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하반기부터
2025년 1분기까지 국내외 미술시장:
현상과 전망
이경민 미팅룸 미술시장 연구팀 디렉터
Art Market Report

2024년 하반기부터 2025년 1분기까지 미술시장은 침체기임을 재확인하는 시기였다. 유명 작가의 고가 작품과 비교적 가격대가 낮은 저가 작품만 거래되는 양극화가 극심해졌다는 평이다. 국내 첫 미술품 물납제가 시행되었고, 아트테크 사기도 이슈가 되었으며, 한국 작가들이 해외 주요 기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를 개최하는 등 성과도 많았다. 작품 가격은 오르지 않고 판매도 정체되었지만, 물가는 일제히 상승했기에 국내외 갤러리들이 비용 부담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급기야 문을 닫는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 기간의 암울한 소식 외에 흥미로운 소식과 전망도 함께 전한다.
경매 – 침체 속 프라이빗 세일즈 증가와 주요 컬렉션 경매
아트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2024년 세계 미술시장은 경매낙찰액을 기준으로 전년 대비 33.5% 감소하면서 2009년 이후 최저 낙찰액에 그쳤다. 10만 달러 이상 고가 작품의 수와 낙찰액이 감소했으나 비교적 낮은 가격대의 작품은 활발히 거래되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24년 국내 미술시장 결산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10개 경매사의 온 오프라인 경매를 통해 총 1127억 5000만 원의 작품이 낙찰되며 전년 대비 24.3% 감소했고, 낙찰률은 46.7%로 전년 대비 2.5% 하락했다. 500만 원 미만이 65.4%, 500만 원 이상 1000만 원 미만이 약 6%, 1000만 이상 6000만 원 미만이 약 10%를 차지하는 등 대부분 중저가 작품이 낙찰되었다. 한국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 역시 다수가 낮은 추정가나 시작가에 낙찰되었으며, 경매 직전에 출품 취소되는 경우도 많았다.
2023년부터 2024년까지 퍼블릭 경매의 낙찰액은 줄었고, 프라이빗 세일즈를 통한 판매액은 늘었다. 경합을 통해 고액에 낙찰되는 과정 자체도 부담이 될뿐더러 낮은 추정가에 판매될 경우 수익이 줄기에 퍼블릭 경매의 위탁 자체가 둔화된다. 낮은 가격에 낙찰되거나 유찰 또는 출품 취소될 경우에도 위탁자나 구매자, 경매사 모두 정보가 공개되고 기록이 남는 점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에도 재산분할이나 상속, 부채 상환을 위해 자산을 처분하는 경우도 많다. 마이애미의 주요 기관이었던 드 라 크루즈 컬렉션(de la Cruz Collection)은 부부 컬렉터인 로사 드 라 크루즈가 2024년 2월 사망하자 공간 운영을 중단했으며, 5월 크리스티는 로사 드 라 크루즈 컬렉션 경매를 진행해 유수의 작품을 판매했다. 결과는 낮은 추정가 총액에 가까운 2800만 달러에 낙찰되어 시장 침체기에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평이다.
아트넷은 컬렉션 경매에 대한 최근 소식으로 바바라 글래드스톤 컬렉션 경매 뉴스를 전했다. 2024년 6월 세상을 떠난 그녀는 글래드스톤 갤러리를 운영하며 매튜 바니, 우고 론디노네, 토마스 허쉬혼, 사라 루카스, 이안 쳉, 아니카 이, 레이첼 로즈 등과 협업했으며, 키스 해링과 로버트 라우센버그, 로버트 메이플소프 등 70여 명의 작가와 에스테이트를 담당해왔다. 글래드스톤은 빨리 컬렉션을 판매해 수익금을 상속인들에게 배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협업해온 작가들의 작품부터 앤디 워홀과 마이클 켈리의 작품에 이르는 그녀의 컬렉션 경매를 두고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경쟁하고 있으며, 일부는 이르면 5월 경매에 출품될 예정이라는 소식이다.
이처럼 사망 이후 유산 상속, 또는 현금화를 위한 주요 컬렉션 경매는 고인이나 유족, 소유자의 의사에 따라 호황기나 침체기를 불문하고 갑자기 진행되기도 한다. 경매사가 컬렉션 경매를 기획하는 이유는 프로비넌스(소장이력), 즉 소유자에 따라 작품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고, 좋은 작품을 선점함으로써 경매의 수준을 높이며 이목을 끌어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컬렉터나 유족이 요구하는 개런티나 경매 컨디션에 대한 까다로운 요구도 상쇄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전제 조건은 필수다.
프리즈 LA 2025 전경
사진: Casey Kelbaugh, Courtesy of Frieze and CKA
아트페어 – 아트바젤과 프리즈
아트바젤은 수십 년 동안 파리를 대표해온 국제 아트페어 피악(FIAC)을 대체해 2022년부터 2023년까지 2년 동안 ‘파리 플러스 파 아트바젤(PARIS+ par Art Basel)’을 개최하며 피악의 주요 실무진을 고용했다. 브랜드 가치가 중요하기에 곧 명칭을 바꿀 것이라는 예측대로 2024년 10월 에디션부터 ‘아트바젤 파리’로 명칭을 변경했다. 파리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개명한 아트바젤 파리는 올림픽을 맞아 리모델링한 그랑팔레에서 개최되었으며, 2023년 대비 27% 증가한 42개국의 갤러리 195곳이 참여했다.
아트바젤 파리를 전후해 초현실주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전이 주요 기관에서 개최되었고, 아트페어에도 초현실주의 대가들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2022년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가 레오노라 캐링턴의 책『꿈의 우유』를 전시 제목으로 차용하고,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을 포함한 초현실주의 작가들을 소개한 후 그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2024년 초현실주의 100주년을 기해 기관과 시장의 퍼즐이 맞춰지며 작동했다. 초현실주의 대작들이 판매되었고, 갤러리들은 20세기 주요 작가와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적절히 배치하여 고가 작품의 거래가 성사되었다.
2024년 12월 초 개최된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에서는 2023년에 비해 고가 작품의 판매는 주춤했지만, 28개국 286개 갤러리가 참여하며 전년 대비 약 10곳이 늘었다. 하우저 앤 워스가 소개한 데이비드 해먼스(David Hammons)의 2014년 회화 작품이 475만 달러로 최고가에 판매되었고, 타데우스 로팍과 데이비드 즈워너, 화이트 큐브 역시 고가의 작품 판매에 성공했다.
2025년 2월, 프리즈 LA는 대규모 산불 직후 개최되며 의견이 분분했다. 큰 재앙을 겪은 지역의 재생을 응원한다는 취지에 동의하는 이들과 자연재해로 대기 및 수질이 오염된 속에서도 상업적 행사를 강행할 필요가 있냐는 이들의 의견이 맞섰다. 프리즈 LA는 초고가 작품이 거래되는 마켓은 아니지만, 아시아 작가들도 선전했고 솔드아웃된 부스도 있었다.
아트바젤 파리 2025 전경 제공: 아트바젤
협업 또는 수혈: 오일머니와 암호화폐의 유입, 경매사와 갤러리의 파트너십
미술시장 침체기에 큰 타격을 받는 곳은 영세 업체뿐이 아니다. 메가 경매사와 갤러리, 아트페어들은 큰 몸집만큼 운영에 많은 비용이 든다. 그래서 이들은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일부 사업을 매각하며 적자를 줄이는 동시에 외부 투자를 더 적극적으로 타진한다. 협업일까 수혈일까, 아니면 상호 합의된 침략일까.
2023년부터 침체된 분위기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경매사들은 누적된 적자를 호소하고 있다. 특히 소더비는 뉴욕의 브로이어빌딩을 매입했고, 주요 도시에 본사를 확장하고 라이프 스타일 공간을 조성해 새로운 고객을 미술 분야에 끌어오기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해왔다. 그러나 매출 감소와 비용 상승으로 신용 등급이 강등되고 150명의 직원을 해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4년 10월 아랍에미리트의 국부펀드가 소더비의 지분을 인수하며 10억 달러를 지원했고, 부채를 일부 상환했다고 알려졌다. 지난 2월 소더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디리야에서 경매 ‘오리진스(Origins)’를 진행했는데, 르네 마그리트와 뱅크시, 보테로, 제임스 터렐과 피카소, 레픽 아나돌에 이르는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낙찰되었으며, 아랍 근현대 작가들 역시 경매 기록을 달성하며 낙찰총액 1730만 달러를 기록했다.
오일머니는 아트페어에도 유입될 전망이다. 아트뉴스에 따르면 아트바젤은 2009년 출범한 아부다비의 국제 아트페어인 아부다비 아트를 운영하는 조건으로 2000만 달러의 투자를 협상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아부다비의 사디야트 문화지구에는 2017년 루브르 아부다비가 개관했고, 2025년 구겐하임 아부다비와 자이드 국립박물관, 자연사 박물관과 팀랩 페노메나 등의 개관이 예정돼 있다.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기존 정유 관련 산업 구조에서 나아가 문화 및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은 대작을 소장하고 주요 기관의 분관을 유치하고, 비엔날레를 기획하고 진행해왔으며, 이제 미술시장의 주체인 경매사와 아트페어, 갤러리를 끌어와 결국 자국 작가에 투자하고 그들을 미술사의 일부로 만들어 가는 수순을 밟지 않을까. 이처럼 새로운 자본과 컬렉터가 필요한 미술시장과 문화 산업 콘텐츠 및 인프라가 필요한 국가가 서로 원하는 바를 얻고자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2021년 NFT를 세상에 알렸던 비플의 작품부터 2024년 11월 소더비 뉴욕에서 624만 달러에 낙찰된 카텔란의 바나나 작품〈코미디언〉까지 모두 암호화폐 자산가가 낙찰받아 암호화폐로 결제했다. 올해 2월~3월 진행된 크리스티의 ‘증강지능(Augmented Intelligence)’ 경매에는 AI 모델을 활용해 제작된 작품 34점이 출품되어 온라인 경매로 진행되었고, 이 중 28점이 총 73만 달러에 낙찰되었는데, 모두 암호화폐로 결제할 수 있도록 했다. 레픽 아나돌의 작품이 28만 달러로 가장 고가에 낙찰되었다. 이 경매는 6,000여 명의 예술가가 저작권과 창작의 문제를 제기하며 첨예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디지털 작품, 특히 NFT를 구매하는 컬렉터들과 고가의 실물 작품을 구매하는 컬렉터 중 암호화폐 자산가가 늘고 있기에 경매사와 갤러리는 암호화폐 결제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이 또한 새로운 컬렉터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한편, 아트뉴스는 3월 중순, 소더비와 페이스갤러리가 협업을 논의 중이라는 미술계 소문을 보도했다. 투자인지 인수합병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페이스갤러리가 그동안 임차료를 비롯해 막대한 부동산 비용을 지출해왔고, 투자자를 찾아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경매사가 갤러리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전문가를 고용하는 등의 사례가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과거 경매사가 인수한 갤러리의 끝은 좋지 않았다. 1, 2차 시장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한 시대이나 경매사와 갤러리의 역할은 다르기에 사실인지 소문인지 지켜볼 일이다.
크리스티의 첫 AI 경매에 대한 예술가들의 반대 시위 출처: art-frame
현상과 전망: 다시 한번 페어티그, 아트페어의 본질로 돌아가야
지난 상반기 미술시장 리포트에서 언급했던 아트페어의 규모와 빈도에서 느끼는 피로감 ‘페어티그(Fairtigue)’는 2025년 더 두드러질 전망이다. 아트페어 홍수 속, 환율과 운송비 및 참여비용의 상승으로 갤러리들의 고민은 더 커질 것이다. 갤러리의 활동을 의미하는 ‘프로그램’ 중 가장 중요한 작가와 전시, 그리고 참여 아트페어를 통해 그 갤러리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다. 인지도 높은 주요 아트페어에 선정되기 위한 문턱은 높고,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적게는 수천만 원부터 많게는 수억 원을 투자해 참여하는 갤러리들이 이제 눈치 보다 실속을 차리기 시작했다. 주요 컬렉터와 기관을 통해 작품 판매가 보장되거나, 작품을 잘 판매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거나.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참여할 가치가 있는 아트페어에는 참여하고, 그렇지 않은 아트페어는 참여하지 않는 경향이 확실해질 것이다.
아트페어의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메가 아트페어와 소형 아트페어의 구도라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트바젤과 프리즈를 두고 저울질하는 갤러리도 늘고 있다. 1주~2주 간격으로 10월 개최된 프리즈 런던과 아트바젤 파리에 모두 참여해온 갤러리 중 일부 주요 갤러리는 작년에 아트바젤 파리에만 참여했다. 브렉시트 이후 돈이 빠져나간 영국이 아닌, 올림픽 이후 유동성이 늘어나며 주목받고, 프리즈보다 전략과 매출 면에서 우위를 점해온 아트바젤이 파리에 상륙하면서 문화 인프라가 풍부한 파리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크리스티는 첫 AI 미술품 온라인 경매인 ‘증강지능’을 진행해
34점의 출품작 중 28점이 총 73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제공: 크리스티
프리즈 서울도 마찬가지다. 프리즈는 2023년 아모리쇼와 엑스포 시카고를 인수하면서도 프리즈 서울이 아모리쇼와 동시에, 프리즈 런던 한 달 전에 개최된다는 점이 갤러리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2022년 1회 프리즈 서울의 기대감 이후 2023년 판매 성과는 탐탁지 않았다. 2024년 갤러리들은 대작보다 판매가 수월한 작품을 소개했고, 2년 동안 참여했던 일부 갤러리는 미 대선을 앞두고 불확실성에 불참하기도 했다. 작년 12월 비상계엄 선포로 한국에 대한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이유로 참여하지 않는 곳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2025년 3월 말 개최되는 아트바젤 홍콩에 참여하는 갤러리 수는 전년과 대동소이한데, 2024년의 경우, 출품작 라인업이나 판매 성과 측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작년의 실망감과 프리즈 서울과의 경쟁 구도를 의식하듯 아트바젤 홍콩은 지난 2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식 기자간담회를 개최하며 주요 기관과의 협업과 전시를 소개했다.
국내에도 다양한 아트페어가 설립되고 개최된다. 갤러리가 참여하는 전형적 아트페어 역시 다각화되고 있으며, 작가가 직접 작품을 출품하는 아트페어도 차별화된 기획과 전략으로 성과와 지속성을 높이기도 한다. 성공한 아트페어보다 흐지부지 사라지는 곳이 많고, 주목받았지만 실제 판매는 부진한 경우도 많다. 다양성은 중요하지만, 아트페어의 본질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좋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주객이 전도된 아트페어는 한번 주목받을 수 있지만 지속되기 힘들다. 컬렉터가 꾸준히 찾고 거래되는 아트페어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작품이 1순위이기에, 이를 보증하는 좋은 갤러리를 찾고 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더비가 사우디아라비아의 디리야에서 진행한 경매 ‘오리진스(Origins)’에 출품한
페르난도 보테로의 〈Society Woman〉이 102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제공: 소더비
나가며
긴축 정책을 고수하고 내수를 진작하려는 트럼프 2기는 초반 관세 전쟁을 선포하며 기선을 제압하고, 점차 이를 협상 카드로 내세울 것이다. 긍정적 효과로 캐나다와 멕시코가 자국 작가에게 더 집중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두 나라 외에도 관세나 정책을 떠나, 외국 의존도를 낮추고 대체할 다른 시장을 찾으며 자립도를 높이겠다는 다짐은 지역의 연대나 협업에 긍정적인 시그널이 아닐까. 트럼프 2기 이후 정책으로 관세를 비롯한 다양한 이슈로 불확실성이 커지자 국제 증시와 암호화폐가 2025년 들어 하락 횡보를 거듭하고 있다. 2025년 경제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미술시장 역시 금세 회복할지 의문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는 물론 미술시장 역시 어려움 속에서 새로운 전략과 모델을 만들어 내고 회복을 거듭해왔다. 우상향 그래프를 확대해 보면 수많은 하락과 상승이 반복되는 험난한 산맥이 반복되며, 투자 지원, 인수합병, 매각 등 다양한 함의를 협업과 연대라는 이상적인 키워드로 포장해 왔다. 이미 형성된 시장은 그렇게 주기를 반복하며 우상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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