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한 Ram Han

혼종 외톨이 시대

ARTIST FOCUS

람한/ 1989년 출생인 작가는 서울을 기반으로 국내외에 걸쳐 다방면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예종 애니메이션 전공 졸업 후 디지털 페인터로 경력을 쌓던 작가는 온라인 공간에서 먼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개인전 《나이트캡》(유어마나, 2017)을 통해 본격적으로 미술계에서 호명되기 시작한 작가는 개인전《Upcoming》(휘슬, 2020) 이외에도《유령팔》(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8 ),《Fantasia》(스티브터너갤러리, LA, 2019),《부산비엔날레》(2020), 《SF2021 : 판타지 오디세이》(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1)등 다수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 외에도 패션, 전자제품, 출판 등 다양한 종류의 브랜드, 아티스트와 왕성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Object_01_F〉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37.5 × 25cm 2019
제공 : 작가

혼종 외톨이 시대

오정은 | 미술비평

시티팝과 두 축의 시간

내 곁에 있어줘
한밤중 문을 두드리며 마음에 구멍이 난 것처럼
공허하던 그 시절이 지금 눈앞에
내 곁에 있어줘
쓸쓸함을 달래려고 놔둔 레코드의 바늘이 같은
멜로디를 반복하고 있어
내 곁에 있어줘
한밤중 문을 두드리며 가지 말라고 울었던 그 시절이
지금 눈앞에
내 곁에 있어줘
입버릇처럼 말하던 우리 둘의 시간을 아직 잊지 않고
따뜻하게 가지고 있어

-마츠바라 미키 〈Stay With Me〉 가사의 일부 번역

〈Roomtype_01〉라이트패널에 디지털 프린트 300 × 300cm 2018

〈Roomtype_02〉라이트패널에 디지털 프린트 300 × 300cm 2018

인터넷 알고리즘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 어느 음악의 정취에 당도한다. 팝, 펑크, 재즈가 섞인 멜로디에 연인 간 애절한 사랑을 말하는 가사가 감미롭게 흘러나온다. 세련되고 화려한 도회지 감성에 야릇하고 몽환적인 야경의 모습이 라이브 밴드의 리듬 위에 어우러진다. 사람들은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시티팝(City Pop)’으로 분류하고 즐겨 듣는다. 젊고 화려한 어떤 도시의 아름다움을 그리며.

이렇게 회자된 시티팝은 그것이 태동했던 1980년대의 일본을 지금에 소환하고 있다. 마츠바라 미키의〈Stay With Me〉( 1979 )는 유튜브에 조회수 수천만 회가 넘는 인기 영상으로 떠오르며 발매 당시를 훌쩍 뛰어넘는 관심을 받고 있다. 4세대 아이돌 뉴진스는 시티팝에 힙합, 스윙 등이 첨가된 곡〈Supernatural〉(2024)로 활동하고 있고, 멤버 하니와 혜인은 지난 7월 도쿄돔에서 열린 팬미팅에서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1980), 다케우치 마리야의〈Plastic Love〉(1984)를 각각 부르며 한일 양국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버블경제 시절의 낭만과 환희가 눈앞에 재현되고, 당시 누린 여유와 풍요가 단비처럼 대중의 정서에 스며들어 파고든다. 좋았던 한때를 떠올리는 이들은 〈Stay With Me〉의 후렴 가사처럼, ‘내 곁에 있어 달라’고 읊조리며 노스탤지어의 아쉬움을 달랜다.

주지하듯 1990년대 X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이 2020년대 ‘힙’한 것이 되고, 세기 말 Y2K 패션이 MZ세대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를 다시 불러 유행시키는 레트로 현상은 문화의 순환 공식과 같아 그다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일본의 80년대나 우리의 90년대를 희구하는 대중의 심리 저변에는 오늘은 결코 볼 수 없는 경제 호황에 대한 갈망이 있어 애틋함이 생경하게 끼어들곤 한다. 젊음이 청년실업이나 고립과 은둔의 문제와 결부되지 않던 그때,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하고 집을 장만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이 보편적이던 당시가 작금의 사회에서는 너무도 멀게 느껴지지 않는가. 과거라기보다는 차라리 환상에 가까울 정도로.

그런 환상과 결부된 이상한 기시감은 특히 밀레니얼 세대에게 적용되고 있다. 그들은 성인으로서 자신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호시절의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풍족한 미래의 열망을 문화로 대신 소비한다. 거기 그나마 더해지는 기억 속 사실이 있다면 어릴 적 즐긴 만화책과 비디오테이프, 오락실 게임 같은 거다. 전축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유행가요, 브라운관 TV로 보았던 미니시리즈 드라마, 수입된 외화 프로그램 같은 데서 받았던 인상도 그렇다. 그들은 유년과 결부된 향수와 어른의 이루지 못한 꿈 사이를 맴돌며 뉴트로(newtro) 유행을 일으키고 그 안에서 배회한다. 2020년대에 당도한 첨단 디지털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한편, 예전 아날로그가 품었던 낡은 로망을 꺼내어 어루만진다. 부모세대가 IMF 금융위기를 겪기 전, 즉 경제 거품이 꺼지며 몰락하기 이전의 시대로 시곗바늘을 돌려 옛 잔상을 확인한다. 앞서가는 인공지능과 인류세의 대세를 인식하는 와중에도 그들은 한편으로는 지난 과거를 돌아보며 두 축의 시간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Roomtype_03〉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01.6 × 152.4cm 2019

람한이라는 페르소나
LED패널의 수많은 입자로부터 발광하여 망막에 맺히는 납작하고 매끄러운 그림. 사이키델릭한 색감으로 묘사된 이것은 시티팝이 흘러나오는 도시의 네온사인을 연상케 한다. 그 인공적 불빛에는 기형의 생물과 사물이 몸을 한데 뒤엉킨 독특한 도상이 있다. SF의 공상과 픽션에 가미된 거짓, 그리고 열화된 기억 속 흔적이 그로테스크하게 공존한다. 단적인 무엇으로 설명할 수도, 선형적인 서사를 부여하기도 곤란한 자극적 이미지다. 아름답지만 괴이하고, 화려한데 쓸쓸하여 혼란한 감각만이 말초로 지각될 뿐인.

그런 시각 이미지를 생성하는 작가 람한은 동시대 미술과 소셜문화의 주목을 동시에 받고 있다. 한예종 예술사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작은 규모의 전시와 출판물로 작품을 공개했던 그녀가 주요 미술계의 호출을 받은 것은 《유령팔》(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2018)부터였다. 해당 전시를 기획한 홍이지 큐레이터는 일상의 하나가 된 웹 공간에 대해 조망하고자 하였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80년대생 작가들’을 언급하며 강정석, 김정태, 박아람, 압축과 팽창, 김동희, 람한을 초대했다. 2010년대 미술계의 떠오르는 화두였던 신생공간과 그들 담론 속에 이름을 알린 젊은 작가들이 제도권에 소위 ‘액세스’되거나 ‘휘발된’ 사례가 빈번할 때, 람한은 일러스트레이터 겸 만화가로 소개되며 약간은 결이 다른 ‘뉴페이스’였다. 람한은 신생공간 세대가 거쳤던 물리적 공간이나 그들이 모여 주도한 작가미술장터 《굿-즈》(세종문화회관, 2015) 및 파생된 동류 행사에 참여한 적 없이, 그보다도 바깥의 영역에 있다가 호명된 경우였다.

독립만화와 캐릭터 굿즈를 전시· 판매하는 곳에서 첫 개인전《람한: 나이트캡》(유어마나, 2017)을 열며 인디 아티스트로 활동한 람한은 동시기에 불거졌다. 몇 년 내 소멸한 미술의 세대 담론과는 직접 닿을 인연이 없었다. 오히려《유령팔》 이후《PACK 2018: 팅커벨의 여정》(공간사일삼, 2018),《Ghost Shotgun》(시청각,2019) 등에 섭외되며 람한은 앞의 담론에 등장했던 공간을 추후 경험했고, 이내 상업갤러리 초대 및 소속 작가가 되었다. 그 사이《2020 부산비엔날레: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부산 원도심 일대 등, 2020),《SF2021:판타지오디세이》(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1),《게임사회》(국립현대미술관, 2023)에 주요 커미션 작업을 선보였고,《아트바젤 홍콩 2023》 ‘디스커버리즈’ 섹터에 소개됐는가 하면, 연예기획사 및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비롯한 여타 기업과의 협업 및 광고에 참여하고, 패션지 화보에 모델로 직접 등장하는 등 기존 미술계에 있던 암묵적 허들을 넘고 다방면의 이력을 쌓았다.

이처럼 급가속한 람한의 인기 혹은 당대 문화와의 발 빠른 맞춤은 두 가지 상반된 시대 배경을 원인으로 짚을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청년이 88만원 세대, 삼포세대로 불리며 디스토피아의 2010년대를 자급하여 버텨야 했던 점, 둘째, 청년이 자기표현과 가치 추구에 능한 MZ세대로 지칭되며 2020년대 주목할 신인류 계층으로 떠오른 점이다. 절망이 극복된 게 아니라, 포기해서 득도에 이르러 뒤틀린 변종이 될 수밖에 없는 암울한 사회에서 람한이 수행해온 혼성의 미감과 멀티프로필은 어쩌면 동세대에게 선망의 동력이 됐을 거라 추정해 볼 수 있다. 보다 정확히 짚자면, 람한이라는 새로운 페르소나와 그 페르소나가 제작한 작업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소비되면서 지금의 람한이 형성됐다고 할 수 있겠다. 람한은 본격 데뷔 이전에는 블로그와 SNS에 작품을 게시해 회자됐고,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본 큐레이터에 의해 미술관 전시에 섭외됐으며, 그 일을 계기로 웹에 최적화된 화면을 실물로 전시하여 ‘디지털 페인터’라는 수식어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는 물론 전통 회화작가와 구별되는 디지털 페인터 람한은 자기를 분기점으로 매체 변화의 새로운 수사를 떠안았다. 라이트박스에 디지털 일러스트를 프린트한 〈Room type〉(2018) 연작을 람한에게 의뢰 · 소장한 서울시립미술관은 일단 이를 뉴미디어로 소개하면서 미술사의 다음 과업까지 내비친 바 있다. “이 작품은 디지털 페인팅이라는 디지털과 회화가 결합한 새로운 장르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회화 장르로 통칭되는 ‘페인팅’이라 하면 캔버스와 붓을 사용하는 제작방식만을 떠올리기 쉬우나, 람한의 디지털 페인팅은 태블릿과 포토샵으로 제작된다. 이처럼 모호한 경계를 지니며 새롭게 구축되는 장르들은 기존까지 구축된 소장품의 부문에 편입되기 어려운 지점이 존재한다. 이 작품의 경우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작품 관리 시스템 뉴미디어 부문에 등록되어 있다.”1

8만8000여 명의 팔로워는 인플루언서 람한의
정체성을 계량화한다. 당연하게도 거기에는
온전한 사실성은 없다. 람한은 경계가 불분명한
작풍이 미치는 영향력을 현시대를 투사하는
용어로 마침 사용할 뿐이다.

 〈Souvenir03_F(Pull up Pull up)〉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47.5 × 53cm 2019

람한은 국내 미술계가 신생공간을 통해 발화했던 신구세대의 간극과 제도적 책임론의 이슈가 꺼져갈 때쯤, 그 자리를 대신하며 등장한 매체 담론에 적용되기에 적합하였다. 80년대생 작가가 미대를 졸업하고 느꼈던 생계의 어려움과 작가되기의 막막함이 그 자체로 나름의 주된 경향이 되어 떠오르자, 다음은 그들과 이후 90년대생 작가들의 신선한 등장을 필요로 했고 거기에는 사회학적 세대론과 결합된 포스트미디엄의 이슈가 있었다.《유령팔》은 인터넷 공간 안팎의 비가시적 연결성을 가지고 관련 주제와 감각을 엮어낸 전시였다. 젊은 세대가 구사하는 신종 미술 어법과 온라인 환경에 쏠린 이목은《21세기 회화》(하이트컬렉션,2021),《조각충동》(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2022),《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일민미술관, 2023)등의 전시에서도 부분적으로 이어 살펴졌다. 이들 전시는 MZ세대 관람객은 물론, 특히 동세대 작가 사이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이미 2010년대부터 젊은 작가들이 쌓아온 고민과 변화를 바탕으로, […] 작가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는지를 짚어볼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하였다. […] 우선 분리된 표면 (이미지)과 몸체 (물리적 실체) 간의 관계 설정, 가상공간에서의 제작이 실재로 출력될 때의 낙차, 온라인 유통과 유동성, 일시성의 결합 같은 매체 중심의 시도를 살펴볼 수 있다.”

람한은 디지털 스크린에서 극명해지는 RGB컬러를 활용해 매체성을 강조하고, 정방형 패널을 의도적으로 자주 사용함으로써 인스타그래머블한 작업의 주제를 선명하게 가시화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작업 발표와 아카이빙 포트폴리오로 활용하고, 카탈로그와 광고에 등장한 자신의 사진 이미지도 편집해 공개해두었다. 현재 8만8000여 명의 팔로워는 인플루언서 람한의 정체성을 계량화한다. 당연하게도 거기에는 온전한 사실성은 없다. 람한은 경계가 불분명한 작풍이 미치는 영향력을 현시대를 투사하는 용어로 마침 사용할 뿐이다. 불황의 시대에 진력난 대중이 희구하는 버블경제의 찬란함처럼, 람한의 페르소나가 그렇게 빛난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그래서 어딘지 괴기스러워 보인다. 흔히 청년세대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개 절망과 포기로 수렴된다. 청년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로 인해 우울, 좌절, 증오, 혐오 같은 현상이 얼마나 일상화되었는지가 늘 문제시된다. 그런데 정작 청년세대가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SNS에는 그런 흔적이 없다. 그곳은 언제나 밝고 희망차고 화려하다.”3


1『컬렉션_오픈 해킹 채굴』 서울시립미술관 2021 p.226
2 권혜인《조각충동》 전시 서문『조각충동』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2 p.6
3 정지우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한겨레출판 2020 p.62

〈Bye Bye Meat〉라이트 패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스크래치 드로잉 150 × 200 × 9cm 2023

〈The last night of the world〉 라이트 패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36 × 136cm 2021

〈case_01_04(recombined scenery)〉 라이트 패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00 × 100cm 2020

하이브리드 외톨이
“그런데 실재와 가상, 두 개의 세계를 분간하는 경계는 무엇일까? 육화되지 않은 가상세계와 물질화된 실재를 연결하는 디지털 장비? 전원을 켜지 않으면 현실의 무용한 기물일 뿐이지만 전력을 받아 네트워크에 접속된 그것이라면, 두 차원의 세계 가운데에 서게 된다. 매개체인 그를 통해 경계선을 직접 넘는 것은 주체의 다른 활동을 통해서다. 즉, 현실에서 가상으로, 다시 가상에서 현실로, 양쪽을 오가는 화신 (化身)적 성격의 체현 말이다.”4

허상과 실재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의 감각은 질량의 세계가 데이터화되고, 이미지가 액정 아래 액화되어 흐르고, 신체의 안팎 경계가 무너져 이종의 것과 결합되면서 가능해진다. 람한은 그 감각의 형태를 시각화하여 묘사한다.〈Souvenir study〉연작 (2019~2022)이 표현하듯 생물과 무생물이 같은 질감으로 혼합되어 유약을 바른 듯 광택을 내고, 〈Case〉연작(2020 )과 〈Sky〉(2022) 등에서 표현되듯 인간과 동식물이 결합해 하나의 신체를 공유하는 형상을 그려낸다. 람한의 작품세계에서 교감은 성과 종을 초월한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외계인과 키스하는 〈Kiss〉(2021 ), 소녀와 얼굴 없는 존재, 고양이, 스마트폰이 단란한 4인가족의 스냅처럼 나타난〈The last night of the world〉(2021)를 보라. 람한이 등장시키는 인물은 소수자의 정체성을 띠고 새로운 관념을 암시한다.

람한은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불쾌한 골짜기’의 도착적 요소도 서슴없이 차용한다. ‘AI가 이미지를 추론해 나가는 과정에서 불안정한 중간 생성물, 오류처럼 보이는 결과에 훨씬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다’5는 믿음을 갖는다. 람한은〈morph〉 시리즈 (2022)와 같은 3D프린트 조각,〈튜토리얼: 내 쌍둥이를 언인스톨하는 방법〉(2023)외 VR 게임 · 영상 작업에서 이행한 디지털 기기 수준의 것에서 넘어가, 포스트휴먼의 두뇌 감각을 매체로 끌어와 사용하고자 한다. 람한이 ‘AI와의 협업작’이라고 밝힌〈open sandwich〉,〈salami platter〉,〈seafood pond〉(2022)와 같은 ‘음식 시리즈’는 인공지능이 편견 없이 만들어낸 기괴하고 비상식적인 이미지로부터 착안한 것이었다. 이 이미지에는 물론, 유희와 위험이 동시 도포되어 있다.

“평소에는 없었던 척 외면해야 하는 꼭꼭 숨겨 둔 슬프고 미운 마음들.
그들도 역시 주인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밤에 홀로 남은 내게 찾아든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소한 사건들에 관심을 둘 수 있는 때.
부유하는 진심들이 어질러진 방처럼 뒤섞이는 밤이 좋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나처럼 늦은 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6

한편, 람한은 자극적이고 유해한 장면을 포함한 시각문화에 어릴 적 무방비 상태로 노출됐던 사실을 필자와의 대화 외 여러 매체 인터뷰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동세대가 80~90년대 향유한 만화책, 비디오테이프, 게임기에서 떠오르는 아련한 기억과 거기 깃들었던 시각적 외상을 말이다. 람한은 무연고로 치부했던 심상의 먹먹한 흔적을 모아 동시대 매체를 경유해 불러내 왔다. 새로 표현된 그들은 애써 밝지만 어지럽고 모순적이다. 이를테면 디지털 페인팅 〈Roomtype〉,〈외톨이〉연작(2018~2019)에 그린 모텔 테마룸과 그 안에 구분 없이 섞인 욕망의 잔재는 낡았어도 빛이 나고, 퇴폐적이나 순수하게 아름다웠다. 람한은 이 비슷한 과정을 인스타그램 피드를 채우는 이미지 조각으로 또한 계속하고 있다. 람한의 내밀함을, 시대의 트라우마를, 우리는 그렇게 보고 독해한다. 뿌리내린 연대는 아니지만, 외톨이가 아님을 서로 느낄 수는 있다.

*본 원고는()예술경영지원센터 ‘2024 한국미술 비평지원’으로 진행하는 특별기고이다.


4 오정은 「가상과 현실 사이, 물렁한 신체의 이상함」 『GRAVITY EFFECT』 8호 Graphite on Pink 2024 p.119
5 제너레이티브 아트 (Generative art)에 람한의 작가노트 2024
6 개인전《람한: 나이트캡》에 대한 람한의 작가노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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