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퀀텀 퓨처리즘 타임 존 프로토콜》

리움미술관
9.4~28

심지언 편집장

Sight&Issue

  오프닝 퍼포먼스 〈붕괴된 시간, 표류하는 선들〉 전경
《블랙 퀀텀 퓨처리즘: 타임 존 프로토콜》 리움미술관 2025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흐르는 것일까. 세계를 지배해 온 ‘표준시’와 직선적 시간의 관념을 넘어 다른 리듬과 감각, 기억의 층위를 불러내는《블랙 퀀텀 퓨처리즘: 타임 존 프로토콜》이 리움미술관에서 개최되었다. 샤넬 컬처 펀드(CHANEL Culture Fund)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리움미술관의 중장기 연구 프로그램 ‘아이디어 뮤지엄(Idea Museum)’의 세 번째 프로젝트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이끈 ‘블랙 퀀텀 퓨처리즘(Black Quantum Futurism, 이하 BQF)’은 뮤지션이자 시인인 카메이 아예와(Camae Ayewa, 2024 샤넬 넥스트 프라이즈 수상자)와 변호사이자 작가인 라시다 필립스(Rasheedah Phillips)가 결성한 다학제적 아티스트 콜렉티브이다. 이들은 양자물리학의 관점과 아프리카/흑인 디아스포라의 시간 경험을 교차시키며, 단선적인 역사의 선로를 벗어나 다층적이고 순환적인 시간의 가능성을 탐구해 왔다.

《타임 존 프로토콜(Time Zone Protocols)》이라는 제목이 말하듯,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선형적인 시간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서구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구축한 표준시 체계가 흑인 공동체의 시간적 자율성과 기억에 미친 영향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과거, 현재, 미래가 중첩된 다층적인 시간을 탐색한다. 전시는 연표, 영상, 라이브러리, 체험 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관람객들이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직접 참여하고 사유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블랙 퀀텀 퓨처리즘: 타임 존 프로토콜》 리움미술관 전시 전경 M2 프로젝트공간
제공: 샤넬

전시의 개막 퍼포먼스 〈붕괴된 시간, 표류하는 선들〉에서 BQF는 즉흥 사운드와 낭독, 의례적 주문을 통해 다중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독특한 ‘시간 의식’을 구현했다. 이어진 〈본초자오선 언컨퍼런스〉에서는 서울이라는 맥락 속에서 아시아적 시간성과 블랙 퀀텀 퓨처리즘의 관점이 교차하며, 서로 다른 시간들이 공존하는 미래를 모색했다.

‘아이디어 뮤지엄’은 이미 두 차례의 프로젝트로 주목받은 바 있다. 2023년 《생태적 전환: 그러면, 무엇을 알아야 할까》에서는 기후 위기와 지속 가능성을 주제로 인간과 비인간의 공생 가능성을 탐구했고, 2024년《사이 어딘가에》에서는 ‘젠더와 다양성’을 화두로 던지며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관계와 연대를 모색하는 장을 전개했다. 그리고 세 번째인 이번 프로젝트는 ‘시간’이라는 더 근본적인 틀을 제시한다. 특히 1884년 국제자오선회의 이후 서구 중심으로 표준화된 시간 체계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며, 제국주의가 새겨 넣은 보이지 않는 규범을 해체한다. 아이디어 뮤지엄을 후원하는 샤넬 컬처 펀드는 전 세계 창작자들의 새로운 시도를 지지하는 문화적 촉매제로 역할하며, 단순한 예술 후원을 넘어 포용성과 다양성,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문화적 토양을 함께 일구고 있다.

《타임 존 프로토콜》은 이렇게 묻는다. “우리가 공유하는 시간이 반드시 하나여야 하는가?” 그 질문 속에서 관람객은 자신만의 시간을 다시 찾고, 다층적 세계의 가능성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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