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 객체로서의 인공지능, 예술 주체로서의 성립 가능성
III. 객체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예술
Art Critique
유원준 영남대 교수, 미술비평
민찬욱〈휴머노이드 오브젝트 #4〉자석, 펜, 종이, 아크릴, XY플로터 및 전자기기 120 × 80 × 80cm 2024
캔파운데이션 《체계의 기술》 전시 전경 2024
사진 : 박홍순
최근의 다양한 기술 매체들과
예술의 융합은 작가와 예술작품 사이의
혼성적 관계에 있어 이전과는 다른
관계적 차원의 문제를 일으킨다.
1. 인간 주체와 혼성적 객체로서의 예술
예술 창작에서 주체의 역할을 수행해 온 인간이 다루는 소재 및 재료의 의미로만 파악되어 온 예술작품의 물질적 토대(지지체)를 독립적이고 자율성을 지닌 복합체로 간주한다는 것은 이전까지 단순한 대상 혹은 객체로서 의미화되던 예술작품이 지닐 수 있는 자율적 대상 혹은 객체로서의 가능성을 검토하게 만든다. 이는 예술작품이 지닐 수 있는 가능성을 인간 중심주의 바깥에서 사유케 하는 동시에 이전까지 예술에서 고정적이었던 주체와 객체의 자리를 다른 위치값으로 조정하게 만든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호까지의 서술에서는 예술의 주요한 성분으로 인간을 설정하고 예술작품과 관객을 하나의 혼성체로 가정하는 객체지향존재론(Object Oriented Ontology), 특히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의 논의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하먼의 경우 예술작품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객체로 간주하는데 이를 도식화하여 이해해보자면 아래의 표 1과 같다. 즉, 예술작품을 일종의 감상자 외부에 존재하는 독립적인 객체로 상정하고 감상자 자신이 이와 더불어 하나의 복합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먼의 논의는 예술작품이 지닐 수 있는 자율적 객체로서의 가능성을 확보해주는 동시에 예술의 감상자를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게 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의미를 구성하는 자율적 대상으로 상정한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그럼에도 하먼의 논의를 따라 감상자와 예술작품의 혼성체적 구도를 설정할 경우, 예술작품이 지닐 수 있는 미적 자율성이라는 관념이 훼손될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1 이러한 비판은 하먼의 주장에서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모호한 지점에서 출발하는데, 하먼은 특권적인 예술 감상자의 존재가 예술에 필수 성분임을 인정하는 동시에 예술작품의 자율성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도는 하먼이 주장하는 예술작품을 통해 경험되는 객체들 사이의 긴장 관계를 희석시킨다. 그의 주장은 실재적 대상과 감각적 성질 사이의 미묘한 간극으로부터 발생하는데 감상자와 예술작품의 혼성체적 구도는 이러한 관계들에 또 다른 감상 주체로서의 객체적 대상을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자율적 객체로서의 예술작품이 지닌 의미를 그것이 제작되는 공정으로부터 발생하는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혼성체적 구도로 전환해보자(표 2. 참조). 이러한 구도로 예술작품을 살펴보며 이를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융합에 의해 창출된 더 큰 객체라고 상정하면, 하먼의 주장처럼 그렇게 융합되는 항들이 서로 마주 보면서도 여전히 서로 분리된 채로 존재할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2 특히 최근 예술 분야의 시도들에서 제기되고 있는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 매체의 존재는 예술작품을 제작하는 특권적 주체로서의 인간을 해체하는 것을 넘어 인간 주체의 대행자이자 대체자로서 기능하는 자율적 객체를 상정하게 만드는데,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혼성체적 구도는 예술작품이 지닐 수 있는 자율적 객체로서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동시에 이로부터 세계(자연)와 인간이라는 오로지 두 개의 존재자만을 상정하는 과거의 상관주의 구도에서 벗어나 보다 다각적인 예술 해석을 가능케 한다.
1 Richard Moran Formalism and the Appearance of Nature(c.2018 ) in Mathew
Abbott(ed. ) Michael Fried and Philosophy : Modernism, Intention, and Theatricality
New York : Routledge 2019 pp. 126~127
2 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예술과 객체』 갈무리 2022 p. 28
2. 인공지능의 자기생성적 예술의 가능성
최근의 다양한 기술 매체들과 예술의 융합은 작가와 예술작품 사이의 혼성적 관계에 있어 이전과는 다른 관계적 차원의 문제를 일으킨다. 기술 매체가 지닌 상호작용적 특성은 작품의 최종 의미 결정의 순간을 작품에 참여하는 관객들에게 위임한다. 물론 이러한 상호작용성을 통해 구현되는 예술작품의 경우, 작가와 예술작품의 혼성적 구도가 아닌 예술작품과 관객의 혼성적 입장에서 분석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관객 참여의 형태와 정도는 작가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는 한계를 지닌다는 점에서 자율적 객체로서의 예술작품의 의미가 이로부터 구현된다고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는 경우는 관객의 참여를 하나의 우연적 요소로 개입시키는 발생적 구도의 예술작품이다.
인공생명 및 그들의 진화에 관한 예술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크리스타 좀머러(Christa Sommerer)와 로랑 미뇨노(Laurent Mignonneau)의 〈Life Writer〉(2006)는 발생예술이 제기할 수 있는 자기생성기계로서의 예술적 가능성을 잘 드러낸다. 이 작품은 관객들이 기입한 텍스트로부터 자율적 생명체가 탄생하고 이들이 일종의 인공 생태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제시한다. 관객들은 전시장에 놓여있는 낡은 타자기 앞에서 자유롭게 문자를 타이핑하게끔 유도되는데, 관객이 타이핑한 문자들은 서로 각기 다른 알고리즘적 구조(마치 사람들이 지닌 서로 다른 DNA 구조와 유사한)를 지닌 벌레처럼 보이는 인공 생명체로 탄생한다. 이 작품의 흥미로운 점은 관객에 의해 창조된 개체들이 서로 다른 특성을 나타내게 되며 저마다의 자율적 행동 패턴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크리스타 좀머러 & 로랑 미뇨노 〈Life Writer〉 타자기, 비디오 프로젝터, 의자, 책상, 컴퓨터 가변 설치 2006
제공 : Christa Sommerer & Laurent Mignonneau
조현서 〈피그말리온 프로젝트〉 웹사이트 2023
출처 : https ://pygmalionproject.online/
그러나 이러한 관객의 개입은 작가에 의해 철저하게 계산되고 제한된 참여이다. 관객들은 타자기라는 장치가 지닌 특성, 즉 문자를 기입할 수 있는 기계 앞에 자유롭게 다가가게 되고 예술 전시장이라는 특성상 관객들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각자가 생각하는 특정 텍스트를 입력하게 된다. 즉, 앞서 언급한 것처럼 관객 참여의 형식과 정도가 미리 결정된 셈인데, 이로부터 해당 예술작품이 지닌 혼성체적 구도를 예술작품과 관객의 복합체로 파악하는 데서 생기는 한계가 드러난다. 오히려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혼성체적 입장에서 그들이 갖는 자율적 객체성을 분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이는데 〈Life Writer〉가 관객의 개입을 통해 작품의 내용이 생성되지만 작품의 주요한 내용을 구성하는 특성은 그러한 개체 생성 이후 개별 개체들이 보여주는 (작품 제목이 지시하듯) 생명 혹은 삶의 형태들로부터 나타난다는 점은 이 작품을 예술가와 예술작품이 만들어내는 자율적 혼성체로 보는 입장을 공고하게 만드는 동시에 앞서 예술가(인간)의 대행자적 역할을 수행하는 알고리즘 및 인공지능을 확인하게 한다. (표 2-1. 참조)
이처럼 인공지능 기술에 의해 제작되는 예술작품의 경우 이전과는 다른 작가와 예술 작품 사이의 관계적 구도를 보여준다. 인공지능은 예술가를 예술 환경 제안자의 입장에 머물게 만드는 동시에 인간의 대리자-대행자적 입장을 수행하며 스스로 자기-생산적 체계 안에서 작동한다.3 민찬욱의 〈휴머노이드 오브젝트〉는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 고유의 영토를 침범하는 인공지능기계를 제작하여 인공지능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한 사례이다. 그는 ‘인간의 무의식을 반영하는 낙서라는 행위를 기계-인공지능이 구현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제기하며 이를 수행하는 물리적 도구를 제작한다. 이 작품은 서로 엇갈려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3개의 펜과 이것들과 자석으로 연동되는 XY플로터 장치로 구성된다. 자석들이 지닌 인력(引力)은 종이 아래 플로터의 움직임과 펜을 연동시키는데, 작가는 자신의 낙서를 기계가 답습하는 모습을 그리게 만들었던〈휴머노이드 오브젝트〉#1, #2에 이어 3번째 업데이트를 통해 인공지능 스스로가 낙서를 생성하는 모습을 선보인다. 여기서 ‘낙서’라는 행위는 도구적이며 기능적인 역할로 제한되었던 기계가 스스로 객체적 자율성을 획득하게 되는 상징적 지표로 작동한다.
민찬욱이 인공지능을 이용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의지와 엇나가는 방향성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면, 조현서는 인공지능을 자신의 충실한 대행자로서 설정하고 이를 활용하여 예술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과 기술융합지원사업’ 후원으로 진행된〈피그말리온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아름다움’이라는 주관적 감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관하여 자신이 큐레이션한 다양한 종류의 이미지 1만여 개로 구성된 데이터셋으로부터 인공지능 모델 ‘피그말리온’을 만들었다. 여기서 수집된 이미지들은 작가가 아름답다고 느낀 예시들인 셈인데, 인공지능은 이러한 작가의 미감을 바탕으로 스스로 예술적 이미지를 창조한다.4 이러한 인공지능의 활용 방식은 최근의 챗GPT와 같은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를 활용한 예시들과는 근본적인 구분점을 갖는다. 인간 주체에 의해 창작된 기존 이미지들에 대한 데이터 학습에 기초하여 생성됐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지만 이와 같은 경우는 인공지능이 예술 창작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으로 자기생산적 체계로서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조현서의 경우 이러한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지닌 심미적 판단의 부분에 접근함으로써 인간의 미적 감상 지점과의 동일성과 차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지닌다.
3 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인 마투라나와 바렐라에 따르면 하나의 자기생성 조직은 구체적인 자기생성체계에서 체화에 의해 위상학적 단위체를 획득하며, 자기생성 조직이 자기생성을 유지하는 한, 자체의 동일성을 존속시킨다. 이뿐만 아니라 자기생성체계에 의해 정의된 공간은 자족적(self-contained)이며, 또 다른 공간을 정의하는 차원을 사용해서는 기술될 수 없다. 움베르토 R. 마투라나 프란시스코 바렐라 지음 정현주 옮김 『자기생성과 인지 : 살아있음의 실현』 갈무리 2023 p. 218
4 문서영 「Pygmalion Project」 조현서 『피그말리온 프로젝트』 2023
5 정세라 「인간이 없는 세계에서 의식의 본질을 찾을 수 있을까 : 이안 쳉, 《세계건설》」
『퍼블릭아트』 2022년 5월호 p. 114 참조
이안 쳉 〈Life after BOB : The Chalice Study〉(스틸) 3D 애니메이션 50분 15초 2021~2022
출처 : https ://lifeafterbob.io/
3. 객체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예술작품
최근 인공지능 예술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특정 상황에 대한 선택적 행위를 통해 자기 자율성을 스스로 확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점에 있다. 지난 2022년 리움미술관에서《세계건설》전을 개최한 이안 쳉(Ian Cheng)은 게임엔진과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생성적 시뮬레이션 작업을 선보여왔다. 그는 가상의 생태계 속 인공지능을 가진 등장인물과 자연환경이 서로 반응하면서 그들 사이에 유기적 사건이 촉발되는 세계관을 제시한다. 작가의〈사절(Emissaries)〉 3부작은 서사가 미리 정해져 있는 기존 애니메이션과 달리 내러티브 에이전트가 코딩된 매개 변수 내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기술에 의해 구동되는데, 이러한 성격 탓에 ‘영원히 플레이되는 비디오게임’으로 비유되기도 한다.5
〈BOB(Bag of Beliefs)〉(2018~2019), 〈Life after BOB: The Chalice Study〉(2021),〈Thousand Lives〉(2023~2024) 등의 일련의 작품에서는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구조적 관계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BOB’은 뱀을 닮은 인공지능 생명체로서 작품 속에서 인간을 대리한다. 작가는 인간의 의식이 작동하는 방식을 구현하는 대리물로 BOB을 설계하였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유일하게 관객들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BOB은 관객들의 개입으로부터 학습하며 인간과의 공진화 구조에 놓여있음을 드러낸다. 〈Life after BOB〉과 〈Thousand Lives〉에서는 BOB이 이식된 주인공인 ‘찰리스(chalice)’와 찰리스의 반려 거북이 ‘사우전드(thousand)’와 같은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뉴로-심볼릭(neurosymbolic) A.I’ 모델에 의해 구동된다.6 이들은 모두 BOB과 마찬가지로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하지만 각 캐릭터는 자신만의 의식 모델을 갖고 있으며 (관객과의 상호작용이 아닌) 그들만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를 진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안 쳉 작업의 흥미로운 부분은 예술작품의 내용에서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등장하여 작품 속의 세계가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는 지점을 갖는다는 것인데, 이로부터 관객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는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객체로서 예술작품의 의미가 생성된다. 또한 이러한 구도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사항은 예술 창작의 과정에서 창작 주체로서의 인간 및 감상자로서의 관객 개입이 모두 최소화된다는 점이다. 이는 이전까지의 ‘예술가-예술작품 혼성체’를 다른 차원의 구도로 변환시킨다. 이른바 객체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예술작품이 그것인데 이를 다이어그램으로 표기해보면 ‘표 3’과 같다.
여기서 이안 쳉의 작품 속 인공지능 대행자들과 작가의 관계는 신과 피조물과 같은 절대적 주체와 타자의 관계로 설정되지 않으며 오히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 유사하다. 작가는 2023년 플린스(plinth.uk.com)를 통해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견해를 드러내는데, 작품 속에서 다양한 인공지능 대행자들을 설정하여 진화시키는 과정에서 “인간 존재가 다른 어떤 것의 부모 종(parent species)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그는 우리가 인공지능에 관한 의문의 단계에서 종 전체의 차원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받아들이는 지점에 도달한 것 같다고 설명한다.7
생물학자로서 사이버네틱스의 과학적 토대를 구축한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논의를 소환해보자면 자기생성 복합체계(혼성체)의 구성요소인 단위체들은 타자생성적 역할을 맡아서 구성 관계, 특정화 관계, 질서 관계의 생산을 통해서 하나의 자기생성 공간을 정의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체계는 그 자체로 2차 등급의 자기생성 단위체가 됨을 설명한다.8 이러한 설명으로부터 작가와 예술작품의 혼성체로부터 2차 등급의 자기생성 단위체(인공지능)가 생성되는 경우를 상정해보면, 이러한 혼성체가 보다 상위 등급의 자기생성체계와 하위 등급의 그것으로 분기되는 장면을 떠올려 볼 수 있는데9, 이러한 관계로부터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혼성체는 인간을 최소한의 구성성분으로 상정하는 단위체를 넘어 예술작품 안에서의 대행자적 관계들에 의한, 즉 객체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예술작품을 구성한다.10
6 뉴로-심볼릭(신경-기호) AI는 신경 및 기호 AI 아키텍처를 통합하여 각각의 약점을 해결하는 인공 지능의 한 유형으로 추론, 학습 및 인지 모델링이 가능한 강력한 AI를 제공한다. 이러한 뉴로-심볼릭 A.I는 생성인공지능의 한계를 점진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데, 생성인공지능이 지닌 낮은 논리력의 문제는 뉴로 심볼릭 인공지능이 성숙하면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영문 위키피디아 Neuro-symbolic AI 참조 https ://en.wikipedia.org/wiki/Neurosymbolic_AI 윤기영 「생성인공지능은 인간을 대체할까?」 ifsPOST 2023 https ://www.ifs.or.kr/bbs/board.php?bo_table=News&wr_id=53737 참조
7 Gary Zhexi Zhang When AI Grows Up Interviewed with Ian Cheng Plinth 2023 https ://plinth.uk.com/blogs/in-the-studio-with/ian-cheng-life-after-bob
8 움베르토 R. 마투라나 프란시스코 바렐라 앞의 책 p. 260
9 마투라나와 바렐라는 이러한 맥락에서 상위 등급의 자기생성체계가 자기재생산을 겪을 때, 하나의 진화 과정이 시작됨을 설명한다. 그들에 따르면 그 진화 과정 안에서는 구성요소인 자기생성체계들의 실현 방식의 진화가 복합 단위체의 실현 방식의 진화에 필연적으로 종속된다
10 이에 관하여 마투라나와 바렐라는 자기생성체계의 구성요소들과 상호작용할 때 자기생생적 공간에 놓여있지 않은 구성하는 요소들의 속성들을 거치며, 따라서 우리가 자기생성체계의 구성요소들을 수정하여 자기생성체계의 구조를 수정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움베르토 R. 마투라나 프란시스코 바렐라 앞의 책 pp. 218~219 참조
* 본 원고는 (재 )예술경영지원센터 ‘2024 한국미술 비평지원’으로 진행하는 특별기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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