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깃든 자리 A Woven Summer》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 7.3~9.16
황수진 기자

Preview

 한창균 〈대나무 찻상과 차도구〉 대나무 2025,
허성자 〈완초함〉 완초 2025,
이종국 〈양은 찻상, 부채, 새오브제〉 한지, 대나무, 노간주나무 2025,
이인진 〈차주전자〉 도자 2024, 온지음 방석과 HOS ‘흑유’ 물잔

손끝으로 엮은 여름
정갈하게 깔린 돗자리 위 그늘, 부채질 바람.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익숙하지만 잊혀가던 여름의 감각이 공예를 통해 되살아난다.《여름이 깃든 자리》는 한국의 전통 여름 문화를 소재로 한 전시로, 조선시대 문인들이 자연 속에서 예술과 문학을 나누던 ‘계회(契會)’의 장면을 모티프로 삼는다. 여름이라는 계절과 그 속의 자리, 사람과 사물, 기억과 정서의 관계를 공예의 언어로 풀어낸다. 무더위를 식히는 것은 결국 사람의 손길이다. 작가들이 다루는 소재는 대부분 자연과 맞닿아 있으며, 그 손길은 시간을 엮고 짜고 만든다. 전시에는 전통 공예의 맥을 잇는 장인부터 동시대 감각으로 재료를 재해석하는 작가까지 다양한 창작자들이 참여한다. 완초, 대나무, 한지, 양은, 신소재 등 여름을 상징하는 재료들로 선보이는 작업은 여름 계절의 구체적인 장면과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한창균은 대나무에 내재하는 강인한 생명력과 유연한 아름다움을 조형적으로 풀어낸다. 단단하고 매끄러운 표피, 반복되는 마디의 구조는 그의 손을 거쳐 유려한 곡선을 가진 입체물로 다시 태어난다. 자연의 이치를 닮은 그의 조형물은 공간 속에서 여름의 기운을 은은하게 퍼뜨린다. 허성자는 국가무형문화재 완초장 전승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왕골(완초)을 엮는 공예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작업세계를 펼쳐왔다. 전통 문양에 얽매이지 않고 직선, 사선, 격자 패턴 등으로 고유의 리듬을 형성하며, 완초 본연의 질감과 짜임을 살려 여름의 정서를 조형화한다.

이종국 〈바람을 모으는 부채〉 한지, 대나무, 노간주나무 46×30.5cm 2025,
허성자 〈패턴굽다리완초그릇〉 완초 7.5 ×14cm 2023

이종국은 1960~1970년대의 양은 냄비, 주전자, 한지 원료인 닥나무 등 점차 잊혀가는 생활 재료를 새롭게 조명한다. 소재의 채취부터 가공, 제작까지의 전 과정을 스스로 수행하며,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시도해왔다. 우리 한지와 대나무, 노간주나무로 만든 그의 부채는 ‘천년을 이어온 종이의 순수성’을 품고 있으며, 여름날 땀이 밴 손길로 바람을 일으키던 감각을 되살린다. 김태연은 버려진 비닐봉지를 실로 가공해 직조하는 작업을 통해 공예가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쓰임을 다한 물건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그의 작업은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방식과 물건과 맺는 관계에 질문을 던진다. 전통과 현대, 일상과 예술 사이에서 여름은 다시 짜이고 공예는 그 매개가 된다. 이번 여름, 한 철을 통째로 감싸는 감각의 자리에 앉아 손끝으로 엮은 시간과 마주하는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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