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 날땅
태백 장성동 일대
9.1~9.30
《둔주 그림자가 된 전통》
충남 서천군 판교면
현암마을 판교극장 일대
8.26~9.7
강재영 기자
Sight&Issue

신예선 〈빨강 내피〉 모사 340×340×187cm 2025
제공: 탄탄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
소멸과 확산의 기로에서 소환되는 예술
키아프 서울, 프리즈 서울도 어언 4년 차다. 미술계 관심을 온통 빨아들이며 미술 현장의 서울 집중 현상은 더욱 심화되는 듯 보인다. 신자유주의 경제 구조가 고도화·내면화되는 사이 현대미술을 추동했던 여러 관점의 실험과 시도는 그 폭과 깊이가 축소되는 듯하다.
지역에서 벌어지는 여러 형태의 예술 실천은 점점 빨라지는 서울 집중 및 상업화 현상과 구별되면서, 마치 대항 담론으로써 기대를 품게 한다. 민간으로 정의되는 기획자·집단, 기관으로 대표되는 문화재단· 지자체, 기업이 결합하면서 기존의 창작지원·발표 모델을 벗어나 예술의 지속가능성과 공생을 도모하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위상차는 종종 오해와 불협화음을 만들기도 한다. 시각예술가 웁쓰양이 2014년부터 기획·진행해 왔던 ‘한강 멍때리기 대회’는 파트너였던 서울시의 ‘잠때리기 대회’ 강행으로 어처구니없이 종료하게 됐다. 문화예술을 통해 지역 생태계를 활성화하려던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단꿈은 수많은 불협화음과 함께 동력을 잃었다.
소멸할 것인가 확산할 것인가. 기로에 서 있는 지역에서, 예술이 그 확산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혹은 이러한 실험이 새로운 예술실천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강원 태백에서 2회차를 맞이한 ‘비엔날레 날땅’과 충남 서천에서 열린 《둔주-그림자가 된 전통》은 자본이 주도하는 프로젝트에선 보기 어려운 장면을 연출하며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본지는 두 프로젝트를 직접 취재하여 그 면면을 소개한다.

전지 〈불확실한 내 이야기를 들어줄 한 사람이 필요해〉(2025)의 한 장면.
‘나 믿냐구..’라는 대사가 태백 시내를 배경으로 퍼진다
사진: 강재영

노도트리(이화영, 정강현) 〈虛陰網巫 허음망무〉
서해안에서 수집된 폐어구, 수집된 사운드 가변 설치 2025
사진: 강재영
멈춘 탄광, 남아있는 아이들을 위한 예술-태백 ‘비엔날레 날땅’
“팔도사람 다 모인 하늘 아래 첫 도시”였던, 1980년대 탄광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태백시는 2024년 마지막 남아있던 장성광업소까지 영업을 종료하며 대표적 소멸지역이 되었다. 13만을 넘던 인구수는 이제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기억에서조차 점점 잊히는 이곳에서 ‘비엔날레’라니, 2023년 ‘비엔날레 날땅’ 개최 소식을 들었을 때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이들은 약속한 대로 두 번째 비엔날레를 열었다. 태백 장성의 청년으로 구성된 탄탄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이 주체가 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태백시 등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는 ‘비엔날레 날땅’은 ‘뜻밖에 등장하는 윤곽들’이라는 주제 아래 정희우 황재순 신예선 배주현 전지 이다슬 작가가 참여했다. 예술가들은 이진아 미술감독과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장성마을이 오랫동안 간직한 이야기를 눈과 귀에 담아 풀어낸 작업을 선보였다.
전시 작품과 장소를 안내하는 플래카드와 사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작품 위치가 표시된 지도와 오픈카톡방이 제공됐다. 기자는 마을 주민이 직접 안내하는 도슨트 투어를 선택했다. 약속한 2시가 되어 모임 장소로 갔다. 평일이었지만 영월에서 온 두 사람이 투어에 동행했다. 차가운 태백 공기를 마시며 처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진폐증으로 고생하던 탄광마을 주민들이 모여 담소하던 태백병원 앞 등나무 벤치. 이곳에는 탄광 노동자의 숨결과 손길을 무명실과 도자기로 형상화한 배주현의 〈사라지나 사라지지 않는〉(2025)이 있었다. 조금씩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계단을 타고 망루로 올라갔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 감시를 위해 설치 사용했다는 태백경찰서 망루는 안내 설명처럼 갱도와 폐광의 처연한 풍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신예선은 이 경직된 공간을 빨간 내복을 상징하는 모직 내피로 덮고, 일하는 사람들의 손을 형상화한 〈빨강 내피〉(2025)로 감싸안았다.
전지의 작품을 보기 위해 읍내 PC방 지하로 향했다. 작가가 장성 주민들과 직접 꾸민, 버려진 창고를 정비한 지하공간에 부직포로 만들어진 귀여운 새와 함께 만화가 자리했다. 전국의 구도심을 만화로 기록한 ‘채집 운동’의 하나로, 작가가 직접 2년여간 태백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더해 만든 만화 〈불확실한 내 이야기를 들어줄 한 사람이 필요해〉(2025)도 함께 전시됐다. 시간과 장소는 달랐지만, 현실과 이상이 뒤얽혀 무거웠던, 그래서 ‘믿음’이 필요했던 필자의 10대 시절도 동시에 겹쳐졌다. 뭉클한 마음을 안고 걷기를 이어갔다.
전시는 하장성으로 이어졌다. 주민들의 산책로 담벼락엔 전지의 시멘트 벽화가, 이제는 영업을 종료한 광부들의 목욕탕 ‘태양사우나’ 내부엔 황재순의 사진이 채워졌다. 정희우는 석탄 생성의 원천이 된 나무를 탁본 하고, 다시 탁본한 나무를 감싸는 작업을, 이다솔은 도로 옆 비워진 컨테이너 에서 열대 식물 파파야를 키우는 〈장성 파파야〉(2025)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이진아 미술감독이 2005년부터 태백과 쌓은 인연으로 시작됐다. 여러 작가에게 태백의 매력을 전하던 중, 2023년 문화기획자이자 지역 활동가로서 태백에 막 정착한 조합장 김신애와의 만남이 ‘비엔날레 날땅’으로 이어졌다. “거대한 비엔날레가 지역 문화와 제대로 소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감독이 오카야마 아트 서밋에서 경험한, 지역의 사람과 공간을 예술로 내밀하게 연결하는 방식을 구상하게 했다. 이 미술감독이 특히 주목한 것은 태백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었다. 마치 〈나니아 연대기〉에서 아이들이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는 ‘옷장’처럼, PC방 아래 전시공간, 길옆 담벼락, 만둣집 옥상에 설치된 작품들이 아이들과 주민을 보지 못했던 세계로 초대하는 것을 꿈꿨다.
‘태백산포럼’에서 한 패널은 ‘날땅’을 들어 ‘틈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그 균열은 도슨트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스쳐 가는 어르신들은 도슨트 투어 행렬을 무심한 듯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한참 시선을 주었다. 길이 익숙해 빠른 속도로 왕복 1차선 굽잇길을 내달리던 트럭도 우리 일행을 보면 속도를 늦췄다. 일말의 경계심도 일행들의 작은 웃음에 풀어지는 순간, ‘비엔날레’가 태백에 사라졌던 어떤 감각을 한 방울씩 떨어트려 서서히 적시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이 멈춘 곳에 도착한 ‘둔주’-서천 《둔주: 그림자가 된 전통》
충남 서천 판교면 현암리, 과거 보부상이 지나던 육로이자 충남 3대 우시장 중 하나로 번성한 곳이었으나 장항선 폐선 후 소멸지역으로 분류된 곳이다. 서천에 자리한 아트 스페이스 ‘곁에’가 주최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후원하는 《둔주: 그림자가 된 전통》은 총괄 기획자 강정아가 충남 지역의 기획자·예술가와 5년여간 맺어온 관계를 바탕으로 열린 전시다. 김동희 김소라 김재민이 노드트리 신익균 쑨지 윤결 이호억 전형진 정한결 장시재 최수련 등 총 12명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는 근현대사 속에서 상실을 반복 경험한 한국인의 집단적 정서를 ‘둔주’라는 개념으로 조명한다. ‘둔주’는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고 떠도는 현상을 일컫는 말인데, 기획자는 한국인의 정체성 자체가 ‘둔주’처럼 변혁기마다 그 기억을 해체하고 잃어버리길 요구받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지역은 그렇게 지워진 곳 중 하나가 된다. 일제강점기 식량 수탈의 통로 중 하나였던 서천의 지리적 배경은 이러한 전시의 메시지를 강화하는 장치로 작동했다.
‘시간이 멈춘’ 평일 오후의 판교마을은 한산한 모습이었지만, 일제강점기 건축 양식을 간직한 작은 상점들은 관광객을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시는 한때 번화했을 판교극장뿐 아니라 닭집, 주조장, 정미소, 방앗간, 중대본부, 상회 등 마을의 기능을 고스란히 체화한 공간들에서 함께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역은 과거의 번영을 꿈꾸고 있을까, 사라진 속도에 여유를 즐기고 있을까? 김재민이는 〈염전의 추억〉(2025)에서 이에 직설적으로 응답한다. 비어 보인다는 건 중심의 시선으로 판단한 것일 뿐, 측은하게 보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어 보이지 않기 위해 젊은이를 갈아 넣는 것보단 생산과 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 도시와는 다른 생태 사이클로 정착하고 있을 뿐이라는 그의 주장은 소멸과 확산의 이면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