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반할 세계》

경기도미술관
2024.11.15~2.23
Exhibition

오제성 〈INDEX#3_다보각경도 (多寶閣景圖)〉(사진 가운데) 철, 세라믹,
가변 크기 2020~2024 《알고 보면 반할 세계》 경기도미술관 전시 전경 2024

K팝아트 시대, 민화로 쓰는 이상향
변종필 미술비평

《알고 보면 반할 세계》
경기도미술관 전시 전경 2024

‘혼종적 결합을 기반으로 이번 전시에서 제안된 ‘K팝아트’라는 용어는, 민화와 팝아트가 결합된 새로운 형식의 한국 현대미술이 전통과 현대, 지역성과 세계성을 아우르며 확장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경기도미술관의 기획전 ‘민화와 K팝아트 특별전 《알고 보면 반할 세계》’는 한국 전통 민화를 현대적 팝아트로 재해석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 전시이다. 작자 미상의 전통 민화 27점과 현대미술 작가 19인1의 작품을 통해, 민화와 팝아트의 경계를 확장하며 ‘K팝아트’라는 독창적 미적 문법을 모색한다. 전통 민화의 상징과 도상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구성하여, 세속적 욕망과 대중문화의 혼종적 장면을 ‘꿈의 땅’(현세의 이상향), ‘세상살이’(해학과 풍자의 삶), ‘뒷경치’(내세의 상상)라는 세 가지 세계관을 길잡이 삼아 펼쳐낸다. 세 가지 세계관은 신성화된 대상을 현대의 시각 문법으로 재조명하며 삶과 사유에 대한 다층적 인식을 유도한다. 관람자는 화려한 색채, 유머러스한 단편, 재형상화된 조형물을 통해 ‘민화적 시선’과 ‘팝아트적 태도’가 상호작용하고 변주하는 상상계를 마주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탐구적이고 흥미롭다.

꿈의 땅: 이상향의 미학적 재구성
새해에 악귀를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문배도(門排圖),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도(十長生圖), 계절의 생동감을 담은 화조도(花鳥圖) 등 집안의 복(福)과 길상(吉祥), 장수와 풍요를 기원하는 도상은 민화의 특징 중 핵심이다. 전통 민화는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백년해로, 무병장수, 부귀영화, 입신양명 등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예컨대 〈포도도(葡萄圖)〉, 〈화조도〉, 〈백수백복도〉, 〈삼목구〉등 전통 민화 속의 탐스러운 과일, 화려한 꽃과 나무, 신비로운 동물과 문자는 이상향을 형상화하며, 다산과 번영, 액운 극복, 덕목 실천의 염원을 담고 있다. 이러한 기복적(祈福的) 태도는 현대 작가에게도 이어져, 소비사회와 현대적 욕망의 혼성적 풍경을 비추며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새로운 이상향을 제시한다. 박경종, 백정기, 김지평, 이수경, 오제성, 이인선, 박그림, 손동현 등의 작품들이 큰 틀에서 전통 민화의 기복적 의미와 닿아있다. 이들 중 박경종은 전통의 백수백복도 양식에 밥 로스의 기법과 만화 캐릭터를 혼합하여 비웃듯이 낙원을 그린다. 귀여운 캐릭터와 길상의 상징 뒤에 “신토불이” 같은 단어들을 숨기며, 민화적 기호를 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과 융합한 유머로 풀어낸다. 전통 민화의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 양식을 차용한 〈만수만복(萬壽萬福)〉(2022)은 과거 ‘백(百)’이 지니던 최대치의 의미를 현대 사회의 경제적 감각을 반영해 ‘만(萬)’으로 확장했다. 현대인이 바라는 마음의 길상(吉祥)을 반영한 현대적 민화로의 재해석이다. 오제성은 ‘다보각경도(多寶閣景圖)’에서 영감을 얻고, 전통 조각상과 현대 3D 스캔, 로봇과 기성품을 결합해 이상경(理想景)을 연출한다. 금강산전도나 단군상의 재해석 등으로 민화적 아이콘을 하이브리드 조형물로 재탄생시켰다. 과거 이상경을 현시대 기술과 미감으로 다보각경도의 형식을 차용해 입체적으로 펼친 것이 인상적이다. 이인선은 오버로크(overlock)라 불리는 기계 자수를 이용해 동서양의 신화, 점성술, 부적 이미지를 결합하고, ‘삼재부적’을 모티프로 현대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는 상징적 존재를 창조한다. 그의 작업은 민화의 벽사 기능을 서양 신화와 동물적 이미지로 변용하며 생경하면서도 내세적 환상을 구현한 구성들이 매우 독창적이고 매혹적이다. 특히 대조적이지만 공존하는 꿀과 독의 상징을 통해 인간의 양면적 욕망의 본질과 삶의 복합적 가치 추구에서 유발되는 갈등과 모순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꿀과 독〉 작품은 강한 양가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백정기는 촛불 발전기와 핵융합기 형태의 조각을 통해 비물질적 에너지와 주술적 염원을 시각화한다. 그의 작품은 벽사와 정화라는 전통적 상징을 현대 기술과 접목하여, 보이지 않는 기원을 물리적 장치로 형상화한다. 민화의 주술적 맥락을 과학과 기계 언어로 재해석한 이러한 시도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입체적이고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백정기〈촛불 발전기와 부화기〉
양초, 유정란, 열전소자, 방열판, 금속파이프, FRP 캐스팅 등가변 크기 2023

세상살이: 해학과 풍자로 그려낸 삶
민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해학과 풍자이다. 민화의 해학과 풍자는 인간의 일상과 욕망을 소박하면서도 익살스럽게 담아낸 표현 방식이 특징이다. 권위에 대한 비판과 삶의 힘겨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서민적 감성이 핵심이다. 이는 사회적 위계, 금기와 관습을 간접적으로 풍자하며, 더불어 길상(吉祥)과 벽사(辟邪)의 의미를 담아 삶의 희망을 전달한다. 민화의 해학과 풍자는 단순히 웃음을 자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의 모순과 인간의 욕망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며 동시에 교훈과 위안을 준다. 민화의 이러한 특징은 이번 전시 작품에서 나타나는 주된 특징이기도 하다. 김은진, 권용주, 최수련, 이은실, 이양희, 손기환, 김재민이, 김상돈 등의 작품이 이 세상살이 섹션과 어울린다. 이들 중 김은진은 〈신의 자리〉 연작에서 여성의 삶과 노화를 산수와 우화적 형상으로 풀어낸다.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배경으로, 민화적 환상과 사회적 풍자를 결합하여 욕망과 구조적 문제를 재치 있고 날카롭게 상징화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그의 작품은 기괴한 상상과 쾌락의 세계를 화면 가득 메운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처럼 사회를 향한 거침없는 예술적 통찰을 떠올리게 한다. 최수련은 동아시아 고서의 교훈적 문구를 한글문화로 번역하고, 이를 회화에 필사하여 관습과 권선징악의 교리를 해체하고 풍자한다. 그의 작업은 전통적 교훈 서사를 현대적 문자 해학으로 전복하며, 전통과 현대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일상의 웃음을 끌어낸다. 이은실은 억압된 성적 욕망과 금기를 초현실적 풍경으로 표현한다. 남근 형상과 협곡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은 몸과 심리를 은유하며 민화 속 해학을 현대인의 내면 풍경으로 재구성한다. 그의 화면은 풍자적이면서도 심리적 울림을 남긴다.

김상돈은 지워져가는 역사와 소비문화를 혼합하여 텅 빈 의자를 관능적으로 치장하여 인간의 과열된 욕망의 끝에 남겨진 허무함을 제시한다. 〈불광동 토템〉 시리즈는 미군 위안부의 흔적과 K컬처 소비 풍경을 재료로, 민화 속 풍자적 감각을 현대사회의 기억과 욕망에 새롭게 투영한 것이 핵심이다. 김재민이는 ‘소인(小人)’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조선시대 소인의 개념을 현대의 사회 하층민과 소시민성으로 치환한다. 이를 통해 현대인의 불안과 인정 욕구를 드러내며, 민화 속 서민적 감성을 현재 사회에 재투사한다. 그의 시선은 사회적 위계와 통념을 해학적으로 비틀며 새로운 공감대 형성을 이끈다.

지민석 〈스타벅스〉(왼쪽에서 두 번째)
캔버스에 아크릴 175×100cm 2024

뒷경치: 민화의 주술적 상징과 현대적 판타지
“귀신도 빌면 들어준다”, “돌아가신 조상도 도와준다” 식의 속담은 무속 의례를 통해 신령의 은혜나 조상의 가호가 후손을 돕는다는 오랜 토속 신앙의 믿음이다. 비과학적 말들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감정과 경험에 기대어 축적된 효험의 사례들이 21세기 첨단 과학 시대에도 토속 신앙이 여전히 강력한 힘을 유지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민화를 신뢰하고 그 상징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에게 민화가 단순한 장식이나 환상이 아닌 현실과 맞닿은 희망의 매개체인 것도 마찬가지다. 민화는 토속 신앙뿐 아니라 유교, 불교, 도교의 상징 체계를 아우르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신화적 세계를 그려낸다. 〈무신도〉, 〈심우도〉,〈감모여재도〉와 같은 작품들은 신령한 동물과 의인화된 신적 존재, 추상적 세계를 독창적인 도상으로 표현해 초월적 영역을 시각화한 그림이다. 이번 전시 작품 중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저승, 신령적 존재, 미신과 믿음을 매개로 민화의 주술적·영적 측면을 현대적으로 확장한 작품들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적 가치관, 종교적 심상, 대중문화의 코드가 어우러진 ‘현세와 초월의 대화’를 통해 현실 너머의 의미를 탐구하고, 오늘날의 세계를 재인식하게 만든다. 임영주, 지민석, 조현택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임영주는 설화, 전설, 미신을 탐구하며 현대 소비문화 속 액운 차단에 대한 믿음을 호출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해돋이 경관의 명소인 촛대바위에 덧씌워진 성적 코드와 숭배의 현상을 담은〈애동〉(2018)처럼 현대 소비문화 안에서 액운을 막거나 세속적 믿음의 대상이 된 것들을 풀어낸 다양한 작품들은 전시장의 한 부분을 미신 혹은 믿음의 장(場)으로 전이시킨다. 그의 출품작들은 민화가 지닌 주술적 속성을 현대 미디어와 밈(meme) 문화로 확장한 내세적 상상이라 할 만하다. 지민석은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전통 샤머니즘(돌·나무·산)을 현대적 맥락으로 재해석하고, 다국적 기업 상표 이미지를 신격화하여 신화적 서사를 전개한다. ‘백팔신중도’ 프로젝트 속 신들은 한국 전통 샤머니즘과 현대 브랜드 이미지가 융합된 도상, 그리고 작가가 직접 고안한 ‘문자도’와 대응한다. ‘백수백복도’ 형식을 활용한 ‘오문자도’는 현대적 이상향을 브랜드 문자로 형상화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샤머니즘적 관점에서 현대 사회와 우주관을 돌아보게 하는 예술적 통찰을 제시한다. 조현택은 도시 변두리 야간의 돌조각 판매점을 찍은 〈스톤마켓〉 연작에서 동서양의 신이나 민간신앙의 조각상을 비롯하여 신령한 동물이나 위인상 등이 뒤섞인 풍경을 포착한다. 그의 작품은 믿음, 숭배, 기복 심리가 혼성된 상태를 조용히 드러내며, 민화적 기복신앙을 현대의 사회적 맥락 속으로 확장한다. 언급한 작품들은 신령, 미신, 주술적 믿음, 비가시적 에너지가 현대적 재료와 기술 속에서 재구성되며, 민화가 전승하던 내세적 상상이 글로벌 신화와 대중 이미지로 혼종화된 ‘K팝아트적 미신의 판타지’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현택 〈스톤마켓-여주〉
피그먼트 프린트 68×140cm ed.15 2021

민화와 K팝아트: 전통과 현대를 잇는 상상력의 확장
《알고 보면 반할 세계》 전시는 민화의 상징과 의미를 현대적으로 변주하며 ‘K팝아트’라 부를 수 있는 혼종미학(hybrid aesthetics)을 제시한다. 전통 민화의 이상향과 길상을 현대 소비문화, 디지털 언어로 재해석하며 과거의 낙원을 현재로 끌어왔다. 그리고, 전시된 27점의 전통 민화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현대적 재료와 기술, 사회적 담론과 연결된 창작의 중요한 ‘레퍼런스’로 작동한다. 이는 민화가 고착된 이미지가 아닌 새로운 질문과 해석이 가능한 유연한 문화적 모티프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이번 전시의 참여작가들이 이상향, 해학, 풍자, 주술적 요소 등의 민화적 특징을 현대인의 욕망과 사회적 문제, 디지털 미학과 연결된 독창적인 조형 언어로 재구성하고 있는 것에서 확인된다. 이들은 한국 민화의 전통적 주제와 대중문화, 상업적 브랜드, 도시 환경 등을 결합하고, 다양한 은유를 통해 전통과 현대, 고급 예술과 일상 문화를 넘나드는 실험적 미적 문법을 만들어내고 있다. 결국, 혼종적 결합을 기반으로 이번 전시에서 제안된 ‘K팝아트’라는 용어는, 민화와 팝아트가 결합된 새로운 형식의 한국 현대미술이 전통과 현대, 지역성과 세계성을 아우르며 확장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이 점에서《알고 보면 반할 세계》 전시는 민화가 고정된 전통의 틀을 벗어나 열린 가능성과 현대적 맥락에서의 해석이 가능하며, 민화가 가진 잠재성을 더욱 풍부하게 탐구하여 새로운 미학적 지평을 넓힌 좋은 사례로서 성과가 있다. 반면, 이 전시의 근간을 이룬다고 전시장에 명시한 네 가지 질문2은 다소 추상적이고 광범위하여, 이번 전시만으로 이를 충분히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 많은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상상력이란 이미지를 형성하는 능력이 아니라 오히려 지각작용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이미지들을 변형시키는 능력이며, 무엇보다 애초의 이미지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고, 이미지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다’3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이미지들의 새로운 조합, 즉 예기치 못한 이미지는 상상력의 산물이며, 그 상상의 힘이 만들어낸 결과가 감상자의 감정의 폭과 깊이를 좌우한다. 결국, 어떤 이미지의 진정한 가치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상상 영역이 얼마나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하느냐에 달렸다. 민화도, K팝아트도 다르지 않다. 2025년 새해, 민화와 관련한 발전적 전시를 또 기대하는 마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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