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철: 시대의 몽타주》
광주시립미술관
2024.12.17~3.30
Exhibition

《신학철: 시대의 몽타주》 광주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이미지 제공: 광주시립미술관
시대의 몽타주
김종길 미술비평
《신학철: 시대의 몽타주》 광주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신학철은 늘 ‘현실의 총체적 반영’을 대주제로 펼쳐놓고 그림의 세목이랄 수 있는 ‘현실모순의 선명한 집중표현’을 기둥으로 세웠다. ‘현실반영’(가로축)에 ‘집중표현’(세로축)이 서로 ‘어긋매낌’을 짓고 일으킨 그림들이 ‘입체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 있다.
민중미술이 아니더라도 ‘신학철’이라는 이름은 스스로 ‘화파’가 된 작가가 아닐까. 1970년대 초반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에 참여했고, 70년대 후반에는 포토 콜라주를 실험했으며, ‘1980년’이라는 시대령(時代嶺)을 넘어가면서 〈한국근대사〉, 〈한국현대사〉 연작으로 독보적인 ‘회화론’을 창조했잖은가. 몽타주 미학에 ‘콜라주 회화’를 덧입힌 그림들은 범접할 수 없는 형상성을 보여준다. 이런 그의 60여 년 회화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그의 시기별 대표작이 다 모인 이 전시는 왜 그가 이 시대 한국미술의 중핵인지를 작품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1. 몽타주/콜라주
《신학철: 시대의 몽타주》는 그야말로 한국 근현대사의 무늬를 돋을새김으로 그려낸 신학철의 잠자리 겹눈이 만화경처럼 펼쳐진 거대하고 숭고한 몽타주였다. 이 몽타주는 〈전함 포템킨〉(1925)에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이 보여준 편집술과, 청년 김지하가 「현실동인 제1선언」(1969)에서 이야기한 사건의 몽타주가 서로 어긋매낀 것처럼 읽힌다. 시간의 서슬을 타고 가는 사건의 장면들이 용오름의 회오리로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역사가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곳에 사건의 회오리가 한 꼴로 붙어서 솟구치는 꼴이랄까. 신학철 회화의 몽타주는 그래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아야 더 잘 보인다.
「현실동인 제1선언」은 몽타주를 소격효과(疏隔效果)로 풀어 말한다. “몽타주의 소격효과는 몽타주에 의한 현실의 총체적 반영과 현실모순의 선명한 집중표현의 직접적인 결과로써 이것은 관조 심리 내부의 대상에 대한 기초적 친숙감과 더불어 그것에 대한 소외감을 동시에 조성시킴으로써 비판적 기분을 유도한다”고. 선언문의 관점에서 보면 신학철은 늘 ‘현실의 총체적 반영’을 대주제로 펼쳐놓고 그림의 세목이랄 수 있는 ‘현실모순의 선명한 집중표현’을 기둥으로 세웠다. ‘현실반영’(가로축)에 ‘집중표현’(세로축)이 서로 ‘어긋매낌’을 짓고 일으킨 그림들이 ‘입체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 있다. 움쑥 고요한 자리가 그늘진 옛 근대사의 그림자라면, 그 자리에 불쑥 움직여 높이 솟구친 것은 현대사의 실체인 것이다.
그가 그린 역사/시간의 벼릿줄은 하나인데 그로부터 이어지는 사건/그물코는 헤아릴 수 없다. 그런 사건의 단면을 이루는 무늬가 ‘흰그늘(日影)’로 가득해서 어느 시대를 펼쳐도 깊고 어두운 그늘이요, 그런 그늘이 일렁거릴 때마다 드러나는 것은 반짝이는 윤슬이었다. ‘시대/그늘’과 ‘그늘/윤슬’을 하나로 얽어맨 그림들은 역사의 살아있는 혼백(魂魄)이어서 전시는 놀랍고 때로는 경이로운 순간들을 드러냈다. 산 역사가 숨 쉬는 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간 숱한 서민들의 숨결이 전시실을 휘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신학철: 시대의 몽타주》는 일반적인 전시라고 할 수 없는 ‘아침놀’의 봉우리다.
전시는 ‘해체와 재구성의 신체 몽타주’에서 ‘망각된 역사의 소환’으로, 그리고 다시 ‘시대를 위한 기념비’로 이어진다. 세 주제를 잇는 열쇳말은 신학철이 살아온 ‘격동의’ 세월이다. 작가로 이름을 알린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그의 세월은 어지간히 힘들고 만만치 않아서 있는 그대로 변화무쌍한 한국 현대사이다. 그러니까 이 전시는 ‘신학철’이라는 작가 연대기에 현대미술이 얽혀 쌓이고, 한국 현대사가 얽혀 덧붙은 형국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신학철-현대미술 한국현대사’가 세 겹 새끼줄로 꼬아 올리는 가장자리에 한국 근대사가 아주 눅눅하게 달라붙어 있고, 또 그 한가운데에는 혼불이 시퍼렇게 타고 있지 않은가!
전시실에 걸린 그림 자리마다 시퍼런 혼불이었다. 그 앞에 바로 섰다. ‘한국 근대사’, ‘한국 현대사’라고 이름 붙인 그림들이 코앞에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마주했다. 그림의 뜻에 이마를 맞대었다. 아주 오랜만에 그 세계로 들었다. 두렵고 숨 가쁜 일이었다. 그동안 띄엄띄엄 본 한두 점은 잊히고 그 많은 것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전시실에 줄줄이 걸린 그림들이 ‘시대’를 감아올리고, ‘역사’를 감아올리고, ‘주검’을 감아올렸다. 그런 그림들이 보는 이의 마음 안팎을 무너뜨리고 크고 검게 빛났다. 하늘 천(天)이 ‘감을 현(玄)’이라고 했던가. 감고 감아서 아득하게 펼쳐내는 그 세계는 헤아릴 수 없이 현묘했다. 현묘한 빛들은 참으로 신령했다.
〈부활1〉 캔버스에 혼합매체 71×59cm 1979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변신 5〉 캔버스에 유채 71.2×59cm 1981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2. 전위/예술
미술평론가 김윤수는 「전위예술은 퇴폐가 아니다」(『동아일보』, 1973)에서 전위예술은 “이미 경화(硬化)된 예술관의 상투형(常套型)을 타파하고 인간의 새로운 존재 질서와 감성의 지평을 열어 보이려는 데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그 점에서 그것은 본질부터가 혁명적”이라고 주장했고, AG에서 활동한 미술평론가 이일은 「전위미술론-그 변혁의 양상과 한계에 대한 시론」에서 “오늘의 참된 미술은 그것이 전위적인 성격을 띤 것이기에 참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미술이기에 그것은 전위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신학철은 AG에서 활동했다. 결과론으로 그의 활동을 되비추어 생각하면 김윤수의 ‘전위예술은 본질부터가 혁명적’이라는 말과 이일의 ‘참된 미술이기에 전위적’이라는 말은 신학철의 ‘회화론’에 가 닿는다. 그는 이미 1970년대부터 ‘상투형’에 갇히는 작업을 탈피했으므로. 이번 전시에 AG 활동기의 작품이 여럿 출품되었다. 청년 신학철이 고민했던 첫 예술론의 흔적은 신선했다.
〈부활 1〉(1979)에서 볼 수 있듯이 전구, 수저, 연탄집게 등 일상적인 사물을 실로 감아서 캔버스에 이어 붙인 작업이 AG 시절의 작품들이다. 이것은 ‘오브제’의 새로운 해석이랄 수 있다. 실에 감긴 오브제는 캔버스에 포박당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오브제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오브제가 가진 본질적인 ‘사물성’을 상실하는 것은 개념미술이 지향하는 지평선이다. 이때의 작품에 대해 큐레이터 홍윤리는 “외견상의 유사성으로 인해 다다이스트와 초현실주의자들의 작업과 종종 비교되었다. 이들은 사물의 본래 기능을 소거하고 형태, 위치, 재질 등을 변형시켜 ‘의도적 낯섦’을 유발했으나, 신학철의 작업은 사물을 실로 감는 과정을 통해 오브제가 일반 사물로서는 가지지 못했던 수행성을 체감하며 이를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판단했다. 바로 이 시기를 뒤이은 포토몽타주와 콜라주 작업은 ‘이어감기’의 방법론을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친친 감았던 ‘실’과 달리 ‘사진’을 활용한 몽타주, 콜라주는 산업사회와 대량 소비사회가 초래한 물신 숭배, 그리고 현실모순의 단면이 날카롭게 도드라진다는 점이다. 그는 자본주의 욕망의 최전선을 달리는 화려한 ‘광고사진’으로 몽타주, 콜라주 미학을 실험했다. 사진은 그가 사용했던 오브제처럼 의미를 상실하지 않았다. 오히려 콜라주로 이어 붙을 때 그 의미와 상징은 증폭되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몽타주, 콜라주를 회화로 옮겨서 포토리얼리즘의 미학을 ‘현실주의 회화’로 완성해 낸다.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다. 참된 예술은 생동하는 현실의 구체적인 반영태로서 결실되고, 모순에 찬 현실의 도전을 맞받아 대결하는 탄력성 있는 응전능력에 의해서만 수확되는 열매다.”라고 말하는 현실주의를 말이다. 이때부터 그는 오롯이 ‘비판적 현실주의’를 지향하는 화가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한다.
1981년 작품 〈변신 5〉, 〈한국근대사-3〉은 현실주의 회화가 시작된 가장 상징적인 작품들이다. 1983년 겨울 『계간미술』 표지에 실린 〈변신 5〉는 1980년에 제작한 사진 콜라주 작업 〈변신 3〉과 그 꼴이 비슷하다. 그러나 〈변신 5〉와 〈한국근대사-3〉이 ‘문제적’인 것은 포토 콜라주를 ‘콜라주 회화’로 뒤바꿔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다. 오리고 찢고 붙여서 표현하는 포토몽타주가 아니라 그림으로 콜라주하고 몽타주한 회화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직접 붓으로 그려낸 콜라주는 그가 실험해 온 ‘포토몽타주론’과 결합하여 이전에 없던 ‘콜라주 회화’를 탄생시켰다. 모노톤의 〈변신5〉가 보여주는 이 기괴한 형상은 얼핏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요구르트병에 짜깁기하듯 덕지덕지 이어 붙인 ‘오브제 기념물’에 가깝다. 그 뒤로 비행기가 떠가고 땅에서는 팔뚝 하나가 솟았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이 풍경은 20세기의 무언가 자폐적 자본주의 혹은 그로테스크한 폐허적 자본주의 종말론과 다름없을 것이다. 사진에서 회화로 넘어온 이 몽타주, 콜라주 화법은 신학철의 독보적인 회화론으로 우뚝 솟았다.
〈한국현대사-갑순이와 갑돌이〉(부분) 캔버스에 유채 200×122cm(×8), 200×130.2cm(×8) 1998~200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3. 갑순이와 갑돌이
신학철의 회화에서 〈한국현대사-갑순이와 갑돌이〉(1998~2002)는 포토리얼리즘이 비판적 현실주의 회화론으로 탄생하여 하나의 극치를 이룬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솟아오르는 〈한국근대사〉, 〈한국현대사〉연작이 우주의 별무리를 이루는 혼백들의 성체(星體)라면, 〈갑순이와 갑돌이〉는 살아서 욕망하는 삶의 성체(性體)일 것이다. 시커멓게 빛나는 혼백의 성체는 주검 하나하나가 쌓아 올린 역사의 우물 거울이다. 끊임없이 지금 여기를 반추하며 살도록 되비추기 때문이다. 반면, 온갖 되바라진 사람들로 그려놓은 삶의 성체는 미래를 당겨서 현재를 비추는 우물 거울이다. 이 삶에는 한민족이, 그리고 한민족을 이루는 민중의 촘촘한 서사가, ‘갑순이와 갑돌이’로 대변되는 수많은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거대한 그물을 이루고 있다. 그야말로 욕망하는 삶의 숨찬 힘이 ‘현대사’라는 시대를 뚫고 나아가는 형국이다. 장면 장면을 이루는 온갖 그림들은 실제로부터 인용되었기 때문에 〈갑순이와 갑돌이〉가 불러일으키는 회화의 리얼리티는 관람객을 압도하고 남는다.
서사의 주인공 ‘갑순이와 갑돌이’는 신학철이 파고든 역사화의 페르소나일 것이다. 니체가 『아침놀』에서 “땅을 뚫고 들어가고, 파내며, 밑을 파고들어 뒤집어엎는”1 두더지의 비유를 통해 아직 빛나지 않은 아침놀을 이야기했듯이 ‘갑순이와 갑돌이’는 신학철이 보여주고 싶은 아침놀의 주인공일 것이다. 그러므로 ‘갑순이와 갑돌이’의 서사를 완전히 비극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의 역사는 새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역사와 미학이 날줄 씨줄로 되감기를 하는 것은 저 밑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참다운 복승(複勝)의 지혜를 드러내기 위해서이리라. 생각건대 신학철의 〈한국현대사-초혼〉(1993)은 복승의 지혜를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우리가 언제 근대를 초혼하고 현대를 초혼했던가. 그는 ‘초혼’을 해야만 건너가는 역사의 그늘을 회화로 씻김 해냈다. 그런데 관동대지진 100주년에 맞춰서 그린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2023)은 여전히 그가 ‘역사’라는 우물 거울을 놓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심연에서 표상되는 그늘의 실체로 파고들어 어그러진 관계들의 참혹한 욕망을 낱낱이 밝혀낼 때만이 그늘이 다시 투명해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신학철의 회화는 넋이 하는 말들의 빛으로 가득하다. 회화가 신의 소리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그의 회화에서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그 소리를 듣고 빛에 휩싸일 때, 바로 그때 그의 회화는 투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그가 들려주는 회화의 소리를 들어볼 일이다.
1 니체 지음 박찬국 옮김 『아침놀』 책세상 2004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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