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놓인 이야기

·《김성환: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2025 월간미술대상 우수 전시 10

12월 특집기사 ⑤

역사와 장소는 기록의 중심에서 구성되기 마련이지만, 그 주변부에 머무는 이야기일수록 삶에 근접한 단단한 결의 서사를 들려준다. 김성환은 이민자와 기록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역사 서술의 경계를 드러내고, 정영선은 땅과 식물이 지켜온 고유한 질서로 장소의 논리를 다시 세운다. 이처럼 두 전시는 주변에 놓인 존재와 장소에 귀 기울이며 체제와 개인, 개발과 자연이 어긋나면서도 맞닿는 지점에서 역사와 앎이 다시 쓰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김성환: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024.12.19~3.30
전시기획 | 박가희 전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현 제16회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김성환〈몸 콤플렉스 3: 남의 향토에서 하는 재배〉복합 매체 가변 크기 2024
사진: 권수인 제공: 작가

김성환의 개인전을 미술관 전시 기획 회의에 발의했을 때, 그 이유는 간명했다. 김성환은 국제적으로 큰 커미션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됐지만, 국내에서는 드문 개인전과 비엔날레 규모의 전시를 통해 단편적으로 보여졌다고 판단했다. 잘 알려진 작가이지만, 우리는 그의 작업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에, 당시 전시 의제였던 ‘건축’을 작업 방법론이자 구조적 설계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그가 지난 수년간 구축해 온 작업의 구조와 사유의 방식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한자리에서 조망해 보고자 했다.

그중에서도 다년간 진행 중인 다중 연구 연작 프로젝트〈표해록〉(2019~)이 제시하는 ‘앎에 접근하는 태도’에 주목해, 전시라는 매체와 지식의 형성·순환 방식 사이의 관계를 보다 분명히 드러내 보고자 했다. 기획자로 일하면서 나는 이릿 로고프가 말한 “앎의 사건(event of knowledge)”이라는 개념을 자주 떠올려 왔다. 나에게 전시는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이기보다는,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 경험과 인식이 교차하면서 관객 각자의 자리에서 사고의 축이 조금씩 이동하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구조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작가가 다루는 역사적·지정학적 논제들을 나열하는 일이 아니라, 이러한 질문들이 전시 공간 안에서 ‘사건’으로 경험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작업이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보게 만들 것인가가 중심에 놓인 전시였다.

김성환(데이비드 마이클 디그레고리오 aka dogr와의 음악 공동작업)
〈머리는 머리의 부분〉 H.264 Quick 
Time, 2160p on SSD, 16:9, 컬러, 사운드 22분 59초
2021 제공: 작가

〈표해록〉은 20세기 초 한인 하와이 이주 서사를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지만, 그에 머물지 않는다. 수년에 걸쳐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주는 곧 지역적·문화적·규범적·젠더적 경계, 서로 다른 문화와 제도가 맞닿는 지점, 역사와 기록, 지식의 소유와 유통을 둘러싼 질문들로 확장되었고, 결과적으로 제도가 개인의 지식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프로젝트로 발전해 왔다. 특히, “부재한 기록으로 인해 왜곡되고 와해된 집단의 경험을 조명하고, 당대에 관한 다른 경로의 인식을 보급”하고자 한 작가의 작업 방향을 따라, 전시를 통해 대상(역사)이 기록되고, 순환되는 방식, 혹은 그렇지 못한 구조가 전시를 통해 드러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러한 질문을 전시의 구조로 옮기는 과정에서 작가와 나눈 대화의 상당 부분은 ‘전시의 문법’에 관한 것이었다. 다른 인식의 경로를 제공하고자 한다면, 새로운 언어를 구사해야 했다. 전시는 대체로 선형적인 서사 구조를 전제로 특정 사건이나 주제를 따라 관람 동선을 설계하고, 텍스트와 작품을 그것에 맞게 배열한다. 우리는 이러한 문법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여러 개의 축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 하와이와 한국, 선주민과 이주민, 기록자와 목격자, 제도와 개인의 시선이 하나의 직선에 놓이기보다는, 서로 다른 층위로 얽혀 읽히도록 만드는 일에 가까웠다. 전시 도입부에 배치된 2022 하와이트리엔날레의 일부를 재편집한 장면, 다이아몬드 헤드/레아히/도산이라는 서로 다른 명명들이 병치된 이미지들은 그러한 문법 실험의 출발점이었다. 하나의 장소가 서로 다른 공동체에 의해 어떻게 각기 다른 이름과 기억으로 호출되는지, 그리고 관객이 그 틈을 어떻게 통과하는지를 전시 안에서 직접 경험하게 하고자 했다.

준비 과정에서 가장 선명하게 남은 기억은 하와이를 방문한 일이다. 작가의 말과 이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했던 하와이에 실제로 방문했을 때, 20세기 초 구한말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들을 경험했다. 1906년에 세워진 영희라는 건물, 광화문의 파사드를 딴 한인감리교회, 당시 한인 이주민들이 모여 살았던 동네에 여전히 존재하는 센터, 시멘트로 만든 한국 절 무량사 같은 장소들, 그리고 그 주변에 축적된 이야기들은 이주와 식민, 독립운동의 기억이 이질적인 기후와 언어, 토양 위에서 여전히 현재형으로 존재하는 기묘한 시간을 경험하게 했다. 동시에, 선주민들의 문화 주권 운동과 그 안에서 사용되는 언어들,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한국 근대사를 통해 배워온 익숙한 정서와 낯선 정동이 한꺼번에 겹치는 순간을 만들었다. 몸의 이동이 나의 인식 구조를 서서히 옮겨 놓는 경험이었다. 이 감각은 예컨대 광화문 일대의 변화와 광장의 역사, 그곳에 중첩된 정치적 사건들 등 이후 작업과 전시가 만드는 여러 장면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전시 기간 진행된 ‘워크숍’은 이러한 구조를 관객의 몸으로 옮기는 또 하나의 실험이었다. 작가는 전시 일부를 작업의 제작 과정과 연결해 열어두었고, 참여자들은 글쓰기, 노래/음악, 움직임 등으로 구성된 워크숍에 참여하며, 제작 과정에 함께 했다. 참여자와 관객, 작업과 현실 등 내부와 외부의 경계는 워크숍이 진행될수록 점차 흐려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 역시도 이 구조 안에서 완전히 내부도, 외부도 아닌 상태로 머물게 되었다. 전시를 “설계하는 사람”에서, “구조 속을 함께 움직이는 하나의 몸”으로 옮겨가는 과정이었고, 이러한 경험은 이번 전시《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Ua a‘o ‘ia ‘o ia e ia)》에서 제안하고자 했던 ‘앎의 사건’이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사고와 감각이 동시에 흔들리는 순간이자, 구조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설정해야 하는 경험이었다.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전시 전경 2024
사진: 권수인 제공: 작가

이 전시가 전하고자 했던 것은 하나의 명료한 메시지라기보다는, 생경함과 불편함에 가까웠다. 익숙한 전시 문법 안에서 편안하게 읽는 안락한 서사 대신, 관객이 방향 감각의 어긋남을 겪고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 장면을 마주하는 순간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 물론, 전시의 구조와 의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인지한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낯선 구조 안에서 생소함이나 즉각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여백을 감지했다면, 그 지점에서 이미 전시는 작동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이번 김성환 개인전은 우리가 이미 “배 위에 올라탄 상태”, 이미 주어진 역사와 현실의 조건 속에서 어떻게 다시 보고, 다시 배우고, 다시 서술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하나의 모색이었다. 그 과정에서 작가가 구축해 온 세계를 함께 항해할 수 있었던 것은 기획자로서의 큰 배움이었다. 이 전시의 모든 장면을 가능하게 만든 작가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박가희 
서울시립미술관을 거쳐 현재 제16회 광주비엔날레의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기획을 앎을 형성하는 배움의 한 방법으로 여기며, “앎의 사건”을 촉발하는 실천들을 모색해 왔다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24.4.5~2024.9.22
전시기획 | 이지회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4
사진: 이미지줌

정영선 조경가의 작업을 펼쳐 보이는 전시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우선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여성 작가를 발굴하고 소개하고자 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지속적인 노력과 맞닿아 있다. 동시에 기후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인간과 자연의 공존 방식을 오랜 시간 모색하고 실천해 온 작가의 삶과 작업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일이 의미 있다고 보았다. 다만 조경이라는 분야의 특성상, 정적인 물질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생명”의 시간성과 과정을 전시라는 매체로 구현해내는 일은 도전이었다. 결국 그 시간성을 어떻게 전시 공간에 풀어낼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나는 전시가 단순한 재현에 머무르기보다 정동이 발생하는 현장이 되길 바란다. 정영선 전시의 경우 비교적 주변부로 여겼던 직능인 조경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국토 규모의 경관계획부터 작은 정원까지 여러 규모와 유형의 프로젝트를 통해 ‘조경설계’의 다양한 면모를 입체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한국 조경의 지난 50여 년 역사 속에서 존재했으나 아직 충분히 서사화되지 않은 흐름을, 정영선의 삶과 작업을 매개로 오늘의 시점에서 재정렬하려 한 것이다. 실내 전시 공간이 이러한 역사 쓰기의 장이 되었다면, 관람객이 전시장을 나서며 맞닥뜨리게 되는 성큰가든과 종친부마당의 정원은 작가가 가꾸어온 정원의 감각을 직접 체험하는 현장이 되었다. 인왕산의 지형적 맥락과 전통과 현대 건축 양식이 어우러진 미술관 환경을 반영해 조성된 두 정원은, 작가의 사고가 장소로 구현되는 과정을 관객이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4
사진: 이미지줌

전시를 준비하면서 기억에 남은 순간이 정말 많지만 네 가지 정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 먼저 정영선 조경가가 설계한 많은 장소를 답사했는데,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봉하마을이다. 봉수대와 이어지지는 지형 위에 자리한 집과 묘역, 마을과 공원을 거닐면서 인공적인 구조와 자연의 어우러짐이 아찔하게 아름다운 절경이 이어졌다. “이것이 예술이 아니면 무엇이 예술인가?” 절로 중얼거린 기억이 있다. 또 하나는 작가의 설계사무실 지하에 쌓인 채 케케묵은 청사진을 한 장씩 들춰볼 때이다. 올림픽선수촌아파트, 대전엑스포, 양재천 등 1999년 설계가 본격적으로 디지털화되기 이전 손으로 직접 그린 수많은 자료들이 무더기로 있었다. 습하고 무더운 여름 먼지 속에서 이들을 분류하고 전시할 만한 자료들을 솎아내는 과정에서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던 장소들 뒤에 어떠한 의도와 각고의 노력이 있었는지를 여실히 느꼈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작가와의 에피소드도 있다. 평소 “조경가의 작업이 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던 그였기에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선형적인 진행 방식이 아닌 주제별로 다른 묶음들을 제시한 것이 썩 맘에 들지는 않아 하셨던 것 같다. 더욱이 미술과 건축을 전공한 기획자라 하니 이 사람이 조경을 어떻게 전시로 만든다는 것인가 의구심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본인 손을 떠난 일이라 하며 상대적으로 젊은(당신 나이의 절반도 못 미치는) 기획자를 기다려 주었고, 브로슈어가 완성되어 작가가 검토하던 첫날 아침 전화가 왔다. “내가 오해해서 미안하다. 아무도 내 인생을 당신처럼 잘 기술해 줄 수 없다. 고맙다.” 그 말에 눈물이 왈칵 났다. 오랜 시간 수많은 협업자들과 조율하며 작업했던 그의 내공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또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본 베니스 산마르코아트센터 관계자의 초청을 받아 전시가 이탈리아를 순회했고 개막식을 위해 작가가 직접 현지를 방문했는데, 산마르코광장에 걸린 배너에 표기된 ‘Jung Youngsun’ 이름을 같이 보는 순간 작가가 훌쩍이는 게 느껴졌다. 1970년대 국토개발 시기부터 서양의 조경문화를 참고하고 부러워했다면, 이제는 그들이 한국정원의 정수에 관해, 또 정영선의 작업세계에 관해 궁금해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4
사진: 정지현

정영선은 생태다양성, 회복탄력성 등 오늘날의 핵심 의제를 오래전부터 주목하고 실천해 온 인물이다. 그의 삶을 현재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우리에게도 이러한 역사가 존재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조경적 실천은 공간을 자연으로 꾸미는 행위가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환경을 돌보고 유지하는 근본적 태도의 문제임을 강조하고자 했다. 실제로 많은 관객이 조경의 역할과 범위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며 반응을 보내왔다. 자녀가 조경을 공부하고 싶다 했을 때 꽃과 나무를 심는 일 정도로 오해해 반대했지만, 이 전시를 보고 관련 학과 지원을 허락했다는 사례도 있었다. 80대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의 삶이 은퇴를 앞둔 많은 여성 관람객에게 용기를 줬다는 피드백도 있었다.

정영선의 작업이 전 지구적이고 동시대적인 의제를 던진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는데, 이탈리아에서 순회전시를 개최하게 된 것도 감사한 일이다.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기간에 개최된 순회전에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기관과 전문가 다수가 방문했다. 해외 기획자와 비평가들이 전시를 인상적으로 보고 각자의 연구에서 정영선과 한국의 경관관(觀)에 관해 인용하고 있다.

전시 기획자의 입장에서 특정 주제를 고정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매 기획의 시점마다 내가 큐레이터로서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관심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팬데믹 이후 변화한 미디어 환경과 공간에 대한 문제의식은 《워치 앤 칠》 시리즈로 이어졌고, 동시에 식물을 가까이 두는 생활문화가 확산되는 흐름 속에서 조경가의 작업을 깊이 연구하는 일이 시의적이라 느꼈다. 80대 여성 작가와의 협업 과정과 폭넓은 세대의 관객 반응을 관찰하면서, 서로 다른 몸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으로서의 전시인 《기울인 몸들》을 기획하게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의 시대에 여전히 개발 논리 중심으로 움직이는 도시 환경에 어떤 대안적 전략이필요한지, 탈성장과 소멸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작업에 주목하고 있다.

이지회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베니스 순회전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워치 앤 칠’ 및 연계 국제 순회전 등을 기획했다. ACC의 《새로운 유라시아 프로젝트》 큐레이터, 2014년에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한국관의 부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25년 12월호 (VOL.491)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