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부산: 도전과 오류
부산 5.8~11
김소정 기자
Sight & Issue

방정아〈올리버 스톤의 수영〉(사진 왼쪽) 반투명한 천에 아크릴릭 630×320cm 2024,
〈얼씨구 절씨구〉(사진 오른쪽) 반투명한 천에 아크릴릭 623×308cm 2024
고원석 라인문화재단 디렉터가 ‘영토와 경계’를 주제로 기획한 아트부산 특별전 섹션
‘CONNECT’의 출품작 중 하나다 제공: 아트부산
5월의 부산을 예술 축제로 달군 아트부산은 미술시장의 온도를 가늠해보는 지역 무대가 되었다. 올해 처음 열린 ‘루프랩 부산’은 미디어아트를 매개로 전시, 포럼, 아트페어가 뒤섞인 복합 플랫폼 실험으로 주목받았다. 두 축을 중심으로 동시대 미술의 다음 장면을 그려가고 있는 부산 현장의 온도를 함께 느껴보자.
‘예술과 함께(More with Art)’를 표어로 부산 아트위크를 이끈 제14회 아트부산(대표 정석호)이 지난 5월 8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됐다. 행사에는 17개국 109개 갤러리가 참여하고 약 6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되어 규모로는 현재 기준 올 상반기 국내 최대 아트페어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경제가 불황을 겪고 내수경제 성장률이 최근 3년간 하향세를 보여온 상황에서 미술시장의 부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 가운데, 지난 4월 개최된 화랑미술제와 아트오앤오의 성과를 확인한 미술계는 아트부산의 성적표에 기대를 모았다.
중대형·해외 갤러리 참여 회복이 우선
올해 상반기 국내 최대 규모로 개최되었다고 하나, 아트부산의 규모는 사실상 최근 3년간 계속해서 줄어들었다(2024년 20개국 129개 갤러리, 2023년 22개국 145개 갤러리). 참여 갤러리의 수가 아트페어의 판매 성과로 곧장 연결되지 않지만, 적어도 행사가 미술계에서 갖는 입지를 가늠하고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전망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참여 갤러리 수의 축소는 주최 측의 재정 운영을 좌우하는데, 이는 아트페어의 국내외 홍보 활동이나 프로그램의 규모 차원에도 영향을 미쳐 행사의 내실을 약화시킬 수 있다.
국제갤러리, 갤러리현대, 아라리오갤러리, 조현화랑, 가나아트와 PKM갤러리 정도를 제외하고 국내의 주요 중대형 갤러리가 불참한 상황이다. 여기에 겹쳐 해외 갤러리의 참여 또한 현저히 줄어든 형국에서 아트부산이 목표하는 ‘아시아 미술의 흐름을 읽는 현장’으로서의 행보는 요원하다. 다만 갤러리 참여율이 저조한 원인으로 국내외 작품 운송비 등의 경비가 급등하며 갤러리들이 아트페어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기 어렵게 된 외부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아트부산이 개최된 지난 5월 둘째 주에 아시아에서는 아트페어 도쿄와 타이페이당다이, 뉴욕에서는 프리즈가 개최됐다. 부산에서 주요 해외 갤러리를 만나지 못한 이유가 되었을 터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장장 14회를 맞는 국내 대표 아트페어인 만큼 갤러리와의 상호 신뢰에 뿌리를 둔 운영이 선행되어야 타 아트페어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MAIN’ 섹션에 참가한 신생 갤러리 피에스센터(PS Center)의 부스 전경. 권지영의
도자 조각 〈멍울〉 연작 출품작 전량을 해외 컬렉터에게 판매했다
한숨 돌린 판매 성적, 양극화 현상은 뚜렷
다행스러운 점은 주요 갤러리들이 나름의 판매 호조를 보이며 선방했다는 것이다. 아트페어장은 한산했으나, 기자가 취재한 갤러리 대부분은 크고 작은 작품 판매로 성과가 쏠쏠했다고 알려왔다. 특히 아트부산 측에서 미술관 관계자부터 개인 컬렉터까지 다양한 층위의 컬렉터를 초청한 것에 대해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가장 넓은 부스를 꾸린 국제갤러리는 김윤신의 회화와 조각 작품을 비롯해 로터스 강의 신작 등을 판매했다. 부스에서는 박서보, 하종현의 단색화 작업을 포함, 현재 부산점에서 개인전을 진행 중인 정연두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소개됐다. 조현화랑은 이배의 대형회화 2점과 브론즈 조각 작품을 판매하며 순조로운 시작을 이끌었다. 갤러리현대는 김보희의 신작〈Towards〉시리즈 12점을 첫날 솔드아웃시키는 성과를 기록했는데, 총판매 금액은 무려 10억 원을 웃돈다. PKM갤러리는 윤형근, 샘바이펜, 이원우, 홍영인의 출품작을 고루 팔았고, 권오상의 사진 조각에 집중한 부스 디스플레이로 눈길을 끈 아라리오갤러리는 30여 점을 판매했다. 이외에도 에디강의 출품작을 완판한 가나아트, 해외 컬렉터에게 작품을 판매한 제이슨함갤러리와 피에스센터가 무난한 시작을 알렸다.
해외 갤러리들도 부진을 면했다. 탕컨템포러리아트는 5억 원 상당의 웨민쥔의 작품을, 뉴욕의 캐나다갤러리는 캐서린 번하드의 작품을 팔았다. 독일에 기반을 둔 야리라거갤러리와 에스더쉬퍼에서도 다수의 작품 판매가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올해 세 번째로 페어에 참가한 베를린의 소시에테(Société)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만족할 만한 세일즈 성과를 거뒀다. 마리우스 윌름스 디렉터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판매 결과도 좋았고, 부스를 찾는 관람객의 미술에 대한 이해도가 몇 년 전에 비해 크게 높아진 덕분에 더욱 심층적으로 작가를 소개할 수 있었다”고 말하며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그러나 판매 결과 대부분이 저명한 작가와 유명 갤러리에 치우쳤다는 지적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해외 갤러리 관계자는 주최 측이 초청한 컬렉터와 고객들이 왔던 첫날 외에 나머지 기간에는 주말에도 현장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판매는 되었으나 기대에 못 미쳤고, 그마저도 부산에서 의미 있는 고객을 만나기보다 서울 등에서 방문한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이뤄진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소규모 갤러리들의 판매 성적은 지지부진했다. 이는, 유망한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기획력 높은 전시를 보여주는 젊은 중소규모 갤러리의 참여를 여러 방면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긴다.
3년 만에 아트부산에 참여한 아라리오갤러리의 부스 전경. 〈누운 인물〉(2022)을
포함한 권오상의 작품이 부스 전면에 전시됐다 제공: 아트부산
아트페어와 예술 플랫폼 사이
올해 아트부산은 전시 섹션별 심의 기준을 다듬고 심사 체계를 강화함으로써 콘텐츠 다양성을 꾀하고 국제성을 도모했다고 밝혔다. 갤러리의 부스 전시가 잘 구성될 수 있도록 매년 심사 기준을 개선하는데 올해는 퓨처 섹션에 참여하는 갤러리가 최다 2명까지의 작가를 선보일 수 있도록 유연성을 확대했다. 실제로 페어장에서는 메인 섹션과 퓨처 섹션의 변별력이 강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전방위로 활동하고 있는 19개의 신진 갤러리(설립 4년 이하)로 구성된 퓨처 섹션은 저마다 독특한 부스 구성으로 기획전시 수준의 프로그램을 제시해 관람객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 중 국내 WWNN에 소속된 중국계 캐나다 작가 제프리 청 왕은 올해 하나금융그룹의 후원으로 신설된 퓨처 아트 어워드의 첫 수상자로 선정돼 상금 1000만 원을 받았으며, 출품작이 전량 판매되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아트페어의 저력과 영향력은 결국 세일즈에서 비롯됨을 시사한다. 아트페어의 ‘본캐’는 어디까지나 ‘2차 미술시장’으로, 전 세계 갤러리들이 모여 대표하는 작가를 소개하고 작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장을 제공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다. 올해 처음 대표의 위치에서 아트부산을 지휘한 정석호 대표는 “미술의 다양한 지형을 탐색하는 전시를 구성하고자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본 행사는 부산 전역 다양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전시를 아트위크로 묶어내는 플랫폼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다양한 지형 탐색 이전에, 우선 잘 팔리는 아트페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미 부산에는 비엔날레처럼 국제적으로 저명한 행사가 있고 부산시립미술관과 부산현대미술관 외에도 다양한 층위와 성격의 전시공간과 행사가 지역의 촘촘한 문화예술지도에서 각자의 자리를 잡고 있다. 아트페어로서 아트부산이 시장 활성화의 역할에 집중한다면 부산으로 접점이 모아지는 모멘텀의 기회가 다시 한번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윌름스 소시에테 대표는 “서울과는 결이 다른 도시로 부산이 갖는 지역적 매력이 확실히 있다”며, 이미 수준 높은 동시대 미술 인프라를 갖춘 부산에 기반을 둔 아트부산의 성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진단했다. 해외 컬렉터이자 주중 프랑스 상공회의소 부대표인 파비앙 파코리는 인터뷰에서 “부산은 산업적 비즈니스와 경제적 생태계가 연결된 몇 안 되는 도시”라고 말한다. 그는 아시아 미술시장이 회복세를 보인다고 전망하며 “갤러리와 작가를 홍보하는 아트부산 같은 자체 아트페어를 갖추고 있는 것은 좋은 신호”라고 덧붙였다. 해양 도시, 무역 도시, 관광 도시라는 부산의 정체성에 발을 딛고, 그동안 미술계 각 분야의 플레이어들이 구축해 놓은 부산의 예술 생태계는 매년 그 영향력을 키워 가는 중이다. 이러한 지역 생태계의 일원이자 ‘작품이 잘 팔리는’ 미술시장이 되기 위한 아트부산의 도전적인 여정은 한층 깊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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