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AND-COMING ARTIST
박선호
1993년 태어났다. 한예종 조형예술과 예술사과정, 서울대 서양화과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개인전 《하드카피리스트》(킵인터치 서울, 2021)와 《미스터리 에디토리얼》 (일현미술관 을지로 스페이스, 2018)을 열었으며, 단체전 《파라노말 오페라》(대안공간 루프, 2022), 《날것》(인천아트플랫폼, 2022),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피아》 (대림미술관, 2020), 《두산아트랩 2019: Part 2》(두산갤러리, 2019) 등에 참여했다. 2022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로 활동 중이다.
미시사에서 거시사로 향하여
노재민 기자
2020년부터 박선호는 어머니로부터 출발한 영상 작업을 발표해왔다. 〈결혼이야기: 호킹〉 (2020), 〈AB Side〉(2021), 〈해석의 마음〉 (2022) 등이 그러한 작업에 해당한다. 〈결혼이야기: 호킹〉은 당시 28세였던 작가가 28세에 결혼한 어머니에게서 자주 들었던 이야기를 낭독한 작업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영상 작업에 어머니가 학창시절을 보낸 대구의 사투리를 사용해 음성을 녹음하였다. 〈해석의 마음〉은 작가의 어머니가 남긴 드로잉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여기에서는 〈AB Side〉를 주목하려 한다.
작가는 1세대 프로그래머인 어머니가 일을 하던 1980년대에 발행된 신문과 광고를 리서치했다. 그리고 동묘에서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휴대용 녹음기를 구입하여 테이프의 양면에 각각 다른 내용을 녹음했다. 작가는 〈AB Side〉에서 녹음을 완료한 휴대용 녹음기를 직접 손으로 작동시킨다. 작품은 원테이크로 찍은 두 편의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끔 확대되기만 할 뿐 컷이나 특수 효과 없이 최소한의 편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우민아트센터에서 〈AB Side〉를 모니터를 통해 전시한 후, 〈고고학 테이블〉 (2022)을 제작, 그리고 테이블에 작은 사이즈의 아이패드를 설치하여 픽셀카운팅에서 열린 전시에 선보였다. 〈고고학 테이블〉은 표면이 불투명한 아크릴판이 켜켜이 쌓인 것으로 1980년대의 신문 자료들은 붉은색으로 직접 염색한 테이블 속에 겹겹이 배치되었지만 그 속의 글자들은 작가의 의도적인 표면 처리로 인해 자세하게 읽을 수 없다.
테이프 한쪽에는 작가의 어머니가 근무하던 금성사에서 1985년과 1986년에 배포한 광고 문구가 흘러나온다. “첨단 기술이 펼쳐가는 낙원 테크노피아의 세계입니다. … 모든 사람이 더욱더 편리하게 더욱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 이것이 우리 모두의 꿈입니다. 금성이 추구하는 미래입니다. … 금성은 풍요로운 21세기 테크노피아의 세계를 펼쳐가고 있습니다.” 이 광고 슬로건에서 내거는 테크노피아라는 단어는 테크놀로지와 유토피아의 합성어로, 인간 세상이 기술로 인해 앞으로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당시의 낙관적인 전망을 엿볼 수 있다.
테이프의 반대쪽에는 희망찬 광고에 담기지 않은 당대 전문직 여성들의 증언이 작가의 음성으로 녹음되었다. 증언의 내용은 이상적인 삶을 담아낸 광고와는 사뭇 다른 결을 지니고 있는데, 직업을 가진 여성들의 삶이 마냥 여유롭지만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21개 기업체를 대상으로 여성 프로그래머 수요와 제반조건을 조사한 결과 57%가 결혼을 퇴직 조건으로 하고 있다. …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 프로그래머의 위치는 비공개 채용, 결혼, 퇴직 제고 등 고용 기회나 근로 조건 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여성개발원의 보고는 1985년 3월 18일자 『매일경제』에서 발췌한 것이며, “가정과 직장의 두 가지 일을 하다 보니 밤 12시 이전에 자본 일이 없다”는 주부 프로그래머의 증언은 1984년 9월 26일 『동아일보』에서 인용한 것이다. 작가가 옮겨낸 신문 기사에서는 당시 가정과 육아를 병행하던 여성의 현실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1980년대 가전제품 광고 속에서 두드러지게 강조되었던 가정을 잘 돌보는 바람직한 아내이자 어머니의 역할에 국한되지 않은 모습이다.
비단 작가의 어머니에 한한 이야기일까. 혹은 1980년대 여성 프로그래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AB Side〉를 구성하는 내러티브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살아낸 많은 여성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여성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이야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었던 이야기,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개인의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는 이야기, 과거에도 있었고 어쩌면 오늘날에도 지속되는 이야기. 박선호의 작업들은 미시사에서 거시사로 향한다. 거시사로 향해가는 미시사를 응원하며, 그 과정을 엮어내는 여정 속 박선호의 작업도 응원한다.노재민 기자
- 〈AB Side〉(사진 뒤) 싱글 채널 비디오, UHD 8분 5초 2021
〈해석의 마음〉(사진 앞) 싱글 채널 비디오, UHD 12분 12초 2022 우민아트센터 설치 전경
사진: 스튜디오 그라피토, 우민아트센터 - 〈고고학 테이블〉 아크릴, 아스텔, OHP 필름 100×45×89cm 2022 사진: 전명은
- 〈고고학 테이블〉 상단에 설치된 〈AB Side〉 싱글 채널 비디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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