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그림 Grim Park

박그림 : 불화에 투사된 정체성의 회화

ARTIST FOCUS

박그림/ 1987년 출생인 작가는 오랫동안 연마해온 불화 제작 방식으로 불교의 종교적 도상과 동시대 퀴어 서사를 담은 내용을 결합하는 시도를 통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어왔다. 동국대 불교미술과 졸업 후 갤러리 띠오(2024), 스튜디오 콘크리트(2022), 유아트스페이스(2021 )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제22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2022),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일민미술관, 2022), 《띠그림전 虎, 호랑이, Tiger》(이천시립월전미술관, 2022), 《BONY》(뮤지엄헤드, 2019)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제22회 송은미술대상 본선, 2018 엡솔루트보드카 아티스트 어워즈 위너에 선정됐다.

〈아미(我謎)〉(부분) 비단에 담채 120 × 40cm 2024
작품이미지 제공 : 작가

박그림: 불화에 투사된 정체성의 회화

유진상 | 계원예대 교수

박그림의 작업은 세 가지 층위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그가 한국화 그리고 불화의 전통 속에서 기법과 소재들을 길어내는 작가라는 점이고, 두 번째는 그의 그림이 구축하는 세계관이 불교적 가르침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형이상학적 관념들을 조작하고 있다는 점이며, 세 번째는 그가 게이로서 동성애와 게이 커뮤니티를 작업의 맥락으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전형적인 ‘스트레이트’로서 필자가 세 번째 층위를 분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미술비평의 맥락에서 박그림의 작품을 거론할 때,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객관적 요소로서 그의 성적 정체성을 (조심스럽게 ) 언급할 수는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필자의 관점에서 보아, 그의 작품들이 지닌 독특한 형식적 완결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회화적 중요성을 인정받을 만하다.

박그림은 동국대 불교미술과를 졸업했지만, 그 이전에 스무살 때부터 직접 불화를 그리는 전문가에게서 그림을 사사하였다. 대학은 공부를 더 하라는 스승의 조언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현장의 전문가에게 배웠기 때문인지, 박그림의 채색화는 그 정교함과 섬세함에 있어 탁월한 수준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윤곽선의 완벽함과 채색의 무결성은 그의 그림을 다른 많은 사례와 구분 짓는다.

박그림의 작품 중 초기 연작인〈화랑도〉에는 아름다운 게이들이 마치 신화 속의 등장인물들처럼 이상화되어 있다. 작가는 이것을 그들에 대한 호감과 동경, 그리고 그들이 가감 없이 드러내는 나르시시즘과 에로티시즘에대한 것으로 설명한다. 작가의 관심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 이 작품들에서는 인물들의 아름다움 못지않게 전통적인 채색기법을 통해 대상을 선망과 투사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욕망이 느껴진다.〈Dirty? Beauty!?〉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동성애적 BDSM(가학· 피학성애)이라는 필터를 통해 성적 희생과 관능을 표출하는 대상을 묘사하면서, 극도의 양가적 감정을 전달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2020년작〈Bel Ami〉는 게이들의 집단적 성행위를 순수하게 ‘퀴어’적인 차원에서 묘사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보살이 쓰는 면사포인 ‘사라’를 이 장면 안에서 일종의 ‘가리개’ 용도로 그려 넣고 있는 점이다. 불교적 모티브와 게이 포르노의 직설적인 묘사가 예외적일만큼 강하게 다루어진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불화를 소재로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중요한 측면을 이루고 있다.

〈벨 아미_입구〉 비단에 담채 지름 30cm 2021

〈벨 아미〉비단에 담채 130 × 130cm 2020

〈심호도_간택 (尋虎圖_柬擇)〉비단에 담채 70 × 92cm 2018

박그림의 그림을 읽어나갈 때,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성적 정체성과 불교적 세계관의 혼재이다. 박그림이기 때문에 교차했을 이 두 개의 주제는 서로 양립의 필연성이 모호해 보이는 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슈들을 파생시킨다. 박그림에게 이 두 가지 요소는 어느 것이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게이로서의 자아가 먼저 형성되었겠지만, 매우 이른 시기에 보여준 그림에 대한 재능과 대학을 가기도 전에 먼저 불화 전문가를 찾아가 전통적인 기법을 사사했던 작가의 이력을 감안하면, 동성애와 불화는 작가의 필연적이면서도 모순적인, 숙명적인 양면성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특히 비단의 앞뒤에 담채와 배채(背彩)를 쌓아 더할 수 없이 깊고 화려한 색채를 낸 뒤 매우 정교하고 일정한 철선묘(鐵線描)로이차원적 환영을 만들어내는 고려 불화기법의 아름다움은 그의 작품을 당대의 다른 작가들과 구분 짓는 특징이기도 하다. 특히 게이 커뮤니티의 셀럽 모델들을 인물화로 다루던 이전의 화풍에서 나아가, 2018년의〈심호도_간택〉에서 시작하여 2019년의〈심호도_낙류〉로 이어지는 보살(菩薩)들과 호랑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들의 등장은 그의 그림에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부여하고 있다. 〈심호도_간택〉은 작가의 선망 대상이던 게이 모델들이 보살로 분(扮)하여 호랑이로 상징된 작가의 자아를 자신들의 일부로서 간택(柬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간택의 ‘간(柬)’이 눈을 가린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만큼, 보살 중 한 명은 눈가리개를 하고 눈을 감고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무엇보다도 이 불화 형식의 그림에 독특함을 부여하는 것은 하나하나 정교하게 묘사한 수많은 전통적이고 상징적인 문양들이다. 물론 호랑이를 감싸고 있는 반투명의 스카프가 무지갯빛이라거나 보살들의 옷을 장식한 꽃무늬나 깃털 장식이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러하듯 동성애적 내포를 지니고 있다든가 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인지한다면, 화려한 색채의 장식과 패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살들의 후광에서 보듯 풍부한 금채와 은채의 화려함은 이후 나타나게 될 박그림 회화의 압도적인 시각적, 극적 존재감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화려함은 체계적으로 배치된 도상학적 소재 및 층위들을 각 작품의 상호지시적인 텍스트로 작동시키면서 그림을 읽어나가는 관객들에게 해석의 경로를 탄탄하게 환류(還流)시킨다. 이러한 상호지시적 환류 체계를 우리는 ‘작품세계’ 혹은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박그림은 자신이 ‘세계관’을 상당히 성공적으로 구축해 나가고 있으며, 이것이 동성애라는 주제에 국한된 것이 아닌, 모든 주체가 추구하는 자아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도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확장된 보편성’을 획득할 여지가 보이는 것이다.

박그림의 그림을 읽어나갈 때,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성적 정체성과 불교적 세계관의
혼재이다. 박그림이기 때문에 교차했을
이 두 개의 주제는 서로 양립의 필연성이
모호해 보이는 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슈들을
파생시킨다.

 〈심호도_낙류(尋虎圖_樂流)〉비단에 담채 290 × 145cm (테두리비단 제외) 2019

실제로 박그림의 작업은 모두 동성애와 관련된 것들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 주제의 특정함으로 인해 자칫 다른(예컨대, 이성애자) 관객들의 시선으로부터 상호 배척이 일어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경우들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박그림의 작품은 그러한 주제의 범위를 넘어서는 측면들을 지니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측면은 바로 작품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선불교의 형이상학적 서사다. 그중에서 가장 심도 있게 다루어진 것이 ‘십우도(十牛圖)’ 혹은 ‘심우도(尋牛圖)’를 다룬 것이다. 심우도는 어린 목동 소년이 소를 찾아 나섰다가, 찾은 소를 몰고 가면서 자아와 대상의 차이를 뛰어넘는 초극을 깨우치고 궁극적으로 그것을 설파하기 위해 세속으로 나아가는 모습의 열 가지 단계를 비유적으로 그린 선화(禪畵)다.1 박그림은 자신의 세계관에서 소 대신 호랑이를 그 자리에 배치한다. 즉 심호도(尋虎圖)라는 화제를 통해 ‘호랑이’를 찾아나서는 여정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에게서 두드러지는 호랑이의 특징은 그것의 사나운 표정과 이빨, 성기를 상징하는 발과 발톱들, 꼬리를 포함한다. 호랑이의 난폭함과 잔인함, 욕정과 힘,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작가가 스스로를 호랑이로서 정체화하고, 아름다운 남성 보살들 사이에서 보살핌과 사랑을 받는,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아직 어린 호랑이로서 나약하고 귀여운, 위험하지 않은 존재로서 선망의 대상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 것도 매우 양가적이라 하겠다.

갤러리 띠오에서 열리는 전시《사사(四四)》에서 작가는 십우도의 여덟 번째 단계인 ‘인우구망(人牛俱忘)’ 도상을 전시의 한가운데에 배치하였다. 인우구망은 “소 다음에 자기 자신도 잊어버린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 텅 빈 원을 그리게 된다. 객관이었던 소를 잊었으면 주관인 동자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객 분리 이전의 상태를 상징한 것으로, 이 경지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완전한 깨달음이라고 일컫게 된다.”2 이를 통해 이번 전시에 소개된 각기 네 개의 호로 나뉜 원을 그린 ‘회(回)’가 ‘인우구망’의 요체를 나타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작가의 스승은 그에게 ‘정월(井月)’이라는 호를 내렸다. 우물의 달이라는 의미는 마치 작은 우물에 반사된 창공의 달을 떠올린다. 작가는 우물 정(井)을 무한히 굴러가는 바퀴 혹은 불교의 만(卍)으로 바꾸어 그것에 바퀴, 즉 ‘륜(輪)’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네 개의 호로 이루어진 원을 그리고 그것에 ‘회(回)’라는 제목을 붙였다. ‘윤회(輪回, transmigration 혹은 metempsychosis)’는 시공간적 사건들의 무한한 반복과 교차를 가리키는 것으로, 불교적 우주의 원형적 사상이다. 무엇이 박그림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과 이러한 세계관을 연관하도록 하는가.

독아론(獨我論, solipsism)은 세계의 중심, 소실점을 자아로 상정하는 것이다. 자칫 소아병 정도로 치부될 수 있는 이러한 감각은 그럼에도 자아를 지각하는 모든 존재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독아론의 대표적인 작가는 마르셀 뒤샹이다. ‘신부는 나만 사랑해(La mariée m’aime)’라는 의미로 읽히는 ‘자신의 신부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심지어 (La mariée mise à nue par ses célibataires, même)’는 독아론적 사유의 대표적인 선언이다. 박그림이 퀴어 정체성에 대해 논하면서 나르시시즘과 자기혐오의 이중성에 대해 언급할 때, 그리고 끝없이 자신의 아바타로서 형상화된 호랑이의 탄생과 성장을 묘사할 때, 여기서 독특한 독아론의 변주를 보게 된다. 우주는 나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다. 나의 소멸은 우주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다. 수동적 능동형의 세계 안에서 작가가 관조하는 것은 초월적 서사로 확장되는 자아와 그것의 역사다. 심지어 이 초월적 서사 안에서 작가의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이자 막달레나 마리아이고 관음보살이자 모든 업보를 끊어내는 지장보살처럼 자애로운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심호도_춘수〉(2022 )는 르네상스 회화의 3부작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그의 그림들 가운데서도 매우 드문, 여성들이 주제로 다루어진 그림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다른 나이대의 어머니를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고, 작가의 누이들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세 명 다 어머니를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해석하는 편이 어떨까 한다. 왜냐하면, 왼쪽의 젊은 여성이 안고 있는 어린 호랑이와 오른쪽의 좀 더 성숙한 여성에게 기대어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호랑이 소년, 그리고 가운데의 금빛 후광을 발산하면서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나이든 여성과 그녀에게 안겨 있는 벌거벗은 성인 남성의 모습이 일견 시간적 흐름과 이야기의 전개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250×340cm의 이 대작은 전형적인 ‘피에타(Pieta)’의 구도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서사의 전개에서도 작가의 자아와 그것의 성장이 기독교적 주체의 초월적 승화에 필적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엿보이는 어머니에 대한 박그림의 놀라운 감정적 투사는 ‘밝은 방’에서 역시 동성연애자였던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토로했던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애착을 떠올린다. 구원과 아가페적 서사를 자신의 숙명적 정체성과 중첩시킨 이 작품은 박그림의 작품을 새로운 차원에서 조명하는 비평적 계기를 제공한다. ‘인우구망’은 자아에 대한 독아론적 성찰과 자아의 소멸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 끝없는 번뇌와 방황으로부터 끝없이 이어지는 숙명적 정체성에 대한 양가적 감정, 세계와 자신의 관계를 어떻게 정치할 것인가에 대한 풀리지 않는 질문들, 이 모든 것의 맨 아래에 ‘인우구망’에 이르고자 하는 염원이 있는 것이다.


1 12세기경 중국 북송의 승려 곽암의 것과 보명의 것 두 가지가 전해 내려온다. 심우(尋牛), 견적(見跡), 견우(見牛), 득우(得牛), 목우(牧牛), 기우귀가(騎牛歸家), 망우존인(忘牛存人),  인우구망(人牛俱忘), 반본환원(返本還源), 입전수수(入廛垂手)의 열 단계가 묘사되어 있으며, 박그림의 서사에서는 ‘인우구망’에 대해 특별히 인용하고 있다
2〈심우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시기획자 권혁규의 전시 서문에서 인용)

왼쪽부터
〈아미(我謎)〉, 〈이간(二揀)〉, 〈춘개(春盖)〉, 〈무이(無二)〉비단에 담채 각 120 × 40cm 2024

《사사(四四)》의 제목에 나타나는 두 번의 ‘사’에 대해, 전시기획자 권혁규는 전시 서문에서 “마주보기, 반복하기, 다시 쓰기는 가르침을 받는 ‘사사(師事)’와 함께, 거절하다의 ‘사(辭)’, 죽음을 뜻하는 ‘사(死)’, 그리고 하잘것없이 작은 것을 가리키는 ‘사(些)’를 동시에 경유한다”고 적고 있다. 작가는 이에 대해 왕이 신하에게 죽음을 내리는 ‘사사(賜死)’와 그가 이른 나이에 불화 전문가에게서 고려 불화의 기술을‘사사(師事)’했던 기억을 중의적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탄생과 죽음, 초월과 육체, 뜨거움과 차가움, 순수함과 욕망, 자기애와 자기혐오, 윤회와 회귀 등의 이항적 구성은 박그림의 회화에서 일관되게 반복된다. 어쩌면 사사(四四)는 ‘두 번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개인의 탄생과 그로 인한 죽음의 수용, 그리고 불화의 배움을 통한 자아의 소멸과 부활의 서사가 중첩되는 것이다. 중의적 해석과 풍부한 상징, 기호의 체계적 사용은 박그림의 작품세계를더 깊이 있게 분석하도록 이끄는 요인이다.

《사사》전에 새롭게 선보인 작품들 가운데 8점은 120×40cm의 세로로 된 그림들로서, 각각 4점씩 그룹으로 묶여 전시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아미(我謎), 이간(二揀), 춘개(春蓋), 무이(無二)’ 그리고, ’일극(日劇), 호류(虎流), 무미(無尾), 월극(月劇)’ 등의 다소 난해한 제목들이 붙어있다. 이 연작의 핵심적 서사는 작가의 아바타라고 할 수 있는 ‘호랑이’의 탄생과 성장에 대한 것이다.〈아미〉에서는 호랑이의 가죽이 찢어지며 그 아래에 작가 자신의 몸이 드러난다.〈이간〉에서는 박그림의 작품에 빈번히 등장하는 두 명의 남성 ‘관음’들이 눈을 가린 채 어린 호랑이를 돌보고 있고,〈춘개〉는 수직으로 대칭인 채 마주 보고 있는 덮개와 그 아래의 화염에 둘러싸인 호접란을 묘사하고 있으며, 〈무이〉는 두 개의 삼지창이 위아래에서 쓰러진 작가를 향하고 있는 가운데 어린 호랑이가 그의 심장을 꺼내 먹고 있다. 상단과 하단에는 각각 바퀴를 상징하는 ‘륜(輪)’의 기호와 호접란이 새겨져 있다. 반대쪽 벽의〈일극〉은 붉은 커튼 안쪽에서 등장하는 어린 호랑이의 꼬리로부터 따듯한 액체가 뿜어져 나와 그를 둘러싼 공간을 휘감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으며,〈호류〉는 자궁으로부터 스스로 빠져나오는 어린 호랑이를 난꽃들이 감싸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고,〈무미〉는 화면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검날처럼 보이는 빛에 의해 잘린 호랑이의 꼬리를 보여준다. 그 위에는사라진 남성의 투구가 허공에 떠있다. 마지막으로〈월극〉은〈일극〉과 정확히 대비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하얀 커튼 사이로 등장한 어린 호랑이의 꼬리에서 차가운 액체가 뿜어져 나와 얼어붙은 채로 그를 둘러싼 공간을 휘감고 있다. 이 그림들의 모티브들이 의미하고 있는 바는 분명해 보인다. 어린 호랑이는 작가의 이상적 자아로서 심우도의 소처럼 작가가 다스리고 이끌어야 할 ‘대-자아(alter-ego)’다. 그것은 십우도의 소처럼 고집스럽고 통제하기 어렵지만 반면에 다양한 열정과 애착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기도 하다. 관음들은 작가가 동경하고 선망하는 대상들이면서 동시에 그가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있는 존재들이다. 호랑이의 꼬리는 음경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것에서 분출되어 세상을 휘감는 정액은 뜨거움과 차가움을 모두 지니고 있다. 이항(二項)적 세계관은 박그림 회화의 기본구조다. 또한 호접란은 항문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게이 섹슈얼리티의 핵심적 모티브이기도 하다.〈춘개〉에는 화염에 휩싸인 난(蘭)이 등장하는데 그 위에 드리워진 아름다운 덮개 아래로 보이는 음경은 동성애적 우주를 가로지르는 잠재적 유인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그림의 회화적 서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이 한 인간의 성장과 정체성의 모색, 그리고 그것을 위한 고투 (苦鬪 )를 담고 있기 때문이며, 그것의 시각적 재현이 놀라울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심호도_일광〉과〈심호도_월광〉은 두 명의 아름다운 남성 보살들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이면화 (二面畵 )이다. 고려 불화에서 보듯, 이들은 다양한 장식과 사물들로 둘러싸여 있고 커다란 후광과 금빛 아우라로 둘러싸여 있다. 짙은 검은색 배경 위에 화려한 색채와 금채로 그려진 이 압도적 도상에는 따스한 세계 속에서 차가움을 품고 있는 보살과 차가운 세계 속에서 따스함을 뿜어내는 보살들이 아름다운 자태로 앉아 있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두 번에 걸쳐 (혹은 동시에 ) 창조되는 태아와 같은 모습의 새끼 호랑이가 허공에 떠있다. 이 도상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박그림 회화의 모든 변주의 핵심을 담고 있다. 이 현기증을 일으키는 그림을 보면서 이제 삼십 후반에 이른 작가가 어떤 또 다른 세계관으로의 여정을 상상해낼지가 궁금해진다.

*본 원고는(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24 한국미술 비평지원’으로 진행하는 특별기고이다.

 왼쪽부터
〈일극(日劇)〉,〈호류(虎流)〉,〈무미(無尾)〉,〈월극(月劇)〉비단에 담채 각 120 × 40cm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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