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미술관”
8인의 Interviews II
황수진 노재민 기자
Interviews
“모두를 위한 미술관”이라는 말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질까. 많은 기관이 ‘누구나 환대하는 공간’을 지향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현장에는 여전히 수많은 제약과 관성이 작용한다. ‘접근성’과 ‘포용성’이라는 텅 빈 언어에 주석을 달 듯, 그 말들이 실체화된 경험과 실천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월간미술은 문화예술정책관계자, 예술가, 기획자와 실무자 등 서로 다른 위치에서 이 문제를 마주한 8인을 만났다. 실천의 언어로 말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모두의 감각과 관계를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접근성의 필요성이 드러난다. 미술관 안팎의 충돌, 균열, 실천의 사례가 교차하는 이 대화가 ‘모두를 위한’이라는 문구가 공허한 수사가 아닌 실천 가능한 구조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을 찾는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김인경, 김효나
창작그룹 밝은방 공동대표
2018년 설립 이후 발달장애 및 신경다양성 창작자들과 워크숍, 전시, 출판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웹진 이음’ 기획위원 및 필진(2020~2021). 2023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 ‘장애예술 매개자 교육’, 2022 전국 발달장애 청소년 대상 온라인 예술워크숍 기획 및 진행.《열쇠를 주웠다 먼 희망을 얻었다》(탈영역우정국, 2024),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때문에》(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1) 등 기획. 『돋보기 그늘의 여인』(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3), 『무엇: 발달장애 창작자의 시각적 표현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책』(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2022) 등 집필 왼쪽부터 김인경, 김효나 사진: 박홍순
‘밝은방’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와 공간 운영에서 지켜온 철학이 있다면?
김효나 ‘밝은방’이라는 이름은 롤랑 바르트의『밝은 방』(1980)에서 따왔다. 사람들이 발달장애나 정신장애 작가들의 작업을 병이나 장애의 증상으로만 받아들이고 쉽게 소비하거나 대상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작업들 안에는 충분한 예술적 가치와 삶의 이야기, 고유한 목소리가 분명히 존재했다. 이들의 작업을 흔히 ‘어둡고 자폐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관습적인 시선에 질문을 던지면서, 반대로 ‘밝고 창조적인 세계’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김인경 밝은방은 약속된 시간에 모여 각자의 방식대로 그림을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느슨한 창작의 장이다. 이곳의 핵심은 무엇을 완성하는가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시간 자체’를 존중하고 지속하는 것에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 창작자 스스로의 속도, 리듬, 감각에 따라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자유롭게 머무르되,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밝은방은 느슨하지만 다정한 연결의 장이기도 하다.
2021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때문에》 전시를 기획하면서 중점을 둔 지점은 무엇이었는지?
김효나 발달장애나 정신장애 작가들의 작업이 창작의 내용이나 창작 행위의 본질과 상관없이 해석되거나 의미가 부여되거나 신화화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가능한 한 이들의 ‘창작 그 자체’가 충분히 보일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또한 그동안 우리가 만났던 작가들뿐 아니라 새로운 작가들의 작업을 발굴하기 위해서 서울 및 수도권을 비롯해 광주, 보령, 부산, 제주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전시 구성에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 건 작가들의 삶과 작업이 함께 보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접근성’과 ‘포용성’이 상징에 그치지 않도록 하려면, 기획자나 기관이 어떤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김인경 질문과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접근성과 포용성은 어느 특정 영역의 과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이 공유해야 할 근본적 가치이자 구조적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책임을 장애예술에만 과도하게 전가하고 있다. 여전히 ‘장애인 전시’라는 틀 안에 머무는 기획이 반복되고 있으며, 이는 장애예술을 타자화된 특수 영역으로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신체와 감각, 삶의 조건을 지닌 창작자들이 동등한 조건에서 작품을 나누며 감상할 수 있는 공동의 장이 필요하다.
제도화된 장애예술 지원이 창작의 다양성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인경 지원은 여전히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지역에서는 관련 단체나 기회를 접할 경로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제도는 경쟁력을 중심으로 서열화된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지원이 절실한 이들이 오히려 배제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가족이 경제적인 뒷받침을 할 수 없어 예술 활동을 중단한 창작자들, 지역 복지관 등에서 비공식적으로 창작을 이어가고 있으나 제도권 바깥에 머물러 있는 잠재 예술가들은 제도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역 단위의 창작 거점을 조성하고, 장기적이며 관계 중심적인 공공 지원 프로그램이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단발성 공모사업을 넘어, 생활 속에서 예술이 자연스럽게 지속될 수 있는 생태계 기반 마련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번 특집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김효나 밝은방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너무 작고 연약하여 쉽게 버려지기도 하는 이들의 작업물을 예술로서 존중하고 사회에 소개하는 일이다. 흔히 ‘쓸모없는 낙서’ 또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로 여겨져 방치되거나 부정당하는 이 작업물 속에 창작자의 엄청난 몰두와 노력, 그리고 시간, 즉 창작자의 삶이 들어있다. 밝은방이 하는 일은 결국 그 허름함 속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알아보는 일이고, 그런 시선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황수진 기자
서수연
접근성 콘텐츠 기획자, 국내 1호 음성해설 작가
영국 뉴캐슬대 미디어와 저널리즘 석사, 한국외대 영어번역학 박사.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25), 국립중앙박물관 감각전시실 ‘공간_사이’(2025), ‘시선 너머의 이야기’(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025),《여기 닿은 노래》(아르코미술관, 2024),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2024),《손길 모양》(2023), 《어둠 속의 예언자》(토탈미술관, 2023),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작은 방주》(국립현대미술관, 2022) 참여해 음성해설, 자막해설, 쉬운글, 쉬운 음성해설 등 접근성 콘텐츠 기획·제작 사진: 박홍순
시각예술에서의 음성해설은 어떤 특징이 있나?
한국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해설은 ‘화면해설’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화면’이라는 단어는 공연이나 미술처럼 화면 개념이 없는 예술 장르에는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줄곧 ‘음성해설’이라는 용어를 권해왔다.
시각예술에는 영상도 있지만 ‘정지된 이미지’를 다룬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 안에는 비가시적인 상징, 관람객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정보, 드로잉의 질감이나 유화의 두께 같은 감각적 요소들이 층위별로 존재한다. 나는 이 작업을 ‘시각장애인 관람자에게 시선을 빌려주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동시에 ‘감각을 재구성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음성해설의 핵심 가치와 역할은 무엇인가?
음성해설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작업이 아니다. 특히 시각예술의 경우, 정보만으로는 그 작품이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에 도달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음성해설을 ‘감각의 번역’이라 표현한다. 창작의 또 다른 층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한 김성환 전시 연계 교육 프로그램 ‘시선 너머의 이야기’에서도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함께 대화를 나누며 작품을 감상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하나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질문을 던지고, 감각을 다시 구성하고, 관람자의 상상과 해석을 열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결국 작품을 통해 각자의 경험을 끌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작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감각적 접근성’을 구현할 때 가장 고려해야 할 점은?
감각적 접근성은 작품이 담고 있는 중심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평등’이 아니라 ‘감각의 균형’이라고 생각한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각자의 상상과 기억까지 총동원해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미술관의 접근성을 상설화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상설적 접근성을 구축하고자 한다면 시스템 차원에서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누가 오더라도 기본적인 내용을 숙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성해설을 포함해서 접근성 기획을 처음부터 함께 시작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전문가를 실질적인 동료로 받아들이고 기획의 한 축으로 삼는 것, 그게 바로 지속 가능성의 출발점이라고 본다.
미술관의 포용성과 관련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포용성’이라는 개념은 종종 ‘배려’와 연결되어 이야기된다. 하지만 진정 필요한 건 구조의 설계다. 미술관이 포용성을 갖추려면 그 가능성을 열어주는 시스템과 매뉴얼이 필요하다. 또 하나 음성해설은 단지 시각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놓친 부분을 다시 보게 해주고, 질문을 던지며 감각을 일깨우고,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예술을 감상하게 해주는 장치다. 이 작업은 결국 모두를 위한 것이다.
황수진 기자
백기영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전시장운영부 총괄
(사)미술인회의 초대 사무처장, 광주 의재창작스튜디오 및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디렉터, 경기창작센터 학예팀장,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 경기문화재단 수석학예사,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등 역임. 이슈토론 ‘장애인 문화예술 발전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다’(2014), 장애예술가 창작공간 잠실창작스튜디오 10주년 기념행사 ‘잠실스웨–그’(2017), ‘장애예술인 프로그램 개발연구’(2018) 독일 파트 연구자 등 참여 사진:박홍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에 대해 소개해달라.
장문원은 2015년에 설립되어 장애인 문화예술 생태계를 조성하고 장애예술인의 창의적 발상과 성장을 위한 플랫폼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거 장애인 문화예술 지원이 소극적 보완 차원이었다면, 장문원의 설립을 계기로 장애예술가들이 적극적으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예술적 발언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다. 2020년 6월에는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고, 장애예술인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조사·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 기본계획」(2022~2026)이 수립됐다. 이를 통해 장애예술인의 창작 지원, 자립 기반 마련, 접근성 확대, 전문인력 양성 등 다양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장문원이 진행하는 주요 활동은?
창제작 및 향유 지원사업, 문화예술 교육 및 인력 양성사업, 장애예술인의 접근성 및 활동기반 강화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모두예술극장 및 모두미술공간을 운영하며, 장애예술 대표 단체 지원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장애예술 이해 증진과 접근성 확대를 위해 ‘웹진 이음’에 관련 내용을 아카이브하고 있다.
장문원의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인가?
장애예술의 저변을 확대하고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문화 기반 시설의 접근성 확대를 위한 구체적 활동과 접근성 매뉴얼 마련, 전문인력 양성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접근성 매니저의 전문인력 도입과 법적·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힘쓰고 있다.
모두미술공간에 대해 말해달라.
모두예술극장이 장애예술 표준 공연장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미술분야에도 유사한 표준 전시장이 필요하다는 인식과 공감대가 형성돼 모두미술공간을 설립했다. 장애 관람객을 위한 다양한 특수 장비와 서비스를 갖추어 기존 미술관이 가지지 못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현재 접근성 자체가 전시의 소재가 되는 과도기적 상황을 겪고 있다. 앞으로는 접근성이 보이지 않는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제공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장애예술 전시를 기획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장애예술을 단순히 작품의 미술적 가치만으로 평가하거나 위계를 설정하기보다는, 장애예술가들이 가진 고유한 예술적 창작 환경과 창작 동기를 존중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기획이 중요하다. 장애예술가들이 창작 행위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찾고, 새로운 창작 에너지를 발굴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초대하고 지원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 장애와 비장애의 협력 과정에서 장애가 쉽게 대상화되는 문제가 있다. 장애예술의 미학적 속성을 강조하는 리서치 기반의 접근이 때로는 장애 당사자들에게 잘 이해되지 않은 채 흥미의 대상으로만 여겨질 수 있다. 장애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탐구 대상으로 전락하는 상황은 윤리적 충돌을 야기한다. 관람객의 시선에서 장애인이 대상화되는 사례도 있어,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며 아직 해결되지 않은 중요한 쟁점이다.
노재민 기자
박신의
경희대 고황명예교수
파리4대학 미술사학 석사 및 전문박사(DEA), 인하대 문화경영학 박사.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1998), 홍조근정훈장 수훈(2006). 2014년부터 문화예술에 대한 포용적 관점을 적용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포용적 박물관·미술관을 비롯한 포용적 예술을 통한 장애예술 연구, 2020년 이후 장애인 문화예술지원사업 개선 및 예술활동 참여 확대 등의 장애예술정책 연구를 진행해 왔다. 사진:박홍순
박물관·미술관의 사회적 포용에 주목한 계기는?
언제나 박물관·미술관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가져왔고, 특히 “왜 사람들은 박물관·미술관에 오지 않는가?”에 문제의식을 집중했다. 그런 가운데 지구상의 많은 사회 문제가 단순한 빈곤 문제가 아닌 ‘사회적 배제’로 봐야 한다는 UN의 문헌을 보고, 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영국 노동당 집권 이후 시행된 포용정책에 따른 포용적 박물관 개념을 알게 되었고, 이를 관람객 개발의 어려움에 대한 근본 요인으로 해석하면서 공부하게 되었다.
박물관·미술관의 배제 논리는 어떻게 드러나는지?
박물관·미술관이 모두의 공간임에도 그 자체로 누군가를 배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국립중앙박물관은 무료관람이다. 하지만 정작 주 관람객은 입장료 지불 능력이 있는 중산층에 한정된다. 같은 세금을 내지만 일하느라 박물관에 올 수 없는 노동자에게는 불평등으로 작용한다. 또 문맹이나 장애인, 이주민이나 난민, 성소수자 등은 어떨까? 그들은 환영받는 존재일까? 박물관·미술관 소장품이나 전시회가 주류사회에 속한 사람이나 문화적 소양을 갖춘 엘리트층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미래파 화가 페르낭 레제가 노동자도 박물관을 방문할 수 있도록 야간 개장을 주장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이다.
포용적 관점이 포용적 예술(inclusive arts)로 지칭되는 장애예술로 전개된 계기는?
개인적으로 2018년 장문원의 연구과제를 맡으면서 영국의 포용정책에 따른 장애예술정책을 알게 되었다. 이 역시 우리가 알게 모르게 비장애예술인 중심의 예술을 전제하면서 장애예술을 구분하고 배제해 왔다는 논리라 하겠다. 장애예술은 장애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고, 그 결과 비장애예술과는 다른 빈 부분을 채워주는, 따라서 예술을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임을 깨닫는 계기였다. 우리가 비장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협소한 것인지를 놀라워해야 한다.
관련하여 한국의 포용적 문화정책은 어떠한가?
일단 법·제도적 차원에서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지원에 관한 법률」(2020)이 제정된 이후 ‘제1차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 진흥계획’(2022~2026)에 따른 창작 및 정책기반 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장애예술인 창작물 우선구매 제도’나 ‘전용극장(모두예술극장)’ 건립 등 유통 과정의 지원도 활성화에 보탬이 될 것이다. 다만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다 보니, 기존 예술정책과의 연계성이나 통합성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사실 장애예술은 본래적으로 비장애예술인과의 협업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점에서 장애예술 편에서 포용적 예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장애예술정책이 기존 예술정책을 온전하게 하는 지점이라는 시각을 두고 정책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미술관의 포용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미술관의 포용성은 단순히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미술관의 정체성과 미션 및 비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일이다. 일례로 구겐하임 미술관은 ‘다양성과 형평성, 접근성, 포용성 실행계획’(DEAI, 2020~2022)을 수립하고, 흑인과 원주민, 유색인종의 관점을 수용하면서 이를 전시와 소장품, 교육, 조직운영 등 기관 전반에 녹여내는 실천을 보였다. 스웨덴 스톡홀름 미술관(Moderna Museet) 역시 ‘미래를 위한 미술관’(2020)을 통해 포용적 가치를 실천한다는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다른 한편 세계 최초로 ‘사회적 처방’으로 지정받은 몬트리올미술관도 좋은 사례가 된다. 현대인이 겪는 정신적 문제, 고립, 노인과 장애인 대상의 예술 치유를 교육프로그램으로 전면화하고 있다.
미술관의 포용성을 위한 개선 방향은?
무엇보다도 물리적 접근성 향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신축 미술관의 경우, 바로 건축 설계 단계부터 이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전시 주제 범위에서 배제된 사람의 이야기라는 맥락에서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디아스포라나 LGBTQ , 갖가지 사회 갈등과 이슈에 대한 예술적 성찰을 담는 주제 등에 관한 탐구와 작가 발굴이 병행되면 좋겠다. 예술가의 다양성 또한 중요하다. 여기서의 다양성은 인종, 국적, 성 정체성, 장애 여부 등이 해당한다. 우리가 포용적 사고를 하는 것은 배제된 자의 시선을 받아들이는 일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을 온전히 바라보기 위함이고, 문화 충돌로 인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문화 다양성 가치를 흡수하는 일이고, 궁극적으로 창의성을 고양하는 일이라고 보기를 희망한다.
노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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