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초현실주의 미술

WORLD REPORT | Brussels

2024년 상반기 유럽연합 이사회 상임국인 벨기에가
올해 국제 초현실주의 운동이 탄생한지 100년째 되는 해를 기념하며
벨기에 초현실주의를 총점검하며 보자르 미술센터에서 전시한
《벨기에 초현실주의의 진지한 역사》의 입구 광경
Photo : We Document Art © Bozar

올해는 국제 초현실주의 운동이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는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이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을 기념하는 벨기에 초현실주의 미술을 집중 조명한 두 편의 전시가 열린다. 보자르 미술센터의 《벨기에 초현실주의의 진지한 역사》와 벨기에 왕립미술관의 《상상하라! 국제 초현실주의 운동 100년》 두 전시를 통해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미술에 대해 알아보자. 보자르 미술센터 전시는 6월 16일까지, 벨기에 왕립미술관 전시는 7월 21일까지 열린다.

‘벨지튜드’의 기원을 찾아서
21세기 다시 정립해보는 벨기에 초현실주의의 정체성

박진아 |  미술사


보자르 미술센터(Center for Fine Arts BOZAR)에서의 《벨기에 초현실주의의 진지한 역사(Histoire de ne pas rire : Le surréalisme en Belgique)》가 대중을 위해 벨기에 초현실주의를 인문학과 문화사적 시점에서 집결한 계몽적 전시라면, 벨기에 왕립미술관(Les Musées Royaux des Beaux-Arts de Belgique ) 《상상하라! 국제 초현실주의 운동 100년(Imagine! 100 Years of International Surrealism)》은 초현실주의 사조 거장들의 걸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 전시다. 2024년 국제 초현실주의 미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벨기에 왕립미술관이 파리 퐁피두센터,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마드리드 마프레 재단,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공동 기획하고 그 도시들에서 순회 전시될 계획이다. 이는 유럽 문화의 역사에서 벨기에가 프랑스와 공유하는 유산으로 코믹스(comics)를 홍보하는 결과이며 초현실주의가 그것이다. 통상 미술사학계는 파리를 초현실주의(Surréalisme) 운동의 본산으로 널리 인정해 왔던 반면, 같은 시기 벨기에에서도 독자적 문화토양에 뿌리를 둔 토착 초현실주의 운동이 전개됐다는 사실은 뒤늦게 주목받았다. 벨기에 초현실주의는 탄생한 지 1세기가 지난 1972년에 와서야 프랑스의 미술사학자 호세 보벨(José Vovelle)이 벨기에 초현실주의를 고찰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독립된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벨기에 초현실주의의 진지한 역사》를 기획한 아비에 캬논느 (Xavier Canonne) 큐레이터는 보벨의 수제자임이 무색하지 않게 초현실주의가 내세웠던 지성주의와 지적 도발 태도를 반영해 관객이 정해진 동선 없이 작품과 역사 자료들 사이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우연 아닌 우연의 긴장과 갈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초현실적’ 감상 경험을 제공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전시 디자인 의도를 설명했다.

총 12개 소주제별 전시실로 세분된 보자르 미술센터 전시 공간 (벨기에 아르누보 양식 거장 건축가 빅토르 호르타(Victor Horta)가 설계)은 미술품 약 260점과 세계 50여 미술기관에서 대여받은 작가 노트, 사진, 출판인쇄물, 영상물 등 관련 자료 100여 점을 모아 벨기에 초현실주의를 총정리했다. 방대한 규모와 학술적으로 충실히 연구된 지성주의 분위기가 물씬한 이 전시회는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볼 법한 프랑스식 웅장한 전시 방식(la grande manière)이 돋보이는 보기 드문 전시라 할 만하다.

유럽인들이 모더니즘이라는 신시대(新時代 )를 맞아 대중사회 집산주의와 도시적 익명주의 원칙을 주축으로 작동하는 근대 질서 속에서 혼란을 겪던 20세기 초, 프랑스어권 서유럽의 대기에는 1차 세계대전이 유럽의 집단의식에 남긴 육체적 정신적 훼손과 광기에 대한 반응으로써 허무주의가 내리누르고 있었다. 1차 대전 중 스위스에서 망명한 예술가들이 일으킨 다다이즘 정신이 초현실주의라는 논리적 다음 단계로 탈바꿈(metamorphosis)한 순간이었다. 유럽의 20세기 전반기는 급격한 도시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살상전인 제1차 세계대전, 경제공황, 광기의 제2차 대전이라는 ‘초현실적’ 사태가 연이은 폭력의 시대였던 만큼, 이 전시는 소화되지 못한 전쟁의 상흔과 폭력성의 잔재와 긴장이 서린 벨기에 초현실주의 선언과 작품들로 운을 떼는데,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의 〈삶은 콩으로 만든 부드러운 구조물〉(1936)은 피카소의 〈게르니카〉보다 앞서 스페인 내전을 예견한 작품이라고 떵떵댔던 작품이다.

살바도르 달리〈삶은 콩으로 만든 부드러운 구조물
(Soft Construction with Boiled Beans(Premonition of Civil War)〉
캔버스에 유채 99.9 × 100cm 1936
Philadelphia Museum of Art, The Louise and Walter Arensberg Collection
©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Figueres, Sabam
Belgium 2024

르네 마그리트 〈폴 누제 초상(Portrait of Paul Nougé)〉
캔버스에 유채 1927 RMFAB, Brussels
© Succession Magritte, Sabam Belgium 2024

브뤼셀의 폴 누제 — 베우 부리는 무대 뒤 조용한 그레이 에미넌스 (grey eminence)
1924년 11월, 파리에서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이 초현실주의 선언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파리 서북쪽의 브뤼셀에서는 폴 누제(Paul Nougé, 1895-1967), 카미유 괴만스(Camille Gœmans), 마르셀 르콩트(Marcel Lecomte)가 편집한 전설적인 초현실주의 문예지 『코레스퐁당스(Correspondance)』 1924~1925년 호에서 ‘벨기에 초현실주의 선언’이 수록돼 출간됐다. ‘벨기에 초현실주의의 아버지’이자 시인 겸 예술이론가 폴 누제는 생화학자가 본업이었던 만큼 과학에 임하듯 엄격하고 계산적으로 언어를 실험했다. 레디메이드 인쇄물, 책, 드로잉, 콜라주, 음악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반(反 )감성적 언어 창조와 유희 실험을 통해서 브르통의 파리 초현실주의와 철학적 방법론적으로 차별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파리 초현실주의파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받은 초현실주의 창작 기법으로써 마르셀 뒤샹의 자동기술(automatism)과 프로이트의 심리분석학을 접목시켜 이른바 ‘언어로 사랑을 나누는’ 심리적 접근법에 의존했던 것과 대조된다. 『코레스퐁당스』를 공동 편집한 카미유 괴만스와 마르셀 르콩트를 비롯해서 음악가 겸 지휘자 앙드레 수리(André Souris), 문필가 메센스(E. L. T. Mesens), 시인 루이 스퀴트네르(Louis Scutenaire),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는 예의 바르고 시민적인 겉모습 이면으로 사회의 숨막히는 질서, 규범, 제도를 비꼬며 새 미술향유계층이 된 도시 프티부르주아 소시민들에게 충격과 혼동을 던지는 위반(transgression)의 유희를 일삼았다. 이 젊고 호기심 많은 반항아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누제의 존재감은 마그리트가 묘사한 〈폴 누제의 초상〉( 1927년 )에서 엿볼 수 있다.

벨기에 초현실주의에서 마그리트를 빼놓고 논할 수 없다. 당시 청년 마그리트는 빅토르 세르브란크(Victor Servranckx)와 피에르루이 플루케(Pierre-Louis Flouquet)의 벨기에 아카데미풍 구성주의,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와 후안 미로(Juan Miro)의 콜라주, 페르낭 크노프(Fernand Khnopff), 펠리시앙 롭스(Félicien Rops), 레옹 스필리에르트(Léon Spilliaert)로 대변된 음울하고 신비로운 벨기에 상징주의,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북이탈리아 형이상학적 신비주의 회화를 접하면서 향후 벨기에 초현실주의 간판 화가가 될 채비에 한창이었다.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1930년대 중엽, 마그리트는 데 키리코와 폴 델보(Paul Delvaux)의〈분홍 리본〉( 1937 )풍의, 수수께끼처럼 섬뜩한 꿈결을 연상시키는 그의 전형적 ‘다섯 번째 계절’ 양식을 구축했다.

《벨기에 초현실주의의 진지한 역사》 보자르 미술센터 전시 전경 2024

‘벨지튜드’ 블랙 유머는 단지 예술적 표현이 아닌 인생을 대하는 태도
캬논느 큐레이터는 벨기에 초현실주의를 정의하는 특징으로 블랙 유머를 꼽는다. 1940년에 출간된 앙드레 브르통의 『블랙유머 단편모음집(Anthologie de l’humour noir)』에서 블랙 유머라는 어휘가 처음 언급되기 10년 앞서 폴 누제는 그의 흑백사진 〈저글러(La Jongleuse)〉를 통해 인간이란 불가항력적 운명과 타고난 결함 앞에서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함을 한 편의 부조리한 상황으로 포착했다. 모든 벨기에 초현실주의자들의 마음에는 글로 관객의 심기를 건드려 심리적 불편과 깊은 사색을 유도하고 싶어하는 시인과 문필가가 자리한다. 폴 누제가 접근이 난해한 시학을 상업적으로 전환해 대중적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1925년 「La Publicité transfigurée」를 발간한 것을 계기로 본업이 기자 겸 캐리커처리스트이던 막스 세르베(Max Servais )는 벨기에적 초현실주의 콜라주와 포토몽타주의 명인으로 떠올랐다. 콜라주와 포토몽타주라는 당시 뉴미디어는 언어와 우연을 접목시킨 유희와 풍자에 즐겨 채용됐는데, 막스 에른스트가 1919년부터 시도한 이 기법은 E.L.T. 메센스, 미국 사진예술가 만 레이(Man Ray), 프랑스 포토몽타주 거장 라울 우박(Raoul Ubac)에 영향을 줬다. 마그리트는 『이미지의 배반(La Trahison des Images),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와 『지식의 나무(L’Arbre de la science)』 (1929)에서 미술 작품이 묘사하는 내용(이미지)과 제목(텍스트)은 아무 연관이 없다고 선언했는데, 이번 전시는 마그리트를 작품 제목을 내용과 무관하게 붙이는 허무주의적 개념주의의 선구자라 선언한다.

마르셀 마리엔의 〈추적할 수 없는 (The Untraceable)〉1937~2013 Retelet Collection.
© Marcel Mariën Foundation – Surrealist Activity in Belgium
사진 : We Document Art © Bozar

초현실주의적 혼동과 불안 야기에 영화는 매우 효과적인 매체였다. 마르셀 마리엔(Marcel Mariën)이 1959년에 브뤼셀 궁중미술관(Palais des Beaux-Arts in Brussels)에서 상영했다가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 16mm 영화 〈시네마의 한계(L’Imitation du cinéma)〉는 루아 브뉴엘의 〈안달루시아의 개〉(1929)와 〈황금 시대(L’Âge d’or)〉(1930)와 더불어 초현실주의 원칙에 충실한 영화라 평가된다. 에른스트 뫼르만(Ernst Moerman)의 〈판토마스 씨(Monsieur Fantômas )〉(1937)는 초현실주의 시네마의 대표작이자 마그리트에게 영원한 영감을 준 상상 속의 악당 주인공 형성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짐작된다. 진정 프랑스 여성운동가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가 저서 『제2의 성』 (1949)에서 비판한 것처럼 초현실주의는 진리, 아름다움, 시는 다루면서 여성을 다루지 않았나? 이 화두에 자문하며 이 전시는 초현실주의는 여성을 수동적인 누드 모델 혹은 뮤즈로만 이용한 예술운동이 아니었음을 피력한다. 그 예시로 마그리트의 제자 제인 그라베롤(Jane Graverol)과 화가 에밀 바에스의 딸 레이첼 바에스(Rachel Baes) 두 여성 화가가 어떻게 정체성 구축과 자기 변신에 초현실주의 미학을 활용했는지 보여준다.

 《상상하라! 국제 초현실주의 운동 100년》 벨기에 왕립미술관 전시전경 2024
© Ch. Herscovici, SABAM Belgium, Musées royaux des Beaux-Arts de Belgique, Bruxelles, J. Geleyns – Art Photography

아방가르드의 종말 이후에도 계승된 벨기에 초현실주의 전통
초현실주의는 본래 다다이즘 영향의 아방가르드 정신과 공산주의 정치 이념에 기초한 사회 변혁을 꾀했던 고매하고 정치적인 운동으로 출발했지만 오히려 20세기 후반기 들어 두 일등공신 마그리트와 달리를 필두로 대중성과 상업성에서 공히 성공한 세속적 양식으로 변신했다. 대표적으로 초현실주의를 대중적으로 성공시킨 두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가 미국과 유럽의 주류 미술관 전시회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후, 초현실주의 회화는 1970년대 사이키델릭 미학의 캘리포니아 언더그라운드 로브로(Lowbrow) 예술운동, 코믹스, 거리낙서운동 등 대중문화로 침투해 미국판 ‘팝초현실주의(Pop Surrealism)’에 영감을 제공했다. 1939년 달리가 브르통과의 불화로 파리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축출되는 순간까지 ‘나는 초현실주의 자체이므로 아무도 나를 쫓아내지 못한다’고 했고, 각별했던 누제와 마그리트의 친분에 금이 갔던 순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유럽의 미술 주도권은 대서양 건너편 미국 뉴욕으로 넘어갔다. 아방가르드로서 국제 초현실주의 운동은 간판스타 마그리트와 달리 같은 소수 동인의 성공에 따른 시기와 내부적 갈등으로 이어지며 초심 상실과 괴멸을 거듭하다가 브르통은 1969년 파리 초현실주의를 공식 해산했다.

이론적으로 볼 때, 「아방가르드 이론」에서 페터 뷔르거(Peter Bürger)는 초현실주의 운동은 주관적 도발( subjective trangression)과 사회혁명 간의 화해 시도에 실패했다고 평가했지만, 평론가 핼 포스터(Hal Foster)는 저서 『실재의 귀환』에서 라캉의 분석을 빌려 워홀의 ‘반복’ 기법은 트라우마와 무의식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팝아트는 본질적으로 초현실주의의 계승이었다고 봤다. 문학 비평가 레나토 포졸리(Renato Poggioli)의 말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 이후 진정한 의미의 아방가르드 예술은 불가능했다. 기성 사회의 구태와 인습에 도전하는 것이 존재 이유이던 아방가르드의 전위적 아웃사이더로서의 특권은 1960년대 이후 화랑, 미술시장, 미술관이라는 주류 제도권으로 포섭된 후 사실상 격파됐기 때문이다. 영국 평론가 데이비드 실베스터(David Sylvester)는 초현실주의는 중산층적 ‘무안목(bad taste)’의 세속적 미술로 마감했다고 했다. 60대 이후부터 검은 양복과 중산모 차림의 중산층 신사로서 자화상을 반복해 그렸던 마그리트는 말년기에 그린 〈이미지의 배반〉, 〈이것은 아직도 파이프가 아니다(La Trahison des images. Ceci continue de ne pas être une pipe)〉(1952)가 방증하듯 생을 마감할 때까지 초현실주의에 충실하며 370여 점을 그린 소시민 화가였다. 신기하게도 벨기에 초현실주의 운동은 폴 누제와 르네 마그리트가 세상을 뜬 1967년 이후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한때 마그리트의 성공을 질투했던 마르셀 마리엔은 〈도(Le Tao)〉(1976)에서 볼 수 있듯 반어적 풍자적 초현실주의 작업을 계속했다. 누제의 철학을 계승한 문필가 겸 콜라주 아티스트 톰 굿(Tom Gutt)과 장 발렌보른(Jean Wallenborn)은 문예지 『르 보카티프(Le Vocatif)』와 라 마레(La Marée) 화랑을 운영하며 2000년까지 제3세대 벨기에 초현실주의 운동을 이어나갔다. 20세기 초엽 초현실주의 미학이 서구 미술계를 강타했던 참신하고 강렬했던 충격은 21세기 현재 많이 희석됐지만 벨기에의 젊은 작가들은 지금도 초현실주의 철학과 전통 속에서 창작 작업을 계속한다.

전시장 출구에서 관객을 반기는 벨기에 신진 작가 옐레나 바노베르벡(Jelena Vanoverbee )의 비디오 설치작〈바이올린(Vionlins)〉은 문자-음성을 오가는 언어 유희를 시도한다. 벨기에 특유의 블랙 유머를 보여주는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프랑스어로 바이올린이라는 뜻의 단어 ‘비올롱(violons)’은 폭력이란 뜻의 ‘비올롱스(violence)’로 오인될 수 있다는 언어의 전복적 위력을 보여줌으로써 대중매체를 통한 현대인의 언어 소비 행태의 묘한 일면을 재고해보라고 권유한다. 이 작품 감상을 마치고 얼굴에 미소를 띠며 전시장을 빠져나오는 관객들의 표정은 말한다. 벨기에 초현실주의 정신에 담긴 ’벨지튜드(Belgitute)‘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면면히 살아있음을.

 《상상하라! 국제 초현실주의 운동 100년》 벨기에 왕립미술관 전시전경 2024
© Ch. Herscovici, SABAM Belgium, Musées royaux des Beaux-Arts de Belgique, Bruxelles, J. Geleyns – Art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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