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

The Prism of Korea Biennale 2024
2024.8.17~10.20
Special Feature

부산현대미술관, 부산근현대역사관, 한성1918, 초량재

대한민국 내륙 동남쪽 끝단에 위치한 부산은 항구도시로 수도 서울 다음으로 큰 광역도시이자 1950년 6·25전쟁 당시 북한군을 피해 임시 수도로 지정된 곳이다. 부산비엔날레의 전신은 광주비엔날레 탄생 이전인 1981년부터 진행된 부산청년비엔날레와 바다미술제, 부산야외조각대전 등이 있다.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부산비엔날레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미술제는 한국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미술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2024년 부산비엔날레는 전시감독 국제 공모를 실시해 베라 메이(Vera Mey)와 필립 피로트(Philippe Pirotte)를 공동감독으로 선정했다. ‘어둠에서 보기(Seeing in the Dark)’를 주제로 기획된 이번 비엔날레는 한국전쟁 당시 남하하는 북한군을 피해 내륙의 끝 부산까지 밀려온 피난민들의 역사와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지리적 위치, 해안가 특유의 자유로움에서 ‘해적 유토피아’와 불교의 ‘도량’을 키워드로 삼았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의 ‘해적 유토피아’에서 착안한 기획은 오랜 시간 동안 이성과 지식을 대신하는 ‘빛’이 아닌 ‘어둠’으로의 전환을 통해 공포와 포용의 대안으로 어둠을 표현했다. 또한 불교의 ‘도량’은 종교적 의미가 아닌 세속적 삶에서의 이탈과 겸손으로의 태도를 상징한다.

이번 부산비엔날레 기간에는 전시 연계 워크숍과 아티스트 토크, 강연 등이 메인 전시관인 부산현대미술관과 한성1918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특별프로그램으로 부산과 오사카를 오가는 팬스타크루즈에서 비엔날레 참여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Artistic Director
베라 메이&필립 피로트 (Vera Mey & Philippe Pirotte)

베라 메이는 뉴질랜드 국적의 큐레이터로 뉴질랜드의 테 투히(Te Thui) 아트 스페이스 큐레이터이자 영국 요크대학교에서 아트 큐레이팅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주요 경력으로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싱가포르 NTU 현대미술센터에서 큐레이터를 지냈으며, 2023~2024년 베를린 마틴-그로피우스-바우에서 열린《Spectres of Bandung. A Political Imagination of Asia Africa》공동 기획전, 2018년 태국 방콕예술문화센터에서 열린《Trung mu-endless, sightless》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필립 피로트는 벨기에 국적의 큐레이터이자 미술사학자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Städelschule) 미술학교의 미술사 교수이자 미국 UC 버클리미술관의 시니어 큐레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9~2022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 예술감독 선정위원, 2017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비엔날레 기획 참여, 2016년 캐나다 몬트리올 비엔날레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정연심 홍익대 교수

“‘어둠 속에서 보기’의 개념은 지식에 항상 명확성과 빛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아닌, 다른 계몽 운동을 생각해 보는 전환의 방식을 이야기한다. 세상을 밝히지 않고도 알 수 있고 존재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VM:베라 메이, PP:필립 피로트

2024 부산비엔날레에 두 사람이 팀을 이룬 계기는 무엇인가?
PP 큐레이터는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여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VM 그 말에 동의한다. 비엔날레는 협업이 더 좋은 형식이 되기도 한다. 필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문화 및 독립 시대 운동 간의 예술적, 정치적 교차점에 대한 연구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함께 일해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PP 개인적으로 2022년 부산비엔날레 에디션 고문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경험이 다시 부산에서 무언가를 시도하게 된 계기가 됐다. 다행히 조직위에서도 우리가 제안한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져주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 ‘어둠 속에서 보기(Seeing in the Dark)’를 비엔날레에 접목하게 된 이유는?
VM 이번 비엔날레 주제의 영감이 된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사후 발간된 저서 『해적 계몽 또는 진정한 리버탈리아(Pirate Enlightenment or the Real Libertalia)』 (2023)는 계몽주의가 서구에서 발전하고 확산된 현상이라는 기존의 생각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그는 마다가스카르의 해적 식민지에서 발생한 실험적인 모습을 강조하며, 해적의 삶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발전했다고 전했다.
PP 그레이버의 급진적인 작업 중 신자유주의 노동 형태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저서 『쓸데없는 직업(Bullshit Jobs)』(2018)은 후기 자본주의 노동 세계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담은 책이다. 그는 비엔날레 형식, 더 넓게는 예술계도 자본주의 노동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설명한다. 그의 공동체주의적 세계사에 대한 연구는 예술과 미학의 역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하고 고급 상품으로 통합될 위기에 처한 예술의 본질에 대해 상기하게 했다. 그래서 이를 비엔날레 주제로 삼고자 했다.

‘어둠 속에서 보기’라는 개념에 대해 더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 어둠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VM 이는 명확성을 통해 계몽을 추구하기보다는 계몽의 한 형태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일종의 감시를 통한 노출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어둠 속에서 보기’의 개념은 지식에 항상 명확성과 빛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아닌, 다른 계몽 운동을 생각해 보는 전환의 방식을 이야기한다. 세상을 밝히지 않고도 알 수 있고 존재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PP 어둠 속에서 본다는 개념은 시각적 역설이기도하다. 실제로 어둠 속에서는 볼 수 없다. 우리는 이것을 의도적으로 암흑 속에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은유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빛이 없어도 길을 찾을 수 있는 다른 감각들에 대해 생각 하고자 했다.

비엔날레 주제를 설명하는 주요 개념으로 ‘해적 유토피아’와 불교의 ‘도량’을 언급했다. 이 두 개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VM 이 두 개념은 서로 다른 대표 체계의 양 끝을 나타낸다. 해적선은 바다뿐만 아니라 세상을 항해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해적과 해적 행위의 역사는 범죄성에만 초점을 맞춘다. 역사적으로 해적선은 소외된 사람들, 해방된 노예, 정치적·사회적으로 추방된 사람들 그리고 노동자로 구성된 경우가 많았다. 이 공동체들은 바다에서 생존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와 리더십 구조를 협상해야 했다. 이런 점에서 해적선은 미학을 협상의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해적들은 공식 기록에 남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자신들을 매우 사납게 보이도록 거짓 소문을 내거나 가상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미학적 전략을 사용했다. 이는 사실 방어적 메커니즘일 수 있다.
PP 불교 도량은 한국의 예술사와 연결되는 중요한 지점이다. 도량은 불교 사상을 탐구하는 주요 요소로, ‘무아’의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개념들을 제공한다. 우리는 불교 관점에서 다른 세계와 계몽의 과정을 묘사 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은행 금고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 부산근현대역사관 지하에 전시된 지시 한의〈나방들〉(사진 위)과
천 샤오윈의 〈밤/2.4 km〉(사진 아래) 부산비엔날레 전시 전경 2024
사진 : 박홍순

주축으로 삼은 두 개념이 ‘어둠 속에서 보기’ 주제에 어떻게 작동하는 지 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더 나아가 참여 작가들에게는 두 개념이 어떻게 적용되었나?
PP 작가와 작품으로 개념을 설명하자면 작품을 선택할 때 드러냄과 동시에 숨김의 방식을 갖춘 작품 이를테면, 에두아르 글리상의 〈불투명성의 권리〉 등을 선보이고자 했다. 모든 것을 드러내는 투명성으로서 작품을 소비 대상으로 노출하기보다 모호성을 구현하는 작품이 더 많다. 이 작품들은 저널리즘, 활동주의, 공동체 활동 등 다른 영역을 넘나드는 작품으로 처음에는 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곧 기존 사회 구조의 틀을 벗어난 공간을 암시하며, 세계를 재상상할 수 있는 출발점을 제공한다.
VM 해양 역사나 불교 철학적 틀과 관련된 작가들의 작업도 있다. 이는 꼭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예술적 경험에 관심을 갖는다. 대표적으로 음악이나 사운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전 부산비엔날레 큐레이터들의 기획을 검토 했었나?
VM 물론 그동안의 부산비엔날레 전시 역사와 이전 작업들이 이번 전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전 큐레이터들이 탐구했던 아이디어에서 벗어나면서, 그들이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현재의 틀을 제시하고자 했다.
PP 당시 고문이자 동료로 2022년 김해주 감독이 기획한 비엔날레를 주의깊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팬데믹 시기에 야콥 파브리시우스 감독이 기획한 ‘바다미술제’ 작업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 여러 작가들이 그때 참여하기도 했다.

부산에 거주하지 않고 비엔날레 전시를 기획하는 것이 도전적인 시도였을 것 같다. 전시를 위해 지역 맥락을 어떻게 연구하고 이해했나?
VM 부산이 고향인 박수지 협력큐레이터가 함께해 많은 도움이 됐다. 초기 리서치 기간 동안 부산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예술가와 부산을 잘 아는 이론가들을 만난 것이 큰 힘이 됐다.
PP 전시의 기본 틀 자체가 부산 근처에 있는 수도원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특히 ‘마르지 않는 우물’과 연결된 ‘열반’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수도원은 이번 비엔날레에 중요한 공간이다. 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부산의 통도사를 방문했을 때 송천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이번 전시에 작가로 참여하게 되기도 했다. 해양 도시로서의 부산의 역사와 지리적 조건은 매력적이다. 비엔날레 메인 장소인 부산현대미술관과 초량재를 어떻게 활용하게 되었고, 각 장소를 주제와 어떻게 통합했는지 궁금하다. 각 장소에 대한 주요 큐레이터적 관점은 무엇이었나? 전시가 아닌 장소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나 각 장소에서 전시되는 작품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VM 부산이라는 매력적인 도시와 비엔날레의 전시가 상호작용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다양한 이민자들과 부산의 임시 방문자들이 모이는 ‘초량’이라는 지역에 매료되었다. 초량재는 1960년대에 지어진 토속 건축 양식의 주택이고, 부산근현대역사관 건물은 부산의 첫 번째 은행 중 하나였다. 이번 부산비엔날레에서는 금고가 보관되었던 지하층을 전시장으로 사용했다. 근현대역사관은 당시 시대적 요소가 많이 남아있는 매우 상징적인 장소다.
PP 부산현대미술관은 이전 비엔날레를 개최했던 장소로, 비엔날레의 연속성을 유지하려 했다. 새롭게 한성 1918을 다양한 사운드, 비디오,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다채로운 공간으로 기획했고, 특별히 이번 비엔날레에서 부산과 오사카를 잇는 팬스타크루즈와 협력으로 크루즈선에 작품을 전시할 수 있었던 것이 좋은 기회였다.

1960~1970년대 옛 가옥의 초량재에 전시된 부산비엔날레 커미션 작품 우버모르겐의
〈은빛 특이점 : 둠스크롤, 멜랑콜리와 만나다〉 부산비엔날레 전시 전경 2024
사진 : 박홍순

Artist
방정아(Jeong A Bang)

방정아는 부산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작가다.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을 담아내면서도 사회에서 소외된 대상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부각한다. 최근에는 미주둔군의 세균실험이나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등 현재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자본주의 결과물들에 대해 작가로서 고민하고 작업에 반영하고 있다.


하도경 기자

처음 비엔날레의 주제를 들었을 때 작업과의 접점을 어떻게 찾을 수 있었나?
경북 청도 운문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나한상들을 보게 됐다. 나한은 관세음보살하고 다르게 인간인데, 생로병사를 한 몸에 안고 있으면서도 깨달음을 향해 가는 중생과 관세음보살의 중간 존재다. 나상은 굉장히 익살스럽게 나한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500명의 나한 표정이 너무 흥미로웠다. 이들의 모습을 마음에오랫동안 담아두고 있다가 이번 부산비엔날레의주제를 듣게 됐다. 주제를 처음 들었을 때 해적의 공동체 문화와 해양을 가로지르며 부유하는 삶을 사는 것, 집착하지 않고 떠도는 삶과 깨달음이 나한들과 중첩되며 다가왔다. 궁극적인 진리는 세계를 초월해 통하듯이 해적 유토피아와 불교의 도량 그리고 깨달음의 개념이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기존에 고민했던 여러 가지 단어들을 꺼내어보고 스케치를 구상해봤다.

이번에 출품하는 작업에 대해 듣고 싶다.
마녀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옛날에 마녀를 판별하는 방법은 그 사람을 물에 빠뜨리는 거였다. 그때 죽으면 마녀가 아니었던 것이고, 살게 되면 마녀였다는 말도 안 되는 판별법이다. 당시에 마녀중에는 훌륭한 여의사도 있었고 훌륭한 철학자도 있었다. 사회 기존 질서를 흔들 수 있는 영특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마녀로 내몰려 죽었다. 이번 출품작을 준비하면서 마녀를 떠올렸다. 한국에 있는 나한상은 모두 남성의 형상으로 표현돼 있기에 나는 나한상에 마녀의 존재를 대입해 물속에 빠진 깨달은 이들을 여성의 형상으로 구현했다.

이번 출품작에는 비엔날레의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된 듯한, 배의 도상을 구현한 작업도 있지 않나?
그렇다. 해적선의 도상을 담고 있다. 일단, 배라는 대상은 유동적이다. 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이 담겨 있는 곳으로서 배를 구현했다. 캔버스에 구현한 배는 일반적인 어선보다 조금 큰 유람선 정도의 크기인데,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 배에 탑승한 이들은 모두 구명조끼를 입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인에게는 구명조끼 트라우마가 있지 않나. 작업을 준비하다 보니 세월호 사건이 대입되면서 상실의 역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우리의 현실도 혼재되어 섞이게 됐다.

해적선의 도상을 통해 드러내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기후 위기라는 문제를 공유하는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쉽게 감당이 안 되는 실정이다. 요즘에는 당장 떠내려가게 생겼는데 그림을 그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처참하고 무기력하다. 그런 우리의 마음들이 해적선에 담겨있다. 배에 탑승한 이들의 표정은 어수선하고 어둡다. 우리가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한배에 타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니까 언제든지 협력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 실제로 해적들은 이 배에서 다른 배로 이동하며, 이동과 교류를 만들어 나간다. 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이 담겨 있는 곳이자 협력과 교류의 장으로서 배를 구현했다.

이번 출품작에서 특히 흥미롭게 여길만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제까지 소개한 두 점의 출품작 외에 한 점의 출품작이 또 있다. 이 작품에는 따개비의 종류 중 하나인 ‘거북손’이라는 존재가 담겨 있다. 거북손 명칭은 말 그대로 형태가 거북이의 손과 닮아있다고 하여 유래했다. 나는 어느 날 거북손이 인간에게서 튀어나오는 장면을 상상하게 됐다. 그러면서 거북손이라는 생물이 자라고 있는 발톱으로 형상화했다. 이러한 형상화는 ‘되기(becoming)’를 은유한다. 작업은 역사를 거듭하며 높여온 인간의 위상과 입지를 재고하고, 다른 존재와 동등한 존재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게 문명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이를 드러내기 위해 나는 위태로운 바위 위에 서 있는 인간의 다리를 그렸다. 그때 인간은 갑자기 친 파도 때문에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그 사람을 미끄러지지 않게 잡아줄 수 있는 존재가 거북손 발톱이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이 발톱이 다른 생물 종들의 협력으로 발생했다는 거다. 나는이 작업을 통해 세계는 모두 연결돼 있다는 점까지 보여줄 수 있도록 했다.

회화를 위해 캔버스를 구축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있다면 들려 달라.
완성도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더 중시하는 편이다. 또한 그림을 그리면서 중시하는 게 있다면 선(line)이다. 불확정적이면서도 경계를 무너뜨리는 특유의 선은 이전에 서예를 하면서 체득했던 힘의 조절과도 맞닿아 있다. 요즘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면보다도 불확실한 선을 긋는 과정에 더더욱 심혈을 기울인다.

요즘 관심 있게 바라보는 주제가 있나?
요즘의 관심사는 탈핵이다.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끼리 협력해 작업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물 속 나한들〉 코튼에 아크릴릭 430 × 280cm
2024 제공 : 작가

Artist
홍이현숙(Hyonsook HongLee)

홍이현숙은 특정한 방식이나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거듭 시도한다. 작품을 통해 소외되고 잊힌 존재, 비인간 존재에 대해 탐구하며 인간 중심적 사고를 탈피하고자 노력한다. 소리와 신체를 통해 시각을 넘어선 확장된 감각을 공간에 표현하는 작가는 이번 부산비엔날레에서 관객이 수동적 감상이 아닌, 직접 작품에 참여해 능동적으로 완성하는 관객 참여형 작품을 구성했다.


정소영 기자

최근 박수근미술상을 받으며 “그동안 작업을 하면서 많이 외로웠는데 상이 위로를 해준 것 같다” 수상 소감에 뭉클했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유교권의 한국에서 여성 예술가로 살아가는 일이 힘들었을 것 같다. 예술가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내가 특별해서라기보다 다행히 작업을 손에서 놓아야 할 만큼의 큰 변수가 없었던 게 지속할 수 있던 동력인 것 같다. 물론 가족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실제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작업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도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 작가의 일임을 잊지 않았던 게 중요했다. 작업을 못하던 기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전시장에 가거나 동료 작가 전시에 관한 글을 기고하는 일을 하면서 보냈다. 지치지 않는 열정도 재능이라고 하던데 하고 싶은 게 많고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 예술가로 살아가는 힘이자 이유가 될 수 있겠다.

한국 페미니즘 여성작가로 손에 꼽힌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을 대표하는 페미니즘 작가라고 할 때마다 황송하기만 하다. 아무래도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작업을 한 것이 그 이유가 될 테지만 내가 대표가 될 수는 없다. 이전 작업도 그랬고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고 싶다.

‘아버지’, ‘폐경’, ‘요절한 동료 작가’에 대한 애도 등 작품에 삶의 순간들이 잘 드러난다.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많은 순간 중 작품으로 완성되는 계기 또는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장소에서 시작되는 경험, 삶에서 체화되는 경험 중에서 연구하고 몰입하다 보면 그 안에서 방법이 생각나는 것 같다. 그게 작품이 된다. 북서울미술관 전시를 위해 작업 중인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에 대한 영상작업도 그렇게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 죽은 일본 병사들의 비석 위에 지어진 마을인데,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모여들며 생긴 마을이다. 죽은 자의 혼 위에 살아있는 자가 지금도 살아가는 현실이 더 허구 같은데 주민들에게는 삶이다. 그래서 그들의 집을 들여다보고, 골목을 지나가 보고, 시간대를 달리해서 방문하다 보면 찾아지는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든다.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회에 관심이 많다.

부산비엔날레 출품작이 궁금하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진행되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 작품이다. 부산비엔날레 측으로부터 해적 유토피아에 대해 들었을 때 아나키즘을 떠올렸다. 모두가 평등한 존재가 되는 것,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해 인식하는 것, 익숙하지 않은 감각기관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시각적 방해가 없는 어둠에서의 작업 방식을 택했다.

관람자는 크리터가 돼서 안내자가 지시한 대로 행동을 따라 하고 소리를 내 보는 과정에서 평소에는 쓰지 않는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벽을 둥글게 깎아서 평평할 것이라 예상한 벽면에 이질감을 주고, 일반적인 인체 사이즈를 넘나드는 천장과 바닥에서의 소리 감각을 통해 상상 속 생명체와의 조우를 경험하게 하고자 했다. 또 중력을 거슬러 바닥에 등을 대고 다리를 들어올리는 과정에서의 공간감의 변화, 통제된 전시장 천장에서 쏟아지는 낯선 향의 후각 경험을 통해 내가 아닌 존재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했다. 체험 마지막에는 탈을 쓰고 통제된 공간을 벗어나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과정을 통해 확정된 경험을 시도했다. 관객들이 내가 아닌 새로운 생명체가 되어 보고, 새로운 생명체와의 공존의 경험을 감각하면서 비엔날레의 주제인 시각 너머의 것을 발견하기를 바랐다.

이번 작품도 그렇고 많은 사랑을 받은 아르코미술관에서의 개인전《횡, 추-푸》(2021) 에서의 〈8마리의 등대〉(2021)도 그렇고 관객참여형 작품이 많다. 작품에서 관객은 어떤 의미인가?
관객은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다. 작가의 생각을 전하는 수단으로 작품을 만들기보다 관객에게 생각할 방법을 제안하고 오히려 어떤 장치나 도구적 수단으로서 작품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 작품이 무대가 돼서 그들의 경험에 도움이 되는 조력자 혹은 돌봄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에 만족하는 편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달라.
부산비엔날레 이후에 북서울미술관에서의 《타이틀매치》 전시를 같이 준비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에서의 신작 영상과 이전 작업들을 공간에 맞게 변형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앞으로도 주어진 일, 사람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이끄는 대로 작업을 진행하지 않을까 싶다.

  *C-lab 6.0 프로젝트 × 홍이현숙 《12m 아래, 종(種)들의 스펙터클》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씨 전시 전경 2022 사진 : 김형섭 제공 :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씨

Artist
카를라 아로차 & 스테판 슈라넨(Carla Arocha & Stéphane Schraenen)

카를라 아로차 & 스테판 슈라넨 2004년 쿤스트할레 베른에서의 첫 협업을 시작으로 듀오로 활동하는 두 작가는 공동 작업으로 빛, 형태, 색상, 반사에 기반한 공유된 시각적 언어를 제시함으로써 다양한 질문과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왔다. 이를 통해 관람자가 직접 관찰하고, 반성하며, 상상하고, 숙고할 수 있도록 한다.


정소영 기자

CA 카를라 아로차 / SS 스테판 슈라넨

출품작으로 〈말벌집〉을 선정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SS 이번 부산비엔날레에 전시한 작품은 이전 작업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P-시리즈’라고 불리는 작업 중 창문과 고층 건물 구조를 참조한 작품이 있다. 이는 공공주택이나 고층 건물을 연상시킨다. 이 시리즈의 핵심은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는지, 아니면 밖을 내다보는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행위는 창문 너머에 있는 것에 대한 상상과 추측을 유발한다. 미술사에서는 그림을 창문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착안해 창문을 통해 안을 보거나 밖을 보는 작업이 등장한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볼 때, 내가 보는 존재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보이는 존재인지에 대한 탐구로 작품이 이어진다.
CA〈말벌집〉은 부산현대미술관 내부의 콘크리트 구조와 미술관 건물 구조에서 작품의 외형이 결정됐다. ‘어둠에서 보기’라는 비엔날레 주제에서 해적 행위를 통한 정복이라는 키워드와 연관시켰다. 사용하지 않던 공간을 침범해 작품을 설치하고 거울과 반사를 통해 공간 전체를 점유하는 방식은 해적들이 시스템 밖에서 자신들만의 나라를 시작한 것처럼, 우리도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점령한 것으로 해석했다. 작품에 사용한 감시용 플렉시글라스 소재는 어둠 속에서 시야를 탐구하는 아이디어와도 연결된다. 감시용 거울은 영화에서 보듯, 어두운 곳에서는 내부를 볼 수 있지만, 밝은 곳에서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없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최근 비엔날레나 그룹전에 듀오와 콜렉티브의 형태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많이 보인다. 각자의 작업을 진행하다가 듀오로 활동할 때 장단점은 무엇인가?
SS 듀오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아이디어가 특정 사람에게만 속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디어는 내가 제안할 수도 있고, 카를라가 제안할 수도 있지만 누가 제안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마치 탁자 위에 아이디어를 던져 놓 은 것 같이 아이디어를 던지고 서로의 생각을 더해가며 발전시킨다. 혼자였다면 어느 순간 멈추고 타협할 수 있지만 함께 작업을 할 때는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함께 발전시키며 깊이 있는 이해를 이끌어 낼 수 있다.
CA 모든 사람과 그런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내면 바로 “아니다”라고 부정하기도 한다. 스테판과 작업할 때는 두 사람이 모두 동의한 경우에만 진행한다.
SS 작품은 개념예술과 미니멀리즘, 추상미술과 모두 연관되어 있다. 그 말은 단순한 형식만으로는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CA 내용이 없는 작업은 우리의 지향점이 아니다. 누군가는 우리의 작업을 형식주의라고도 하지만 그것은 작품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이뤄지지 않아서 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특정 생각이나 시각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는 관객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자신이 본 것을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때문에 작품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내용 없이는 작품이 완성 될 수 없다.

비엔날레 이후의 일정은?
SS 서울 WWNN에서 전시가 계획되어 있다. 비엔날레 작품과는 또 다른 신작 으로 그래픽적인 요소가 강하면서도 관객에게 착시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관객에게 맡기고 싶다.

〈말벌집〉 플렉시글라스 가변 크기 가변 설치 2024 부산비엔날레 전시 전경 2024
사진 : 박홍순

Artist
조 네이미(Joe Namy)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음악가인 조 네이미는 소리와 음악의 역사와 상호 영향에 대해 연구한다. 소리, 퍼포먼스, 조각, 비디오 등 여러 매체를 아우르며 협력적인 작업을 진행한다. 주로 음악과 조직된 소리의 사회적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언어 간 번역, 악보에서 소리로의 변환, 드럼에서 춤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복잡성을 연구한다


정소영 기자

관객이 부산현대미술관 로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대형 작품이 〈더빙 식물〉이다. ‘어둠에서 보기’라는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와 작품의 연관성을 설명해 달라.
‘해적’이라는 키워드를 듣고 ‘해적 방송’의 형태를 떠올렸다. 사운드를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해적 방송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라디오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내가 작업의 멘토로 삼고 있고 영향을 받은 민족음악학자이자 작곡가인 할림 엘 다브(Halim El-Dabh)는 ‘자르(zaar)’라고 하는 일종의 소리를 통한 치유 의식을 위해 처음으로 전자음악을 불법 복제했다. 이는 구체음악 장르의 초기 형태로도 알려져 있다. 샤머니즘의 전통적인 치유 의식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현대의 사운드 기술과 예술적 실험을 통해 재해석된 작품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고 하겠다. 이번 비엔날레 설치 작은 라디오의 역사에서 송출수신탑을 소환해 동양의 대나무를 엮어 만들었다. 이는 단순한 문화적 재현이 아니라, 현재의 기술과 감각을 통해 영적인 경험을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미술관 로비를 메우는 작품의 사운드가 독특하다. 작업에 사용한 음악이 궁금하다.
작품에서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는 아티스트이자 오랜 친구인 성악가 알리아 술타니(Alia Sultani)의 목소리다. 알리아는 주로 실험적인 소리 작업을 하고 있으며, 폭넓은 음역과 독창적인 목소리 표현력을 갖추고 있다. 〈더빙 식물〉에서는 원래 기록된 소리에 가수가 즉흥적으로 반응하며 새로운 해석을 제공했다. 이 작업은 단순히 ‘자르’ 의식 자체에 대한 재현이 아니라, 의식을 정의하는 요소들, 즉 음악이 사람을 치유하고 변모시킬 수 있는 힘을 강조하려 했다. 음악을 통해 사람들은 일상적인 경험을 넘어서는 곳으로 이동하게 되며, 이는 영적인 연결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에서의 음악은 청중과의 상호작용을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다. 청중은 청음(聽音)하는 순간, 단순히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니라, 그 순간과 공간 안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존재로 변모한다. 이를 통해 작품은 고정된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각 참여자의 경험과 상태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사운드와 음성이 환경과 어떻게 융합되어 새로운 경험을 창출하는지가 작업에 중요한 부분이다.

부산비엔날레 기간에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DJ 공연을 한다고 들었다. 어떤 형태로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틱톡(TikTok)에 드럼 연주를 녹음해서 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소리들을 리믹스하는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다. 비엔날레 프로그램에서도 다양한 비트와 전자음악을 섞어 하나의 세트를 만들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면서 그에 따라 음악의 형태에 변주를 주는 공연으로 진행될 것 같다. 장소와 맥락에 따라 사람들이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같은 공간에서는 더 실험적인 음악 시도가 가능하고, 사람들이 더 깊이 있는 청취를 할 수 있다. 춤을 추고 에너지를 유지하는 클럽과 다른 면이다. 음악에 집중할 수 있으면서도 듣는 것에 더 집중하는 공연으로 채우려고 한다.

비엔날레 이후의 작품 계획은?
논의 중인 전시가 있어서 야외가 될지, 실내가 될지, 작품이 설치될 공간에 맞춰서 소리를 어떻게 적응시킬지 고민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시간이나 구조적으로 실행하지 못했던 방식들을 다음 전시에서 시도해 보기 위해 다른 음악가들과 협업도 하고, 농업과 관련된 소리들, 특히 수확할 때의 노동요와 같은 소리를 더 탐구해 볼 생각이다. 작업에서 중요한 건 기술 매체가 아니라 소리 그 자체에 담긴 의미와 역사, 소리가 미치는 영향과 효과이기 때문에 소리에 지속적으로 집중하려 한다.

〈더빙 식물〉 혼합재료 가변 크기 2024
부산비엔날레 전시 전경 2024 사진 : 박홍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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