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제도, 검열: 서울시립미술관 검열 사태 토론회’에 가다
8.22 17:00~19:30
인권재단 사람 사람홀
강재영 기자
Sight&Issue

‘미술, 제도, 검열: 서울시립미술관 검열 사태 토론회’ 전경 사진: 박홍순

1부 토론 참여자들 왼쪽부터 남인우, 안윤기, 남웅, 이진실 사진: 박홍순

2부 토론 참여자들 왼쪽부터 이연숙, 권은비, 김재환, 한솔, 연혜원, 문상훈
‘미술, 제도, 검열: 서울시립미술관 검열 사태 토론회’에 가다
강재영 기자
‘미술, 제도, 검열: 서울시립미술관 검열 사태 토론회’는 현대 사회의 가치 체계 속에서 개인이 마주하는 복잡한 검열의 양상을 짚고, 이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제도와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 나아가 자기검열에 이르기까지 내면화되고 미시적으로 작동하는 검열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월간미술은 이번 검열 사태의 경과와 함께, 토론회 현장의 분위기와 주요 쟁점을 전한다.
검열 논란의 경과
지난 4월 30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에 게재된 남웅 미술비평가의 비평문 「급진적 예술 실천을 위한 기억의 훈련들」과 그에 덧붙인 입장문「검열, 수탈, 무례」는 계엄령 선포와 대통령 탄핵 등 어지러운 국내 정세 속에서 또 한 번 미술계를 뒤흔들었다.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기획전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3.6~7.27 ) 도록에 실릴 예정이던 원고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게재 불가 통보를 받았다.
남웅은 “급진적인 아카이브 실천이라는 전시 방향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중립을 운운하며 비평의 자리를 박탈하는 미술관의 판단은 ‘검열’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술관의 검열은 급진적 실천을 화이트큐브 안에 가두기 위해 취사선택하고 살균하며, 미처 착즙되지 못한 것을 배제하는 수탈”이라고 비판했다.
사건이 알려지자 SNS를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확산됐고, 5월 15일과 20일에는 프레시안과 한겨레가 이를 ‘검열’ 논란으로 보도했다. 6월 1일에는 SeMA하나평론상 역대 수상자들이 「비평과 검열은 함께 갈 수 없다」 제하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자유로운 비평문화의 동력이었던 SeMA하나평론상 수상자에게 벌어진, 더욱이 행동주의적 아카이브의 역할을 주제 삼은 전시에서 벌어진 이 사태가 기관이 기관 스스로를 부정하고 배반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당사자에 대한 사과와 책임 있는 해명, 재발 방지 약속 등을 요구했다.
미술비평가들의 입장이 나온 지 19일 후,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에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전시도록 원고 수록 관련 입장문’이 게재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입장문은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해당 사안을 ‘검열’이 아닌 ‘소통 오류’로 축소한다는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6월 20일 에는 ‘검열에 반대하는 예술인 연대’(이하 예술인 연대)가 발족했다. 6월 28일 전시 참여 작가 이무기와 예술인 연대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검열에 저항한다”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직접행동을 진행했다. 7월 28일에는 「검열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 모욕을 멈춰라!」라는 입장문을 발표하며 대응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800명에 육박하는 미술인들이 연서명에 동참하며 서울시립미술관의 검열 책임 인정을 촉구하고 있지만, 미술관 측은 “앞으로 추가적인 입장 발표 계획은 없으며 계속해서 당사자 및 미술계와 소통을 이어나가겠다”는 원론적인 반응을 되풀이하고 있다.

행성인 웹진에 게시된 남웅의 글과 입장문 
지난 6월 28일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앞에서 예술인 연대 주최로 열린
‘우리는 끊임없이 검열에 저항한다’ 직접행동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제공: 검열에 반대하는 예술인 연대
제도 안팎의 검열 단상
예술인 연대가 주최한 이번 토론회는 서울시립미술관의 검열 사태를 단일 사건으로 국한하지 않고, 이를 공동의 기억으로 남기고자 기획되었다. 더불어 정권과 무관하게 제도와 행정이 예술에 가해 온 다양한 검열 사례들을 연결해 비판적으로 되짚어보자는 취지도 담겨 있었다. 1부에서는 비평가 이진실의 사회로, 본 사건의 피해 당사자인 남웅, 2024년 대구문화 예술회관 청년미술작가전 전시장 폐쇄 사건의 안윤기, 2013년 국립극단〈구름〉 대본 검열 사건의 남인우 연출가 등 세 인물이 자신이 겪은 검열 사례와 대응 경험을 공유했다.
남웅은 “검열은 친절과 묵인 속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며, 침묵으로 일관하는 미술관의 태도가 문제제기와 비판을 지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진실은 소수자들이 공공 영역에서 법적 절차나 민원으로 괴롭힘을 당한 경험을 언급하며, 이번 사안은 제도 자체의 책임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윤기의 사례는 제도가 관료주의적으로 예술을 다루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보여주었다. 그는 2024년 대구문예회관 선정 청년작가로 작품 제작비와 전시 공간을 제공받아 전시 준비를 마쳤으나, 작품에 등장하는 노중기 당시 기관장과 홍준표 당시 대구시장의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작품 교체를 요구받았다. 이를 거부하자 주최 측은 전시장을 폐쇄하고 작가명을 삭제했다. 그는 작품에 함께한 연혜원 비평가와 공동으로 전시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법원은 이를 단순 채권 채무 관계로 보고 기각했고, 예술인 신문고 심의에서도 같은 논리로 기각되었다. 현재 소송비용과 지원금 반환 청구가 이어지며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작가는 미술비평가 이여로의 글을 인용하며, 대한민국의 예술기관이 예술가와의 관계를 채권-채무로 설정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 질문했다. 그 바깥으로 밀려난 예술의 자율성이나 관객의 관람권 등을 어떻게 설정하고 설득해야 하는지가 과제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한편 남인우는, 당시 정권을 풍자하는 내용의 대본 검열을 수행했던 국립극단 실무자가 7년이 지나 검열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를 구하자, 이를 바탕으로 국가와 국립극단에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해 2심까지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남인우는 많은 배우와 스태프를 책임진 극단 운영자로서 검열이 두려웠다면서도 ‘왜 수치와 불안이 나의 것이어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는 검열이 철저한 관료주의 시스템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며 자신의 사례를 바탕으로 예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인정하는 법적 판단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2부는 정은영 작가가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결성된 단체 ‘블랙리스트 이후’와 문화연대의 관련 활동 소개로 시작됐다. 작가는 예술에 대한 검열이 제도 안팎에서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조망했다. 특기할 점은 제도의 검열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좌우 정권을 막론하고 계속해서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정은영은 전주여성영화제에서의 사례 등을 언급하며 검열이 제도 밖에서나 동료 관계에서도 발생하는 등 조건과 맥락이 매우 복잡해지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우며, 제도를 내면화하며 발생하는 자기검열도 너무 많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후 자유토론에는 이번 사태에 연대 성명을 낸 전시 참여작가 문상훈, 한솔, 권은비와 안윤기의 연대자였던 연혜원 비평가, 남웅의 연대자였던 이연숙 비평가, 연대 성명을 낸 김재환 한국큐레이터협회 대표가 참여해 각자의 입장에서 사태를 돌아보고 제도적 검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논의했다. 전시에 참여하면서도 부대행사를 계속 운영해야 했던 딜레마, 큐레이터의 심리적 압박에 대한 우려, 제도 개입이 자기 및 동료검열로 내면화하는 데 대한 문제의식, 큐레이터의 자율성을 법제화할 필요성, 서로 더욱 용기를 내어 사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토론에서 김정현 미술비평가가 말했듯, 예술가와 비평가의 요구에 과연 서울시립미술관이 책임있게 응답할지 지금으로서는 불투명하다. 분명한 건, 지금의 상황을 나아지게 하려 고민하고 노력하고 움직이는 주체로 보이는 것은 예술가와 비평가뿐이라는 점이다. 남인우의 발언처럼 수치는 이들의 것이 아니다. 또한, 책임도 이들의 몫이 아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입장문에서 밝힌 것처럼 “한국 미술계 안팎의 신뢰 회복 및 공동의 가치 형성“을 고민한다면 예술인의 요구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고 이번 사태에 또 다른 주체로서 책임 있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더하여 검열이라는 문제가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주제 아래 반복적으로 주체와 형태를 바꾸어 등장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이러한 담론 고도화를 위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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