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와 작가미술장터
10년의 판로 찾기

백지홍 광주신세계갤러리 큐레이터

Special Feature

《굿-즈》는 작가미술장터였나? 당연하다. 《굿-즈》가 작가미술장터 사업이라는 재정적·행정적 기반 위에 성립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굿-즈》가 작가미술장터의 전형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굿-즈》는 이례적이었고, 전시에 관한 평가도 다양했다. 분명한 것은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작가미술장터 사업이 시행된 첫해에 《굿-즈》가 열린 것은 전시에 참여한 기획자, 작가들의 진로에 변화를 준 것은 물론, 작가미술장터 사업, 넓게는 동시대 한국 시각예술신(scene)의 향방에 영향을 준 사건이란 점이다. 과연 2015년 개최된 10개의 작가미술장터 중 《굿-즈》만이 가진 특이점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작가미술장터에 무엇을 남겼나.

《솔로쇼:福·德·房(복덕방)》 원에디션 아트스페이스 전시 전경 2021
사진: 박홍순

《굿-즈》의 판로
“작가들의 미술품 판로 개척을 위해 작품을 전시 및 판매할 수 있는 미술장터 개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1 작가미술장터 지원 사업은 판로 개척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시작했다. 10년의 역사를 쌓은 2025년의 사업설명 역시 대동소이하다.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느끼는 작가의 미술품 판로 개척을 지원하고, 국민의 미술품 향유 및 소장 문화를 만들어갑니다.”2 《굿-즈》 역시 판로 개척을 목표로 했다. 단, 그 ‘판로’의 개념을 훨씬 넓고 유연하게 봤다는 점에서 여타 장터들과 차이가 확연했다.

대중문화의 파생상품을 칭하던 ‘굿즈’의 용례를 차용한 《굿-즈》는 언뜻 소형 작품이나 작품 관련 상품을 저렴하게 파는 행사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시가 만들고자 한 ‘판로’가 단순히 행사기간의 판매에 머무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1억 원이 넘는 매출 기록은 새로 시작된 작가미술장터 사업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숫자’를 제시했다. 하지만, 전시를 위해 16개 공간의 운영자들이 수개월간 논의를 이어간 시간과 노력을 고려하면 금전적 이익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전시된 작품이 모두 팔려도 참여한 모든 이에게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굿-즈》가 진정으로 만들어낸 판로는 새로운 세대의 미술인들을 가시화, 브랜드화했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와 같은 SNS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던 새로운 미술신의 존재를 물리적 공간에서 확인함으로써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굿-즈》는 ‘신생공간’이라 호명되던 2010년대 대안적 전시 공간들과 ‘콜렉티브’로서 함께 활동하며 창작을 이어가던 작가들이 만든 일종의 ‘세대적 위력 과시’였다. 장터를 넘어 미술 축제 형식으로 이뤄진 이러한 위력 과시는 2010년대 서울 미술신의 에너지가 짧은 기간,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응축하며 두 번 다시 재현되기 힘들 기묘한 풍경을 만들었고, 《굿-즈》가 2010년대 한국 시각예술계의 가장 특별한 경험으로 남게 했다.

《굿-즈》 이후 서울의 작가미술장터
《굿-즈》의 충격은 이후 9년간 진행된 작가미술장터 사업에 여진을 남겼다. 재현하기 힘든 성공 사례를 두고 후속 장터들이 택한 방식은 《굿-즈》가 품었던 개별 요소들을 해체하고 재조립한 것이다. 이는 《굿-즈》가 본래부터 서로 다른 욕망과 목적을 지닌 참여자들이 느슨하게 결합한 전시였다는 데 기인한다. 아직 제도권 미술시장에 포섭되지 않은 동시대 젊은 미술신을 보여준다는 것이 이들을 묶은 최소한의 공감대였다. 누군가는 판매를 위한 최선의 방식을 고민하였고, 누군가는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퍼포먼스를 사비로 진행하며 《굿-즈》를 ‘비용’이 발생하는 전시로 만들었다. 어떤 이는 일회성으로 끝나야 의미가 강해진다 주장했지만, 어떤 이는 앞으로의 창작/전시/판매를 위한 지속가능성을 탐구하고 있었다. 쉽게 한자리에 모일 수 없는 이질적인 입장들이 잠시 교차했기에 《굿-즈》는 특별했고, 그래서 반복될 수 없었다.

은행금고를 모티브로 구현된 《PRPT: Vault Service》(2024)
제공: 오아에이전시

서울을 중심으로는 《굿-즈》 성과 중 가시화되지 않았던 작가와 작품, 현장을 선보이는 쇼케이스 역할에 더욱 집중한 듯하다. 《퍼폼》(2016~2022)(퍼포먼스), 《더스크랩》(2016~2019)(사진) 등 다회차로 진행된 전시들은 수익성보다 기획자와 참여 작가의 비평적 관점을 공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짧은 전시 기간’을 역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 다수의 스태프가 존재해야만 진행할 수 있는 ‘독특한 전시 경험’을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역시 수익을 생각한다면 마이너스 요소지만, 기획자, 작가, 감상자 모두에게 작가미술장터 사업이 아니었으면 구현될 수 없었을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며 의미를 만들어 갔다. (자립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담았던 《PACK》은 쇼케이스를 통해 특별한 분위기를 전하되 운영 인원의 효율화를 꾀한 사례로 흥미를 더한다). 신생공간처럼 젊은 미술인들의 다양한 활동이 지속되고 네트워크가 활성화된 도시 서울은 새로운 방식의 전시 실험이 꽃필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2019 PACK:모험! 더블 크로스》 탈영역우정국 전시 전경 2019
사진: 월간미술

서울이라는 기반은 작가미술장터라는 틀을 넘어, 서울 미술 생태계 전반에서 유사한 실험을 가능케 했다. 갤러리들의 협력으로 탄생한 ‘협동작전’의 《SOLOSHOW》와 같은 전시는 《굿-즈》의 에너지를 일부 되살린 듯 보이며 전시를 이어갔다. 독립출판 축제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일민미술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등 주요 전시 공간에서 개최되며, 동시대 시각예술 현장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굿-즈》의 관람객 일부를 흡수했다. 복제품 제작을 상정한 출판물의 경우, 장터를 통한 굿즈 판매로 수익을 올리는 것도 비교적 수월했다. 이벤트가 아닌 ‘판매’에 초점을 맞춘다면, 엽서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포셋과 같은 상업공간은 보다 사전적 의미의 시각예술 ‘굿즈’의 판로로 자리 잡았다.

최소한의 판로 만들기
한편, 미술시장이나 청년 미술 활동이 상대적으로 덜 활성화된 지역의 작가미술장터는 앞서 언급한 행사들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소품 중심의 전시와 판매를 통해 개최 지역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관람객/ 소비자가 만나는 기회를 만드는, 보다 담백한 모습 말이다. ‘작품 판매’라는 작가미술장터의 기본적인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다. 《굿-즈》를 비롯해 보다 비평적 관점이 강조된 작가미술장터들이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전시/행사의 결실들을 모은 최선의 결과물이라면, 미술시장 접근이 어려운 지역의 작가미술장터는 작가들의 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된다.

이 경우 장터의 평가 기준은 ‘얼마나 좋은 작가들을 섭외하여 판매로 이어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는가’ 여부다. 장터가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선보였는지 아닌지는, 유통 기반이 확보된 후에야 비로소 의미 있는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시장이 갖춰진 곳에서 개최되는 비평적 전시는 짧게 빛나고 휘발되어도 그 목적을 충분히 이룰 수 있지만, 시장을 개척하려는 전시는 뜨겁지 않더라도 은은하게 오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작가미술장터라는 하나의 사업 아래에 있지만, 둘 사이의 성격은 꽤 다르다. 비평계에서는 할 이야기가 많은 전자를 더 선호하지만, 후자가 성취를 보이지 못하는 곳에 전자가 존재할 수는 없다. 서울-지역의 이분법으로만 볼 문제도 아니다. 수도권에서도 판매수익금 전액을 작가에게 전달한다는 장터의 성격에 초점을 맞추고 작품 판매에 집중하는 장터들이 개최되어 왔지만,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서킷서울》(2022)에서 관람객이 작품을 AR로 감상하고 있다.
제공: 오아에이전시

흥미로운 점은 판매에 집중하는 행사들도 평소에 선보이지 못한 특별한 전시경험을 제공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를 실행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장터의 성격을 막론하고 《굿-즈》가 남긴 전국적 여파다. 지역의 작가미술장터 역시 젊은 기획자와 작가들이 주가 되는 만큼 미술신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기획을 살펴볼 수 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비대면 전시 형식에 유연하게 대응했고, 이후 미술시장 호황기에는 빠르게 반응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나, 새로운 미술신을 선보이고 비평적 관점을 전달하는 것은 《굿-즈》를 통해 다소 과대 주목된, 장터의 판로 개척의 부수적인 효과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작가미술장터’ 사업임에도 판매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명확하다. 짧은 운영 기간 이루어지는 작품 판매만으로는 실질적인 수익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미술장터는 평소 작품을 구매한 적이 없는 이들에게 축제 분위기 속 ‘첫 소장’의 경험을 제공하거나, 익숙한 작가의 작품을 갤러리 수수료 없이 조금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데 그 역할이 제한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벤트가 불러일으킨 에너지가 지속적인 효과를 발휘하려면, 장터 기간 외에도 지속적인 전시와 판매가 가능한 공간이 필요하다. 이는 하나의 사업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보다 복잡한 문제다. 예를 들어 신청자가 운영 중인 공간에서 장터를 열 수 없게 되어 있는 현재의 구조는, 기획자나 공간운영자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발생할 수 없게 하고, 이는 지속가능성을 약화하는 요소다. 아직 시장이 자리 잡지 않은 곳에서 작가미술장터가 제 역할을 할 방법을 찾아낼 때라야, 미술 판로를 연다는 취지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2009년부터 시작한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아트북 제작자와 독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행사다.
사진: 월간미술

2025년, 10주년을 맞이한 작가미술장터는 어떤 모습일까. 공모 기반 사업이니만큼 어떤 이들이 참여하느냐에 따라 구현되는 모습이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10년을 생각하며 장기적인 모습을 그리는 것은 사업을 운영하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역할이다. 작가미술장터는 동시대 한국 미술계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제도권 밖의 새로운 미술신을 가시화하고 실험적 예술 체험을 이끌어내는 플랫폼일까, 아니면 미술시장이 미약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지속 가능한 시장 기반을 만드는 출발점일까. 물론, 지금까지처럼 이 둘을 모두 안은 채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작가미술장터 사업이 다양한 지형을 아우르는 것 자체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두 가지 방향성을 모두 품고자 한다면, 각 장터의 목적에 따라 세부 전략을 달리하는 운영 원칙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이 가능한지,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에 관한 비전이 함께 해야 할 것이다. 판로는 어디에 있는가.《굿-즈》 이후 10년은, 그 질문에 대한 다양한 답변을 모색하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2025년 판로는 어디에 있는가.


1 2015년 작가미술장터 사업설명 출처: 예술경영지원센터 홈페이지
2 2025년 작가미술장터 사업설명 출처: 예술경영지원센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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