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024.12.19 – 3.30
Exhibition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전시 전경 2024

활성화된 사유의 틀:
역사의 현재 그리고 배움의 기록
임수영 미술사, 독립큐레이터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Room 1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전시는 ‘앎의 현장’이자 ‘능동적 목격’의 장이 될 수 있을까? 미술관은 ‘석화하지 않고 부유를 거듭하는 지대’가 될 수 있을까? 김성환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이번 전시는 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한다. 각 물음이 가진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작가와 큐레이터는 작품을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앎’ 그 자체로 간주한다.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에서 ‘전시장’은 ‘방’이 된다. 서소문본관 2층과 3층을 아우르며 펼쳐지는 김성환의 대규모 개인전은 역설적으로 누군가의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을 암시하는 세 개의 방 ‘Room 1, 2, 3’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을 관통하는 작업은 작가가 2017년부터 천착해 온 다중 연구 연작 〈표해록(A Record of Drifting Across the Sea)〉이다. 20세기 초 구(舊)조선에서 하와이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태평양을 횡단한 초기 이민자들의 서사를 다양한 관점과 관계망 속에서 탐구하는 이 프로젝트는 광주(2021), 하와이, 부산(2022), 에인트호번(2023), 카를스루에(2024)를 경유해 서울에 이르기까지 변주를 지속해 왔다. 기존 역사 서사의 바깥에 존재한 이들의 삶을 쫓으며 형성된〈표해록〉,  그 움직임의 기록은 작가가 하와이와 미국 서부를 직접 답사하며 보고, 듣고, 수집한 자료들을 포함하며, 그의 홈페이지1에 기거한다는 점에서 전시와 늘 공존한다고 볼 수 있다.

인물에 밑줄 긋기
Room 1은 인물로 가득한 공간이다. 이곳에는 과거와 현재, 실재와 허구, 역사 안팎의 인물들이 공존한다. 하와이는 이들을 이어주는 장소로서, 작가가 2020년부터 기반을 옮겨 거주하는 배움의 터전이기도 하다. 전시를 기획한 박가희 학예연구사는 하와이를 보다 포괄적으로 “다양한 삶과 문화가 혼재하는 구체적인 장소인 동시에,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도 여기에 작용하는 힘들의 역학을 살펴볼 수 있는 개념적인 장소”2로 소개한다. 이 방에서 작가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하와이의 그것과 병치하거나 중첩해 지금까지 분리되어 있던 두 대상을 상호-비유 또는 상호-참조적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지식 체계를 제안한다. 얼핏 무관해 보이는 국경 밖에서 일어난 사건과 삶이 우리와 맺고 있는 연결성을 발견하는 과정의 핵심에는 김성환이 하와이와 함께 생각하며 밑줄 그었던 인물들과 그들이 맺고 있는 복합적인 관계가 자리한다. 전시에서 반복적인 시각 장치로도 등장하는 밑줄은 단순히 강조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고민과 질문의 시간,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을 찾는 시간을 내포한다.

예컨대 관객은 Room 1에서 ‘책’이라는 구체적인 매체를 통해 가장 먼저 드류 브로데릭(Drew Broderick)을 만난다. 2022년 하와이트리엔날레 기획자였던 그는 당시 김성환의 작업뿐만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가 하와이 왕국의 불법 전복 100주년을 기억하며 1993년에 공동 설립한 아이 포하쿠(‘Ai Pōhaku) 출판사의 사진집 〈에 루쿠 왈레 에: 폐허 위의 폐허〉(1997~)를 선보인 바 있다. 해당 출판물은 선생과 제자이자 동료 관계이기도 한 사진작가 마크 하마사키와 카풀라니 랜드그라프가 ‘필리아모오(Piliāmo‘o)’라는 작가 그룹으로 기록해 온 하와이의 변천사 중 오아후(O‘ahu) 섬에서 진행된 H-3 고속도로 건설 현장 사진 연작과 관련 연표를 수록하고 있다. 드류는 트리엔날레에서 이 연표를 16권의 동일한 책을 이어서 전시했고,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는 그 방식을 차용하되, 책에 수록된 도판을 발췌 및 확대해 벽화 사진으로 보여주거나, 작가가 소장한 필리아모오의 원작 사진을 함께 소개하는 방식으로 정보의 물성적, 개념적 변주를 시도한다.

부모와 자식, 기획자와 작가, 스승과 제자, 동료와 친구의 관계망에서 형성되는 개인에 대한 사유는 다섯 점의 설치 연작 〈몸 콤플렉스〉(2024)나 〈활성화된 사진 틀〉(2022) 연작에도 드러난다. 삶과 그들이 터전 삼은 세계가 교차하듯, 1900년대 초 도산 안창호를 따라 하와이로 이주한 그의 아내이자 독립운동가인 이혜련부터 1970년대 하와이 군도 전역을 누비며 그곳의 문화, 언어, 역사 등을 기록하고 보존한 이들의 ‘몸’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군상과 짝을 이루는 벽면 자료는 하나의 이미지나 의미로 소급될 수 없는 복합적인 인물상을 구성한다. 스펙터클한 영상이나 설치를 기대한 이에겐 자칫 당혹스러울 수 있는 첫 번째 방은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인물들과 관계 맺는 충분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Room 3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역사에 주석달기
이번 전시는 유독 본문과 주석의 위계가 전복되는 듯한 양상을 보인다. 발표의 대상인 ‘작품’보다 그 작품을 형성하고 있는 정보의 파편들이 더 높은 비율로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의 세 번째 공간도 예외는 아니다. Room 3에서 김성환은 자신의 〈게이조의 여름 나날-1937년의 기록〉(2007)을 재방문해 이를 전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확장된 설치로 새롭게 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추가된 다채로운 기록과 이미지, 영화의 장면과 연표로 구현된 정보는 보충하고 풀이하는 주석의 기능을 수행하며 (한국의) 역사를 비롯해 작가가 구축해 온 작품의 역사와 밀착되어 읽힌다. 김성환은 특히 역사 속에서 변화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광화문의 기록, 2008년에 불탄 숭례문의 이미지, 불과 관련된 작가의 영상 작품과 불타는 장면을 담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의 〈희생〉(1986), 구로사와 아키라(Akira Kurosawa)의 〈란〉(1985) 등을 발췌해 생성과 소멸, 변화의 과정에서 무엇이 어떻게 기록되며 소실되는지 묻는다.

특징적으로 Room 3는 살아남은 기록의 소유와 유통에 관한 사유를 영화적 언어를 통해 확장한다. 예를 들어 〈희생〉과 〈란〉은 모두 감독에 의해 세트장이 불태워졌지만, 동시에 영화로 생성되어 영구히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매체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한편, 전시장 중앙에서는 〈표해록〉의 일환으로 제작되어 작가의 홈페이지에서도 관람이 가능한 영화 두 편을 정해진 시간에 상영함으로써 작품의 접근성과 순환성을 간접적으로 다룬다. 스크리닝 작 〈머리는 머리의 부분〉(2021)에도 등장하는 가상의 유튜버 액츄얼리나가 전통주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영상 〈액츄얼리나의 막걸리 만들기〉(2020)는 전통의 원형이 존재한다는 믿음 체계를 의심하며, 오히려 유튜브 형식을 소환한다. 작가는 “늘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석화되기를 반복하는 ‘경계’라는 개념, 그리고 그 오해된 개념 안에 안주하려는 지식이란 것의 재평가를”3 촉발시키듯 영화 매체의 한계를 실험하고, 역사의 현재에 자신의 시선을 교차시킨다. 전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건축적 연출 요소는 어떠한가. 마치 역사의 테두리를 접고, 그 변형된 테두리로 새로운 지형을 그리듯이 펼쳐져 있다. 미술관의 목재 바닥과 비정형 패턴의 직물 카펫, 합판 좌대를 가로지르며 방을 배회하거나 앉아 머무를 때면, 우리의 몸은 다른 물성과 표면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경계를 자연스럽게 횡단하는 주체가 된다.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Room 2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장소에 괄호치기
전시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두 방 사이에 괄호 쳐진 Room 2는 유동적인 대상을 향한 작가의 사유와 시선이 가장 뚜렷하게 발현된 곳이다. 텍스트에 새로운 리듬과 층위를 부여하는 괄호 안 공간은 때론 모호하고, 임시적이며, 공동체적인데, 이를 반영하듯 전시장은〈표해록〉의 세 번째 비디오 설치 〈무제〉를 미완결의 상태로 선보인다. 여기서 두드러지는 요소는 단연 건축적 언어이자 실험적인 전시 문법이다. 각기 다른 높낮이와 경사로로 구성된 단, 기능적 역할이 지연된 듯한 기둥, 복도, 계단 등은 직사각 형태의 방을 재구성하고, 관객의 몸은 이러한 구조물들에 반응하고 적응하며 자신만의 관람 동선을 그린다. 다채로운 이미지와 소리, 글과 말, 움직임과 빛이 채우는 공간 속에서 기록 사진과 작가가 제작한 이미지는 느슨한 연결성만을 가질 뿐이다. 천장의 중앙 부분에 설치되어 피라미드 형상의 천창을 향해 빛을 쏘는 무대 조명, 그리고 바닥 중앙의 개구부를 통하여 연결된 2층 전시장에 드리운 커튼은 마치 두 공간을 무대의 위-아래 또는 앞-뒤로 연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Room 2를 편집실이자 스튜디오로 제안하는 작가는 3월 한 달 동안 본인이 작성한 대본을 토대로 다양한 퍼포먼스와 워크숍을 호주 및 한국의 창제작자들과 진행하고 이를 기록 촬영할 예정이다. 특정한 시공간에서 제작된 푸티지는 머지않은 미래에 작가가 구상할 ‘새로운’ 작업에 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호-참조 관계에 놓인다. 〈머리는 머리의 부분〉에서 핸드폰 라이브 사진 촬영 기법을 활용해 ‘지금’의 순간을 재정의한 것처럼, 작가는 〈무제〉를 통해 특정 기간에 종속된 전시의 ‘지금’을 재정의하려는 것은 아닐까.

김성환 작가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표해록〉 자료 중에는 롤랑 바르트의 『중립』4에서 발췌한 구절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엉켜있는 대상에서 ‘올을 풀어내는(unthread)’ 제스처를 묘사하는 바르트의 글은 이번 전시의 주요한 개념적 비유로 작용했다. 하지만 해당 문구가 수록된 지문의 전과 후를 살펴보면 올을 풀어내는 행위는 사유의 대상을 설명하거나 정의하는 게 아닌, ‘기술(describe)’하는 것이며, 이는 곧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nuances)’를 포착하는 상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작가가〈표해록〉을 중심으로 활성화한 사유의 틀(구조)은 복잡하게 얽힌 생각의 끈을 세심하게 풀어내고, 상이해 보이는 대상들 가운데 존재하는 공통점, 그 차이 속 닮음의 뉘앙스를 현재의 시점에서 포착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앎’의 순간, 배움의 기록들을 쓰고 읽는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는 그래서 실험적이며 동시에 실천적이다.


1 김성환 작가 홈페이지 https://sunghwankim.org/study/lessonsinthefall.html
2 박가희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전시 리플릿 서울시립미술관 2024 p.45
3 김성환 「머리는 머리의 부분 작업 이전 2019년 작성된 프로젝트 스테이트먼트」『21GB』 광주비엔날레 2021
4 Roland Barthes, Neutral, trans. Rosalind Krauss and Denis Hollier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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