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튼서울 자서전》

피크닉 9.25~2026.1.4
사라지는 건축, 남겨진 기억

박성태 정림건축 큐레이터, 건축 아키비스트

Exhibition

서지우〈때 빼고 깜빡이1〉(사진 왼쪽) 176.1×41×61.5cm 혼합 매체, 테크캡슐
〈상실의 기준〉(사진 오른쪽) 2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13분 30초 2025
《힐튼서울 자서전》 피크닉 전시 전경 2025 © 이미지줌

서울 남산 자락, 40여 년간 서울의 얼굴이었던 힐튼서울이 문을 닫은 지 이미 2년이 지났다. 지금은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양복점이 나가고 철거가 한창 진행 중이다. 동시에 힐튼서울 바로 앞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는 언제나 그곳을 지키고 있을 것 같았던 건축물의 사라짐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대표적인 한국 현대 건축물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곳에 관계 맺고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엮어낸 이 전시는, 마치 지나간 한 시대를 위한 길고 아름다운 장례식 같다.

이 전시가 열리기 전, 건축계에서는 보존 운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공공 건축도, 문화재도 아닌 상업 호텔 건축물의 보존을 위해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냈다. 포럼과 세미나가 열렸고 출판물이 발간됐다. 왜 이토록 예외적인 건축물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공간을 기억하고 기념하려는 움직임은《힐튼서울 자서전》으로 이어졌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의 삶에서 “공동의 기억을 가진 건축물이 어떤 의미이고 무엇을 남기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획팀은 힐튼서울에서 수거한 크리스마스 자선 열차를 피크닉 전시 공간에 어울리도록 재구성하고,
약 두 달간의 복원 과정을 거쳐 다시 선보였다 © 이미지줌

건축적 맥락과 시대의 산물
1983년 완공된 힐튼서울은 건축가 김종성과 힐튼 인터내셔널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국제화 시대를 준비하는 당시 대외적 상황과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도 한몫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 한국은 H형강과 I형강 구조재를 자체 생산할 수 없었는데도, “거의 모든 건축 재료를 마음껏 쓸 수 있었던” 힐튼서울 프로젝트는 아주 예외적이고도 경이로운 작업이었다. 외장은 알루미늄 커트홀로 남산을 끌어안듯 배치되었고, 웅장한 18m 높이의 아트리움에는 녹색 대리석과 트래버틴 등 최고급 내장재가 사용되었다. IMF 세계은행 연차총회(1985), 아시안게임(1986), 서울올림픽(1988) 등 국제 행사의 무대이자, 단순한 숙박 시설을 넘어 한국의 국제화를 상징하는 복합적 장소였다.

힐튼서울은 현대 한국건축사에서는 물론 건축가 김종성의 작업 중에서도 단연 대표작이다. 마스터 아키텍트 김종성은 인테리어 디자인, 자재 선정, 시공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협업 체계를 통해 자신의 의도를 구현할 수 있었다. 그의 4가지 원칙 “구조, 공간, 비례, 재료”가 이상적으로 적용됐고, 절대적 비례감과 스케일을 어떻게 연결할지 끊임없이 계산하며, 10cm의 작은 차이가 만들어내는 공간감을 반복적으로 실험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개념만으로는 건축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그의 건축적 태도가 힐튼서울 곳곳에 새겨지게 됐다.

서지우〈숨쉬는 파사드〉혼합 매체 가변 크기 2025

전시의 구성 – 사라짐, 기억과 기록, 현재와 미래
《힐튼서울 자서전》은 건축 아카이브와 함께 도시의 기억과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복합적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는 크게 세 파트로, ‘사라짐(2025)’에서 시작해 ‘기억과 기록(1977–2022)’, ‘현재와 미래(2025 그리고 이후)’로 이어진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서지우의 작품이 마치 호텔 도어맨처럼 반갑게 인사를 하며 전시 안내문과 함께 관람객을 맞이한다. 그의 작품은 힐튼서울 철거 현장에서 가져온 자재들로 재구성됐다. 녹색 대리석과 트래버틴을 비롯해 콘크리트와 철제 파편 등이 사용됐다. 그는 오래된 건축물, 구조물을 관찰해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감각으로 되살리며, 낯설지만 친근하고 사라진 호텔의 또 다른 환영을 제시한다.

한켠에는 해체 현장의 파편과 잔해를 담은 정지현의 작품이 전시된다. 테크캡슐의 영상 작업은 건축물이 해체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하며, 보이지 않았던 단면을 드러낸다. 관람객은 갑작스럽게 철거 과정에 참여하며, “돌아오지 않을 장면들과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한 시대의 종말을 마주하며 그 시대의 사상이 담긴 건축 구조, 구성 요소, 물질들과 대화하고 건축이 담아낸 기억의 흔적을 응시한다.

아카이브 자료의 재구성 및 대안적 지식 생산
‘기억과 기록’ 섹션은 ‘대화들’, ‘장면들’, ‘사람들’이라는 세 개의 주제로 나뉘며, 아카이브 자료와 예술 작품을 통해 힐튼서울의 건축적,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되새긴다.

이 공간에서는 아카이브 기반 전시의 특징을 잘 볼 수 있다. 아카이브 전시는 과거의 기록물(문서, 사진, 물품 등)을 수집하고 분류하여 특정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데, 이 전시에서는 건축의 물리적 기록과 함께 그 건축물이 도시와 사람들의 삶에 남긴 무형의 가치도 탐구하고 있다.

김종성과 힐튼 인터내셔널이 주고받은 서신은 고급 호텔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 충분치 않던 시절, 건축가와 호텔 전문가들의 긴밀한 협력으로 어떻게 건축물이 완성되었고, 개장 이후 운영자와 어떠한 협의가 있었는지의 내용도 알려준다. 또한 철거 중 수집된 오브제들도 함께 전시된다. 객실, 로비, 서비스 공간 등에서 사용되던 사물들은 해체의 순간에 건져 올려져, 힐튼서울을 기억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이 사물들은 공간의 물리적 흔적이자, 사람들의 감각과 기억을 담은 기록이 된다.

이어서 각종 도면, 공사 현장 사진, 문서, 회의록 등 건축 아카이브가 펼쳐진다. 여기서는 힐튼서울의 주요 공간 사진과 설계도면을 함께 볼 수 있다. 로비를 지나 그랜드 아트리움과 분수대, 그 건너편으로 로비 라운지, 왼편에는 그릴로 표기된 식당과 칵테일 라운지 등 동선에 따라 도면과 사진이 배치됐다. 관람객들이 공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으며 도면을 관람객이 직접 들춰보며 세부사항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 설계작업이 실제 공간으로 어떻게 구현됐는지도 가늠할 수 있다.

또한 1978년 양동구역 재개발 사업 결정 문서와 현황 측량도 등을 통해 당시 힐튼서울이 서울 구도심 재개발의 상징적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으며 양동 유곽과 쪽방촌이 철거되고 현대식 고층 빌딩이 들어선 과정을 보여준다. 이 자료들은 도시 개발과 건축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로 작동한다.

이런 아카이브는 노송희의 작품으로 이어져 양동구역의 역사와 건축의 생애를 되짚어보게 한다. 이 작업은 영상 작품으로 도면, 공문서, 서신, 기록 사진 등 다양한 아카이브를 엮어내며 건축의 사회적 맥락을 되새기게 한다. 백윤석의 〈시대의 얼굴〉은 아카이브 영상, 뉴스 클립, 오래된 광고, 도시 풍경, 개인의 사진 같은 단편적 이미지를 통해 힐튼서울을 다시 바라본다. 힐튼서울 주변의 시간과 장소, 삶과 산업, 제도와 감각을 함께 엮어내고 있다. 또한 임정의와 최용준의 사진 작업들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병치 40년이란 시간을 연결 짓고 있다.

전시장에서는 일했던 이들의 자부심 어린 증언이 이어진다. 에릭 멜빈 스완슨 총지배인, 박효남 총주방장, 장민기 전무의 증언은 호텔 운영의 내밀한 층위를 보여준다. 힐튼서울은 한국이 세계로 나아가던 시기의 열망과 자신감을 건축과 서비스에 담아낸 상징적인 공간이었다는 것, 그리고 1980년대 당시 낯선 특급 호텔의 채용과 교육, 국제적 운영 시스템, 수많은 문화적 실험과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어우러진 세계가 이들의 증언으로 회고된다.

그래픽캐뷰러리 팀은 힐튼호텔의 클로징 세리머니로 마지막 달력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슬아는 호텔에서 지내면서 사라져버릴 공간에 대해 상상하며 일러스트 작업을 했고, 곽민구는 패턴 작업들을 전시하여 관람객이 힐튼서울의 구석구석을 다시 느끼게 한다.

2층 ‘기억과 기록’ 섹션 속 임정의와 최용준의 사진 작업.
《힐튼서울 자서전》 피크닉 전시 전경 2025

《힐튼서울 자서전》 전시의 아카이브적 의의
아카이브는 실물 자료와 기록물로 어우러져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전시하고 해석하는가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갖게된다. 《힐튼서울 자서전》은 건축가의 서신, 건축 도면, 사진, 철거된 오브제, 호텔 관계자들의 증언, 예술가들의 작품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다층적인 서사를 구축했다. 특히, 여러 경로로 수집된 오브제들은 공간의 물리적 흔적과 함께 그곳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감각과 기억을 담고 있어, 관람객이 호텔의 역사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또한 양동구역 재개발 사업 문서, 관계자 증언과 같은 자료를 함께 전시함으로써,힐튼서울이 서울 구도심 개발의 상징적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힐튼서울 자서전》은 이처럼 공식적인 역사 기록의 빈틈을 포착하고 재해석해 새로운 시선으로 사라진 힐튼서울을 바라보게 한다. 이와 같은 아카이브 전시는 기록물을 기반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기억을 되살리고, 사라진 것에 대한 애도의 과정을 펼쳐 보인다. 그리고 건축이 단순히 지어진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비로소 유의미한 생애를 갖게 됨을 강조한다.

사라짐 이후의 이야기
《힐튼서울 자서전》은 단순히 한 건축물의 종말을 기록하는 전시가 아니다. 그것은 건축이 사라질 때 남겨지는 기억과 이야기, 그리고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관한 성찰이다. 기획팀은 전시를 준비하며 수집한 수많은 자료, 포럼을 통해 나누었던 이야기, 관계자들의 증언 그리고 예술가들의 재해석 작업을 묶고 엮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라지는 건축물을 기록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힐튼서울은 이제 존재하지 않지만, 이런 질문을 통해 그곳에서 살아 숨쉬던 기억들을 재조립하며 또 다른 시간을 살아가게 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높이 18m, 폭 64m의 그랜드 아트리움은 자리를 바꿔 보존된다. 녹색 대리석, 트래버틴, 브론즈, 오크 등 변치 않고 영원한 재료들과 함께 우리의 기억도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다.

2025년 12월호 (VOL.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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