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 경험의 총합으로서의 회화,
그 전복적 확장
최지목 Jimok Choi
정소영 기자
Up-and-Coming Artist

최지목은 수원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무테지우스 예술학교(Muthesius Kunsthochschule)에서 순수미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챕터투(2023), 김종영미술관 (2022), 캔파운데이션(2019)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경기도미술관(2024), 김종영미술관(2024), 킬 시립미술관(2012)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사진:박홍순
감각적 경험의 총합으로서의 회화, 그 전복적 확장
정소영 기자
최지목은 회화를 ‘감각적 경험의 총합’으로 재정의하고, 회화의 개념적 경계를 부수고 확장하는 작업에 집중한다. 작가가 추구하는 회화의 확장은 “회화의 권력이 작가의 손에서 관객의 감각으로 옮겨지는 것”을 목표로 하며, “작가의 경험에서 관객의 회화로 옮겨지는 행위 자체가 회화 자체의 확장을 시도”하는 실천으로 완성된다. 작가는 기존 회화가 작가의 취향을 관람자가 일방적으로 보는 구조였다고 진단하고, 관객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신체에서 발현된 색을 보는 상호적 소통 방식으로 전환하고자 시도한다.

〈눈〉 캔버스에 아크릴릭162.2×130.3(×3)cm 2025
제공: 갤러리바톤
틀의 해체
최지목을 처음 만난 것은 2019년, 그가 서울문화재단의 시각예술부문 예술작품지원사업에 선정돼 개인전을 진행하면서다. 당시 작가와 큐레이터로 만난 최지목은 ‘틀(Frame)’이라는 물리적, 관념적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 시기 최지목은 외부 세계가 정한 물리적, 관념적 틀에 저항하며 틀 자체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전략을 취했다.
2013년 작 〈원도우즈 비스타(Windows Vista)〉는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그림, 판화, 사진 등을 액자째로 잘라 안과 밖을 바꾸어 고정함으로써, 작품의 외곽을 잡아주던 틀을 내부의 십자가 형태로 변형시켰다. 이는 시각 질서를 규정하는 사각의 틀에 질문을 던지는 행위였다. 퍼포먼스 〈Finalcut-Im Quadrat〉(2014)으로는 정사각형 종이를 자르고 붙이는 행위를 끊임없이 전개하며, 관찰하는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의 의도와 결과 사이의 괴리를 깨닫게 했다.
이 시기에는 설치, 오브제, 퍼포먼스 같은 다양한 매체가 활용되었으며, 외부 맥락이나 일상적 사물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신체 지각으로의 진입과 회화의 필연성
초기 작업이 물리적 틀의 해체에 중점을 두었다면, 최근의 ‘잔상’ 시리즈는 형식이 아닌 개념으로서의 ‘틀’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심화한다. 최지목은 첨단 기술 시대에 인간 고유의 감각적 경험과 신체성이 예술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인식한다. 특히, 잔상 효과는 망막을 통한 구현이기 때문에 사진이나 AI로는 구현할 수 없는 영역이며, 이는 곧 회화만이 가질 수 있는 매체의 필연성으로 전통적인 캔버스라는 틀 안에서 인간의 지각 시스템을 회화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잔상 시리즈는 작가 스스로 말하는 “눈 속의 세계를 그린다”는 관점을 반영하는 지각적 회화( Perceptual Painting)이다. 이는 단순한 추상이 아니라 본 것에 대한 경험과 기억의 표현이다. 최지목은 태양을 직관한 뒤 눈에 남는 잔상을 기록하기 위해 용접용 선글라스를 쓰고, 자신의 눈(망막과 시신경)을 일종의 빔 프로젝터처럼 활용하여 잔상을 캔버스에 투사해 형태를 딴다. 이러한 찰나의 경험은 아이패드 드로잉과 글 기록을 통해 보완된다. 이 때문에 추상으로 보일지라도 작가에게는 시각적 레이어가 투영된 가장 리얼한 극사실주의인 셈이다.
최지목은 빛의 환영(일루전)을 물질(물감)로 구현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에어브러시를 사용한다. 이는 빛의 입자와 파동이 확산되는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기에 효과적이며, 빛의 가산 혼합과 물감의 감산 혼합이라는 상반된 프로세스를 역으로 활용하여 관객의 신체에 반응하는 색채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회화는 강한 채도와 보색의 충돌을 통해 관객의 망막에 착시나 잔상을 유도한다. 관객이 작품을 감상할 때 자신의 신체에서 발현된 색을 실제로 보게 되면서, 작가가 구현한 경험 위에 관객의 시각이라는 레이어가 얹어지는 상호적인 소통 방식이 완성된다.
위 〈윈도우즈 비스타〉 회화, 사진, 판화 작품과 액자(22점) 320×620cm 가변 설치 2013
아래 왼쪽 〈빛의 충돌〉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2×130.3cm 2025
아래 오른쪽 〈Afterimage of the Sun〉 종이에 수채화 20.3×29.5cm 2007
제공:작가, 갤러리바톤
새로운 미적 지평의 실천
결국 최지목의 작업은 평면 회화라는 전통적 ‘틀’ 안에서 가장 급진적인 개념적 확장을 시도한다. 그는 회화의 정의가 더욱 포괄적이고 넓은 스펙트럼으로 지속적으로 해체되고 확장되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그의 회화는 인공지능이 모사할 수 없는 순간적 경험과 불연속의 지각을 붙잡음으로써, 기술 시대에 더욱 유효한 회화의 필연성을 드러낸다. 최지목이 제시하는 회화의 확장은 형식적 실험을 넘어, 감각·기억·경험이 교차하는 새로운 미적 지평을 향해 나아가는 실천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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