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메아리: 살아있는 아카이브》
푸투라 서울
9.5 – 12.8

정소영 기자

〈기계 환각 – LNM〉 왼쪽부터 식물, 동물, 풍경 시리즈
《대지의 메아리 : 살아있는 아카이브》 푸투라 서울 전시 전경 2024
사진 : 박홍순

인공지능이 그리는 자연에 대한 환상

대한민국 수도 서울, 그중에서도 옛 한양의 정서가 남아있는 북촌에 대형 전시장인 푸투라 서울이 개관했다. 350평의 대지에 총 3개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2013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을 제외하면 낮은 층고의 전시장이 대부분인 북촌 지역에 층고 10.8m로 대형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기 충분한 공간이다.

라틴어 ‘Futura(미래)’에서 착안한 명칭에는 북촌 지역의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예술 경험을 제시하는 공간이 되겠다는 염원을 담았다. 백산그룹 백산아트앤네트워크에서 운영하는 푸투라 서울의 공간 디자인은 도산공원 부근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준지 플래그쉽과 카카오프렌즈 플래그쉽 스토어 등을 탄생시킨 WGNB의 백종환 대표가 맡았다. 그는 전시 공간 이외에도 야외 테라스와 옥상정원을 두어 푸투라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도심 속 휴식을 제공하려 했다고 밝혔다.

푸투라 서울은 개관 첫 번째 전시로 뉴욕 MoMA에서 긴 관람객 대기 줄로 화제가 된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의 개인전 《대지의 메아리 : 살아있는 아카이브》를 개최했다. 레픽 아나돌 스튜디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자연 오픈소스 생성형 AI 모델인 거대자연모델(Large Nature Model, 이하 LNM)을 시각화한 작품은 학습된 AI가 자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시각적으로 선보인다. ‘데이터 페인팅’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의 개인전과 전시 공간 오픈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한 레픽 아나돌을 만나봤다.

레픽 아나돌은 데이터를 주재료로, 컴퓨터 기술로 생성된 지능의 신경망을 시각화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다. MoMA, 퐁피두 센터, 아트 바젤,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등의 세계적인 미술관과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아시아 첫 번째 개인전이자 한국에서의 첫 전시로 이미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선보인바 있는 〈Echoes of the Earth : Living Archive〉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Echoes of the Earth : Living Archive〉는 나의 최근 연구 결과를 반영한 작품이다. 또한 향의 분자를 기반으로 향을 개발하고 접목하는 과정에서 2년의 시간이 걸린 작품이기도 하다. 첫 개인전인 만큼 가장 근래의 결과물과 함께 향에 의한 후각 경험까지 더해져 훨씬 풍성한 예술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작품으로 선정했다. 많이들 알고있는 챗GPT나 제미나이와 같은 모델들이 인간을 중심으로 개발됐다면 이번 작품에 쓰인 인공지능은 자연을 중심으로 개발됐다.

인간중심 인공지능과 자연중심 인공지능의 개발은 어떻게 다른가.
차이는 데이터에서 나온다. 인공지능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필수적인데 연구에 필요한 자연 데이터를 스미소니언 박물관이나 런던의 자연사 박물관, 온라인 도서관과 같은 공개 데이터를 중심으로 수집해 50만 건이 넘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결합시켰다. 작품의 사운드도 인공지능 학습을 통해 제작된 음악이다. 또한 자체 데이터를 위해 세계 각지의 우림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현장에서 데이터 수집을 병행했다. 결과는 창작물이지만 준비하는 과정은 연구 중심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LNM은 자연에 대한 백과사전과도 같다. 이번 전시에서 수집된 데이터와 그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작업을 함께 볼 수 있다.

이전 인터뷰에서 “기술에 의한 새로운 미적 기술”이라는 작업 철학을 언급했다.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바 혹은, 추구하는 예술성은 무엇인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다르겠지만 창작의 목표가 바뀐 적은 없다. 작품의 목표는 항상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기쁨과 희망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연령이나 문화를 초월해 누구나 누리고 즐길 수 있는 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나의 예술 방향성이다. 이 때문에 데이터를 수집할 때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자연, 도시, 건축과 같은 인류의 관심사들을 중심으로 작업한다. 작품을 통한 영향이 중요한 만큼 작품을 전시할 때 관람 형태도 매우 중요하다. 작품이 상영될 공간의 건축과 디자인적 요소와 느낌의 디테일한 부분을 신경쓰고 있다. 그런 면에서 푸투라 서울은 완벽한 공간이었다.

비슷한 방법의 작업을 선보이는 아티스트들이 증가 하고있다. 당신의 작품이 갖는 장점은 무엇인가?
2008년부터 미디어아트 작업을 진행해 왔다. 16년이라는 시간 동안 축적된 지식과 경험은 나를 포함해 함께하는 팀의 자산이다. 우리는 맹목적으로 기술 구현을 위한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수백만 명이 작품을 보고 즐겼고, 그 좋은 영향력이 다시 창작의 자극이자 동기가 된다. 신기술에 함몰되지 않고 인류를 위한 가치있는 작업에 기여하려는 목적의식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유니세프나 브라질 아마존 지역 주민들을 위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판매금 기부와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도 작품 판매를 통한 기금 모금이 진행 중인데 유니세프가 약 170만 유로(한화 약 25억), 브라질 아마존을 위한 기금은 약 250만 달러(한화 약 33억)가 조성됐다.

기술의 진보로 예술이 많이 변화했다. 미래의 미디어아트 변화를 어떻게 예측하고 기대하는가?
코로나19 전과 후는 다른 시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16년을 미디어아트 작업을 했지만 사람들은 팬데믹을 통해 비로소 디지털 매체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앞으로도 미디어아트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 것이라 생각한다. 푸투라 서울과 같이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미디어아트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미디어아트 작업은 많은 시간과 자본을 필요로 한다. 구글과 엔비디아의 기술적, 재정적 후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작품을 지속할 수 없다. 작품을 위한 기업의 후원이 신진 아티스트들에게 더 많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프로젝트나 연구 계획은?
예정 중인 대표적인 활동 계획을 3가지만 말한다면 자연과 인류에 대한 그동안의 작품활동을 인정받아 감사하게도 유엔 본부에서 각국의 지도자들이 모여 진행하는 미래 정상회담( summit of the future) 기간 중에 대규모 설치 미술을 전시하게 됐다. 또한 구겐하임 빌바오에서도 대규모 전시가 기획돼있다. 개인적으로는 레픽 아나돌 스튜디오의 데이터 랜드가 내년에 개관 예정이라 그곳에서의 일들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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