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선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1관 9.5~2026.2.22

주하영 미술비평

Exhibition

이끼바위쿠르르 〈누가 마을을 잊었는가〉 2채널 비디오, 4K, 혼합 매체 12분 가변 설치 2025
이미지 제공:국립아시아문화전당


《봄의 선언》: 자본세 시대의 다종적 사유와 예술적 실천
주하영
미술비평

Ⅰ. 들어가며: 《봄의 선언》으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 개관 10주년을 기념, 독일 ZKM(Zentrum für Kunst und Medien)과 홍콩 M+와의 국제 협력으로 기획된 《봄의 선언》은 ‘자본세(Capitalocene)’라는 개념에 근거해 인류가 직면한 민주주의와 지구 행성적 위기, 후기식민주의와 자본주의 문제를 비평적인 시각으로 탐구한 전시다.

이번 전시는 2024년 10월 24, 25일 이틀간 열린 동명의 사전 심포지엄을 통해 그 의미를 구체화했는데, 제이슨 무어(Jason W. Moore)와 애나 칭(Anna Tsing), 인도네시아 콜렉티브 그룹 루앙루파(ruangrupa)를 초청하여 전시 주제를 깊이 있게 논의했다.『세계 끝의 버섯』(2015)의 저자 애나 칭은 버섯의 삶을 통해 쇠퇴한 자본주의 체계 속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했고, 제이슨 무어는 지구 생태의 위기가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와 그 착취적 성격에서 비롯됐다고 보며, 이를 자본세 관점에서 논의했다. 이러한 국제 심포지엄은 전시의 방향성을 구체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봄의 선언》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자본세 담론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냈다. 이는 최근 미술계의 주제로 주목받은 기후, 환경, 생태 위기와 관련된 단순한 접근과 문제 제기를 넘어, 그 근원 구조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하는 차별화된 시도다. 실제 전시 공간은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으로 각각의 구성이 두드러지게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개념과 주제가 서로 겹치고 어울리며, 글로벌 이슈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을 보여주었다.

서동진〈석탄 백탄 타는데: 면(綿)-탄(炭)-기(機)〉
단채널 비디오, 아카이브(서적, 이미지, 텍스트 등 여러 매체) 30분 가변 설치 2025

Ⅱ. 《봄의 선언》의 예술적 실천
전시의 첫 번째 섹션 ‘우리는 어디까지 왔는가’는 자본주의의 양면성, 특히 자본주의의 착취적 메커니즘과 무어가 제시한 ‘저렴한 자연(Cheap Nature)’의 논리를 드러냈다. 무어는 자본주의 역사가 화석 연료 사용으로만 축소될 수 없으며, 16세기부터 자본의 흐름과 현금 관계에 기초한 권력 및 (재)생산의 논리가 전 세계적인 ‘저렴한 자연’의 전유를 가능하게 했음을 지적했다.1 이는 식량, 노동, 에너지, 원자재를 무상으로 전유하고 재생산 비용을 외부화하며 자본주의적 축적을 이룬 메커니즘이었다.

전시장 도입부에 설치된 앤 덕희 조던(Anne Duk Hee Jordan)의〈깊은 곳으로〉(2025)는 관람자의 모습과 외부 세계를 왜곡하여 비추는 ‘다중감각’ 설치 작품이다. 우선 카메라가 대상의 얼굴을 인식하면, 동굴과도 같은 구조물 안에서는 관람자의 형상이 물고기와 같은 생명체의 모습으로 변형되어 출력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끝없이 재생산되는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뒤틀린 현실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여, 자본세가 내포한 어둡고 순환적인 구조를 암시한다. 최찬숙의 〈더 텀블 ver. 2025〉(2025)는 건조한 지역에서 바람에 굴러가며 씨앗을 퍼뜨리는 회전초(回轉草)와 그 서식지를 다룬 3채널 비디오 설치다. 이 작품은 생존을 위해 자발적으로 ‘뿌리 없는’ 혹은 ‘근원을 잃은’ 존재로 살아가는 회전초의 전략에서, 고정되지 않은 신체와 장소의 관계를 살폈다.

이 섹션에서 주목할 부분은 자본주의가 식민주의와 결합하여 어떤 역사적 폭력과 사회·문화적 폐해를 남겼는지를 중심으로, ‘탄소 식민주의’와 ‘자본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의 문제를 교차하여 들여다본다. 서동진의 리서치 아카이브 프로젝트 〈석탄 백탄 타는데: 면(綿)-탄(炭)-기(機)〉(2025)는 일제강점기 가네보 방적이 광주에 면직 공장을 건설했고, 도요타 방직이 개발한 신형 직기를 돌리기 위해 화순 탄광을 개발했던 역사를 비평적으로 살펴본다. 이는 자본의 체계가 어떻게 ‘탄소 식민주의’를 형성하며 특정 지역과 사람들을 착취했는지, 그 역사적 궤적을 통해 자본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서동진의 작업은 전시장 외부에 설치된 테리토리얼 에이전시(Territorial Agency)의 〈석유박물관〉(2015~)과 함께 그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석유 채굴 산업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인해 변해가는 지구 영토의 데이터를 통해, 자본이 어떻게 에너지 자원을 전유하고 지구 환경을 변형시키며 자본세 시대의 지형을 만들었는지 아카이브와 데이터로 가시화했다. 이들의 작품은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의 ‘화석 자본’ 개념과 연결해 볼 수 있는데, 말름은 수력에서 증기력으로의 전환이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닌 자본의 노동 통제 욕망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했다.2 이는 오늘날 기술과 권력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두 예술가의 프로젝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다.

CATPC 〈발로 NFT〉 6개의 NFT 영상과 306개의 NFT를 위한
셀라드 타마실라(콩고 플렌테이션 노동자 예술 연맹)의 드로잉 월페이퍼.

NFTs: ZKM 카를스루에 예술미디어센터 컬렉션 2022

한편, CATPC(Cercle d’Art des Travailleurs de Plantation Congolaise, 콩고 플랜테이션 노동자 예술 연맹)은 〈발로의 귀환〉(2024), 〈플랜테이션 농장과 박물관〉(2021), 〈발로 NFT〉(2022)를 선보였다. 이 연작은 콩고의 문화유산인 발로(Balot) 조각상의 분실과 회복 과정을 여러 매체로 기록한 작업이다. CATPC는 2014년 콩고 루상가(Lusanga)에서 출발한 예술가 집단으로, 다국적 기업이 그들의 자연과 사회를 착취하여 극심한 빈곤을 초래하고 생물 다양성을 파괴했다고 보며, 이를 되살리기 위해 ‘포스트 플랜테이션(post-plantation)’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CATPC는 유럽 상인과 기업에 몰수된 조상의 땅과 농장을 다시 사들이며, 종의 다양성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3 이러한 프로젝트의 목적에 맞춰 제작된 ‘발로’ 시리즈는 후기 자본주의와 신식민주의의 폭력 속에서 잃어버린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의지이자,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그리고 착취당한 문화의 회복을 위한 공동체적 실천이기도 했다.

전시의 두 번째 섹션 ‘봄의 징표들’에서는 비인간 존재들의 지혜와 공동 생산적 삶의 양식을 통해 다종적인 세계가 구상됐다. 이 섹션은 무어의 ‘세계-생태(world-ecology)’ 관점과 도나 해러웨이의 ‘크툴루세(Chthulucene)’ 개념과 연계해 살펴볼 수 있다. 무어는 ‘세계 경제’를 ‘세계-생태’라는 틀로 묶어 인류세 개념을 비판적으로 수정하여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발흥과 발전을 설명했다. 그는 자본세가 자본, 권력, 자연의 유기적 관계를 탐구하는 세계-생태적, 다종적(multispecies) 사건임을 강조했다.4 이러한 비판적 시각을 보완하여, 해러웨이는 생태학적 파괴 속에서 현시대를 인류세가 아닌 ‘크툴루세’로 개념화했다. 그는 인간과 비인간이 불가분하게 연결된 시대를 인지하며, 자기 창출(auto-poiesis)보다는 ‘심포이에시스(sym-poiesis, 공동 생산)’ 즉 ‘함께-만들기’를 강조하며, 인간 범주를 넘어서는 새로운 친족 관계를 모색하자고 제안했다.5 이는 망가지고 상처 입은 지구와 그 위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비인간 행위자들과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복수종 생물들과 동맹하여 ‘공-산(共-産), 공-생(共-生)’하는 삶의 양식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해러웨이의 다종적 사유는 작품들이 표상하는 대안적 관계 설정과 연대 모색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앤 덕희 조던 〈깊은 곳으로〉다중감각 설치,
FID/NFC 태그가 
있는 녹화 장치, 터널 구조물, 거울, 비닐 프린트, 컴퓨터, 커스텀 소프트웨어,
카메라, 프로젝터, 
(인터랙티브) 프로젝션, 사운드, 가변 설치 2025

사진 왼쪽 스크린은 박경근 〈15가지 시간〉(2025)
아래 
조형물은 박경근 〈부피의 관점〉(2025)
《봄의 선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 전경 2025

이끼바위쿠르르의 〈누가 마을을 잊었는가〉(2025)는 급속한 세계화와 도시화 속에서 쇠퇴하고 사라져가는 마을과 지역 공동체에 관한 연구이자 인간과 자연이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방식을 탐구한 멀티미디어 설치 작품이다. 이들이 제시한 동아시아의 사라져가는 마을에서 수집한 영상, 오브제, 프로타주는 오랜 기간 지속된 예술가와 지역 공동체 간 유대의 결실이다. 이러한 작업은 마치 잊힌 혹은 사라져갈 숲을 교차하며, 사람들이 시를 읽는 목소리는 다양한 층이 쌓인 하나의 사운드로 기능하며 서로를 연결한다. 김순기는 광주와 세계를 잇는 시 퍼포먼스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교감과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며 공생의 사유가 동양적 지혜 속에서도 발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박경근의 〈524m〉, 〈15가지 시간〉, 〈부피의 관점〉(2025)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변화된 금남로와 광주의 모습을 통해 역사적 사건과 트라우마를 깊이 품거나 극복하며 살아가는 광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한다.

제임스 브라이들 〈말해진, 보여진 그리고 행해진 것들〉
3개의 태양광 패널에 판화 음각, 비계 가변 크기 2023

Ⅲ. 선언을 넘어 지속적인 실천으로
《봄의 선언》은 최근 심각하게 대두된 기후, 환경, 생태 문제를 그 근원적 구조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통해 비판하고자 하는 차별화된 전시다. 이 전시를 살펴보기 위해 제이슨 무어의 ‘자본세’와 안드레아스 말름의 ‘화석자본’ 그리고 도나 해러웨이의 ‘크툴루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했다. 그 이유는 이들 개념이 오늘날의 위기를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예술적 투쟁과 실천 대상으로 바라보는 데 중요한 시각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즉, 《봄의 선언》은 예술이 기존의 질서를 재편하고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여는 계기를 제공하고,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동시대의 위기를 전시와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비평적으로 숙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봄의 선언》 은 ‘봄’의 의미를,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이자 인간 삶의 투쟁, 즉 내재적이자 외재적인 의미로 다루며, 봄을 단순히 계절의 시작이 아닌 ‘선언’과 ‘실천’을 통해 다시 만들어내야 할 미래의 감각이자 예술적 논의의 장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전시와 예술가들의 문제의식은 드러난 위기 속에서 예술의 수행과 실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자 예술적 저항이기도 하다.


1 Ed. Jason W. Moore “The Rise of Cheap Nature” Capitalism in Anthropocene or Capitalocene? Nature, History, and the Crisis of Capitalism Oakland, CA: PM Press 2016 pp.78~114
2 말름은 기후 위기의 근원이 1820년대 영국에서 자본이 노동을 통제하기 위해 수력에서 증기력으로 동력을 전환했던 역사적 과정에 있음을 주장했다. Andreas Malm Fossil Capital: The Rise of Steam Power and the Roots of Global Warming London & New York: Verso 2016 참고
3 Ed. Adriano Pedrosa Biennale Arte 2024: Foreigners Everywhere: Foreigners Everywhere Vol.2 Venice: Silvana, La Biennale di Venezia 2024 pp.118~119
4 Jason W. Moore The Web of Life: Ecology and the Accumulation of Capital London & New York: Verso 2015 무어의 다양한 글과 논문은 그의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https://jasonwmoore.wordpress.com
5 Donna Haraway Staying with the Trouble: Making Kin in the Chthulucene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2016, Donna Haraway “Anthropocene, Cpaitalocene, Plantationocene, Chthulucene: Making Kin” Environmental Humanities Vol. 6 2015 pp.159~165

2025년 11월호 (VOL.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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