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작가 성장을 위한
중앙지역의 앙상블
《2025 ARKO LEAP》
금호미술관, 일민미술관, 학고재 아트센터
2025.12.12~1.10
강재영 기자
Sight&Issue

《구지은: 뉴제비타운》 금호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사진: 소농지 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 인프라의 서울 집중 현상은 지방에 적을 두고 활동을 이어가는 작가들에게 일종의 장벽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런 까닭에 지역문화 재단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작가의 활동에 한줄기 샘물이자 비빌 언덕이다. 기초·광역문화재단은 2016년 68개에서 2025년 142개로 그 수가 9년간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243곳의 지자체의 60%에 육박한다.1 광양시, 남양주시, 김천시, 양산시, 양주시, 여수시, 의왕시, 전남 고흥군, 대구 남구, 부산 수영구, 서울 용산구, 강서구 등에서 문화재단 설치를 추진하거나 창립을 앞두고 있어 그 수는 앞으로도 증가할 전망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지원은 신진작가 발굴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 지역에서 활동하는 중견 작가에게 기회의 폭은 더욱 좁다. 2025년 10월호 월간미술 특집 「On Becoming an Artist: 예비작가」에서 대구에서 활동하며 인터뷰에 응한 시각예술가 김영규는 “다양한 지원사업이 있지만, 성장 이후를 뒷받침하는 체계가 부족”하고 “상위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된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지역 활동의 한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활동에서 느끼는 성장의 한계를 짚기도 했다. 한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에서 운영하는 전국 단위 예술창작지원 사업들은 비교적 인프라가 집중된 중앙에서 집행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현태: 나선정원》일민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이러한 지역 작가 활동의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중앙 단위 제도적 지원 장치가 마련됐다. 아르코는 2025년 ‘지역예술도약지원사업’을 새롭게 출범했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중견 작가가 작업 세계를 발전시키고, 작품을 더 넓은 무대에 선보여 창작 활동과 경력의 한 단계 ‘도약’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2025년 한 해 동안 수행한 사업의 성과를 알리는 전시 《2025 ARKO Leap》가 서울 금호미술관, 일민미술관, 학고재 아트센터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2025년 참여한 작가는 총 17명이다. 이들은 아르코가 각 지역문화재단을 통해 추천받은 작가로, 지역에 거주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중견 시각예술가들이다. 이들은 창제작 지원뿐 아니라 비평 자문, 전시공간 및 기획과 아카이브-출판, 컨설팅 등을 지원받았다.
전시 지원을 받은 참여작가 13명은 각각 미술관의 한 층 전체를 자신의 작업 세계로 채우는 과정에서 창작의 방향성과 완성도를 점검할 기회를 얻었다. 금호미술관에선 도시와 자연,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생태 및 존재의 균형 회복을 탐구하는 구지은김주환 김진희 김희라의 작업이 펼쳐졌다. 일민미술관에선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가 기억, 이미지, 감정, 웹 기반 기술 등의 층위에서 어떻게 재구조화되는지 탐구하는 송성진 임안나 홍희령 이현태의 작업을 소개했다. 학고재 아트센터에서는 ‘전시공간 리:플랫’과의 기획 협업으로 인간의 근원적 본질·빙하· 흙의 미학을 탐구하는 우은정 황해연 유경자의 전시를 선보였다. 이 외에도 고영찬은 송은미술대상, 김자이는 호주 SOL 갤러리와의 협력을 통해 본 사업의 성과를 발표했다.
13명의 작가가 자신의 에너지를 바깥으로 잘 발산하는 과정을 지원 받았다면, 작업의 기반을 다지고 벽돌을 쌓듯 작업과 전시 과정을 기록·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작업기반을 마련한 작가들도 있다. 아카이빙과 출판 지원을 받은 손몽주 신예선 유대수 장상철 등 4명의 작가는 그동안의 작업을 정리한 아카이브 출판물을 일민미술관 3층 아카이브 공간에서 공개했다. 이 공간에는 참여 작가 영상 인터뷰뿐만 아니라 작가의 기존 전시 리플렛과 도록 등을 함께 배치했다. 함께 발간된 아트북은 ‘인덱스북’과 참여한 작가의 약력, 작가소개문, 작업 도판과 비평이 실린 17권의 소책자로 구성되어 작가의 작업 세계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여 전시를 구상하는 실무자들에게 유용한 카탈로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본 자료들은 아르코-아트누리-자료실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은정: 새가 날아오르는 시간–별빛은 신화다》학고재 아트센터 전시 전경 2025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정병국 아르코 위원장은 ‘지역예술도약지원 사업’이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서 지역 예술 생태계를 강화하고 중앙 집중적인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과 중앙의 역할 분담 및 협업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향후 아르코가 지향할 지원사업의 모델” 이라고 언급했다. 장다은 지역예술도약지원사업 팀장은 지역문화재단과의 협업 아래 창제작부터 출판 및 아카이빙까지 작업 활동을 복합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며, 올해부터는 국내 주요 공립 미술관에서의 전시 기회 마련뿐 아니라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과의 협업으로 세계 무대에도 진출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민미술관에서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웹 언어 기반 디스플레이와 사운드, 에세이로 풀어낸 〈나선정원〉(2025)을 선보인 이현태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지역에서 실현할 수 없었던 여러 한계를 일민 학예실과 제작지원단 유쾌한 측의 헌신적 지원으로 극복”했다며 “마음껏 춤을 출 기회”였다고 사업 참여 소회를 밝혔다.
‘도약’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하다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가 떠올랐다. 윤성호 감독의 〈도약선생〉(2011)이다. 운동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주인공들이 장대높이뛰기에 도전하면서 삶의 결핍을 채워나간다는 내용의 이 영화에서, 코치는 수평 운동을 수직으로 바꾸는 ‘도약’에서 ‘리듬 타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역예술도약지원사업은 지역 작가를 주변에서 중심으로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이들의 주변을 중심으로 만드는, 새로운 리듬을 만드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사업의 ‘도약’은 지역 작가를 서울로 이동시키는 상향 이동이 아니라, 지역에서 작업이지속될 수 있는 제작·전시·비평·유통의 경로를 두텁게 만드는 구조 변화여야 한다. 다시 말해, 서울에 집중된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지역으로 분산시키고, 지역 파트너들과의 협업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반복 가능한 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도약을 위한 무대에 두려움과 기대를 안고 발을 딛는 작가들과 함께 그 무대를 준비하는 이들 모두에게 격려 섞인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본 기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월간미술이 공동으로 기획하였습니다.
1 각 수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발행하는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을 참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