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미술관의 포용성

정소영 기자
Sight & Issue

언리미티드의 스폰서 파트너인 옥스포드대 문화 프로그램의 2025년
수상작품인 조니 리치의 어린이 서커스

미술관의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과거의 미술관은 예술작품을 수집·보존하고, 이를 전시하는 권위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미술관은 더 이상 작품의 보고(寶庫)로 머물지 않는다.

21세기 들어 미술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에서 벗어나, 사회적 소통과 공동체 참여의 장, 그리고 교육, 복지, 치유, 다양성의 허브로서 재정의되고 있다. 이는 2022년 국제박물관협의회(ICOM)가 새롭게 발표한 미술관 정의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ICOM은 미술관을 “연구, 수집, 보존, 해석 및 전시를 통해 인류의 유산을 탐구하며, 포용성, 접근성, 지속가능성, 다양성을 중심으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간”1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운영 방식의 조정이 아니라, 미술관이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장애인, 노인, 여성, 다문화 배경의 이주민, 성소수자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게 미술관은 실제로 접근 가능한가? 그들을 위한 콘텐츠는 존재하는가?

‘모두를 위한 미술관’이란 구호는 바로 이러한 고민에서 비롯된다. 물리적 접근성의 확보를 넘어, 문화적·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예술을 통한 자기표현과 공동체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요구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며, 장애인, 노인, 여성 등 다양한 사회적 그룹을 위한 예술기관의 현주소를 국내·외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모두를 위한 미술관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포용의 출발점, 장애
모두를 위한 미술관의 포용성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신체적·정신적 장애에 대한 포용이다. 장애는 더 이상 개인의 신체적 한계로만 이해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굳어진 사회 구조와 환경이 장애를 만들어낸다는 ‘사회적 모델’의 관점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술 또한 ‘누구를 배제하고 있는가’, ‘어떤 방식으로 접근을 허용하거나 제한하는가’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예술은 단순히 ‘볼 수 있는 사람’, ‘들을 수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든 신체와 감각의 차이를 고려한 열린 체계로 작동해야 한다. 이러한 감각과 신체의 차이에 대한 인식을 미술관의 역할과 구조에 적용하려는 대표적인 국립 및 민간 기관들이 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설립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은 장애예술인의 창작 활동부터 일자리, 정책 연구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지원을하는 국가 기관이다. 장문원은 단순한 예술교육을 넘어서, 장애예술인의 문화권 보장과 관련 법·제도 연구, 인식 개선 캠페인을 수행하며 예술 생태계 전반을 다룬다. 때문에 장문원은 예술을 통해 장애인의 자립과 사회적 기여를 실현하며, 장애를 ‘복지’가 아닌 ‘문화권’으로 재정의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언리미티드
영국의 언리미티드(Unlimited)는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와 브리티시 카운슬(British Council) 등 주요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아 장애예술인의 활동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국가적 규모의 기관이다. “장애예술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Disability arts is art)”라는 철학 아래 장애를 복지의 대상이 아닌, 동시대 예술을 이끄는 주체적 정체성으로 재정의한다. 언리미티드의 대표적인 프로그램 중 하나인 커미션(Commissions)은 장애예술인의 창작비 지원은 물론, 기획·홍보·접근성 보장을 위한 컨설팅을 포괄적으로 제공한다. 시각예술, 공연예술, 디지털, 다원예술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을 대상으로 하며, 장애예술인이 창작 과정 전반에서 주도권을 갖도록 한다.

언리미티드는 영국 내 주요 예술기관 및 국제 파트너들과 협업하여 커미션 작품의 발표 기회를 확대하고, 브리티시 카운슬 등과 연계한 국제 투어도 적극 추진한다. 예술을 통해 장애예술인의 표현권과 문화적 참여를 실현하고자 하는 언리미티드의 활동은, 예술 전반의 포용성과 다양성 구현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운영하는 모두미술공간에서 2025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진행된 《예담화경》 전시 전경 2025

모두미술공간 개관전인 《감각한 차이》(2024) 전시 연계 라운드테이블 모습.
청각장애인을 위해 강연자의 말이 큰 글씨로 함께 제공되고 있다
제공: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언리미티드의 장애 예술인 지원 활동 모습 사진: Rachel Cherry

주체적 참여를 위한 환경
장애에 대한 포용이 모두를 위한 미술관 논의의 출발점이었다면, 그 문제의식은 보다 확장된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고령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노인의 감각적·인지적 변화, 그리고 유아기 관람객의 발달적 특성을 고려한 접근 역시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즉, 신체와 감각의 차이에 대한 인식을 미술관의 구조와 운영 전반에 반영하려는 노력은 장애를 넘어서, 나이와 발달 단계의 차이를 포함하는 보다 넓은 포용성의 개념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술관은 단순히 접근 가능한 시설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연령대와 감각적 조건을 지닌 이들이 예술을 ‘함께 경험’하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에치고-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
일본 니가타현 도카마치시와 쓰난정을 중심으로 개최되는 에치고-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Echigo-Tsumari Art Triennale, 이하 ETAT)는 예술을 통해 초고령 지역의 공동체를 재생시키려는 실험적 시도로, 예술이 고령자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1990년대부터 심화된 일본 농촌의 고령화와 지역 소멸 문제를 배경으로 ETAT는 2000년부터 ‘자연과 인간의 공존’, ‘지역성과 예술의 접점’을 주제로 3년마다 열리고 있다.2 이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고령자가 단순한 관람자가 아니라, 예술 실천의 주체로 참여한다는 점이다. 작품의 제작 및 설치 과정에서 지역 주민, 특히 노인들은 전통적인 지식과 손기술, 생활의 흔적을 제공하며, 예술가들과 협력해 작품을 완성한다. 과거 농기구를 예술 오브제로 활용하거나, 폐가를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들 속에는 고령 주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든다. 이는 노인을 수동적인 수혜자로 보는 기존 복지 관점을 넘어, 창조적 주체로서 고령자의 위치를 회복시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또한 ETAT는 농촌이라는 물리적 장소를 넘어 사회적 고립과 정체성 상실의 위기에 처한 노년의 삶을 재구성하는 플랫폼이 된다. 외지 관람객과의 교류, 전시 공간 운영 참여, 문화 해설 등의 활동은 노인들에게 새로운 역할과 의미를 부여하며, 지역과 자신에 대한 자긍심 회복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고령자를 위한 예술 프로그램의 선례라기보다 고령자를 매개로 한 지역 재생과 예술 실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모델이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오늘날, 예술이 노년의 삶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데 있어 ETAT의 활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톰 킹 아트 센터
여의도 전체 면적의 1.7배에 달하는 대지에 자리한 야외 조각 미술관 스톰 킹 아트 센터(Storm King Art Center, 이하 스톰 킹)는 아름다운 조각과 풍경을 배경으로 포용성과 생태적 감수성을 향한 구조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1960년 개관 이후 알렉산더 칼더, 리처드 세라, 루이스 부르주아 등 현대 조각의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이며 세계적 명성을 쌓아왔다.

2023년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스톰 킹은 2018년 문화 컨설턴트 에이미 카우프만의 연구를 토대로 ‘접근성과 생물 다양성 확대’를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4,500만 달러(약 618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이 계획에는 장애인의 이동 편의성을 고려한 동선 재배치, 완만한 경사의 경로 설계, 트램 운행, 쉼터 기능의 ‘릴리패드(lily pad)’ 설치 등 물리적 접근성 개선뿐 아니라, 비가시적인 규범과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문화적 접근성’ 확보도 포함된다. 장애인 건축 디자이너이자 자문가인 조쉬 새프디(Josh Safdie)는 “접근성에는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대문자 A’와, 보이지 않는 규범을 재조정하는 ‘소문자 a’가 있다”고 설명한다.3 이는 단순히 진입로를 넓히는 차원을 넘어, 미술관이 누구든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포용적 경험’을 주는 공간이 되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스톰 킹의 변신은 자연환경에 대한 존중에서도 두드러진다. 과거 자갈 채석장이던 부지를 회복시켜 탄생한 미술관은, 현재도 통제된 소각(burn), 토착 수종 식재, 습지 보전을 통해 환경 회복력을 높이고 있다. 이 리노베이션을 통해 650그루 이상의 토착 나무가 새로 심어지며, 기후 위기에 적응 가능한 조경으로 전환된다. 여기에 조경 설계자 베카 스터지스(Beka Sturges)의 조각과 생태,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재설계는 스톰 킹의 아름다움과 정의의 새로운 균형을 탐색하게 했다. 스톰 킹에서 관람객은 단순한 작품 감상에 그치지 않고 자연과 예술, 자신과의 관계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러한 다층적 경험은 ‘전시 관람’ 이상의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스톰 킹 아트 센터는 ‘작품을 소장·전시하는 공간’이라는 미술관의 전통적인 역할을 넘어, 모두가 편안히 머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생태계와 지역 공동체를 돌보는 문화적 실천의 장으로 점차 확장되고 있다. 관람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공간 재구성과 더불어, 자연환경과의 공존을 지향하는 전시 기획은 미술관이 단지 미술을 ‘보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하는 실험의 장소임을 보여준다.

에치고 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는 3년마다 진행되는 미술제 이외에도 계절마다 기획전이나 퍼포먼스, 워크숍, 이벤트, 지역 행사와 제휴한 축제 등을 개최하고 있다. 하치 & 타지마 정조 미술관(Hachi & Seizo Tajima Picture Book and Nut Museum)은 지역 폐교를 활용한 그림책 미술관으로 2009년 트리엔날레 때 개관했다. 현재까지 그림책 속 장면이 구현된 미술관은 다양한 가족 체험이 진행된다.

가운데 오랜 시간 사용되지 않던 기요쓰 협곡 터널에 설치된 중국인 예술가
마양성의 〈Tunnel of Light〉(2018). 2018년 진행된 계절 미술제에 신설되었다 아래 마틴 퓨리어 《Lookout》 스톰 킹 아트센터 설치 전경 2023
©Martin Puryear 사진: 제프리 젠킨스 제공: 매튜 마크스 갤러리

“누구를 위한 미술관인가”라는 질문 앞에
한국에서 노인 등 다양한 삶의 조건을 고려한 미술관의 포용성 실현은 아직 뚜렷한 제도적 기반이나 장기적 비전 없이, 일부 기관의 실험적 프로그램에 기대고 있는 수준이다. 때문에 물리적 접근성은 점차 개선되고 있으나, 고령자의 감각적·사회적 조건을 고려한 맞춤형 콘텐츠 개발, 문화적 접근성 확보, 그리고 주체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구조적 설계는 여전히 미비하다.

예술이 사회적 불평등과 배제의 문제를 마주할 수 있는 도구라면, 미술관은 이를 실천하는 현장이어야 한다. 단순히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을 넘어, ‘누구든 자기 방식으로 머물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미술관은 전시를 기획하는 방식, 공간을 설계하는 구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태도 전반에서 포용성의 감각을 재정비해야 한다.

결국 오늘날 미술관이 던져야 할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이다. 이는 단지 관람객의 수를 늘리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예술이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며, 공동체와 예술이 공존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 재구성이다. 미술관이 그 질문에 응답하려는 기관으로 변화할 때, 비로소 진정한 ‘모두의 미술관’이 가능해질 것이다.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