다. 이 전시는 과거부터 쌓여온 어떤 인연의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김윤신은 2019년 해외 작가 전시 추진을 위해 방문한 적 있는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작가였고, 본격적인 전시 준비를 위해 찾은 한국의 작업실은 갤러리스트로 미술계에 첫발을 내딛던 시절 방문한 적 있는 작가(알고보니 김윤신의 제자였던)의 작업실이었다. 별것 아닌 우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일지 모르지만, 나는 김윤신과의 만남을 김윤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합이합일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작가와 큐레이터가 생각과 마음을 나누며 전시라는 결과물로 하나가 되는 과정 말이다.

담당자로서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김윤신 개인전의 본격적인 기획은 2022년 여름 구체화되었다. 앞선 전시를 마무리 짓고 다음 전시를 위해 김윤신이 머물고 있는 경기도 화성 작업실을 방문했던 첫 만남의 기억이 생생하다. 원로 조각가와의 만남을 앞두고 조각에 무지한 나는 무척이나 떨리고 긴장했었다. 그런데 이런 걱정은 작가를 만나는 순간 단번에 날아가고 그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아, 이분은 진짜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이 주는 물질적인 감각도 진짜, 그리고 작가로서의 모습도 진짜 표현하는 언어도 내면과 일치된 진짜 삶의 모든 것이 작업으로 수렴되는 김윤신은 조각가로서의 진정성 외에도 어린아이다운 천진난만함, 늘 탐구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겸손함,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카리스마 등 예측할 수 없는 매력으로 만나는 모든 이를 사로잡는다. 이런 작가의 매력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 역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며 관객을 잡아끈다. 큐레이터로서 공감할 수 있는 매력을 지닌 작가를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다. 논리나 이성을 넘어 작가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모든 생각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전시기획을 위해 맞춰지기 때문이다.

큐레이터에게 주어진 숙제는 분명했다. 작가와 작품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 김윤신이 한국조각사에 중요한 인물이며 이에 대해 조각사, 미술사의 맥락에서 연구가 필요하나 일단 나의 역할은 이를 위한 발판, 즉 김윤신이라는 작가를 미술계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작가와 작품에서 느꼈던 ‘진짜’라는 감각, 자연을 재료로 한 그의 조각이 드러내는 물질적인 감각을 어떻게 강조할 것인가 고민했다. 이는 팬데믹 시기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전시 관람이 성행하면서 느낀 피로감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동시에 중요하게 설정한 목표는 전시의 타깃으로 젊은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히 유행하는 SNS 홍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김윤신이라는 원로 조각가가 과거가 아니라 동시대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현재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먼저 물질적인 감각을 전달하기 위한 시작은 나무라는 재료에 대한궁금증에서부터 출발했다. 작가의 작업실에 쌓여있는 나뭇조각과 톱밥의 색깔, 질감, 향기가 제각각인 것이 신기했고, 작가는 그러한 나무의 특성을 온전히 몸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에 전시장에 다양한 수종의 나무를 옮겨와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전시의 첫 번째 섹션 ‘1. 예감’은 프랑스 유학시절 제작한 석판화로 구성했는데 작가에게 동의를 구하고 액자에 넣지 않고 그대로 전시함으로써 작품의 질감과 촉각적 측면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돌이라는 재료를 매개로 석판화와 석조각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두번째 섹션은 석조각을 소개하는 2. 우주의 시간으로 설정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수 있는 목조각을 소개하는 더하고 나누며, 하나는 넓은 시기를 아우르는 만큼 시기별 하위 분류를 통해 작품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가운데 1970년대 초중반에 제작한 목조각은 대부분 사진으로만 남아있는데 독립된 공간에 슬라이드 프로젝터로상영함으로써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통해 감각을 자극하고자 했다. 사실 이러한 방식을 정한 데는 아날로그 기기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반영해 이들을 끌어들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마지막 섹션인 ‘4.노래하는 나무’에서는 한국에서의 신작위주로 선보였는데 자연 채광이 좋은공간이라 마치 전시장의 작품이 외부의 나무와서로 대화하는 듯 자연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마지막공간을 통해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밝은 기운을 전달하고,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작가의 삶 자체를 전달하고자 했다.

모든 전시기획자에게 배울 점을 남긴다. <김윤신:더하고 나누며, 하나>큐레이터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나에게 성장의 기회가 된 전시이다. 김윤신 앞에서 도전하는 삶과 안정을 위해 타협하는 삶 사이에서 고민중이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혈혈단신으로 영미권도 아닌 그 먼 남미로 이주한 용기. 내가하는 일이 가져올 보상이나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매 순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스스로 좋아하고 옳다고 생각해서 작업을 한다면, 힘든 과정을 동반하더라고 결국은 행복한 삶을 산 것이지 않을까. 이렇게 평생을 자기 확신을 갖고 진실되게 살아온 사람이 뿜어내는 강한 긍정의 기운은 그 어떤 포장으로도 흉내낼수없는것임을김윤신은 몸소 증명하고 있다. 어찌 보면 김윤신 작가의 모습에서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Ubermensch)를 발견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 거목같은 작가를 만난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고, 소중한 인연이란 생각이 든다.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가 전시를 관람한 많은 이에게도 새로운 변화를 위한 소중한 인연의 씨앗이 되었기를 바란다.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전시 전경 2023
사진: 모기 스튜디오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서지은

제19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 부문 수상자

이화여대에서 회화·판화, 미술사, 경영학을 전공하고, 이후 뉴욕 헌터 컬리지에서 미술사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의 퍼포마 비엔날레, 뉴뮤지엄 등의 기관에서 경험을 쌓고, 2015년부터 1년간 국제문화교류사업의 일환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미 미술 신을 연구하며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2016년부터 코리아나미술관 소속 큐레이터로 재직해 미술관을 중심으로 한 큐레토리얼에 관심을 두고, 신체성, 신체와 기술의 관계 등을 주목하고 있다. 주요 기획으로는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2023), 《프로필을 설정하세요》(2021), 《보안이 강화되었습니다》(2019), 《THE VOICE》(2017) 등이 있으며, *c-lab 6.0의 일환으로 선보인 홍이현숙의 집체 퍼포먼스 《12m 아래, 종들의 스펙터클》(2022), 안가영의 《우주 감각: 미래 인류를 위한 XR 시뮬레이션》(2022) 등이 있다.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2023.3.2~2023.6.10 코리아나미술관 &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코리아나미술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열린,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신미경의 개인전. 박물관과 미술관이 한 건물에 공존하는 스페이스 씨의 특수성을 살려 기획됐다. 현대미술과 고미술이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고, 동양/서양과 고전/현대를 교차하며, 번역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하는 신미경의 태도를 밀접하게 연결시켰다. 작가의 작업세계를 구성해 온 작품을 총망라하는 동시에 모더니즘 추상회화를 떠올리게 하는 대형 비누 회화 조각과 미술관 소장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낭만주의 조각 시리즈를 새롭게 선보였다.

참여작가 신미경
총괄 유승희
기획 서지은
진행 심연정
어시스턴트 조미영
진행지원 김민정, 최소연
그래픽 디자인 강구룡
공간디자인 프랍서울
공간조성 스페이스 다울
운송·설치 아트인 파인아트
사진·영상 아인아
서지은, 강수미, 테사 피터스
번역 신혜린, 전민지
주최·주관 코리아나미술관
협력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후원 (주)코리아나화장품,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매개자로서 큐레이터의 역할에 관심이 있다고요.
네, 맞아요. 물론, 미술계 안에서의 전문적인 평가나 이론적인 관점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예술과 대중을 어떻게 매개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에요. 사실 미술은 엄청난 역사가 있잖아요. 그게 사라지지 않고 인류와 함께 해왔다는 건 그만큼 예술만이 지닌 고유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시대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어요.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이 가치를 함께 나눌 방법은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을 큐레이터가 해야 하죠. 그러한 맥락에서 미술관에 소속된 큐레이터로 일하는 것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미술관은 아무래도 비영리 기관이기에 대중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는 곳이니까요.
기획한 전시 중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나요?
2019년에 기획해서 선보인 《보안이 강화되었습니다》요. 이 전시를 기획하기 직전에 슬럼프가 왔었거든요. 일을 하며 맞닥뜨린 슬럼프를 제가 다시 전시를 기획하면서 극복하게 될 줄 몰랐어요. 그런데 짧은 시간에 밀도 있게 전시 준비를 위해 리서치를 하면서 주제 자체가 너무나 흥미롭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실제 전시로 구현되기까지 몰입해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제가 전시를 통해 정말 이야기하고픈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게 된 계기였죠.
기획한 전시 이외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는지 궁금해요.
아쉽게도 전시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제가 정말 좋아하는 전시가 있어요. 2003년에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터빈홀에서 열린 올라퍼 엘리아슨의 《날씨 프로젝트》예요. 런던은 비가 많이 오는 환경적인 특성이 있잖아요. 작가는 그런 런던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공 태양을 선사했고, 사람들은 미술관 바닥에 누워 온전히 예술 작품을 감각하며 즐기는 것 같았어요. 사진과 영상으로만 봤지만, 그 장면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늘 그런 예술과 전시가 곁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올라퍼 엘리아슨은 나름의 깊은 예술세계와 철학이 있잖아요. 그 깊이가 예술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전해지면서 경험하는 일 자체가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요즘은 워낙 다양한 콘텐츠가 난무하는 시대잖아요. 왜 사람들이 미술관까지 와서 작품을 감상해야 하는지, 그리고 큐레이터로서 어떻게 이에 대한 답을 낼 것인지 계속 고민하고 있거든요. 그러한 맥락에서 이 전시가 계속 생각이 나요.
코리아나미술관은 기업미술관이죠. 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국내 여러 기관에서 일해 본 건 아니라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사립미술관으로서 관장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 큰 차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관의 정체성과 방향성이 유지될 수 있는 점은 장점인 것 같아요. 국공립미술관은 아무래도 꽤 짧은 주기로 관장직이 교체되면서 방향성이 많이 바뀌잖아요. 코리아나미술관은 기업미술관이지만, 기업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기보다 진지한 연구를 통해 전시와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국내 미술계에서 그 전문성을 인정받아 왔어요. ‘신체’와 ‘여성’, ‘미디어’, ‘퍼포먼스’ 등 지속적으로 다루는 주요 주제들이 있죠. 이를 통해 미술관만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고요. 코리아나미술관 *c-lab을 예로 들어 보면, 2016년에 제가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기획안을 작성하고 자문을 구하면서 출발한 프로젝트였는데요. 이러한 형태의 사업을 국공립미술관에서 추진하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왜냐하면 처음에 들었을 때는 굉장히 모호하고 잡히는 게 없어 보이는 프로젝트거든요. 형식 자체도 새로웠고요. 관장님께서 믿어주고, 지지해 준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고, 이후 다양한 인력들이 함께 고민하며 매년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c-lab은 모든 걸 계획하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진행하면서 많은 부분을 정하고, 그 과정 자체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어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큐레이터로서 평상시에 늘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있다면요.
한때 제 사무실 책상의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붙여 놓고, 마음에 심었던 문장이 있어요.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의 니콜라스 세로타 전 관장이 한 말이에요. “큐레이팅은 20%의 심미안과 상상력, 80%의 행정력과 팀워크, 경영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큐레이터는 미리 생각하고 앞일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20%에 해당하는 능력이 없으면 성공적인 전시를 열 수 없지만 80%의 능력이 없어 전시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면 멋진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허사가 된다.”
좋은 큐레이터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좋은 큐레이터에 대한 정의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큐레토리얼 실천을 통해 시대를 반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큐레이터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자신만의 관점으로 시대를 해석하고, 또 그에 맞는 작가와 작품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겠죠. 우리나라만 해도 매년 몇천 개의 전시가 열렸다 닫히는데, 그중 제가 기획한 전시가 작게나마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항상 고민하게 돼요. 누군가에게 시대적 감각을 일깨우거나 생각할 지점을 던져줄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전시를 볼 때 행하는 일종의 루틴이 있다면서요. 저는 커피를 정말 좋아해서, 전시를 볼 때 항상 전시장 주변의 커피 맛집을 찾아내서 들러요. 하나의 습관 혹은 취미 같은 건데, 웬만하면 전시장 근처에 괜찮은 카페가 한 곳 정도는 있더라고요. 찾은 곳이 마음에 들면, 항상 그 전시 공간을 갈 때는 그 카페에 들르려고 해요. 전시를 먼저 본 다음 카페에서 머물며 전시를 다시 생각해보거나, 커피를 먼저 마시고 카페인의 힘을 빌려 전시를 보러 가는 루틴이에요. 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제가 맛없는 밥은 먹어도 괜찮은데, 맛있는 커피만큼은 포기 못해요(웃음).
꿈꾸는 미래나 추구하는 방향성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저는 궁극적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구조적인 것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내고 제가 할 수 있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이를 위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자 노력하려 합니다.

하도경 기자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서지은 | 코리아나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2023년 상반기, 코리아나미술관과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에서 진행된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은 ‘기관의 개관 20주년을 어떻게 기념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기관의 특정 시점을 기념한다고 하면 기관의 과거 행보를 돌아보는 아카이브 형식의 전시가 많은 편인데, 이러한 상투적 성격보다는 기관의 ‘정체성’에 대한 의미있는 고찰을 담은 전시를 마련하는 것으로 2021년 기획 초기 방향을 설정했다. 스페이스씨는 2003년 개관 이래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 라는 온고지신의 설립 취지에 따라 한 건물 안에 동시대 미술을 다루는코리아나미술관과 전통화장문화를 연구하고 선보이는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을 함께 운영하며 차별화된 정체성을 구축해 왔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제도적으로 분리된 국내에서 이 둘은 상당 부분 다른 영역으로 취급되고 관리되는 터라, 한공간에서 함께 운영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렇듯 국내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스페이스 씨의 개관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은 현대미술가 신미경을 단독으로 초청하고, 스페이스씨의 정체성과 특수성을 적극 활용해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며 기존의 경계를 허무는 통합적인 관점으로 선보이고자 했다.

이를 위해 공간적으로도 미술관, 박물관 총 4개 층을 모두 이번 전시의 무대로 활용하였다. 두 개 층의 미술관에서는신미경의 신작에 집중할 수 있는 전시 공간(B1 c-gallery)을 구분하여 마련함과 동시에, 또 다른 공간(B2 c-cube)에서는 미술관의 소장품과 작가의 작품을 교차시켜서로다른분위기의 두 공간을 연출했다. 반면, 박물관식 전시 어법 안에서 소장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 5~6층의 공간은 기존 구조를 유지하되, 작가의 작품과 몇백년의 시간을 품은 유물들이 서로를 비추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전시의 맥락을 만들어냈다. 작가 신미경을 단독으로 내세웠지만 작가의 작품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소장품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했기에 일반적인 개인전과는 차별화된 방향으로 전시를 기획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기획 초기부터 막바지 전시를 완성하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작가와 미술관 학예팀이 작가 작업실과 미술관을 오갔고, 또 온라인으로 밀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며 전시의 구성 요소들을 세심하게 살폈다.

전시는 두 가지 주축으로 이루어졌는데, 먼저는 ‘뮤지엄(미술관과 박물관)’이다. 뮤지엄은 시간과 물질이 축적된 공간이다. 복합적인 역사, 연대와서사가 공존하는뮤지엄의 본질적 기능은 ‘수집(collection)’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할수 있는데, 코리아나미술관과 화장박물관은 설립자인 송파 유상옥 회장의 컬렉션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유 회장은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개인적 관심과 취미로 1970년대 초반부터 유물과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지난 50여 년간 개인 수집가로서 발품을 팔아 동서고금의 문화재와 미술품을 한 점 한 점 모아왔다. 한편, 중견 조각가신미경은 비누를 예술적 질료로 선택해 ‘시간’을 탐구하며 지난 30년 가까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수천 년 전 만들어진 대리석 조각상이나 동양의 도자기, 불상 등 문화적 생산물들을 비누로 번역하는 작업과 함께, 신미경은 화장실에 비누 조각상을 두고 관람객이 사용하게 하거나 야외에 비누조각을 설치해 비, 바람, 온도 등에 의해 물질이 소멸하는 과정 자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작업의 태도를 보인다. 이 둘은 시간과 물질을 경유하며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며 ‘되어가는(becoming)’ 과정에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시간과 물질이 신미경의 작업과 스페이스 씨의 미술관, 박물관을 관통하는 주제라면, 전시의 영문부제 ‘performing museology’는 이를 작동하게 하는 구조를 나타낸다. 이는 박물관 연구자인 키르셴블라트-짐블레트(Barbara Kirshenblatt- Gimblett)가 쓴 용어를 가져온 것인데, 그는 뮤지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informing)의 장소로서 기능하는 것에서 벗어나 ‘performing museology’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번 전시의 국문제목에서는 상응하는 표현을 고심하던 끝에 생동하는뮤지엄’으로 정했다. 결국 뮤제올로지의 수행성이 뮤지엄을 생동 시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은 작가와 미술관, 박물관의 교감으로 이루어진 전시이다. 전시기획에 있어 서로 다르면서도 공통분모를 지닌 세 요소를 어떻게 서로 교감하게 할 것 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준비했다. 뮤지올로지 안에서 여러 시간과 물질의 층위들을 교차시키며 다층적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를 통해 각 요소를 경험하고 고찰할 수 있게 하는것이 바로 기관의 20주년을 기념하는 이 전시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본래 예술적 질료가 아닌, 지극히 일상적이고 가변적 물질인 비누를 자신의 예술세계로 끌어들여 전문성을 획득한 신미경은 축적된 훈련의 시간을 통과해 정교한 기술로 고전을 번역하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축해왔다. ‘과거’로 여겨지는 것들을 자신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동시대성을 불어넣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작가의 태도는 앞서 언급했던 스페이스 씨의 설립 취지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리고 그들의 만남은 서로를 생동하게 했다.

이 둘의 만남에 많은 분이 응원과 박수를 보내주어 감사했다. 전시의 콘셉트와 작가의 선정이 미술관의 정체성에 부합해서 좋았다는 평이 많았고, 또한 일반 관람객들도 난해하지 않게 전시를 읽어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코끝을 자극하던 향긋한 비누향은 이제 사라졌지만, 20주년을 맞이한 코리아나미술관도30년 가까운 세월을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데 전념해 온 중견작가 신미경 도자기 존재와 역할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며, 계속해서 갱신을 추구해 나갈 것이다.

왼쪽 〈동경〉(사진 왼쪽) 고려-조선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소장,
신미경 〈화석화된 시간 시리즈〉(사진 오른쪽) 비누에 동박 또는 은박, 가변 크기 2018
가운데 신미경 화장실 프로젝트 비누, 바니쉬, 향료, 안료 2023
오른쪽 신미경 〈고스트 시리즈〉 비누, 바니쉬, 가변 크기 2007~2013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스페이스 씨 전시 전경 2023
제공: 코리아나미술관

송예진&장연우

제19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 부문 수상자

송예진은 홍익대와 미국 메릴랜드대 대학원(MICA)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현재 서울대에서 미술경영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2010년 아라리오갤러리 뉴욕에서 인턴으로 근무를 시작하며 미술계에 첫발을 디뎠다.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에서 학예연구원으로 로봇과 AI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2017년부터 아라리오뮤지엄에서 서울과 제주를 총괄하는 부디렉터로 재직 중이다. 서울에서는 김순기 개인전 《일화》(2017), 부지현 개인전 《궁극공간》(2018), 노상호 개인전 《더 그레이트 챕북 II》(2018), 엄태정 개인전 《은빛 날개의 꿈과 기쁨》(2022) 등을, 제주에서는 구본주 개인전 《아빠 왔다》(2017), 공성훈 개인전 《웅덩이》(2019), 씨킴 개인전 《I Have a Dream》(2021) 등을 기획했다.

장연우는 이화여대 미술사학과와 미국 카네기 멜론대 예술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리움미술관 인턴, 페스티벌 봄, 이화여대 박물관 연구원을 거쳐 2014년 개관 때부터 현재까지 아라리오뮤지엄 선임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아라리오뮤지엄 개관전 《아라리오컬렉션》(2014), 《텍스트가 조각난 곳》(2016), 이동욱 개인전 《Low Tide》(2016), 김순기 개인전 《일화》(2017), 이진주 개인전 《사각》(2020) 등을 기획했다.

《정강자: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
2023.3.30~2023.9.10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정강자가 1990년 쓴 자전적 에세이의 제목이자 전시 제목인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는 작가가 서문을 통해 이야기한 창작의 고된 여정과 꿈과 이상의 실현 어려움을 그대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는 1960~1970년대 전위적 실험미술을 이끌던 시기 이후인 1970~1980년대 정강자의 회화와 바틱(Batik) 작품들을 중심으로 그녀의 삶과 예술의 여정에 초점을 맞췄다. 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 송예진과 선임큐레이터 장연우가 공동 기획한 전시는 예술가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갔던 정강자의 작품들을 살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일상과 예술, 현실과 이상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했다고 평가받았다. 전시작 중 하나인 정강자의 데뷔작 〈키스 미〉(1967)는 같은 해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과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도 전시됐다.

참여작가 정강자
기획 송예진, 장연우
디자인 양웅
번역 김지나
사진 정현목(스튜디오 랑)

아라리오뮤지엄은 갤러리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이라는 생각 때문에 근무하는 큐레이터 이력이나 시작 계기가 더 궁금한데요. 처음 어떻게 큐레이터가 되었고, 아라리오뮤지엄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요?
장연우 어릴 때부터 큐레이터가 꿈은 아니었어요. 미술사와 예술경영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나서야 어떤 쪽으로 취업을 할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 현장 경험을 해 보라는 교수님의 권유로 사립기관에서 연구직으로 짧게 근무하고 프로젝트, 대학 미술관 등을 경험하고 2014년에 아라리오뮤지엄 개관 멤버로 처음 입사하게 됐어요.
송예진 저도 비슷해요. 처음부터 큐레이터를 생각한 건 아니었고요. 실기를 전공해서 작가를 생각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이후 뉴욕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인턴을 하면서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귀국해서도 갤러리스트로 5년 정도 근무하고 아트센터 나비 학예팀에서 2년 정도 근무하는 동안 본격적인 ‘연구자’로서의 큐레이터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그리고 나서 아라리오뮤지엄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일반 사립 미술관과 갤러리 뮤지엄의 작가 선정 기준은 다를 것 같은데, 작가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요?
송예진 몇 가지로 특정하기는 어렵고 다층적인 방식으로 결정돼요. 소장품 기반의 뮤지엄이라는 특성상 컬렉션 여부를 많이 고민합니다. 그래서 담론을 펼치는 기획전보다는 한 작가의 세계를 집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개인전이 주로 진행되는 편이에요. 또 서울과 제주 모두 공간을 재생시킨 각각의 특징이 있어서 거기에 맞는 작가를 선정하기도 합니다.
월간미술대상을 받은 《정강자: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 전시는 공동기획이지만 큐레이터로서 각자의 특징이나 방향이 있을 것 같은데요. 각자의 큐레토리얼십 또는 특징들이 있을까요?
장연우 저는 개인적으로 작가 한 명, 한 명의 특징을 깊이 알아가고 연구하는 것을 선호하는데요. 그게 아라리오의 전시기획 방향과도 잘 맞는 것 같아요. 전시 기간이 길고 그만큼 다른 기관에 비해 준비 기간도 긴 편이거든요. 한 작가를 깊이 있게 연구해야 작가만의 특징을 큐레이터가 끄집어내고 조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때 전시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소비되는 전시가 아닌 유의미한 전시가 되기 위해 전달자로서 노력합니다.
송예진 저는 협업자의 역할이 강한 것 같아요. 큐레이터가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의 협업이 필요하거든요. 때문에 큐레이터는 기획을 완벽하게 해서 모두가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하는 협업자인 것 같습니다.
큐레이터의 역할 또는 소양은 무엇일까요?
송예진 저는 ‘열정’을 꼽고 싶어요. 제가 그런 성향이어서 그럴 수도 있는데요. 하고 싶은 일이 많거나 하려는 일에 열정적인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받더라고요. 그래서 그 열정 혹은 열망이 함께 하는 사람들과 일에 추진력이 되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포용력’인데요. 본인만의 욕망으로 열정을 갖는 게 아니라 모두를 한 팀으로 함께 끌어나가는 포용력이 사람도 일도 성장하게 하는 것 같아요. 이건 제가 함께 일한 선배들을 보면서 느낀거고 저도 배우고 싶은 점이기도 합니다.
장연우 저는 포용력과 비슷하긴 한데 ‘열린 사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새로운 작가, 작품 방식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니까 한정된 사고나
방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이런 변화를 수용하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게 또 예술이고요. 열정과도 비슷한데 잘하고 못하는 걸 떠나서 하려고 하는 의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처음은 다 어렵고 서툴잖아요. 그런데 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으면 결국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큐레이터가 항상 기획만 하는 것은 아니어서 소소하고 다양한 일들이 더 많을 때도 있는데 그 모든 걸 포함해서 하려고 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의 목표 혹은 예정된 계획이 있을까요?
장연우 저는 서양 중심의 미술사를 공부하고 현대미술을 전공한 사람인데요. 요즘은 동양화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 중에서도 현대미술을 하는 작가가 많잖아요. 서구의 시선에서 벗어나 그런 작가들의 작품, 방향성, 이전과 이후의 행보들을 연구하고 전시로 꾸며보는 것도 유의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송예진 관심사도 많고 그 주제도 종종 바뀌는데요. 현재는 탈맥락화에서 파생되는 주제들을 관심있게 보고 있어요. 탈젠터, 탈인간 등 많은 것이 해당될 수 있는데 그런 다양한 가능성의 세상을 보여주는 전시를 기획해 보려고 해요. 특히 인간의 나르시시즘을 벗어나서 ‘비인간적 존재’와의 협업을 통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의 모순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정소영 기자

화실은 나만의 우주다-정강자의 여정을 함께하며
송예진 | 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 장연우 | 아라리오뮤지엄 선임 큐레이터

한국 실험미술에서 정강자의 중요성은 많은 이가 인지하고 있지만 <한강변의 타살>(1968), <투명 풍선과 누드>(1968)와 같은 파격적인 퍼포먼스 이외에 작가 자체나 작업 전반에 대한 조명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몇 년 전부터 정강자를 깊게 알아 볼 수 있는 개인전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면서 전시 개최 시기를 조율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60~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재조명하는 미술계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2023년 초 전시를 개최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2000년대 초반,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이 천안에서 정강자를 만나 <키스미>(1967)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언젠가 미술관을 열면 함께 전시를 해보자고 한지 20여 년 만의 일이다.

추운 겨울, 전시 준비를 위해 작가 유족이 관리하고 있는 작품 수장고를 방문했다. 큐레이터, 컨서베이터, 레지스트라, 아트 핸들러들과 함께 작품을 내리고, 포장을 풀어 실견하고 온종일 사진 촬영을 했다. 입김이 나오고 손이 곱아 어줍었지만, 한 점이라도 더 보고 싶은 생각에 추운 줄도 모르고 종일 작품을 열고 닫았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기획전시장은 큰 규모는 아니지만, 문화재라는 공간이 주는 무게가 있어 언제나 전시 준비가 쉽지 않다.

기획전 공간은 1970년대에 김수근 건축가가 지은 (구)공간사옥 건물의 가장 은밀하고 깊숙한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오랫동안 ‘공간사랑’으로 불렸으며, 김덕수 사물놀이 초연을 비롯해 수많은 실험예술가가 공연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붉은 벽돌과 아치로 이루어진 비대칭 벽, 약 1m 높이에서 공간을 내려다본 뒤, 계단 아래로 내려가 작품을 접하게 되는 독특한 중층구조 탓에 전시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시뮬레이션을 거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실제로 작품을 모두 보고 전시를 구상하는 편이다.

작품 실견과 동시에 가능한 정강자의 전 생애 작품들과 작가가 남긴 자료들을 확인하고 그간의 전시와 연구, 언론기사에서 정강자와 그녀의 작품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검토했다. 여기서 몇몇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전시와 학술연구모두퍼포먼스 등 1960~1970년 초까지의 작품들 위주로 집중 조명했고 중반기와 말년 작품들에 대한 언급은 많지 않았으며, 작가 개인에 대한 연구 역시 부족했다. 또 여성이기에 다른 남성 실험미술작가들보다 설 자리가 더욱 좁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작품들을 확인 하면서는 자화상 작품의 비중이 상당히 높음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며 전시의 주제는 1960년대 퍼포먼스사진부터 작고 전 그린 영정(회화까지 반세기에 걸친 시대별 자화상들을 전시하여 한국실험미술의 최전선에 있던 1세대 전위예술가정강자의 꿈과 좌절, 도전을 주제로 여성, 노동자, 방랑자로서의 삶의 궤적을 조명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작가가 발간한 수필집, 일기 등 개인 사료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전시 제목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 역시 정강자가 1990년 쓴 자전적 에세이의 제목이다. 정강자는 회화, 조각, 바틱,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었다. 그녀는 말년까지 예술가로서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고 개인적 삶도 편치 않았으나 어떤 상황에서도 예술을 삶 그 자체이자 궁극적 목적으로 삼았던 항상 열정 넘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작가였다. 따라서 설치 측면에서도 이러한 다양성과 역동성이 보일 수 있기를 바랐다.전시의 시작은 1960~1970년대 퍼포먼스와 초기 아카이브 자료들이었다. 처음에는 기존에 많이 알려졌던 시기는 제외할까 고민했지만, 작가로서의 삶에서도 중요한 시기였고 이후 작업을 이해하는데 밑받침이 되기에 전시에 포함 시켰다. 메인 전시장에서는 연대기별 설치를 지양하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역동성을 보여주기 위해 싱가포르에서 제작했던 바틱(batik) 작품들을 천장에 걸고 폭 7m의 대형 회화 옆에 30호 정도 되는 작은 회화를 설치하는 등 변주를 주었다. 마지막 공간에는 자화상 세 점을 설치했다. 처음 두 점에는 결혼 전 젊고 풋풋했던 연애 시절과 육아와 작업을 병행하며 고군분투하던 시기의 모습들이, 마지막 작품에는 작가가 위암 수술을 받은 후, 자신의 장례식장을 방문하는 장면을 상상한 모습의 작품을 통해 전시 관람을 마무리하며 한눈에 작가의 전 생애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더 많은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초기 조각 작품들은 보관의 문제로 대부분 작가가 생전에 폐기했고 기획 전시장 규모도 작은 편이라 압축적으로 선별해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점이 아쉽다.

생각보다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놀랐다. 특히 육아와 작업을 병행하던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 <화실>(1977) 작품이 큰 주목을 받았다. 이 그림은 어린 딸을 업고 지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작가의 자화상이다. 그림 속 작가는 캔버스 위에 또 다른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날개를 달고 날아가고싶지만각각의 날개에 어린아이가 한 명씩 매달려 있어서 작가는 끝내 날지 못한다. 바닥에는 곰 인형이 절규하고 있고, 철 모르는 어린 아들은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1960년대 후반 선보인 작가의 국내 첫 누드 퍼포먼스와 인간 본연으로의 해방을 추구한 해프닝들은 선정성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꿈꾸며 혼자만의 고독한 투쟁을 이어나갔다. 여성 작가로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며 작업을 끝까지 놓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작가의 모습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정강자의 회화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 전시 역시, 되돌아보니 작가론보다는 여성 작가로서의 삶에 좀 더 초점을 맞춘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 정강자가 실험미술 이후 평생을 열중해 온 작품 세계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왼쪽 〈무제〉(사진 오른쪽) 바틱 90×61cm 1980
가운데 정강자 〈미세스 케이〉 바틱 92.5×58cm 1979
오른쪽 〈화실〉(사진 가운데) 캔버스에 유채 162.2×130.3cm 1977
《정강자: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전시 전경 2023
사진: 정현목 제공: 아라리오뮤지엄

이준광

제19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 부문 수상자

홍익대에서 미술사학 석사학위를 받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1년 리움미술관에 입사해 현재 학예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연구로는 「개성 영통사지 출토 청자 연구」(2018)와 「고려청자 파초문의 의미와 전개」(2021)가 있으며, 주요 기획전시로는 《수호의 염원》(2015),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2023)이 있다.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2023.2.28~2023.5.28 리움미술관

리움미술관은 개관 이후 처음으로 도자기를 주제로 한 기획전을 마련해 선보였다.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전은 조선백자를 장식기법과 생산지에 따라 간결하게 구분하고, 그 안에 이상적 인간상으로 여기던 군자의 풍모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해 조선백자 감상에 새로운 지평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부 ‘절정, 조선백자’에서는 국가지정문화재 등 대표작을, 2부 ‘청화백자’에서는 왕실과 사대부의 위엄과 품격, 변화의 흐름을 조명했다. 3부 ‘철화·동화백자’에서는 안료의 변화 속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모습의 격조와 해학을 다루었으며, 마지막 4부 ‘순백자’에서는 백자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백색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선의 최고급 백자에서 일반 서민의 백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선백자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었던 전시는 백자를 군자로 해석한 기획자의 의도가 더해져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기획 이준광
진행 이광배, 이승미, 배현수
보존 강민재, 고민정
교육 김태림
영 김정회, 김정현, 오세현
홍보·마케팅 최인, 양성일, 한미소, 조수연
행사기획 이정진, 김태영, 김영광, 박은비
그래픽 디자인 이경수(워크룸)
그래픽 지원 이경민
공간디자인 김세진(지요건축사사무소)
공간조성 김성태, 류인혜
조명 윤병수
번역 박명숙, 필립 마허(예술번역), 장퉁방, 다시로 유이치로
사진 김현수(K2스튜디오)

국내에 고미술 학예사는 드문 것 같은데, 어떻게 고미술 큐레이터가 되었나요?
아주 어릴 때부터 유적지 답사와 유물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대학교 전공을 사학으로 정하게 됐는데요. 사학 중에서도 미술사학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넓게 공부해서 조금씩 범위가 좁아지게 된 거죠. 미술사학 안에도 여러 분야가 있는데 저는 그중에서도 도자에 관심을 갖고 논문을 준비했습니다. 리움미술관은 대학원 마지막 학기 때 인턴을 한 인연이 있었는데, 석사 졸업논문을 끝낸 2011년에 도자사 지원을 통해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고미술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고미술은 오백 년 전, 천 년 전 선조들이 귀하게 여기고 지금까지 보존해온 거잖아요. 고미술 학예사는 그 아름다움을 미리 알고 다음 세대에 이를 전달하는 사람이에요. 개인적으로 고미술을 산에 비유하곤 해요. 같은 산이라고 해도 등산로에 따라 바라보는 풍경은 다르거든요. 고미술이 그런 매력이 있어요. 어떨 때는 실증주의적으로 옛사람들의 증거로 보여줄 수도 있고, 술과 같이 한 가지 테마로 시대별, 형태별로 살펴볼 수도 있고요. 또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할 수도 있어요. 클래식의 힘과 같이 음미할수록 새로운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고미술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데요. 고미술 큐레이터의 자질은 무엇인가요?
어떻게 보면 작가의 작품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을 해석함에 있어서 연구자이자 기획자의 자유도가 더 높아요. 그래서 폭넓게 작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반면에 그만큼의 책임감이 따라온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택에 대한 책임감이 중요할 것 같고요. 이건 개인적인 다짐이기도 한데요. 기획하는 전시를 내 전시라고 생각하지 않고 함께하는 모두의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해요. 누가 누구의 전시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저를 포함한 모든 직원이 공동의 결과를 얻기 위해 서로를 지탱하는 것이 고미술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현대미술 큐레이터가 본인의 역량과 기량을 드러내는 전시를 해야 한다면, 고미술 전시기획은 공동의 결과물로 인식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이번 전시를 포함해서 리움의 소장품이 아닌 상태에서 혼자 백자 전시를 지금의 성과로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고미술 전시를 준비하면서 고려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모든 전시를 동일하게 준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전시를 기준으로 설명하면 고미술을 공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작품 그대로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을 가장 먼저 고려했습니다. 그래서 시각적으로 작품의 변화나 구분이 쉬울 수 있게 작품을 구별하고 도자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벽부장이 아닌 전시 공간 중앙에 장을 띄우는 방법을 고안했고요. 조명도의 각도, 밝기, 장의 높낮이에 따른 인식의 차이 전반을 고려합니다. 물론 이 모든 걸 혼자 하는 것은 아니고 작품의 분류와 콘셉트를 정하고 나서 공간 디자이너들과 상의를 거칩니다. 더 세밀하게 들어가자면 월 텍스트의 폭을 정할 때도 관람자가 걸음을 옮기지 않고 한번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지 측정하고 여러 전문가와 논의하면서 변형합니다.
고미술 학예사의 일에서 루틴도 궁금합니다.
분야에 상관없이 학예사는 다 비슷하겠지만 일단 몇 년에 걸친 전시 계획들이 있고요, 물론 중간에 시기성이나 현장성을 고려해서 변경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리스트를 가지고 전시를 준비하게 됩니다. 고미술은 전시 기간과 준비 기간이 2년 주기로 현대미술에 비해 다소 긴 편이기 때문에 기획하는 전시가 없을 때는 전시의 토대가 되는 개인 연구와 학회 발표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사실 대형 기획전시 말고도 상설전과 대중강연들이 있어서 항상 바쁘게 진행되는 편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립미술관의 컬렉션이 중단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리움에서의 고미술 컬렉션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리움미술관에서는 지속적으로 컬렉션 확보를 위해 노력합니다. 다만 컬렉팅할 수 있는 고미술 작품이 제한적이다 보니 주기적인 컬렉팅을 통한 작품 수의 확보보다는 컬렉션 리스트의 중첩을 피하고 빈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진행하고자 하는 전시나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
이번에 백자가 큰 사랑을 받아서 다음에는 분청사기에 관한 전시를 한번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분청사기는 백자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거든요. 쉽게 설명하면 백자는 귀족적인 위엄이 있는 작품과 서민적이고 자유스러운 작품이 혼재한다면 분청사기는 정해진 규격이 없어서 하나하나의 재미요소가 있어요. 그 형태나 사용 면에서도 위트가 있거든요. 프로그램으로 치면 예능 같은 분야라서 더 많은 사람에게 친숙하게 도자의 매력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고미술에도 현대적 감각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가 백자전을 한 것은 제 역량만이 아니라 앞선 선배들의 연구와 노력의 토양이 잘 다져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시 말고 개인적인 목표라면, 역량 좋은 후배에게 아낌없이 노하우를 전달해주고 그게 고미술 안에서 발전적인 방향으로 대물림되기를 바랍니다.

정소영 기자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새로운 관람자층을 위한 전시연출
이준광 |
리움미술관 책임연구원

지난 2월 28일부터 5월 28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전을 개최했다. 리움에서는 2004년 개관한 이래 여러 고미술기획전을 선보여 왔으나 소장품의 근간이라 할수 있는 도자기 주제기획전은 개최한 사례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고미술 전시 주제의 다각화를 시도하고 동시에 관람객들에게 한국도자기의 높은 수준을 전하기 위해 조선백자 전체를 조망하는 이른바 ‘조선백자 토탈전’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조선백자는 전하는 작품의 수가 많아 그간 장식기법이나 주요 기종에 초점을 맞춰 소개되었다. 주제에 따른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 의미 있는 작업이었으나 방대한 조선백자를 총괄하여 살펴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최고급 백자에서 질박한민수용 백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선백자를 대상으로 전시를 구성하고자 했다.

수많은 조선백자 중 일부를 선발하여 전시해야 하는 만큼 구성은 간단하면서도 그 변화가 시각적으로 쉽게 구분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백자를 장식기법에 따라 ‘청화백자’, ‘철화동화백자’, ‘순백자’로 나누었다. 이 중 고급 백자인 ‘청화백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방에서도 제작되었기 때문에 각종류의 백자를 생산지에 따라 ‘중앙’과 ‘지방’으로 다시 나누어 구성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조선 사람들이 이상적인 유교적 인간상으로 여긴 군자의 풍모가 담겨 있다는 해석을 더해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안했다.

최근 전시를 즐기는 문화 향유층이 상당히 두터워졌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고미술을 대할 때면 무언가 학습을 해야 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이 전시의 연출은 고미술이 가진 숨은 매력을 전할 수 있고, 편안한 감상의 대상으로 여기게 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고미술이 생소한 젊은 관람자층을 고미술 애호가로 정착 시켜 장기적인 향유층으로 유치하고자 하는 목적을 세운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콘텐츠인 최고의 백자와 이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색다른 연출이 필요했다. 전시품인 백자는 국보,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절반을 한자리에 모으고, 최초 공개 작품을 갖추며, 한국에서 접할 수 없는 일본 소재 백자를 소개하는 것으로 콘텐츠를 구성했다.

갖추어진 콘텐츠는 전시연출이 더해져 그 가치를 더할수 있었다. 먼저 입체물인 백자를 충분히 감상할수있도록 모든 작품을 360도 돌아볼수있는배치를 선택했다. 이를 기조로 첫 전시공간 ‘블랙박스’에서는 극도로 어두운 공간에 백자만을 강조한 조명을 활용해 관람객들의 집중력이 높은 동선에 스펙터클한 첫인상을 받도록 했다. 그리고 통상보다 10cm 높게 작품을 배치하여 국보, 보물의 위엄이 강조되도록 했다. 상부에 조명 케이스가 없는 높은 쇼케이스를 사용해 관람 시야방해 요소를 제거하고, 이를 통해 아득히 어두워지는 천장과 별빛 같은 조명이 어우러지게 했다. 전시장 후미에 계단을 설치하여 다른 시각에서 전체 신을 조망하는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했다.

두 번째 전시공간 ‘그라운드 갤러리’에서는 ‘블랙박스’와는 달리 밝고 편안한 분위기로 관람객 환기를 꾀했다. 자칫 공간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수 있는 6.1m의 충고를 활용하기 위해 연출과 공간 조명을 겸하는 장치를 마련해 설치하였다. 또한 관람객이 백자를 더욱 가깝고 친숙하게 느끼게 안전을위한거리를 고려하여 노출전시를 시도하였다. 마지막으로 꾸준히 개선하고 있는 리움미술관 DID(Digital Interactive Display)를 활용하여 도자기 속그림을 활짝 펼쳐 보이는 연출을 더했다.

명품에 새로운 연출을 더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전시가 진행된 석 달간 리움미술관 역대 고미술 전시 중 가장 많은 10만여 명의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다. 젊은 층이 많아져 관람객 연령대가 다양해졌고, 전시를 2회 이상 찾아주는 N차 관람객도 많았다는 소식을 들으니 고미술은 공부의 대상이라는 대중의 인식에 변화가 찾아온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명한 말이 때로는 관람객의 자유로운 감상을 막는 것을 볼 때가 많다. 그러나 관람객이 자신만의 배경으로 풀어낸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들은 역사적 사실에 가려 보이지 않던 조선백자의 매력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이제는 알던 것으로도 보인다’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조선백자와 나아가 우리 고미술을 바라보는 정서가 확장되기를 바란다.그때 생기는 개성 넘치는 감정들이 감상의 자신감을 가져다줄 것이다.

앞으로도 고미술 전시를 통해 새롭고 실험적인 전시연출을 지속적으로 시도해나갈 것이다

왼쪽, 오른쪽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리움미술관 전시전경 2023
가운데 〈백자대호〉(사진 가운데) 조선 18세기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리움미술관 전시전경 2023
사진: 김현수 제공: 리움미술관

조주현

제19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 부문 수상자

2003년 이응노미술관 큐레이터로 전시기획을 시작해 MMCA 레지던시 프로그램매니저,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일민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역임했으며, 2021~2022 아르코 국제예술공동기금 한국-네덜란드 교류협력프로그램 총괄기획자, 2023년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네덜란드 파빌리온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현재 연세대, 이화여대, 고려대, 동국대 등에서 강의하며 KAIST 인류세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주요 기획전시로는 《Dear Amazon: 인류세 2019-2021》, 《공동체 아카이브: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 《do it》(2017) 등이 있으며, 최근 다학제적 큐레토리얼 리서치 프로젝트로 드리프팅 커리큘럼(Drifting Curriculum)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뉴노멀 뮤지엄: 온라인 플랫폼과 관객 참여」(2021) 외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훌륭한 전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2011, 미메시스), 『한 권으로 읽는 현대미술』(2017, 마로니에북스) 등을 번역하였다.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CICC):
재판정에 선 법》
2022.7.8~2022.12.4 문화비축기지T4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CICC):
멸종전쟁》
2023.4.5~2023.7.30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네덜란드 파빌리온

국가와 기업이 저지른 기후범죄에 대해 기소하는 대안 법정인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CICC)’는 암스테르담의 동시대 문화예술기관인 프레이머 프레임드(Framer Framed)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네덜란드 예술가 요나스 스탈(Jonas Staal)과 인도 출신의 법학자이자 변호사, 활동가인 라다 드수자(Radha D’Souza)와 조주현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한국에서 전시가 탄생했다.
주제와 장소를 달리해 진행된 전시는 2022년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CICC): 재판정에 선 법》을 시작으로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네덜란드 파빌리온 전시로 이어졌다. 다양한 사회운동 단체와 활동가들이 증인으로 참석한 전시 퍼포먼스는 한국의 맥락에서 국가와 기업이 지속적으로 기후범죄를 방조하는 방식에 대해 증언하였다.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CICC): 재판정에 선 법》
참여작가 라다 드수자, 요나스 스탈
기획 조주현
코디네이터 김지영, 박혜리, 나딘 구더스
어시스던트 전서영, 조원
그래픽 디자인 임하영, 디나라 바실레브스카이아
건축가 폴 카이퍼스
공간연출 김현준
제작 Drifting Curriculum,
ARKO국제예술공동기금사업
『2021-2022 한국 – 네덜란드 교류 협력 프로그램』
파트너 Framer Framed, Amsterdam
협력 DutchCulture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네덜란드대사관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CICC): 멸종전쟁》
참여작가 라다 드수자, 요나스 스탈
기획 조주현
프로젝트팀 프레이머 프레임드(요신 피터르서, 카스 볼)
공청회 공동 프로그래머 김지영
프로덕션 매니저 구예나
스튜디오 요나스 스탈 프로덕션 코디네이터 나딘 하우더스
연구·커뮤니케이션 손하혜
커뮤니케이션 스테판 와르턴
그래픽 디자인 임하영, 디나라 바실레브스카야
건축 폴 카이퍼스
설치·시공 표창연
사진 정필름
주최 광주비엔날레, 광주광역시
공동 커미션·제작 프레이머 프레임드,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협력 광주시립미술관
후원 주한네덜란드대사관, 몬드리안펀드,
네덜란드 교육문화과학부,
암스테르담예술기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어떻게 큐레이터가 되셨나요?
원래 어릴 때부터 미술을 전공했는데, 미대에 입학한 후에는 다른 전공 수업을 들을 기회가 많아지면서, 작가보다는 적극적으로 사회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는 삶을 더 꿈꾸게 되었어요. 지금은 사회적 실천을 예술의 방법론으로 삼고 있는 작가가 많지만, 학부생으로서 당시에는 스튜디오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것밖에 상상할 수 없었어요. 2000년에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런던으로 가서 대학원에 진학해 현대미술사를 전공했어요. 그곳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자넷 카디프(Janet Cardiff)의 〈사운드 산책〉 시리즈 등 공공미술 프로젝트 중심으로 석사논문을 쓰면서 매체와 공공성, 실험적 내러티브 형식의 예술에 매료되었고, 지금까지 그 관심에서 크게 벗어난 적은 없어요. 논문을 마칠 무렵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의 한국관에서 북한현대미술 전시와 컬렉션 카탈로그 작업 등을 도우며 리서치를 하다가 분단과 관련해 한국 근현대미술 역사에 드러나지 않은 내러티브를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2003년 1월에 서울 이응노미술관에 입사해 처음 큐레이터로 일을 시작했어요.
기관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독립 큐레이터가 됐는데, 변화를 결심한 계기와 소속이 있는 큐레이터와 독립 큐레이터의 장단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지금까지 MMCA 레지던시, 서울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등의 기관에서 대략 5년씩 근무를 했어요. 일할 때는 기관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역동적으로 일했는데요. 만물의 생장 원리처럼 어느 단계에서는 그 역동성의 에너지 양상이 좀 달라져요. 강도의 문제는 아니고, 다른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 오는 것 같아요. 30대 중반 5년은 박사논문을 쓰며 연구만 할 생각으로 현장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적도 있었고, 이번엔 독립 큐레이터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국제교류 프로젝트를 선택했어요. 소속이 있는 큐레이터로 일을 하면, 지금까지 느꼈던 것처럼 조직과 함께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내가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는 것 같아요. 반면 당연히 기관의 미션에 맞춰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니, 개인적인 관심사를 꾸준히 끌고 가기는 어렵죠. 독립 큐레이터의 장점은 개인의 전문성을 여과 없이 발휘할 수 있다는 것, 제약 없이 자율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하나의 조직을 중심에 두고 가능성을 조율하는 기관 큐레이터 업무보다 무한한 세계와 나 자신의 관계 안에서 가능성을 조율해나가는 독립 큐레이터의 일이 훨씬 더 높은 숙련도를 요구해요. 각자 큐레이터 성향이나 배경에 따라 다르게 느낄 것 같긴 해요.
요즘 관심 갖는 전시 주제와 본인의 큐레토리얼에 대해 궁금합니다
최근 몇 년간은 ‘연대’와 ‘협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특히 기후위기 시대의 큐레토리얼십에 대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해오면서 국가 간, 세대 간, 학제 간 경계를 초월한 연대와 협업이 가능한 큐레토리얼십을 시도하고자 노력해왔어요. 이번에 상을 받은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CICC)》 전시도 그 일환이고요.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지금의 인식론적 패러다임에서 예술의 형식, 전시의 방법론이 근대적 사고방식에 기반한 개인의 저자성을 넘어 연대와 협업을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큐레이터로서 무엇을 이뤄야겠다거나 목표하는 바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매번 기획의 의제가 있고, 그 어젠다를 실행할 목표가 생기면 큐레이터로서 삶의 에너지가 생겨요. 그리고 그걸 펼쳐내는 데 고민하고 연구하는 시간이 길지만, 학제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 것 같아요.
큐레이터의 역할 또는 소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큐레이터의 역할은 기관에 따라 그리고 개인의 성향에 따라 매우 다양할 거예요. 관리자로서의 큐레이터와 연구자로서의 큐레이터가 전혀 다른 역할과 소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무엇이 더 훌륭한 큐레이터의 모델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죠.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큐레이터는 연구와 관리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매우 독특한 직업군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이에서 관리에 방점을 둘 때 얻을 수 있는 이점과 연구에 방점을 둘 때 얻는 이점이 다르죠. 개인적으로 큐레이터는 예술을 매개로 사회에 공헌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예술계 일원으로 사회와 공동체가 정의롭게 미래 세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방향을 제안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큐레이터의 소양이라면, 넓고 깊은 시야를 갖는 것, 그 광활한 시공간 안에서 어딘가에 정확히 꽂힐 수 있는 예리한 촉수를 지니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해요.

정소영 기자

상호 돌봄의 전술: 세대간, 상호의존, 재생하는
조주현 | 독립큐레이터,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20여 년간 국공립,사립미술관에 소속되어 많은 전시를 만들어왔지만, 이 전시는 독립기획자로 일하며 만든 첫 번째 프로젝트였다. 일민미술관 학예실장을 그만두고 독립큐레이터가 된 2021년 여름, ‘ARKO-DutchCulture 국제예술공동기금사업’의 하나인 ‘2021-2022 한국-네덜란드 교류협력프로그램’아르코 총괄기획자로 선정되어 2년 동안 리서치와 협력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총괄기획자로 지원할 당시 이 프로젝트를 위해 제안한 ‘그린뉴딜을 위한 탈식민적 큐레토리얼 어젠다’라는 주제로 네덜란드의 여러 예술기관과 큐레이터, 아티스트들을 리서치하기 시작했고, 같은 목표와 관심사를 지닌 다양한 기관의 관계자 등을 접촉하며 연대를 위한 다학제적 리서치 플랫폼 ‘Drifting Curriculum’을 만들었다.

이 플랫폼을 통해 아시아와 유럽 등지에서 활동하며 예술, 과학, 사회학, 인류학, 법학, 철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인류세 담론을 연구하는 10명의 보드 멤버를 중심으로 학자, 큐레이터, 아티스트, 활동가,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초기 멤버 40여 팀을 조직해 재난과 기후위기에 대한 정책적, 입법적, 제도적 문제에 예술적 개입을 시도하고자 했다. ‘세대 간 기후 범죄 재판소(이하 CICC)’를 설립한 네덜란드 작가 요나스스탈(Jonas Staal)과 인도출신의 변호사이자 법학자, 활동가인 라다드수자(Radha D’Souza)도 보드 멤버로 참여해 제국주의와 세계화를 뒷받침해 온 근대 법을 비판하고, 대안적 법으로 ‘세대 간 기후범죄법을 제안하며 그 법이 실현될 수 있는 대안 법정인 CICC의 한국 지부를 설립한 것이었다.

‘CICC’가 2021년 9월 암스테르담 문화공간 프레이머 프레임드에서 처음 개소했을 당시, 온라인으로 네 번의 증거 재판 퍼포먼스를 지켜보게 되었다. 네덜란드 정부와 유니레버(Unilever), 아이엔지(ING), 에어버스(Airbus) 등 네덜란드에 등록된 초국적 기업들을 기소하여 관련해 투쟁해온 원주민 커뮤니티, 그들과 연대해 온 여러 환경단체, 활동가, 학자, 변호사 등이 주류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던 자신들의 역사적 사실들을 증언하고, 그 문제들에 대해 많은 이가 연대하고 공론의 장이 펼쳐지는 모습을 보며, 제국주의의 뿌리가 세계화를 통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과 결과를 가져왔는지 우리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화이트큐브에 순수예술이 아닌 다른 사회제도를 이식하고, 그러한 사회제도가 예술이 된다면 어떨까 상상하곤 했다. 미술인으로 살아오며 이사회가 예술을 대하는 양가적 태도, 대중적으로 무한한 신뢰를 얻으면서 동시에 현실에서는 잉여적 활동이라는 시선에 대해 개인적으로 허탈감을 느끼며, 예술이 실질적으로 사회적, 제도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서울과 광주에서 두 차례에 걸쳐 ‘CICC’의 한국 지부를 개소하고 예술공간에 세워진 재판소에서 포럼과 증거재판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동안 다양한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통해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찾을 수 있었다.

광주에 세워진 ‘CICC’ 증거재판에 참여한 중인 중 한 분은 미국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수를 지내던 중 자신의 고향인 삼척에 석탄화력발전소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한국의 대기업과 정부의 공모로 지역 공동체가 처참하게 파괴됨을 목격하고 바로 고향으로 귀환해 지역활동가로 일하고 계셨다. 삼척지역에서 벌어진 문제들을 증언하며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한 배심원이 눈물의 의미를 묻자 그는 자신이 미술관, 그것도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국제적 예술 행사가 마련한 자리에서 지역민과 생태계의 생존 문제를 이야기하고 모두가 그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이 순간이 감정을 벅차오르게 했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행정당국과의 회의 자리에서, 심지어 지역민들 사이에서 이들이 외치는 목소리는 외면 당하는 것이 일상이다. 경제적, 정치적 이해 대립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나와 다른 입장을 지닌 이들의 목소리를 차단한 채 각자의 아우성만 소음으로 남긴다. 예술은 이러한 갈등을 하나의 모델로 만들어 시뮬레이션함으로써 내가 속한 현실이 아닌 하나의 대상, 사건으로 다양한 시간과 공간들을 경유하며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광주시립미술관 본관에 설치된 ‘CICC’는 관객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하거나,  메자닌에서 재판 현장을 버즈아이뷰(bird’s eye view)로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마치 트루먼쇼를 바라보듯 우리의 현실을 프레임화하여 거리를 두게 만들어, 특정 이슈에 대해 개인의 이익에 함몰되기보다 넓은 시야에서 타인의 입장도 동등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사회제도에 도전하는 예술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폭으로 현실에 개입해 변화의 진동을 만든다. ‘CICC’는 서울문화비축기지와 광주시립미술관에 지부를 개소한 2년 동안 환경법을 연구하는 단체, 정책전문가, 활동가, 언론인,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세대 간 기후범죄법’을 자신의 분야에 적용하고, 실천을 위한 이론화를 시도했다.

광주비엔날레 네덜란드 파빌리온에서 ‘CICC’를 보신 많은 분이 경직된 조직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도전적인 전시라는 점을 언급해주셨다. 광주시와 비엔날레 재단, 광주시립미술관, 주한네덜란드대사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같은 공공기관의 주최와 후원으로 이루어진 전시임에도 한국과 네덜란드 정부, 양 국가의 기업들을 기후범죄로 기소하는 ‘행동주의 예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해주셨고 오히려 큰 격려와 용기를 주셨다.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가 국가 간 경계, 경쟁의 논리가 아닌 ‘행성적 위기’를 인식한 인간 너머의 공동체를 위한 열린 포럼의 장으로 기능할수 있도록 적극적인 장을 마련해주신 덕분에 가능했다. 보이지 않던 세계에 대해 큰 영감을 준 아티스트요나스 스탈과라다드수자, 암스테르담 프레이머 프레임드 관계자 여러분 및 평화바람, 전쟁없는 세상, 청년기후긴급행동 등 한국의 환경단체 활동가분들과 프로덕션 팀에 모든 공을 돌린다.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 멸종전쟁》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네덜란드 파빌리온 전시 전경 2023
사진: 정필름 제공: (재)광주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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