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전술》
K&L뮤지엄 8.28~12.28
김윤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Critique

신민〈미진 유진〉
스티로폼, 프렌치프라이포대, 목공풀, 색연필 360×120×103cm, 360×130×107cm 2024
《시대전술》K&L뮤지엄 전시 전경 2025
불안정한 세계 속의 감각적 실천과 전술적 주체
김윤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시대전술》은 기술지상주의와 초자본주의, 그리고 거대 플랫폼 자본의 체계 안에서 드러나는 존재의 불안, 그 가운데서도 형성되는 예술적 감각의 전술을 탐색하는 전시이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노동, 관계, 인식 구조를 재편하는 지금, 이 전시는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가 말한 ‘전술(tactics)’의 개념을 호출한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 다섯 명은 주어진 구조에 저항하거나, 그 안에서 균열을 만들어내는 예술적 실천으로서 ‘전술적 주체’의 존재를 드러낸다.
전시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2000)에서 예견한 유동성과 불확실성을 실제적 감각의 차원에서 재현한다. 미래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기술이 인간의 감정과 지각, 나아가 존재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이 시대의 역설을 작가들은 감각적 이미지로 구체화한다. 그러나 《시대전술》의 의의는 단순한 기술지상주의와 초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나 휴머니즘의 회복을 갈망하는 언어에 그치지 않는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이러한 역설의 시대에서도 현실에 응답하는 감각적 언어를 예술적 전술로 전환시키는 순간과 그 가능성에 주목한다. 김명찬의 회화는 기계적인 회화 도구인 에어브러시의 매끄러움 위에 손의 미세한 떨림을 새겨 넣으며, 기술과 육체 사이의 간극을 ‘인간의 흔적’으로 연결한다. 작가의 행위는 기술의 표준화된 질서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내며, 감각적 존재로서 인간의 신체성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한편 관람객의 몸과 감각을 호출하는 유아연의 설치 작품은 우리가 감각의 주체로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가의 구조물들은 조형적 오브제가 아니라, 신체적 움직임과 감응을 통해 완성되는 하나의 감각적 회로로 작동한다. 요한한의 작업은 언어 이전의 감각적 소통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신체의 리듬과 진동, 소리와 공명의 관계를 다양한 매체로 탐구한다.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표준화하고 단절시키는 이 시대에 가장 근원적인 신체의 리듬과 감각적 공명을 통해 타자와의 새로운 접속을 모색한다. 이들 세 작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예술이 기술과 신체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기술을 단순한 도구나 위협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존재를 확장하는 매개로 전유하며, 예술이 여전히 감각적 사유와 감응의 장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남다현〈제프쿤스 파격 세일〉
혼합재료, 퍼포먼스 가변크기 2023
《시대전술》 K&L뮤지엄 전시 전경 2025
사진: 이운 제공: K&L뮤지엄
한편 신민과 남다현은 기술과 자본의 구조로 재편된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제도와 시장의 언어로 포획되고 소외되는지를 탐구한다. 신민의 조각은 일상에 내재한 불평등과 억압의 구조를 포착하며, 사회적 약자의 분노와 상실을 조형적 형태로 드러낸다. 또한 작가는 자본의 구조에서 억압된 이 감정의 에너지들이 다시 공동의 감각으로 발화되는 지점을 드러내며, 연대의 가능성을 살핀다. 한편 남다현은 예술이 자본주의적 가치 체계 안에서 소비되고 거래되는 방식을 유머와 패러디의 언어로 해체한다. 그의 작품들은 ‘명성’, ‘재판매 가치’ 등 예술의 외적 척도를 과장된 제스처로 드러냄으로써, 예술의 본질을 가리는 시장의 논리를 은유한다. 이는 체제의 언어를 흡수함과 동시에 그것을 왜곡함으로써 ‘내부로부터의 전복’을 수행하는 감각적 전술로 작동한다.
이처럼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예술적 실천은 세르토가 말한 ‘전술’의 개념 즉, 제도적 권력의 구조 안에 잠시 틈입해 의미를 변형시키는 실천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기술과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의 질서 속에서도 인간의 감정과 유머, 그리고 불완전한 몸의 감각을 통해 균열을 만들어내며, 공동의 감각과 연대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시대전술》은 바로 이 미세한 틈, 즉 체제의 언어를 전유하고 전복하는 행위를 통해 예술이 다시금 감각적 언어이자 사회적 실천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주디스 버틀러는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2023)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공유된 취약성의 조건” 위에 놓여 있음을 강조한다. 인간은 독립적 개체가 아니라, 서로의 생존 가능성을 매개하는 관계적 존재이며, 따라서 예술의 행위 또한 대상과 타자에 대한 응답의 형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시대전술》의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러한 감응의 공간이자 관계의 장을 열어놓는다. 이 전시는 예술이 여전히 시대를 살아내는 ‘전술’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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