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김상연 검은 심장
〈검은 심장〉 전시 전경
김상연의 〈검은 심장〉은 작가의 근거지에서 7년 만에 벌인 개인전이다. 전시는 반환점에 선 작가 생애 이력을 두고 볼 때 일차적인 회고전 성격을 띠었다. 이 개인전에서 지난 몇 년 사이에 완성한 대표작들이 신작과 함께 공개되었다는 사실은 파악하기 어렵지 않다. 다만 전시가 구현된 장소가 주목된다. 공장미술제라는 부제 그대로, 전시장은 현재 운영 중인 공장 물류 공간이다. 공장에서 치르는 미술제란 말이 예컨대 가동을 멈춘 폐공장을 탈바꿈하여 예술공간으로 개조한 경우를 떠올리게 했다. 그 말은 전시작품이 공장 내 공정과 설비에 의해 생산되었다는 추측도 하게 만들었다. 둘 다 아니었다. 그 대신 작가는 매뉴팩처링 시스템의 산출물을 암시하는 성격을 새로 공개한 작품에 반영했다.
이처럼 장소를 염두에 두고 준비한 신작은 〈나는 너다〉, 〈색즉시공〉, 〈욕망의 오벨리스크〉, 〈검은 심장〉으로 구분된 네 개의 주제전에 배분되어 선보였다. 당연히 넓은 공장을 채우는 신작의 완성에는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올해로 출판된 지 50년을 맞은 《노동과 독점자본》에서 해리 브레이브먼(Harry Braverman)은 그 당시 포디즘의 쇠퇴에도 변하지 않는 본질을 찾아냈다. 그건 노동과정에서 일어나는 구상과 실행의 분리였다. 상품을 만들고 잉여가치를 쌓는데 머리 쓰는 사람과 몸을 쓰는 사람이 따로 있는 자본주의 원리에서, 미술 창작은 한 걸음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후 팝아트와 아트팩토리, 조수 고용과 미디어아트 구현 같은 주제에서 구상과 실행의 분리 명제는 논쟁의 한 축이 되곤 했다.
김상연 작업의 출발은 회화다. 그는 홀로 작업실에서 광주와 전남이라는 시공간에 관한 생각을 여러 알레고리로 화폭에 담아왔다. ‘수인회화’, ‘도시산수’, ‘생활지음’ 같은 연작이 그 자취다. 이러한 회화적 근간은 다양한 장르 실험으로 뻗어갔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판화 연작 〈나는 너다〉가 그렇다. 설치작업 〈욕망의 오벨리스크〉와 〈우주를 유영하는 고래〉는 회화, 미디어아트, 디자인, 조소 개념의 조합체다. 전시 제목인 〈검은 심장〉에서 검을 현(玄)은 같은 검정이라도 흑과 달리, 세상에 존재하지만 우리 눈으로 가늠되지 않는 아득한 본질을 뜻한다. 이는 작가 김상연의 작품관이자 창작을 이끄는 동력으로, 사람으로 비유할 때 심장과 같은 부분이란 점을 제목에 드러내었다. 전시는 검정을 주조로 삼고, 작품에 따라 변칙과 일탈을 다루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무엇보다 장소가 중요한 만큼, 작가는 애당초 예술과 무관한 공간 특성을 적잖이 의식했을 것이다. 그는 작업의 중간 결산과도 같은 중요한 이벤트를 왜 미술관이나 대형 화랑이 아닌 공장에서 벌이는지에 대해 기획자나 큐레이터가 따로 없는 이 전시에서 스스로 대답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떠안았다. 무엇보다 미술 현장 경험이 쌓인 사람들에게 더욱 민감할 몇 가지 고민이 여기에 있다. 전시 대상에 충분하고 적절한 조명을 제공할 수 있는지, 덩그런 공간을 쪼개어 관객들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동선이 극적인 감정의 조절을 이끌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은 사실 큐레이팅의 영역이다. 글을 쓰는 나로서는 그러한 난제를 작가가 누구의 도움을 받고 어떻게 풀었는지 모른다. 어떻게 됐든 이 공장미술제가 미술 제도권 안에 속한 대형 전시공간들이 감당 못 할 형식을 구현한 점은 명백하다. 그런데 앞선 문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 전시가 기부금 매칭 사업으로 성사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미 미술 제도의 궤도 깊숙이 진입했다는 점은 일반 관객들이 모르고 지나갔을 수 있다. 이른바 광주형 문화 메세나는 시와 문화재단이 문화예술기금을 출연하는 방식으로 출발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먼저 시도하는 사업이다. 그 가운데 지역의 선도적 기업에 기부를 제안하는 기업문화동행 부분에서 진행된 결과가
본 전시이다. 한 작가가 회화라는 뿌리와 줄기를 세웠고, 동시대 미술의 여러 이파리와 꽃이 자라난 형태가 지금의 작품이라면, 이번 공장미술제는 그 열매에 해당한다. 머지않아 이로부터 무수한 씨앗이 퍼진다면, 이른바 선한 영향력이 미술 환경에 끼치는 한 가지 사례를 우리가 확인하는 셈이다.
〈색즉시공〉 섹션 전시 전경. 〈나는 너다〉(사진 오른쪽) 철프레임에 나무 320×500×170cm 2017
윤규홍 | 오픈스페이스 배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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