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장으로서 디자인 피력하기

ART BOOKS

하도경 기자

공론장으로서 디자인 피력하기
무형의 물질에 형식을 부여하는 행위, 목적을 위해 설계하는 것. 디자인은 비교적 단순하게 설명될 수도 있는 분야다. 개념을 시각화하고 시각화한 이미지를 현실에 반영하는, 복잡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디자인 프로세스는 디자인을 논할 때 늘 중심에 있다. 디자인을 과정과 단계에 관한 이야기만으로 귀결한다고 해도 경우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기에 이제까지 디자인에서 비롯된 논의들은 유효했고, 또 유효할 것이다(디자인을 이른바 멋들어지게 해 트렌드를 선도해야 한다는 혹은 트렌드를 따라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지속적인 수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프로세스에만 편중된 디자인 담론이 주류가 되면서 디자인에 기대하는 혹은 디자인을 통해 듣고 싶은, 나아가 디자인을 통해 할 수 있는 이야기의 폭이 더 좁혀지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성공적인 디자인은 어땠는가?”라는 맥락에서 “디자인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상의 질문을 던지는 일이 더 많아져야 하고, 그 질문의 형태는 풍부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들은 디자인에 대한 논의의 폭을 넓히기 위한 목표를 지닌다. 철학적 입장에서 디자인을 전체적으로 다룬 연구서부터 30년 이상 디자인 비평에 몰두해온 디자인 평론가의 평론집, 나아가 모든 가능성을 사변하고 더 나은 미래를 실험하는 디자인에 관해 다루는 급진적인 책까지 살펴보자.

디자인 미학
제인 포지 지음 · 조원호 옮김 · 미술문화 304쪽 · 2016 20000원

철학과 교수가 펴낸 디자인 미학서. 칸트의 철학을 주춧돌 삼아 디자인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지 분석한 이 책은 미학 입장에서 디자인을 전체적으로 다룬 최초의 연구서로 알려져 있다. “가장 중요한 물건들은 너무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문장을 책의 서두에 두어, 책의 전체적인 방향 길잡이로 삼는다.

저자는 미학(Aesthetic)이라는 영역 안에서 주로 집중되는 분야는 단연코 미술이었다는 점을 짚으며, 미학의 연구 범위를 넓혀 디자인까지 포용해야만 인간의 관심사를 제대로 정의할 수 있다고 봤다. 디자인을 철학과 미학의 영역에 포함하려는 포부와 목적을 향해 나아가면서 개인적이면서 일상적인 경험과 선택이 어떻게 미적일 수 있는지 디자인과의 상호작용에도 중심을 뒀다.

본 저서는 디자인을 통한 미적 경험, 일상에서 경험하고 마주하는 디자인에 대한 우리의 사고, 감각 등을 충실하게 짚으며, ‘미와 취미판단’, ‘디자인과 부수미’를 거쳐 최종적으로 ‘디자인과 일상미학’에 당도하는 구성을 취한다. 그리고 독자가 관찰자와 감상자, 비평가인 동시에 소비자, 구매자, 장식가, 사용자로서 디자인 환경의 주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디자인 연구와 디자인 미학의 발전을 기원하고 있다. 이는 디자인이 발 딛고 서 있는 지대가 일원론적으로 해석되지 않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보다 분석적이고 다층적인 맥락을 통한 접근으로 디자인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로서 의의를 지닌다.

디자인과 인문학적 상상력
최범 지음 · 안그라픽스 232쪽 · 2023 16000원

디자인 평론가의 7번째 디자인 평론집. 디자인의 곁에 어떤 맥락을 부여하는지에 따라 논의의 방향과 층위가 달라질 수 있음을 방증한다. 그가 디자인 곁에 놓은 단어는 인문학이다. 저자는 인문학을 문화, 사회, 역사, 윤리의 4가지 측면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도 지역적, 시대적으로 디자인과 사회가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접근해 분석했다.

디자인의 주요 특징인 “새롭거나 낯선 사물을 사람들이 친숙하게 받아들이도록 변형하는 미적 기술”로서의 면모를 살피고, 현대사회와 소비주의에 봉사해 온 디자인뿐만 아니라 ‘성의 없는’ 디자인이 던질 수 있는 물음까지 폭넓게 나아간다. 또한 인문학의 유기적 연관성에 관해 엮으면서 디자인이라는 주제가 시대, 지역 등 다양한 인간상을 드러내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까지 부각한다. 특히 그는 오늘날 사물의 수명을 결정하는 요인이 ‘기술’이라기보다 ‘디자인’에 있다는 다소 파격적인 견해를 내비치며 디자인에 대한 거시적인 접근, 디자인이 초래하는 사물의 대량 학살과 생태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 그리고 여기서 비롯된 지속 가능한 디자인이라는 명제까지 다룬다.

가장 눈여겨볼 지점 중 하나는 ‘착한디자인’에 대한 언급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김상규의 저서 『착한디자인』에 대해 언급했다. 한국에서 ‘착한디자인’이라는 용어가 범람하는 현상을 목도하며 과연 디자인에 있어 ‘착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재검토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서 에코 디자인, 공정무역 등 윤리적 디자인과 자선 디자인, 정치적으로 올바른 디자인 등에 들러붙는 이 용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요구하면서, ‘선함’과 ‘악함’으로 판단하는 이분법적 기준과 잣대를 윤리적 차원으로 확장하며 이 같은 현상에 대한 비평과 진단을 인문학, 철학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스페큘러티브 디자인—모든 것을 사변하기
앤서니 던, 피오나 라비 지음 · 강예진 옮김 · 안그라픽스 292쪽 · 2024 27000원

현재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디자인도 있지만 미래에 어떤 변화와 문제가 일어날지 가정해보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주는 디자인이 있다. 이른바 사변적 디자인,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이다. 이 책은 디자인을 일종의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도구로 바라보며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게 하는 수단으로서 디자인을 바라본다. 아울러 미래지향적이라는 디자인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문학과 영화, 미술, 사회과학 등의 영역에서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 관심을 두는 사변 문화를 살피고, 이를 디자인 문화와 비교하는 일에 관심을 둔다.

이 책은 디자인을 매개체 삼아 디자이너와 산업, 대중을 대상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기술의 사회, 문화, 윤리적 의미에 관한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저자 앤서니 던과 피오나 라비의 ‘A/B 목록’이라는 일종의 선언에서 비롯됐다. 이 목록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디자인(A)과 이들이 작업하는 디자인(B)으로 나뉘어 나열돼 있다. A에는 긍정적인, 문제 해결, 해답 제시, 생산을 위한 디자인, 미래, 과학소설, 활용, 재미, 소비자, 프로세스 등이 있고, B는 비평적인, 문제 발굴, 질문 제시, 사회를 위한 디자인, 기능적 허구, 평행세계, 시민, 윤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책은 B를 살피지만, 이는 A를 B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닌 비교와 토론, 대화를 통해 C, D, E가 나오기를 희망하는 움직임이다.

책은 미래학자 스튜어트 캔디의 다이어그램을 전면에 내세우며 미래를 정확하게 그려내는 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표명하면서, 미래학자가 제시한 여러 종류의 잠재적 미래인 충분히 그럴듯한(probable) 미래와 그럴듯한(plausible) 미래, 가능할 수도 있는 미래(possible),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선호되는(preferable) 미래 중 ‘선호되는’ 미래가 자신의 관심 영역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개발하는 시나리오는 과학적으로 가능해야 하고, 둘째로 현재 우리가 있는 지점에서 시나리오에 있는 지점까지 가는 길이 있어야 한다.” 미래를 예견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업, 도시, 사회에 이르기까지 집단 사람들과 디자인을 활용해 선호되는 미래를 논하고 함께 정의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지향점은 미래라기보다는 평행세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저서는 ‘개념 디자인(conceptual design)’이란 무엇인가라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펼쳐지고 있는 혹은 펼쳐질, 펼쳐질 수 있는 과학과 기술 발전의 의미를 탐구하는 비평적 수단으로서 개념 디자인의 활용을 살핀다. 그러면서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작업의 미학적 작업들을 거론한다. 최종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모든 것을 사변하기’ 개념에는 사회를 구상하는 것을 촉진하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포함돼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 구상을 촉진함으로써 ‘선호되는’ 미래를 실현할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