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아나추이: LuwVor》
화이트 큐브 서울 3.18~4.18
김소정 기자
Critique

엘 아나추이〈LuwVor Ⅱ〉알루미늄, 구리선 270×303cm 2025
화이트 큐브 《LuwVor》 전시 전경 2025
엘 아나추이(El Anatsui)는 아프리카 서북단 대서양 연안 국가인 가나에서 태어나 나이지리아를 오가며 생활했다. 당시 영국의 식민 지배 아래 놓였던 양국에서, 미술이란 학문은 으레 데생과 오일 페인팅, 석고나 대리석을 통해 접하고 익히게 되는 서구의 문화 양식이었다. 이처럼 한번 이식된 전통은 두 나라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명맥을 이어갔으며, 나이지리아대의 은수카 캠퍼스에서 조소를 가르치던 아나추이가 재료에 대한 고민에 빠져든 계기와 무관하지 않다. 서구의 미술과 현실 간의 괴리는 서아프리카의 환경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가령, 정으로 쪼아 다듬으며 작업하는 화강암, 용접을 통해 형상을 구축하는 철근, 말끔한 흰색의 석고 따위를 미대 울타리 밖 일상에서 구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1990년대 어느 날 산책을 하던 아나추이는 비닐봉지에 담긴 병뚜껑 한 무더기를 발견한다. 그의 작업 세계를 대표하게 된 이 투박하고 이례적인 재료 “보틀캡”을 작가가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던 배경에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탐미 이상의 철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번 화이트 큐브에서의 전시를 위해 서울을 찾은 루이스 네리 엘아나추이스튜디오 디렉터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조각가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지닌 아나추이는 ‘환경이 던져주는 것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고수해 왔다.” 병뚜껑을 발견하기 전에 그는 시장에서 쓰이던 둥근 나무 쟁반이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깨진 항아리 등으로 작업을 하며, 지역의 특성을 강하게 발휘하는 ‘주어진 재료’에 대한 탐색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아나추이에게 재료를 던져주는 환경이란 단순히 생활 반경,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나 예술적 조건에 국한되는 현실만이 아니다. 이는 서아프리카라는 세계의 변두리에서 강력한 공동체 사회를 결성했던 아칸족의 정신적 토대이자 식민 시대를 경험하고 극복한 역사, 탈식민주의를 성찰하는 사회적 움직임과 실천까지를 아우르며 예술가로서의 역할과 의미에 무게를 더하는 일종의 시대정신이면서 가능성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병뚜껑의 다양한 변형과 조형 과정에서도 그가 조각가로서 어떤 고민을 해 왔는지가 잘 드러난다. 대체로 일회성 사용을 목적으로 제조되는 알루미늄 병뚜껑은 연성이 높아 쉽게 자르거나 구부릴 수 있다. 회사별로, 제품이나 브랜드별로 만들어 내놓는 병뚜껑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작가는 지난 30여 년간 병뚜껑을 두드려서 얇게 펴낸 다음 작은 조각처럼 잘라 서로 연결하는 방법, 병뚜껑의 라벨이 잘 보이도록 가장자리를 접는 방법, 가느다란 끈처럼 만들어 그물망처럼 꿰어내는 방법 등 각 병뚜껑에 알맞게 다양한 가공법을 선보이며 하나의 재료가 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했다. 또한 가공 단계에 여러 공동체가 개입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뒀다. 병뚜껑의 작은 크기는 정밀하고 반복적인 수작업을 요하는데, 일반 사람들이 그 수공업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들에게 각각의 일정한 역할을 맡겨서 병뚜껑 조각들을 생산하는 공동의 노동 현장을 꾸리는 방법으로 2023년 현대자동차 커미션 프로젝트로 진행된 테이트모던 전시 《Behind the Red Moon》에서 보여준 높이 10m 이상의 대형 작품들도 탄생할 수 있었다. 루이스 네리 디렉터에 따르면 이 또한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가능성”을 믿었던 작가의 평소 신념에 따른 것으로, 작업량, 규모, 속도뿐 아니라 노예무역, 산업, 물자의 이동을 다루는 작품의 메시지를 증폭시키는 효과도 가져왔다. 아울러 그는 “이들 각자가 작업을 하다 보니 생각지 못한 새로운 방식의 작업이 나오기도 했다”며, 이렇게 만들어진 조각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엮어내는 형식은 마치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가는 것과 비슷했다고 전한다.
수천, 수백 개의 병뚜껑들이 서로 매달린 채 빛을 반사하는 풍경은 실로 장관이다. 이들은 전시장 한 축에 단단히 고정되어 걸려 있으나, 금속이라는 재료 특성상 관객과 끊임없이 빛을 주고받으며 표면의 일렁임을 선사한다. 작품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빛의 반짝임은 사라지고 인간이 손끝으로 직접 매만졌을 것이 분명한 노동집약적인 구조물이 남는다. 성인 남성의 손톱만 한 납작한 병뚜껑에 가까이 들여다봐야 겨우 보이는 작은 구멍을 뚫고 구리선을 넣어 또 다른 병뚜껑과 반복적으로 연결한 집념의 결과물은 마치 평범한 이들의 지문처럼 저마다 고유한 형태와 이야기를 조용히 품고 있다. 그런가 하면, 병뚜껑을 둥근 모양으로 말아서 그물처럼 연결한 형태에서 기니안 만에 접한 어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망과 이를 손보던 어부들의 집단적 손놀림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인들에 의해 생산되고 소비되어 쓸모를 다한 병뚜껑은 아나추이의 세계 안에서 그 이동 경로만큼이나 풍부한 궤적을 내포하며 수명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엘 아나추이〈LuwVor Ⅰ〉알루미늄, 나무, 구리선 224×250cm 2025
사진: Jeon Byung Cheol 제공: 화이트 큐브
화이트 큐브가 이번에 서울에서 선보이는 《LuwVor》은 동명의 신작 4점으로 구성된 전시다. 아나추이는 자신이 사용하는 에웨어(Ewe, 가나와 토고에서 사용되는 언어)에서 ‘영혼’이나 ‘정신’과 관련된 의미를 지니는 단어를 차용해 ‘LuwVor’라는 제목을 만들었다. ‘서울’의 영문 발음이 ‘소울(soul)’과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한 언어유희이기도 하다. 10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도시 서울에 대한 아나추이의 헌정적 제스처로 읽힐 수 있겠으나, 사실 관람객이 그의 작품에서 어떤 ‘소울’을 느끼는 것은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나이지리아의 병뚜껑이라는 낯선 재료에서 출발해 집단 노동의 단계를 거쳐, 세속과 성스러운 장소를 가르는 휘장 같기도 하고 현실과 이생의 어딘가를 나누는 이정표 같기도 한 이 금속 드레이프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인식은 예술과 역사, 곧 아름다움과 처연함 사이의 독특한 지점을 끝없이 맴돈다.
천장에 매다는 방식으로 설치된 〈LuwVor Ⅱ〉(2025)는 관객이 그 주위를 돌며 작품의 모든 면을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때 엉성하고 성기게 짜인 병뚜껑 사이의 틈으로 시선이 스며들어 그 너머의 공간에 가닿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그의 작품은 큰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압도적으로 점유하기보다 오히려 공간의 발견을 이끄는 조각으로 자리한다. 틈의 영역은 그의 작업에서 병뚜껑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동화 기계가 주는 완벽함이나 공장형 금속의 균질한 표면과는 거리가 먼, 인간만이 내보일 수 있는 기술적 결핍과 결함이 이곳에 있다. 여기는 식민지가 극복한 반세기의 역사에 대한 증언, 산업사회에서 간과된 노동과 물성의 중요성, 강대국의 논리를 뛰어넘는 인간 가치의 회복이 자리한 영역이다. 작가는 또한 작품의 위아래나 좌우와 같은 내적 위계를 설정하지 않고, 동일 작품을 전시 공간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로 설치함으로써 ‘비고정적 형태’의 조각 개념을 오랫동안 발전시켜 왔다. ‘LuwVor’ 연작은 이후 다른 공간에서 새로운 모습과 구성으로 다시 등장하며, 아나추이 작업 세계의 핵심인 유연함과 확장성을 다시 한번 각인시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