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The Prism of Korea Biennale 2024
2024.9.7~12.1
Special Feature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양림문화센터, 포도나무 아트스페이스, 한부철갤러리, 한희원미술관,
양림쌀롱, 옛파출소건물, 빈집,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 아시아 최초 미술행사로 시작됐다. 1995년은 베니스비엔날레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자 자르디니의 마지막 국가관인 한국관이 오픈한 해였다. 대한민국 역사로 는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지 50주년을 맞은 기념비적 해이기도 했다. 광주비엔날레는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서구권에 집중된 미술계의 시야를 아시아로 확장하는 좋은 시작점이 됐다. 한국의 수도인 서울이 아닌 전라남도 광주에서 비엔날레를 시작한 것은 한국 독재정권에 맞선 5· 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기억의 현장에서 아시아 예술의 꽃을 피우고자 한 의지였다.
올해 30주년을 맞이하는 광주비엔날레는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rriaud)를 총감독으로 선정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있다. 2018년부터 광주 비엔날레 기간에 함께 진행된 국가별 파빌리온 전시는 올해 국가를 넘어 기관과 개인으로 확장해 역대 최대 규모 로 31곳이 참여한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는 한국의 전통 ‘판소리’를 은유 삼아 지속가능한 공간에 대한 탐색을 세 가지 소리의 섹션으로 구분해 선보인다. 부딪힘 소리, 겹침 소리, 처음 소리로 구분되는 전시는 급변하는 세계상을 작품을 통해 청각적으로 서술하고, 관객의 공감각적 체험으로 확장시킨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이외에도 양림동 일대를 둘러싼 8군데 공간에서 참여작가들의 전시가 진행된다.
전시 이외에도 비엔날레 기간에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의 협력으로 마련되는 국제 심포지엄을 비롯한 전시 연계 워크숍과 프로그램이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Artistic Director
니콜라 부리오 (Nicolas Bourriaud)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는 상호 인간적인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에 기반을 둔 예술 실천 유형을 탐구하고 정립해왔다. 관객 참여적이고 사회적인 유대가 강조되는 시도를 ‘관계 미학’이라 명명 · 강조했고 이는 1990년대 미술 흐름을 잘 설명하는 이론으로 인정받았다. 영국 테이트 현대미술관 굴벤키언 큐레이터, 팔레 드 도쿄 공동디렉터 등을 지냈으며 리용비엔날레(2005), 모스크바 비엔날레 (2005, 2007) 등 다수 비엔날레 감독을 역임했다.
유진상 계원예대 교수
“우리는 모두 같은 영화를 보지만, 예술가들은 그것의 대체 버전을 제안한다. 물질은 우리 모두에게 같지만, 그것을 다르게 보기 위해 예술이 필요하다.”
팬데믹 기간에 『자본세의 미학(Inclusions : The Aesthetics of Capitalocene)』 (2020)을 출판하며 동시대 미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현재까지 집중해 온 주제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달라.
글로벌 기후위기는 인간이 자신을 ‘환경’과 분리된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무의미해졌음을 가르쳐 줬다. 우리는 바이러스가 우리 일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슈퍼마켓에서 식재료를 구매하는 사소한 행위가 말레이시아의 숲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계는 여러 종의 공동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모두 서로 맞닿은 막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상호 연결 장(field) 속에서 살고 있다.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이러한 새로운 감수성에 따라 세상을 표현한다. 이들은 세상에 몰입하고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참여적 인류학자’에 비유될 수 있다.
21세기 예술이 자본주의 이전 시대, 소위 ‘원시’ 사회와 다시 연결된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세계는 주체성을 상실하게 만드는 객체, 제품, 판매용 상품들로 이뤄져 있다. 심지어 씨앗, 광물, 식물들조차 상품이 되어버렸다. 반면에, 뉴질랜드 정부는 최근 강에 인간의 시민권을 부여했다. 이를 염두에 둔다면, 예술에 부여된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 중 하나는 주체성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모든 구성 요소가 주체로 간주돼야 한다. 우리는 상호 연결된 주체들로 이루어진 관계적 세계에 살고 있으며, 이러한 주체들이 우리 시각에 포함되어야 한다.
팬데믹 경험 이후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묻고 싶다. 또한, 고려하고 있는 새로운 ‘미학’의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이번 비엔날레의 탐구 주제 중 하나인 ‘공간’은 역사적 순간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더불어 봉쇄 기간 동안 공간 재정의는 도시 공간의 배치 방식과 그것이 농촌과 연결되는 방식, 이러한 공간적 수준을 우리가 어떻게 점유하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또한, 세계화된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반물질주의적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자본주의는 이상주의, 즉 기독교 초기의 영혼과 육체 사이의 대립을 살아있는 현실과 자본 사이의 암묵적 대립으로 점차 대체한 이원론 철학이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미지의 땅, 지도가 없는 첫 문명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위성에 의해 픽셀화되고 마지막 암석까지 지도에 표시되는 시대에 자본세는 세계가 유한한 것으로 간주하는 시대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는 ‘판소리, 21세기의 사운드스케이프’다. 광주가 위치한 전라도를 대표하는 전통 가무극 형식인 ‘판소리’를 다룬다. 여기서 ‘소리’를 세 가지 유형으로 해석했다.
이번 비엔날레는 인류세에서 일종의 지형학을 표현했다. 이 지형학 내에서 기후 변화의 공간적 형상은 각각 소리 현상에 해당하는 세 섹션을 통해 다뤄진다. 관객들은 사람들의 밀도가 높은 도시 공간에서 미세한 또는 우주적 비인간 세계로 이동하는 간단한 내러티브를 따라갈 것이다. 과밀한 행성에서 ‘대외’를 찾는 탐색까지 아우른다. 첫 번째 섹션은 ‘피드백 효과’를 나타낸다. 이는 두 개의 소리 방출기나 수신기가 너무 가까이 있을 때 발생하는 소리로, 과밀로 인한 것이다. 첫 번째 섹션은 인간 활동으로 가득 찬, 모든 것이 연속적인 메아리 방으로 변한 행성을 보여준다. 여기서 인간과 비인간 간의 관계는 더 강해진다. 두 번째 섹션에서 작가들은 세계의 다성성을 새롭게 하고 복잡성을 중시하며, 우리가 다중초점적이고 다층적인 우주에 살고 있음을 인정한다. 마지막 세 번째 섹션은 기원의 소리인 중국의 ‘기’, 불교의 ‘옴’, 빅뱅의 첫소리에 해당된다. 이 섹션에서 작가들은 비인간 세계, 즉 우리 앞에 있는 두 가지 거대한 우주와 분자 세계를 탐구한다. 작가들은 고속 운송과 즉각적인 통신의 세계에서 거리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으며, 이는 우주의 광대함이나 분자 세계의 미세함을 관찰함으로써 이뤄진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리암 길릭, 필립 파레노 등 저명한 작가들과 함께 국내에는 덜 알려진 작가도 다수 포함됐다. 작가를 선정한 방향성이 있었나?
비엔날레에는 특정 규칙이 없으며, 각 비엔날레는 다른 큐레이터의 위치에 의해 지배된다고 항상 생각해왔다.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참여 작가 모두가 생존 작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의 에너지와 예술 지도를 그리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참여 작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이는 90대인 존 도웰이다. 1973년에 출판된 밀라노의 아르투로 슈워츠 갤러리의 오래된 카탈로그를 한 서점에서 발견했는데, 거기서 도웰의 작품을 보게 됐다. 그의 작업이 비엔날레 주제에 부합한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음악 악보와 현미경 도형을 혼합한 방식에 놀랐다. 도웰은 미국에서 공부했으나 국제적으로 작업이 전시된 적이 거의 없다. 이외에 선정한 작가 대다수는 신진 작가다. 작가 리스트를 완성하기 위해 필립 파레노, 앤젤라 불로크, 리암 길릭 같은 지난 20년 동안 함께해온 작가들도 초대하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개인전이나 대형 프로젝트 때문에 국제 그룹 전시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참여 작가 리스트에는 12명의 한국 작가도 포함돼 있다. 한국 작가는 어떤 기준에서 선정했는지 궁금하다.
먼저, 전시 주제에 부합하는 작가들의 목록을 작성한 다음, 국적과 관계없이 연구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갤러리, 아트페어, 전시를 통해 본 흥미로운 작업이나 동료들이 추천했던 작가들을 기재해둔 리스트를 확인했다. 그리고 이들의 웹사이트를 확인하거나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려고 했다. 비엔날레는 신진 작가들을 선보일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므로 현지 작가를 약 10% 정도 포함시켰다. 이스탄불이나 타이베이에서도 이 규칙을 따랐지만, 광주에서는 유망한 젊은 작가를 많이 만났기 때문에 더 포함했다. 또한 포트폴리오를 요청해 광주 자체 예술가들을 포함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선정된 모든 작가에게 다음의 동일한 기준을 적용했다. 첫째, 작품이 형식적으로 견고하고 독창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둘째, 주제에 부합해야 하며, 셋째, 예술가가 이미 자신의 작업에 주제를 통합했거나 이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2014년 타이베이 비엔날레와 2019년 이스탄불 비엔날레 등 아시아에서 주요 전시를 기획한 경험이 있다. 아시아에서 전시를 기획하면서 느낀 특별한 점이나 경험에 대해 말해준다면?
비엔날레마다 맥락은 다르며, 국가, 도시마다 다양한 문제와 기대를 찾을 수 있다.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전시를 기획하려면 적응 감각을 키우고, 작업하는 곳에서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 하나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AI(인공지능) 등의 기술 발전이 노동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대규모 공급망 조정 같은 새로운 지정학적 요인에 따른 경제 현상, 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 재해, 지정학적 인구 변화로 인한 사회적 분열과 양극화 등 다양한 글로벌 이슈가 있다. 동시대 작가들과 협업한 경험이 많은데, 이러한 암울한 전망에 대해 작가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작가들 답변의 다양성이다. 맥스 후퍼 슈나이더와 앰버라웰만의 두 가지 극단적인 태도를 예로 들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슈나이더에게 인류세의 시공간은 우주의 모든 요소 간의 투과성으로 특 징지어진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총체적인 근접성 속에서 살고 있으며, 이제는 불투과성인 것은 없다. 또한 공간은 더 이상 멀리 떨어져 있지 않지만, 실질적인 접촉 체인으로 이뤄져 있다. 그는 격리와 봉쇄의 꿈과 함께 재앙 속에 살고있다. 그러므로 동시대 미술에서 다양한 형태의 컨테이너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슈나이더는 이것을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이미지로 보며, “수족관, 테라리움, 팔루다리움, 피난처, 집, 리조트, 병원, 여름 캠프, 마르크스주의, 일원론, 또는 사이언톨로지 등등,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컨테이너를 찾는다.” 라고 말한다. 모든 시스템은 수족관이거나 보호 장치다. 그러나 진공 밀봉된 것도 결국 새게 되어 있고, 닫힌 시스템은 없다. 그에게는 새는 것이 삶 자체와 관련이 있으며, 삶은 항상 폐허에서 솟아난다고 말한다. 한편, 캐나다 태생의 앰버라 웰만의 회화에는 공간이 용해되고 위아래, 오른쪽 왼쪽, 평면이나 볼륨이 없다. 작가는 현대의 몸이 원시 수프에 잠겨 상호 침투하며 주변의 사물과 존재를 흡수하는 빅뱅 이후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 분쟁, 미중 갈등에서 나타나는 신냉전 기류, 전 세계적 경제 침체 등과 같은 글로벌 문제들 사이에서 비엔날레가 열리게 되는 셈인데,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관객이 얻길 바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유럽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대부분이 1494년부터 1559년까지 지속된 이탈리아 전쟁 동안 만들어졌다. 지금 우리 시대와 마찬가지로 혼란과 경제적 위기의 시기였다. 이는 예술가들이 그들의 시대 상황을 무시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임을 말해준다. 하지만 예술이 현재 사건에 대한 논평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은 현실을 이해하는 더 깊은 과정이며, 단순한 의견이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작가들이 기후 변화나 우리 시대의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어떻게 반영하고, 이를 자신의 관점에서 어떻게 재구성하는지에 관심이 있다. 우리는 일상적인 혼란에 휩싸이고 뉴스에 압도되는 편이다. 기후 변화, 갈등, 경제 위기, 이주 문제 등 장기적 변화나 영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여기서 예술은 우리에게 그 뒤에 숨겨진 구조에 대해 가르친다. 예술은 현실을 위한 일종의 편집 테이블로 간주한다. 우리는 모두 같은 영화를 보지만, 예술가들은 그것의 대체 버전을 제안한다. 물질은 우리 모두에게 같지만, 그것을 다르게 보기 위해 예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공간은 일반적인 주제이다. 버스 운전사부터 양자 물리학자에 이르기까지 모두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광주비엔날레의 72명의 작가는 이 일반적인 주제에 매우 구체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 이를 형식으로 번역해 우리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한다. 관객들은 그 비전을 자세히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나 탐구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 듣고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의 주제적 고속도로인 환경이나 탈식민주의적 관심사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양자 도약의 필요성을 느낀다. 요즘에는 현시점부터 선사시대의 예술까지 다루는 방대한 미술사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페미니즘이 허용하는 잠재적인 문화적 변혁에 대한 에세이, 그것을위한 메모도 작성 중이다. 남성이라고 해서 페미니즘에 대해 글을 쓸 수 없지는 않다고 본다. 어쨌든 나는 명확하게 보려면 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가까운 것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는다. 이방인이라는 위치는 가장 강력하며, 설사 무언가에 관해 쓸 자격이 없다고 선언되더라도 나는 도전한다.
안미희 광주파빌리온 전시감독
Gwangju Pavilion Exhibition Director Mihee Ahn
독립큐레이터 안미희는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현대미술사를 전공하고, NYU에서 박물관학을 공부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팀장, 한국국제교류재단 글로벌센터장, 경기현대미술관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화에 기여해 왔다
강재영 기자
광주비엔날레는 파빌리온에서 변화와 약동을 거듭하는 동시대 미술 풍경을 선보인다. 그중에서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광주파빌리온은 특별전 성격을 지닌 전시다. 안미희 전시감독은 ‘광주정신’을 주제로 하여 전 세계 미술인에게 ‘무등’의 가치를 보여줄 예정이다. 안 감독을 만나 광주파빌리온, 그리고 ‘광주정신’에 대해 물었다.
광주파빌리온이 다른 파빌리온과 구별되는 점은 무엇인가?
광주파빌리온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운영 주체이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이 주도하여 예산을 투입하고 감독을 선정해 진행한다. 전시 공간도 본관과 바로 이어지는 광주시립미술관 3개 관을 사용한다. 이는 광주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현대미술을 통해 광주의 정서와 문화, 예술 등을 보여줘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본전시는 현대미술의 중심 이슈나 개념을 다루는 반면, 광주파빌리온은 광주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정신을 재해석하고 전 세계로 전파하는 것이 목표다. 이는 광주 시민들의 열망이 담긴 전시라고 할 수 있다.
광주정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 어떤 점에 중점을 뒀나?
광주정신은 5· 18 민주화운동에서 비롯된 중요한 가치이지만, 이 정신을 동시대에 실천하고 현대미술이라는 도구로 표현할 때는 미래지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전시에서 무등산의 상징성을 활용하여 광주정신을 현대적으로 실현하고자 했다. 무등산은 광주 시민들에게 매우 큰 상징적 의미를 가지며, 공정과 초월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
‘무등(Equity)’의 의미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무등의 동시대적 실현과 실천 방향에 대해 인문학자들과 사전연구를 했다. 광주 시민들은 광주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무등산을 떠올린다. 무등은 등급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모두가 동등하다(Equality)’는 의미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개념이다. 무등은 공평이 아니라 공정을 의미한다. 한국 현대사회에서 최근 가장 뜨거운 감자가 바로 공정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인권과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즉 무등 정신은 광주정신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무등 정신은 눈에 보이는 세상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상,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아우른다. 지속가능한 미래와 인권, 모든 생명체를 아우르는 정신은 결국 무등 정신이며, 이것이 바로 광주의 정신이다.
젊은 세대와 광주정신에 대해 어떻게 접근했나?
광주정신을 경험하지 못한 비경험 세대들이 이 정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듣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젊은 작가들을 포함시켰고, 그들의 시각에서 광주정신을 동시대적으로 표현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월간 무등’이라는 집담회를 통해 젊은 세대들의 의견을 기록하고 이를 전시에 아카이브 형식으로 담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광주정신을 현대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예술로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성공적 사례가 되었으면 한다. 이번 전시가 그 답을 제시하고, 광주의 정체성과 정신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 전시가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공유의 장이 되기를 희망한다.
광주파빌리온《무등 : 고요한 긴장》광주시립미술관 3, 4, 6관
참여작가 : 김신윤주, 김웅현, 나현, 송필용,안희정, 양지은, 오종태, 윤준영, 이강하, 이세현, 임수범, 장종완, 장한나, 정현준, 조정태, 최종운, 하승완, 함양아
이강하 〈무등산의 봄〉 캔버스에 아크릴릭 및 유채 181.8×290.9 cm 2007
제공 : 이강하 미술관
Artist
권혜원(Hyewon Kwon)
권혜원/ 권혜원은 관점과 인식을 흔드는 다양한 장치들을 탐구하며 사회적, 심리적 맥락을 드러내고 그 한계를 탐색하는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최근에는 자연을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와 시스템에서 발견되는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탐구하고 있다.
하도경 기자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이 궁금하다.
출품작 제목은 ‘포털의 동굴’이고, 제주도 용암동굴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동굴을 탐구하는 여러 방법이 있을 테지만, 나는 음향학자들이 사용하는 방법을 많이 차용했다. 그러면서 동굴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감각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을 선보일 예정이다.
용암동굴을 작업의 소재로 활용했는데, 어떻게 이 작업에 착수하게 됐나?
2019년 제주에 위치한 레지던시에 참여하면서 용암동굴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 나는 비지정문화재 천연동굴인 ‘성굴’이라는 곳에 들어가 보게 됐다. 그곳은 편의를 위한 나무 데크나 조명이 없는 자연 동굴 상태였는데, 이전까지 그런 동굴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등산화, 헤드 랜턴, 헬멧에 의지한 채 어둡고 발을 디디기 어려운 뾰족한 지대를 걸어 들어갔다. 얼마만큼 걸어왔는지 시간의 감각을 인지하기가 어려웠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한 공간에 있는 것 같았다.
시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해왔으니 동굴에서의 경험이 흥미로웠을 것 같다.
그렇다. 시공간을 잃어버리는 감각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래서 작업에 착수하게 됐다. 이 작업에 임하면서 흥미로웠던 점이 또 있는데 식물학자, 동굴학자, 음향학자 등이 사용하는 다양한 장치들이었다. 그들의 방법 중에서 내가 차용할 수 있고, 작업으로 끌어올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리서치했다. 이번 비엔날레 주제는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번에 출품하는 작업에 시각적 이미지나 영상의 개입이 어떻게 이뤄지는가? 우리가 청각적으로 덜 훈련돼 있고 혹은 우리의 가청 주파수 안에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리를 시각화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즉, 우리가 청각적으로 어떻게 공간을 읽을 수 있는지 등을 시각화해야 이해할 수 있기에 이번에는 영상이 매체나 형식이라기보다는 매개 방법, 사람들이랑 소통하기 위한 매개체 정도로 쓰이게 될 것 같다.
이번 작업을 설명할 때 ‘매개’라는 말을 자주 썼다. ‘매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제주도의 신당에도 관심이 많아서 굿을 보러 찾아다녔다. 제주도는 발리와 함께 전통적인 굿이 굉장히 잘 보존된 지역 중 하나다. 이곳에서는 샤먼을 ‘심방’이라고 하고 손님은 ‘당골’이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로컬의 정보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가족사까지 모두 아는 사람이 이곳의 심방이다. 이들은 그 지역민을 위한 샤먼인 거다. 신당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곳의 심방이 내가 생각하는 ‘매개’에 가깝기 때문이다. 심방이 당골을 위한 굿을 하면서 풀이하는 방식을 특히 흥미롭게 봐 왔다. 요즘에는 보기 드물게 3박 4일 정도 진행되는 굿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이 내게는 매우 다층적인 내러티브 형식 같았다. 심방은 당골의 역사를 처음부터 다 얘기하는데 처음에는 당골의 조상과 시조가 누구고 어떤 히스토리를 거쳐 이곳에 왔는지부터 지역 땅의 역사를 다 얘기한다. 제주도의 신화 속 할머니, 설문대 할망이 제주도를 만들고 어떤 마을이 생겼는지, 굿판이 어떻게 최초에 나타났는지부터 지금 이곳의 현재 시간과 공간의 좌표까지 호출해 나가는 과정을 지속했다. 그렇게 심방은 당골의 좌표를 짚으며 ‘이곳에 살고 있는 당골이 이러한 역사가 있는데 무엇을 바란다’는 소망을 신에게 전한다. 나는 신당 연구 조사를 통해 ‘매개’의 아이디어를 얻었고 이를 동굴이라는 장소에 적용해,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존재가 얽혀 있는 연결망 같은 걸 구축하고자 했다.
흥미로운 작업일 것 같다. 지금 하고있는 작업 외에 조사연구 해보고 싶은 주제가 있나?
이미 나는 전작들을 통해 물을 탐사하려면 여러 장치를 써야 하며, 물을 매개체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걸 깨달아왔다. 물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육지,중력 기반의 사고를 하는가에 대해 관심이 많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무산된 프로젝트도 있는데 이를 재개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는 식물들의 컨테이너 이동에 대한 여정이다. 전 세계 공공 식물원에 열대 식물을 납품하는 농장 대부분이 필리핀에 있다고 한다. 식물들은 필리핀의 농장에서 컨테이너에 실려 세계 각지로 들어간다. 배로 20~30일간 여행하고 식물 검역과 바이러스 테스트를 거친 뒤 식물원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러한 식물의 이동이 흥미로웠다. 식물이 컨테이너에 실려 오는 동안 이들을 살리기 위한 여러 가지 사투들이 있을 거다. 나는 그 식물들과 함께 화물선의 여정을 같이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의 출품 예정작 〈포털의 동굴〉의 비디오 스틸 이미지 제공 : 작가
Artist
전혜주(Hyejoo Jun)
전혜주는 환경, 보이지 않는 입자, 그리고 인간의 인식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오디오비주얼, 수집된 오브제와 이미지, 영상을 통해 그동안의 연구 과정을 연극적으로 극대화해 관객에게 전달한다. 전시마다 표현 매체와 탐독 대상을 끊임없이 발굴하며 표현 방식을 확장하고 있다.
정소영 기자
사회에서 동의나 동조 없이 통제되고 감시받는 현실을 구현한 키네틱 사운드 아트 〈Body check〉(2020)나 눈에 보이지 않는 꽃가루와 신체에 영향을 주지만 보이지 않는 파동의 아카이브와 함께 초지향성 음향을 통한 도시 소음 작품인 〈Hummer〉(2022) 등을 보면 주제와 매체에 제한이 없다. 작품의 영감을 어디서 받고, 이를 작품으로 어떻게 연결하는지 궁금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이후로 ‘미시적 생태계’라는 키워드로 지속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와 표현방식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전에는 나에 대해 설명하라고 하면, 다양한 매체를 다루니까 미디어 하는 작가 혹은 설치 하는 작가로 정의 내릴 수 없어 스스로도 고민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 분야에 고정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즐긴다. 일상에서 혹은 우연한 계기로 포착하게 되는 주제를 연구하고 이를 확장해서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학문과 연결해 보는 과정에서 다음 작업이 파생되는 것 같다. 그렇게 정해진 주제에 따라 표현 매체를 연구해서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작품을 만든다.
조명, 음향, 동선과 같은 작업 표현방식에서 극적인 요소가 많이 보인다. 작품을 만들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가 무엇인가?
독일에서 10년 정도 공부했다. 이때 전자미디어와 같이 전공했던 것이 무대미술이었는데, 추상과 구상을 떠나 오브제로만 존재하는 예술보다 무대 전체를 기 획하고 제작하는 무대 연출에 더 흥미를 느꼈다. 입장에서부터 퇴장까지 각본, 의상, 동선, 조명, 음향 모든 면을 새새하게 고려하는 무대 연출을 하듯 전시장에서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전시장을 방문하는 관객의 체험 방식, 감각적 경험을 작품 구상 때부터 고민한다. 전시장을 무대라고 생각하고 작업을 준비한다.
시각 구현방식이 연구와 주제에 영향을 미치는가?
선행되는 과정은 연구와 수집, 주제이고 이후에 이를 어떻게 구현할지를 고민한다. 수집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는 다른 연구 분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 학제간 협력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기도 한다. 작년에 참여했던 네덜란드의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레지던스 프로그램에서 경험한 식물 육종 기술자들의 생태적 관점이 작업에 반영되거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화분학 전공자의 조언이 꽃가루를 활용한 작업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그리고 전시장에 놓이면 어색하지만 실제 그 분야에서 쓰는 현미경, 표본 채취 방식 들을 최대한 모방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시각적 표현을 시도한다.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이 궁금하다.
송은미술대상을 받은〈Hummer〉의 변형이 될 것 같다. 다만 비엔날레 측에서 구획이나 구분 없이 모든 작품이 조화를 이룰 것을 요청해서 구획이나 분리가 없는 상황에서 조도와 음향을 조정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 같다. 이전 작업이 정해진 동선을 통해 강제적으로 관람자를 이동시키는 방법이었다면, 이번에는 자율적인 이동을 통해서도 관객이 동일한 메시지를 받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중점으로 두고 있다.
〈Hummer〉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Hummer〉는 도시 소음에서 시작됐다. 도시 공간에서 불특정 소리에 불편함을 표현하는 사람을 과민하다고 부정적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개인의 공간을 침범하는 소리에 대한 예민함을 긍정의 시선으로 고려하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품을 시작했다. 나에게만 들리는 주관적 이명과 같이 치부되는 사회적 문제에 관한 목소리는 고립되거나 소외될 대상이 아니다. 현대의 여러 환경적 변화 안에서 아주 미세한 유기적 물질과 소리에 예민한 감각을 작업으로 시각화해 각자의 이해 확장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점이 내가 예술을 통해 하고 싶은 지점이다. 예술이 생활과 동떨어진 환상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영향을 주고받는 것임을 보여주는 작품을 하고 싶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시기에 서울시립미술관 그룹전에도 참여한다. 네덜란드 레지던시에서 연구한 작업들을 연결해서 새로운 종의 탄생과 관련해 역사적 과정의 아카이브와 기술 작용을 디지털 드로잉이나 실크스크린과 같은 이미지와 함께 선보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꽂가루로 실크스크린을 하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결국 시각적 연출은 정보에 대한 작가의 개입을 통해 작품으로 이뤄지는 가장 중요한 단계여서 마지막까지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레퍼런스 이미지 (디지털프린트) 초지향성 스피커, 2채널 사운드 4분 39초 2022
제공: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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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앙카 본디(Bianca Bondi)
비앙카 본디는 이탈리아계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예술가다. 2007년부터 파리에 거주하면서 생명과학, 오컬트를 비롯한 다학제적인 접근을 통해 사물에 내재하는 고유성에 변화를 가하는 설치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물질의 고유한 특성과 상징성을 지닌 소재의 변이를 통해 물질 간의 상호 연결성과 시각 너머의 경험을 드러내 온 작가는 기존 접근 방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환경과 장소, 맥락 등을 고려해 제작한 결과물을 드러낸다.
하도경 기자
이번 광주비엔날레에 소개하는 작업이 궁금하다.
새로운 커미션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업은 본질적으로 미니멀리스트적인 소금 땅/꿈의 풍경을 담고 있는 큰 플랫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관객이 플랫폼에 올라서 걸어가다 보면, 의자, 거울, 결정질 액체가 들어 있는 바닥 구멍, 식물 등 다양한 오브제를 만나게 될 것이다. 바닥 구멍은 실제 거울의 형태와 기능을 반영해, 마치 전화로 하는 상호작용처럼 통과하는 것을 포착하고 다시 전송하는 상호작용을 만들어낸다. 고대 이집트 의식을 연상시키는 실크 수의와 구슬 목걸이로 장식된 작은 새 조각상들도 함께 전시된다.
기존의 접근 방식과 광주라는 장소 및 공간의 맥락을 고려해 밀접하게 연결된 시적 결과를 드러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전에 한 달 동안 한국에 머물렀고, 그중 상당 기간을 코로나로 인해 격리된 상태로 보냈다. 이후 격리에서 벗어나 작품을 제작했을 때, 그 작품은 임상적(clinical)이고 경계적(liminal)인 분위기를 띠게 됐다. 나는 일련의 경험을 하나의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생각하는 걸 좋아하기에, 이번 작업은 이전에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다. 2020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대기실〉이 바로 광주에서 전하고자 하는 감정들, 고요함, 자각, 선형적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단절을 전달하는 데 중요한 선례가 됐다.
그렇다면 이번 비엔날레 주제는 어떻게 해석했나?
이번 주제는 볼 수 있거나 만질 수 있는 것 너머에도 무한한 경험의 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나는 공간과 시간을 넘어, 물질적인 것과 형이상학적인 것 사이에 존재하는 포털 개념을 강조하고 싶었다. 이것은 다성성(polyphony) 개념과 연결되며, 평행하는 세계가 드물게 교차하면서 전해지는 전기적 소통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소리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방식이 아닌, 소리의 부재나 진동으로서의 소리, 몸체를 통해 전달되는 공명에 주안점을 뒀다. 시각적인 재료나 시각적인 오브제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과 초월적인것을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특별한 비결이나 신념이 있나?
어린 시절에 영혼과 소통, 타로, 식물의 속성, 치유, 불안에 대한 해답을 찾는 방법을 습득했다. 그 과정에서 약초 물약, 사랑의 묘약, 부적 등을 발견했고, 이는 나를 오래 지탱하게 해줬다. 예민하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기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는 것이 내게는 하나의 대처 메커니즘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당신의 작업을 설명할 때 ‘오컬트’라는 키워드가 많이 등장한다.
종종 오컬트, 연금술 등의 관행과 관련된 주제를 탐구한다. 이 주제를 해석하는 방식은 자연과 물질의 변형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작업은 종종 소금, 결정, 식물과 같은 유기적이고 광물적인 재료를 결정화, 부패와 같은 자연적 과정에 맡긴다. 이 같은 방식은 기본 물질들이 더 순수하거나 더 영적인 것으로 정제된다는 점에서 연금술의 변형 아이디어에 부합하고, 현실을 형성하는 숨겨지거나 신비로운 힘에 대한 오컬트의 관심과 일치한다. 자연과 초자연의 연결성 경계를 흐리며 작품을 표현하며, 일상적이면서도 마법적인 요소들, 이를테면 소금 같이 흔한 물질이면서 역사적으로 의식에 사용된 적이 있는 물질을 강조함으로써, 오컬트가 자연 세계와 별개가 아니라 그 안에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부분임을 부각한다.
작업은 화학과 생명과학에 대한 탐구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학제 간 연구는 작업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과학을 신뢰하고, 신비로운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편이다. 나는 자연 현상과 과학적 개념을 마법적이거나 신비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은유로 사용함으로써,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실체와 비실체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그러면 더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다. 자연 현상과 신비한 힘은 여러 방식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에너지의 상호 연결성이 작업의 핵심이다.
작가로서 관심을 두고 있거나 탐구하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나 이슈가 있나?
환경 문제, 영적 탐구, 인간 조건을 엮어보는 렌즈를 통해 여러 사회적 현상과 이슈를 다룬다. 또한 작업하는 재료들을 통해 생태계의 섬세한 균형과 자연 세계에 대한 인간 활동의 영향을 강조한다. 재료들이 자연적인 변화를 겪도록 허용함으로써 환경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으며 종종 인간의 행동에 반응한다는 아이디어를 강조하고자 한다. 변화하거나 부패하거나 깨지기 쉬운 재료들에 집중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연약함에 대한 논평을 하는 것이다.
〈대기실〉 혼합매체 가변크기 2020 제공 : 부산비엔날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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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몰 K 파틸(Amol K Patil)
아몰 K 파틸은 뭄바이와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각 예술가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다. 시인이었던 할아버지와 아방가르드 극작가였던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은 그는 가족 아카이브를 통해 노동자와 카스트 제도의 현 상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왔다. 최근에는 새롭게 부상하는 도시 상상계 속에서 노동 계급의 가시성과 관련된 도시화 개념에 관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인간과 풍경 간의 관계를 서술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대항 기억과 저항적 서사를 구축하는 데 관심이 있다.
하도경 기자
할아버지는 통역사이자 시인이었고, 아버지는 이민에 따른 영향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 부조리한 상황을 다루는 전위적인 극작가였다. 가족 배경이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렇다. 할아버지의 아카이브를 접하기 시작하면서 그것과 관련된 다양한 시들을 읽게 됐다. 시들은 무겁고 어두운 내용으로, 하층 계급이 겪는 어려움을 포착하고 있다. 내가 흥미를 느꼈던 건 그들이 소통하기 위해 선택한 예술 형태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포와다(Powada)1 가수들의 예술을 탐구하고, 카스트 제도의 최하층 신분인 달리트(Dalit)의 정체성을 다루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면?
나는 포와다가 매우 중요한 공동체 협업 예술 형식 중 하나라고 본다. 포와다를 통해 어떻게 우리가 다시 쓰기를 교환하며, 새로운 사람들과 연결하는지를 보는 것은 흥미롭다. 노래를 재녹음하고 작곡해 그들이 맞서 싸우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 다르게 목소리를 높이는 활기찬 방법도 만들어냈다. 이러한 음향적 관계는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내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광주비엔날레 출품작도 기존에 탐구해왔던 내용과 이어지는가?
이번 작품들은 특히 시간에 관한 것이며, 시간이 세대에서 세대로 대화를 어떻게 이동시키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불평등에 맞서 제스처를 표현하는 손-막대 조각을 사용하여 움직임을 보여준다. 또한 이 조각들은 큰 도시로 이주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사람들의 고난을 담고 있다. 선들은 경로를 나타내며, 그들이 사회에서 자리 잡기 위해 겪는 고난을 보여준다. 광주에서 전시되는 조각과 비디오는 사람들이 계급 정치 속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번 출품작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비엔날레에서는 ‘Who is Invited to the City?’라는 제목의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양한 장소에서 출발해 큰 도시로 이주하여 직업 과 더 나은 기회를 찾아 가족을 부양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지에 대한 대화다. 도시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도시는 사회적 불평등, 계급 정치, 노동관계로 혼잡하게 얽혀 있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이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결국 그들은 빛의 허상에 불과한 곳으로 향하게 되는 거다.
이번 전시에서 소리와 공간성을 고려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궁금하다.
소리는 소통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지만, 사람들이 함께 서 있고 침묵이 흐를 때 그 침묵 또한 큰 소리로 느껴질 수 있다. 나는 소리와 결합한 작업을 만들고 있으며, 이것은 세대가 바뀌면서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사회에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변형하는 과정이다. 나에게 소리는 리듬과 진동을 의미하며, 관객이 그것을 느끼도록 만들려고 한다.
구체적인 내러티브와 역사적 사실을 감각적 매체를 통해 드러내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
신체 언어에 집중해 연구한다. 연극적인 신체 언어 대화에 집중하려고 하며, 이 과정에서 소리, 빛, 이미지도 상호작용한다. 또한 오래된 시대의 이미지를 참조하여 오늘날의 삶과 연결하고 대화를 형성하고자 한다. 설치 작업을 통해서는 사람들이 작품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고 명상할 수 있도록 실험하고 있다. 미세한 리듬과 진동이 관객과 상호작용하며, 관객이 작업의 세부 사항을 찾을 수 있도록 더 오랜 시간을 점유하도록 하고자 한다.
1 포와다(마라티어)는 17세기 후반 인도에서 시작됐으며, ‘영웅을 찬양하다’라는 의미의 75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전통적인 발라드다. 주로 유명한 민속 인물과 지도자의 업적을 찬양하고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여성 태아 살해, 지참금, 부패와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서도 활용됐다. 사미욱타 마하라슈트라 운동 때는 대중을 계몽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Black Masks on Roller Skates〉조각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Documenta fifteen》카셀 전시 전경 2022 사진 : Nicolas Wefers 제공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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